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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박완서/너무도 쓸쓸한 당신 1

by 8866 2009. 2. 20.

너무도 쓸쓸한 당신 1
    지은이: 박완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
   
 
    마른 꽃
  처음에 나는 그의 손밖에 보지 못했다.  반지 낀 손이었다. 백금 반지에 박힌 깊은 청남색
돌이 '아콰마 린'이라는 걸 단박 알아보았다. 비싼 건 아니지만 흔한 돌도 아니었다 그렇다
고 네가 보석 보는 눈이 밝은 건  전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한때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 지하상가에서 보석상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말재주에
반해 거기 자주 놀러 다닌 일은 있지만 그때 얻어들은 이야기도 보석의 질 이나 진짜  가짜
를 감식하는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쓰잘데없는 것 들이었다. 
 

미인이 자기도 모르게 인물값을 하듯이 보석도 그 아름다움에 홀린 인간의 운명을 간섭하게

돼 있다는 뜻이었을까? 주로 보석에 따라다니는 슬프거나 신비스러운 전설, 아니면 명품을

에워싼  인간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해 친구는 많이도  알고 있었고, 어찌나 화려한 요설로 

그걸 풀어내는지 듣고 있으면 꼼짝없이 넋이 빠졌다. 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서나 보석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에 씌어 그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아콰마린'에 관해 얻어들은 이야기는 그러나 그런 흥미진진한 전설하곤 좀 달랐다. 깊은
바다 빛깔이 나는 게 양질의 '아콰마린' 이지만, 그런 건 아주 드물다면서 드문 까닭을 이렇
게 말했다. 극진히 사랑하던 애인을  바다에서 잃은 청년이 있었다나 그가  남은 생애 동안
돈을 버는 대로 오로지 뛰어난 아콰마린만 사모은 게 늙어 죽을 때는 드디어 커다란 마대자
루 하나 가득하더라는 것이었다. 깊은  바다에 애인을 빼앗긴 청년이 따라  죽는 대신 바다
빛깔 결정체에다 자신의 혼을 수없이 던진 이야기를 친구는 왠지 심드렁하고 간략하게 말했
다. 그런 무기교야말로 극상의 기교였을까. 나 역시 무심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다시 본 그 돌의 청남빛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차갑게 가슴살을 저미면서 내 안
으로 들어오는 듯하여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 헐레벌떡 당도한 터미널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역시 막차까지 매
진이었다. 막차까지는 아직 두 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고  서울행은 십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데도 매진이라니. 토요일 오후였다. 역에서 놓친 것도 기차가아니라 표 살 시간 이었다.
  친정조카 결혼식에 왔다 가는 길이었다. 명색이 집안의 어른인데 결혼식에 청첩만 해놓고
돌아갈 표 하나 마련해놓지 않은  조카네의 야박한 소갈머리가 괘씸하고  얄미웠다.

 

서울서 왕복표를 끊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지만 실은 당일로 돌아오게 될 줄을 미처 몰랐었다.

직장 관계로 그 도시에 자리잡고 산 지가 오년째  되는 장조카는 네가 전화를 넣을 때마다 한번
다녀가시라는 인사를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 동생 결혼식을 보러 내려온 고모를 으레
하루이틀 묵어가게 할 줄 알았다.  친정은 서을 토박이였지만 큰오라버니  내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 뜬 후 넷이나 되는 조카들은  제각기 직장 따라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서울에 직장을 얻은 막내조카마저 대구 색시와 연이 닿아 예식까지 그 고
장에서 치르게 된 게 처가가 그 고장 유지인 때문만이라면 조금은 심사가 꼬였으련만 장조
카네가 거기 살기에 한결 참아줄 만 했다. 특별히 고르는  것도 아닌데 혼인이 안되던 막내
를 몇 번씩 선을 뵈고 드디어 성사를 시킨 게 큰형수였으니까 신부가 그 고장 사람인 건 당
연했다.


  예식장은 온통 그쪽 사투리로 시끌벅적했다. 어른 대접을 할  줄 모르는 조카며느리 때문
에 가뜩이나 울적한 마음이 더욱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폐백  받을 때 체면을 차리려고 한
복까지 뻗쳐 입고 갔는데 폐백은 생략해도 좋다고 사돈집에다  일렀노라고 했다. 섭섭해 할
어른도 안 계신걸요. 폐백을 생략하도록  한 자신의 처사를 조카며느리는  이렇게 간략하게
변명했다. 어른이 없다니, 시고모는 어른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을 면전에서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조카며느리에 질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편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세상에, 폐백도 안 드릴 거면 면사포는 뭣하러 쓴답니까, 그냥 살고 말지. 정말 이런 일은
내 생전에 처음이네요. 그래도 법도 있는 집안에서 이럴 수가, 암 이런 법은 없구말구요. 누
가 보면 콩가루 집안인 줄 알겠어요. 하지 말란다구 안한 그쪽 집안이야말로 알만하잖아요?
이게 어디 집안 흉이나 보고 말 문젭니까.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인걸요.


  이렇게 조카며느리의 눈꼴사나운 선심을 주거니 받거니 입술 끝으로 짓씹고 같이  흥분할
만한 나잇살이나 먹은 얼굴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낯설었다. 시고모란 뭔가.
법도로 따져도 출가외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른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고 줄창
겉돌게 만드는 것은 조카며느리의 계산된 출가외인 대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안간 자신이 없어지니까 시부모가 안  계신데도 폐백을 하는 게 옳은  건지, 안해도 그만인
건지도 알 수가 없어졌다. 내가 자신있게 아는 건 뭘까? 내년이 환갑이란 나이가 늙은이 대
접을 제데로 못 받으니까 스산하고 흉흉하기까지 했다.


  얼음으로 봉황까지 조각한 피로연 석상에선 발밑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신랑  신
부가 케이크를 자르고 샴페인이 터지고 박수와 환호성이 진동했다.  축제 분위기가 한껏 고
조된 피로연장에서도 들리느니 온통 그쪽 사투리였다.  조카네한테 무시당했다는 느낌은 그
쪽 사투리가 패거리를 져서 나를  따돌리고 있는 것 같은 참담한  고독감으로 이어졌다.

 

딸 시집보낼 때 입었던 분홍색 한복은 치마폭이 도대체 몇폭이나 되는지 감당할 수 없이 퍼지
지 않으면 끌리는 것도 주책스럽다 못해 을씨년스러워 보일  터였다. 중요한 손님도 아니면
서 남들이 한 번 볼 거 두 번 볼 요란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게 얼마나 못할 노릇인지, 벌을
서듯이 시시각각 의식하느라 음식은 맛도 모르고 건성으로 먹고 있었다.

 

"참, 고모님은 몇시 표로 끊으셨어요?" 내 옆에서 나는 무시한 채 제 자식 걷어먹이기만 바쁘던 

둘째 조카며느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에게

보인 최초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표? 무슨 표?" "올라가실 표 말예요. 어머, 예매도 안하고 내려 오셨나봐. 오늘 토요일인데." 

나는 대답  대신 아직도 손님 사이를 누비며  인사치레하기에 바쁜 장조카며느리를 눈으로 찾았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잽싸게  큰 동서를 찾아낸 둘째는 큰일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올라갈 걱정도

안하고 바보처럼  느릿느릿 답답한 동작으로 비프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내 걱정을 했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거야. 지금부터라도 서두르면‥ " 장조카며느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제서야 그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대접성으로라도 자고 가랄 줄 알았던 기대가

무너진 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눈물이 다 핑 돌 것 같아 대강 썰어놓은 고기조각을 꾸역꾸역 처넣었다. "천천히 잡
수셔요.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 "그렇지도 않아. 여기서  역까지 가는 시간이 있잖
아." "저희가 가는 길에 모셔다드릴게요. 형님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저희가 조금 일
찍 떠나죠 뭐." "그래줄래? 잘 생각했어. 남아 있어도  할 일도 없어. 고모님 모셔다 드리는
게 크게 도와주는 거야. 그럼 부탁할게."  나를 옆에 놓고 장조카며느리와 울산 사는 둘째네
가 주고받은 말이었다. 울산서는 아마 제 차로 온 모양이었다. 좀 낡은 엑셀이었다.

 

신랑 신부만 빼고 조카들이 안식구하고 쌍쌍이 차 타는 데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조카며느리는

남매를 데리고 뒤에 앉고 나는 운전석 옆에 앉아 조카 얼굴을 곰곰이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보셔요?" "네가 느이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은것 같아서‥" "어려선 외탁했단 소리 들은 것
같은데요." "아냐, 야아" 나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강하게 부인을 했다.

"형석이 본  지 오래돼요. 이번에 고모님 뫼시고 내려올 줄 알았는데‥" 

"마침 해외 출장중이잖니? 걔 처도 직장이 있구."

"자긴 언제 해외 출장 갈 거야?" 뒷자리에서 방자하도륵 영롱한 목소리가 끼여들었다.

 

"왜 독수공방하고 싶어?"

"나도 이런 행사에 슬쩍슬쩍 빠져보고  싶어서."

"야아, 친형제하고 사촌하고 같냐? 말을 해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카의  입가에는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미소가 맴돌았다.

"다를 건 또 뭐야? 예단도 못 받았는데. 형님이  예단 생략
하라고 했다나봐. 나 시집올 때는 기를 쓰고 챙기드니만. 자기 나 좀 봐봐, 어디 미운 털 박
혔나." "됐네 됐어, 여보게. 내 눈에만 미운 털 안 박혔으면 그만이지 무슨 강환이야."
  역까지 즈희들끼리 이렇게 찧고 까부느라 더는 나한테 끼어들  새를 주지 않았다.

 

대구역에서 주차장이 만원이라고 획획 호루라기를 불며 진입을 막는 것을 기화로 그들은 나를

짐짝처럼 내려놓기만 하고 가버렸다.  부창부수해서 얼씨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표를 살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우선 그  눈꼴 사나운 수작에서
놓여난 것만 해도 시원해서 살 것 같았다. 형국이 형석이  내외는 내 앞에서 저러지는 않는
다고, 내 자식들 두둔하고 싶은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새마을호는 매진이고 남아 있는 무궁
화호도 입석표뿐이었다. 나는 만약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으면 능히  대여섯 명은 흙고물 하
나 안 묻히고 앉힐 수 있을 것  같은 여섯 폭 비단치마를 거머쥐고 고속버스터미널 쪽으로
씩씩하게 달음질쳤다. 다행히 고속터미널은 기차역에서 그닥 멀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표까
지 매진된 걸 보자 더는 씩씩할 수가 없었다.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매캐한 공기, 온통 그쪽 사투리끼리로만 어우러진 이해할 수  없는
아우성, 그런 것들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나의 분홍 한복이었다. 그 터무니없이  현란한
옷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안으로 내 집에 가야만 했다. 내가 얼마나 낙담
하고 있는지 내 얼굴에 씌어  있었나보다. 누가 혼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면 매표구 앞에 헛되게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승차장에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혼잣몸이
면 예매를 해놓고 미처 시간을 못 댄  승객의 자리를 출발 직전에 얻어 타기가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이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런 방법이 있었구
나. 나는 이 낯선 고장에서 그런 귀한 정보를 준 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승차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약은 사람이 나 혼자일 리가 없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빈자리를 얻어타려는
사람이 따로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눈치 보거나 서로 다투면서 운 좋게 얻어타는 게 아니
라 순서껏 타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십분 간격이 더디기는 해도
버스가 떠날 때마다 대기 줄에서도 한두 사람씩 얻어타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데도 오늘 안
으로 이 바닥을 뜰 수 있으리라는 가망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었다. 표도 못 끊고 기다리
는 사람보다는 예매를 해놓고 버스 시간에 못 대온 승객에게 우선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가냘프고 기약없는 기다림에 진득하니 붙어 있을 만한  참을성이 나에겐 없었다. 그놈
의 비단 치마저고리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예전 비단은 몸에 따습게 감겼는데 요새 비단은
어떻게 된 게 계절도 없이 얇기만 한 게 미풍에도  부풀어오르려고 만 들었다. 더군다나 승
차장은 한데였다. 가을해가 설핏해지면서 기온이 떨어지는 걸 살갗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내 뒤에 줄 선 아가씨에게 화장실이  급한 몸짓을 하면서 자리 좀 봐달리고 부탁을
했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봐야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길 것 같았다. 회사측도 양심이 있다면
토요길 오훈데 상행 버스를 몇대  늘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하고  비슷한 사람들 끼리
목소리를 합쳐 회사측에다 그렇게 하도록  촉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별안간 힘이 솟아 비단 치맛자락을 깃발처럼 펄럭이며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짓말 같은

행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 출입구 쪽에서 꿈에도 그리던 승차권 두 장을 높이 쳐들고

뛰어드는 노인을 보자 즉시 노인이  차표를 무르러 온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노인이 매표구로
가기 전에 잽싸게 가로막으면서 어디  가는 푠가 알아보았다. 서을 가는  표고 삼십분 후면
탈 수 있는 표였다. "할아버지 그 표 저한테 파셔요. 얼마면 돼죠?"  "산 데 가서 물러도 제
값은 준다던데..." 지갑 먼저 열면서 말하는 내 표정이  얼마나 영악해 보였던지 좀 더 얹어
드려도 된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는데 노인은 제 값도 못 받을까봐 경계하는 투로 표를 움켜
쥐었다. 제 값을 드리기로 하니까 이번에는 두  장을 다 사야만 팔겠다고 했다.

 

한 장은  팔고, 나머지 한 장은 매표구에서 물러야 하는 게 귀찮은 눈치였다. 다 사는 건 어러울  게

없었다. 불필요한 한 장은 내가 물러도 되니까. 그러나 미처 그런 의사표시를 할 새도 없이 저
하고 한 장씩 나누시죠, 하면서 나타난 손이 있었다. 아콰마린 반지를 낀 바로 그 손이었다.
그의 얼굴까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지만 궁금할 것도 없었다. 한 장의  고
속버스표를 확실하게 손에 넣은 감격이 행운을 보장받은 복권을 거머쥔 것만치나  뿌듯하고
가슴 울렁거렸다.


  나는 그 기분을 좀더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았다. 남은 삼십분
은 그러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동안이었다. 대합실에서도 앉을 자리를 얻는다는 것
은 어림도 없었나. 그러나 구석진 벽에 기대어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그만이었다. 대
합실 벽에 무심히 기댄 포즈를 취하기엔 영  안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닥
신경이 써지지 않았다. 커피맛이 유별나게 혀에 감겼다. 나는 커피가 아니라 슬그머니 내 안
에 미끄러져 들어와 있는 '아콰마린'의 추억을 음미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분 전쯤에 버스에 올라탔다. 창가에 앉았다. 그는 출발  직전에 올라탔다. 나는 그를 쳐
다보지 않았다. 그가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벗어서 시렁에 얹으려는  찰나 살짝 뒤집힌 옷자
락에서 런던포그 상표가 드러났다. 세련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혼자 기차나 고속  버스를
탔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옆에서 쉴새없이 우유나 빵, 귤  따위를 먹으면서 부득부득
먹으라고 권하는 건데 적어도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내 의식 속
에서 '아콰마린' 반지와 런던포그는 따로따로 놀고 있었다. 차창 밖에선 어둠이 안개 빛깔에
서 엷은 먹물 빛깔로 바뀌고  있었다. 버스는 대구의 안개를 뒤로  하고 마침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가 신문을 펼치다가 내 어깨를 살짝 스쳤다. 미안합니다.

 

정중하고도 싹싹한 말씨였다. 나는 그를 바로 보지 않고 괜찮다는 표시로 고개만 까딱했다.

바로 보지는 않았지만 신문을 펴든 손의 반지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뼈대가  실하고도

든든한 남자다운 손에 잘 어울리는 단순하고 중후한 세팅이 마음에 들었다. 남의  옷차림이나

장신구에 대한 관심과 야릇한 설렘은 스스로도 좀  뜻밖이어서 그쯤 해두고 싶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달착지근한 옅은 잠이 오락가락했다. 하루에 먼 거리를 왕복하느라 상당히 지쳐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이 내 의식의 한가닥을 계속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짐짓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창 밖을 내다보려고  했지만
김이 서린 유리창은 간유리처럼 불투명했다. 커튼자락으로 그걸 닦아내려 하자 그가 옆에서
휴지를 한 뭉텅이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 또 고개만 까딱하고는 휴지를 받아 유리
를 닦아냈다. 허허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연도에서는 서울까지의 거리가 오백미터 단위로 나
타났다 사라지곤 했지만 그보다는 몇시간이 남았나가 더 알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였다.  거
리를 시간으로 환산하는 일은 무의미할  터였다. 곧 금강휴게솔 겁니다.  그가 말을 걸었다.
아, 네. 나는 짤막하게 알아들었다는 표시만 했다.


  금강휴게소에선 이십분간 정차한다고 했다. 그가 내린 후 나는  약간 더 지체하다가 내렸
다. 화장실은 더럽지는 않았지만 질척했다. 용무를 보는 동안도 밖에서는 물 뿌리는  소리가
났다. 청소한답시고 타일바닥을 한강수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한복 치맛자락 건사하기가  너
무 버거워 짜증이 났다. 밖으로  나와 내가 내린 버스를 찾으려는데  저만치 가로등 밑에서
차를 마시던 그가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마음에 스며들 듯한 웃음이어서 얼핏 시선을 비켰
다. 그렇게 서 있는 그는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인상적이었다. 

 

청색 남방셔츠 위에다 포도주색 브이넥 스웨터를 걸치고 녹두색 모직 머플러를 가슴  언저리에서
아무렇게나 묶은 옷차림은 신세대 가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야한데도 그의 은빛 머
리하고 잘 어울렸다. 나는 얼른 속곳 가랑이가 무릎까지 드러나게 거미쥐고 있던 치마를 내
리고 뾰로통한 얼굴로 버스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맨땅에서도 물  건너는 시늉을 하고 있
었다는게 창피하고 화도 났다.


  버스 안에서도 밖의 그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멋쟁이일 뿐  아니라 체중관리도 잘한 것
같았다. 배도 안 나오고 다리도 길고 걸음걸이는 여유있고도 늠름했다. 나는 선반 위에 얌전
히 개켜진 채로 있는 그의 트렌치코트를 쳐다보았다. 같은 상표는 아니지만 나도 꽤 괜찮은
바바리코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놈의 폐백만  아니었으면 나도 그걸 입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지금보다 적어도 십년은 젊어 보였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와 함께 바바리 자락에 찬바람을 묻히고 그럴듯한 바에 들어가 양주를 한
잔씩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이상해지는  것은 암만해도 아콰마린과 상관이
있을 터였다. 아니면 꼭 그랬으면 싶은 바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호텔 지하상가에
있는 친구네 보석상에 별볼일 없이  자주 드나들 때는 물론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였다.
그러나 아주 젊지는 않았었다.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으랴, 남편 됫바라지하랴, 좋은 줄도 모
르고 허위단심 넘어온 젊은날을 돌이켜보며 어느만큼은 대견해하고 어느만큼은  허무해하던
때였으니 마흔은 훨씬 넘어서였을 것이다.  허무해지기 시작하면 꽤 괜찮게 자란  아이들도,
실력을 인정받는 간부사원이 된 남편도 시들해졌고,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손끝 발끝이 저리
도록 기운이 빠졌다. 느닷없이 돈푼깨나 있는 친구가 보석상을 차리고, 겨우 사는 내가 아무
것도 안 사면서 보석상을 뻔질나게 드나든 것도 그런 허전한 심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
는 그 때 늙는 일밖에 안 남은 나이를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그 호텔 지하상가에는 보석상이 있는 거리에서 식당가 쪽으로 꺾이는 모퉁이에 카사
노바라는 바가 있었다. 우리는 가끔 거기서 와인이나 칵테일을  한잔씩 마시는 일을 즐겼는
데 술맛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집 분위기가 어딘지  근사해 보여서였다. 처음엔 여자들끼리
술집에 가기를 수줍어하는 마음도 있고, 남편한테 떳떳지 못할 것도 같아 남편을 불러내 합
석을 하기도 했다. 남편끼리도 동창이었다. 오늘 저녁에 나 쓸쓸한데 술 한잔 사줄래요? 하
는 응석은 친구 남편에게도 내 남편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차라리 야단을 맞았더라면 다소
곳이 집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다들 선약이 있으니 우리끼리 한잔 하라고 관대하게  굴었다.


남자들의 중년은 우리보다 훨씬 덜 쓸쓸해 보여서 우리의 쓸쓸함이 곱빼기로 불어 나는 것
같았다. 남편까지 우리를 챙기지 않게 됐다는 게 가뜩이나  자신없는 나이를 더욱 보잘것없
이 만들었다. 그런 기분으로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바에서, 부자 친구 덕으로 양주맛과  분위
기를 즐긴다는 것은 빌린 보석으로 꾸미고 호사스런 파티에 가는 것처럼 서글프지만 거역할
수 없는 위안이었다.


  그때 우리가 위스키나 와인 맛보다 더 좋아한 것은 그 집 분위기 였고, 그 집 분위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 집 단골인 늙은 한 쌍이었다. 점잖고 우아하고 여유있어 보이는 노
신사와 노부인은 늘 바텐더를 마주보는 스탠드에 앉았다. 등받이 없이 다리만 긴 의자가 그
들에겐 고가의 액세서리처럼 잘 어울린다. 연인들을 위한 어둑시근하고 은밀한 자리도 많은
데 그들이 단골로 앉는 스탠드는 밝고 도드라져서 도리어 은밀하게 보였다. 그들이 먼저 차
지하면 늘 거기 앉던 사람도 그 근처를 피했다.

 

그들이 풍기는 은밀함에는 보장해주고 싶은 평화스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노부부라고 여기지 않고 늙은 연인들이라고 여기고 싶어했다. 그건 순전히 우리의 바람일 뿐

그들 사이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끝내 모르고 말았다. 우리는 어두운 구석에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기를 즐겼다. 미남 바텐더가 그들에게 치즈나 피 클 같은 간단한 안주를 서브하거나

크리스털잔 속의 호박빛 위스키에다 얼음을 넣어주는 걸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홀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이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늙어서도 그 정도로 멋있
다는 건 우리에겐 선망이고 위안이었다.

 

그 노인들은 아주 천천히 거의 핥듯이 술을 마셨지만 자주 서로의 술잔을 부딪쳤다. 그들이 술잔을

가볍게 부딪치는  걸 보고 있으면 저 나이나 돼야 비로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안하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나는 생활은 어느정도 안정됐다고는 하나 부부간의, 친척 간의, 모자간의 관계가  삐
그덕거리고 있다는 것을 마치 일찍 찾아  온 류머티즘처럼 생급스럽고 불행하게 느낄  때였
다. 지내놓고 보니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거였지만 그때는 꽤 심각했더랬다. 친구도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깊은 한숨으로 공감을 나타냈다. 그 노인들을 우리가 극
도로 미화해 바라보는 것도 우리의  이런 허망감, 미구에 닥칠 노추의  공포를 달래기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친구네 보석상이 망함으로써 그 시절은 졸지에 막을 내렸다. 막은 원래 서서히 아쉽게 내
리게 돼 있지만,부자가 망하는 것은 믿지 않을 만큼 순식간이었다. 친구의 남편이 부도를 내
고 해외로 도피하고, 혼자 남은 친구는 빛잔치로 보석상을  빼앗기고 알거지 시늉을 내다가
어느날 나한테까지 온다 간다 말없이 남편 따라 이민을 떠나버렸다. 나는 허둥지둥 내 생활
로 돌아와서, 내가 정신을 딴데다 팔고 있는 동안도 내  가정이 건재하고 있다는 걸 감지덕
지 고마워하며 예전과 다름없는 살림꾼이 되었다.


  그 호텔에 드나들지 않게 된 지가 몇년쯤 됐을까? 아득한 옛날 같기도 하고 바로 엊그저
께 같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아직도 거기 남아 있을까. 카사노바도 늙은 연인들도 세월과 함
께 사라졌다 해도 환상은 남아 있는 것, 나는 그와  함께 어느 고급스럽고도 이국적인 술집
에서 아름다운 크리스털잔을 부딪치기를 꿈꾸고 있었다. 엣날의 추억 때문에 마치 오랫동안
그러기를 꿈꿔왔으나 다만 파트너가 없어서 못해본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종
이컵을 건네주었다. 율무차였다. 비로소  그를 가까이서 쳐다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수려한 골상에 군살이 붙지 않아 강직해 보였고, 눈빛은 따뜻했다. 가슴이 소리내어  울렁거
렸다. 이 나이에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누가 믿을까.


  금강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버스가 조금씩 더 밀리기 시작했다. 기사는 승객의 양해를 구
하는 절차 같은 건 생략하고 제멋대로 고속도로를 벗어났기 때문에 서울이 몇 킬로 남았다
는 표지판도 사라졌다 국도인지, 기사만 아는 어떤 지름길인지  버스는 줄창 어둠속을 달리
다가도 작은 읍이나 면소재지인 듯 상점의 불빛이 있는 곳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기가 어디라는 단서를 얻으려고 창밖을 살펴보려 들었고 그는 나에게 유리창을 닦을
휴지를 건네주었다. 시골의 상점 거리도 서울미장원, 명동양복점, 독일빵집, 의정부섞어찌개,
영재독서실 따위 간판을 달고 있으니 현재의 위치를 미루어 짐작하기는 불가능했다.

 

벌판이나 외진 산길만 가다가 어쩌다 나타난 그런 상점  거리도 반갑기보다는 비현실적이었다.

앞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마냥 헤매고 있는 것처럼 느낀 지 오랜만에 벌써 서울인가  싶게
번화한 도시로 접어들었다. 차들의 번호판으로 대전이라는 걸 알아보았고, 열시 가까운 시간
이었다 "대전이네요. 그래도 이 버스가 서울로 가긴 가고 있나봐요." 이번엔 내가 먼저 수작
을 걸었다.  "그럼 딴데로 가고 있는 줄 아셨나요?" "고속도로를 벗어나니까 괜히 불안했어
요. 밤새도록 가도 아무 데도 당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지 뭐예요." "아무데도 당도하지
못하는 버스라... 재미있어요. 제  상상력 보다 시적이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
요?" "저는 이 버스에 아주 중요한 사명을  띤 인물이나 거액을 가진 이가 타고  있어서 죄
없는 사람까지 어디론지 납치를 당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답니다."

 

"만약 저 기사가 우리가 하는 얘길 들으면 별 고약한 승객도 다  있다 하겠죠. 자기 딴엔 조금이라도
일찍 가보려고 낯선 길을 헤매는데." "깨어 있다는  게 고약한 거 아니겠어요. 보셔요, 다들
얼마나 곤히들 자고 있나. 저 사람들처럼 기사가 어련히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랴 믿고 잠들
었으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다들 곤히 잠들어
있고 깨어 있는 승객은 우리 두사람밖에 없었다. 나는 왠지 그게 짜릿할 만큼 즐거웠다.

 

"댁이 서울이십니까? 대구십니까?" 그가 물었다.  "친정조카가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려서 다녀
가는 길이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곱게 차려입으셨군요." "네, 폐백도 받고 이것저것 어른된
도리를 하려면 암만해도 한복이 편할 것 같아서요." 폐백도  못 받았단 소리는 일부러 안했
다. 그래도 버스여행하기에는 주책스러워 보일 게 분명한 한복에 대해 변명을 할 수가 있어
서 속이 다 시원했다.


  대전을 지나고부터 버스는 본격적으로 밀려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승객
들은 그동안 계속 잘도 잤고, 우리 두 사람은 계속  깨어서, 계속 젊은 애들처럼 굴었다. 육
이오 때 몇살이었고, 얼마나 고생했고, 어디로 피난갔었나 따위 진부한 얘기는 하나도  안하
고, 흘러간 영화, 좋아하는 배우나 음악, 맛  좋고 분위기 좋은 음식점, 세상 돌아가는  얘기
따위를 두서없이 주고받으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수다스럽고,  명랑하고, 박식하고, 재기가
넘치는 사람인가를 처음 알았고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에  의견이 일치했던
건 아니다. 우리는 유신 시대나 군사정권 시대를 살아내기가 얼마나 치욕스러웠는가에 대해
서는 정열적으로 동의했지만, 그가 식구처럼 아낀다는 진돗개 얘기를 하자 나는 마치 개 소
리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처럼  요란스럽게 질색을 했다. 그  모든 짓거리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여북해야 자정이 넘었는데도 벌써 서울인가 싶었을까.


  시내버스가 드문드문 다니고 있었고, 지하철은 이미 끊긴 시간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린
승객은 거의 택시승차장에 줄을 섰다.  밤공기가 냉랭했다. 그가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걸
쳐주었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그 안에서 몸을 작게 웅숭그렸다. 나이 같은 건  잊은
지 오랬다.


  댁이 어디시죠? 그가 물었다. 고덕 쪽이라고 대답했다. 이럴 수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
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동네였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가 있을까? 가슴이 소녀처럼 발랑발랑 뛰었다. 아직도 동네 외곽에  많이 남아 있는 아름다
운 숲과 꽤 괜찮은 산책로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택시를 탔다. 같
은 동네라지만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내가 살고 있는 주텍가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
다. 그는 나를 먼저 내려주면서 명함을 한장 건네주었다.


  고교생이 있는 이층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반가웠다. 그러나  나는 그 학생의 얼굴도 잘
모른다. 싹싹해 보여서 세금이나 공과금 등 은행에 갈 일을 스스럼없이 부탁해온 이층집 여
자가 우리 전기 값을 자기네와 비교하면서 고3이 있어서...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몇번인가
들은 적이 있을 뿐이다.


  우리집은 처음부터 세를 놓아 먹도록  지은 삼층집이었다. 집주인인 나는 삼층에  살았고,
다른 층이 두 가구씩 살도록 설계된 것과는 달리 삼층만은 한 가구만 쓰게 돼 있어서  서른
평이 넘는 넓이였다. 혼자 살기엔 휘한 집이었지만, 온종일 비어 있던 집에 한 밤중에  문을
따고 들어오는 일이 조금도 을씨년스럽지 않고 감미롭게 느껴졌다.  비록 혼자 살고 있지만
거실엔 열네 식구나 되는 대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큰아들이 미국 지사로 나가기 전에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대문짝 반절 크기였다. 우리 부부와 각각 네식구씩인 두 아들과 딸네
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열네 식구 중 남편이 먼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손자가 하나 더 생겨 내개 계산하고 있는 식구는  여전히 열넷이었다.

 

새로 생긴 손자는 미국서 낳아서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큰아들은  전화값 안 아까워하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전화를 하고 어떤 때는 어린것이 옹알이하는 소리를 들려주려고 꽤 오래 통화를
끌기도 한다. 멀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딸과 분당에 살고 있는  아들도 매일 한번도
안 거르고 꼬박꼬박 문안전화를 한다. 내 집은 그렇게 전화선을로 내 핏줄들과 긴밀히 그리
고 규칙적으로 연결돼 있어 내가  살아내는 데 힘이 돼주고 있다. 

 

현관불은 현관문을 열면 켜지게 돼있다. 다시 저절로 꺼지기 전에 얼른 마룻불을 켜고 버릇처럼 가족

사진한테 눈인사를 건넨다. 벗어놓았던 옷처럼 익숙하고도 눅눅한 내 집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그의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직함 없이 이름 석자하고 집과 사무실 전화번호만 들어 있는 간결
한 명함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 뭘 안다고 나는 그답다고 여겨져 더욱 호감이 간다.  뭐하는
사무실인지는 그닥 궁금하지 않다.


  며칠 사이에 가을이 깊어지면서 삼층에서 바라보이는 숲의 단풍도 바야흐로 절정이다. 설
악산 쪽은 이미 한물갔다고 한다.  그가 잘생긴 진돗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은 하루 중
어느 때쯤일까. 아파트에서 몰래 기르기엔  너무 덩치가 커서 단독에  사는 둘째아들네하고
번갈아 데리고 있다고 하면서, 좋은 법이고 나쁜 법이고 그  나이까지 법을 어기는 짓은 못
해봤는데 그 녀석 때문에 위법행위하느라 이웃 아주머니한테 기를  못펴고 산다고 했다. 그
는 살 만하고 선량한 사람일 것이다. 그만하면 알아야 할 것은 다 알고 있는 셈이다.


그가 준 명함은 전화기 옆에  얌전히 놓여 있다. 그에게 우리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적이
없건만 전화벨이 울릴 때 그를 생각하며 받을 적이 종종 있다. 전화는 의당 번호를 알고 있
는 쪽에서 걸어야 하건만 나는 그가 우리집을 알고 있다는  건, 왠지 그를 또 만났으면하는
바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우리집을 불쑥  찾아온다는 것은 신사다움과 너무도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천생 내쪽에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사돈 상을 당했다. 혼자 남아 고향을 지키고 살던 둘째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식구들이 아이들까지 다 내려가면서 나한테 손자들이 기르던 조막만한 개를 맡기고 떠났다.
푸들이라던가, 어찌나 조막만한지 꼭 손안에 드는 봉제완구 같았다. 꼼지락거리고 이쓴 것처
럼 느껴지곤 했다. 동물 같지도 않은 느낌 때문에 싫어하고 말고도 없이 떠맡게 되었고,  맡
기는 쪽에서도 무얼 먹지 어디서 싸는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한마디도 일러주지 않고 덮
어놓고 데밀기만 하고 떠났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황망하여 그리 되었을 것이다.

 

행여나 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놓았더니 그 안에서 용무를 보는 게 신기하고 깜찍했다. 그러나 누기만
하고 통 먹지를 않았다. 우유도 죽도 카스텔라도 냄새도 안 맡고 도망부터 쳤다. 그대로  내
버려두었다가는 굶겨죽였단 소리 들을 것 같았다. 혼자자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다가 안
돼서, 이층 고3 엄마한테 의논을 했더니 아마 여지껏 길들여진 사료가 따로 있을 거라고 했다.

 

내일 시내 나갈 일이  있으니 그런 것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집에 들러서 의논해보고
한두 가지 사와보겠느라고 한 날 저녁이었다. 나는 허설쑤로  한데 모은 음식 찌꺼기에다가
국 국물을 부은 것을 고 녀석 입에다 갖다대보았다. 또 고개를 외로 꼴 줄 알았는데 앙칼지
게 달려들더니 붉은 혀를 맹렬하게 날를대며 국물부터 핥기 시작했다. 그래, 만물의  영장도
배고픈 설움엔 무릎을 끓게 돼 있는데,  네까짓 게 찬밥 더운밥 가려봤댔자야 요것아,  알았
지?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려는데 별안간 째지는 소리로 캥캥대며 죽을둥 살 둥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차근차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당장 숨  넘어가는 꼴을 볼 것만 같아

더럭 겁부터 났다. 아들 내외 볼 낯도 없지만, 그  강아지한테 영락없이 엄마처럼 굴던 손녀의 모습이

아른거리니까 더 미칠 거 같았다. 그때 도움을 청하고 싶은 사람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그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전화번호를 돌렸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울음이 복받쳐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알아듣고 차까지 가지고 즉각 달려와주었기 때문에 가까운 수의사한테

까지는 가는 동안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달려와준 그를 보자 나는 다시 울음이 복받쳤다. 왜 그렇게  눈물이 잘 나는지 나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내 어께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했다. 수의사의 처치를 받는 동안 강아지는 더욱 애처로운 소리를  냈고 나는 숫제 그의 품
에 안겨서 귀를 막고 흐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짓거리였지만 나는 그
감미로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의사는 강아지 목구멍에서 집어낸 생선가시를 보여주
면서 개 아픈 데 같이 우는 아이는 많이 봤어도 같이 우는 할머니는 처음 봤다고 했다.


  강아지는 무사했고 며칠 안돼 제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물론 하나도 안 섭섭했다. 나는 강
아지를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 강아지가 집에 있는 동안 강아지 안부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 그와 나의 전화질은 강아지를 보낸 후에는 차 한잔 하자는 만남으로 발전했
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가기도 했고, 첫 눈이 오는 날은 마침내  카사노바하고
비슷하게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바에서 괜히 잔을 부딪치며 위스키를 마시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샀고, 다음엔 그가 답례로 토속적인 목로술집에서 막걸리를 샀다.

 

서양식 술집  못지않게 근사한 집이었다. 내가 한식을 사면 그는 양식을 샀고, 내가 싼 걸 산 다음

그는  비싼 걸 샀지만 서로 부담을 안 느끼기 위한 어떤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깨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의 잘생긴 진돗개하고도  낯을 익혔고, 그의
차에다 진돗개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 서울 근교에 그렇게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처음안 것처럼 느꼈다. 강아지를 핑계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만큼 간사스러워진  후였다.


곳곳이 새로워 함부로 탄성을 지르지를 않나, 열여섯살 먹은 계집애처럼 깡총거리지를 않나,
요즈음 신세대 탤런트의 연기를 톡톡 튄다고들 하는데 내 안에서도 뭔가가 핑퐁알처럼 경박
하고 예민한 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뿐만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는 혐의가 아
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신 속에서 느끼는 경박한  즐거움은 유희의 기쁨 깐은 것이
었으니까, 어차피 현실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뭐든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건 꿈속과 다
를 바 없었다.


  여북해야 이런 일까지 있었겠는가. 하루는  목욕을 하는데 전화벨 소리가 났다.  전화기는
마루에 하나 안방에 하나 두 대였지만 아직 무선전화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럴 때 벌
거벗은 채 당당히 걸어나가 전화를 받아도 된다는  것도 혼자 살아서 좋은 일 중의 하나였
다. 욕실은 안방에 붙어 있고 안방 전화는 경대 옆 문갑 위에 놓여 있다. 몸에서 물이 떨어
져 발밑에 타월을 깔고 뻣뻣이 서서 전화를 받다 말고 나는 하마터면 아니 저 할망구가  누
누야!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문갑 옆 경대는  시집올 때 해가지고 온 구식 경대여서 거울이 크지 않았다. 거기에 하반신만이

적나라하ㅏ게 비쳤다. 나는 세 번 임신했고  삼남매를 두었지만 실은 네 아이를 낳아 셋을  기른 거였다. 세번째 임신이 쌍둥이였다. 그중  아우를 낳아 돌 안에 잃었다. 쌍둥이까지 밴 적이 있는 배꼽 아래는

참담했다.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면서 비틀어 따 말린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 있었다. 어제오늘 사이에 그렇게 된 게 아니련만 그 추악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실 안의 김 서린 거울에다 상반신만 비춰보면 내 몸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또한 욕조에 잠겨나서 나와서나 내 몸 중에서 보고 싶은 곳만 보고 즐기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 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
게도 보이나 봐라, 하고 다짐했다.

 

  크리스마스에 나는 머플러를 선물로 준비했는데  그는 나에게 스카프를 선물했다.  둘 다
야한 것이었다. 실용보다는 주고받을 때  어떡하면 상대방을 놀래키고 즐겁게  해주나를 더
염두에 두고 골랐다는 걸로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닮은꼴이었다. 그러나  닮지 않은 점이
더 많을질도 모르겠다. 그는 여자에게 선물을 해본 지 오랜만이라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삼년 만이라고 했고, 삼년 전에 상처한 것을 자나가는 말처럼 비쳤다. 서로 그만큼 친해지는
동안 우리가 과부 홀아비끼리라는 걸 내비칠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정식으로 그 시기까지
말하긴 처음이었다. 나는 관심없다는 투로 화제를 바꾸었다. 머플러와 스카프를 교환하는 것
처럼그런 신상염세까지 교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니 환갑해였다. 낳은 해의 육갑이 한바퀴를 돌아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육갑을 한다’는 게 결코 칭찬이 아닐텐데 너도나도 내앞에서  육갑을 하려 들었다. 설날
아침 큰아들도 전화로 세배를 대신한다며 그 얘기부터 했다. 나러더 회갑잔치 대신 미국 구
경을 오라는 거였다. 나만 좋다면 잔치는 칠순으로 미루고  그렇게 하기로 저희들 삼남매끼
리는 벌써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글쎄다. 너희들 신경쓸 거 없어, 야아.  나 잔치 안해줘도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을 거니까, 대신 뭐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덜 말어. 어느새 회갑은, 심
란허게...”. 나는  시들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사양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그러했다.


“그러니까 심란해하시지 말고 대신 여행을 하시자는 거 아녜요.  휴가 넉넉히 잡아놓을 테
니까 그까짓 거 유럽 구경까지 하시자구요.  저희도 여기 있을 날이 일년밖에 안  남았어요.
이런 좋은 기회 놓치면 평생 후회하셔요.”
  아들은 숫제 협박조였다. 협박할 만했다. 그애는 미국 지사로 나가던 해부터 구경  오라고
졸랐으니까. 그러나 나는 회갑잔치만큼이나 안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자식이 외국 나가
있다고 늙은이들이 처가에서 한떼, 친가에서  한떼, 세상 만난 듯이  비행기를 타는 거였다.
나는 가타부타 언질을 안 주고  전화를 끊었다. 국제전화일 때는 으레  내가 먼저 조바심을
하며 끊게 돼 있었다.


  회갑이란 본인에게만 고약한 게 아니라 자식들에게 더 고약하게  돼 있나보다. 순순히 여
행을 가고 싶어하지 않자 그럼 잔치를 하고싶은가 알고 싶어했고 그도저도 아니라는 걸 알
자 속마음을 알고싶어 안달을 했다. 나도 모르는 속마음을 저희들이 무슨 수로 알겠다는 건
지,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남하는 대로 열심히 효도를 해보려는
자식들이 대견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가. 나를 떠보는 안테나 노릇은 딸의  차지였다.
맏이여서 에미하고 나이 차이도 자식 중에서 가장  덜 나고 또 동성이기 때문에 편한 것도
있었다. 타고나기도 속 깊어 내가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대했고  제 동생들도 누나를 어려워
하면서도 뭐든지 의논해 버릇해서 그런지 친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가 모르고 있는 걸 못
참아 했다.


  그런 버릇이 이번 일에도 쓸데없는 오지랖을 넓게 한 듯했다. 어럼풋이 알고 있던 에미의
남자친구에 대해 조금씩 미심쩍어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종자가 아닌 이상 친인척
빼고도 학연지연 등의 그물망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  사회니까, 딸이 알아보려고 나선 이
상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은 물론  나에게 가려져 있던 부분까지 드러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작년에 정년퇴임한 지방대학 교수라는 것, 한국사를 가르치던 퇴직교수끼리  공동으
로 조그만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상처한 지 삼년 됐다는 것 등은  나도 대강 알고
있었지만 부부 금실이 유별났다던가, 아들네 말고도 집 한채와  시골에 땅도 가지고 있다는
것, 모시고 있는 맏며느리가 부잣집 딸이고 미인이고 머리도 좋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맏며느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것은 딸하고 동갑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은 학교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해도 넓고도 좁은 서울 바닥에서만 국민하교부터 대학까지 나왔으면 어차피 어
떤 연줄을 통해서든 걸려들게 돼 있었다. 그쯤 알아보고 난 딸의 정색을 하고 도대체 그 늙
은이하고 어쩔 셈이냐고 물었다. 이건 마치 바람난 딸을 잡도리하려는 에미의 태도였다.“그
늙은이라니.”“그럼 우리 엄마를 꼬셨는데  고운 말이 나와?”딸의 눈에  눈물까지 그렁한
걸 보자 당장 그의 역성부터 들려고  한 내 태도가 슬그머니 뉘우쳐졌다.

 

실상   그하고 나 사이는 자식들한테 발각이 됐다고 해서 달라질 어떤 건더기가  있는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꼬시긴 누가 누굴 꼬셔? 누구 들을라. 숭하다.” “형국이 형석이는 아직 몰라요?”

“알면 또 어떠냐.” “엄만, 알아서 좋을 건 또 뭐요.  더 늙으면 구박받고 무시당할 빌미나 될
텐데.” “네가 입 다물고 있으면 걔들이 어떻게 아나?”“알았어요. 전 입 봉하고 있을 테
니까 엄마나 조심하세요. 자식들 체면이라는 것도 있지 않수.”


  딸애는 또 같잖게끔 바람난 딸에게 아버지한테 이르지 않을테니 정신차리라고 쉬쉬  당조
짐하는 에미 시늉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딸의 간섭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
사이가 더 조심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고 종전과 달라지려는 노력도 하지않았기 때문이
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마 그의 집안에서  딸한테로 직접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며느리는 딸하고 단짝이던 고등학교 친구하고 대학동창이 되었다. 게다가 그쪽  며
느리와 내 딸은 같은 단지에 살고 있었다. 한번 연줄을  트자 마치 겹사돈처럼 알려고만 들
면 모를게 없을 정도로 서로 비밀의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양
쪽을 다 안다는 딸의 친구에  의해 정보가 다소 굴절되거나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속속 드러난 그쪽의 조건은 잔뜩 적의를 곤두세우고 있는 딸의 구미에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실 웃으며 엄마 실력 다시 봐줘야겠다는 무엄한 농담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날 아주 정색을 하고 물었다. “엄마, 조박사님 사랑해?” 그때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델 뻔했다. 폭소가 치받쳐 사레가 들리면서  들고 있던 잔까지 엎질러버
렸기 때문이다. ‘그 늙은’가 ‘조박사님’으로  변한 것도 우스웠고 그가  그렇게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가 우연히 만난 중년의 제자하고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였다. 옛날 제자들은 선
생님, 하면서 아는 척을 해서 좋은데 요새 제자들은 교수님 아니면 박사님이라고 불러서 도
무지 정이 안 든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좀 괴팍한 데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그 늙은이가 박사님이 됐는데 그럼 안 우습냐?” “엄마가 좋아하는 걸 보니까, 사랑하는
거 맞죠?”


  그러면서 입을 조금 비죽댔는데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나 딸이 쓸쓸해하
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조만간 나의 태도를 분면히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상태
를 더는 즐기지않을 각오를 한다는 것은 딸이 지금 쓸쓸해하는 것 몇배 더 쓸쓸한 일이  되
겠지만 마냥 피할 수는 잉이었다.


  그 늙은가 조박사님으로 변하고 난 지 얼마 후였다. 딸이 마침내 그의 며느리하고 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노라고 했다. 중간에선 친구가 자리를 마련했는데  만나고 보니 슈퍼 같은
데서 종종 마주친 일이 있는 얼굴이더라는 것이었다. 중간에서 개입하던 제삼자가 없어지고
나서 딸이 더욱 그 집에 대해 호의적으로 돼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그쪽 입장이 돼가는 딸을 보고있으면 하염없이 서글퍼지기도 했다.“엄마, 혹시

형국이 형석이 눈치가 보여 마음을 못 저하시는 거면 염려 말아요. 내가 엄마 위신 조금도 안

떨어지게 걔들을 이해시킬게.” 저희끼리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기에  이렇게 겁없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걸까. 보나마나 그쪽 며느리가 구는 것 같아 그가 안쓰러웠다. "요는 네 에밀  시집을 보
내겠다는 게냐, 시방." "사랑하시잖아요? 살기가 어렵거나 모시겠다는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
라 사랑해서 하는 재혼, 얼마나  근사해 누가 뭐래도 난 엄마를  변호하고 자랑스러워할 거
야."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랑 타령을 하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녹으로는 제까짓
게 사랑에 대해 뭘 안다구,사랑이 별거라던? 인생 그 자체일 뿐인 것을, 이렇게 가볍게 만들
려고 할수록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다.


  그의 며느리는 어느 틈에 그하고 나하고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어
머, 그 파카 못 보던 거네요, 너무  야하나. 그러면 그는 며느리가 사주었노라고, 요새  걔가
나를 젊게 꾸며주려고 부쩍 애를 쓰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노라고 수줍은 듯이 머리를 긁
적거리기도 했다 아직 본 적이 없는 그의 며느리가 중요 인물로 떠오를수록 짓눌리는 듯한 느낌은

더해갔다. 그후  며느리가 나를 집에 초대하고 싶어하는데 언제쯤이 좋을지 나한테 정하라고 했다는

소리를 그가 했을 때는 며느리 소리 좀 작작 하라고 화를 내고 싶은 걸 참느라고 혼났다.

 

그는 대답을 회피하는 나에게 당장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는  않았지만, 싱그러운 로션 냄새를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비해 보였다. 딸을 통해서도 그 집 며느리는 같은 전갈을 해왔다. 딸은

내 의중은  떠보지도 않고 나한테 무슨 옷을 입혀야 그 멋쟁이 며느리한테 꿀띠지 않을까, 그 걱정

부터 했다.


"그 며느리 요새 세상에 드문 효분가보다. " "그럼, 엄마.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그래도 홀시
아버지 모시기가 보통 힘들겠수.  힘들 때마다 자원봉사하는 셈  친대요."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순간적인 분노와 인민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딸에게
분명하게 막했다. "얘야, 평숙아, 잘 들어라. 이 에미는 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다 "


  딸아이도 그 말에는 머쓱해서 더는 아무 말도 안했다.  비록 선산은 아니었지만 공원묘지
의 남편 묘는 나하고 합장하도록 곁에 가묘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묘비명에도 내 이름이 남
편과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미 묘와묘비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태어난 연월일 밑에
들어갈 죽은 날짜만이 아직 새겨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성묘하기를  좋아했다 그하고
사귀는 동안도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나의 일상적인 행동 중 거기 가고 싶다는 것처럼 완전에 가까운 자유의사는 없었다. 거기서  느끼는

깊은 평화에다 대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큰 기쁨이자 슬픔도 그 위를 스치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죽은 평화가 아니었다. 거기 가면 풀도 예쁘고 풀 사이에 서식하는 개미, 메뚜기, 굼벵이
도 예뻤다. 그의 육신이 저것들을 키우고 있구나, 나 또한 어느날부터인가 그와 함께 저것들
을 키우게 되겠지, 생각하면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죽음이 겁나지 않았고,  미물까지도
유정했다. 진이 빠지게 풀들과 곤충들을 키우고 난 찌꺼기는  화장하여 훨훨 산하를 주유하
도록 해주기를 자식들에게 부탁할 작정이다. 그 보장된 평화와  자유로부터 일탈할 어떤 유
혹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은 그쯤 하고 물러난 딸이 다시 또  무슨 얘기를 그쪽에서 들었는지 이런 소리를 한
다. "엄마, 엄마가 재혼해도 돌아가시면 아버지하고  합장해드릴게 염려 마세요. 생각해보니
까 그쪽도 마누라 곁으로 갈 거 아뉴 " 내가 원하는 평화는 그렇게 구차스러운 것하고는 다
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만 해두거
라 망측하다. 그게 딸년이 에미한테 할 소리냐?" "뭐가 망측해요. 

 

재클린이 케네디 옆에 묻히는 것도 못 봤수. 친척들이나 동생들이 뭐래도 내가 우기면 그 정도는

문제없을 거야.  아버질 외롭게 놔둘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을걸," "글쎄 듣기 싫대두. 너 정말 왜

이러니?" "엄마야말로 왜 그러세요. 엄마가 정열적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왕년의

정열 가지면 그까짓 거 뛰어넘는 건 문제없잖우." 듣자 듣자 하니 정말 딸년한테 별소릴 다

듣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해 못할 소리는 아니었다. 딸의 노골적인 말투를 통해 나도 그간의  내
마음의 행적을 돌이켜보는 걸 피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딸애는  맏이답게 내 젊은날에
대해 들은 게 많았다 그애는 또 식구만 많고 변변한 집 한칸 없을 때 태어나서  여고시절까
지도 납입금 한번 독촉 안 받고 내본 적이 없을 만큼 쪼들리는 집안 형편을 보아왔다.

 

내가 고생을 못 면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한편 자업자득이라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기
를 잊지 않는 외할머니의 푸념을 가장 많이 들은 것도  그애였다. 지금은 양가의 형편이 엇
비슷해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친정 쪽은 젊잖은 중류 집안인데  비해, 시집은 남편 빼고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가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거칠고 상스
러웠다. 한창 민감한 딸이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리가 없고, 외할머니의 푸념은 딸의
의문에 적절한 회답도 되었으리라.


  남편하고 열렬히 연애할 적에 어머니도 사윗감 하나는 마음에  들어 했다. 여북해야 개천
에서 용 났다고까지 추켜 세웠을까. 그러나 내가 그 용한테로 시집가는 것만은 단호히 반대
했다. 개천에서 난 용한테 시집가는 건 용한테 가는 게 아니라 개천에 빠지는 거라고  했다.
어머니가 아무리 울고불고 말려도 나한테는 개천이 보이지 않고  용만 보였다.

 

어머니의 예언은 적중했고 나의 개천과의 악전고투는 막네시누이를  시집보낼 때까지 계속됐다.

남들에게는 개천으로 보이는 것이 나한테는  사는 보람이요, 씩씩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그 시절
내 눈을 가리고 오로지 한 남자만 보이게 한 그 맹목의 힘을 딸은 지금 정열이라 부르고 있
는 것 같았다. 정열이라 해도 좋고 정욕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주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
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
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 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 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 아무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
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
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
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살도 넘어 살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
무도 빤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
면 안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
지는 조금도 없었다. 불가능을 꿈꿀 나이는 더군다나 아니었다. 딸이 안해도 될 군소리를
덧붙였다. "엄마가 이 청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박사님 불쌍해서 어떡허지.  며느리가 글쎄
더는 수발들 수 없대 이왕이면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시켜드리고 싶지만 안되면 아
무나하고 시킬 모양이야. 밥걱정 노후걱정 안하려고 시집오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대 그렇
지만 너무 젊은 여자는 며느리가 싫은가봐. 당장 지내기 거북한 것말고도 나중에 책임질 기
간이 길까봐 그렇겠지 뭐. 기껏 어디서 배고픈 할머니나 한분 모셔을 모양이야. 엄만 사랑하
던 사람이 그렇게 불쌍해져도 좋아?" 친구한테 농담하듯이 버릇없는 말투였다. 나는 발끈했
다. "배고픈 게 왜 나빠? 무시하지 마, 너 . 자원봉사보다 훨씬 거룩한 거다, 그거 "


  겉멋보다는 더욱 거룩한 거였다.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며느리를 딸의 얼굴과 겹
쳐 보면서 속 시원히 내뱉었다. 더는 며느리나 딸이 우리  사이에 끼여들게 하고 싶지 않았
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곧 미국 같 수속중인데 될 수 있으면 오래 머물  거란 얘기를
하고 나서 그의 반지 낀 손 위에다 내 손을 정성스럽게 포개며서 한 번 과부 된 것도  억울
한데 두 번씩 과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말한다는 게
심하게 들리지나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문학사상 1995년 1월호)

 

 

 

    환각의 나비
    1
  그 집에는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 그 집을 지은 자재나 규모  또는 그 집에 사는 사람
이 집 간수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보통집의 표정 같은 것하고는 달랐다. 사람
으로 치면 성깔이나 교양, 옷차림 따위에 의해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인상말고 저 깊은 중심
에 숨어 있는 불변의 것, 임의로 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풍겨져나오는 예감 같은 거였다. 그
느낌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이끌리기도 하고 그 집 앞을 돌아가기도 했다.

 

그 집은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집이었지만 약수터 가는 길목이기도  했고, 전철역으로 통하는 지름길
이기도 했다. 행정구역상으로 그 집이 속한  동네는 서울의 위성도시중의 하나인 Y시 안에
있었지만 Y시 사람들은 그 동네를 원주민 동네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초가집이나 조선 기와
집이 남아 있는건 아니었다. 육십년대에 유행한 슬래브집들이 수리를 안해 퇴락한데다가 좁
고 더러운 골목길 때문에 실제의 나이보다 훨씬 더 낡고 흉흉해 보일 뿐이었다.


  아마 Y시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단지 아이들은 원주민 동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슬
래브집을 마치 남태평양의 섬이나 아프리카 오지에 남아 있다는 미개한 종족이  선사시대부
터 오늘날까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변화시킬 줄 모르고 유지해온 동굴이 오두막과 유사
한, 우리 본래의 주거양식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생긴 지 기껏해야 삼
십년이 조금 더 된 동네였다.

 

땅 임자와 집장수의 합작으로 허허벌판에 새로운 동네가 들어섰을 때만 해도 그 일대는 밭농사와

과수원을 주로 하는 농촌이었고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 동네를 양옥집 동네라고 불렀었다.

그때만 해도 지붕도 없이  두부모를 잘라놓은 것처럼 네모 반듯한 집에다가 벽에는 번들번들한

타일까지 입힌 집이 신기하고 부러운 나머지 그렇게 한껏 높여 부른 거였다. 양옥집 동네가 원주민

동네가 되는  데는 삼십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집은 양옥집 동네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다 그 일대의 농촌이 감쪽같이 사라지기 차
마 아쉬워 떨군 일점 혈육처럼 여러번 개조하고 증축한 흔적에도 불구하고 골수에 밴 시골
티는 변할 줄 몰랐다. 대청마루가  널찍한 디귿자 집이었고, 기등과 서까래는  육송이었지만
지붕은 회색빛 슬레이트였다. 때에 전 육송 뼈대와 슬레이트 지붕과의 부조화는, 문살이  많
이 빠진 창호지 덧문과 마루에 새로 해  단 유리 분합문과의 부조화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
다. 원주민 동네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그 집이 골함석 지붕이었을 적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전엔 이엉이나 양기와 지붕이었을 터이나 삼십년은 커녕 오년 이상을 눌러산 집도 희
귀한 동네에서 목격자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원주민 동네라는 별명은 집
뿐 아니라 주민에게도 해당되지가 않는 게 전출입이 잦기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보다 훤씬
더했다. Y시에서 낸 통계에 의하면 평균 거주기간이 아파트보다 일년 육개월이나 짧다고 했다.

 

중개업자의 농간이겠지만 곧 재개발에  들어가리라고 외부에 소문난 것과는  달리 막상
집을 사가지고 들어와보면 그런 기미가 전혀 없는 이상한 동네였다. 재개발이라는게 나서서
추진하는 사람 없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도 앞장설 만한 주변머리도 방법
도 모르는 사람은 다시 집을 내놓았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미련을 못버린 사람도 세를 놓고
서라도 빠져나가고야 말았다. 눈독을 들인 유일한 장점이 가짜였다는  걸 알고 나면 정떨어
질 일밖에 없었다.


  원주민 동네가 Y시의 섬이라면 그 집은 원주민 동네의 섬이었다. 아파트 아이들이나 원주
민 동네 아이들이나 같은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아파트 아이들 보기에 원주민 동네 아이들
은 어딘지 달라 보였다. 다른 줄 모르다가도 원주민 동네  아이라는 걸 알고 나면 어제까지
같이 신나게 하던 컴퓨터게임 얘기가 그럴 리가 없다는 느글거리는 배신감이 되어 그 아이
를 뜨악하게 만들었다. 만일 그 집에 아이가 있었다면 그 동네 아이들도 그렇게 뜨악해져서
따돌렸으련만 그 집에 아이가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  집이 농가였을 때는 혹시 아
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무도 증거할 수 없는 그 집의 선사시대였다.

 

 

  2
  그 시간에 주차할 자리가 마땅찮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영주는 지겹다는 소리를
연거푸 중얼거리고 나서 어린이놀이터 쪽으로 핸들을 거칠게 꺾었다. 아파트 뒤쪽은 어린이
놀이터이고 놀이터와 녹지대를 타원형으로 둘러싼 아스팔트길은 아이들이 자전거나  롤러를
타던 길이어서 원래는 주차금지 구역이었다. 거기까지 주차선을 그어봤뎄자 언 발등에 오줌
누기였다. 당장은 좀 숨통이 트이는가 싶더니 며칠이 못 가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다행히  새벽에도 빼기 쉬운 명당자리가 남아 있었다. 옆자리의 수북한  짐들을 챙기면서 영주의

입에서 지겹다는 소리가 다시 한번 새어나왔다. 짐이라야 별것도 아니었다. 벗어놓은 윗도리, 구
럭 같은 핸드백, 책 몇권은 보따리장수 적부터 익숙한 짐이고  오늘은 호박이 두 덩어리 더
있었다. 시골길에 피라미드형으로 쌓아놓고 파는 늙은 호박이 하도  보기 좋아 벼르다가 산
것이었다. 호박장수는 죽을 쑤면 꿀맛이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쑤는 법까지 가르쳐주려 들었
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호박범벅을 만드실 것이다.


  호박범벅을 만들면서 어머니가 신바람을 내셨으면 좋으련만 영주는 좀 망연해진다 어머니
는 아직도 호박범벅을 만드실 수가 있을까. 이까짓 호박 따위로 어머니를 시험하려 들지 말
아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푸성귀를 다듬어 반찬을 만들고,  생선 비늘을 긁어 절이거나 조
리고, 국이나 찌개 간을 보는 일을 반백년이 넘게 허구한 날 되풀이하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신바람이 나서 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그일에 진력이 나서 매사를 시들해하는 걸
이상한 눈으로 볼 게 뭐였을까.

 

영주는 챙기던 짐을 스르르 밀어놓고 핸들에다 이마를 얹었다. 보따리장사 육년 만에 학위 딴지

삼년만에 얻은 전임자리였다. 수도권 대학은  아니었으나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밥줄을 매단 처지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허둥댄 것은 아마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전까지

출퇴근을 한다는 것은  쉬운 노릇은 아니었으나 불가능하지는 않은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운전솜씨도

능숙의 도를 넘어 노숙했고, 중고차만 물려받다가 이년전 처음으로 만져본 새 차는 지금 그녀의 몸의

일부분처럼 길들여져 있는 것도 원거리 출퇴근을 겁내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마흔 고개 마루턱에 와 있었다. 쉰까지는 미끄럼 타듯 신속할 터였다. 그 나이에 그것도

여자가 대학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건, 그 바닥의 사정에 아주 무식한 사람만 아니라면

감지덕지할 행운으로 여겨 마땅했다. 영주도 처음 한 학기 동안은 마침내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해서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요새 그녀는 박사나 교수  값이 그동안 너무 싸진 걸 자기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차츰 열쩍어지고 있었다. 왜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을까. 진작만 알았어도 그런
고생은 안했을 걸. 싶다가도 이런게 바로 공부한답시고 날치던 여자의 한계인 것도 같아 혐
오스러워지곤 했다. 싸도 너무 싸졌다고  느끼는 게 그동안 들인 공과  시간에 비해 보수가
너무 낮다는 경제성보다는 존경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지방대학 가려고  뼛골 빠지게
박사를 했냐? 이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 너  따위가 아는 지식의 값이란 평생 서울에 붙어 먹고 살면서 적당히 즐기고, 품위 유지할 수

있는 자격과 같은 것일 테니까, 이렇게 치지도외할 수 도 있었으련만 그래지지가 않았다.

앙심까지 품어지도록 속이 아렸던 것은 바로 자격지심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가르치는 일,

지식을 풀어먹는  일은 생각보다 보람있지 않았다. 그 재미없음의  핑계를 학생들의 질이나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돌릴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지식이라는 것을 통틀어서 비하하느라 허탈해지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니꼽기 짝이 없는 정서불안증이었다.


  영주가 학위논문으로 허난설헌의 시 연구를 택한 것은 허난설헌의 시에 끌렸기  때문이고
끌리게 된 까닭은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애틋한 감동 때문이었다. 허난설헌에 감동하기 위
해 많은 지식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그 시대배경이나  집안환경에 대해서도 보통사람 수
준의 상식이 전부였다. 물론 그녀의  한문실력으로 난설헌의 한시와 직관적으로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가 매혹당한 것은 시 자체의 뛰어남보다는 한  뛰어난 여자를 못 알아보고
기어코 요철토록 한 시대적 사회적  요인들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논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출처가 분명하고 실증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녀로 하여금 대학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충동질한 지도교
수는 그녀의 상상력을 가장 경계했다. 영주가 제일 자주 들은  듣기 싫은 충고는 논문을 쓰
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거였다. 그녀는 박사학위에 걸맞은,  난설헌
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연구라는 걸 하는 동안 난설헌에 대한 매혹과 감동은 온데간데없
이 사라지고 난설헌이라면 넌더리가 났다. 난설헌에 대한 감동을 잃은 대신 얻은 것은 난설
헌을 그럴듯하게 본뜬 수많은 제웅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한 무더기의 검부러기와 학위였다.


  차 안에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아들이 와서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비로소 머리를 들
었다. 충우는 허름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있었다. “웬일이냐? 니가 산책을 다
나오구.” “산책이 아니라 할머니 찾아나온 거예요.” 영주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충우는 대
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쩌다 혼자 나가시게  했냐? 잘 보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요기
어디 계시겠죠 뭐. 들어가 계세요. 제가 모시고 들어갈 테니까요.” 그러고는 휘적휘적 걸어
갔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가지고 차에서 내린 영주는 아들의  아무렇지도 않아 뵈는 뒷모습
에 문득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불러세웠다. “언제 나가셨는데  인제 찾아나선 거냐?” “얼
마 안됐어요.” 아들이 머뭇거리는 걸 영주는 그냥 봐 넘기지 못했다. “정확하게  언제냐니
까.” “정확하게 언젠줄 알면 붙들었지 나가시게 내버려뒀겠어요.”


  영주가 깐깐하게 굴자 충우도 지지않고 도전적으로 나왔다. “나가시는 것도 못봤구나. 도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전화 걸구 있는 동안 없어지셨어요.” “누구하고?  계집애하고
전화질하느라 정신이 팔렸었던 게지. 그치?” 아들은 대꾸하지 않고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영주는 들입다 쫓아갈 것처럼 몇걸음  내딛다 말고 집 쪽으로 돌아섰다. 

 

별로 고약하게 군 적이 없는 아들이건만 상습적으로 고약하게 군 것처럼 취급한  게 금방 후회스러워

졌다. 정말 왜 이런지 모른다고,  그녀는 요즘 자꾸만 아슬아슬해지는  자신의 자제력을 돌이켜보며
위기의식 같은 걸 느꼈다. 정수리에서  한움큼이나 되는 흰머리가 억새풀처럼  힘차게 들고
일어아는 게 엘리베이터 속 거울에 비쳤다. 반사적으로 박사학위가 남루처럼 민망하게 느껴
졌다. 화장대나 콤팩트의 거울보다 엘리베이터 속의 거울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특히 퇴근길
에 볼 때 그러했다. 어깨도, 볼의 살도, 눈썹도, 아침에 드라이해서 한껏 곤두세운 머리도 기
진맥진 축처져 있을 때일수록 그놈의 흰머리칼은 올올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동생이 비아냥거리는 ‘언니의 박사티’였다. 박사 아니라도 오십을 바라보는 나
이에 머리가 세기 시작하는 건 흔한 일인데 동생은 볼 때마다 그렇게 놀렸고 영주는 그  소
리를 들을 때마다 모욕감을 느꼈다. 집은  비어 있건만 문은 그냥 열렸다. 집안은  뒤숭숭했
다.


  지난번 같은 소동없이 돌아오셔야 할텐데. 어머니의  건망증이 심상치않다고 느끼기 시작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로 이사온 게 작년인데 그 전부터였으니까. 슈
퍼에 갔다가도 동 호수를 잊어버려서 헤매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오래 살던 단
지라 누군가가 데려다주기도 했고 수위아저씨가 알아보고 인터폰을 넣어주기도 했다. 또 늘
그런 것도 아니고 다시 멀쩡해져서 당신이 그랬었다는 걸 믿지  못해 화를 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 미처 집 정리도 안됐을 적에 있었던 일은 그런 일상적인
것하고는 달랐다. 새벽에 아무도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은 건 그날 밤 자정
이 넘어서였다. 찾고보니 어머니는 그냥 나간 게 아니라 계획적인 가출이었다. 놀랍게도  조
그만 보따리와 그동안 얻다 꿍쳐놓았던지 꼬깃꼬깃한 용돈까지 챙겨  갖고 있었다. 더욱 기
가 찬 것은 고속도로 순찰대가 노인을 발견한 곳이  의왕터널이었다는 것이다. 영주네가 이
사온 아파트는 둔촌동이었다. 거기까지 걸어서 간 것인지 무엇을  타고 간 것인지를 어머니
한테 상기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그냥  횡설수설했다. 연락을 받고는 너무 기뻐서  식구들이
몽땅 정신없이 달려갔다. 특히 정이 많은 경아는 보따리를 가슴에 부둥켜안고 텅 빈 시선으
로 식구들을 바라보는 할머니 품에 뛰어들어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충우도 할머니의 어깨
를 뒤에서 안으면서 볼을 비볐고 남편은 윗도리를 벗어서 가을밤 기온에 으스스 떨고 있는
노인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순찰대한테 몇번이나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영주는 좀 비켜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는 걸 그녀 자신도 임의로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엉겨붙자 텅 빈 어머니의 얼굴에 차차 표정이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
고 내 새끼들, 쯧쯧 어디 갔다 이제야 왔누” 하면서 마주 엉겨붙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점
점 곱게 퍼졌다. 충우 경아 남매는 어려서부터 할머니한테 그렇게 엉겨붙기를 잘했다. 

 

엄마라고 줄창 맞벌이를 하느라 집에서 아이들한테 어리광을 부릴만한 기회를 줄 새가 없어서이
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그걸 좋아한다는 걸 아이들은 저절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만 데면데면하게 굴어도 될 만큼 머리가 커진 후에도 아이들은 할머니가 만든 반찬이 특별
히 맛있다든가, 즈이들이 늦게 들어올 때 안 자고 기다리다가  문 열어주고 먹고 싶은 것까
지 챙겨줄 때면 답례처럼 서비스처럼 으레  할머니한테 엉겨붙는 장난을 치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장난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서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떠
오르곤 했다. 남보기에도 여실히 느껴지는 상호간의그 완벽한 행복감 때문에 슬그머니 샘이
날 적도 있었지만 섣불리 흉내를  내보고 싶어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영주는 낳기만 했지
아이들은 순전히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노인에겐 그 어렵고도 장한 일을 한 이의 특권이랄
까, 침범할 수 없는 당당함이 있었고, 아이들하고의  자연스러움은 거의 동물적이었다.

 

여북해야 셋이서 그렇게 정답게 굴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영주는 어머니의 붉고도 부드러운 혀
가 아이들을 핥고 있는 것처럼, 세 몸뚱이 사이를 따습고  몽실몽실한 털이 감싸고 있는 것
처럼 느끼곤 했을까.


  그러나 이번에 달랐다. 가슴이 뭉클해져오는 것까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토라져
있었다. 의왕터널 때문이었다. 노인네를 반기는  태도가 식구들끼리도 이렇게 다른 걸  젊은
순찰대원은 성급하게 고부갈등으로 짐작한 듯했다. “이런 효자 아드님 효자 손자들을 두고
왜 집은 나오고 그러세요. 설사 좀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노인네가 참으셔야 해요.  세상이
달라졌단 말예요. 이렇게 자손들이 득달같이 달려온 걸 보면 할머닌 복 좋은 줄 아셔요.  알
아들으셨죠?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된 세상인지 일부러  부모 내다버리는 자식도 많답니다.


그런 자식이 우리가 연락한다고 찾아오겠어요? 못 믿으시겠지만 연락도 할 수 없게스리 즈
이 살던 데를 싹 옮기는 자식도 있으니까요.” 영주는 남편하고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떨
구었다. 나쁜 며느리가 된 것보다 더 면목이 없었다. 순찰대원은 일이 순조롭게 풀린 게  기
분 좋은 듯 계속해서 명랑하게 떠벌렸다.


  “할머니도 꼭 그런 할머닌 줄 알았다니까. 아들네 집에 가야 한다고 보채기는 꼭 고집쟁
이 어린애처럼 막무가낸데 아들네 전화번호는커녕  동네이름도 모르는 척하는 게  영락없이
버림받고 양로원 밖에 갈 데가 없는 노인네들이 하는  짓 고대로더라구요. 그러나 어찌어찌
전화번호를 하나 생각해내시길래 걸어보긴 했어도 기대는  안했어요. 아니나다를까 그 집에
그런 분 없다면서 이사온 지 얼마 안된다길래 역시나 했지요.  그래도 그 번호가 단서가 되
어 어렵사리 댁의 전화를 알라낸 건데 이런 좋은 결과를 맺었으니 참말로 보기 좋읍니다.”


  역시 그랬었구나, 어머니의 목적지는 영주가  짐작한 대로였다. 영주는 말없이 그  자리를
피해 먼저 차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게  못된 며느리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이기도 했지만 진실이 탄로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남편도 그 점을 이해하고
아들 노릇을 잘해주려니 믿기로 했다.  어머니도 그걸 바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영주는
쓸쓸하게 웃었다.


  영주하고 어머니는 고부간이 아니라 모녀간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어머니의 아들이 아
니라 사위였다. 어머니가 언제부터 딸하고 사는 걸 굴욕스럽게  여기게 되었는지 영주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녀의 남동생이 장가를 들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그때부터 친
척이나 친지들이 어머니가 아들네로 안 가는 걸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으니까. 특히 이
모들은 딱하게 여기다 못해 불쌍해하려는 낌새까지 드러낼 적이  종종 있었다. “딸네 밥은
서서 먹고 아들네 밥은 앉아서 먹는다는데...”이러면서 이모들이 쯧쯧 혀를 찰 때마다 영주
는 이모들의 우월감에 침을 뱉어주고 싶도록 속이 끓곤  했다. 아들네한테 죽자구나 붙어산
다는 것밖엔 어머니보다 나을것이 조금도 없는 이모들이었다. 소녀적부터 영주는 장차 화려
한 성공을 거두어 어머니 호강시킬  것을 꿈꿀 때가 가장 살맛이  나고 즐거웠다.

 

그렇게는 못되었지만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어차피 어머니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참담하게 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자식밥을 얻어먹기  위해
서가 아니라 당신 손으로 자식을 벌어먹이기 위해 일생 서서 일하면서 터득한 당당함은 어
머니만의 자존심일터였다. 그걸 함부로 능멸한다는 것은  아무리 어머니의 동기간이라 해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남동생 영탁이는 막내이자 유복자였고 그녀하고는 열세살이나  나이 차이가 났다. 어머니
는 영주 낳은 지 십년 넘어 아이를 못 갖다가 아우를  본 게 영숙이었고, 영숙이가 돌도 되
기 전에 또 아이가 들어서고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과부가 되었다.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는 집 한채가 다였다. 당시엔 시골 같은 변두리 동네였지만 다행히 대학이 가까워 어머니는
하숙을 쳤다. 그때부터 영주는 하숙집 딸로 불리었고, 하숙집 딸 노릇을 마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잘 해냈다. 반찬가게 심부름은 물론 숭늉 심부름을 입에 혀처럼 잘하다가 방방의 연
탄도 꺼뜨리지 않고 갈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적부터는  밤 늦도록 어머니와 무릎을 맞
대고 가계부를 쓰면서 다음날 식단을 짜고 한 달 예산을 세우고 동생들 장래를 걱정하곤 했다.

 

입시철이면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동생들을 독려해가면서  집안의 방이란 방은 안방까지
내주고 온 식구가 다락에서 새우잠을 잤다. 어머니에게 영주는 딸이라기보다는 동지였다. 함
께 일하고 함께 걱정했다. 어머니의 무거운 책임을 덜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영주는 동생
들에게 어머니하고 똑같이 엄하고 짜게 굴긴 했지만 샘을 내거나 경쟁하는 마음은 가져보지
못했다. 여북해야 동생들한테 제까짓게 뭔데 아버지처럼 군다는 불평까지 들었겠느가.
  충우는 혼자서 들어왔다. 풀이 죽어 있었다. 영주는 그럴 줄 안 것처럼 실망하진 않았지만
속에서 불덩어리 같은 게 치밀어올라와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 죄송해요.” 아들이 놀란
듯이 영주의 어깨를 잡으며 사과를 했다. “너한테 화내고 있는 게 아니야.”


  영주는 어머니가 또 의왕터널에 가 있을 것 같고 그게  그렇게 화가 났다. 의왕터널은 남
동생네 가는 길이었다. 어머니가 아들네 갈 일은 일년에  서너번도 안됐지만 그때마다 영주
가 차로 모시고 갔고, 전에 살던 과천에서도 여기 둔촌동에서도 의왕터널을 거쳐야 했다. 어
머니가 아들네에 이르는 길 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특징이 있다면 의왕터널밖에 없었다.


과천터널과 의왕터널이 생긴 건 영주네가 과천에 입주한 지 몇년 돼서였다. 하숙을 치던 넓
은 집에서 처음 이사한 아파트였지만 어머니는 잘 적응했다. 일층이어서 마당을 가꿀 수 있
는 재미 때문이었는지 이십평 남짓한 아파트도 답답해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활동무대는 마
당에서부터 청계산으로, 관악산으로,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갔다.  약수를 하루에도 몇번씩 길
어날랐고 산나물 하는데도 선수여서 도시물만 먹은 이웃 노인들이 줄줄이 어머니를  추종했
다. 어머니는 약수터 배드민턴 회원이었고 관악 에어로빅 회원에다 청계 노인회원을 겸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놀던 마당에 굴이  두 개나 생기는 걸 여간 못마땅해하지  않았다.


특히 의왕터널은 당신이 발음이 잘 안되니까 더 싫어했다. 그 무렵에 마침 의왕터널은 당신
이 발음이 잘 안되니까 더 싫어했다. 그 무렵에 마침 의왕터널 지나서 새로 생긴 단지에 영
탁이네가 입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영주는 어머니가  아들네 가고 싶을 때 질러가라고  생긴
굴이라고 일러드리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편안해지곤 했는데, 실은 어머니의
건망증이 심해져서 집도 잘 못 찾게 된 게 터널이 생길 무렵부터여서 그 소리는 수도  없이
반복되었을 터였다.

 

“그랴그랴, 나더러 영탁이네 휘딱 가라고 그 굴을 뚫어줬다구?  시상에
누가 내 마음을 그리 잘 보살펴줬을꼬.” 모녀는 그런 소리를 아마 골백번도 더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영탁이네 갈 일은  자주 생기지 않았다. 안한 게 아니라  못했을
것이다. 의왕터널 외에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입력된 게 업었을 테니까. 둔촌동에서 의왕터
널까지 걸어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걷기도 하고 타기도 했으리라. 영주는 밖으로  뛰쳐
나가려다 말고 들어와서 차 키를 찾았다.


  "어디 가시게요?" "의왕터널." "또 거길 가셨을라구요?" "그 너머가 바로 외삼촌네니까. 그
날 할머니가 거기 계셨다는 건 우연이 아니었잖니?" "알아요. 그렇지만 파천에서 가깝기 때
문일 수도 있어요." 충우가 영주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영주는 과천  소리만 나
오면 화를 내기 때문이다. 과천을 항한 노인네의 집착은 영주를 혼란스럽게 했다. 별안간 드
러내기 시작한 아들의 보호 밑에 있고 싶다는 갈망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이상하다면
그게 너무 늦게 왔다는 것뿐,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유구한 전통이었으니까.

 

그러나 십년 넘어 살았다고는 하나 고작 아파트 단지에 지나지 않는 과천에 대한 어머니의 이상한

애착을 영주는 이해할수가 없었고, 설명할 수 없기 떼문에 인정하기도 싫었다.  "할머니가  과천
을 좋아하신다면 그건 여기보다 외삼촌네하고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니까 그게 그거야." 영
주는 필요 이상 차갑게 잘라 말했다.

 

 "그렇게 외삼촌한테 신경을 쓰실 거면 모셔오긴 뭣하러 모셔오 셨어요?" "얘 좀 봐 너 말하는 누가

할머니를 꼭 남의 식구처럼 여기고 있잖아."
"어머니 고정하세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오히려 어머니  쪽이에요. 정말 왜 그러세요, 어머
니답지 않게. "괜히 모셔왔나봐. 아니  모셔온 것만 못해. 또  거기가 계신다고 해도 이번엔
외눈 하나 까딱 안할 거야.“ "아무튼  나가신 지 한 시간도 안됐어요. 그동안에  무슨 수로
거길 가셨겠어요." "설마 그때 할머니가 걸어서 거기까지 가셨겠니?" "그날 할머니 말  생각
안 나세요?"


  충우가 약간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온통 으깨지고 물집이  잡힌 발을 더운물에 담그
게 하고는 운 생각이 났다. 분하긴 또 왜 그렇게 분했던지. 어머니에게 아들네 집은  얼마나
요원했을까? 그 아득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르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집념이 그 무참하
게 으깨진 발가락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게 안쓰럽고도  징그러워 영주는 잠을 이루
지 못했다.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샌 영주는 다음날 영탁이를  불러 어머니를 모셔갈 수 있나
를 타진 했다. 타진이라기보다는 애원이었을 것이다. 영탁이는 장가들기 전부터 어머니는 자
기가 모실 거라고 큰소리를 쳤었다.

 

영주도 그럴 것 없다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내심 대견
했었다. 언젠가는 어머니를 모셔갔으면 해서가 아니라 내 어머니만은  이 자식 저 자식에게
치이는 천덕꾸러기가 안될 것 같은 게 고마워서였다. 그 정도면 어머니는 충분히 귀하신 몸
일 터인데도 왜 애원조로 굴고 있는지, 영주는 자신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바로 잡아지지
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가 기대한 것하고는 전혀 다르게  나오는 영탁이의 태도 때문이었
을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듣기만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누나도 별수없구려"였다. 야유하는 투였다.  무슨 뜻인지 모를 소리였다.

 

그러나 여간 불쾌하지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반박을 못했다. 노후를 아들에게 의탁
하지 못하는 것을 제일 불쌍하고 떳떳지  못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에 결국은  동의하고만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불쾌한 꼴을 당해도 싸다 싶었나보다.  "애엄마하고 의논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그렇게 나오는 데는 한마디 안할 수가 없었다 "네 생각을 말해. 난 그게 듣고 싶
어." "노인네를 모시는 건 여자 아뉴? 나도 명령은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
아요."


  영탁이는 몇해 연애하던 여자와 결혼해 아들딸 낳고 재미나게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군
더더기가 될 건 뻔했다. 군더더기를 받아 들이려면 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실제적 준비도 필
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고 간 후  함흥차사인 동생을 괘씸하게
여기느라 영주의 심사는 내내 불편했다. 명색이 장남이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는 심정은 내가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하는 자책과 오락가락해서 자신도 누굴 탓하고 있
는지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듣기 좋으라고 그랬는지, 정말 그럴 작정이었는지 영탁이가 어머니한테 곧 모시러 오마고 약속하
고 떠난 게 화근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공공연히 보따리를 싸놓고 안절부절을  못했다.  '우
리 아들이 데리러 온댔는데, 야아가 왜 이렇게 늦나‘  걸핏하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대합
실에 발을 묶인 사람처럼 초조하게 창밖 만 내다보기도 하고, 강하게 밀어내는 시선으로 집
안 식구를 대하 기도 했다. 참다 못해 영주가 먼저 올케하고 직접 담판을 해서 어머니를 모
셔가도록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영탁이네서 석달도 못 버티고 둔촌동으로 돌아  오고 말았다. 실은 버티
고 말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자신의 의지라는 걸  상실채갔으니까. 못 버틴 건 어
머니가 아니라 영주였다.
  어머니를 그렇게 떠맡기다시피 한 영주는 매일매일 문안전화를 안할 수가 없었고  어머니
는 그럴 적마다 야아. 나 과천 갈란다. 과천 좀 데려다주려무나, 그 말밖에 안했다. 그  말이
그렇게 애절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과천은 영주네가 둔촌동으로  오기 전에 살던 동네였기
때문에 영탁이나 그의 처는 그 말을 딸네로 가고 싶다는 소리와 같은 뜻으로 알아듣는 듯했
다. 그러나 두 내외가 다 영주한테  모셔가란 소리는 죽어도 안할 것처럼 깔끔하게  굴었다.


동생 내 외한테서 모셔가란 소리가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야속할 만큼 영주는 어머니가 거기
계신 게 불안했다. 어머니를 동생네로  보내고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것은 영주도
어머니의 과천 상성을 딸 네집으로 다시 오고 싶다는  소리로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장녀
로서 동지로서 어머니와 함께 해온 수많은 세월을 잊지 않고서는 차마 못 들은 척할 순  없
는 애소였다. 그러나 영주는 주리 참듯 참았다. 느희들이  다시 모셔가라고 빌면 모를까, 내
입에서 먼저 모셔오겠다는 소리가 나을 줄 알구, 하는 영주의 앙심과, 한번 모셔 온 이상 누
나가 애걸복걸이나 하면 모를까 다시 어머니를 내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영탁이의 고
집은 상반된 것 같으면서도 실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모시고자 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들이 있는데도 딸네에 의탁하거나  거기서 죽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치욕이라는,
관념이었으니까.


  아들과 딸의 이런 보이지 않는 버티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의 여기 있으면 저기 있
고 싶고 저기 있으면 여기 있고 싶은 증세는 하루하루 더해갔다. 어머니에게는 이미 아들이
냐 딸이냐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도  아닌 저기도 아닌 데가 과천이었다.  어머니는
겉으로는 지능이 퇴화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발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치사하게 아들네서
딸네로, 딸네서 아들네로 보따리처럼 옮겨다니느니 여기도 아닌 저기도 아닌 과천이란 완충
지대 를 만들어놓고 거기 보내달라고 보채고 있으니 말이다.  아들네서도 마침내 가출이 시
작됐다. 그러나 영탁이 처가 어떻게 사전 조치를 철저히  해놓았는지 어머니의 탈출은 번번
이 그 단지 안을 벗어 나지 못했다. 그녀는 그 단지의 부녀회장이어서 발이 넓을 뿐만 아니
라 지능적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도저히 외출할 수 없는 옷을 입혀놓았는데 멀리 못 가
게 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잠옷이나  고쟁잇바람의 어머니의 외출은 아이
들 눈에도 즉각 띄게 돼 있었고. 눈에 띄었다 하면  경비아저씨한테 즉시 연락이 가도록 돼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는 그 단지는 커녕 아마 자기네 동  경비 눈도 벗서나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탈출 시도가 계속되자 영탁이네 현관문엔 자물쇠가 하나 더 달리게
되었다. 보통 아파트 현관문은 밖에서 잠가도 안에서 여는 데는  지장이 없이 돼 있건만 그
집에는 나가는 사람이 밖에서만 잠그고 열 수 있는 장치가  추가된 것이다. 영주가 그걸 보
고 언짢아하자 식구들이 다들 외출할 때는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영탁이 처는 유리알처럼
정없이 빠안한 시선으로 대드는 것이었다.

 

하긴 노인네를 지킬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않는
한 그런 장치는 불가피할지도 몰랐다. 영주 보기에 영탁이 처가  하는 일은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 영주는 그녀의 완벽함이 무서웠고, 영주보다 몇배 더 무서워하며 왜소하고 황폐해
지는 어머니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여 섬뜩해지곤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아줄 수가 있
었다. 며칠 만에 자물쇠가 하나 더 추가되었는데 어머니를 방안에만 계시도록 하기 위한 방
자물쇠였다. 집 밖에 절대로 나갈  수 없다는 걸 납득하고 난  어머니는 혼잣말을 중얼대며
온종일 집안의 문이란 문을 있는 대로 열어보면서 왔다갔다하는 게 일이니 어쩌겠느냐는 것
이었다. 열어본 문을 화장실이나 광문까지 열고 또 열어보면서 이 방 저 방을 기웃 대니 어
머니 눈엔 그 집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여기도 방이 있네. 여기도 방이잖아? 무슨 집이 이렇게 방이 많담. 비워두다니 아까워라. 땅할 놈의

 여편네 같으니라구, 세나 주지 않구 " 이렇게 중얼대면서 온종일 쏘다니는 걸 참다 못한 동생의
댁이 마침내 어머니를 방안에 가둔 것이다.  "저도 오죽해야 그랬겠어요. 신경이 써져서  살
수가 있어야죠," 그 노릇이 얼마나 못할 노릇이었나는 그녀의 여위고 스산해진 모습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영주는  서로의 인격을 죽자구나 부정하는 이  무서운 싸움을 짐짓
신경이 써질 뿐이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표현하는 동생의 댁을 가증스러워하는  것만으
로도 숨이 찼다. 이제 영주는 그들의 사이가 나아지길  기대하기보다는 빨리 그쪽에서 더는
못 모시겠다고 두 손을 번쩍 들기를 이제나 저제나 바라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그것조
차 여의치 않았다.


  영주가 어머니를 뵈러 간날이었다. 언제나처럼 동생의 댁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얼굴로 맞이하고 영주는 너무 자주 드나들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만면에 띠고 들어갔다. 동
생의 댁은 차까지 끓여오면서도 어머니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낮잠을 주무시
나?" "궁금하시면 베란다 쪽으로 나가셔서 창문으로 들여다보시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리
야? 이젠 방문 열어주기도 귀찮아? 해도 너무하는구먼."  "저도 어머님한테 배웠어요." 동생
의 댁이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면서  푸념을 했다. 어머니의 증세는 요새  부쩍 더 심해져서
낮에는 물론 밤에도 창문을 통해 베란다로  나와서 아들 며느리 방을 들여다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저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댁은 뉘시우 하고 물으실 때 제 기분이 어떤 줄 아
세요?" 그녀는 그 기분이라는 것을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주 에겐 그녀가 얼마나
진저리를 치고 있나 여실히 느껴졌다. 분노와 모멸감으로 심장이 옥죄는 듯했다. 이윽고  영
주는 베란다로 나가서 어머리의 방을 엿보았다. 어머니는 벽에 걸린 거울 속의 늙은이를 노
려보면서 "댁은 뉘시우?응? 저리 비켜요. 썩  물러나지 못할 까' 연방 발을  구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거울 속의 노파가 눈군지 못 알아보는 것처럼 영주는 방안에 갇힌 늙은이가 어머
니라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더 야위거나 추비해진 건 아니었다. 노인에게 어울리
는 편안한 옷을 입고 있어서 속고쟁잇바람으로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단정해 보였다. 그러
나 영주는 어머니의 눈빛이 그렇게 방어적인 걸 본 적이  없었다. 문 열어놓고 사는 집처럼
편안한 어머니였는데... 눈빛뿐만 아니었다. 그 조그만  몸이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당장
물어뜯으며 덤벼들 것처럼 긴장해서 털끝까지 곤두서 있다는 걸 자기 몸처럼 느낄 수가 있
었다. 어머니 혼자서 대항하기에 이 세상은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었을까.


  영주는 동생의 댁한테 문을 열어달랠 것 없이 베란다로 난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어
머니는 뉘시오? 묻지도 않고 덤비지도 않고 방구석에 가서 붙어섰다.  혼자 갈고 닦은 적개
심만으로는 도 저히 대항할 수 없는 거인을 만난 것처럼 어머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주
는 어머니를 안았다. 나쁘지 않은  비누냄새가 났다. 방 안도  간소하지만 정결했다. 벽에는
풍경화까지 두어 점 걸려 있었다. 화장실까지 딸린 방이면  아파트에선 안방에 해당할 터였
다. 처음부터 동생네가 어머니에게 그 방을  내준 걸 영주근 여간 고맙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 기분을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영주는 품 안에 들게 작은 어머니의 등을 토닥거리다
가 살살 쓰다듬기 시작 했다. 영주가 지금 쓰다듬고 있는  건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곤두서려는 분노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의
댁한테 좋은 말로 그 얘기를 해야지,  절 대로 얼굴을 붉히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지금 거기 없었지만 괘씸한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있었을
그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헤아리고도 남았다. 나이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태어
날 때부터 아버지 없이 태어난 불쌍한 것을 남부럽지 않게 길러내야 한다는 중책을 어머니
와 함께 나눠졌던 세월 때문에 그녀의 동생에 대한 느낌은 동기간의 우애라기보다는 모성애
에 가까웠다. 영주는 어머니가 답답해할 때까지 오래 어머니를 쓰다듬고 있었다.

 

자신의  분심을 억제하기가 그 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둔촌동으로 모셔온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전의 모습을 회복해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벌써 남을 무
조건 의심하고 경계하는 방어적인 눈빛과 몸짓은 사라진 뒤여서 식구들은 아무도  할머니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분 맞듯이 했다. 영주도 내가 혹시 잘못
본 게 아닐까, 동생의 댁을 덮어놓고 밉보려는 고약한 시누이  근성때 문에 그리 보였던 건
아닐까, 은근히 자책까치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가출인 것은 그때나
이때나 변함이 없는지라 어머니 혼자서 집을 보게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전업주부가 없는 집에서는 그게 가장 어려웠다. 고2짜리  경아는 빼주고 영주하고 충우가  강의가

없는 날은 서로 당번을 서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사이사이 파출부를  쓰기도 하고
이모들이 와저 봐주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다시 쉬엄쉬엄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하고부터는
그나마 조금씩 허술해지던 중이었다. 집안일이라야 별것도 아니었다. 콩나물을 다듬어준다거
나, 도라지를 찢어 준다거나, 버섯이나 고자리를 보고 이건 우리나라산이 아니라고 분별해주
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런 것도 안 시키면 죽으면 썩을 몸 놀면 뭐하냐고 섭섭해했다. 

 

영주는 어머니 입에서 그 말을 다시 듣게 된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하숙 칠 때 어머니가
가장 자주 하던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마치 어린날, 늦도록 기다리던 나들이 간  어머
이가 저만치 부우연 어둠속에 나타나는 걸 보고 뛰어가 치마폭에 안겼을 때처럼 마음이 놓
이고 푸근해졌다. 더 좋은 건 빨래 개키는 솜씨가 돌아온  거였다 어머니는 빨래가 약간 축
축 할 때 걷어다가 어찌나 정성을 들여 반듯하게 펴서 개키는지 내복도 꼭 다림질해놓은 것
같았다 그건 아무도 흉네낼 수 없는 어머니만의 솜씨였다.  어머니의 손은 아직도 든든하고
예뻤다. 아, 아, 빨래를 꼭 다림질해 놓은 것처럼 개키는 우리 엄마 손, 이러면서  어머니 손
을 어루만지고 있노라면 경배하며 입맞추고 싶은 따뜻한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렇다고 들락날락하는 기억력까지 회복된 건 아닌데도  마음을 너무 놓았었나보다. 정  아쉬을

때는 어머니를 혼자 두고 집을 비을 때도 종종 있었다. 이모들한테 번번이 부탁하는 게 미안하기
도 했지만 이모들은 무슨 말을해고 반드시 죽을 때는 아들네서 죽어야 제대로 된 팔자라는
걸 어머니한테 입력을 시키고 말 것 같아서였다. 이미  확고하게 입력된 관념이 지워졌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잠재된 걸 이르집든 짓은 삼가고 볼 일이었다 .

 


 
    3
  그 집 처마밑에 온통 연등이 달렸다.  그 집에 절 표지와 천개사 포교원이라는 간판이 달
리고 난 지 몇 달 만이었다. 연등으로 처마밑을 뒤란까지  두르고 나서도 남아 마당 위에다
줄을 매고 달아놓았다. 포교원 간판이 붙고 나서 처음 맞는 사월 초파일이었다. 원주민 동네
에서 바라보면 연등은 분홍빛 풍선뭉치처럼 보여서 어느 순간 그 집을 매달고 둥실 승천하
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기대는 허황하지만 기쁨에  충만한 거여서
동네 전체에 축제 분위기를 훈풍처럼  실어 찼다.

 

연등이 달리기 전부터도  동네 사람은 그 집에 절 간판이 붙은 걸 보고 괜히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 동네에  그 절의 신도는 한 사람도 없었다. 점도 치러 다니고 절에 치성도 드리러 다니면서

신앙이 거친라고 생각하는 집은 그 동네 가구 중 아마 반도 넘을 테지만 그 절의 신도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집에 연등이 그렇게 많이 달린 걸 보자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절에 신도가

꽤 많구나  싶어 기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남이 잘되는 걸 별로 좋아해본  적이 없는 마을 사람답지 않았다. 그 집이 절집이 되기 전엔 점집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동네 사람들은  점집보나 절집이 격이 높다고 생각했고, 아이들 교육상도

절집이 나을 듯했다. 그렇다고 그 집이 점집이었을 적에 마을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군 것은 아니었다.  따돌릴 것도 없이 그 길의 위치 자체가 마을로부터 배타적으로 돼 있었다. 낯선 사람이 그 동네에

들어와 처녀점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저어기 저 옛날 집일 거라고 벌판  너머 쪽을 가르쳐주곤 했다.

 

간판이나 깃발 따위 점집의 표시는 없었지만 그 집이 점집이라는  걸 모르는 마을 사람은 없었다.
또한 그 집에 선 처녀가 점을 치고 있겠구나 하는 것도 외부 사람들이 그렇게 물으니까  그
러려니 할 뿐 그 처녀점쟁이가 예쁜지 미운지, 용한지 돌팔이인지  아는 사람도 있는 것 같
지 않았다. 원주민 동네 사람 중 태반은 하는 일이 뜻대로 안돼 무꾸리들을 잘 다녔고, 그게
유일한 취미인 사람까지 있었지만 그 집에 가서 점을 쳤다는  이는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고향에서 인정을 못 받기는 비단 예수님만이 아닌 모양이다.


  파일날도 동네 아이들만이 그 집 앞으로 몰려가 안을 기웃댔다. 바람에도 가벼운 것이 먼
저 날리듯이 축제 분위기에도 아이들만 덩달아 들떴을 뿐 그 동네 어른들은 끄떡도 안했다.
파일날을 명절로 쇠는 집도 아마 각각 다니던 머나먼 절을 찾아 전철로 버스로 나들이를 떠
났을 것이다. 그 집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분합문  안엔 아담한 금빛 부처님이 비단방석
에 앉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은 신도들이 자기네 식구이름을 꼬리표로 달고 있는
연등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느라 부산했다. 그들이 차려입은 색색가지 비단한복이 보기 좋았다.


  그 절 스님은 비구니였다. 그 집이 점집이었을 적에  처녀점쟁이와 지금의 비구니는 같은
사람이었다. 부처님까지도 처녀점쟁이가 모시던 부처님과 같은 부처님이었다. 다만 절  표시
를 붙일 무렵에 금빛이 좀더 찬란해졌을 뿐. 도금을 새로 했으니까, 신도들도 대부분 그  집
이 점집이었을 적부터의 단골들이었고 새로운 신도들이 생겨봤댔자 점집 단골들한테 그  집
부처님이 영검하다는 소문을 듣고  솔깃해진 이들이었다. 단골이자  신도들은 처녀점쟁이가
스님이 된 데 대해 조금도 이상해하거나 뜨악해하지 않았다. 

 

점쟁이였을 적에도 그 처녀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고, 처녀의 투시력이나 예언능력이  부처님으로부터 온다고 믿기는 마
찬가지였으니까. 점집이었을 적에 단골들이 점을 치러 오면 으레  부처님한테 먼저 절을 하
고 나서 점을 쳤고, 점을 다 친 후 또 한번  부처님한테 절을 하고 물러나는 절차도 절집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이때나 신도들은 그녀의  무심히 던지는 것처럼 툭툭
내뱉는 단 두 마디에서 남편의 영화나 자식의 출세와 관계되는 영감을 얻으려는 열망 때문
에 그 집을 찾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가 영검한 걸 부처님이 영검한 것과 동일시했
기 때문에 그녀가 점쟁이 였을 적에 깍듯이 보살님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비구니가 된 그녀
를 자인스님이라고 부르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끼피 않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한달에 한번
법문을 듣는 날이 따로 생긴  것이다. 법문은 천개사에서 내려온  노스님이 했다.

 

파일이나, 설, 칠석 등 이름털은 날이나 망인의 사십구재나, 간혹 신도들이 부탁해서 불공을 드릴 일이
있는 날에도 천개사 스님이 내려왔다.  그러나 그 절집 신도들은 그  천개사라는 절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자연스님이 어렵게 대하고, 또 내려오신다는  표현을 쓰니까 머나먼 곳
에 있는 수려한 산속의 절을 연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도들은 그 천개사 스님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이에 걸맞은 관록은 있어서  였으나 예언능력을 나타낸 적
은 거의 없었다.

 

신도 중에는 신분을 숨기고 싶어하는 고위층의 사모님도 간혹 있었는데, 그
걸 알아보는 능력 하나는 뛰어나다는 것이 신도 사이의 중론이었다. 그런 능력이란 신도 사
이의 친목을 해칠지언정 스스로의 권위를 위해서는 결코 득 될 게 없었다. 요컨대 신도들은
그 노스님을 점집에서 절집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있어야 하는 구색 정도로 봐주고 있는 셈
이어서 하루빨리 자연스님이 염불을 잘하게  되기를 바랐다. 자연스님이 직접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도 스님은 지금 불교 배우는 대학에 가려고 공부중이라고 신도들 사이에 알려지
고 있었다.


  아직 천개사에서 노스님이 내려오기 전이었지만 큰 가마솥이 걸린 부엌에선 음식  장만이
한창이었다. 온갖 과일과 유과와 떡집에서 맞춰온 편과 절편도  부엌에 붙은 찬마루에 즐비
했다. 파일이니까 신도들에게 점심은 물론  저녁 밤참까지도 대접할 준비였다. 국을  끓이고
나물 무치는 일손도 충분했다. 총지휘를 하는 마금네의 음성은 일흔이 다 된 나이가 믿어지
지 않을 만큼 기름지고 극성맞았다. 마금이는 자연스님의 속명이자 호적상의 이름리었다.

 

마금네가 마금이를 낳고 나서 오늘처럼 행복하고 의기양양한 날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마금
네는 명령만 하고 일은 며느리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마금네가 발기만 써주면 서울의 도
매시장까지 득달같이 달려가서 장을 봐 오는 사위도 있었다. 이대로 이 영업이 번창을 하면
아마 이삼년 안에 이 집을 헐고 크게 짓든지 천개사와는 따로 어디다 절터를 장만하든지 해
야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어깨가 으쓱했다. 마금네가 그 집을 둘러보는 시선은 탐욕스럽고
도 그윽했다. 켕기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흉가를 복가로 탈바꿈시켜 지금 한창 불 일어나듯
이 일어나려는 판에 집에 손을 댄다는  것은 복을 쫓는 일이 되는 게  아닐까, 오빠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치미는 욕심이란 늘 삼가는 마음보다 우세하기 마련이다. 오늘 이  좋은
날을 기해 이 자리에 법당을 짓자는 불사를 일으키기로 신도 중 오래된 단골들과 천개사 스
님과 대강의 합의를 보았으니 반은 성사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금네가 사람의 마음에
위안과 희망을 주는 이런 사업에 둔을 뜬  지 오래됐다고는 할 수 없어도 확실하게 터득한
것은, 돈 버는 데 있어서 이 사업만큼 땅 짚고 헤엄치 기도 없거니와 시작이 반이라는 소리
가 그대로 들어맞는 사업도 없다는 사실이다.


  마금네는 찬마루에 지키고 앉아 잔소리를  하는 한편 오늘 인등 시주로  들어온 돈, 오늘
안에 불전으로 더 들어올 돈 등을 대충 머리속으로 굴리기에 바빴다. 그녀의 표정은 싱글벙
글했다. 시뜻했다 변덕스럽게 변했다. 마침네 궤도에 오른 사업이 꿈인가 생신가 대견하면서
도 오늘 같은 날이면 돈을 주체를 못해  가마니에다 발로 꾹꾹 눌러 담는다고 소문난 어느
큰 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속이 부글거리곤 했다.


  자연스님의 방심한 듯 흐릿한 표정도 못마땅했다. 모녀간에 손발이  잘 맞아야 이 사업이
번창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손팔은커녕 눈길 한번 맞추려 들지 않는 딸이 아니꼬워 죽
겠는 걸 참자니 그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지가 뉘 덕으로 이만름 됐는데, 그  천덕꾸러기가
용됐다고 감히 이 에미를 업신여겨? 그러나  딸이 그럴 만한 까닭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않되는 데서는 눈을 흘기다가도 마주친터에 얼레발을 치곤 했다. 그건 그녀도 할 노릇이 아
니었지만 딸 역시도 그런 까닥으로  해서 피하려 드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서로 눈도 안 마주치려는 건 모녀간의 묵계 같은 거여서 마금네가 이 집에 드나드는 건

법회나 불공이 들 때 딸이지 평상시에는 자연스님 혼자  지네도록 네버려두었나. 그러나 처녀 

점쟁이일 때나 자연스님일 때나 그녀가 그 집안의 유익한 돈줄인 건 변함이 없었다. 딸은 어머니하고

눈뿐 아니라 입도 잘 어울리려 들지 않았지만 돈주머니는 어머니가 수시로 마음대로 쓰도록 간여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하루 얼마를 버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식
구들과 말을 주고받아야 되기 때문에 그걸 피하려고 스스로를 그렇게 버릇 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 집안의 밥줄이고, 그녀 돈은 마금네  돈이고, 마금네 돈은 마금네 돈이었다.


  마금네야말로 그 동네의 진짜토박이였다. 그 집의 선사시대까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녀는 원주민 동네에 살고 있지 않았다. 원주민 동네를 눈에 거슬리는 풍경처럼 굽어
보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마금네는 아파트도 원주민 동네도 생겨나기 전 그 동네가 농촌
이었을 무렵 거기 어디서 태어나서 거기 어디로 시집 가서 고달프고 어렵게 살았다.

 

그때부터도 그 집은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 마금네는 그 집보다  훨씬 못한 집에 태어나서 친정보
다 더 못한 데로 시집가서 살았고 그 집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육이오 난리통에 처
음으로 그 동네를 떠났다 돌아와보니 마을은 많이 변해 있었다. 인구의 이동도 심했고 빈집
도 많았다. 그 집은 그 동안 더 몹시 퇴락한 채로 남아 있었지만 비어 있었다. 주인이 부역
을 얼마나 몹시 했는지 가족들이  몰살을 당했다고 했다. 원한을 산  사람한테 죽임을 당한
장소가 그 집이었다고 해서 알만한 사람은 흉가라고 그 집  앞으로 갈 일도 돌아다녔다.

 

가끔 거지들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 집은 점점 흉흥해졌다. 육이오 때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안 남아날 만큼 세월도 가고 주민의 변동도 많았건만 그 집이 흉가라는 건 더욱  과
장되게 전해 내려왔다. 마금네는 과수원 날품팔이꾼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오남매나 낳
아 기르면서 그 동네를 못 떠났고 그동안 한번도 제집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 집을 단 하
룻밤의 편한 잠을 위해서도 눈독들인 적이 없었다. 그 집은 흉가일 뿐 집이 아니었다.


  그 흉가에서 어느날부터인가 가냘픈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또 지나가던 거지가 들었나
보다 하는 관심조차 갖는 이가 없었다. 그때는 미처 원주민 동네도 생겨나기 전이었다. 벌판
과 과수원에 드문드문 집이 있긴 해도 농촌이 피폐해질 조짐은 완연했다. 그렇지만 그쪽 땅
까지 금싸라기땅이 되리라는 건 아무도  예측하지 못 할 때였다. 그  집의 겉모양까지 사람
사는 집 티가 나기 시작할 무렵  그 집을 주목하기 시작한 게 마금네였다. 

 

그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이가 몰살을 당한 주인의 살아남은 동생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마금네밖에 없었다. 육이오 때 청년이었던 그는 형 일가가 몰살당하는 걸 목격하고 총격을 받기
도 하고 달리 의탁할 가족도 없고 하여 절로 들어가 이십년 가까이 수도생활을 하다가 환속
을 한 거였다. 마금네는 처음부터 그를 해코지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건 생각만해도 근질근질했다. 언젠가는  요긴하게 써먹을 때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예감 때문이었다.  그 근처 땅값도 만만치 않아지기  시작할 때와 맞물려서
그 집을 지켜보는 마금네의 마음은 날로 팽팽해졌다. 젊음을 절에서 보낸 사내가 어느날 느
닷없이 절을 등진 것은 속세에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이  기다리고 있어서는 아닌 듯했다.

 

그 집에 선원 간판이 붙었다. 절에서 만든 인간관계도 왜 쏠쏠했던 듯 지식인풍의 남자들의 발
길이 빈번하달 순 없어도 꾸준히 이어졌다. 마금네와 남편이 허드렛일을 거든다고 드나들면
서 그 사람들이 한문이나 불경 공부를 하러 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달이 정기적으로 제
법 많은 사람의 모임이 있는 걸 알수 있었다. 마금네는 식구도 덜 겸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
한 마금이를 그 집에 잔심부름꾼으로 들여보냈다. 입에 풀칠도  어려을 때이기도 했지만 중
학교도 못 보낼 바엔 기술이라도 가르쳐야 마땅하련만, 계집애가  어려서부터 청승을 잘 떨
고 가끔 남의 앞일을 알아맞히는 이상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에 귀동냥으로라도 불경을  좀
배워놓으면 쓸모가 있을 듯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만 해도 원주민 공네를 양옥집 동네라고 부를 때였다. 앙옥집 동네 사람들은 무슨 선
원이란 간판이 붙은 그 퇴락한 집을 경원했고 그 집에 사는 중도 속환이도 아닌 이상한  남
자를 도사라고 불렀다. 물론 양옥집 동네 사람 중 누구도 그 집에 도를 닦으러 가거나 불경
공부를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마금이가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도사는 열네살짜리를 범하고 말았다. 마금
이는 다시는 그 일을 또  당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에 엄마에게  고했다. 마금네는 길길이
뛰며 도사를 협박했고, 도사에게 많은 것을 뜯어내기 위해 도사가 그 집과 텃밭을 정식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이윽고 그 집은  마금이의 소유가 됐고 도사는 남
은 공터를 얻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자였다. 마금이는 그 사건으로 남자 혐오증을 얻은  대
신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감지하는  능력은 더욱 예민해졌다.

 

마금네는 딸의 그런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처녀무당으로 키웠지만 마금이가 변덕이 심하고 돈
욕심이 없어서 그 사업이 마금네의 욕심만큼 번창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누이가 무당인걸
빌미로 놀고 먹으려는 여러 자식들하고 기생하기에 충분한 수입은 되었다. 처녀점집이 절집
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텃밭을 처분해서 다시 절을 하나 사가지고 산으로 들어간 도사의 협
조도 있었지만  마금이도 순순히   응했다. 공부를 할  뜻을  비친 것도  그녀가  먼저였다.

 
  그러나 그녀는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배기가 돼 있었고,  타고난 성품도 돈에 관
심이 없는 것만치나 공부에 뜻이 없었다.  직감 외에 그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핑계로든 여기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어했다. 그녀가 막연히 벗어나고 싶은 건 이  고
장이 아니라 여지껏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녀가 그 나이까지 만난사람들은
식구건 남이건 하나같이 무슨 수를 써서든지 남의 재물이나 지위를 빼앗고 싶다는 생각밖에
머리에 든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걸 일찌감치 간파한 거야말로  그녀가 점을 칠 수 있는
주요한 밑천이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본 적
은 없지만 어머니를 보면 어머니는 저런 것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게  가장
괴로웠다. 그게 아닐 것 같은  거야말로 자신의 가장 정직한 속내였고  한밤에 문득 깨어나
마주 대하는 부처님의 고요한 미소가 동의해주는 바이기도 했다.


  얼마를 벌었는지, 사월 파일을 치르고 난 절집은 그야말로 절간답게 고요하기만 했다.  마
당의 연등을 마루 천장에다 옮겨 걸어야지, 그러나 바람에 출렁이는 게 영락없이 연못을 거
꾸로 이고 있는 기분이라고, 자연스님은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뒤란으로 푸성
귀를 뜯으러 나갔다. 그렇게 음식을 많이 했건만 떡은  신도들한테 나누어주고 반찬은 식구
들이 싹 쓸어가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딸이 한번도 뭘 맛있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마금네는 뭘 먹도록 해줄 생각보다는 두면 썩혀버릴 거, 하면서 뭐든지 가져가려고만  했다.


그리고는 혼자만 뭘 잘 해먹는 줄  아는지, 행여 고기나 비린 건 먹고  싶어도 참아야지 안
그러면 신도 떨어져나간다고 윽박지르는 소리를  잊지 않았다. 음식 만드는데  취미도 없고
어려서부터 제대로 배운 것도 없어서 그저 아무렇게나 굻어죽지 않을 만큼만 해먹는 게 버
릇처럼 굳어져 있었다. 뒤란에 씨를뿌린 것도 그녀가 아니어서 어떻게 해먹는 푸성귀인지도
모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한움큼 뽑아다가 다듬으려는데 노파가  한 사람 스르르 들어왔다.
한눈에 점을 치러 온 사람은 아니었다. 계절에 맞지 않은  옷에 비해 환한 얼굴이 까닭없이
눈부셨다. 노파는 웃으면서 스님을 나무랐다.  "아욱도 다듬을 줄 몰라 쯧쯧  나이는 어디로
처먹었누." 그러면서 천연덕스럽게 마주앉아 아욱을  다듬기 시작했다. 아욱은 연한  줄기의
껍질을 벗겨가며 다듬는다는 것을 그녀는 처음 알았다.


   "다듬을 줄 모르니 씻을 줄은 더군다나 모르겠구먼 아욱은 이렇게 씻는 거야." 그러면서
수돗가로 가져가더니 푸른 물이 나오도록 북북 으깨서 씻는  것이었다. 쌀뜨물 받아놓은 게
있을라구, 하면서 쌀을 내놓으라고 했다. 쌀 역시 박박 으깨서 한두 번 씻어내고 보얀  뜨물
을 받아놓았다. 그리고 그 구식 부엌을 돌아보며 참 좋다고  연신 감탄을 하더니 밥을 안치
고 장독에서 된장을 떠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었다. 그 모든 행동이 묵은 살림하듯 막힘없이
능수능란했다. 스님은 그 이상한 할머니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도무
지 짚이는 게 없었다. 대번에 뭐가 딱 와야지 오래 생각을 굴려서 알아낸 건 맞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조금도 낭패스럽지가 않고 기쁨이 스
멀스멀 등을 기는 것처럼 즐거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할머니가 차린 상에 두 사람은 정답게 겸상을 했다. 할머니가 끓인 아욱국이 어찌나 맛있
던지 국에 말아 밥 한공기를 다 먹었는데도 할머니는 몸이 그렇게 약해서 어떡하냐고 자꾸
밥을 더 권했다.  누가 손님인지 헷갈리게  하는 할머니였다. 하긴 들어올 때부터 할머니는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굴었으니까. 저녁엔 뭐  구미 당길 걸 좀 해맥
여야 할 텐데... 다음 끼니 걱정까지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녀는 슬그머니 어리광을 부리
고 싶어졌다. 그런 느낌 또한 처음이었다.  그녀는 남한테 위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현실감 없이 황홀했다. 저녁엔 할머니를 위해저 장까지 봐왔다.
원주민 동네에 있는 미니슈퍼에 가서 두부도 사오고 콩나물도  사오고 멸치까지 사왔다. 그
리고 부엌에 들어서서 할머니하고 주거니  받거니 저녁을 차렸다. 아까운  참기름을 그렇게
들이부으면 어떡하냐고 야단도 맞았다. 할머닌 야단을 잘 쳤지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 노인네가 어떻게 저렇게 거침이 없을까 신기했다. 밤엔 둘이서 나란히 자리 펴고
누웠다. 거침없이 들어왔듯이 잠든 동안 거침없이 나가면 어쩌나  싶어 살며시 할머띠 손을
잡았다. 작작고 거칠고도 말랑말랑한 손이었다. 옛날 얘기 해줄까? 할머니가 손을  마주잡아
주면서 말했다. “옛날, 옛날에 어린 자식 데리고 혼자  사는 과부가 있었더래. 과부는 바람
이 났더래. 어린 자식 잠들면 서방 만나러 나가려고 밤마다 옷도 안 벗고 자더래 에미가 밤
이면 몰래 빠져나가는 걸 안 어린것은 손목에다 에미의 저고리 옷고름을 꼭꼭 묶고 잤더래.
새끼가 마음놓고 새근새근 잠들자 에미는 옷고름을 가위로 싹둑 자르고 풍우같이  달려나갔
더래.” “너무 슬프다. 할머니.” 그러면서 마금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푹
놓이는 숙면에서 깨어보니 아침이었다. 


  할머니는 곁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마루에서 빨래를 개키고  있었
다. 늙으면 죽어야지, 빨래 걷는 걸 잊어버리고 잤잖아? 그러면서 밤이슬에 눅눅해진 빨래를
어루만지듯 판판하게 쓰다듬어 반듯하게 개키고 있었다. 이따가 한번 더 볕을 봐야해.  그래
야 부숭부숭해지거든,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마금이는 어디서 저런 보물단지가
굴러들어왔을까,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쥐어짠 채로 털지도 않고 널어서 북어처럼  비틀어져
있던 그녀의 속옷과 가사가 방금 다림질해놓은 것처럼 반듯하고 얌전해졌다.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와의 생활은 꿈같이 편안하고 달콤했지만 어디서 온 할머니인지  어
디로 갈 것인지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 집에서 주인보다 더 자기 집처럼 자유자재로
행동한다는 것밖에 할머니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날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횡설수설이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말꼬리를 잡고 추궁을 당하면  헷
갈리는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애를 쓰다가도 금세 싫증을 냈고, 딴소리를 했다.  한
번은 부처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예수쟁이들도 마음이  좋더라고, 하마터면 길에서 병이
들어 죽을 뻔했는데 깨어나보니 예수쟁이들 이 기도를 하고 있더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거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했을때 전혀 딴소리를 했다. 멀리  보
이는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면서 요새 허리가 쑤시는 게 저기서 겨울을 났기 때문이라고도 했
다. 그 소리 또한 종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주 헛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직
감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할머니의 기억력이 끊어졌다 붙었다 한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를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 했다. 고기도 놀던 물이 좋다더니,  사람도
살던 데가 이렇게 좋은 것을, 하면서 할머니가 기지개를  켜듯이 마음껏 느긋하고 만족스럽
게 굴 적에는 옛날 옛적 이 집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온 게 아닌 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런 생각이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기도 옛날 옛적부터 할머니의 손녀였다고,  지금은
이 세상이 아닌 그 옛날, 전생으로 돌아와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텅 빈 시선으로 먼산을 바라보면서 우리 아들이 곧 데리러 온댔는데 왜 이
렇게 안 오나?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기분이 언짢아
지곤 했다. 아들이 곧 모시러 올까봐서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버림받은 노인인 것 같아서였
다.

 


      4
  어머니가 또 의왕터널 쪽으로 갔으려니 한 영주의 추측은 들어 맞지 않았다. 그날은 뜬눈
으로 새우고 다음날부터 가실 만한 데를 모조리 알아보고 나서 결국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동회와 구청의 가정복지과에도 신고를 했다. 전국적으로 사람만 찾는 전화번호가 따로 있다
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아무런 진전 없이 날짜만 흘러갔다. 신문에 광
고도 내고, 남편 친구한테 부탁해서 청취율이 높은 시간에 방송도 몇번 내보냈다.

 

그러자 제보가 몇건 들어오기는 했지만 확인해보면 아니었다. 수원역에서 구걸을 하고 있더라는

식의 제보에 울먹이며 달려가기를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바로 그 할머니한테 우동을
사먹이고 있으니 빨리 우동값 갖고 나오라고 하고 나서 어디라는 말도 없이 끊어 버리는 장
난질도 있었다. 검찰에 변사자 수배도 부탁했다. 그 결과 변사한 얼토당토않은 노인의  시체
를 확인해야 하는 곤욕까지 몇번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못할 노릇은 주로 남편과 동
생이 맡아서 해주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주는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차를 몰고 노인네가 갈 만한 데를 찾아나서지 않고는 못 배겼다. 집안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결과 과천에는 어머니가 한두 번 나타난 적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가 있었다. 워낙 오래  살 던 아파트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중 어머니를 민났다는 이가 나타났지만 그냥

거기 어디 다니러 오셨다 가는 줄 알고 인사만 하고 말았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깨끗하고  명랑해서

길을 잃은 줄은 꿈에도 몰랐노라고 했다. 그 사람이 만일 미리 그 사실만 알았더라도 붙들어두고

연락을 해주었을 것이다 발을 구르고 싶게 억울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사람 찾는다는 인쇄물을 신문지 사이에 끼우는 찌라시로 만들어 뿌리기로 했다.

몇날 며칠을 두고 과천을 중심으로 평촌 산본 안양 일대의  신문보급소란 보급소는 다 찾아다니면서

그  일에만 종사하다가 신문독자들이 찌라시를 눈여겨보지 않을게 뻔해서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기로 했다. 평소의 어머니의 행동반경을 감안해서  그 범위 내만 붙이고 다닌다  해도 식구 단위의
인원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큰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해서 매일매일  뼛골 빠지게
뛸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구원이었다.


  그렇더라도 일일이 손 가고 시간 잡는 일이라 영주네  식구들만 갖고는 태부족이었다. 일
손도 나눌 겸,더 좋은 방법이 뭐 없을까 의견도 교환할 겸 삼남매가 모일 적이 많았다. 모이
면 말이 많아졌고 비난의 화살은  으레 영주한테로 집중됐다. 나 같은  죄인이 무슨 할말이
있겠수, 하는 건 영탁이가 자주 쓰는 말이었지만, 그 집 식구들이 가장 떳떳해 보였다.

 

영탁이 처는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법이라고는 없이 싸늘한  태도로 지켜보기만 했지만,

대문과 방문에 자물쇠 채운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게 증명된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는 냉
소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영주는 느끼곤 했다. 영숙이도 그런 걸 감지한 모양이다.

 

“언니가 그때 조금만 참지, 잘난 척하고 괜히 모셔와서 재들만 책임 벗게 됐지 뭐유? 보나마나

올케는 속으로는 고소해할 거야.” “지금 누구 잘잘못 따지게 됐니?  어머니가 살아 계신지 돌
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사는 판에. 그때도 난 어머니가 바라시는게 뭘 까, 그것 먼저 생각하려
고 했을 뿐이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어이구, 박사언니
의 잘난 척은 하여튼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경찰에서도 돌아가셨으면 즉시 연락이 닿게 돼
있으니 그 걱정은 말라고 했다며? 지문조횐가 뭔가로.” “거기다 왜 박사는 갖다붙이니?”


“언니처럼 알뜰히 어머니 울궈먹은 자식도 없잖우? 그만큼 부려 먹고도 뭐가 모자라 박사
욕심까지 내가지고 어머닐 늦도록 딸네 집살이를 못  면하게 하다가 기어코 이 꼴 당한 거
아뉴?”   어쩌면 어머니하고 동생하고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즈이들이 누구 때문에  대학공부까
지 할 수가 있었는데... 그 일을 어머니는 장하게도 여겼지만 그 공의 반은 맏딸한테 돌리면
서 늘 미안해하곤 했었다.

 

하숙집 딸 노릇만 안했어도 박사도  될 수 있는 딸이었는데 이렇게 못내 아쉬워하는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어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 말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박사를 뒤늦게 딸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하숙집 딸답게 남편을 만난 것도 하숙생 중에서였다. 사정을 빠안히  알고 한 결혼이라 하숙집

딸에서  중학교 교사가 된 후에도 남편은 처가식구와 같이 사는  걸 조금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안한다는 처가살이를 그는 아무도 불편해하거나 미안해하지 않도록 잘 해냈다.

 

누가 가족관계를 물으면 장모님 모시고 산다는 소리를 여자들 이 시어머니 모시고 산다는 소리와
다르지 않게 떳떳하게 했다. 영주는 그럴 때의 남편이 가장 잘나 보였고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 또한 그런 사위를 좋아했었다. 지금도 구메구메 어머니 생각을 제일 많
이 하는 게 남편이었다. 


  그런 형부에 대해서도 영숙이는 헐뜯고 싶어했다. 따뜻한 봄날  이 계속되어 어머니가 한
뎃잠을 주무시는 걸 가상해도 몸이 오그라붙는 느낌이 한결 덜해진 것만도 살 것 같은 날이
었다. 남편이 아주 슬픈 얼굴로 어머니가 신 총각김치 줄거리  넣고 지진 청국장 생각이 간
절하다고 말했다. 하필 영숙이가 듣는 데서 한 소리였고, 어머니의 그 솜씨가  천하일품이라
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남편은 울먹이듯이 비통한 얼굴로 그 소리를 했는데도 영숙이는
자리 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화를 냈다. 부리던 식모가 나갔어도 그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할 거라는 거였다. 그게 그렇게 어머니에 대한 모욕이요  얕봄이라면 동생이 그리는 어머니
는 어떻게 생겼을까. 영주는 빨래를 다림질해놓은 것처럼 얌전하게 개키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 그리움이 가장 절절해졌으므로 남편의 진심을 이해 하고도 남았다. 


  어느덧 어머니가 집 나간 지 반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계절도 초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포
스터를 천장씩 몇번을 더 찍었는지 헤아릴 수 멀게 되었지만 서울시내와 근교를 다 덮기는
아직아직 멀었으리라. 제보가 끊긴 지도 오래되었다. 영주는 포스터도 붙일 겸 해서  여기저
기 산재해 있는 노인들의 수용기판을 찾아다니는게  거의 일과처럼 돼버렸다. 보건사회부에
등록되지 않은 사설기관도 많았다 그런 데는 소문으로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데를 한 군데 어렵게 찾아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무 특징도 없는 서울근굔데 괜히

쉬어가고 싶은 데가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우선 공기를 심호흡했다. 특별히 신선한 것 

같지도 않았다. 구질구질 한 마을 어귀였다. 이 마을에도 포스터를 붙여볼까 하다가 문득 저 

만치 외딴집이 보였다. 요새도 서을 근교에 저런 옛날 집이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문화재적
인 옛날 집이 아니라 그냥 나이만 많이 먹은 귀살스러운 옛날 집인데도 영주는 이상한 힘에 끌려

차츰차츰 다가갔다. 다가가면서도 무엇에 이끌리고 있는지 이상해서 주춤거렸다. 느닷없이 하숙

치던 종암동 집 생각이  났다. 그냥 생각이 난 것뿐 비슷한 것 같지는 않았다.


  헉 하고 숨을 들이쉬면서 천개아 포교원이라는 간판과 함께 빨랫줄에서 나부끼는  어머니
의 스웨터를 보았다. 영주는 멎을 것 같은 숨을 헐떡이며 그 집 앞으로 빨려들어갔다.  마루
천장의 연등과 금빛 부처가 그 집이 절이라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그밖엔 시골의 살림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부처님 앞, 연등 아래 널찍한 마루에서 회색 승복을 입은 두 여자가 도란
도란 도란거리면서 더덕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화해로운 분위기가 아지랑이
처럼 두 여인 둘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에 그런지 어머니의
조그만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였다.

 

아니아니  헐렁한 승복 때문만이 아니었다. 살아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 가벼움,

그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여지껏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 저렇게 삶의 때가 안낀 천진덩어리일 수가 있다니.
  암만해도 저건 현실이 아니야,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영주는 그래서 어머니를 지척에 두
고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녀가 딛고 서 있는 곳은 현실이었으니까. 현실과
환상 사이는 아무리 지척이라도 아무리 서로 투명해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별개의 세계니
까.
(문학동네 1995년 봄호)

 

 


참을 수 없는 비밀
  너무 오래 기다렸다. 아직도 새벽일까. 부유스름한 미명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
돋이를 기다렸을까. 하영이 호텔에 들 때 동해의  일출 같은 건 염두에 둔 바 없었다.  키를
받을 때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방이라고 프런트의 아가씨가 생색내듯이 말하는 걸 듣고
도 고맙다든가 잘됐다든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동해의  일출이란 딱딱한 말은 하영에
게 아무런 연상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눈뜨자마자 모로 누워 줄창 창밖을 보고 있
었던 것은 그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흐린 물에 먹물을 풀어놓은 것 같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수평 선은 보이지 않았다. 수
평선이 있음직한 데보다 훨씬 높은 곳의 하늘이 별안간 시뻘겋고 길게 찢어졌다. 그러나 그
리로 빛이 새어나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금세 핏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 싱싱한 생채기일
뿐이어서 희부연 새벽을 몰아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로 인해서 하영
은 비로소 아직 해가 안 뜬 게 아 니라 날씨가 몹시  흐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늙은
이처럼 뭉그적대며 일어나 창가로 갔다. 완만한 해안선과 넓은 모래사장이 내려다보였다. 여
름날 툭하면 텔레비전 화면이 비춰주던 이름난 해수욕장이었다. 아직도 한낮의 늦더위는 복
중 못지않건만 바닷가는 씻은 듯 정결하고 고요했다. 인적 없는 쓸쓸함에 이끌려 그녀는 부
랴부랴 옷을 주워입고 방을 나섰다.


  현관은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유리문을 통해 울울한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만개한 백일홍
나무가 보이자 하영은 가슴이 떨렸다.  침침한  날씨 때문일까, 키 작은 나뭇가지가 휘어질
듯 만개한 선홍 색이 그렇게 생급스러을 수가 없었다. 눈에  들어온 한 무더기의 빛깔은 그
녀의 의식 속에서 곧장 계집애들의 철딱서니라곤 하나도 없는 자자한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녀의 중얼거림엔  호흡을 조절하는 것 이상의  뜻은 없었다. 그녀는
철딱서니 없음이 싫었다. 그 대책없음은 싫다기보다는 무섭다는 쪽이 맞았다. 


  바닷가까지는 휘어진 내리막길이었다. 양쪽으로 나무가 우거져 새벽 같기도 하고 황혼 같
기도 한 눅눅한 어둠이 고여 있었다. 길이 유턴을 하면서 바다가 보였다. 여전히 인적  없는
바다였다. 즐비한 횟집 거리를 지나  해안선 쪽으로 나아갔다. 횟집마다  굳게 닫혀 있었다.
가게마다 수조 속에서 생선들이 살아움직이는 시늉을 하고 있는 걸 보면 폐업중은 아닌 듯
했다. 펄펄 살아 날뛰는 바다를 눈앞에 빤히 보면서 수조  속에 갇힌 줄고기들의 마음은 어
떤 것일까. 그 차가운 심장에도 마음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 몇 시쯤일까.  하영
은 토막토막 생각하며 해안선을 천천히 걸었다. 파도가 핥고 지나간 자리를 피해 마른 모래
사장을 택했건만 푹푹 빠질 때마다 운동화 속으로 스며 든 모래는 눅눅하고 깔깔했다.


  저만치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선 게 보였다. 뭔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지 사람
들 같지는 않았다. 관광객들은 으레 튀는  옷차림을 하고 있기 마련인데 그들은 안  그랬다.
마치 침침하고 눅눅하고 우울한 이곳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하영은 자기가 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호기심을 걷잡지 못했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다가가면서 심장이 옥죄는 듯한
느낌 때문에 한 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다. 그녀는 조금만 긴장해도 그러길 잘 했다.


  마침내 사람들이 뭘 그렇게 구경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한 가운데 사람이 누워 있었다. 사
람이 죽어 있다는 것을 하영은 그냥 알아 차렸다. 상체를  신문지 조각 같은 것으로 엉성하
게 덮어놓아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산 사람이라면 그런  취급을 당할 리가 없었다. 시체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하얀 운동화를 보자 그녀는 온몸으로 한번 진저리를 치고 사람
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시체의 발치에서 무릎을 꺾고 한 손에 하나씩 운동
화 신은 박을 움켜쥐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하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운동화  신은 발은 차갑고 무겁고 눅눅했다. 단지 눅눅한 정도였건만 하영은 흠뻑 젖어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내부에 미세한 실핏줄처럼 분포돼 있던  두려움이 일제히 하얀 운동화를
향해 방향을 잡고 질주해오는 듯한 느낌을 그녀는 걷잡지 못했다. 그녀는 하얀 운동화를 움
켜쥔 채 고꾸라지면서 가슴으로 안았다. 복받치는 울음에 자신을 맡겼다. 소리 내어 울기 시
작했다. 울음소리의 청승맞음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서럽고 무서워졌다. 그러면서도 둘러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가려내고 있었다.


  누굴까, 춘식이 아는 사람일까? 외지 사람인가본데 춘식일 어떻게 알겠어. 알아도 그렇지,
저렇게 통곡을 할 만큼 친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누가 알아, 편지질이라도 한 사인지. 저렇
게 나이 많은 여자하고? 말도 안돼. 춘식이네가 오면 알게 되겠지. 그나저나 춘식 에미 불쌍
해서 어떡하지. 못된 자식, 변변치 못한  줄은 알았지만 이런 독종인 줄은  몰랐네. 저 하나
믿고 사는 에미를 생각해서라도 어떻게 약을 처먹을 수가  있어. 처먹더라도 살아 날만큼만
먹든지. 변변치 못하려거든 미련하지나 말아야지 원. 워낙 되는 노릇이라곤 없으니까 비관도
됐겠지 뭐. 아니 제가 마흔이야 쉰이아?  이제 겨우 나이 스물에 되는  노릇 안되는 노릇을
겪어봤댔자 얼마 나 겪어봤겠어. 모르는 소리 말아요.


  하영의 통곡은 울음이라기보다는 발작 같은 것이었기에 태엽이 풀리듯이 시나브로 가라앉
았다. 그동안에 여태껏 애도한 죽음이  익사가 아니라 음독자살이란 것을  충분히 알아차린
그녀는 계면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입 언저리가 모래로 범벅이
돼 있었지만 눈물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해맑고 건조한 얼굴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서 부르
짖었다.


  아니 미친년 아냐? 그러면 그렇지. 겹겹이 둘러쳐진 동그란 원이  하영이 가고자 하는 방
향으로 일제히 길을 열었다. 마침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성통곡 달려오는 춘식 어미에
의해 하영은 곧 잊혀졌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구경꾼 중 몇명은 또 다른 미친 짓을 기대
하며, 혹은 부추기며 그녀 뒤를 밟았을지도 모른다.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일까, 탁트인 바
닷가 사람들답지 않게 따분하게 꽉 막힌 표정이 구경거리에 여간 츱츱해 보이지 않았다.

 

하영은 뒤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서둘지도 않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천천히 그 장소로
부터 멀어져 갔다. 요란한 차소리에 돌아다보니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거의 동시에 현장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빨리 걷기 위해 모레사장을  가로질러 횟집 앞 포장도로
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이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닿자마자 하영은 위기에서 벗어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몸을 숨기고 싶었다.


  횟집 가게문은 스르르 열렸다. 깊숙한 안쪽에서 방문이 열리면서  티셔츠 가슴이 터질 듯
이 풍만한 아줌마가 어서 오라고  하품 섞인 인사를 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다뿐 일부러
영업을 안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바깥공기 중에 가득 고여 있던 바다냄새하고는 또 다른
비린네가 하영의 빈속을 훑듯이 자극했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는 꼬르륵 소리는 흠험하고
도 둔중했다. 한물간 생선과 와사비와 된장 간장 초고추장을 뒤범벅  해 놓은 것 같은 냄새
는 환각인 듯 과장돼 있어 당장 입안에 침을 돌게  했다.

 

그러나 그게 허기인지 구역질인지 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든지 참아내야 할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식사를 하시 게" 주인여자는 왠지 아무것도 팔고 싶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열린 방문을 통해

남자의 넙데데한 뒤통수와 텔레비전 화면이 보였다. 치고 받는 코미디언,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파리가 잔뜩 꾄 아프리카 아이, 늘씬하고  번들거리는 몸뚱이를 섞고 개처럼 핥고  있는 서양 남녀가
빠르게 지나가고 나서 마침내 송해가 사회를 보는 노래 자랑에서 화면이 질정됐다. 그 화면
속 배경도 통속적인 풍경화처럼 밝고 푸르게 칠해진 바다였다. "우선 마실 거라도 좀." 하영
은 미안해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는게 좋겠네요. 아직 점심시간은 이르고, 우린 아침은 안하
거들랑요." "저두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아침을 안한단 소리가 안 판단 소리지 안 먹는다는 소리는 아닌데
싶어서 비적비적 웃음이 났다. 주인여자의 태도도 덩달아서 친근해졌다. "이층으로 올라가실
래요? 우리집 이층은 경치가 그만이에요. 한쪽으론 바다가  보이고 반대쪽으론 호수가 보이
거든요 "


  하영은 때에 전 융단이 깔린 계단을 더듬듯이 밟아가며 주인여자의 뒤를 따랐다. 꽤 넓은
이층은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경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당분간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서 마음에 들었다. 여러가지 음료수가 가득 든 진열장이 전면에 보였다. 경치보다는  진열장
을 골똘히 바라보는 하영에게 여자가 선심 쓰듯 말했다. "아무것도 안 마셔도 돼요. 곧 점심
때가 될 텐데요 뭐. 참 커피 한잔 해드릴까요, 써비스루다요."


"아아뇨, 소주를 한 병 주세요."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부터 하영이 죽자구나 참아내야 할 것처럼 느낀 것은 허기
도 구역질도 아니고, 소주에 대한 다급한 갈증이었다. 빈속에 마시는 소주야말로 그녀  내부
에서 한그루의 꽃나무를 일으켜세을 수 있는 기적의 음료였다.  "소주요? 혼자서요." 여자가
놀란 듯이 되물었다. "왜 혼자서 소주 마시면 안되나요?" 조바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비조로 나왔다.

"안되긴요. 안주는요?" 주인여자의 태도도 도전적으로 바뀌었다.  "소수만 줘요
안주는 식사할 때 시킬게요." 주인여자는 뭐라고 한마디 할 듯하더니 그냥 내려갔다.

 

이윽고 여자는 이홉들이 소주 한 병과 김치와 파래무침과 종류를 알 수 없는 젓갈을 두어 접시  가
지고 올라와 하영이 앞에다 느릿느릿 그러나 공손치 못하게 내려놓고 나서 병마개까지 따주
고 내려갔다. 하영은 그동안을 힘들게 참아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소주를 병째  들이켜
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첫잔의 소주가 혀에 닿고 목 구멍을  넘어 식도를 거쳐 위에 이
르는 곧은 길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무색 투명한 액체는 목구멍을 넘자마자 따뜻한 장밋
빛으로 변하면서 곳곳에 길을 낸다.

 

그 느낌이 하도 자릿하고 황홀해 하영은 두르르 진저리를 친다. 둘째잔에서 화끈한 줄기는 가지를

뻗는다. 석잔째에서 가장귀는 더욱 섬세하게  갈라진다. 하영은 자신 안에서 물이 오른 아름다운

나무처럼 우뚝 선 피돌기를 그대로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것처럼 모세혈관까지 선명하게 느낀다.

그 나무는 당장 동백꽃처럼 붉은 꽃을 토해낼 듯이 잔뜩 충혈돼 있다.  거기까지가 살아 있다는

느낌의 절정이다. 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꽃을 피우려고 서둘지 말아야 한다.


  하영의 자제력이 아슬아슬해지려고 할 때 주인여자가 한떼의 손님을 몰고 올라왔다. 관광
객들인 듯 이 이층집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치에 감탄하느라 우르르 바닷가 쪽 창으로 몰렸
다가 호숫가 쪽 창으로 몰렸다가  한바탕 법석을 떤다. 하영은 마치  사람들의 무게에 따라
기우뚱대는 배에 탄 것처럼 어지럼증과 위기의식을 느꼈다.

 

역시 다음 잔은 흔들리는 배 안에서의 자작처럼 엎질러졌다.  더 나쁜 것은 관광객들이 하영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거였다. 의자가 모자라는지 한 남자가 하영의 테이블에서  의자를 집어

가면서 탐색하는 듯 경멸하는 듯 묘한 눈길을 보냈다. 이미 아름다운 꽃나무는 없다. 하영은

일어서려고 하고 주인여자는 주문을 받으려고 한다. "식사는 아래층에서 할게요."

 "그게 좋겠네요, 무드는  실컷 냈을 테니까."


  그러면서 집어가버린 소주병을 주인여자는 다시 가져오지  않았다. 잗다란 밑반찬 접시와
조개탕과 생선찌개와 전기밥통에서 진이 빠진 밥이 나왔다. 그런 걸 주문한 것 같지 않았지
만 별안간 심한 허기가 느껴져 허둥지둥 밥그릇을 비웠다.  주인남자도 방에서 나와 하영에
게 묘한 눈길을 보내던 이층 손님과 함께 회 칠  생선을 흥정하고 있었다.

 

하영은 주인여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광언지 가자미인지  구별이 안되는 생선이 주인남자의 

쇠꼬챙이에 달려나와 양회바닥 위에서 요동치는 걸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물속에 선 늘쩍지근하게

겨우 살아 있다는 시늉만 하던 놈이 물 밖에서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이층에서 힘차게 내
려온 주인여자를 놓칠 세라 하영은 계산을  부탁했다. "맛있게 드셨수?" 주인여자는 하영에
게 거스름돈을 내밀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놓았다. 하영은 대답하지 않고 얼른 그 집을 벗어
났다. 누가 붙든 것도 아닌데 살 것 같았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죽은 사람도, 둘러싼 구경꾼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곁눈질하듯 조금만

그쪽을 보다 가  그동안에 그 모든 것이 깨끗이 사라졌다는게 믿기지 않아 그쪽으로 몸을 돌리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사람들도 경찰차도 앰뷸런스도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떠들썩했던 불상사는

자취도 없었다.  모래사장에서 하다 못해 차바퀴의 흔적이라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그쪽으로 가다

 말고 돌아섰다. 내가 본 게 정말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따위의 부질없는 혐의를 자신에게 두게

될까봐  지레 겁이 났다.


  그 자리를 등지고 걷는 동안 줄창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모래사장에서 차의 지문을 지우
기에 알맞은 바람이라고 하영은 생각했다. 어느만큼 걸었는지 횟집 거리와는 분위기가 다른
거리가 나타났다. 집집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간판이 붙은 동네였다.  거의
가 초당두부 간판이었다. 원조, 옛날, 진짜, 무공해, 완전자연, 할머니 솜씨 등 각기  다른 말
로 자기 집 두부야말로 진짜배기 초당두부라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서울에도 초당두부가 흔하게 나와 있지만 몇년 전 하영은 바로 여기 본바닥에서
초당두부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춥고 눈 오는 날이어서 뜨끈한 순두부가 속을 훈훈하게 데
워준 생각은 나지만 그 맛이 그렇게 유별났던 것 같진  않았다. 하영에게 그곳이 반가운 것
은 두부맛 때문이 아니라 초당마을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땐 남편과 함께였다. 남편이  차
를 사고 난 후 첫번째 장거리 여행이었다. 전날 강릉 시내에서 자고 나서 물어 물어 거기까
지 당도한 것도 초당두부에 대한 명성 때문이 아니라 초당마을 그 자체 때문이었다.

 

초당마을엔 허난설헌의 생가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그것도 어렴풋한 정보였고

그들의 여행계획에 처음부터 포함돼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전날 예정대로  오죽헌을 구경하면서
하영이 먼저 이왕 강릉까지 온  길에 허난설헌 생가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 오죽헌을
그렇게 잘 꾸며놓지만 않았어도 그런 생각이 안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오죽헌을 너무 잘 해
놓은 게 오히려 하영이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남장은 그럼 다음날 그쪽으로 가서 회도 먹고 난설헌  생가도 찾아보자고 했다. 그때까지
도 그들은 초당마을이란 데는 허난설헌이 태어난 집이 있는 곳이라는 것만 알았지 초당두부
에 대해선 들어 보지도 못했다. 강릉에서 자고 나니 눈이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목화송이처럼 탐스러운 눈이었다. 라디오로 대설주의보를 들으면서 차를 모는
느낌은 적당히 비극적이고 적당히 감미로운 멜로드라마의 화면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아찔했
다. 그때도 초당마을을 바로 찾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은 초당두부 간판 때문이었다. 

 

마을은 괴괴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어 집 앞에 길을 내려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가서 물
어보고 올게." 남편이 초당두붓집 근처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리려면 여
염집보다는 가게가 편한 법이다. 정강이까지 빠지게 깊은 눈을  헤치며 걸어가는 남편의 됫
모습이 늠름해 보여 하영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지켜보았다.  불과 몇미터 사이가 아득해
보일 만큼 눈은 계속해서 퍼붓고 있었다. 가게문이 열리지 않는지 남편이 문을 쾅쾅 두드리
며 말씀 좀 여쭙시다, 하고 소리질렀다. 한참 만에  주인이 문을 따고 고개를 내밀었다.

 

 "저어, 이 동네에 허난설헌 생가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쯤일까요?" "몰라요, 그런 사람,"
"허균의 누님인데... 허균 모르세요? 홍길동전 쓴..." "글쎄 이 동네엔 허씨라곤 한 집도 없다
니까요."남편이 기가 막힌지 하영 쪽으로  돌아서서 두 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반년쯤 미국물을 먹은 적이 있는 그에게 그런 폼은 썩 잘 어울렸다.


  하영은 두 사람의 대화가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차 안에서 허리를 잡고 경박하게  깔깔댔
다. 그리고 장난삼아 말했다. "밥은 되냐고 물어봐요. 나 배고파요."  그렇게 해서 그 집에서
순두부백반을 먹게 되었고, 딴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뜨뜻한  구들목에서 눈발이 성겨질 때
까지 오붓하게 두런거리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나중엔 주인까지 슬그머니 끼여들었지만 하영도 남편도 허씨 집에 대해서 다시 묻지 않았다.

초당 허엽, 이미 허씨  집에 들어와 있지 않은 가, 주인도 그걸 알까?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눈이 멎은 후에도 라디오는 계속해서 눈 얘기만 했다. 오전중에 내린 눈이 70센티미터에 이르렀다는

것과,  대관령의 제설작업 상황과 굼벵이 같은 소요시간과, 차가 갖춰야 할  장비와 꼭 엄수해야

할 주의사항 같은 거였지만 70센티미터나 눈이 왔는데도 길이 막히지  않았다는 것만 고마웠다.

 

예고된 사고의 위험에 대해선 전혀 불안감을 못 느끼는 게 하영의 성미였다. 하영이 두려워하
는 건 경고 없이 오는 불행이었다. 모든 불행은 경고 없이 오게  돼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무사안일한 시간이 계속될 때 그녀는 속에서 뭔가 차올라 숨통을 짓누르는 것 같아
지곤 했다.


  남편은 불안해하지 않는 하영에게 신경을 쓰느라 더욱 신중하게 운전했건만 어둡기  전에
대관령을 넘을 수가 있었다. 하영이 충격을 받은 것은 오히려 대관령을 넘고 나서였다. 눈의
무게를 못이겨 쩍쩍 생솔가지가 찢어져내릴 정도의 엄청난 폭설이 대관령을 넘자마자  자취
도 없이 사라지고, 그들이 지나온 하루 전과 다름없는 한겨울의 풍경이 벌거벗은 채 펼쳐지
고 있었다.


  그후에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강릉에  사는 동창이 한겨울에 결혼을 한다고  해서
친구들이 버스를 대절해 몰려간 적이 있 었다. 고교 동창 중에서 독신주의를 끝내 관철하고
말 것 같은 박사 두명을  제쳐놓고는 제일 늦은 결혼이어서 다들  조금씩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꺼이 하객 노릇을 하면서도 하도 그악스러운 추위에 한마디씩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신부에게 지청구를 먹이고 싶어했다.


  스물아홉이면 또 몰라, 서른여섯이나 일곱이나  그게 그건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춘삼월
호시절인데 뭐가 그렇게 급해맞아서 이 엄동설한에 면사포를 쓰나 그래.
  뭐가 급해맞은지 정말 몰라서 그러냐, 너. 네 배 부르다고 남의 배고픈 사정 모르면 죄 받
는다 죄 받아.


  그때가 아마 음력으로는 해가 안  바뀐 동짓달이나 섣달쯤이었을 것이다.  어찌나 추위가
표독하던지 해가 높다래진 후에도 유리창에 두껍게 낀 성에가 녹지 않아 밖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손톱으로 긁어내봤댔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은 잠깐밖에 안됐다.  즉
시즉시 다시 성에가 끼곤 했다. 그러나 대관령을 넘어 길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그 두껍
고 완강하던 성에는 줄줄이 땀을 흘리며 녹아내렸다. 삽시간에  투명해진 유리창을 통해 동
해 바다가 보이자 모두 환성을 질렀다.


  굽이굽이 험하다고는 하나 고개 하나 상관으로 전혀 다른 기후는 하영에게 달라지고 싶다
든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과 곧잘 연결되곤 했다. 하영이 바라는 건 변화 따위가
아니었다. 변화처럼 점진적이지 않은 획기적인 달라짐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느라, 다시  한번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보리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한눈에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어느  고가 앞에 와 있었다. 근처엔  두부간판도 보이지 않아
보통 시골과 다름 없어 보이는 초당마을 한가운데였다. 크기는  옛날 대가댁의 규모를 갖추
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몹시 퇴락해서 완만하게 함몰된 용마루를 남색 비닐텐트 천으로 덮고
있었다. 고아하게 이낀 낀 기와와 비닐조각과의  부조화가 을씨년스러워 보였지만 다행스럽
게도 천격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비닐조각 따위가 넘볼 수 없는  기품 같은게 아직도 이 마
을의 맥을 완강하게 틀어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 앞에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초당 허엽이 그 집에서  살던 연도와 그 집에서 허난설헌
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는, 그 집이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내력이 천박하게 번들거리는 금
속판때기 속에 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살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 것은 인기척 때문이 아니라
개들 때문이었다. 대문 안에도 대문  밖에도 개들이 늘쩍지근하게 누워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물끄러미 사람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덩치는 큰데도 전혀 안 무서워 뵈는 개들이었
다. 실제로 발밑에 거치적거리는 걸 툭 건드리고 지나가도 반기는 기색도 기분 나빠하는 기
색도 없는 이상한 개들이었다. 아무튼 누가 먹이니까 살아 있겠거니 싶은 팔자 좋은 개들이
었다.


  안마당에 들어서자 뜰아렛방 툇마루에 간단한 살림살이가 보였다. 살림살이도 그렇고,  양
회를 처발라놓은 안마당 수돗가도 그렇고, 밥그릇, 바가지, 양동이, 멍석, 양념병,  신발짝 등
눈에 띄는 것 들이 온통 울긋불긋한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된 것들이었다. 그런 일상용품들
과 퇴락한 고가의 천격스러운 부조화가 바로 보기 민망해 총총히 돌아나온다는 게 길을 잘
못 들어 뒤꼍으로 가게 되었다. 안채를 뒤로 한 바퀴 도니 또 하나의 마당이 나타났다. 사랑
마당이었다. 사랑 마당은 네모 반듯하고 외부와는 운치있는 돌담으로 차단돼 있어 마당임에
도 불구하고 이 집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처럼 보였다. 사랑채의 보존상태도 안채와는 댈 것
도 아니게 좋았다. 흙바닥 그대로의 마당에 긴 푸른 이끼는 잔디보다 우아했고 한쪽에 꾸며
놓은 조촐한 정원에는 백일홍꽃이 만개해 있었다.

 

호텔 마당에서  본 백일홍꽃과는 댈 것도
아니게 그 붉은빛이 처연했다. 몇 가닥이나 되는 줄기가 서로 꼬이면서 올라가 뻗은 가지들
은, 꽃이 진 후에도 조금도 허전해할 것 같지 않게 자유롭고도 자기주장이 강해 보였다.  백
일홍나무의 실제 수령이 얼마인지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난설헌도 그 나무 아래서 꿈을 꾸
었다고 믿고 싶게 잔인하고 아름다운 고통의 흔적이 마디마디 배어 있는 것 같은 나무였다.
  하영은 사랑 마루에 비스듬히 앉았다. 마룻바닥과 등근 나무를  그대로 쓴 기등을 쓰다듬
어보니 목질의 무른 부분이 먼저 닳은 대신 단단한 부분이 도드라져 우아한 나뭇결이 손바
닥에 그대로 만져졌다. 한번도 칠을 입히지 않은 나무가  살아숨쉬는 듯하여 하영은 마루에
길게 누웠다. 발치에서 다홍고추가 수득수득 말라가고 있었다. 순한 개들보다 더 확실한  인
기척이었다.

 

하영은 속속들이 마음이 놓여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여름옷을 통해  등으로도
마루의 나무 무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백년 세월의 부피가 수렁처럼 그녀를 끌어당겼다.
  눈을 떴을 때 날씨는 활짝 개어 백일홍꽃이 이고 있는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렀다. 하영은
그런 하늘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가장귀가 무겁도록 흐드러지게 핀 선홍색 꽃도,
이끼 낀 마당도, 기와가 군데군데 벗겨져나간 돌담도 갓  태어나서 바라다본 풍경처럼 다만
경이로을 뿐이었다. 선입관이 개입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란 얼마나 낯설고도 투명
한가. 그녀는 속속들이 평안했다. 그렇게 깊이 근심없이 자본 것도 얼마만인지 몰랐다. 


  발치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널어놓은  고추를 뒤척이고 있었다. 하영은  부스스 일어나
앉으면서 계면쩍게 웃었다.  "고추가 예쁘네요."  "맏물이라우. 실컷  잤수?"  "예, 깨우시지
않구요?"   "깨워 뭣하게."  "여기가 허씨 집 맞죠?"  "그렇다나봅디다."  "전서부터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이 근처까지 왔다가도 못 찾았어요. 동네사람 말이 이 동네에 허씨라고는 안
산다지 뭐예요."  "맞는 말이지. 역적질하면  삼족을 멸했으니까, 이 댁도 아마  그 때 손이
끊겼겠지. 안 그러우?"  노인이 하영을 빤히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할머닌 누, 누구세요?" 하영은 말씨가 느린 노인의 합죽한 입을 노려보며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노인은 하영의 돌변한 태도에 어리둥절해서 대답 대신 입만 조금 우물댔다.  하영은
자신의 표정에서 온화한 핏기가 가시고 핼쑥해지는 걸 느꼈다.  평화로운 시간은 너무도 빨
리 지나갔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노인에게 인사도 안하고 사랑 마당을 뛰쳐
나왔다. 뒤껼으로 돌지 않았는데도 문밖이었다. 여전히 문밖에서 거치적대는 개들을 발로 밀
어붙여도 누더기처럼 저항이 없었다. 하영은  누가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방향도 정하지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녀가 쫓기고 있는 것은 자신이 언제나 불행한 무엇과 연루돼 있다
는 불안감으로 부터였다. 실로 오래간만에 취한 완벽한 휴식이 왜 하필 절손된 집 마루에서
였을까.


  소나무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하늘이 안 보이게 울울하고도 정정한 숲을 하영은 제멋데
로 사백년은 넘었을 거라고 단정했다. 소나무 향기는 진하고 싱싱했다. 마음이 조금씩  가라
앉았지만 불안감이 떨쳐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도저히 벗어날수 없다는 체념
이 그녀의 도망을 멈추게 했다. 솔밭은 오랫동안 볕이 들지  않아 밑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
하고 있었다. 하영은 소나무에 기대면서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영은 올해 마흔이다. 대학생이 된 건 스무살 때였다. 시골에서 서울의 원하는 대학에 재
수도 안하고 들어간 건 큰  행운이었다. 부모도 오빠도 하영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영이네는
시골에 논밭과 과수원을 가지고 있는 농사꾼 집이었지만 발전하는 공업도시를 끼고  있어서
땅만 조금씩 팔더라도 서울에서 공부하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붙어주는 것만도 고마웠는데 아들에 이어 딸까지 서울에서도 일류로 쳐주는 학
교에 붙어주었으니 가문의 영광이었다. 순박한 사람들이었지만  공부 잘하는 자식들로 인하
여 빛나고자 하는 욕심은 도시의 극성스러운 부모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영이는 그렇지 않
아도 아들 둘 사이에 낀 외딸이라 집안의 귀염둥이였다. 아버지는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술이 거나하면 누구라도 내 딸 눈에서 눈물나게 하는 놈 있어면 내가 쏴죽일 거라고 무지막
지하게 벼르곤 했다. 하영은 물론 그런 걱정 안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처녀답게  자기
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를 안 좋아하는 일이 생기리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첫 여름방학처럼 근심없이 다만 사랑의 예감만으로 충만한 시기가 또
있을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영은 특히 더했다. 이미 점찍어놓은 남자가 있었다.  세준이
라고, 오빠하고 같은 대학 친구였다. 순 서울내기라 여름방학 때면 날잡아 친구의  시골집에
서 신세지고 싶어했기 때문에 식구들하고도 흉허물이 없었다. 하영이는 그를 세준이 오빠라
고, 친오빠와 구별해 불렀지만 고3때부터 몰래 세준씨라고 불러보면서 가슴을 설레곤  했다.
응석받이였지만 세준이한테만은 어린애 취급당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붙고 나서 제일 먼
저 떠오른 생각도 세준이하고 동등해졌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하영이 붙은 대학은 남자대학
생들이 미팅이라도 한번 해보길 소망해 마지않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하영은 한 학기 동안
세준과 서울서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도 일부러 피했다.  몇달 안 만나는 동안에 여
고생 티를 벗고 훌쩍 크고 싶었다. 목표는 여름방학이었다. 그동안에 훌쩍 크기 위해, 안 그
런 척하기 위해 미팅은 열불이 나게 쫓아다녔지만 속으론 세준이밖에 없었다.


  그해 여름방학에도 세준이는 하영이네 시골로 내려왔지만, 너무 식구 같아서 특별한 계기
가 없는 한 오누이 같은 관계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하영이가 그것 때문에 조금 초조해
질 무렵이었다. 각각 바람 쐬러 나갔다가 들길에서 마주쳤다. 처음으로 단둘이 있게 되었다.
시냇물을 따라 미루나무 길을 걸었다. 흐름이 급해지면서 여울진  곳 시냇가에 앉았다 시냇
가는 선선하기 마련이지만 그 근처를 흐르는 공기에는 등물할 때 같은 으스스한 한기가 서
려 있었다. 여울목 웅덩이는 위에서 흘러드는 물말고도 밑에서  샘솟는 물이 있어서 차갑기
가 얼음 같다고 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래도 하영이 그렇게 가까이에서  남자의
얼굴을 관찰해보긴 처음이다 싶었다. 두상을 옆에서 보니 앞뒤로 짱구였다. 그게 그렇게  귀
여울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리를 한팔로 안으면 남을까 모자랄까? 그게 궁금했다.

 

이마도 잘생기고, 코도 잘생겼다. 뒤에서 손으로 그의 두 눈을 감겨주면서 꿈꿀 때처럼 움직이는

눈동자를 손바닥으로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의 코밑과 턱은 약간 지저분한 편이
었다. 지저분한 아름다움은 낯설어서  신선했다. 입술은 또 얼마나  단호하면서도 섬세한지.
지저분한 것까지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까닭은 아마도 잘생긴 입술 때문일 것이다. 하영은
꼼짝 안하고도 손끝으로 그의 입술선을 그리듯 더듬고 있었다.  남들은 그의 입술이 단호한
줄만 알지 이렇게 섬세한줄은 모르리라 하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와 좀더 가까워지
고 싶어 손 끝이 안타깝게 떨린다. 욕망에의 아렴풋한 예감이 그녀의 순결한 감성을 섬세하
게 간지럽힌다. 뭔가 참을 수 없는 느낌으로 가쁜 숨결을 직접 그의 입술로 가져간다.  그의
입술근처는 지저분한 부분은 따갑고 아름다운 부분은 뜨겁다.


  "뭘 그렇게 보나?" 세준도 그녀의 강한 시선을 느꼈는지 자기  얼굴을 한번 쓰다듬으면서
덤덤하게 물었다. 하영은 자기 몸으로 남자의 몸을 더듬어  본 최초의 상상력이 수치스러워
화들짝 놀라면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세준이 오빠, 수영할 줄 알아?"  "그걸 말이라고 하
냐. 기본이지." "여기 이 웅덩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 물귀신이 있대. 그래서 빠지면 아무
도 못 살아나온대.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은 여기서 미역 안 감는다." "바아보, 물귀신을 믿
냐?" "다들 믿으니까. 다들 무서워하는게 믿는 거지 뭐." "있지 않은 걸 무서워하는 건 바보
짓이야." "있으면 어쨀래?"  "싸워 이기지 어쩌긴 어쩌냐?" "그럼 싸워봐. 내 앞에서 싸워서
어디 한번 이겨봐."


  이 무슨 유치한 수작인지. 그럴 작정은 아니었다. 대학생다운 지적인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은근히 벼르고 있었다. 아마 처음 해본 성인용 상상력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더욱 어린 양
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그 다음에 일어났다. 세준이 신발도 안  벗고
그 자리에서 여울목으로 뛰어들었다. 언뜻 뛰어들 때의 멋진 폼과  하얀 운동화를 본 것 같
았으나 멋지게 헤어나오진 않았다. 감감무소식이었다. 그후 어떻게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하
게 됐으며 그 동안이 얼마나 걸렸는지 하영의 기억력은 거기서 끊어진다. 끊긴 필름은 물에
젖은 세준이 하얀 운동화를 신고 풀밭에 누워 있는 장면서부터 다시 이어진다. 말리는 사람
들을 뿌리치고 하영은 세준의 가슴을 두드리고, 배를 누르고, 그리고 입술을 빨았다.

 

실습해본 일도 남이 하는 걸 본 일도 없지만, 그녀 나름으로는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의 입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무리 열렬하게 빨아대도 새파랗게 질린 입술에 핏기는 돌아오
지 않았다.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이 그녀를 현장에서 억지로 떼어낸  후에도 틈만 나면 달려
가 그 짓을 되불이했다. 인공호흡의 효험이 지났다는걸 알았다  해도 사랑의 입맞춤이 행할
수 있는 기적엔 시한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 동화 속의 왕자들이 해낸 걸 나라고 못 하려구.
그건 발작 같은 거여서 아무도 못 말렸다. 요새도 하영은  그때 빨아들인 냉기가 자신의 내
부에서 빙하가 되어 모세혈관까지 고루 분포돼 있는 것처럼 느낄 적이 종종 있다.


  그 짓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것은 주검이 부란하기 쉬운 복중  날씨 때문만이 아니었다.
세준네 식구들이 도착해서 시신을 인계해 가기까지 세준이 어머니가 부린 애통과 난동은 이
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가장 못 견딜 소리는 집안의 대가 끊겼다는 소리였다. 남의 집 대를
끊어놓은 년이란 소리가 애통의 주제였다.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소름이 끼치던지. 그녀는 그
때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다.


  그러나 나중에 겪은 일에다 대면 그건 오히려 약과였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며칠 안돼
서 세준이 어머니가 다시 나타났다.  세준이 손위누님을 둘씩이나 대동하고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딴사람처럼 생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하영을 보는 시선도 핥듯이 부드럽고 집요했다.
악다구니보다 더 참기 어려운 친숙한 눈길이었다. 다짜고짜 하영이  손을 잡고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했다.


  너 홀몸이 아니지? 나도 다 안다. 괜찮다. 부끄러을거 하나도 없다. 우리집 대만 이어주고
나면 나 너 안붙든다. 원하면 비밀도 감쪽같이 지켜주마. 그렇지만 그전에 딴마음 먹으면 가
만 안 둘 기다.


  대강 이런 소리를 조근조근 그러나  신들린 소리로 속삭였다. 누나들은  그렇게까지는 안
나왔다. 그렇지만 그런 헛된 희망을 불어 넣어준 건 누나들인 것 같았다. 절망하여 몸져  누
운 어머니를 위해,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희망사항으로 비쳤을
뿐인데 그게 당장 어머니를 떨쳐일어나게  할 엄청난 힘이 될 줄은  정말 몰랐노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니 조금만 참으라는 말 속엔 누나들도 그런 가능성을 아주 배
제하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들은 하영이 몸을 마치 그들의 소유물처럼 지키고 놓아주려
들지 않았다. 자기 몸의 권리를 찾기 위해 차마 못 당할 일까지 겪어야 했다. 내 딸 눈물 흘
리게 하는 자는 쏴죽인 다고 장담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동안 끽소리 한마디 못하고 술만
퍼마셨다.


  하영에게는 송장과의 그 차가운 입맞춤이 남자하고 생전 처음 가져본 육체적 접촉이었다.
그 말을 차마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믿어주고 안 믿어주고는 둘째였다. 사자와의 입맞춤
이 최초의 입맞춤이란 사실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비밀인가.


  세준이네 식구들은 그들의 희망이 헛된 희망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도 한바탕  분풀이
를 하고야 말았다. 내 아들 잡아먹고, 남의 집 대 끊어놓고, 너 혼자 얼마나 잘사나, 어디 두
고 보자, 재수 없는 년,  재수없는 년...이란 악담을 동네방네 고루  퍼뜨리고 나서야 하영을
놓아주었다.


  하영이네는 그해가 가기 전에 그 시골을 떠나 수도권  위성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란 데는 사람 살 데가 못 된다고 여기던 아버지도 익명으로 살기엔 그만이란 것 하나
만은 인정을 했다. 아무도 쏴죽이지 못한 아버지다운 서글픈 양보였다. 하영은 일년을  휴학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지내다가 오빠의 간곡한  설득으로 조금씩 복학할 준비
를 할 때였다. 한밤중에 괜히 가슴이 답답하여 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고 있었다. 식구들이
다 들 잠든 후였다 .

 

 베란다에선 그 도시를 띠처럼 두른 강과 그 너머로 강을 낀 국도가 바
라다보였다. 낮 동안 연락부절라던 국도도차의 통행이 뜸해져 있었다. 왜 그렇게 마냥  거기
서 있었을까. 잠이 안 오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게 평소의 습관이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기다린게 아니었을까. 아니 뭔가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음이 아닐까.


  하영이 눈앞에서 국도를 양쪽에서 질주해오던 두 대의 승용차가 엇갈리지 않고  정면으로
맞부딧쳤다. 어느 쪽이 차선을 어겼는지 식별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믿어지지 않아 눈
을 씻고 다시 보았을 때 두 대의 승용차는 이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차가 붐 비는 시간
도 아니었고, 추월할 앞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한 차의 운전자가 미쳤거나  자살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도 비현실적이어서  헛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
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불타는 차보다 자신을 더 근심하며 비틀비틀 방으로 돌아
와 자리에 누웠을 때는 이미 그 일은 불꽃놀이의 기억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어찌어찌 잠이
좀 들었다 깨고 나니 더욱더 그 일이 생시에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신문은 그날 새벽의 참사를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었다. 두 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그날이 마침 세준이가 죽은 지 일년 되는 날이었다. 그걸 깨닫자 비로소  가슴
이 떨렸다. 자기가 그 시간에 국도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만 같았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하영에겐 자신의 의지나 의식과는 상관없는, 남을  해코지하는
어떤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명확해진 것은.
  그렇다고 그전에는 그걸 못 느꼈을까. 그건 아니었다. 세준이 어머니가 그토록 열렬히  전
한 불길한 소식들을 어찌 잊을까. 우연한 목격이, 어떻게든 모르는 척하려던 걸 에라 모르겠
다 받아들일 계기가 됐을 뿐이다. 그렇다고 세준이 기일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
다. 꼬아다 붙이기 나름이었다. 세준의 기일과 차사고도 꽈다 붙이지 않았으면 서로 무슨 상
관이란 말인가. 세상에선 매일 매일 좋은 일과, 나쁜 일과,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일들
이 인총 만큼이나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거야말로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숨결인 것을 문제는 자신이 항상

불행한 무엇과 연관돼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 불안감이 관계맺을 불행을 찾아 헤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작정만 하면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좁디좁은가.  꽈다 붙이기로

마음먹으면 서로 친척이나 동향,  동창 중 한두 개 안 걸려드는 사이 없고, 아무리 밑바각 

인생도 최고 권력자와 연줄이 찾아지는 좁아터진 세상이 아닌가.


  이사를 간 후 하영이네 식구들은 그 시골마을에 대해선 일절 함구하고 살았다. 그 기억을
이르집는 것은 하영이의 상처를 덧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  금기로 삼고 있었다. 하영
이가 졸업하고 나서 딱 한번 어머니한테 그 마을 얘기를  들었다. 마치 싸고 싸두었던 흉한
상처를 이제는 아물었겠지 하고 들춰보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전에 내가 그 마을에 그냥  가봤지 뭐냐, 그냥. 어쩌면  변해도 그렇게 변한다냐. 우리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어, 야아. 그리고 참 그 여울목 말이다. 양회바닥이 돼버렸어.  시
냇물을 다 복개 해버렸더라. 공단이 생기고 구정물이 돼버렸단 소리는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공단에서 복개를 해줬는지."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가, 그나저나  그 물귀신은 시방 어디에  가 있을까?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흘긋 하영이 눈치를 살폈다. 그 때도 하영이는  어머니가 자기한테서 물귀신을 찾
고 있는 것처럼 여겨저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는 딸 시집가는거 보고 죽기를 소원하다가 못 보고 돌아 가셨다. 암이었다.  병원에
서였는데 늘 병상을 지키던 어머니가 너무 탈진한  듯 보여 모처럼 하영이가 교대한 날 밤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졸지에 임종을 맞았다. 그 일도 하영은 그냥 보아 넘기질 못헌다.  그
때 자기가 교대하지만 않았어도 훨씬 더 사셨을걸 하는 가책을 떨치지 못했다.


  지금의 남편하고 결혼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시집갈 생각 같은 건 해보지도 않다가 별
안간 맞선 전선에 나선 건, 하는 일도 없이 나이만 먹는 딸을 어머니가 아이고 애물단지, 아
이고 우리 애물 단지 하고 한숨 섞인 소리로 부르는게  문득 고까워지면서였다. 되는 일 없
이 오그라들기만 하는 집안 형편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는 뜻으로 알아들은 하영은 빨리
비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남자에게 쫓기듯이 간 시집이었다. 인물은 별로였지만 인품이 너그럽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재산도 늘고, 하영이한테는 좋은 일만 생기고 나쁜 일은
아이들의 고뿔 배탈 정도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게  대견해 느이 아버지 음덕인
가보다고 고마워했다. 하영이는 그것도 싫었다. 왜 남들은 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걸  어머니
는 마치 과람한 일처럼 감지 덕지하느냐 말이다.


  과람해하기는 하영이가 더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 이렇게 아무일도 안 일어날까하는
기다림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이 속에서 차오르면 하영은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아지곤 했
다. 기다리다 못해, 아니 참다 못해  차라리 선수를 치고 말지 싶어졌다.  발작적으로 안 살
거야. 이런 집에서 숨막혀 못 살아, 이렇게 주기적으로 생트집을 잡아 집안에 풍파를 일으키
고 집을 나오는게 그녀의 상투적인 선수치기였다. 그런 짓을 남편은 우리 집사람의  봄소풍,
또는 가을소풍이라고 부르면서 따뜻이 맞아들이고 더 잘해주려고 애썼다.


  이번엔 달라. 달라져야 해. 하영은 솔밭을 휘청휘청 걸어나오면서 다짐을 했다 올해  마흔
이 아닌가. 하영은 반듯한 색종이를 귀 맞춰 접듯이 자신의 생애를 반절로 접는다. 스무살에
인생이 바뀌었고 다시 스무살이 된다. 넘지도 처지지도 않고  딱 맞아떨어지는 건 색종이가
아니라 불행의 반복이었다. 선수를 쳐야 한다. 그게 최선의  예방책이다. 난 내 식구를 사랑
하니까. 사랑의 감정으로 목이 멘다. 급히  호텔방으로 돌아온다.   

 

지금쯤 집엔 어머니가 와 있을까? 시어머니가 와 있을까? 남편이 퇴근할 시간은 아직 이르다.

아이들 목소리도 듣고 싶다. 어머니나 시어머니리도 좋다. 이번 가출은 여느 때의 소풍하고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해둬야 한다. 그들한테 그렇게 해두는 게 남편한테 그렇게  해두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하영은 저녁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초가

두 번  울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전확드릴 테니 하실 말씀을
남겨주십시오.' 생판 처음 들어보는 차갑고 기품있는 목소리다.  "뉘시유? 응  당신 누구요?
누가 남의 집에...“


  하영은 놀라 수확기를 떨어뜨리며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손끝 발끝이 차갑게 얼어들어온
다. 모든 것이 아득하니 무감각해진다. 다만 심장으로부터 모세혈관까지 빙하처럼 차가운 피
가 흐르는 걸, 마치 순환기 내과병원 같은데 걸려 있는  인체도의 파란 정맥 보듯 또렷하게
느낀다.
(창작과 비평 199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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