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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40

양 귀 자/유황불 양 귀 자/유황불 잠에서 깨었을 때는 이미 밝은 기운이 곳곳에서 솟아버린 늦은 시각이었다. 주위는 거짓말처럼 조용했고 부엌 쪽에서만 가끔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거의 울상을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말짱 이불도 개켜져 장롱 속에 넣어진 듯 방안은 깨끗했다. .. 2009. 3. 31.
권여선/사랑을 믿다 권여선/사랑을 믿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지난 2월 늦은 저녁이었다. 혼자 이 술집에 들른 것은 내 입장에서도 다소 의외였다. 나는 소주나 막걸리를 즐기지 않았고 이 집은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은 팔게 생기지 않았다. 그런.. 2009. 3. 18.
박완서/엄마의 말뚝 엄마의 말뚝 박완서 농바위 고개만 넘으면 송도(松都)라고 했다. 그러니까 농바위 고개는 박적골에서 송도까지 사이에 있는 네 개의 고개 중 마지막 고개였다. 마지막 고개답게 가팔랐다. 20리를 걸어온 여덟 살 먹은 계집애의 눈에 고개는 마치 직립(直立)해 있는 것처럼 몰인정해 보였다. 그러나 무성.. 2009. 3. 14.
공지영-한국 소설의 미래인가? 공지영은 한국 소설의 미래인가 그의 눈부신 성공과 함께 2000년대 문학의 위기를 생각하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공지영씨 지난 2월22일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기초예술연대가 주최한 ‘한국 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예정된 주제와 다른.. 2009. 3. 11.
공선옥/정처 없는 이 발길 정처 없는 이 발길 공 선 옥 포클레인 소리는 연 사흘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 육중한 기계가 우지끈 한번 힘을 쓸 때마다 앞집과 옆집과 그 옆집들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내렸다. "커피 남은 것 있는가?" 갑생은 마루 끝에 나앉아 포클레인의 활갯짓을 구경했다. 그랬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동물이 빈.. 2009. 3. 10.
박완서/너무도 쓸쓸한 당신 2 박완서/너무도 쓸쓸한 당신 2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오빠한테 아버지 얘기를 끝내자 오빠는 갑자기 앉은 자리가 불편한지 몸을 비비 틀면서 하품을 해댔다. 빨리 결론부터 말하라는 소리 같아서 아버지의 근황은 생략하기로 했다. "아버질 우리집 근처로 모셔올까 해서. 마침 옆라인에 마땅 .. 2009. 2. 27.
박완서/너무도 쓸쓸한 당신 1 너무도 쓸쓸한 당신 1 지은이: 박완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 마른 꽃 처음에 나는 그의 손밖에 보지 못했다. 반지 낀 손이었다. 백금 반지에 박힌 깊은 청남색 돌이 '아콰마 린'이라는 걸 단박 알아보았다. 비싼 건 아니지만 흔한 돌도 아니었다 그렇다 고 네가 보석 보는 눈이 밝은 건 전혀 아니다. 그.. 2009. 2. 20.
바다와 나비/김인숙 바다와 나비/김인숙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채금의 전화는 오후 1시쯤에 걸려왔다. 동네의 꽃가게에서 작은 화분을 하나 사 가지고 막 들어왔을 때였다. 정오 무렵의 따가운 햇살 때문에 잰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와 놓고도 막상 들어와서는 화분을 내려놓을 자리도 찾지 못하.. 2009. 2. 12.
신경숙/빈집 단편소설/신경숙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눈물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 2009. 2. 2.
배수아 소설 [평론]배수아 소설/김주연 배수아의 소설은 , 말하자면 그림이다. 그것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다음 몇 장면들의 작품의 부분 인용만으로도 이미 모자랄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이른 바 90년대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과 절묘하게 부합된다. <전등이 없는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면 반쯤 열려 있.. 2009.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