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의미의 공간
  • 자연과 인간
한국사

[스크랩] ★만주제국시절 조선인 284명의 친일행적

by 8866 2006. 2. 2.

만주제국시절 조선인 284명의 친일행적


책("만주제국 조선인")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만주를 강점한 후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과 만주국에서 생활한 조선인의 삶을 다뤘다.

저자(남창룡)는 1994년부터 1년반동안 중국 옌벤(延邊)대학에서 동북아시아 역사를 연구하며, 일제 만주국 관련자료를 섭렵해왔다.

특히 일제가 만주와 조선경영을 위해 만들어낸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분석하며 당시 친일우리말 신문사인 '만선학해사'가 발행한 단행본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기고한 조선인과 그들의 글이 가진 친일적 내용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각계각층에서 활동한 주요 인사들 중 많은 사람이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저자가 찾아낸 만주제국 조선인의 행적은 그들의 또다른 친일행적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를 '일제 만주제국 조선인 인명사전'이란 항목으로 만들어 모두 284명의 인물이 만주국에서 했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각계 각층에서 활동한 주요 인사들 중 많은 사람이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저자가 찾아낸 만주제국 조선인의 행적은 그들의 또다른 친일행적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를 ’일제 만주제국 조선인 인명사전’이란 항목을 만들어 모두 284명의 인물이 만주국에서 했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문화일보

만주제국 조선인 인명사전(284명) <가나다순>

일제 만주국(1932~45)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한 인물들을 수록한 것임.

* 만주제국 지명 중 수도 신징(新京)=창춘(長春), 펑톈(奉天)=선양(瀋陽), 젠다오(間島)=옌볜(延邊).

* 친일파로 지목돼 반민족행위 재판을 받거나 6·25전쟁때 납북 및 5·16쿠데타에 연관된 사람들

고원증, 권상로, 김동하, 김동환, 김연수, 김용기, 김윤근, 김제민, 김창영, 박림항, 박정희, 방원철, 서춘 ,신기석, 안병소, 유원식, 유자후, 윤부병, 윤태일, 이광수, 이돈화, 이병도, 이상무, 이선근, 이성근, 이정삼, 이중화, 원용덕, 정상인, 정일권, 채필근, 최규하, 최남선 ,최린, 최주종, 황종률, 현상윤 등이다.

* 만주제국 정부산하기관 간부 및 훈장수여자

강문봉, 강필선, 고재필, 권오훈 ,기용숙, 김병순, 김석범, 김석원, 김연수, 김용기, 김응두, 김응조, 김일환, 김진흥, 김창룡, 김창영, 김태호, 김팔봉, 남상일, 민태원, 박남규, 박승하, 박정희, 박창해, 박팔양, 방원철, 배응도, 백남현, 백석, 서범석, 송석하, 신기석, 신형식, 안영길, 연화이, 오정수, 원용덕, 유동천, 윤석상, 윤태동, 이민재, 이범익, 이선근, 이성재, 이영춘, 이웅렬, 이원형, 이인기, 이주일, 이한림, 이홍주, 임한룡, 장규원, 전풍진, 정원훈, 정일권, 조권순, 최남선, 최중원, 현기영, 황종률 등.

강경애(姜敬愛):
평양숭의여학교 중퇴·서울 동덕여학교 편입(25년), 양주동(梁柱東)과 동거하다 헤어짐, 장하일(張河一)과 결혼한 후 만주 옌볜(延邊)에 가 작품활동(32), 한때 조선일보 젠다오(間島) 지국장을 역임했으나 나빠진 건강으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사망(43)

저서:조선일보에 단편소설 파금, 부자, 채전, 지하촌, 축구전, 유무, 모자, 원고료 이백원, 해고, 산남, 어둠 연재, 혜성과 제일선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 발표하여 문단 데뷔, 소금, 인간문제

강문봉(姜文奉):
만주 용정 출생, 아버지 윤철(潤喆)이 고향인 함경북도 부령을 떠나 만주에서 동만은행을 비롯한 여러 기업체를 설립, 신징(新京·창춘·長春) 조선교민회 회장과 만주제국 협화의회(協和議會) 대의원, 신징중학교를 졸업, 만주 육군군관학교(제5기)를 수석으로 졸업(42),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하여 59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육군소위로 임관(45)

광복 후:군사영어학교를 마친 뒤 군 창건에 참가, 대령·준장·소장, 미국 육군참모학교 유학, 중장, 제2군사령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대학원을 마치고 귀국하여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주스웨덴·스위스·바티칸 대사, 유정회 국회의원, 연세대에서 행정학박사 학위, 옛 전우와 관련된 회고록을 쓰기위한 작업에 몰두했으나 신병으로 미국에서 사망(86년)

상: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태극무공훈장

강영훈(姜英勳):
만주 건국대 경제학과(제2기)

광복후:육군사관학교 교장,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영국대사, 13대 국회의원, 국무총리, 도산기념사업회장, 대한적십자사총재, 한국외국어대 이사장

상:을지무공훈장, 수교훈장 흥인장
저서:한 외교관의 영국이야기, 소련연방제 이해, 한국통일문제(영문)

강재순(姜載淳, 神農白統):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강창선(姜昌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강태민(姜泰敏):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3기생

강필선(姜弼善):
만주 펑톈(奉天, 선양·瀋陽)·신징(新京, 창춘·長春)경찰학교 본과졸(36∼37년), 일본 도쿄(東京) 경찰강습소 본과졸(38), 만주 중앙경찰학교 학감(38), 만주 고시행정과 합격(40)

광복 후:동방산업 사장·온양문화 원장, 재건운동 아산군촉진 회장, 민정당 아산지구당 위원장 충남부위원장, 신민당 아산지구당위원장겸 충남 부위원장, 곡물협회 충남 회장, 신민당 충남 위원장·제8대 국회의원(전국 신민)·신민당 지도위원·곡물협회 상임고문, 통일당 정치위원겸 당기위원장 및 온양극장·온양정미소 대표

고문룡(高文龍, 高山棲麟):
의학박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만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만주의 최근 의학 발달 개사’기고(43)

고유섭(高裕燮,호 우현·又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졸(25년), 경성 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졸(30),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국내의 중요한 고대미술품의 조사와 연구, 개성부립박물관 관장(33),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백제의 탑파’기고(43), 40세 병사(44)

상:우현상 제정
저서:고씨가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글들을 제자 황수영(黃壽永)이 한국미술사급미학논고, 조선화론집성, 한국미술문화사논총, 송도의 고적 등을 간행

고원룡(高元龍):
만주 신징 법정대학 졸(38년)

광복 후:고려흥업상무, 합동기업상무, 동양시멘트상무·부사장, 동양내화연와이사, 동양시멘트사장

고원증(高元增,호 운산·雲山):
만주 퉁화(通化) 출신, 경성법전졸·만주고문(高文)합격(43)

광복 후:육본 법무 차감, 육군 준장, 국방부 법제위장, 법무장관, 5·16재단 상임이사, 문화방송 사장, 준장예편, 대한소년단 이사, 변호사개업, 대한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민족사상 연구모임인 한모임 회장, 새시대사명자연합회 회장, 세종대재단 이사장·이사

고재필(高在珌,·高山在秘, 호 하남·河南):
만주 고문합격(37년), 대동학원졸, 일본 주오(中央)대 예과졸(38), 만주 안동(단둥·丹東)시 공서(公署) 행정과 사무관

광복 후:법제처 법제관, 국방부 1국장·법전 편찬위원, 국회법제 조사국장, 상무회 사무총장·향군회 이사, 민국일보 논설위원·변호사개업, 단국대 교수, 공화당 정책위원겸 전남7지구위원장, 제7·8·9·10대 국회의원(유정회), 국회 법사위장, 공화당 법사위장겸 정책위원, 국회 보사위장, 유정회 정책위원겸 운영위원, 보건사회부 장관, 국회 건설위원장, 제2무임소 장관, 변호사개업, 국정 자문위원, 지방자치제 실시 연구위원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사회복지 위원장, 헌정회 정책심의위원회 의장·부회장, 서울동부합동법률사무소 대표

상:충무무공훈장, 청조근정훈장
저서:형사소송법강의, 이렇게 달라졌다

고정훈(高貞勳):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대 영문과졸(41년), 만주 하얼빈(哈爾濱) 북만학원대학(러시아 정복에 대비, 특수한 임무를 가르친 학교로 러시아어와 정치 교육을 전담) 노문과를 다니면서 영어·러시아어·중국어·프랑스어 등을 익힘(45)

광복 후:미소공동위원회 미국측 통역관으로 활동, 육사7기 특별반졸, 육본 정보국차장, 중령 예편, 코리언 리퍼블릭 편집국장, 조선일보 논설위원, 진보당 선전간사·민혁당 선전국장, 구국청년당 대표, 통일사회당 선전국장, 정치범으로 복역, 아진화성 회장, 민사당 당수, 제11대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신정사회당 총재·상임고문, 민주사회주의연구회 이사장

상:수교훈장 흥인장
저서:부르지 못한 노래, 코(상권), 촛불처럼 비누처럼

권상로(權相老, 安東相老, 호 퇴경당·退耕堂):
불교학자 승려, 문경 금룡사에서 중이 되어 그곳 불교전문 강원에서 불교학을 연구·수료(1896년), 경의학교·성의학교 등 불교계통 학교에서 교편, 불교원종 종무원 찬집부장 역임, 조선불교원보 사장(1911), 불교사 사장(23),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혜화)전문학교 교수(31∼44),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불교의 수입시대와 불도의 원리’기고(43), 조선총독부 시국강연반의 연사로 활동하면서 승려들에게 지원병을 권유(38), 국민총력조선연맹에 참가(40), 불교총본산인 태고사의 교학편수위원(44)

광복 후:동국대 교수·학장·초대총장·명예철학박사, 국어심의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불교법규 위원, 불교성전 편찬위원, 대한고서간행회 국역위원, 대한종교신도연맹 고문, 신라가야문화연구소 위원, 중앙불교연구원 원장, 현대불교 사장, 불교조계종 원로원장, 불교사상사 사장, 사후 대종사 법계에 오름

상:대한민국 문화훈장
저서:조선불교약사, 조선불교사, 삼국유사역강, 사료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고려사불교초존, 한국불교사료, 한국사찰전서, 조선종교사, 조선선교사, 한국지명연혁고, (논문)능엄요초, 팔관회참고, 자학관규

권오훈(權五勳):
대구고등보통학교 수료(33년), 만주 고문 행정과 합격(43), 만주 펑톈시 퉁화성 사무관(43∼44)

광복 후:미창총무부장·지점장, 농협 안동 조합장, 농협운영위원, 공화당 정책위원겸 안동지구위장, 6대국회의원·국회농림위장, 국제농림수산기술교류협회장·고문, 국민당 정책위 의장

저서:농협창고사업론

권일(權逸):
만주 고문 사법과 합격(37년), 만주판사·일본 메이지(명치)대법학부졸(38), 대동학원졸, 일동경변호사회원(45)

광복 후:변화사개업, 주일대표부 법률고문, 재일거류민단중앙총본부 외무부장·사무총장·부단장·단장·상임고문, 법학박사(일본 메이지대), 공화당 대통령 선대위 고문, 제8·9대 국회의원, 일본문제연구원 이사장, 유정회 정책위원·교민대책위장, 역도협회장, 헌법심의위원

상:국민훈장 동백장, 무궁화장
저서:조국의 염원, 친족상속법(일문),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회고록, 세계 지성인이 본 한국

권중휘(權重輝,호 한산·閑山):
일본 도쿄(동경)제대 문학부졸·중등교교사(31년), 동래고보 교사(35), 신징공대 교수(41)

광복 후:고대교수(명예문학박사), 서울대 문리대 교수, 외대교수·학장, 서울대 총장, 학술원 회원, 한국셰익스피어협회장, 우석대 이사, 문교부 교육정책 심의위원장, 고등교육 분과위원장·정책심위장, 운정 장학재단 감사

상:황조소성훈장, 문화포장
저서:An Elementary English Grammer, A.Pocket English. Korean Dictionary
작품:수필집 무위의 변, 낙엽

권혁소(權赫紹):
대구고등보통학교졸, 만주 건국대학 경제과졸(43년), 만주 대동학원졸(44)

광복 후:대구대 교수, 국무총리 비서관, 대구대 대학원장·학장, 경희대 교수, 도시 및 지역개발 연구소장, 경영학박사(영남대)

저서:신경제대의

기용숙(奇龍肅):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생물학을 연구(25년), 만주의 일본인 회사인 다롄(大連)만철 부속연구소 만광위생연구소에 근무(32), 만주 의과대학에서 논문 ‘페스트균의 항원 분석’으로 의학박사 학위 수여(43), 대구 동산병원 소아과장(43), 경성의전교수(45)

광복 후:서울대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명예)로 재임중 면역분야 발전에 기여, 미생물학회 회장, 학술원 회원,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인류생태학회 부회장

상장:학술원상, 국민훈장 모란장

김광식(金光植):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교관

김규민(金圭敏,호 원당·元堂):
일본대 전문부 법과졸·고문 예시합격(40년), 만주 고문 행정과 합격(41), 만주 대동학원졸(42)

광복 후:재무부 회계검사국장, 심계원 1국장, 상공부 상역국장, 석유공사 이사, 대한상의 사무국장, 상공부 차관, 인천중공업 부사장, 진양통상 회장, 진양석유 사장

김규삼(金圭三):
만주 고문 사법·행정과합격(38), 연희전 상과졸(39)

광복 후:연대 상경대 강사·조교수·부교수·학장서리·교수·도서관장·경영대학원장, 미국 워싱턴대 경영대학원졸, 공인회계사, 연세대 재무처장

상:국민훈장 동백장
저서:체신회계학, 관리회계, 원가회계, 상업부기, 원가계산, 건설공사원가관리

김기준(金基濬):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김기철(金基喆):
동흥중졸(36년), 만주 지린(吉林) 사범학교졸·교편생활(38), 만주 신선공립우급교장(39)

광복 후:임정비상 국민회의 대의원, 제헌국회 의원, 제3·5대 민의원, 민권수호국민총연맹 대변인·공명선거추진위원회 조직책임위원, 농림부 정무차관, 민주당 당무위원겸 조직위장, 민주구락부 대변인, 민주동지회 대표간사, 야당 대통령후보 단일화 추진위원회 사무총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꾸르실료사무국 주간,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전국협의회 회장,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부회장, 한국협의회 상임고문, 가톨릭교리연구소 상무, 하이파이사 사장, 한국수출진흥 고문, 체신 장관, 제11대 국회의원,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비동맹7개국 순방, 제11대 정보통신부 장관, 제헌동지회 부회장, 조치훈 후원회장

상: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조근정훈장, 이탈리아 공로훈장

김동진(金東振):
평양숭실중졸(32년), 숭실전문학교 영문과졸(36), 일본 고등음악학교졸(38), 신징 교향악단 바이올린·작곡담당(39), 평양교향악단창설·지휘(45)

광복 후:해군 정훈음악대 창작부장겸 지휘자, 서라벌예대 교수, 예술원 회원, 경희대 음대 교수·학장·명예교수, 신창락 회장, 숭실대 명예문학박사

상:국민훈장 모란장, 3·1문화상 예술상, 예술원상
저서:(가곡집)내마음, 목련화, 신창악곡집, (오페라)심청전, 춘향전

작품:(예술가곡)봄이오면, 가고파, 내마음, 수선화, 목련화, 진달래꽃 등 100여곡, (관현악곡)양산가, 제례학, 방아타령, 가야금협주곡, (교향곡)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조국, 민족의 기원, (오페라)심청전, 춘향전, (음반)한국정신음악신창악곡집, 김동진가곡집

김동하(金東河):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42년)

광복 후:해병대 1연대장·교육단장, 해병1상륙 사단장, 소장예편, 최고회의 고문·운영기획위장, 현역 복귀하여 친선사절로 중남미 방문·최고회의 재경위장, 대한체육회장·최고회의 외무국방위장, 해병대사령관, 중장예편, 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 마사회장

상:1등근무공로훈장, 을지·충무은성훈장, 미동성훈장

김동환(金東煥, 아명 삼룡·三龍, 호 파인·巴人):
경성보통학교졸(13년), 중동중학교졸·일본 도요(東洋)대 영문과 진학(21), 함북 나남에 있는 북선일일보사 문단데뷔(24), 조선일보·동아일보 기자(25), 월간지 ‘삼천리’창간(29), ‘삼천리 문학’발간(38), 삼천리를 ‘대동아’로 개명하면서 황국신민화운동(42),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김옥균 선생의 묘’기고

광복 후:반민특위에 의해 공민권 제한을 받다가 6·25전쟁때 납북

저서:‘금성’5월호에 시 ‘적성을 손가락질하며’를 처음 발표(24년), 조선지광, 조선문단, 신민, 동광, 신동아, 조광 등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등을 발표, (시집)국경의 밤(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 승천하는 청춘(2권), 삼인시가집(이광수·李光洙·주요한·朱耀翰과 공저), 해당화, 산너머 남촌에는, 북청물장수, 우리들은 칠인, 오호 태평양상의 군신, 무명전사 묘 앞에, 33인의 송가, (수필집)꽃피는 한반도, 조선명작선집, 반도산하

김동훈(金東勳, 호 海巖):
만주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45)

광복 후:일본 육사졸, 서울대 공대 금속과졸, 조선알미늄 연구원, 국방과학기술연구소 연구관,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수료, 서울대 공대 강사·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명예), 일 도후쿠(東北)대 금속재료 연구위원, 금속학회 회장, 서울대 생산기술 연구소장,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심사위원, 용접기술협회 이사

상:화랑무공훈장, 국민포장, 국민훈장석류장
저서:금속조직학, 금속상변태

김두종(金斗鍾,호 일산·一山):
서울 휘문의숙(휘문고)에 입학하여 의학과 역사에 관심, 일본 교토(京都) 부립의학 전문학교졸(24년), 하얼빈에 건너가 내과의사로 제세의원 병원 개업, 만주 의과대학의 동양의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가 학문연구(36),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내지로 건너갔던 신라와 백제의 의사들’기고, 의학박사학위 수여(45)

광복 후:서울의대 (명예)교수·부속병원장, 의사학회 회장,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의학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한국의학사 연구, 김규식(金奎植)이 창설한 대한적십자사의 초대 보건부장으로 활약하며 부총재 역임, 미프랑스 의사학협회 회원, 학술원 종신회원, 숙대 총장, 의학협회 회장, 성균관대 이사장, 동방자연과학연구회 이사장, 과학사학회 회장, 외솔회 이사장

상:학술원 저작상, 문화훈장 대통령장, 한국출판문화상, 수당과학상, 5·16민족상
저서:한국의학사, 한국의학 문화사 연표, 한국의학발달과 서남방적영향, 한국고인쇄기술사, 동서의학사 대망

김두헌(金斗憲, 쯔루야마 겐·鶴山憲, 호 예동·汭東):
대구고등보통학교졸(21년), 일본 도쿄(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윤리학과졸(29), 이화여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혜화)전문학교의 강사와 교무과장 및 교수,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첩제사소고’기고, 경성대학 문리과대학 철학과 주임교수(45)

광복 후:교육부 고등교육국장, 서울대에서 문학박사학위 수여, 전북대 총장, 학술원 종신회원, 건국대 대학원장·대우교수, 중국 원화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 수여, 윤리학회 회장

저서:조선가족제도연구, 현대의 가족, 윤리학개론, 도의원론, 민족원론, 현대인간론, 서양윤리학사

김득황(金得榥,호 고암·孤岩):
일본 니혼(일본)대 법학과졸·만주 고문 행정과합격(42년)

광복 후:보사부 원호국장, 주택영단 이사, 참의원 법제 조사국장, 지방행정협회 회장, 공화당 기획부장, 내무부 차관, 기독교반공연합 이사장, 아시아기독교반공연합 이사, 주택은행 운영위원, 공화당 서울15지구 위원장, 숙명학원 이사, 홀트양자회 이사, 한국사상연구소 소장, 한국십자군연합회 회장, 동압아동복지회 이사장, 대륙문화연구회 회장

상:대통령표창, 국민훈장 동백장, 5·16민족상
저서:한국사상사, 한국종교사, 한국고대도덕의 연구, 한국사상의 전개, 백두산과 북방 강계, A History of Religions in Korea, 기초만주어사전, 만주족의 언어, 만주사화, 만한사전

김묵(金默):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김민규(金敏奎):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김병규(金秉奎):
지린성 성공서 사무관으로 건국공로장 수여(33)

김병순(金炳淳,호 인제·仁齊):
일본대졸(38년), 만주 펑톈 산업은행 지배인대리(39)

광복 후:동화산업 전무, 충남제사 전무, 한국유리 전무, 충남제사 사장

김병원(金炳元):
만주 신징 법정대학 경제과졸, 만주 고문 합격(43년)

광복 후:중앙산업 사장, 국도극장 회장, 한국대 교수, 인화실업 회장, 미시라큐스대 대학원졸, 능률협회 회장, 금통 운영위원

김봉환(金鳳煥):
만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장 수여(33)

김사룡(金仕龍):
일본 주오대(中央)대졸, 만주 대동학원졸

광복 후:춘천·대전·대구지방검사장,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2차 운영위원, 제11대의원(민정당 전국구)

김삼수(金三守):
이단(伊丹)중졸, 만주 건국대학 경제과 및 만주 대동학원졸·만주 고문 행정과 합격(43년)

광복 후:서독뮌헨대서 경제학연수학, 대구대교수, 경희대 경영학박사, 고대 경상대 조교수·부교수·교수, 숙대 정경대 교수·대학원장·도서관장겸 정경대학장, 건국대 대학원강사, 전경련 자문위원

저서:한국사회경제사연구, 경제학연구

김상기(金庠基,호 동빈·東濱):
보성고등보통학교졸(26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문학부 사학과(동양사전공)졸(31년), 진단학회 조직(34),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유와 이화여자 전문학교 강사(39), 중앙중학교 교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발해약사’기고(43), 서지학회 조직·경성대 법문학부 교수(45)

광복 후:서울대 문리대교수·학장, 학술원 종신회원, 서울대 문학박사, 중국학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문화재보존위원회·독립기념사업위원회·민족문화추진위원회 등 학술·문화관계 위원회의 위원 또는 위원장 역임, 갑오혁명기념사업회 회장, 동아대 초빙교수, 백산학회 회장, 건국대 대우교수·국사편찬위원, 중화학술원 철학박사, 고고학협회 회장, 독립운동사 편찬위원, 안중근의사숭모회 부이사장

상:서울시공로표창, 문화훈장대한민국장, 학술원공로상
저서:중국고대사강요, 고려시대사, 역주고려사, 동학과 동학란, 동방문화교류사논고, 동방문화사논고, (논문)갈문왕고, 한예맥이동고, 동이와 회이·서융에 대하여, 독서당고, 태한전설의 유래에 대하여, 또한 많은 해제·전기·서문 등과 비문·명문을 남겼으며 동양사학계의 전해종·고병익·이용범·함홍근·민두기 등은 그의 후계자 구실을 함

김상복(金相福):
만주 펑톈 의과대학졸(44년)

광복 후:소위, 육본인사국장, 사단장, 국방대학원수료, 국민대졸, 국방부 관리국장, 석유공사 총재, 훈련소 소장, 군단장, 국방부 관리차관보, 육참 차장, 중장예편, 내무 차관,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한전 사장, 전경련 이사, 전기협회 회장, 신동아화재 회장

상:금성화랑, 금성충무훈장, 미동성훈장, 미공로훈장

김석권(金錫權):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김석범(金錫範):
만주 신징 사범학교졸. 하얼빈 제4교도대 입대(34년), 만주 육군군관학교졸업 후 간도특설대 연장(37), 일본 육사졸(40), 만주국군 상위로 주국 7·6위 훈장 수여(43)

광복 후:해군 중위, 진해통제부 참모장, 해병으로 전속 해병1여단장, 해병대 부사령관·사령관, 국방대학원수료,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해병대 중장예편, 향군회 부회장, 한국기계 사장, 세계향군연총회 한국대표, 상무재단 이사, 성우구 부회장, 해병장학회 회장, 행개위 부위장

상:태극·을지무공훈장, 미동성훈장, 대통령표창

김석원(金錫源):
만주 육군 보병 대위로 건국공로장 수여 후 국경감시대 근무(34)

김선태(金善太,호 일송·逸松):
일본 니혼대(日本大) 전문부 법과졸, 일본 고등문관 시험 사법과에 합격(38년), 전주·청주·청진 등 지방법원 판사

광복 후:변호사개업, 국민대 감사겸 강사, 제3·4·5대 민의원,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때 국회조사단의 일원으로 활동, 3·15부정선거 후 마산사건때는 국회특별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 민주당 인권추진위원장, 무임소 국무위원, 개헌반대투위 간부, 신민당 정무위원겸 인권옹호위원장, 양일동을 중심으로 한 신민당내의 유진산을 반대하는 연합세력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통일당에 참여하여 당 최고위원

김성은(金聖恩):
만주 하얼빈 농대수료(43년)

광복 후:해양경비대소위·1연대장, 해병1전투단장, 해병학교 교장, 국방대학원수료, 해병대 부사령관겸 참모장·사령관, 중장예편, 대한중공업 사장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고문, 국방 장관,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서해구락부 총재, 모형비행기협회 회장, 신일교회 장로

상:금성태극무공훈장, 1등근무공로훈장, 미지휘관최고훈장, 미은성·동성훈장, 중국·월남최고훈장

김세현(金世鉉):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김연수(金秊洙, 호 수당·秀堂, 아명 판흥·判興):

전북 고창군 부안면 영신학교졸, 일본 도쿄의 아사부(麻浦)중학교와 교토(京都) 제3고등학교·교토제국대 경제학부졸(21년), 삼수사를 설립하여 장성에서 농장경영을 하면서 줄포·고창·법성·영광·함평 등에서 농장경영(24년), 면방직업·제당업·염업 등에 종사하다 경성방직 상무(22년), 삼수사를 삼양사로 개칭(24), 중앙학교 설립자의 한사람으로 참여(29), 김성수가 중심이 되어 세운 경성방직의 제2대 사장(35), 남만방적 사장(38), 장학재단 양영회 설립(39), 조선방적 이사장·만주동광중 재단이사장(40), 만주제국 명예총영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재만조선인의 장래’기고(43)

광복 후:반민족행위 재판 받음, 수당장학회 설립, 삼양사 회장·명예회장, 경제협의회 회장

상:금탑산업훈장, 철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김영수(金映遂):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혜화)전문학교 교수,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지리산 성모사에 취하여’ 기고(43)

김영택(金永澤):
젠다오성 룽징(龍井)출생,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광복 후:중장예편, 군수사 기획처장

김용국(金龍國):

만주제국 펑톈 육군군관학교(40년)

광복 후:진해 해병학교 부교장, 해병대 연대장·참모장, 최고회의 혁재소장, 진해기지 사령관, 국방부 기획국장, 해병대 부사령관, 소장예편, 흥한화직 부사장겸 공장장, 동신화학 부사장, 국방사학회 부회장, 국민회의 대의원

상:금성충무훈장

김용기(金龍紀):
만주 신징상고졸(35년), 만주 육군경리학교졸(39), 만주육군 소위·대위(∼45)

광복 후:육사졸, 육군 수사국 차장, 육대졸, 2군 군수참모, 육군대학원수료, 연합참모본부 3부장, 최고회의 재경위 자문위원겸 기획위장, 준장예편, 수개공이사·부사장, 국방학회이사, 건설협이사장·건설공제조합이사장

저서:국방상으로 본 한국경제, 한국경제 분석과 전망, 한국이 본 일본경제

김원기(金元起):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김윤근(金潤根):
만주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45년)

광복 후:해사졸, 미국 해병대학졸, 연세대 경상대학원졸, 해병사 군수국장, 해병1상륙사 참모장, 수도방위 사령관, 5·16쿠데타 주역으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교통체신 위원장·부정축재자 처리위원·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 해병제1여단장, 중장예편, 호비사장, 5·16민족상 이사, 향군회 부회장, 동화수산 회장, 서울컴퓨터센터 감사, 수개공 사장, 대서양개발 사장, 서해구(誓海俱) 총재, 이인표(李寅杓) 사회과학도서관 재단 이사장

상:1등근무공로훈장, 중국운마훈장, 미은성훈장2개, 충무·을지무공훈장
저서:비화수기집 해병대와 5·16

김윤선(金允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7기생

김응두(金應斗):
만주제국 협화의회 수도본부 위원,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만주건국 약사’기고(43)

김응조(金應祚, 영암.靈岩):
3·1운동 학생 대표로 3년간 복역(19), 국내 및 일본과 만주 등지서 부흥목사 및 담임목사(25년이후)

광복 후:서울신학교 교수, 성결교총회장, 성결교신학교장, 보수신학교협회장

저서:신구약대강해(전6권), 목회학, 구약역사철학, 성서적전통신학 등

김응조(金應祚):
하얼빈 제4교도대 입대(33), 제대 후 간도특설대 간부로 활동

김일주(金一洲):
화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속지에 대나무를 그림

김일환(金一煥,호 월강·月崗):
만주 하얼빈고졸. 하얼빈 제4교도대 입대(34년), 만주 육군 경리학교졸(37), 젠다오성 특별설치부대(간도특설대, 조선인 특수부대) 제4군 관할구 통역으로 근무하고 후에 군수상위

광복 후:국방 차관, 중장예편,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 이수산업 사장, 성주탄좌개발 회장, 군인복지연합 봉사회 이사장, 한국관광공사 총재, 유엔한국참전국협회 회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고문, 한국전력공사 사장, 연식정구협회 (명예)회장, 한동판유리판매 사장, 중화학술원 명예철학박사, 문화재보호협회 부회장, 국민회의 대의원·운영위원, 예수교 장로회 후암교회 집사, 한일관광개발 사장, 한진관광 사장, 국토통일 고문, 유엔한국협회 부회장, 한국관광협회 회장, 정석기업 사장, 경흥학원(경기여자상업교) 이사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교회와 산업사회연구회 이사장·고문, 한국박물관 회장, 한국해외선전연구회 ‘금월의 한국’명예회장, 교통신문 회장, 한국복지재단 이사장, 한국외국어능력평가원 이사장, 용산문화원 원장

상:금성을지무공훈장, 은탑산업훈장, 보국훈장 통일장, 미국·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훈장, 국제관광 진흥공로상, 중국운마훈장

김재풍(金在豊):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김재호(金在鎬):
만주 건국대학 정치대 경제과졸, 태동어업조합 서기(43년)

광복 후:서울시 관재처 주임·계장, 세계무역통신·상공통신 편집차장, 무역통신 기자, 육군 중위예편, 무역통신 편집부장·관리국장·편집국장

김재후(金載厚):
만주 판스(盤石)고졸(42년)

광복후:강생회 이사장·조달청 인천사무소 소장, 내각 사무처 인사국장, 총무처 행정관리국장·기획관리관·기획관리실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졸, 행정개혁위원회 위원

김제민(金悌民):
만주 지린 사도대중퇴(45년)

광복 후:육사졸, 육군소위, 미국 보병학교 고군반수료, 제1공수 특전단 부단장보, 최고회의 최고위원, 대한철광양양광업소 소장, 대한철광 고문, 요업센터 이사, 조폐공사 이사

김종철(金鍾喆):
전북중졸(40년), 만주 건국대학 정치학과졸(45)

광복 후:미국 미시간대 철학박사, 중앙대 부교수겸 도서관장·교수·대학원장, 문교부 교육제도 심의위원,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 교수, 새한신문 논설위원, 교육학회 회장, 대한교련 교육정책 위원장,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위원, 덕성여대 대우교수, 학술원 회원, 우석대 총장

상:서울시 문화상, 교육학회 학술상, 학술원상, 국민훈장 모란장
저서:교육행정의 이론과 실제, 교육계획론, 세계안의 한국교육, 한국고등교육 연구, 한국교육과 행정의 제문제, 교육행정학 신강, 한국교육정책연구

김종호(金鍾浩):
만주 건국대학중퇴(42년)

광복 후:마사회 총무부장겸 경마국장, 서울여자의대 사무처장겸 상무, 공화당 강원7지구 위원장, 제6대 국회의원, 공화당 강원 부위원장, 공화당기위 부위원장, 7대 국회의원, 숙대 상무, 중국문화학원 철학박사, 국회 문공위원장, 국회 도서관장

김준태(金濬泰):
일본 고문관시험 사법과 합격, 만주 대동학원졸

광복 후:대구지검 검사, 제2·3·5·6대 국회의원, 부흥부 정무차관

김중배(金重培):
남만주방직 입사(39년), 연전 상과졸(44년)

광복 후:제일물산양행 상무·회장, 중앙제약 이사·사장, 한국화이자 회장, 남송개발 회장, 능률협회 감사, 제일물산(구코리아나산업)사장

김진흥(金振興):
만주제국 정부로부터 경운8위 훈장 수여(43)

김태종(金泰鐘):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5기생

김태치(金泰治, 나나에 야쓰하루·金江泰治):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김창덕(金昌德, 카나이 마사노리·金井昌德):
만주조선기독교 신징 중앙교회 목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 기독교와 만주조선기독교 약사’기고(43)

김창룡(金昌龍):
농잠실습학교를 나와 제사공장에서 일, 만주 신징역 역원으로 근무, 일본인의 추천으로 일본헌병대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관동군 헌병교습소에 입대(41년), 이 교습소를 수료한 후 관동군 헌병대에서 대공사찰을 담당

광복 후:철원에 있는 친구집에 은신하였으나 밀고로 소련군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원산으로 압송되던중 열차에서 탈출, 남하한후 국방경비대 제5연대(부산소재)에 입대하여 제3연대에서 정보업무에 종사, 경비사관학교 입교하여 제3기생으로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 소령, 육군 특무대장, 육군 준장·소장, 특무대장 재직때 공산당 색출과 군내의 적색분자 제거에 공헌이 커 이승만의 절대적 신임을 얻음, 이를 기화로 군대내의 명령계통을 무시하면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 출근도중 저격당했으며 당시 이승만은 그에게 1계급 특진을 추서, 배후 교사자는 육군 대령 허태영·이진용과 총격의 주범 송용고·신초식이 체포됐으나 최고 배후자가 육군중장 강문봉임이 밝혀짐

김창영(金昌永, 가네미츠 마사나가·金光昌永):
만주제국 치안부 이사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표지 제목 씀(43)

김철수(金哲洙):
대동(大同)출판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조선민요선’기고(43)

김치묵(金致默):
만주 펑톈 동북신학교졸(44년)

광복 후:미국 시카고 조지윌리암스대 수학, 대한YMCA연합 총무, 청소년단체협의회 위원, 청소년보호대책위 위원, 문화부 사회교육 위원, 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 세계YMCA연맹 총무, 중앙아동복리위장,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부회장

상:국민훈장 목련장

김태치(金泰治, 카나야마 야쓰하루·金山泰治):
불교시보사 사장,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불교와 내지문화의 관계’기고(43)

김태호(金泰昊):
교토(京都)제국대를 졸업한 사관생 장규원(張逵源, 다카야마 ·高山逵源)과 현기영(玄其永) 등 수십명과 만주에서 치안공작원 활동

김팔봉(金八峰, 호 여덟뫼, 팔봉산인·八峰山人, 동초·東初, 구준의·具準儀 등, 본명은 기진·基鎭):
배재고등보통학교졸(19년), 일본 릿쿄(입교)대 영문학부 예과를 거쳐 본과1년 중퇴(20),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시대일보·중외일보 기자(23), ‘청년조선’주간(34), 시국대응 전선사상 보국연맹 결성위원으로 참가(38), 매일신보에 황도정신을 문예생활의 지표로 삼는다는 내용의 ‘문예시감’(40) ‘국민문학의 출발’ 등의 평론과 징병 및 학도병의 출진을 권유하는 시 ‘신세계의 첫장’(42), 매일신보 사회부장으로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아시아주의와 김옥균’기고(43), ‘의기충천’(44) 등과 시조 ‘대동아 전송가’(42) 기고,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제3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이광수와 함께 조선대표로 참석(44)

광복 후:청년조선의 인쇄를 맡은 애지사 출판사 운영, 6·25전쟁때 공산군에 체포돼 사형선고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탈출, 경향신문 주필, 재건국민운동중앙회 회장·고문, 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 회장, 세계복지연맹한국본부 이사, 한국펜클럽·한국문인협회 고문

상:을지무공훈장
저서:동아일보에 통일천하·사상계에 날이 밝으면 연재, (시)한갈래 길, (수필)떨어진 조각조각, (단편소설)본능의 복수, 장 덕대, (장편소설)약혼, 해조음, 심야의 태양, 그밖에 클라르테운동의 세계화, 금일의 문학·명일의 문학, 붉은 쥐, 불이야 불이야, 젊은 이상주의자, 내용대 형식, 통속소설소고, 대중소설론, 80편 가량의 비평문 등

김학림(金鶴林):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김형규(金亨奎,호 해엄·海巖):
경성제국대학 조선어문과졸·전주사범 교사(36년), 경성제대 도서관 촉탁(40),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고려판 대장경과 조선인쇄술’기고(43), 원산중 교장(45)

광복 후:보성전문 교수, 고대 교수, 서울대 사대 교수·명예교수, 문교부 국어심의위 한글분과 위원장, 한글학회 이사, 국어학회장·명예회장, 학술원 회원, 덕성여대 초빙교수, 세종대 초빙교수, 국어연구소 소장

상:3·1문화상, 국민훈장동백장, 학술원 저작상
저서:국어사연구, 국어학개론, 고가요주석
작품:(수필집)계절의 향기, 인정의 향기, 인생의 향기

김형삼(金炯三):
만주 신징공대 채광과졸(41년),대한 석탄관리국 기사(45)

광복 후:서울제일산업 상무, 대한철광취체역·양양소장, 탄광협회 이사·감사, 강동탄광취체역 소장, 우삼광업 대표이사, 대방탄광 사장, 대림골석 사장

김형희(金亨熙):
만주 신징 법정대학 법과졸(45년)

광복 후:경인일보 기자·사회부차장, 인천신문 경제부장, 기자협회 경기 지부장, 경기일보 정치부장, 경기매일신문 사회부장·편집국장, 국민회의 대의원, 경기신문 편집부국장

김희덕(金熙德):
만주 신징(법정)대학 법과졸(44년)

광복 후:육사졸, 미국 참모대졸, 육본 군수참모부장, 39사단장, 군수 참모부장,최고회의 외무국방위장, 국방부 관리차관보,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수료, 6군단장, 육사 교장, 특명검열 단장, 중장예편, 서생양식장 경영

저서:군대수첩, 군사영어사전

남상일(南相一):
선린상졸(15년), 매일신보 기자(18), 동아일보 사원·광고부장(20), 만주 젠다오 성장 비서관(38), 조선한약수출입조합 이사·생약통제 중역(41)

광복 후:국제통신 전무, 합통통신 상무·감사·이사, 서울시 선관위원, 대한적십자사 상무위원, 통운감사, 4.7구락부 고문

노승균(盧承均):
신징 실무학교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난징(南京)조약 100년 기념’기고(43)

동완(董玩):
나남공립중졸, 만주 건국대학졸(43년)

광복 후:외국어대 노어과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교수, 외대 소련 및 동구문제연구소 소장, 모스크바 유니버시아드 대표선수단 섭외, 고려대 문과대 노문과 교수, 러시아문화연구소 소장, 노어노문학회 명예회장·고문, 학술원 회원

상:국민훈장 동백장
저서:노한사전(편)
역서:톨스토이작 안나카레리나, 유년시대, (푸슈킨작)대위의 달 등 10선

두산만(頭山滿, 도쿄·東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동아의 선각자 김옥균’기고(43)

모윤숙(毛允淑,호 영운·嶺雲):
함흥 영생보통학교졸(25년),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2년에 편입, 이화여자전문학교 예과 입학(27), 영문과를 졸업하고 만주 룽징에 있는 명신여학교 교사로 재직(31년), 서울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32), 보성전문학교 교수였던 안호상과 혼인하였으나 곧 이혼(34), 경성제대 영문과 선과수료(35), 간도명신여고 교사

광복 후:세계YMCA간부훈련 참여, 제3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정부수립에 여류외교관으로 활약, ‘문예’지 발행인, 대한여청총본부 단장·한양여성클럽 회장, 이대 강사, 한국펜클럽 부회장, YMCA 이사, 서울대 문리대 강사·문총 최고위원, 예술원 회원, 유네스코총회 한국대표, 아시아여성단체연총회 한국대표, 펜클럽 한국위원장·부회장,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한일협회 부회장, 여류문인협회 회장, 서울 세계펜대회 준위장, 제8대 국회의원, 여류문인회 고문, 현대시인협회 회장, 국토통일 고문, 펜클럽 국제본부 부회장, 문학진흥재단 이사장

작품:모윤숙시 전집, 모윤숙 전집(13권), (서사시집)논개, 황룡사9층탑, (수필집)시몬은 누구인가, 풍토, 호반의 목소리
상:국민훈장 모란장, 예술원상, 3·1문화상, 세네갈정부 문화교류 공로훈장

민기식(閔耭植):
만주 건국대학졸(43년)

광복 후:2군단장, 2군·1군사령관, 육참총장, 5·16쿠데타 최고회의 최고위원, 대장예편, 충비사장, 공화당충북2지구위장, 제7대 국회의원·국회 국방위장, 9대 국회의원, 공화당 청주·청원지국 위원장

상:태극무공훈장, 미동성훈장 등 15개

민태원(閔泰瑗, 호 우보·牛步):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정경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중외일보 편집국장 등 역임, 만주제국이 만주와 몽골에 사는 조선민족 사상 통일을 위해 수도 신징에 세운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몽일보 군사신문 운영

저서:애사, 레 미제라블을 번역하여 매일신보에 연재(18년), (단편) `폐허’ 동인이 되어 음악회, 겁화, 세번째의 신호, 천아성 등 발표, (논문)경제적 파멸에 직면하여, 보기 싫은 현실의 환영 (번안소설)동아일보 창간호부터 연재한 무쇠탈, 철가면 등, 오승은(吳承恩)원작 서유기, 엑토로 말로 작(作) 집없는 아이의 일본 번역서인 오노가쓰미 기의 죄를 번안한 부평초, (역사서)갑신정변과 김옥균 (산문)청춘예찬

박계주(朴啓周,호 서운·曙雲· 필명 박진·朴進):
만주 룽징 출생, 구산소학교와 룽징영신소·중졸, 젠다오일보 신춘문예에 ‘적빈’입선(31년), 월간지 ‘예수’창간(33), 월간지 ‘새사람’·‘박문‘기자(34), 매일신보에 ‘순애보’로 문단데뷔(38), 월간 ‘삼천리’편집장(40), ‘민성’주간(45)

광복 후:한성일보 취체역겸 편집고문·자유문협 초대 사무국장

작품:애로역정, 진리의 밤, 피의 제전, 처녀지

박남규(朴南奎):
만주국 특수경찰대 순관(33)

박노준(朴魯준):
만주 건국대학졸(45년)

광복 후:중고교 교사·교감·전북대 교수, 공화당 전북지부 사무국장 및 도위장, 공화당 훈련부장·정책위원, 제7대 국회의원, 공화당 전북1지구 위원장, 원불교 중앙교의회 부의장, 유네스코 한국위원, 군산교대 학장

박동균(朴東均):
경성고보졸(38년), 만주 군의학교졸(43)

광복 후:군사원호 처장, 의무기지 사령관·2관구 사령관, 육대졸, 고대 경영대학원수료,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졸, 국방부 병무국장, 소장예편·정부기업체 감독관, 신라5능보존회 부회장, 중앙청과물시장 사장·대한염업 사장, 제강협회 상임 부회장, 동서용역 사장, 국민회의 대의원

상:충무·을지무공훈장, 미공로훈장

박림항(朴林恒, 쓰루야마 링고오·鶴山林恒):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40년), 일본 육사졸(41)

광복 후:1사단장, 1군단 부단장, 육본 인사국장, 보병학교 교장, 6관구 사령관, 국방대 총장, 국방 차관보, 군단장, 5·16쿠데타 군사혁명위원, 1군사령관·최고회의 최고위원, 건설 장관, 중장예편, 한국항공정비 회장

박상길(朴相吉):
만주 펑톈학원 법정과졸

광복 후:세계사정연구소 소장, 자유당 중앙위원, 경기대 이사, 4대 민의원, 공화당 상임위원, 청와대 공보비서관, 총무처 차관, 수협 회장

상:국민포장, 서독공로훈장
저서:20세기의 동태, 영웅이여 나오라, 우주탄 선언

박세경(朴世俓):
보교졸, 만주 고문합격

광복 후:변호사시험 합격, 변호사개업, 기청 전북 회장, 한청 전북 부위장, 자유당 전북도 훈련부장, 3대 민의원, 국회 법사위장·자유당 정책위원, 4대 민의원·국회 법사위장

박승하(朴勝夏):
훈춘현 속관 위임3등(35)

박암(朴巖):
대동공전 교수,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만주민요’기고(43)

박인수(朴仁守):

일본 오사카(大阪) 외어교 독어과졸(35년), 만주 고문합격(43)

광복 후:부산대 교수, 문교부 대학교육 과장, 사회부 보도과장, 성균관대 문과대 교수, 고시 위원, 성균관대 문과대 학장, 경희대 강사, 독문학회 회장, 서울대 대학원 강사, 성균관대 독문과 과장

박정희(朴正熙,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 호 정웅·正雄,중수·中樹):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소학교에서 3년간 교직(37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42), 일본 육사졸(44), 만주 젠다오성 특별설치부대(간도 특설대, 조선인 특수부대) 군관

광복 후:육사 제2기졸, 육대졸, 육군 대위, 육본 정보국 1과장·9사단 참모장, 육본 정보국·작전국·군수국, 육군 준장, 2군단·3군단 포병단장, 2군단 포병사령관·포병교장겸 포병감, 5사단장, 6군단 부군단장·7사단장, 육군 소장·1군 참모장, 6관구 사령관, 군수기지 사령관·1관구 사령관·육본 작전 참모부장·2군 부사령관, 5·.16쿠데타 주도, 군사혁명위 부위장·최고회의 부의장·의장, 육군 중장, 육군 대장, 대통령 권한대행, 대장예편, 공화당 총재, 5·6·7·8·9대 대통령, 통일주체 국민회의 의장, 김재규 정보부장에게 피격·사망, 국장

상:무궁화 대훈장 추서
저서:지도자 도, 우리민족의 나갈길, 국가와 혁명과 나,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박주병(朴柱秉):
경성의학전문학교졸·영국과 독일에서 약리학을 연구해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22년), 영국서 수학(34), 만주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 수여(42)

광복 후:사회부 보건국장, 적십자사 서울지사장, 해군 의무감(준장), 국립의료원장겸 병원협회 회장, 보건복지부 장관, 의사협회 회장, 우산 육영회 이사장, 대한결핵협회 회장

상:금성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박중윤(朴重潤):
만주 건국대학 경제과졸(44년)

광복 후:서울대 상대졸, 육사졸, 36사단장, 1사단장, 국방대학원수료, 서울대 경영대학원수료, 보병 교장, 육사 교장, 육대 총장, 국방대학원장겸 합동참모대 총장, 대한종합식품 부사장, 소장예편, 안보회의 비상기획위 부위장·상임위원

상:은성을지·금성충무무공훈장, 3등건국공로훈장, 태국백상훈장

박창해(朴昌海):
만주국 협화회 중앙사무국 국원으로 건국공로장 수여(33)

광복 후:육사졸, 국방대학원수료, 육군 헌병감, 소장예편·치안국장, 연식정구협회 회장, 건국대 법과졸, 경기 지사, 경북개발 사장, 인천수출산업공단 이사장·공화당 경기지부 사무국장, 8대 국회의원·공화당 원내 부총무, 안성태성농장 대표

상:중국운마훈장, 미공로훈장, 2등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박팔양(朴八陽, 아오모토 카즈오·靑本一夫):
만주제국 협화의회 중앙본부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서문’기고(43)

박화목(朴和穆, 필명 은종·銀鍾):
평양 신학교수료(43년), 만주 펑톈 동북신학교졸(45)

광복 후:중앙방송국 편성과 근무, 한국일보 문화부장, 학생다이제스트 편집국장, 기독교방송 교양부장·편성국장, 미시라큐스대 매스컴연수원 수료, 한국방송회관 상무이사·동요동인회 회장, 한국아동도서 제작실장, 아동문학회 부회장, 크리스천문인협회 부회장·회장,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 분과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중앙신학교 교수, 한국문인협회 이사, 서울신학대 강사, 아동문학회장·명예회장, 한국교원대 어문교육연구소 위원 교수, 한국문학탐구회 회장, 한국프로문학회 회장, 음악저작권협회 평의원·부의장

상:한정동아동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서울시 문화상, 한국전쟁 문학상, 옥관문화훈장
작품:(시집)시인과 산양, 그대 내마음 창가에, 천사와의 씨름,이사람을 보라,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동시집)초롱불, 꽃이 파리가 된 나비, (수필집)어느와공의 모놀로그, 보리밭 사이길로 부르는, (연구서)세계문학의 산책, 아동문학개론

방원철(方圓哲, 가타야마 유·方山雄):
만주 룽징 출생, 룽징 영신중학졸,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일본 육군대학졸, 만주제국 육군 소위 임관 후 닝안(寧安) 보병 제8군단 배속, 리허(熱河)성과 허베이(河北)성에서 팔로군 토벌, 중위 진급 후 해방과 더불어 광복군과 함께 귀국

광복 후:육군 소령으로 국군에 입대, 중령 진급 후 육군본부 전사감 및 기갑연대장, 대령 진급 후 33사단 연대장 및 육군 전투발전과장, 5·16쿠데타 직후 혁명군과 미8군과의 불화 조정, 현역으로 치안국 정보과장, 논산훈련소 참모부장, 반혁명사건으로 구속 복역, 한때 정보학교 유격전 초빙 강사, 창군 및 6·25참전동지회 간사장

저서:김종필(金鍾泌)에게 고(告)함

방종현(方鍾鉉, 호 일사·一蓑):
오산중학교졸(26년), 경성제국대 법문학부 조선어학 및 문학과졸(34), 도쿄 제국대학 대학원에서 언어학 연구(36∼37), 경성제국대학원에서 국어학 연구(38), 조선일보사 조광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농민의 오락’기고(43)

광복 후:경성대 예과교수, 서울대 문리과대 교수·학장, 한글학회 이사, 진닥학회 위원, 서지학회 회장, 우리어문학회 위원, 한국산악회 학술 조사위원, 조선일보사 임원

유고:훈몽자회고, 계림유사연구, 조선관역어 해독, 향약명 연구, 용비어천가 강의, 순경음 연구, 사성통해연구
저서:훈민정음 연구, 훈민정음 사략, 훈민정음과 훈몽자회와의 비교, 훈민정음 통사, 고어와 방언연구, 도서해제, 속담과 민속의 연구, 고서에서 보는 언어 변천고, 제주도의 방언, 방위의 이름, 고어재료 사전, 한글연구도서해제, 유합의 해제, 노걸대언해, 이문집람, 악학궤범에 대하여
속담과 민속연구집:세시풍속집, 조선의 속담, 농촌의 풍속

방희(方熙,호 유화·裕和):
인천중졸, 만주 건국대학 경제학과졸(45년)

광복 후:육군 고급부관 교장, 육군대학졸, 미국 고급부관학교졸, 야전군사 고급부관, 육군사관학 교수부장, 국방부장관 특별보좌관, 육군본부 부관감, 소장예편·주영국대사관 공사, 주뉴델리총영사, 주일본대사관 공사, 주일대사관 대리대사, 주우간다 대사, 외무부대기, 주르완다대사겸임, 풍전상사·강릉탄좌개발 사장, 주스웨덴대사겸 주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대사 겸임, 한남한국슈퍼마키트 회장, 대한광업 회장·광업협동조합 이사장, 광산학원 이사장,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광산장학회 이사장, 평화연구원 이사장, 백구회장·명예회장, 추계학원·찬영학원 이사

상:충무무공훈장, 미국동성훈장, 수교훈장

배응도(裵應道):
일본 전수대 경제과졸(40년), 만주 대동학원졸·만주 판사(41)

광복 후:식량공사 감리관, 상공부 전기국장, 상공 차관, 생산성본부 부회장·공영화학 부사장, 동양시멘트 회장, 비달산업 회장, 대한플라스틱 부사장, 신동아상사 사장·신동아그룹 종합기획실장

백남현(白南炫):
일본 성강고 농수의과졸(29년), 만주 국립개로종마장 책임자(42)

광복 후:광주농 교장, 수원 농사시험장 축산과장·농림부 축정과장, 광주 농대 부학장, 전남대 농대 교수

백상기(白翔起):
보전법과졸, 만주 고문합격, 일본 고문 사법과합격

광복 후:변호사시험합격, 부산지검 검사, 마산 지청장, 서울지검 차장검사, 대구고검 차장검사, 청주지검 검사장, 대전지검 검사장, 감찰위 감찰위원·대검 검사, 서울지검 검사장, 변호사개업, 중앙선관위 위원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아호 백석·白奭):
오산고등보통학교졸(29년), 일본 도쿄 아오야마 학원 전문부 영어사범과졸, 조선일보 출판부 입사 ‘여성’지 편집(34),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35), 시집 ‘사슴’간행, 조선일보 퇴사, 함흥영생여고 보교원(36), 교원직을 사임하고 만주 신징으로 옮겨 동삼마로 시영주택35 황씨방에 거처를 정함(38말), 자신이 번역한 토마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의 출간을 앞두고 교정을 보기위해 잠시 서울을 다녀감(40), 생계유지를 위해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소작인 생활(41), 만주 안동(단둥)에서 세관업무 종사(42)

광복 후:한때 신의주에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감, 시 ‘적막강산’을 그의 벗 허준이 ‘신천지’에 발표함, 분단이후 그의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한국문학사에서 매몰됨, ‘백석시 전집’이 서울 창작사에서 간행됨, 그의 대표작은 해방후 신의주에 머물때 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꼽을 수 있다

백선엽(白善燁,호 우촌·愚村):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9기생(41년)

광복 후:5·1사단장, 1군단장·휴전회담한국대표, 2군단장, 육군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 1군사령관, 연합 참모총장, 대장예편·주중대사, 주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대사, 주캐나다대사, 교통부 장관, 충비사장, 전경련이사, 호비사장겸임, 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 평남도민회장,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료, 한국종합화학사장, 한국에타놀사장, 대한화학펄프 사장, 비료공협 회장, 한국화학연구소 이사장, 국제상공회의소 국내위원장, 통일고문, 한·캐나다협회장, 밝은사회국제클럽 한국본부 총재, 전쟁박물관후원회장, 성우회장

상:금성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금탑산업훈장
저서:군과 나, 지리산, From busan to panmunjum

백은규(白殷珪):
만주 단둥성 상과고급중졸(36년),상업

광복 후:직업공사경영, 직업상사 사장, 금정산업 사장, 대원증권 사장, 대보운수 대표이사, 서울석유 회장, 대한냉동 사장, 수산통조림제조협 이사, 통조림 수출조합 감사, 대한냉동 회장

변영태(卞榮泰, 호 일석·逸石):
재동소학교졸·교동고등소학교를 거쳐 계산보통학교졸·보성중학교졸, 만주 퉁화현 신흥학교 제1회졸(12년), 베이징 부근에 있는 협화대학 1년수료하고 신흥학교에서 교편(16), 귀국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20∼43)

광복 후:고려대 영어 교수, 민주의원 접흡단 비서처에서 영어비서로 근무, 대통령 특사로 필리핀에 방문, 국제연합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에 참석, 외교통상부 장관, 국제연합 수석대표, 국무총리, 서울대 상대·고려대 교수(명예문학박사), 정민회 조직 대통령 선거에 출마, 시사영어학원에서 강의

저서:외교여록, 논어영역, Tales from Korea, Songs from Korea, Korea My Country, My Attitude toward Ancestor Worship

변종하(卞鍾夏):
만주 신징 미술학교졸(45년)

광복 후:홍익대 강사, 수도여사대 미술과장, 파리 아카데미드라그롱쇼미엘 수학, 파리서 작품발표, 독일서의 불·독전에 불대표로 초대출품, 파리대 수학, 미국 뉴요크대 수학, 문화재 전문위원·국전 심사위원, 홍익대 대학원 교수, 서울대 교육대학원 교수

북두학인(北斗學人):
문인,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만주국 건국 10주년’기고(43)

서범석(徐範錫):
양정고보졸, 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대 정경과 수료(21년), 조선일보·시대일보·동아일보(펑톈 특파원)기자(24∼31), 만주 펑톈서 광동학교 창설·이사, 만선일보 편집부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만주에서 개척사업, 만몽산업(주)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협화운동과 우리의 자각’기고(43)

광복 후:제2·4·5대 민의원, 민주당 상위 부의장, 민주당 구파동지회 가입·국회 내무위장, 신민당 전당대회 부의장, 성북을 위원장·제6·7·8대 국회의원, 민중당 원내총무·지도위원, 신민당 지도위원, 궁도협회 부회장, 정계은퇴 용인에서 영농

서춘(徐椿,호 오봉·五峰):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졸, 2.8독립선언 당시 실행위원 11명중 한사람(19년), 동아일보사에 기자·경제부장(27), 조선일보사 편집국장·주필겸 경제부장(32),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주필(37),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조선총독 소기장군론’기고(43) 후 같은해 사망

상: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나 과거 친일행적이 밝혀져 1996년 국가보훈처에 의해서 서훈이 취소

손소희(孫素熙, 본명 귀숙):
함흥영생고여졸(36년), 일본 니혼(日本)대학에 유학(37), 만주 만선일보기자(40)

광복 후:월간종합지 ‘혜성’주간, 외국어대 영문과졸, 중앙대(서라벌)예대 대우교수, 여류문인회 회장, 문협 이사, 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예술원 회원, 소설가협회 대표위원·운영분과위원장, 도화전(부산)

상:서울시문화상, 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
작품:(장편)남풍, 태양의 계곡, 그 캄캄한 밤을, 그 우기의 해와 달, (단편집)리라기, 갈가마귀 그소리, 고독의 기원, 그날 햇빛은

손진태(孫晋泰):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관장,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유교와 조선’‘반도미술과 불교’‘고려자기와 이조도자’기고(43)

송석하(宋錫夏,호 회당·懷堂):
만주 신징 외국어 전문학원수료. 정일권과 함께 치치하얼 제3교도대 입대(34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졸(37)

광복 후:육사졸, 12연대장, 수도경비사 참모장, 6사·수도사 부사단장, 1사단·2군단 포병 사령관, 20사단장, 육대졸, 국방대학원수료, 건국대 경제학부졸, 미국 산업대 경제통신과졸, 육본 군사연구발전 부장, 3관구 사령관, 육본 기획통제실장·작전 참모부장, 국방대학원장, 안보회의 상임위원겸 사무국장, 수출산업공단 이사장, 한중·한일경제회담 한국대표, 향군회 안보연구 위원장, 민방위 및 안보시찰차 구미 20국 방문, 영등포 로타리클럽 부회장

상:대통령표창, 태극무공훈장, 미리전오브매리트 근무공로훈장, 중국운마훈장

송석하(宋錫夏,호 석남·石南):
부산 제2상업학교졸(22년), 일본 도쿄 상과대학 입학, 민속학을 연구하고 귀국하여 손진태 정인섭 등과 조선민속학회를 창설, 사재를 털어 잡지 ‘민속’을 발간(33), 이병도·김두헌·손진태·이병기·조윤제 등과 함께 진단학회 창립 발기인이 되고 ‘진단학보’발간(34),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처용무·나례·산대극의 관계를 논함’기고(43), 조선산악회 창설(45)

광복 후:한미문화협력에 참여,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지내고 국립민족박물관 건립, 진단학회장·한국산악회장·한국문화협회 회장·민속박물관장 등 역임

저서:한국민속고(동아일보와 조광 등의 잡지에 실렸던 글), 허수아비의 벽, 그가 소장하였던 ‘삼국유사’권1은 최남선이 43년에 펴낸 삼국유사의 대본, 친사본으로 추정되는 매월당시고(간송미술관)

신기석(申基碩, 岩田基碩, 호 지양·芝陽):
보통학교졸(19년), 경성제대 법과졸(33년), 4년간 국제법·외교사연구실 조수로 근무, 만주제국 중앙정부에서 만주 조선인에 대한 지도업무를 담당(37), 만주제국 시행 고등문관 행정과 고시에 합격하여 수도 과장을 역임(38), 만주 대동학원졸, 만주제국 개척총국 관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눈강지구의 조선개척민 선유대’기고(43), 한러외교사·극동제국의 정치외교사 등의 외교사에 관한 연구(45)

광복 후:경성대·연대·서울대 교수, 고대 교수·법정대학장, 중앙대 법정대학장·명예법학박사, 경희대·건국대 강사, 학술원 회원, 대한국제법학회 이사, 국제정치학회 회장, 5·16쿠데타 최고회의 자문위원, 부산대 총장겸 대학원장, 영남대 초대총장, 제9대 국회의원, 공화당 부산중·영도지구위장, 공화당 국토통일 위원장, 선인학원 이사장

상:학술원상, 국민훈장 모란장, 황조소성훈장
저서:신고동양외교사, 근대외교사, ‘한말외교사 연구’(청한종속관계론), 팔십평생, 젠다오 영유권에 관한 연구, 북정일기

신림(申琳, 히라야마 가즈토시·平山勝敏):
대중공론사 주필,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동학운동의 사적 고찰’기고(43)

신언룡(申彦龍):
만주제국의 대변지로 광복전 만주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일보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도강에 감회깊은 단둥성’기고(43)

신영철(申瑩澈):
만주제국의 대변지로 광복전 만주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일보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재만조선인 교육의 과거와 현재’‘요하의 운명’ 등 기고(43)

신정언(申鼎言):
야담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백제말 황산의 계백장군’기고(43)

신중훈(愼重勛):
만주 신징공대졸(45년)

광복 후:상공부 특허국 심판·조정·제1심사과장·제2심판장·중앙계량국장, 변리사개업

저서:공업소유권제도

신학진(申鶴鎭, 호 철심·鐵心):
대구의전졸(34년), 만주군 군의중좌로 옌지 육군병원장(41), 만주 의과대학 연구과수학(45)

광복 후:경북대 의학박사, 통위부 의무국장, 육본 의무감, 소장예편, 향군자문위원겸 향군의사회 회장, 오양건업 회장, 경북대 동창회연 및 의대동창 회장

상:을지·무공·화랑무공훈장, 미리존오브매리트, 스웨덴의무훈장
저서:신학진문집

신현준(申鉉俊):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졸(37년)

광복 후:광복 소식을 접한 후 시세에 편승하여 조선의용군 가입을 시도했으나 받아주질 않자 박정희와 함께 한국 광복군 베이징(北京)대대에 편입하여 집단 귀국 시도, 해경 인천·부산기지 사령관, 진해 통제부 참모장, 해병대 사령관, 해병1여단장·연참 정보부장·국방부 차관보, 해병 중장예편, 주모로코대사, 세계반공연 사무총장

상:금성태극무공훈장, 미은성훈장, 리베리아·모로코수교대훈장

신형식(申亨植):
만주국 특수경찰대 순관으로 경운장 수여(34)

신형식(申亨植, 우당·愚堂):

조선중앙일보·만주일보기자(34)

광복 후:인민당 충북위장(45), 자유당 정치훈련원 부원장(52), 충청일보상임논설위원

심형택(沈亨澤):
만주제국의 대변지로 광복전 만주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우리말 신문인 만선일보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낭낭제와 그 신앙의 유래’기고(43)

안곽(安廓, 자산·自山):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고구려의 문학’‘반도 무사도의 유래와 발전’기고(43)

안광국(安光國):
평양숭실고졸(31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졸·만주 평안교회목사(39)

광복 후:보은군수, 충북도후생과장, 장로회 신학교 부교수, 대한예수교 장로회 교육 총무, 기독교 중앙방송협동 국장,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총회 협동위장, 북아현교회 목사

저서:예식서, 설교집, 대한예수교장로회헌법

안광호(安光鎬):
나남공립중졸, 만주 건국대학졸(42년), 만주 대동학원수료(43), 일본 복지산예비사졸(45)

광복 후:3군단 군수참모, 육참모대졸, 육군 병참감, 정전위 한국수석 대표, 국방부 관리국장, 주미대사관 수석무관, 준장예편·주케냐총영사, 주영·주일공사, 주튀니지대사, 마케팅개발센터 이사, 무역진흥공사 사장, 디자인포장센터 이사, 전경련 이사, 홍보협 이사, 한국·스페인경협위 부위장, 대한상의 특별위원겸 무역분위장

상:충무무공훈장, 미공로훈장

안병소(安柄王召):
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을 배운뒤 유겐크라인에게 바이올린 사사(29년), 독일 유학 뷜라 헷소에게 사사(34), 바이올린 제작법 연구(35),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바이올린과 졸(38년), 만주 신징음악원 독주자겸 악장(39), 피아니스트인 부인 이애내(李愛內)와 함께 연악원 설립(41)

광복 후:고려음악협회 연주부장, 고려교향악단 지휘자, 대한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음악단체연합회 최고위원·국방부 정훈 음악대장, 한국교향악단 창립 단장겸 지휘자, 문화예술총연합회 중앙위원, 음악협회 고문, 한국연주가협회 위원장, 한국음악가협회 최고위원, 한국음악가협회 고문, 한국현악합주단 조직, KBS교향악단 객원지휘자, 5·16민족상 심사위원, 그 밖에 한국과 일본·중국을 무대로 350회의 독주회, 안병소 현악4중주단 조직, 연세대 대학원 강사

작곡:국토통일의 노래

안수길(安壽吉, 호 남석·南石):
만주 젠다오 중학교졸(26년), 함흥고등보통학교 중퇴, 서울 경신학교 3학년 편입(28), 일본 교토 료요(兩洋)중학 입학, 일본 와세다대 고등사법부 영어과 입학(31년), 단편 ‘적십자병원장’으로 문단 데뷔(35), 젠다오일보·만선일보기자(37년), 젠다오에서 소학교 교원(45)

광복 후:경향신문 문화부장·조사부장, 용산고 교사, 서라벌예대 교수·문예창작 과장, 이화여대 강사, 창작생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저서:제2회 아시아자유문학상 서울시문화상, 3·1문화상
작품:(작품집)베이징, 제3인간형, 초련필담, 풍차, (장편)북간도(5부작), 생각하는 갈대, 등야, 제2의청춘, 인간운하

안영길(安永吉):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만주 육군 기병 상위로 황제방일기념장 수여(34)

안인식(安寅植):
명륜학교 교수,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 유교사 편린’기고(43)

양국진(楊國鎭):
만주 육군경리학교졸, 만주 신징 법정대학졸(39년)

광복 후:미국 참모대졸, 육군 행정 참모부장·2훈련소장·3군단장, 중장예편, 고대 경영대학원수료, 대한종합식품 부사장·사장, FAO한국협회 이사, 전경련 이사

양춘선(楊春先):
만주 젠다오 동흥중졸(30년), 흥화공작소 사장(38)

광복 후:대한산업개발 대표, 대한제지 사장, 울진산업 대표, 명예청진 시장, 흥화공업 사장

양치목(楊致穆):
만주 하얼빈보교졸(36년)

광복 후:한국제지 이사, 남한제지 대표·미동제지 대표, 제지공연 이사, 삼양팔프 사장, 골판지공협 이사장, 삼양팔프 회장

엄갑용(嚴甲龍):
전주고보졸(36년), 만주 잉커우(營口)신문 편집국·만주 단둥신보 편집국·만주 일일신문 출판국 근무(37∼45)

광복 후:경인일보 편집국장, 합동통신 출판국장·편집국장·광고기획실장·심의실장·이사, 동화통신 편집국장, 중고테니스연 부회장

연형(延馨, 나카야마 카오루·中山馨):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연화이(延和二, 야마모토 카즈지·山本和二):
만주제국 펑톈시 공서(公署),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가톨릭교의 반도 전래’기고(43)

염상섭(廉想涉, 본관 서원·瑞原, 호 제월 霽月·횡보 橫步, 본명 상섭·尙燮):
대한제국 중추원 참의 인식(仁湜)의 손자, 가평군수 규환(圭桓)의 8남매 중 셋째 아들, 관립 사범부속보통학교에 입학(1907년), 보성소·중학교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교토 부립제2중학을 졸업(12), 게이오대 예과에 입학(18),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정치부 기자(20), 오산학교 교사, 만주 신징에 살면서 만선일보 편집국장·회사 홍보담당관(36∼45)

광복 후: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 6·25전쟁때 정훈일, 서라벌예술대 학장

저서:문예전문지 ‘폐허‘의 동인활동을 계기로 출세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발표(21년), (단편)삼팔선, 임종, 두 파산, 굴레, (중편소설)만세전(22), (장편소설)삼대, 무화과, 백구, 사랑과 죄, 이심, 모란꽃 필때 등을 신문에 연재, 제야, 해바라기, 금반지, 고독, 조그만 일, 두 출발, 남충서, 난류, 취우, 새울림, 미망인 등

예관수(芮琯壽):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4기생

광복 후:육군사관학교 특별반에 들어갔으나 지원병(광복군, 일본군 등) 출신과의 대립으로 훗날 방위군 및 거창사건의 연루자인 김종원(金宗元)에게 구타당하고 임관 직전에 자퇴

작사:육군사관학교 용진가(勇進歌) 작사

오문숙(吳文塾):
평양상수보졸. 펑톈자동차 근무(36)

광복 후:서울신영자동차공장대표(46), 한성여객대표이사(56년), 서울버스조합이사(60), 초원관광대표이사

오세창(吳世昌, 호 위창·葦滄·是韋 ):
박문국 주사로서 한성순보 기자(고종23년 1886년), 구한국정부 농상공부 참서관, 체정국 통신국장, 일본 문부성의 초청으로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 교사로 1년간 체류(1897), 개화당 사건으로 일본에 망명하던 중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1902), 귀국후 ‘만세보’‘대한민보’사장(1906), 대한협회 부회장,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1919), 3년간 복역후 대한서화협회 창립,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표지의 제목 글자 씀

광복 후:‘매일신보’‘서울신문’명예사장, 민주의원, 대한민국 총성국민회 회장·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 회장, 전서와 예서에 뛰어나고 고서화 감식에 조예가 깊었음, 6·25사변때 대구에서 병사

저서:오경석과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근역서화징’편술, 서화가와 문인학자들의 날인된 인장자료를 모아 ‘근역인수’집성, 수집한 소품 고서화들을 화첩으로 묶은 ‘근역서휘’‘근역화휘’
상: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 추서

오정수(吳楨洙):
미국 메사추세츠주립공과대졸(27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28), 조선곡물사장(33년), 만주곡물(주) 사장(39)

광복 후:미국 군정청 상공부장, 국제연합 한국협회 대표, 대한교역공 이사, 한국무역진흥 사장(2회), 무역협회 부회장, 체신 장관, 상공 장관, 한국갈포공예 사장·회장, 서울로타리클럽 회장, 한국무역진흥 사장, 한국무역협회 고문, 한국수출잡화시험검사소 이사, 무진과학기술장학회 이사장

오창근(吳昌根):
만주 신징공대졸(43년)

광복 후:육사졸, 육대졸, 35사단장, 국방대학원수료, 미국 방공교 특수무기과정수료, 1군기획 참모부장, 26사단장, 1관구사령관, 5관구사령관, 1군부사령관, 육대 총장, 소장예편, 수자원개발공 전무

상:은성을지·충무무공훈장, 중국운마훈장

오창록(吳昌祿):
만주 건국대 정치학과(제1기)

광복 후:사할린 거주하다 최근 영주 귀국하여 동문 후배인 강영훈 전 국무총리와 재회

우기동(禹基東):
남만주 고등학원 법학부졸(37년)

광복 후:호남통신 업무부장, 세기상사 전무·사장·이사, 대한극장 사장·이사, 서울시극장협회 회장

원용덕(元容德):
펑톈 제1교도대 사령부 군의 상위(35), 제1독립포병대 배치, 만주제국 젠다오성 특별설치부대(젠다오 특설대, 조선인 특수부대) 군의 중교

광복 후:육군 중장, 헌병사령관, 참령, 육군사관학교 제2대 (46.9.1∼47.1.23)교장

유광렬(柳光烈):
한문수학, 서울 보성법률상업학교 중퇴, 방정환과 청년구락부를 조직하고 기관지 ‘신청년’을 발행(17년), 매일신보·만주일보 기자(19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입사 기자·사회부장(20), 조선일보 사회부장(24), 시대일보 사회부장·중외일보 편집국 차장(26), 매일신보 편집국장(33)

광복 후:국회의장 신익희(申翼熙) 비서실장, 한국일보 논설위원, 자유신문 주필, 5대 민의원,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 YMCA사랑방클럽 회장, 신문편협 명예회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장덕수전기 편찬위원회 위원장, 강석장학회 회장, 보사부 의례준칙위원회 위원, YMCA교육위원회 위원

상:문화훈장국민장, 대한민국문화상, 방송문화상
저서:간도소사, 당재야화, 기자반세기, 엣세이집 아내에게의 편지

유동천(柳東泉):
만주제국 대동학원 서해농장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농촌의 과거 미신에 대하여’ 기고(43)

유원식(柳原植):
중국 베이징 동북대 대학원 정경과졸(36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8기생(42), 베이징대 농촌사회학 강사(36∼45)

광복 후:육대졸, 국방대학원수료, 28사단 부사다장, 군사발전국 차장, 5·16쿠데타 군사혁명위원·부정축재자 처리위원·최고회의 최고위원·종합경제재건 기획위장, 에카페총회 한국대표단 고문, 준장예편, 국태산업 회장, 국제경제연구소 소장, 8사 친목회 회장, 삼화방기 사장, 협화실업 회장

상:금성·충무·을지무공훈장, 미동성훈장
저서:농촌사회학, 북지농민회자치운동, 유격전술사고

유자후(柳子厚, 호 송주·松洲, 이준·李儁열사의 사위):
백관수(白寬洙)·장덕수(張德秀)·이원철(李源喆)·유억겸(柳億兼) 등과 교우, 저술가와 한학자로 경사(經史)에 해박하며 신학문에 능통, ‘율곡 이이 선생의 임오사 대선언’출간(42년),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을지문덕론’‘암행어사고’‘동방석학 이율곡론’‘반도 주폐기관인 전환국 소사’ 등 기고(43)

광복 후:6·25 전쟁때 납북

저서:‘율곡 이이선생 대유모’라는 논문을 조선교육 6월호에 발표, 10여년간 조선 화폐 연구에 잠심하여 ‘조선화폐고’를 출간하였으며 동아일보에 초고를 연재, ‘율곡선생전’‘해아밀사’ 등 저술, 최호진(崔虎鎭)·전석담(全錫淡)·이북만(李北滿) 등과 ‘경제사’저술(47)

유진오(兪鎭午, 호 현민·玄民):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 참사관 치형(致衡),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졸(14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입학(19), 경성제대 예과졸·법문학부 법과졸·조수·예과강사(31년),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역사와 이론’기고(43), 보전강사·법과장(44)

광복 후:고대교수·법정대학장·법제처장·대학원장·총장, 헌법기초위원·법제처장, 한일회담 대표,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 학술원 종신회원, 연대 명예법학박사, 법전 편찬위원회 위원, 고등고시 위원, 한일회담 한국측 대표, 대한국제법학회 회장·명예회장,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법철학회 회장, 대한교육연합회 회장,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 본부장, 유엔한국협회 회장, 대학스포츠연 회장, 민중당 대통령 후보, 신민당 총재, 제7대 국회의원, 신민당 고문, 고려 중앙학원 이사, 국토통일 고문, 국정 자문위원

상:학술원 공로상 문화훈장
저서:헌법해의, 헌정의 기초이론, 헌법강의, 헌법기초회고록, 민주정치에의 길, 양호기, 미래를 향한 창, 구름위의 만상, 젊은세대에 붙이는 서
작품:(장편)화상보, (단편)유진호단편집, 창랑정기, 김강사와 T교수, (수필집)구름위의 만상, 젊은날의 자화상, 다시 창랑정에서

유찬근(兪燦根, 호 매원·梅原):
만주제국의 대변지로 수도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역대 총독과 조선통치 30년 약사’‘내지 고려촌 소사’ 등 기고(43)

유치환(柳致環, 호 청마):
연희전문 문과중퇴(29년), 북만주서 영농(40)

광복 후:중고교교사, 부산 남여상고교 교장, 예술원 회원, 부산 문학가협회 회장

상:서울문화상수상, 자유문학상수상, 예술원상수상
저서:시집 생명의서

유홍렬(柳洪烈, 호 혜암·惠庵):
경성제대 사학과졸(35년), 동성상업학교 교유(일제 때 중등 교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사묘의 발생에 대한 일고찰’기고(43)

광복 후:서울대 사대 교수·문리대 교수·교무처장·대학장 서리·총장 직무대리, 진단학회 이사, 백산학회 이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 학술원 회원, 상구대학장 서리·총장 서리,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대구대 학장, 성균관대 문과대 교수·대학원장,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중앙협의회 회장·고문, 군종후원회 부회장, 한국사학회 회장, 인하대 초빙교수, 세무대 초빙교수, 향토축제협의회 회장

상: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상, 3·1문화상, 국민훈장목련장, 로마교황청 강복장
저서:조선독립사상사고, 한국천주교회사, 고종치하 서학수난의 연구, 한국문화사, 나의 인생관, 한국근대화의 여명, 한국의 천주교, 한국사회사상사 논고

육굉수(陸宏修):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광복 후:육군 병기공창 연구관, 서울대 공대졸, 국방부 조병창 기술과장, 기계학회 이사, 국방과학연 기계과장, 육군 기술연 과학통제관겸 기계금속 과장, 한국기계기술 이사·공업표준 심위원, 중앙계량심사위원회 위원, 인하공대(인하대) 기계과 교수, 한독실업고 교장

윤무병(尹武炳):
고고학자, 만주 신징제일중졸(41년), 만주 신징 법정대학졸(45)

광복 후:서울대 박물관 근무,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사무관, 국립박물관 보급과장·고고과장·수석학예관, 홍익대 강사, 한양대 강사, 서울대 강사, 성균관대 강사, 서울대학원 강사, 충남대 문과대 사회과 교수·박물관장,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감정위원, 원광대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학술원 회원

상:3·1문화상, 한국출판문화상, 충남도 문화상, 국민훈장 동백장, 월봉저작상, 대통령표창, 은관문화훈장
저서:의성탑리고분(공저), 감은사(공저), 한국지석묘연구(공저), 금강사, 정림사, 목천토성, 한국청동기문화연구, 신안해저유물(공저), 백제고고학 연구

윤부병(尹富炳):
일본 이와테(岩手)의대졸(37년), 만주 고시합격(39), 만주 대동학원졸(40), 만주 국립 용정 개척의학원 교수(43)

광복 후:중앙대 약대 교수, 의원개업, 기독교 이리방송국 국장, 국제라이온즈클럽 한국지구 부총재, 원광대 강사, 전북의사회 회장, 적십자전북 지사장, 전남대 의학박사, 5·16민족상 이사, 의협총회 의장, 국민회의 대의원·운영위 상임위원

윤석상(尹錫商):
만주 신징공대졸(43년), 만주제철 근무

광복 후:대전공업 교사, 서울대 공대 강사, 국방과학연구소 연구관, 서울여의대 조교수, 삼화제철 이사장, 수도의대 부교수·교수, 미국 캔자스주대 사대 대학원수료, 우석대 교수겸 학생과장, 우석대 이학박사, 서울시 교육회 이사, 교대 교수겸 문리대학장

저서:대학물리학개설, 일반물리학, 현대물리학

윤태일(尹泰日):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41년)

광복 후:육사졸, 공병교장·1군사 공병부장, 육대졸, 육본 감찰감, 36사단장, 국방연구원수료, 서울시장, 중장예편·주택공사총재, 5·16장학회 이사, 주택공사 고문, 제9대 국회의원

상:1등근무공로훈장

윤태동(尹泰東):
젠다오성 성공서 사무관 5급(35), 후에 만주제국 젠다오성 부성장이 되었으나 광복후 소련 홍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것으로 알려짐

윤해영(尹海榮):
시인,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낙토만주’기고(43)

이광수(李光洙,가야마 미츠로·香山光郞, 호 춘원·春園 장백산인·長白山人 고단·孤舟 외배·올보리, 아명 보경·寶鏡, 익명 노아자·닷뫼·당백· 경서학인·京西學人):
동학에 입도하여 천도교의 박찬명 대령집에 기숙하며 서기일(1903년),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뽑혀 도일, 대성중학에 입학(1905),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졸(1910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철학과입학(15), 최초의 단편 ‘소년의 비애’‘어린 벗에게’ 등을 ‘청춘’지에 발표, 우리 신문학사상 최초의 장편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1917), 도쿄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작성,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상하이(上海)로 가 임시정부에서 활약(19), 그후 귀국하여 ‘개벽’지에 논문 ‘민족개조론’을 발표(22), 동아일보 편집국장(23), 조선일보 부사장(33), 수양도우회 사건으로 수감(37), 조선문인협회 회장(39),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친일적 연설로 각지에서 유세(41), 만주제국 건국대학 교수로 역사학과 만주·몽골문화를 가르침.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 소설사’기고(43)

광복 후:친일파로 지목되어 1949년 반민법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병보석, 1950년 6·25전쟁 중 납북

저서:유정, 그여자의 일생, 흙, 사랑, 그의 자전, 이차돈의 사, 마의태자, 단종애사, 원효대사, 꿈

이극로(李克魯,호 고루):
중국 상하이(上海) 동제대 예과졸(20), 독일 베를린대학 철학부졸(27), ‘조선어사전’과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편찬 집행위원(29), 한글맞춤법 제정위원(30),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35), 조선어사전 편찬 전임위원 및 조선어학회 간사장(36),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42),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음가를 밝힘’‘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등 기고(43), 함흥형무소에 복역(45)

광복 후:건민회(建民會) 위원장(46),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잔류하여 북한 제1차 내각의 무임소상(48),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및 과학원 후보원사(49),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53), 과학원 조선어 및 조선문학 연구소장(62), 조국전선중앙위 의장(66), 북한의 언어규범화 운동인 ‘문화어 운동 사업’을 주관(66),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및 박사(70), 양강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72)

저서:조선어조 연구, 조선어 임자씨의 토(35), 조선어 단어 성립의 분계선(36), 실험도해 조선어 음성학(47), 고투40년(47)

이기건(李己虔, 니시무라 다미오·西村民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이기건(李奇建,호 하봉·夏峯):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42년)

광복 후:육사7기졸, 육군 소위, 연대장, 2군단 포병 사령관, 26사단장, 미국 포병학교졸, 준장예편, 사격협회 부회장, 동경올림픽 한국대표단 감독, 한국반공연맹 이사, 내외문제연구소 이사·이사장, 문공부 영화 심의위원, 대한체육회 이사, 문교부 중앙교육연수원 강사

저서:구월산의 여장군

이능화(李能和,호 간정·侃亭 상현·尙玄 무능거사·無能居士):
관립 법어학교에 입학(1895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교관(1897년), 사립 일어 야학사졸(1907), 관립 한성법어학교 교장,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학감(1908)이 되었으나 1910년 한일합방으로 학교가 폐교되자 사료수집, 종교와 민속연구에 전념, 능인 사립보통학교 설립, 불교진흥회간사·이사(17),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위원회 편수관·편수위원(21), 한국학 연구를 위하여 재한 일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청구학회가 발족하였을때 평의원으로 추대(30), 박승빈·오세창 등과 더불어 계명구락부 설립(31), 조선총독부 보물고적보존회의 위원(39), 영·불·중·일 등 4개국어에 능통했으며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내선 고대문화의 관계’기고(43)

저서:불교진흥회월보, 불교계, 조선불교총보, 조선불교통사, 조선불교사, 조선도교사, 조선사, 조선기독교급외교사, 조선무속고, 조선여속고, 조선해어화사, 한국도교사, 유고 조선사회사, 조선유교 및 유학사상사, 조선의학발달사, 조선신화고, 조선신교원류고, 조선상제예속사, 조선유교지양명학, 이조시대 경성시제

이돈화(李敦化, 히로야마 가주구마·白山一熊, 호 야뢰·夜雷 백두산인·白頭山人 도호·道號 두암·豆菴):
동학에 입도(1902년), 천도교 월보사가 발족되자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천도교 사상의 정립과 보급에 힘썼다(1910), 천도교 청년교리 강연부를 조직(1919), 천도교 청년회 조직·‘개벽’창간(1920), ‘부인지’창간(22), 김기전(金起田)·박내홍(朴來弘) 등과 천도교 청년당을 창설(23), ‘신인간’을 창간(26),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천도교 발생사와 삼대장생관’기고(43), 천도교 중앙종리원 편집과 주임종리사·지도관장·상주선도사·종법사·현법사 부도령·천도교 총부대령 등 행정상의 여러 중책 역임(45)

광복 후:이북교회를 책임맡아 북한에 거주하면서 6·25전쟁때 평안남도 양덕 천도교 수도원에서 생활

저서:천도교창건사, 신인철학, 인내천요의, 수운심법강의, 천도교교리독본, 복념, 수도요령, 천도교요의, 천도교사전, 새말, 교정쌍전, 동학지인생관

이무영(李無影,본명 용구·龍九):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일본 세이조오(成城)중학교 중퇴(25년), 일본 작가 가토(加藤武雄)집에서 기숙하면서 4년간 작가수업, 육문고보졸, 장편 ‘의지없는 영혼’‘폐허‘ 등을 본명으로 발표(28년), 귀국하여 소학교 교원,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 등을 전전하면서 소설과 희곡을 발표(29), 동아일보에 중편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을 연재하면서부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한때 극예술연구회 동인으로 활약(32), 이효석 등과 ‘구인회’동인,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조선문학지’를 주재,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촌 소설을 집필(33), 조선예술상 수상(43)

광복 후:해군정훈감, 문총최고위원

상:서울시문화상
작품:(장편소설)농민, 농군, 노농, 명일의 포도, 세기의 딸, 먼동이 틀때, 농부전초 (단편집)취향, 산가, B녀의 소묘, 소설작법

이민재(李敏載, 호 창엄·滄巖):
경성 약학전 문학교졸(39년),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제대 식물과졸·만주 고문 기술과합격(42년), 만주제국 국립 대동학원졸(43), 만주국 국무원 총무처 고등관시보로 근무 하였으며 만주제국 대륙과학원(현재 하얼빈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당시 각종 연구소와 농장 경영) 부연구관, 신징 의과대학에서 강의(45)

광복 후:경성 약학전문학교 교수, 서울 약대 교수·문리대 교수·자연과학대 교수·해양생물연구소 소장, 학술원 회원, 일본 홋카이도대 이학박사, 문교부 차관, 원자력 위원, 과학정책 심의위원, 생물과학협회 회장,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 한국산악회 회장, 교육정책 심의위원, 아주공대 학장, 강원대 총장, 학술원 부회장, 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 자연보호 중앙협의회 회장

상:대한민국 학술원상, 대한약학회상, 5·16민족상, 녹조근정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및 모란장, 하은생물학상, 대한민국과학상
저서:식물생리학, 약용식물학, 유전자의 분자 생물학, 일반식물학, 우주물질생명, 창암문집, 속 창암문집, 태초에-창세기와 과학적대조

이범익(李範益, 기요하라 노리에끼·淸原範益):
젠다오성 초대 성장, 만주제국 특임참의,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서문, 만선일여’기고(43)

광복 후:마지막 젠다오성 성장 윤태동과 함께 소련 홍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것으로 알려짐

이병기(李秉岐, 호 가람·嘉藍):
전주 공립보통학교졸, 관립 한성사범학교졸(13년), 남양·전주제2·여산 등의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13), 동광고등·휘문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22), 시조회를 발기한 후 가요연구회로 개칭(28), 조선어철자법 제정위원·연희전문·보성전문학교 조선문학 강의(30),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피검(42), 육문중학교 교수,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경복궁 중건과 민원’‘고금시조의 형태’‘시가와 설화’‘신라의 화랑도’‘고시조선’‘역대의 농정고와 십수록’‘황진이의 예술’ 등 기고(43)

광복 후:미국 군정청 문교부 편수관, 서울대 문리과대학 교수, 전북대 문리대 학장·명예문학박사, 학술원 회원, 중앙대 교수

저서:가람시조집, 국문학개론, 국문학전사, 한중록, 역대시조선, 근조내간선, 가람문선
상:학술원 공로상, 문화포장

이병도(李丙燾,호 백수·白水 두계·斗溪 杜桂):
서울 중동학교졸, 보성전문 법과졸(15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문학부 사학 및 사회과졸·중앙교 교사(19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33), 진단학회 창설·대표(34),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41),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고대의 성곽에 취하여’‘고구려 영락대왕의 위업’‘문학사상으로 본 세종대왕의 위적’‘삼국시대의 문화동류’‘신라문화의 특색’‘이퇴계와 그의 학설’‘이회제와 그 학문’‘정포은과 조선 유학’ 등 기고(43)

광복 후:서울대 문리대 교수·대학원장·명예교수·도서관장, 국방부 정훈국 전사편찬 위원장, 학술원 종신회원, 외무부 외교연구위원회 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학술원 회장·원로회원, 국민대 학장, 성균관대 교수·도서관장, 대동문화연구원 원장, 도서관협회 회장, 진단학회 이사장, 동구학원 이사장, 통일원 고문,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5·16민족상 이사, 삼일문화재단 이사, 국토통일 고문, 송산학원 이사장, 국정 자문위원,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고문

상:충무무공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학술원공로상, 서울시문화상, 문화훈장, 인촌문화상, 5·16민족상
저서: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한국사중세편, 고려시대연구, 국사와지도이념, 한국고대사회와 그문화, 율곡의 생애와 그사상, 수정판역주삼국유사, 삼국사기 역주, 한국고대사 연구(국문·일문), 성기집, 한국유학사략, 한국유학사, (수필집)나의 인생관

이병위(李丙胃):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이병조(李丙祚):
만주 펑톈 동광중졸(44년)

광복 후:육대졸, 1군사 수송 참모부 차장, 부산철도 국장·인천공작창장, 대령예편, 철도청 운수·자재국장, 부산·서울공작창장, 서울철도 국장·철도청 공전국장, 철도청 차장

이상무(李相武):
만주 융안(永安)중졸

광복 후:육군 소위, 대령예편·중정 보안국장, 5·16쿠데타 최고회의 자문위원, 제6·7대 국회의원, 국회 내무위장, 공화당 경북9지구 위장·내수어족보호협회 이사

이상진(李相振):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이선근(李瑄根, 호 하성·霞城):
아버지가 설립한 쌍빈의숙졸, 휘문고등보통학교졸(22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사학과졸(29년), 조선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30), 경신·송도 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31), 고려시보사 주간(32), 한성도서(주) 상무 취체역(34), 연전 강사(36), 만주 만몽산업(주) 상무·전무 취체역, 안가농장 개척사무 소장(37), 만주 오상현 대동농사학교 교장(42),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대원군의 인물’‘만주와 조선의 역사적 재인식’ 등 기고(43)

광복 후:건국준비위원회 위원, 조선청년동맹 위원장, 조선청년당 최고위원, 반탁학생 총연맹 고문, 한성일보 주필, 서울대 법대 학장서리, 국방부 정훈국장, 준장예편, 서울대 문학박사, 문교 장관, 동아대 교수, 성균관대 총장, 경희대 교수·명예문학 박사·대학원장, 아시아학술연구 회장, 외국어대·건국대 교수, 향군회 자문위원, 중화학술원 명예법학박사,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아시아반공연 이사, 영남대 대학원장·총장, 통일원 고문, 국사교육강화위원회 위원장, 미국 볼주대 명예법학박사, 문화재보호협회 회장, 도서관협회 회장, 동국대 총장, 5·16민족상 부이사장, 대한교육연합회 회장, 정신문화연구원 원장

상:을지무공훈장 상이기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충무무공훈장, 중국금질장장, 5·16민족상 본상
저서:조선최근세사, 한국최근세사, 한국최근정치사, 한국사(최근세편·현대편), 민족의 섬광, 대한국사, 화랑도연구

이섭준(李燮俊):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이성근(李聖根,가네카와 사토시·金川聖):
전주 육영학교졸, 황해 감찰부 순검, 통감부 경부를 거쳐 총독부 경찰(10년), 청주 경찰서 사법주임(19), 경시로 승진·평안북도 경찰부 고등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만주까지 관할(20), 도이사관이 되어 전라남도 산업과장(27), 함경북도 참여관(32), 충청남도 지사(39), 총독부에서 퇴관하여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사 제2대 사장(41), 김연수(金秊洙)·이광수(李光洙)·최남선(崔南善) 등과 함께 유학생의 학병지원 권고 강연차 일본 도쿄에 다녀옴(43), 같은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부여신도의 사적’기고

광복 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음

이성재(李性在):
만선일보사(만주제국의 대변지로 광복 전 만주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친일 우리말 신문)사장,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재만 조선인의 10년 혈오사’기고(43)

이순(李淳, 창파·蒼波):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이승규(李昇圭):
명륜학원 강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조선한시사화’기고(43)

이언진(李彦鎭):
평양고보졸(28년), 동아일보 공장 차장(37), 남만방적 서무과장(42)

광복 후:동아일보 공무국장·이사·상무·전무겸 인쇄인겸 공무국장·부사장

이여성(李如星):
미술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표지 도안을 했으며 ‘조선복색의 원류고’기고(43)

이영배(李英培):
만주 다롄(大連)상졸(36년),

광복 후:대림조 베이징(北京)지점근무, 대동신문·연합신문 업무차장·부장, 내무부 공보관, 세계일보 업무부국장, 한국경제신문 총무국장겸 업무국장, 동화통신 업무국장, 태양신문(재일) 전무, 고양주류협회 전무, 한일식품 전무, 한중일보 상무

이영춘(李永春):
만주 육군 기병 2퇀부 중위로 지린지국 경비사령부 근무(35)

이용술(李容述):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5기생

이우춘(李遇春):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이운허(李耘虛,본명 학수·學洙):
평양대성교수료(11년), 만주 동창흥등교 교사(12∼19), 만주에서 한족신보발행·사장(19), 금강산 유첩사에서 득도(21), 범어사에서 불교사교과 이수(24), 봉선사·통도사 강원강사(36∼55)

광복 후:불교 조계종 경기 교무원장, 광동중 교장, 양주군 봉선사 주지, 광동학원 이사장, 불교 조계종 역경위원회 위원장, 동국대부설 동국역경원 원장, 봉원사 주지

상:문화훈장
저서:한국독립운동사, 불교사전
역서:사미율의, 범강경, 무량수경, 금강경

이웅길(李雄吉, 淸原雄吉):
만주제국 무단장(牡丹江)성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재만 조선인 역사적 사명과 지도문제’기고(43)

이웅열(李雄烈):
만주국 정부로부터 공로장 수여(33)

이원형(李元衡):
펑톈 중앙육군훈련처 졸업 후 만주 육군 보병 소위(34)

이은상(李殷相· 호 노산·鷺山, 필명 남천·南川 강산유인·江山遊人 두우성·斗牛星):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 졸(18년), 연의전문학교 문과 중퇴(23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사학부 청강생(26),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31), 동아일보사 기자, 신가정 편집인, 조선일보사 조광 주간·편집고문(35),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 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리언(俚諺)의 전와(轉訛)에 대한 일고(一考)’ 기고(43),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 함흥형무소 구금(45)

광복 후:호남신문 사장, 청구대 교수, 서울대 문리대 교수, 영남대 교수·대학원 교수, 예술원 회원, 동방고서국역회 회장, 민족문화협회 회장, 청우 회장,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 숭모회 회장, 민족문화협회 회장, 시조작가협회 회장, 한글학회 이사, 문화재 위원, 한국산악회 회장, 독립운동사 편찬 위원장, 숙대이사·이사장, 노산시조 문학상 제정, 국정 자문위원

상:국민훈장 무궁화장, 예술원공로상, 건국포장, 5·16민족상학예본상
저서:(시문집)노산문선, 노산시문선, 노산사화집, 노산시조집, 노산시문집, 이충무공일대기, 난중일기해의, 나의 인생관, 민족의 향기, (수필집)무상, (사화집)조선사화집, 기행문집, (전기)탐라기행 한라산, 피어린 육백리, 이충무공 일대기

이응진(李應辰):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정치과졸(32년), 천도교 청우당 상무(33), 만몽산업 중역(35), 동양흥업 전무(43)

광복 후:천도교 청우당 부대표, 입법 의원, 개벽사 대표, 천도교 선도사·종의원 의장·종법사, 새인간연합 부총재

이인기(李寅基, 호 벽계·碧溪):
대구고등보통학교 중퇴, 일본 교토(京都) 히가시야마(東山) 중학교·구마코토(熊本) 제5고등학교·도쿄(東京) 제국대학 문학부 교육학과 교육학 전공, 경성고등상업학교 강사(31),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경성사범학교 교유·만주 젠다오성 시학관(36), 만주제국 문교부 교학관(44)

광복 후:경성 경전 교장, 성균관대 부총장, 서울대 교수·상대 학장·문리대 학장·대학원장, 연대 교수, 교육학회 회장, 경북대 문학박사, 학술원 회원, 숙대 총장, 영남대 총장, 도산서원 원장, 퇴계학연구원 원장, 국토통일 고문, 재단법인 우산육영회 이사장,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상:국민훈장 모란장
저서:민국의 교육정신과 학제개혁, 교육사, 교육과 시상
역서:학교와 사회

이재기(李再起):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이정삼(李廷三):
만주 신징 법정대학 법학과 2년수료(39년)

광복 후:육사졸, 육본 예산과장, 국방부 연금과장, 중령예편, 최고회의 재경위 전문위원·부의장 고문, 감사원 사무차장·사무총장·감사위원, 수출산업공단 감사·고문, 강원도민회 부회장

상:2등근무공로훈장

이종갑(李鍾甲):
만주 지린 사도대 체육과졸(42년)

광복 후:경남산업 사장, 축구협회 이사·이사장, 대한체육회 전무, 서울 수산시장 사장, KOC 상임위원·자선신탁회사 이사장,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 대한전선건설 부사장, 테니스협회 부회장

이종만(李鍾萬, 月城鍾萬):
대동공전 설립자,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조선시정 30주년을 당하여’기고(43)

이종항(李鍾恒):
대구 공립 고등보통학교졸, 만주 건국대학 정치과졸·만주 대동학원졸(43년)

광복 후:경북대 교수·교학처장, 문교부 고등교육 국장, 경북대 법학박사, 국립중앙도서관 관장·문교부 장학 실장, 중앙시청각교육원 원장, 국민대 교수·학장

저서:정치학개론, 한국정치사

이주일(李周一,호 강릉·江陵):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일본 육군사관학교졸(43년), 젠다오성 특별설치부대(젠다오 특설대, 조선인 특수부대)군관

광복 후:육군사관학교졸(특별7기), 육군대학졸, 12·21사단장, 2군사령부 참모장, 국방대학원수료, 5·16쿠데타 군사혁명 위원으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장·부의장, 부정축재자처리위원회 위원장, 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장, KOC 위원장겸 대한체육회 회장, 대장예편, 감사원 원장, 함북장학회 이사장,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고문

저서:북절30년, 혈화의 전선, 흘러간 세월, 고희산

이준구(李俊九):
만주 펑톈농대졸

광복 후:협화실업 대표, 성우산업 대표, 경향신문 사장, 동국대 기성회장, 연세라이온즈클럽 회장

이중화(李重華, 호 동예·東藝):
서울 흥화학교 영어과졸·교사(1904년), 배재학당에서 교편, 조선어사전(뒷날 한글학회의 큰사전) 편찬 집행위원·전임 집필위원 및 조선어 표준말 사정위원(29∼36),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42),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무열왕비의 비신에 대하여’‘종누와 보신각종에 대하여’ 등 기고(43)

광복 후:국학대학장, 재단법인 한글학회 대표이사를 지내다가 6·25전쟁때 납북

저서:경성기략, 조선의 궁술

이충환(李忠煥,호 향면·香晩):
일본 주오(中央)대 법률과 중퇴·만주제국 고등관 채용고시 합격(40년), 만주 대동학원졸(41), 일본 고문 행정과합격(43)

광복 후:제2·3·5대 민의원,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중당 충북7지구 위원장, 민정당 선전부장, 제6·9·10대 국회의원, 민중당 당무위원·정책심의 위원장, 신민당 충북7지구 위원장·지도위원·정무위원, 진천·괴산·음성지구당 위원장, 신민당 정무위원겸 재정·금융 위원장, 신민당 충북지부 위원장, 전당대회 의장, 총재 권한대행·최고위원, 변호사개업, 민주화합추진위원회 위원, 신한종합법률사무소 대표

이학수(李學洙):
만주 룽징광명중졸

광복 후:광명인쇄공 사장, 고려서적 사장, 고려원양어업 사장, 광명출판 사장, 물품군납조합 이사장, 광명철판인쇄 사장, 원양어협 부회장·회장, 고려식품 회장, 한국·스페인경협위 위원장

상:2등근무공로훈장, 산업포장 대통령표창, 석탑·동탑·철탑산업훈장
저서:이땅은 우리땅이다

이한림(李翰林, 香 秀):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일본 육사졸(44년), 젠다오성 특별설치부대(젠다오 특설대, 조선인 특수부대)고사포대 군관

광복 후:미국 보병학교졸, 2사단장, 국방부 정훈국장·정전위원회 한국수석 대표, 9사단장, 6군단장, 국방대학원수료, 육사 교장, 1군사령관, 중장예편, 수개공 사장, 진해화학 사장, 건설부 장관, 국방학회 회장, 한국관광공사 사장, 한국관광협회 회장겸 PATA 한국지부 회장, 동남아관광협회(EATA)회장

상:태극충무무공훈장

이홍주(李鴻周):
만주제국 협화(協和)의회 구이린(桂林)분회 고문,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제목 글자와 ‘근전남총독조귀’기고(43)

임재동(林栽東):
만주 펑톈중졸(40년)

광복 후:한성증권 근무, 유림증권 상무·전무, 한보증권 부산 지점장, 동방증권 대표이사, 증권협회 부회장

임천구(任天九):
만주 하얼빈공대졸, 녹도조 근무

광복 후:강원여중 교사, 대전공고 교사, 충남대 공대 학장·교수

임천순(任天淳):
경성1고보졸(32년), 경성법전졸(35), 만주 펑톈 성공서 사무관(39)

광복 후:관재처 총무과장, 에베렛기선 한국 지배인, 재무부 관재·세관 국장, 성업공사 이사·사장, 현대조선 상임감사

임한룡(林漢龍):
만주 (주)협제공사에 근무하면서 조선인민회 연회 활동, 만주제국 척식공사 참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주구가감의 악정일소‘기고(43)

장규원(張逵源, 高山逵源):
교토(京都)제국대를 졸업한 사관생으로 현기영(玄其永)·김태호(金泰昊) 등 수십명과 만주에서 치안공작원 활동, 만주제국 지방처 참사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건국실천담‘기고(43)

장기섭(張基燮):
만주 펑톈상고졸(36년)

광복 후:극동기업 사장, 대륙운수 사장, 천일백화점 사장, 용역 군납조합 이사장, 명동극장 사장, 빙상연맹회장, 군납조합 이사

장기준(莊麒俊, 莊本信一):
만선일보사(만주제국의 대변지로 광복 전 만주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친일 우리말 신문)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신비세계의 대금국’기고(43)

장은산(張銀山):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4기생

장현규(張鉉圭):
만주 대동학원수료(42년)

광복 후:전북대 농대 교수·학장

전봉초(全鳳楚,호 롱현·弄絃):
일본 데이고쿠 음악학교 첼로과졸·만주 신징 음악원 교향악부 입단(43년), 만주 신징 음악원 수석주자(44)

광복 후:귀국독주회, 서울교향악단 수석 첼리스트, 서울 바로크합주단 상임지휘자, 서울대 음대 교수·학생과장·음대학장·명예교수, 음악협회 이사·이사장, 서울대 4중주단 대표, 첼로독주회 21회, 예술원 회원, 가톨릭교향악단 추진위원장, SLOOC 전문위원,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회장, 사단법인 코리아심포니 이사장, 아시아청소년교향악단 한국 지부장, 국제음악애호가협회 이사장, 안익태 기념재단 이사장

상:5월문예상본상, 예술원상, 금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예총 예술문화대상

전상혁(田相赫):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7기생

전성호(全盛鎬, 호 철단·鐵舟, 일명 성룡·盛龍):
한일합병후 만주로 망명, 철혈 광복단에 가입, 3·1운동때 룽징은행을 습격하다 실패, 북로군정서에 가입, 사관연성소 졸, 청산리 전투때 적군의 정부수집에 공헌, 김좌진 지청천 등과 한국 혁명위원회 조직, 젠다오성 옌볜(延邊)자치촉진회 부회장, 일군에 피체, 청진감옥에서 복역(27년), 출옥후 중국 의용군 총사령 왕덕림과 지하공작, 지청천 부대와 제휴(35), 대한독립신문·우리의 편지·조선독립신문 등의 지하신문과 관계, ‘만몽일보’‘젠다오 일보’‘간도통신’ 등 경영

광복 후:초창기의 국군에 입대하였으나 6·25때 육군 대령으로 영덕상륙작전에서 전사

상:대통령표창, 애국장 추서

전풍진(田豊鎭,호 백송·白松):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졸(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졸(31), 일본 오사카(大阪)제대 공학부 응용화학과졸(37), 동양 최대의 과학연구소인 대련 만주철도(주) 중앙시험소 기사로 섬유화학연구(38∼45)

광복 후:서울대창설에 참여, 서울대공대교수·이학박사(대한민국박사 제1호), 한양공대교수, 펄프 및 제지공업 연구차 구미 15개국 시찰, 제10차 태평양국제과학회의 연구발표 위해 도미, 낙후된 한국제지공업에 현저한 업적을 남김, 한양대 대학원장(공업계의 석학), 고시 위원, 학술원 회원, 화학회 부회장, 합성유기화학 회장, 산업기술개발본부 부회장, 총리실 평가 교수, 농림부 임업시험장 지도교수, 종이펄프기술협회 회장

상:대한민국 문화포장,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산업훈장, 과학기술상, 국무총리상, 대한민국 학술원 응용화학상
저서:(논문)활엽수 펄프화에 관한 연구, 백화수피 이용에 관한 연구, 한국산 볏집펄프화 연구, 염료합성 및 염색에 관한 연구, 백송논문집, (저서)전해유기화학, 화학(상,하), 한국어대사전 편찬에도 참여

정상인(鄭尙仁, 시마야마 미츠오·島山光雄):
평양 숭실대졸·선천 신성중학교 교사(15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난징(南京)에 있는 금릉 신학교에서 수학(19), 귀국하여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부목사로 선천남교회를 시무(24), 평북노회장에 피선(32), 만주 펑톈 서탑교회의 청빙을 받아 시무, 조선예수교장로회 만주연합회의 관리자로 선출(39), 장로교·감리교·동아기독교·성결교 등 각 교파를 통합하여 만주기독교 총회가 결성될때 총회장(41),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장로교 발전과 만주조선기독교 합동개관’기고(43), 펑톈에 초교파적 신학교인 만주신학원 설립(45)

광복 후:평안북도 용천군 남시교회에 부임

정운근(鄭雲近):
만주 국립의대졸

광복 후:제헌국회 사무차장, 2대 민의원 사무차장, 무역협회 부회장, 참의원 사무총장, 동양제사 감사, 민정당 충북3지구 위원장, 6대 국회의원, 민중당 당무위원, 신민당 지도위원·충북도당 고문, 충북협회 고문, 신민당 지도위원·부위원장 위원

정원훈(鄭元勳):
경기고상졸·만주 중앙은행입행(41년)

광복 후:조선저축은행 입행, 미국 클라크대 대학원수료, 한국은행 입행·조사부장·뉴욕 사무소장·이사, 외환은행 전무, 외자관리 위원·대외투자 심의위원, 외환은행 미국본사(LA시소재) 설립준비위원으로 체미

정인복(鄭寅福):
만주 신징 국립 공대 채광과졸·천보산 광업기수(42년)

광복 후:국립지질조사소 선광과장·중앙계량국 검정과장,국립지질조사소 지질부장 및 대전시험소 소장, 국립광업연구소 소장, 국립공업연구소 제1부장, 광진공업 감사

상:녹조소성홍조근정훈장

정인승(鄭寅承,호 건제·健齊):
연희전문학교 문과졸(25년), 고창고보 교원·한글학회 이사·한글학회 간행 ‘큰사전’편찬 주간(35),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 복역(42),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고본 훈민정음의 고찰’기고(43)

광복 후:전북대 교수·총장, 중앙대 교수(문학박사), 한글학회 이사, 건국대 문리대 교수, 학술원 회원, 건국대 한국고유문화연구소 소장

상:큰사전 편찬 공로상, 국어운동 특별공로상, 건국공로훈장, 예술원상, 국민훈장 모란장
저서:표준중등말본, 표준고등말본, 한글문답, 한국어대사전 편찬에도 참여, (논문)사전편찬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 모음상대법칙과 자음가세법칙, 그밖에 눈의글과 귀의글

정일권(丁一權, 中島一權):
만주 젠다오에 있는 조선인 학교 광명중졸(35년), 일제 만주제국이 세운 육군군관학교 제5기생, 치치하얼 제3교도대 입대(34), 일본 육군사관학교졸(40년), 국경사변 종군기념장. 주국6위와 경운6위 훈장 수여(43), 젠다오성 특별설치부대(젠다오 특설대, 조선인 특수부대)헌병 소좌(45)

광복 후:미국 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 졸업, 조선국방경비대 대위, 3군 총사령관, 미국 참모대졸, 육참 총장, 합참 총장, 연참 총장, 5·16쿠데타 국가재건 최고회의 위원, 대장예편·주터키대사, 주불대사, 주미대사, 미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 수료, 유엔총회 한국대표, 미국 옥스포드대서 정치학수학,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말레이지아 명예법학박사, 중앙대 명예법학박사, 부산대·아르헨티나대 명예법학박사, 월남사이공대·미국 롱아일란드대 명예법학박사, 태국 출라롱콘대 명예정치학박사, 공화당 총재 상임고문,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중국 국립정치대 명예법학박사, 중화학술원 명예철학박사, 제8·9·10대 국회의원, 성우구 회장, 공화당 당무위원겸 당의장서리·총재, 국회의장, IPU·APU 한국지부 회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국정 자문위원, 자유수호구국총연합 회장, 한일협회 회장, 자유총연맹 총재, 민자당 상임고문

상:충무·을지·태극무공훈장(금성), 1등수교훈장 광화장, 미은성훈장3개(총지휘관급 및 사령관급), 미수훈십자훈장, 독일1급공로대십자훈장, 일본욱일1등훈장, 희최고십자훈장, 월남콩캄1등훈장, 중국1급명성훈장

회고록:전쟁과 휴전

정정순(鄭正淳):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

정진완(鄭震口完):
만주 건국대학 정치과졸(45년)

광복 후:육군 소위, 육본 군수국장, 국방부 관리국장, 소장예편, 주택영단 이사, 한전 이사, 서울대 경영대학원수료, 한전기계 대표, 광진공 이사, 광업융자 심의위원회 위원장

상:은성을지무공훈장, 미무공훈장

조권순(趙權順):
일본 주오(中央)대 전문부 법과중퇴(43년), 만주 척식공사 근무(43∼46년)

광복 후:조선간유 지배인, 유한산업 지배인, 유한양행 지배인·상무·전무·부사장·사장, 약공협회 부회장, 유한킴벌리 사장, 의약품 수출입협회 회장

상:최고경영자상

조동훈(趙東勳):
일본 도쿄(東京) 외국어교 몽로어부 무역과졸·만주 신징 중앙방송국 근무(39년)

광복 후:서울중앙방송국·경향신문·서울신문 기자, 연합신문 정치부장·편집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 동화통신 편집국장, 경향신문 심의실장, 시사통신 상무겸 편집국장·전무·부사장

조옥봉(趙玉峰):
화가,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가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속지에 난을 그림

조원영(趙遠永, 호 영원·永遠):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조운현(趙雲現):
만주 하얼빈 농대졸(44년)

광복 후:농림부수산국장서리, 수개공이사, 수협부회장, 서울냉동사장, 수산물제조업협회조합장

상:녹조소성훈장

조정웅(趙正雄, 시라카와 마사오·白川正雄):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동창회 간부

조현경(趙賢景):
여류문사,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만주의 풍속’기고(43)

주석순(朱石淳):
만주 뤼순(旅順)고 이과졸(45년)

광복 후:서울대 사대부고 교사, 서울대 문리대 강사, 이대 문리대 조교수, 중앙대 이공대 교수·교양학부장·교무처장

저서:미적분학, 수학개요

진상의(秦尙義, 도오다 나오요시·豊田尙義, 상진·尙振):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2기생

차상찬(車相瓚, 호 청오·靑吾):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모교에서 교편, ‘개벽’‘별건곤’‘신여성’‘농민’‘학생’ 등의 잡지에서 주간 또는 기자로 활동,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이율곡 어머니 신씨’‘과학제도의 고찰’‘허난설헌’ 등 기고(43)

저서:(수필)조선4천년비사·해동염사(31년), 조선사외사(47년), 한국야담사화전집(4권·71년), (한시)경주회고, 남한산성, 관동잡영, 가야회고

채인기(蔡麟基):
만주 지린 사도대 생물과졸·만주 신징 대동학원수료(43년), 만주 동경성 국민고 교사(45)

광복 후:무학·경기여고 교사, 이대 사대 생물과 조교수·문리대 생물과 교수·생물학과 과장, 미생물학회 회장·편집위원

저서:교사를 위한 과학, 대학생물학, 현대생물학

채필근(蔡弼近):
숭실학교졸(1905년), 평양 신학교 입학(13), 졸업후 함경북도 경흥읍 교회에서 장로교 전도사·목사로 봉직하다가 캐나다 선교회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에 유학, 메이지(明治)학원 고등부를 거쳐 도쿄(東京)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 교수로 부임(25),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새로 개교한 신학교 교장(41),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평양의 유래’기고(43), 같은해 제32회 장로회 총회 대신 일본기독교단 제1회 창립총회가 열리면서 제1대 통리가 됨

광복 후:친일파로 투옥되었다가 6·25전쟁때 월남하여 목사로 전교사업에 몰두하면서 여러 신학교에 출강하여 주로 교양과목을 강의

저서:비교종교학, 신구약주석

천태산인(天台山人):
문인,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백정의 사적 고찰’기고(43)

최규하(崔圭夏,호 현명·玄石):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졸(37년), 일본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졸(41년), 만주 대동학원졸(43)

광복 후:서울대 사대 교수,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 농림부 양정과장, 외무부 통상국장, 주일본대표부 총영사·참사관·공사, 4차 한·일회담 대표, 외무부 차관, 5·16쿠데타 최고회의 의장 고문, 주말레이시아대사, 외무부 장관, 한국외국어대 명예문학박사, 대통령 비서실 외교담당 특별보좌관, 남북조절위원회 위원·대표로 평양 방문, 국무총리 서리,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 10대 대통령 취임, 국보위 의장, 대통령직 사임, 국정자문회의 의장

상:무궁화대훈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청조근정훈장, 말레이시아 최고훈장 SMN, 벨기에 왕관십자대훈장, 월남금관훈장

최남선(崔南善,호 육당·六堂 한샘 남악주인·南嶽主人 곡교인·曲橋人 육당학인·六堂學人 축한생·逐閑生 대몽·大夢 백운향도·白雲香徒, 아명 창흥·昌興):
황실유학생으로 도일 도쿄(東京)부립 제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귀국(1904년), 다시 도일하여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고등부 지리역사과 입학(1906), 이듬해 모의국회 사건으로 퇴학 귀국하여 출판 인쇄 신문관을 경영(1907), ‘소년’지를 창간 신형식의 자유시 ‘해에서 소년에게’를 발표 안창호와 청년학우회를 설립(1909), 조선광문회를 창설하여 고전을 간행(1910), 3.1운동때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으로 2년6월형을 복역중 이듬해 가출옥(20), 주간지 ‘동명’발행(22), ‘시대일보’창간(24), 논설 ‘불감문화론’을 발표(27), 만주에 가서 만선일보 고문에 이어 만주제국 건국대학에서 교편(38),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조선과 세계의 공통어’‘기자는 지나의 기자가 아니다’‘만주약사’‘몽골의 명의’‘만주의 명칭’‘젠다오와 조선인’ 등 기고(43)

광복 후:민족정기를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난과 공격의 과녁이 됨, 함남 이원의 진흥왕 순수비 발견, 6·25전쟁 후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고문

저서:백팔번뇌, 시조유취, 백두산관참기, 금강예찬, 조선역사, 조선상식, 고사통, 조선유람기, 금강예찬, 삼육유사해제, 조선독립운동사

최린(崔麟, 호 고우여암):
함남 관찰부 집사(1896년), 활빈당과 일심회에 가입(1902),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과졸, 보성고등학교 교장(1910), 신민회에 가입, 최남선·현상윤 등과 중앙학교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지도자 선출을 밀의하고 독립선언문 초안 작성하였으나 최남선이 완성토록 위임(19), 변절하고 조선총독부 충추원 참의에 취임(34),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사장(37), 임전보국단 등 해방전까지 친일활동(45)

광복 후:6·25전쟁 중 납북됨

최익한(崔益翰):
동아일보사 조사부장,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 낙토만주’에 ‘반도의 과거 교육제도’‘반도의 후생정책 약사’ 등 기고(43)

최주종(崔周鍾):
만주 육군군관학교 제3기생, 일본 육군사관학교졸(45년)

광복 후:육대졸, 육사 생도대장, 31사단장, 5·16쿠데타 군사혁명 위원으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최고위원겸 8사단장, 국방대학원 수료, 군수기지 사령관, 소장예편, 주택공사 사장

최준문(崔竣文, 호 공산·公山):
남만주 공업학교 토목과졸(39년), 궁동조입사(39)

광복 후:충남토건사를 설립(오늘날 동아그룹의 모체), 동아건설 사장·회장, 동아콘크리트 회장, 경남기업 회장, 통운 회장, 동아그룹 회장(명예), 대전문화방송 회장, 공산학원 이사장, 전경련 이사

상:금탑·은탑산업훈장

최중원(崔仲元):
만주제국 관동청 순사로 건국공로훈장 수여(34), 만주 신징 동아전졸(42년)

광복 후:이성산업 부사장, 제일신보사 입사, 산업경제신문 업무국장·상무·전무

최창언(崔昌彦, 히라야마 다케이·原山武意):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일본 육군사관학교졸(42년)

광복 후:육군 공병감, 미국 보병교졸, 수도사단장, 육대졸, 2관구 사령관, 국방부 정훈국장, 국방대학원수료, 3군단장, 국방대학원장, 중장예편, 충비 부사장

상:태극무공훈장, 2등근무공로훈장

최창윤(崔昌崙):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1기생

광복 후:군단장

최충선(崔忠善,호 東園):
만주 의대졸(33년), 만주 전신전화회사·신징병원 내과 과장(39), 만주의대 의학박사(40), 만주 신징서 병원 개업(42)

광복 후:내과개업, 내과학회 서울시 회장, 서울 중구 의사회 부회장·회장, 연세대 의대 임상 교수, 서울 중구 선관위원

최치환(崔致煥,호 금엄·錦巖):
만주 육군군관학교 제6기생(43년)

광복 후:내무부 치안국 보안·경무과장, 미국 미시간대 행정과수학, 서울시경 국장, 이승만 대통령 비서관, 공보실장·5대 민의원, 제6·7대 국회의원, 축구협회 회장, 공화당 당무위원·원내 부총무, 국회건설위원회 위원장, 경우회 회장, 경우신보 사장, 속기협회 회장·도로협회 회장, 경향신문 사장, IPI회원, 신문협회 부회장, 신문연구소 이사

상:태극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대통령공로표창
저서:유격전술

태윤기(太倫基,호 임광·林光):
함흥 공립상학교졸(36년),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학과졸·만주 고등문관시험 합격(42년), 중국 시안(西安) 한국 광복군 제2지대 입대(43∼46)

광복 후:인천 공립공고 교사, 육군사관학교 법무2기수료, 수도사단 법무참모, 육군법무감실 심사과장, 서울지구 민사부장겸 위무사령관, 대령예편·변호사개업, 민권수호국민총연맹 옹호회 부위원장, 공명선거추진위원회 상임위원, 특검 검사·중앙선거위원, 광복회 감사, 민주화추진협의회 지도위원·부의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지도위원, 백범 김구선생 살해 진상규명위원회 법정위원장

상: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건국훈장 애족장, 함남도민상
저서:인간재판, 회상의 황하, 군인일기, 아편전쟁과 제국주의 침략, (임광문집)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라

한정훈(韓廷勳):
만주 신징공대졸(32년), 신징교통 근무(38)

광복 후:동일섬유공업사 경영, 대성전업 사장, 대성제빙 사장, 전선공협 이사, 경동호텔 사장

한진(韓珍):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7기생

한홍수(韓洪洙):
만주 건국대학 경제학부졸(44년)

광복 후:미국 군정청 재무부 인사과장, 한일은행 용산지점장, 한일은행 영업·업무국장·이사·상무·전무·행장

상:국민훈장 동백장

함화진(咸和鎭, 본관 양근·陽根, 자 수중·舜重, 호 오당·梧堂, 원명 화진·華鎭):
조선정악전습소 가야금 교사로 정악 보급에 참여(12년),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가야금·양금 등 실기를 교수(31), 제5대 아악사장 역임(32), 편경과 편종을 제작(35), 일본 음악계 시찰(36), 중국 고악 시찰(37), 만주제국 음악협회 조선음악부장,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반도음악 소사’기고(43)

저서:조선아악개요(15년), 조선악기편(33), 이조악제원류("), 증보가곡원류(38), 조선음악통론(48), 통문관에서 간행한 양금신보 부록으로 한국음악소사, 국악50년회고록

허우성(許宇成):
중국 동북대 중국문과졸·만주 검정시험 중국어과 특등합격(30년), 만주제국 국립 하얼빈학원 일본어 전수과졸(36), 중국고교 교사·중국신문 기자(31∼45)

광복 후:동북한보 사장, 해군본부 정훈감실 문관, 중국 대도통신 한국 지사장, 외국어대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반공연 이사, 대한일보 논설위원, 사단법인 동북아문제연구소 소장, 한양학원 이사

상:중국교육부훈장
저서:동란의 중국, 동북한족혁명운동사(중문), 휴전과 우리의 금후, 인민공사 총론
역서:국사대관(중문), 북한20년(중문), 중국공산당 60년

현기영(玄其永):
교토(京都)제국대를 졸업한 사관생 장규원(張逵源, 高山逵源)과 김태호(金泰昊) 등 수십명과 만주에서 치안공작원 활동

현상윤(玄相允):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사학과졸, 귀국하여 중앙학교 교사(18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19), 이상재(李商在)를 대표로 하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결성에 참여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22), 중앙중학교 교장,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홍경래와 신미변란’기고(43)

광복 후:경성대 예과부장,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다가 고려대 승격후 초대총장(46), 6·25전쟁때 납북

저서:한국유학사

홍병철(洪炳哲, 상강·常岡):
만주제국 수도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이조상신(정승)고’‘후백제왕 견훤과 합덕연호’ 등 기고(43)

홍승구(洪承耉, 목춘·木春):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한사추의’기고(43)

홍양명(洪陽明):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사 근무,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하얼빈에서’기고(43)

홍일해(洪一海,호 원파·圓坡):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출생, 만주 젠다오 고등공업학교졸(43년)

광복 후:중국 동북학원수료, 대한여행사 심사주임, 목포세관 감사, 육군 특무부대 문관, 미국 극동군사령부 특별군사요원, 정전위원회 유엔측 대표, 한국경제뉴스사 대표, 동화통신 특신부장·경제부장·주일특파원·편집국 부국장·국장대리·상무이사, 국제피알 사장, 합동통신 이사겸 업무국장·상무이사·전무이사, 금강기획 사장·회장·상임고문, 문화일보 편집 자문위원

저서:한국통신사(역)사

홍춘식(洪椿植, 豊山椿植, 호 풍산·豊山):
경기공립중졸, 만주 건국대학졸

광복 후:제5대 의원

황의돈(黃義敦,호 해원·海園):
황윤석 판사의 아버지, 사학자, 한학과 사학을 연구,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근대식 학교인 군산 공립보통학교 보습과에 입학(1907년), 서울과 도쿄(東京)를 왕래하며 근대 학문 수학, 만주 젠다오에 명동학교를 설립(1909),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국사교육 담당(11),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국사와 한문 강의(20), 휘문고등보통학교·중동학교 교원(20), 조선일보사에 입사 고적조사 담당(38), 불교에 귀의 오대산에 입산 방한암선사 사사(42), 만주제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신징에 있었던 친일 우리말 신문인 만선학해사에서 발행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이조치욕인 당쟁화’‘중고시대’‘고려왕씨의 말로’‘임오군란’‘이조말엽의 왕실비사’‘역대 국도 일람표와 왕조변천도’‘상고시대’‘반도서도의 변천’‘조선 성씨의 기원과 발달’‘역사상으로 본 경성’ 등 기고(43), 국사와 불교의 선 결합 시도(45)

광복 후:문교부 편수관, 단국대·동국대 등 교수 역임, 한국사에 대한 많은 논문을 남김, 동국대 대학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받음

상:대통령 문화훈장
저술:(사서)대동청사, 조선신사, 중등조선역사, (전기)화담 서경덕전, 이목은전, 안의사(중근)전, 손의암(병희)전, (논문)갑오개혁운동과 전봉준

황종률(黃鍾律, 光田矗顯):
일본 규수(九州) 제국대학 법문학부졸(35년), 만주 대동학원졸, 만주제국 경제부 금융사 금융과 사무관, 잡지 ‘조광’에 ‘만주국 경제정책의 기본동향’을 발표(41), 연희전문학교 교수(45)

광복 후:연세대 교수, 주일 공관장, 외자구매 처장겸 외자관리 청장, 동국대 법정대 교수, 충북 지사, 5·16쿠데타 최고회의 재경위 자문위원, 재무 장관, 경과심 상임위원·무임소장관, 체신 장관, 재무 장관, 한양대 명예경제학박사, 금통운영위원회 위원, 제8대 국회의원, 공화당 정책위 부의장, 한국경제연구소 이사장, 한일협회 회장

저서:한국경제에 미국원조 사용의 정직한 자세를 주장하였으며 ‘일본 경제의 충격’이라는 저술을 남김

황택림(黃澤林):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 제5기생

 

 
출처 : 블로그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 글쓴이 : 크레믈린 [원문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