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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172

소련파 장령 3 김책 金策 1903년 6월 함북 학성(현재의 김책시)에서 출생. 가나한 농민가정 출생. 동북 연길 지방으로 이주. 지주집 목동. 길림성 동흥중학교 입학. 재학중인 1927년 9월 일경에 체포,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그 후에도 할빈, 봉천, 길림 등지에서 여러차례 수감생활. 동북항일연군에서 맹활약. 1943년 .. 2006. 2. 8.
소련파 장령 2 김광협 (오른쪽 첫번째) 金光俠. 1915년 함경북도 부령군 출생. 1940년 중국에서 (?)군관학교 졸업. 동북항일연군 부대의 부대장. (구체 직무 미상) 소련 하바로프스키 야영 88여단에서 활동. 중대장? 소련 홍군을 따라 동북에 들어온 후 목단강 주둔 홍군위수사령부 소위少尉 부사령관이 됨. 세명의 다른 .. 2006. 2. 7.
일제시대 헌병 경찰제도 일제시대 헌병, 경찰, 순사 일제시대 헌병 경찰제도 1907년 말 조선駐箚헌병대 설립. 인원은 2,369명. 헌병대장은 아카시(明石元二郞)육군소장. 1908년 조선인 4,065명을 헌병보조원으로 모집하여 의병토벌과 정보탐색에 주력하는 동시에 한국의 군사경찰, 행정경찰, 사법경찰까지 장악했다. 1910년 6월 주차.. 2006. 2. 7.
연안파 장령 3 박일우 중간 화북 지방에서 무정과 함께 조선의용군 결성. 1946년 귀국. 1946년 8월 중앙 상무위원. 1947년 2월 내무국장. 1948년 9월 내무상. 1950년 6월 25일 중앙위원회 군사위원. 중조연합군 정치위원. 1950년 11월 전선 사령부 부사령관. 1955년 4월 숙청. 2006. 2. 6.
연안파 장령 2 김웅 金雄. 위 사진:왼쪽 첫번째. 연합군 사령관. (두번째 사람은 부 정치위원 박일우) 아래 사진:오른쪽 첫번째 김웅, 두번째 박일우 왕신호 王新虎 또는 王子仁이라고도 함. 다른 자료에서는 왕자인이 최인崔仁으로 되어 있음. 혼돈이 있는 듯 하다. 1914년 경상북도 출생. 1930년대 중국으로 이주. 1933년.. 2006. 2. 6.
소련파 장령 1 강건姜健. 본명 강신태 1918년 6월 23일 경상북도 상주읍의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했다. 1928년 (10 세)온 가족이 중국 寧安縣팔도하자로 이사했다. 조선족독립인사가 설립한 사립학교에서 공부했다. 1933년 영안유격대에 입대했다. 1934년 2월 16일 16살 되던 해에 중공영안현위 공개무장대표로 주보중.. 2006. 2. 6.
연안파 장령 1 방호산. 方虎山 生卒연대 미상. 청년시절 활동 미상. 1937년 공상국제중국대표단 (부단장 康生)소개로 모스크바 동방노동대학에 유학했다. 당시 유학생들은 모두 假名을 사용했는데 그의 가명은 李天夫였다. 조선족 學員들의 기숙사는 12號樓이고 한족기숙사는 8號樓였다. 같은 반에 동북에서 온 유학.. 2006. 2. 6.
하바로프스크 88국제여단 彭施魯 88독립여단 2대대 3중대장 팽시로의 회고록 발췌 1940년 말 우리는 관동군의 추격을 피해 국경을 넘어 소련 경내로 들어갔다. 소련 변방군에게 무장을 해제당했다. 검사를 마치자 밤중에 트럭 몇 대가 오더니 우리 일행을 하바로프스크로 이송했다. 거기서 목욕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시내.. 2006. 2. 5.
[스크랩] 친일파6 특별기획- 미리보는 친일인명사전 6] 만주 특무책임자 김창영정운현(jwh59) 기자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을 계기로 우리사회에 친일파 논쟁이 뜨겁습니다. 는 친일문제연구가인 정운현 편집국장이 지난 98년부터 1년여 (현 서울신문)에서 연재한 후 단행본으로 묶어펴낸 (개마고원 출간)의 내용을 '미리보는 친일인명사전' 형식으로 다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경찰 시절의 김창영 ⓒ 조선공로자명감뚜렷한 친일행적을 남긴 친일파 가운데 김창영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친일파가 있다. 일제하 총독부 군수·경시 등을 거쳐 다시 만주국 고관으로 선발돼 김일성(金日成)부대 등 항일군의 귀순공작 책임자를 지낸 그였지만, 전문연구자들도 친일파 명단 속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그 이유는 대부분의 친일경력자들과 달.. 2006. 2. 2.
[스크랩] ★만주제국시절 조선인 284명의 친일행적 만주제국시절 조선인 284명의 친일행적 책("만주제국 조선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만주를 강점한 후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과 만주국에서 생활한 조선인의 삶을 다뤘다. 저자(남창룡)는 1994년부터 1년반동안 중국 옌벤(延邊)대학에서 동북아시아 역사를 연구하며, 일제 만주국 관련자료를 섭렵해왔다. 특히 일제가 만주와 조선경영을 위해 만들어낸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분석하며 당시 친일우리말 신문사인 '만선학해사'가 발행한 단행본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기고한 조선인과 그들의 글이 가진 친일적 내용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에서 활동한 주요 인사들 중 많은 사람이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저자가 찾아낸 만주제국 조선인의 행적.. 2006.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