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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바다와 나비/김인숙

by 8866 2009. 2. 12.


바다와 나비/김인숙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채금의 전화는 오후 1시쯤에 걸려왔다. 동네의 꽃가게에서 작은 화분을 하나 사 가지고 막 들어왔을 때였다. 정오 무렵의 따가운 햇살 때문에 잰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와 놓고도 막상 들어와서는 화분을 내려놓을 자리도 찾지 못하고 거실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던 중이었다. 전 주인이 쓰던 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집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남의 집 같기만 했다. 열쇠를 따고 집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나는 매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떠밀리는 것처럼, 앉을 자리도 서 있을 자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전 주인이 쓰던 전화기와 역시 전 주인이 쓰던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허락도 없이 남의 전화를 받듯, 나는 매번 숨을 죽인 채 전화를 받았고 저쪽에서 먼저 입을 열기 전에는 말하지 않았다. 대개의 전화는 곧 끊겼고, 그렇지 않은 전화도 내가ꡒ여보세요ꡓ말하면 약속한 듯이 침묵이 되었다가 잠시 후 조용히 끊겼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전화벨이 울렸지만 나를 찾는 전화는 기적처럼, 어쩌다가 한 번 뿐이었다. 그런데도 채금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시계부터 바라보았다. 그건 이곳에 와서 생긴 이상한 습관 중의 하나였다. 나는 매번 전화가 걸려오면 시간을 확인했으나 오후 1시에 걸려오는 전화든 새벽 1시에 걸려오는 전화든, 거의 어김없이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전화일 뿐이었다.

화분을 거실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나는 가만히 수화기를 들었다. 저 쪽에서 입을 열기 전에는 먼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숨소리가 저 혼자 알아서 낮아졌다. 나는 마치 한낮에 텅 빈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그러나 결코 안심하지 않는 도둑고양이 같았다.

ꡒ……여보세요?ꡓ

잠시 침묵하고 있던 수화기 저쪽에서 채금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 수화기를 잡고 있던 내 손목에서 비로소 긴장의 힘이 풀렸다. 적어도 낯선 이방의 언어는 아닌 것이다.

채금은 능숙지 않은 한국말로 더듬더듬, 드디어 비자가 나와서 다음주엔 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한국에 가면 인사를 전하겠노라고 말했다. 채금의 전화가 뜻밖이기도 했지만 그 내용도 뜻밖이어서, 나는 그냥 네, 네, 하면서 듣기만 했다. 말이 서툰 채금이 다짜고짜로ꡒ어머니에게 전할 말이, 아니, 말씀이 있어요?ꡓ라고 묻는데 그때에도 그냥 네, 하고 대답을 해놓고는 뒤늦게야 아무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채금은 메기라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순간에 목이 메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먹먹해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서울에 있는 내 어머니 생각 때문이 아니었고, 오히려 곧 서울로 가게 되었다는 채금 때문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ꡒ아니, 괜찮아요ꡓ라고 대답했고 또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ꡒ정말 괜찮아요.ꡓ 그러나 내게 남을 일종의 흔적에다 대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채금을 안 게 고작 한 달 정도. 게다가 채금은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었다. 괜찮지 않을 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날 오후, 나는 꽃가게에서 사온 화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꽃의 이름은 진지위예. 한국식으로 발음하면ꡒ금지옥엽ꡓ이다. 한 가지의 꽃대마다 각기 다른 색깔의 꽃이 핀,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희한한 꽃이다. 선명한 색종이 색깔의 꽃들이 노랑, 빨강, 진분홍, 진초록색으로 피어 있는데 그 작은 꽃들이 꽃대에 붙어 있는 모습이란 게 아슬아슬하기가 그지없다. 집 안에 무엇이든 살아 있는 게 하나라도 있었으면 해서 꽃가게에 들르기는 했지만, 푸른 잎이 무성한 화분을 다 놓아두고 그 아슬아슬한 꽃을 집어든 이유는, 그 꽃이 그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 꽃이 미심쩍었다. 혹시 이 꽃들은, 멋없이 맨송맨송하기만 한 가지를 치장하려고, 사람들이 만들어 붙여놓은 것은 아닐까, 꽃가게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몸짓만으로는 그런 의사소통까지 가능하지는 않았다.

주인이 다른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 나는 꽃잎에 손끝을 갖다 대보았다. 손은 꽃잎에 닿기도 전에 저 혼자의 긴장으로 부르르 진저리가 쳐지는데, 그 진동이 꽃잎을 흔들기라도 한 것일까, 순간 밥풀만 한 꽃잎 하나가 툭 떨어져 내렸다. 다른 손님을 상대하는 중인 줄 알았던 주인이 어느 틈에 내 곁에 와서 내가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ꡒ시콰이치엔!ꡓ이라고 꽃의 가격을 외쳤다.

화분의 흙 위에는 여전히, 진 초록색의 밥풀만 한 꽃잎이 떨어져 있다. 그 꽃잎을 건져 올리듯이 집어 올려, 가만히 비벼보았다. 부드럽지도 않고 빳빳한 것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스라졌다. 손가락 끝 어디에도, 초록색 꽃물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나는 화분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베란다 창을 열고 당장 집어던져 버리고 싶었다. 허술한 화분의 흙이 들썩이며 가지가 흔들렸다. 그러나 꽃대마다 가느다란 실로 매달아놓은 듯한 꽃들은 여전히 그 가지를 악착같이 붙잡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꽃들은 마치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살아 있다는 건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작은 꽃잎의 시선, 나는 그것이 평생 동안 봐온 것이기나 한 듯 익숙했다. 낯선 것에서 다가오는 익숙함……. 그러한 느낌이 오래된 감기 기운처럼 내 몸을 들락날락하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여전히, 그리 멀리는 떠나오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채금은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이 나라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나라 국적의 사람. 공항에 도착한 후로부터 3시간쯤이 흘렀을 때, 그리고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는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ꡒ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이채금입니다.ꡓ

그곳은 낯선 나라, 낯선 도시의 호텔이었다. 내게 걸려올 전화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혹시 프런트에서 걸려온 전화인가? 호텔 프런트 직원이 내 나라말을 사용할 리가 없다는 것을 깜빡 잊은 채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랬음에도 어리둥절한 기분은 여전했다. 이곳 호텔의 직원들은 룸서비스 때문에 전화를 걸면, 이렇게 자기 이름부터 밝히는가? 그럼 나는 뭐라고 대답하나. 나 역시,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무엇입니다. 이렇게 대꾸해야 하나. 그러나 오래 머뭇거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채금이 곧 서툰 한국말로,ꡒ우리 어머니가 맡긴 돈을 달라ꡓ했고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호텔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둔 곳이었다. 아마도 채금은, 그 호텔 밖에서 내가 도착할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채 10분이 지나기 전에 채금이 내 호텔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는 좀 기가 막히는 심정이었다. 채금과 채금의 어머니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채금의 어머니가 내게 맡긴 돈은 떼먹고 달아나 버리고 싶을 만큼 큰돈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그쪽으로 전화를 걸기도 전에, 이 낯선 나라의 낯선 호텔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잡아채이듯 전화를 받을 정도로는 말이다.

ꡒ안녕하세요. 나는 이채금입니다.ꡓ

그러나 호텔방 문을 열고 깍듯이 고개를 숙인 채금이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을 때와 똑같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를 했을 때, 나는 더 이상은 그녀에게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내가 이 나라에 온 후 나를 찾아온 최초의 방문자인 것이다. 또한 이 나라에서는 나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것이고.

채금은 문간에 선 채로 빚 줬던 돈만 찾아가면 되는 빚쟁이처럼 안으로는 들어와 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한 이후 창가에 달라붙은 나방처럼 창밖 풍경에만 정신을 팔고 있던 아이가 내 등 쪽으로 다가와 가만히 허리를 끌어안았다. 등에 달라붙은, 아이의 따뜻한 배에서 전해져 오는 게 실은 불안인 것처럼 꼿꼿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채금의 눈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 역시 불안인 듯했다. 눈 속에서 흔들리는 불안조차도 감출 수가 없는 나이라니……. 그녀는 아무리 많이 잡아봤자 스물 다섯을 넘기지 않았을 듯싶었다.

- 어찌나 악착같고 그악스러운지……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나지 싶은 여편네. 그렇지 않으면, 언감생심 어떻게 그런 중늙은이한테 지 딸을 시집보낼 생각을 해? 아무리 금은보화가 많대도 그렇지. 마흔이 넘어서 아직 장가도 못 간 놈한테 금은보화가 어딨겠어. 재산이 있음 흠집이 있거나, 흠집이 없음 돈도 없겠지. 아니면, 지 딸년이 그렇거나. 원……한국이 뭐가 좋다고. 지 딸년을 팔아서까지 데리고 오고 싶나.

채금의 어머니가 중국에 있는 딸에게 전해 줄 돈을 내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고, 내 어머니가 그녀에 대해서 했던 말이었다. 채금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의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채금의 어머니는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마흔 살도 넘은 식당 야채 납품업자에게 딸을 넘겨버렸다. 그러니 앉은자리에 풀도 안 날, 지독하고 그악스러운 여편네가 아니겠느냐고, 어머니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까지 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말을 그냥 건성으로 들었다. 나로서는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가 오히려 더 신기해 보였을 따름이었다. 채금의 어머니를 악착같고 그악스럽다고 말한 어머니였지만 그런 쪽으로 따지자면 내 어머니 같은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손바닥만 한 국밥집의 수입으로 아파트 서너 채를 사서 챙길 정도로 억척스러웠고, 당신의 모든 고생이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그 부동산의 문서의 어느 한 장도 결코 자식들에게 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악스러웠다.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국밥집은 식사시간 때마다 손님들이 몇 십 미터씩 줄을 섰다. 내가 먹어보면 별맛도 아닌 그 국밥을 먹기 위해 일부러 다른 도시에서 찾아오는 사람까지 있었다. 주방이나 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국밥 속의 고기뼈가 무르듯이 온종일 몸을 몰아쳐야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첫 월급을 받아 챙긴 이튿날 아침에는 다시는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점점 더 악착같고 그악스러워졌고, 어머니의 가게에는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급하게 빈자리를 대신 메우곤 했다. 채금의 어머니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불법체류중인 조선족이었고, 그런 까닭으로 적은 월급과 과중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식당에서 몇 달을 버텨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채금의 어머니가 아직 젊디젊은 딸에게 마흔이 넘은 남자를 붙여준 것은, 딸에게 한국 국적만 생기면 당장 그 결혼을 걷어치우게 할 작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만만하고 유순한 놈을 고른 것 같다고, 어머니는 당신도 잘 알고 있는 그 납품업자를 한순간에 ꡐ계집한테 오쟁이를 질 놈ꡑ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남자가 중국에 있는 채금을 만난 것은 단지 두 차례, 처음 만나서는 얼굴을 익혔고 두 번째 만나서는 서류 절차를 밟았다. 나는 나중에야 그 서류 절차라는 것이, 일종의 혼인신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어머니의 말만 듣고는 구체적인 사연까지 알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마흔이 넘도록 아직 아내를 구하지 못한 한국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채금에게는 무엇보다도 한국행 비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시집온 조선족 여자들이 어느 날 자기 몸으로 낳아놓은 아이까지 내팽개치고 주민등록증 한 장만을 달랑 챙겨 도망가 버린다는, 그래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는 한동안 신문과 TV 뉴스에서도 자주 보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한 조선족 여자가 그렇게 야반도주를 결심할 때까지, 그들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남자는 여자를 몇 번이나 두들겨팼는지…… 여자는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그 여자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 모욕인지, 분노인지, 그리움인지…… 사라진 것은 그 여자의 주민등록증뿐만이 아니라 그런 사연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ꡒ몇 살이에요?ꡓ

문간에 서 있는 채금에게 맡아두었던 돈을 내밀다 말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아마도 실례가 되는 질문일 것이다. 나 같은 여자가 그녀처럼 어린 여자의 나이를 묻는다는 건 호기심도 욕망도 아니고 다만 쓸쓸함과 그리움일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 리가 없을 테니. 25세, 라고 채금이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순간 가슴이 아팠다.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스물다섯은 마흔이 넘은 남자와 결혼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나이다. 그러나 순간 내 가슴이 아팠던 것이 그 때문일까. 나는 채금이라는 이 어리고 순진해 보이는 조선족 여자가 몇 살 먹은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가슴이 아픈 것은 다만, 그녀가 똑똑한 발음으로 내뱉은 ꡐ25세ꡑ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25세라니…… 얼마나 빛나는 단어인가. 나는 그 빛나는 단어 앞에서, 그 나이 때 내가 겪었던 절망과 우울의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25세, 나 역시 그때 내 남편을 처음으로 만났었던 것이다. 그 빛나던 나이에, 내가 가장 하고싶었던 일이 그와의 결혼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보면 ꡐ25세ꡑ 그 단어가 빛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ꡒ당신, 사람이 죽을 때의 표정이 어떨 거라고 생각해?ꡓ

한국을 떠나오기 얼마 전,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그날도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고 돌아온 남편은,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처럼 전혀 취하지 않은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향해 말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ꡒ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야. 말하자면 넋이 나갔다고 말해야 옳겠지. 비명을 지르고, 공포에 떨고, 울음을 터뜨리는 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 쪽이야.ꡓ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 말을 덧붙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ꡒ들은 얘기야. 쉽게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 당신한테 해주는 거야. 하긴 나한테 그 얘길 해준 사람도, 들은 얘기라고 하더라. 그런데도 난 참 생생했어. 마치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신기하지 않아? 당신도 그런가 궁금해. 얘기해 봐. 당신도 그래?ꡓ

내게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채금의 어머니였다. 어젯밤에 그런 꿈을 꾸었어, 라고 그녀는 말을 시작했다. 내가 본 게 아니라 채금이 아버지가 본 건데, 꿈에서는 내가 본 것처럼 생생했어. 채금이 아버지는 어렸을 때, 공개 총살당하는 사람을 보았대. 그 얘길 평생 했지. 저도 어렸을 때 본 거라 가물가물할 텐데, 금방 본 것처럼 잘도 얘길 해. 못 볼걸 보고 살아서 그런가, 그 사람 평생 재수가 없었지. 사람이 한번 재수가 없으면 어딜 가도 마찬가지야. 그 사람, 한국에 나올 팔자도 못 되지만 나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할 때면, 꼭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의 넋으로 사는 것 같았어. 그러니 그 사람은 그냥 거기에 있어야 해. 그리고 채금의 어머니는 잠깐 동안 말을 놓고 있다가, 순간 아주 먼 곳에 다녀온 사람 같은 얼굴이 되어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자넨, 거기에 왜 가?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아이를 세계인으로 만들기 위해……. 채금의 어머니에게도 내가 그런 말들을 읊었던가? 그러나 그런 말들은 순간 아무 소용도 없게 여겨졌다. 나는 채금의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들을 남편에게 전부 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묻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넌, 거기에 왜 가니? 그러나 남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만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를 또는 그를 행해 말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ꡒ당신이.ꡓ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므로, 나는 혼자 말해야 했다.

ꡒ내겐, 지금.ꡓ

한 마디씩 끊어서, 그가 잘 알아듣게, 똑똑히.

ꡒ다른 사람의 넋으로 보여.ꡓ

곧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채금의 전화를 끊고, 한 시간쯤 후 중국어 가정교사가 왔다. 말이 가정교사지, 실은 내 중국 생활을 돌봐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게 말을 가르쳐주러 왔지만, 내 집에 와서 한 번도 책을 펼칠 기회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미뤄두었던 쇼핑을 함께 해야 했고, 나 혼자 있는 동안에 내 집 문을 두드렸다가 난감하게 그대로 돌아가 버린 아파트 경비를 찾아가 봐야 했고, 욕실 하수구를 뚫기 위해 수선공을 부르기도 해야 했다. 우체국에도 가야 했고, 은행에도 가야 했다. 한 때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지금은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인, 그녀 역시 조선족이었다.

가정교사가 내 집에 오기 시작한 건, 내가 이 집을 구하고 나서도 거의 2주나 지나서였다. 아이의 중국 학교를 알아봐 주었던 한국의 유학원에서 장담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가이드가 역시 장담했던 것처럼 집은 사흘 안에 구해졌고, 그 이틀 뒤에 아이도 학교에 입학을 했다. 가이드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집을 구하러 다니던 날, 그는 단지 문짝과 싱크대와 세면대만 달린, 그것을 제외하고는 시멘트 벽과 시멘트 바닥으로만 이루어진 집을 먼저 보여주었는데 그 충격효과가 어찌나 컸던지 두 번째 집을 보았을 때는 이것저것 가릴 것도 없이 내 쪽에서 먼저 이 집을 계약하자고 안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벽에는 칠이 되어 있고 바닥에는 나무가 깔린 집이었다. 이튿날 호텔에 있던 트렁크 하나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전에 살던 사람은 그릇과 침대시트와 벽에 붙은 온도계와 베란다의 화분까지 그대로 놓아둔 채 자기 몸만 챙겨 가지고 그 집을 비워주었다. 그리고 그 이틀 후,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기숙사라고 하면 동화책《소공녀》에 나오는 다락방까지도 낭만적으로 여기는 아이는, 제 눈으로 본 기숙사의 허름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당장 마음을 빼앗겨버린 눈치였다. 집과 학교가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아이는 기숙사에 있기를 원했고, 나는 아이에게 ꡐ딱 한 달만ꡑ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아이에게 약속을 받아내는 동안 나는 마치 자상하고도 엄한 어미처럼 굴었지만, 그렇게 된 상황을 반긴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선물처럼 내게 한 달이 주어진 것이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아내라는 배역에서 벗어난 것처럼 어미라는 배역에서도 벗어날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이 통하는 가정부든, 아니면 통역을 해줄 가정교사든 빨리 사람을 구해 달라고 가이드를 재촉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재촉 받지 않은 일을 서둘러 할 필요가 없어진 가이드는 내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만을 남겼는데, 정작 필요한 일이 있어 그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보니, 그는 한 달 예정으로 한국에 들어갔다는 거였다. 나는 생각처럼 죽은 듯한 잠을 자기 위해 혼자 있는 집, 혼자 쓰는 침대에 누웠으나 잠은 낮에도, 밤에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밤이면 가구들이 저희들끼리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내 집의 가구들은, 그것이 내 것이 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의 것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침대 위에서, 누군가는 섹스를 했고, 누군가는 피를 흘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죽은 듯이 잠을 자기는커녕, 되도록 집 바깥으로 나가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을 걸어 한국인 거리까지 가서 몇 시간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한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채금을 다시 만난 것은, 바로 그 거리의 한국인 상점에서였다. 좁은 매장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려 돌아보니 바로 그녀였다. 호텔에서는 그토록 불안해 보이던 그녀는 그곳에서는 그저 온순하기만 한 얼굴로 방그레 웃고 있었다. 나 역시 왈칵 반가움이 일었다. 이 나라에도 내게 아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저 반갑고 고맙게만 여겨졌다.

그날 채금은, 내가 쇼핑하는 동안 줄곧 내 곁에 있었다. 내가 쇼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런 건 중국 시장에서 사면 훨씬 싸게 할 수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고, 쇼핑 바구니가 무거워지자 어느 틈에 그녀가 대신 들고 서 있기도 했다. 호텔에서 돈을 사이에 두고 만났을 때처럼 긴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까. 채금의 한국말은 여전히 서툰 대로도 그다지 어렵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집어드는 물건을 가리키면서 이런 건 한국에서 뭐라고 해요? 묻기도 했는데, 내가 어묵이라고 대답해 주자, 어뎅 아니에요? 되묻기도 했다. 아마도 오뎅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어뎅이든 오뎅이든, 뜻만 통하면 될 터였다. 그녀의 서툰 한국말 실력을 일부러 지적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그녀가 겪어야할 것이 다만 언어의 문제만은 아닐 테니. 언어보다 더한 것들…… 그러나 결국 언어인 것…… 나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점에서 나왔을 때는 어느새 저녁 무렵이었다. 근처에 노란색의 간판이 보였다. 맥도날드였다. 채금과 함께이기는 해도 중국 식당에 들어가 낯선 음식을 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고, 아직 저녁때가 이르기도 해서 나는 채금에게 햄버거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채금은 중국에서는 햄버거를 ꡐ한바우ꡑ라고 하고 맥도날드를 ꡐ마이당로ꡑ라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외래어를 거의 쓰지 않는 중국에서는 콜라를 ꡐ크얼러ꡑ라는 이상한 발음으로 말해야 알아듣고 감자튀김도 ꡐ수티아오ꡑ라고 해야지 프렌치프라이라고 해서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맥도날드든, 마이당로든 다른 것은 그것을 호칭하는 방식뿐이었다. 빠른 것, 간단한 것, 포장된 환상, 결국 자본주의적인 것…… 맥도날드는 중국의 거리에서도 그렇게 존재했다.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 이외에는 내 나라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맥도날드는, 내 나라에서도 그렇듯 어리고 젊은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어린 조카를 쫓아 들어온 이모처럼 채금의 뒤를 쫓아서 빈자리에 가 앉았다. 곧 익숙한 햄버거 냄새와 감자튀김 냄새가 중국거리에서 맡았던 낯선 냄새들을 지우고, 거북했던 속을 가라앉혔다. 채금은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햄버거는 시키지 않고 감자튀김과 콜라만을 시켰다. 나 역시 식욕은 전혀 없었다. 나는 콜라 한 잔만을 시켜 놓고, 맥도날드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거리는 서서히 어두워져 어느새 네온이 흐리게 밝혀지기 시작했다. 곧 거리의 낯선 모든 것들이 지워지고 이제 익숙한 어둠만이 남을 시간이었다.

한국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공장을 그만둔 채금은, 지금은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조선족들도 한국 식품점에 와서 뭐 살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한국 돈을 환전하려고 들렀었노라는 대답이었다. 결혼할 남자가 중국에 왔을 때 남겨두고 간 한국 돈이 조금 있었는데, 한국에 가면 어차피 쓰게 될 돈이라 지니고만 있다가 문득 마음을 바꿨다는 것이다. 자기는 한국에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혼자 남을 아버지에겐 한푼이라도 더 돈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동의를 구하기까지 했다.

ꡒ효녀네요.ꡓ

ꡒ아버지는 몸이 안 편해요. 교통사고를 당해서 한 다리를 다쳤어요. 한 눈은 안 보이구요. 한 눈…… 이거 말이에요.ꡓ

채금이 손가락으로 자기의 왼쪽 눈을 가리켰다. 얼떨결에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게 되기는 했지만,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게 눈이 아니라 그 눈 저편의 캄캄한 어둠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얼른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데, 채금의 말이 이어졌다.

ꡒ아버지가 어렸을 때 사람이 죽는 걸 봤대요.ꡓ

채금이 자기 눈을 가리켰던 손으로 감자튀김을 집으며 말했다.

ꡒ그 다음부터 눈이 안 보인대요. 사람 죽는 걸 한쪽 눈으로만 봐서 다행이래요. 양눈으로 다 봤으면요, ꡐ씨아즈ꡑ가 됐을 거래요. 씨아즈, 알아요?ꡓ

씨아즈? 혼자 묻고 있는데 채금이 이번에는 두 손바닥으로 자기 눈을 다 가렸다. 씨아즈는 아마도 장님이란 뜻인 모양이었다. 눈을 가린 채금의 손등에 토마토케첩이 살짝 묻어 있는 게 보였다. 마이당로와 토마토케첩과 조선족과 눈먼 장님 그리고 나……. 이런 단어들이 마치 난수표처럼 얽혀드는 저녁이었다.

그가 사람이 죽는 것을 본 건, 그의 나이 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50여 년 전, 그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처형장에서 한 죄수가 공개 총살당하는 장면을 보았다. 공개 처형이 집행되는 공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날은 무더웠고 햇볕은 뜨거웠지만 사람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돋움을 하거나 앞사람의 어깨를 밀며 아우성들이었다. 여덟 살 아이에게, 그건 아직까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종주먹을 휘둘러대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어머니의 뒤를 쫓아가 어머니의 허리 틈 사이로 머리를 쑤셔 박았다. 죄수는 눈이 가려진 채 팔을 뒤로 묶여서는 구덩이 앞에 서 있었다. 아이의 귀에 숨을 죽이고 속삭이는 어른들의 말이 들렸다. 군인들이 죄수를 총살한 다음에는 그 죄수의 집으로 총알 값을 받으러 간다는 말이었다. 총살을 당하는 죄수란, 총알 값조차도 아까울 정도로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 죽는 걸 겁 없이 구경하러 나온 어린아이를 짐짓 놀려주고 싶어 어른들이 꾸며낸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50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도 그 말을 믿고 있다. 죄수는 자기가 죽을 구덩이를 직접 파고, 총을 맞고 그리고는 남겨진 가족들에게 자기의 시체 값을 빚으로 남기는 것이다. 죄수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고 그건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죄수가 남긴 총알 값의 빚…… 그뿐이었다.

그날, 아이는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 나이라면 당연히 그렇든, 겁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이는 겨우 얼굴 반쪽만 어른들의 허리 틈 사이로 쑤셔넣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한순간 여러 발의 총성이 한꺼번에 울렸다. 그리고 죄수는 마치 짚으로 묶어놓은 허수아비가 쓰러지듯, 맥없이 구덩이 속으로 쓰러져 들어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나버렸다. 뽀얗게 피어오른 흙먼지사이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흐르고, 그 정적 사이로 이제 흙먼지와는 다른 화약연기가 피어오른 듯했다. 그는 그 후 5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가끔 그 냄새를 맡는다. 화약 냄새…… 아니, 어쩌면 그건 죽음의 냄새일까. 아니, 그것은 아마도 남겨진 자들의 공포…… 바로, 그 냄새였을 것이다.

 


내가 채금에게서 저녁 초대를 받은 것이 그녀를 한국인 거리에서 만났던 바로 그날의 일이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햄버거는 시키지 않고 감자튀김과 콜라만 먹었던 그녀는, 막상 일어설 시간이 되자 어려운 말을 꺼내듯, 그러나 그래서 짐짓 더 명랑한 목소리로 내게 자기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ꡒ우리 아버지가 개고기 참 잘해요. 우리 촌에서 제일이에요. 오늘 저녁에도 개를 잡는다고 했는데, 가서 먹을래요?ꡓ

맙소사…… 채금의 말을 알아듣자마자, 내가 입속으로 중얼거린 말이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고, 한쪽 눈이 먼, 어렸을 때 사람이 죽는걸 보고 하마터면 ꡐ씨아즈ꡑ가 될 뻔한…… 채금은 지금 내게, 바로 그가 잡아주는, 그것도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말인가.

ꡒ아버지가 엄마 얘기를 듣고 싶어해요.ꡓ

내 뜨악한 눈빛을 눈치 챘는지, 채금이 하는 말이었다. 나는 금방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채금의 어머니가 한국으로 나간 게 6년 전이라고 했다. 그들은 지난 6년 동안, 함께 살지 않았고 물론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채금의 어머니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앉은자리에서 풀도 안 날 여편네, 악착같고 그악스럽기가 그지없는……. 내가 채금의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내 어머니가 그녀에 대해 했었던 그런 종류의 말들뿐이었다. 더 딱한 것은, 내 어머니의 식당에는 채금의 어머니말고도 조선족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데, 나로서는 채금의 어머니가 그들과 잘 분간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채금의 어머니가 연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한국을 떠나오기 직전에야 알았다. 내게 돈을 맡기면서, 채금의 어머니는 중국에 있는 자기 집이 내가 가려는 도시에 있다고 말했다. 그곳은 그녀의 고향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는 모든 조선족들을 전부 연변 사람들로만 알고 있던 나는, 내가 가려는 도시에 1,500여 호나 모여 사는 조선족 마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니 채금의 아버지를 만나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쩐지 나는 그를 한 번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눈이 멀어버렸다는 사람……. 그 후, 평생동안 죽은 사람의 넋으로만 살아가는 것 같다는 사람……. 그러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채금의 아버지인지, 그가 대신 살고 있는 죽은 사람의 넋인지는 알 수 없었다.

채금이 살고 있는 조선족 마을은 도시의 외곽에 위치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거리의 곳곳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중인 죄수들이 보였다. 사람들과 자전거와 차들이 한꺼번에 뒤섞인 차도 한복판에서 노란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젊은 죄수들이 무거운 해머를 휘둘러 아스팔트를 부수거나, 그 부숴진 자리에 새로운 길을 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깨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듯 이 도시의 구석구석이 매일같이 무너져 내리고 매일같이 새로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중심으로부터 외곽까지 개발의 풍경은 10년 단위로 후진되었다. 버스 한 정거장 사이로, 10년의 세월이 존재하는 식이었다. 높은 고층빌딩들이 사라지고, 넓은 도로가 사라진 뒤, 낡은 구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인 거리와는 또 다른 조선족 거리의 한글 간판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잠시, 곧 붉은 벽돌집들이 즐비한 농촌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곳이 바로 채금이 살고 있는 조선족 마을이었다.

 


어느새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 마을은 붉게 물들기 시작한 황금빛 벌판으로 먼저 나를 압도했다. 논은 끝이 없을 듯 넓어 보이는데, 이제 막 추수를 시작한 듯 군데군데가 한 뼘씩 파여 있고 한가운데에 볏가리들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으나 여전히 벼베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벌판 한가운데에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지는 햇살에 뭔가가 쨍하고 빛난다 싶어 눈여겨 바라보니 농부가 들고 있는 낫이었다. 저 너른 벌판의 추수를 한 자루의 낫으로 감당한다는 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싶었으나, 농부의 뒤로는 동화책 속의 풍경 같은 볏짚들이 가지런히 싸여가고 있었다.

이웃집의 개를 잡으러 갔다는 채금의 아버지는 아직 집에 돌아와 있지 않았다. 채금이 아버지를 부르러 간 사이, 나는 방 두 칸이 부엌을 끼고 있는 채금의 집 안 풍경을 둘러보았다. 집은, 중국 영화에서 보았던 중국의 전통 가옥과는 달라 보였다. 방바닥이 꽤 높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온돌을 깔고 있었다. 따듯한 온돌을 느끼는 순간, 별수 없이 우리는 같은 핏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창에는 중국인들이 하는 식으로 빨간색 복(福) 자를 거꾸로 붙여놓았고 벽에는 중국식의 매듭 장식이 걸려 있기도 했다. 낯선 것과 정겨운 것들 사이, 한쪽 무릎만 튀어나온 남자 바지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잠시 후, 가지런한 발자국 소리와 불규칙한 발자국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가지런한 발자국 소리는 채금의 것이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내디뎌지는 발자국 소리는 채금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일 것이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어둠이 완연한 창밖을 내다보았다. 채금을 뒤쫓아 걸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고장난 시계추가 절반만 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듯 절뚝, 절뚝……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어둠 속을 눈여겨 바라보았는데, 그건 순간적으로 절뚝거리는 한 남자를 뒤쫓아오고 있는 또 다른 그림자를 본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는, 평생 남의 등에 업힌 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신화 속의 늙은이처럼 채금의 아버지 등 뒤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본 것은, 어둠 속에 밝혀진 외등의 불빛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의 눈이 먼 것은 총살장에서 산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던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 총살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른들의 뒤를 쫓아 걷는 아이의 눈에서는 까닭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놀랍게도 눈물이 흐르는 것은 한쪽 눈뿐이었다. 그 때문에 아이는 다시 한 번 공포를 느꼈지만, 그가 겁에 질린 이유나 흐느껴 울고 있는 이유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다만 숨을 죽인 채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조차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느닷없이, 살아 있다기보다는, 남겨진 자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공포를 느꼈고, 타인데 대한 관심 같은 건 완전히 잊어버렸고 그리고 견딜 수 없이 불안했다.

어른들에게 방치된 아이는, 홀로 걸었다. 한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는 눈물이 흐르는 눈이 어떤 눈인지를 분명히 알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은 순결한 눈이었다. 어른들의 허리 틈에 짓눌려 있느라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던 눈. 다른 쪽, 죽음을 목격한 눈만이 눈물을 거두어버렸다. 그가 그 순간에 알았는지, 아니면 그 후 50년 세월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알았다. 눈물을 거두어버린 한쪽 눈은 이제 한 사람의 죽음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한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남아 있는 눈은, 눈물을 거두어버린 눈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보다 더 흉하고 끔찍한 것들을 평생 목격하게 되리라. 한쪽 눈의 마지막 기억을 비웃으면서, 더 많은 것, 더 지독한 것들을 담아내리라.

ꡒ나 그때, 그 오래 전에…… 한쪽 눈 말고 양쪽 눈이 다 멀어버려야 했어. 그럼 더 이상은 아무것도 안 봐도 되는 건데 말야.ꡓ

이웃집 개를 잡아주고 술에 취해 돌아온 채금의 아버지는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채금의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ꡐ마치 어제 본 일이나 되는 듯 생생하게ꡑ

ꡒ그건 눈병 때문이에요. 그 해에는 눈병이 지독했다고, 사람들이 다들 그러잖아요.ꡓ

내게 개고기를 먹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직접 듣게 하고 싶어 나를 집에까지 데려왔던 채금은 술 취한 아버지 때문에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채금의 생각과는 달리 채금 아버지는 채금 어머니의 소식 같은 건 묻지도 않았다. 그들은 벌써 6년째 헤어져 살고 있었다. 6년 전 아들의 대학학비를 마련하겠다고 한국에 나갔으나 남편이 다리를 잃고 아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돌아오지 않았던 아내였다. 그는 아내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르는 척, 다만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ꡒ그 이후로는 난 단 한 번도, 그렇게 감쪽같이 죽어버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 애가 죽을 때…… 끔찍했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서 팔다리가 덜렁거리는데도, 그 앤 쉬 죽지 못하고 아주 오래 고통스러워했어. 지금도 그 애 생각이 나. 아버지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말해 주고 싶었지. 괜찮다. 금방 끝날 거다……. 그런데 금방 끝나지 않았어. 정말 너무 오래 걸렸다구. 정말이지 그렇게 오래 걸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ꡓ

ꡒ그만 좀 하세요. 이젠 정말 지겨워요!ꡓ

채금이 기어코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았다. 화를 억누르려는 듯 어깨숨만 몰아쉬며 잠시 사이를 두었던 채금은, 그러나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소리를 질렀다.

ꡒ난 잘 살 거예요. 난 행복하게 잘살 거라구요!ꡓ

채금의 아버지는 물끄러미 그의 딸을 바라보고, 그러고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부려지지 않는 한 다리를 방바닥에 뻗대놓고, 그래서 완전히 방심한 것 같은 모습으로, 그는 또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ꡒ그래…… 맞아. 난 채금이, 말리지 않았지. 그 녀석, 내 사윗감…… 나보다 열두어 살밖에 안 어린 그 사윗감이란 놈…… 못 볼 걸 많이 보고 산 놈은 아닌 것 같더군. 난 알아. 못 볼 걸 많이 보고 산 인간의 얼굴이 어떤지 말이야. 그래서 난 말리지 않았어. 암…… 안 말리구말구. 그렇지만, 불쌍한 것……. 채금이 이 앤 내 남아 있는 눈이 보고 있는 게 뭔지를 몰라. 그건 말이지. 죽음보다 더한 거야. 그건 말이지…… 살아 있다는 거라구. 살아서 못 볼 것들을 모조리, 남김없이 다 봐야 한다는 거라구. 그것도 아주 천천히, 아주 아주 오래…… 가마솥 속의 개고기 뼈가 다 무르도록, 아주 오래 오래…… 흠씬 두들겨맞아 나달나달해진 살 속에서 진국의 국물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천천히 천천히…… 아주, 아주 오래, 오래…… 그렇게 보고, 또 보고 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ꡓ

채금이 다시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듯, 두 손을 다부지게 주먹 쥐는데 느닷없이 그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고, 그러고는 하는 말이었다.

ꡒ자넨 내가 하는 말을 아는군…….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아…….ꡓ

나는 그때 그가 나를 바라본 눈이, 죽은 자의 넋을 담고 있는 눈인지 아니면 살아서 못 볼 꼴을 다 봐야 하는 눈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진저리가 쳐졌을 뿐이었다. 그런 내 곁에서 채금이, 주먹 쥐었던 손을 풀며 한숨처럼 하는 말이었다.

ꡒ아버진 너무 취했어요. 취하면 누구한테나 저런 말을 해요.ꡓ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채금의 아버지가 내게 한 말은, 그저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었을까.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긴 편지를 썼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이메일 대신, 편지지에다가 만년필로 쓰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날 밤, 편지지를 펼치고 첫 글자를 쓰는데, 만년필 촉 사이로 잉크가 흘러내렸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그저 담담하게 그날 겪은 일을 적어 내려갈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편지의 중간에 이르러,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번진 곳을 한 칸 띄고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좀 감상적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우중충한 이야기를 하는 걸 이해해. 실은,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당신은 벌써 짐작했겠지만 나는 다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 그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 온 저녁,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는 여덟 살 어린아이가 바로 나야. 나는 한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지. 호기심보다는 숨이 막히는 기분인데, 총살당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네.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리고, 당신은 구덩이 속으로 쓰러져 들어가. 나는 뽀얀 흙먼지 사이를 뚫고 달려가 그 구덩이 속을 확인하지. 당신이 눈을 홉뜬 채 구덩이 속에 드러누워 있어. 이상하지. 나는 한쪽 눈을 가린 채로 당신의 홉뜬 두 눈을 내려다보고 있네. 눈을 홉뜨고는 있지만, 당신은 아주 피로해 보여. 죽음까지 오는 동안의 길이 당신에겐 참 피로한 일이었던 모양이야. 꿈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말해. 이제야 편히 누웠구나, 당신…… 그 구덩이 속이 따듯했으면 좋겠다. 나는 피로한 당신의 몸 위로 그리고 홉뜬 채 감기지 못한 당신의 그 두 눈 위로도 흙을 덮어줘. 꿈속에서라도, 당신이 내게 고마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피로한 당신은 이젠 내게 고마워할 줄도 모르네…….

 


써놓기만 하고 오래 망설이던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엘 간 건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채금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우체국에 가는 길에, 나는 가정교사에게 채금의 이야기를 했다. 가정교사는 채금의 소개로 내게 온 사람이었다. 몇 다리를 건너서 소개가 된 사람이라 채금을 직접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채금이 곧 한국으로 떠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날 우체국에 가는 길에 나는 가정교사에게 채금의 출국 날짜가 정해진 듯하다는 말을 했고, 잠시 후에는ꡒ그 애가 아이를 낳으면 이제 그 애의 아이는 한국 아이가 되겠군요ꡓ 라고도 말을 했다. 순간, 가정교사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지는 듯했다. 무슨 까닭인지 그녀는 좀 화가 난 것 같았다.

ꡒ난 조국이니 국적이니 하는 말 잘 믿지 않아요. 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믿는 건, 돈 뿐이에요. 우리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미 그들은 늙었지요. 젊은 사람들이 믿는 건 돈이에요. 중국도 결국, 별수 없어요. 이젠 돈밖에는 믿을 게 없게 된 거니까. 그렇지만 더 믿을 수 없는 건 한국이지요.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ꡓ

가정교사는 어쩌면 자기보다 먼저 한국에 가게 된, 그녀로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채금이라는 여자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스스로 말했듯, 그녀 역시 아무것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녀가 믿는 돈은 별수 없이 한국에 있으니까.

남편에게 쓴 편지는 간단했다. 죽음이니, 기억이니 같은 단어는 한마디도 없이,ꡒ보내주기로 한 생활비가 아직 오지 않았네요. 송금 날짜를 정확히 지켜주기 바랍니다ꡓ 단 두 문장의 편지일 뿐이었다. 그 편지를 써놓고도 열흘 넘게 기다렸지만, 여전히 그에게서는 돈이 오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돈은 아니었다. 그러나 난 그에게 좀 잔인하게 굴고 싶은 것 같았다.

우표를 사서 편지봉투에 붙이는 내 손끝이 잠시 진저리쳐지듯 떨려, 손끝에 잔뜩 풀이 묻었다. 풀 묻은 손을 휴지에 닦으며 나는 그것을 쾌감의 흔적이라고 믿기 위해 애썼다. 어쨌든 나는 이혼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도 내가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사람들이 눈치 채기 전에, 그리고 내 아이가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내가 재빨리 무대를 바꿔버린 것이다.

내 어머니나 형제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는 내 중국행을ꡒ내 아이를 세계인으로 만들고 싶어서ꡓ라고 거창하게 말하고 다녔다. 아이는 중국의 국제 학교에 입학할 것이고 머지않아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에도 능통하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어차피 살만큼 살았으니 이젠 서로 떨어져서 새삼 그리워하다가 가끔씩 감동적인 상봉을 하는 그런 재미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 제법 농담스러운 대사도 읊었다. 내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그렇게 ꡐ거창한 포부ꡑ를 밝히기 전에 이미 그런 ꡐ거창한ꡑ 일들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속아줄까 가슴 졸이며 시작했던 연극이, 나중에는 나 자신까지도 속게 만들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직전에는 내가 남편과 화해할 수 없을 지경으로 불화에 빠져 있는 상태라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심지어 나는 한국에 남을 그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만일에 그때 그가 내게 ꡐ가지 말라ꡑ는 말을 한마디만 했다면, 그게 아니라 ꡐ꼭 가야 하는 거냐?ꡑ고 묻기라도 했다면 나는 어쩌면 못 이기는 척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단지 한마디, 이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 왜 하필 중국이야.

내게 묻는 말이었으나 그의 말끝에는 의문부호가 달려 있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왜 하필 중국이냐고? 내 지인들도 그렇게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ꡒ21세기는 중국이다!ꡓ라고 호언했지만, 누군가는 기어코ꡒ뱁새가 황새 쫓아가자니 미국이나 캐나다는 너무 돈이 많이 든다는 거겠지ꡓ라는 비양거림을 감추지 않았었다. 설사 그것이 엄연한 사실이라고는 하더라고, 내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남편이나 아빠라는 배역이 존재하지 않는 무대이기만 하다면, 그곳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아프리카의 어느 이름 모를 나라든 아무 상관도 되지 않았다.

왜 하필 중국이냐고……. 날 비양거리고 싶은 내 지인들의 물음과 남편의 그것은 같지 않았다. 우리들의 대학 시절, 아직 청춘만이 전부일 수 있었을 때, 그 청춘에 순결한 믿음과 희망만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을 때, 우리는 암호를 대고서야 들어갈 수 있는 밀실에서 중국혁명사를 공부했었다. 그때 우리들에게 중국이란 나라는 금단의 나라였으나, 또한 금지된 이상(理想)이기도 했었다. 그는 불현듯 그 시절을 기억하는 듯, 아주 오랜만에 염증이 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건 오직 그 순간뿐이었다.

ꡒ당신한테 돈을 댈 능력만 있다면 굳이 중국이 아니어도 좋지ꡓ

내가 그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다시 현실의 자신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가 버렸다. 현실의 그……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밖에 있었다. 거의 매일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했고, 귀가는 늘 새벽녘이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출근하지 않을 때보다 출근할 때가 더 많았다. 출근하지 않을 때는, 일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몇 년 동안이나 나는 술에 취하지 않은 그를 본 적이 없었고, 그와 몇 마디 이상의 긴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없었다. 그에게 혹시 다른 여자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충고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내가 알기로 그에게 그런 존재는 결코 없었다. 혹시 그에게 그를 매혹시키는 다른 여자가 있더라도 그는 그 매혹을 고백할 시간조차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여자 따위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었고, 실제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나왔던 잡지사에 다시 재취업하게 될 때까지, 그는 자그마치 3년 동안이나 실업자였다. 그 3년 내내 그는 한푼의 돈도 벌어들이지 못했고, 그의 부친이 보조하는 돈과 내가 번역을 해서 벌어들이는 작은 수입에 기생했다. 내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것은 그의 울분이 아니라 모욕과 비굴이었다. 그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에 스스로 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때, 그는 아직 삼십대 중반이었으나 그 회사에 다시 재취업할 때는 사십이 코앞이었다. 그는 다시는 사표를 던지거나 하는 일은 하지 못할 터였고, 사직을 당해서도 안 되었다. 실업자로서 보낸 3년이란 시간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기 주장이 강했던 그를, 그리고 숲에 취하기만 하면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표현하고 또 틈만 나면 여행 정보 서적을 들척거리는 것을 좋아해 책에서 얻은 정보만으로도 세계 곳곳 안 가본 데가 없는 듯했던 그를, 단지 자기 것인 의자 하나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족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그가 벌어오는 돈을 아끼기 위해, 더 이상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쓰레기 같은 책의 번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나 피로한 그를 걱정해 봄가을 보약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 1년이 넘고, 2년이 넘고 기어코 5년을 넘겼을 때 이제 모욕을 당하고, 비굴해져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인 듯했다. 그즈음 그는 간혹 나를 바라보다 말고 깜짝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나는 그가 순간순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가 누군가……. 그런 혼란은 물론 찰나적인 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마자 그는 ꡐ그 여자ꡑ를 알고 싶은 욕망을 잃어버렸다. ꡐ그 여자ꡑ뿐만이 아니라 ꡐ그 자신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알려고 하는 것은 통장의 잔고와 노후에 받게 될 연금의 액수뿐인 듯했다. 때때로 그는 승진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승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에겐 더 이상 나와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그의 회사동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만취한 그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같이 택시를 타고 왔는데, 그가 택시 안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집이 어딘가를 정확히 물어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 전화를 건 그의 회사동료도 취해 있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내가 허겁지겁 야심한 밤거리를 달려나갔을 때 그들은 집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또 술을 시켜놓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은 포장마차의 테이블에 고개를 떨구고 울고 있었다.

- 제수씨가 이해하십시오.

그의 회사동료가 취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며, 내게 말했다.

- 이 지랄 같은 나라에서 밥 벌어먹고 산다는 건 말이죠. 제수씨도 그게 얼마나 지랄 같은 일인지 알잖아요. 산다는 건 정말 지랄 같은 일이라구요.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흐느껴 울고 있는 남편의 어깨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곳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고, 포장마차에는 이웃집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던 건 술 취해 울고 있는 내 남편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시선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그가 울고 잇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것, 어쩌면 평생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참혹하게 만들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본인이 울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리라는 예감이었다. 포장마차의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는 중년의 남자는 불쌍했다. 그리고 그 불쌍한 남자는 내 남편이었다. 나는 그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와 함께 울고 싶었다. 그와 함께 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그를 일으키기 위해 그의 어깨 사이로 집어넣은 손에 힘을 주자마자, 그는 마치 더러운 것을 떼어버리듯 내 몸을 거칠게 밀었고 엉겁결에 중심을 잃은 내게 모진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 개 같은 년! 입으로만 하라고 했잖아! 더럽게 어디다가 가랑이를 벌려! 그냥 입으로 빨기만 하란 말이야!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 어차피 서지도 않는단 말야. 어차피 서지도 않는다구……. 젠장…… 너무 오래…… 서질 않았어. 빌어먹을…… 젠장……이게 전부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말야……. 그런데 이게 전부더라구.

그런데 이게 전부더라고……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말한 ꡐ이것ꡑ은 무엇일까. 그 순간에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오래 전에 그는 단지 직장만을 가지지 못했을 뿐이었지만, 이제와서는 그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부를 알 수가 없으니, 그의 아무것이 무엇인지도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몇 차례나 오바이트를 하고 더럽혀진 침대 시트에 그냥 코를 박고 잠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새벽녘의 일이었다. 내가 그에게 원했던 것, 내가 내 삶에 대해 원했던 것…… 세월이 흐를수록 배반만 더해지던 내 삶의 욕망에, 그러나 내가 무릎을 꿇지 못했다는 것…… 어쩌면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그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용서할 줄 알았다면, 벌써 무릎을 꿇을 줄도 알았으리라. 그 새벽녘에 나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분노의 눈빛으로, 그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너무 오래 그렇게 한 덩어리 죽은 살점 같은 모습으로만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그의 전부였다.

 


오래 전에, 그가 아직 다행스럽게도 ꡐ실업자ꡑ이기만 했을 때, 그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혼자 비디오를 켜놓고, TV에서 녹화해 놓은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반복해 돌려보곤 했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같이 보는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실업자인 그가 미웠고, 그가 매일 정확한 시간에 집 밖으로 나가주기만 한다면 그가 밖에 나가서 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집 안에 틀어박혀 비디오를 보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할리우드 액션 영화도 아니고, 벌레나 곤충 따위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그날 그가 보고 있던 비디오의 껍데기에는, 〈한국의 나비〉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TV 화면 속에서는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였다. 카메라는 그 망망대해에서 뭔가를 열심히 추적하고 있는 듯했다.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리모컨을 찾아 볼륨을 놓였다. 한밤중이라 남편이 음소거 버튼을 눌러놓았던 모양이었다. 볼륨을 높이자마자,ꡒ저기다 저기!ꡓ라고 외치는 감격적인 탄성이 튀어나왔다. 카메라가 급히 쫓아가자 비로소 망망대해에 홀로 날아가고 있는 나비 한 마리가 잡혔다.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 제주왕나비가 바다를 건너가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보십시오. 저 작은 나비가 쉬지도 않고 수백 킬로미터의 바다 횡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고, 그리고 생각했다. 나비가 바다를 건너다니…… 세상에는 저런 거짓말도 있구나. 그러자, 내가 같이 살고 있는,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라는 남자가, 내게 기생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별것 아닌 것처럼도 여겨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거짓말들 중에, 내가 꿈꾸었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거짓쯤은 별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었다.

 


이 나라에 온 후 얼마 동안 나는 거리의 곳곳에서 툭하면 그를 닮은 남자를 보았다. 얼핏 본 앞모습이 그를 닮아 뒤돌아보면 영락없이 그였다. 머리 정수리에 두 개가 앉은 가마까지 똑같았다. 직장에 몰두하면서 점점 구부정해져 가던 어깨도 똑같았고 남자치고는 조금 큰 엉덩이까지 같았다. 남편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를 쫓아갔다. 그러나 길의 모서리를 돌면, 그는 어느 틈에 사라져버리거나 완전히 다른 남자가 되어 있었다.

한번인가는, 길모퉁이에서 그를 잃어버리고 망연자실 서 있는데 눈앞에 붉은 간판이 보였다. 중국에서 붉은 간판을 보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 가게가 문신을 하는 가게라는 것을 알았다. 중국에 와서 고작 열흘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중국 상점에 들어가 혼자서는 소금 한 봉지 제대로 못 사는 주제에 문신을 하는 가게에 들어가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발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어두컴컴했고, 향낸지 약 냄샌지 알 수 없는 것이 코를 찔렀다. 잠시 시야가 익기를 기다려 바라보니, 남편의 모습은커녕 그를 닮은 사람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다만 노인 하나가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게 보일 뿐이었다. 노인은 중국의 전통 복장을 하고 붉은 원탁 뒤에 앉아 있었다. 노인이 내게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노인의 등 뒤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아마도 문신의 표본들인 것 같았다. 용과 호랑이, 닭인지 봉황인지 알 수 없는 새의 그림들, 초서체의 글자들…… 그리고 나비가 있었다.

나비는 붉은색 부적처럼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한 발자국을 앞으로 옮겼다. 그때 노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다가,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발자국을 더 앞으로 옮겼고, 순간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나는 그때 나비의 날개 아래로 뚝뚝 듣고 있는 물방울을 보았던 것이다. 그건 바닷물이었다. 바닷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비는 날개가 젖고, 젖다 못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나비의 지친 숨소리와, 한 목숨쯤은 족히 다 절여버릴 만큼 짠 소금 냄새가 내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 나비 문신을 하겠다고?

노인이 외쳤다.

- 이건 위험해. 이걸로 문신을 했다간, 자넨 평생 바다 위에 있어야할 거야. 자네 같은 사람이 이걸로 문신을 했었지. 얼마 후에 바다에 나가봤더니 어떤 사람의 팔과 다리가 완전히 소금에 절여져서 바다에 떠있더군. 몸통이 없는데도, 팔과 다리는 계속 날갯짓을 해대고 있었어. 내가 새겨준 문신도 사라져버렸더군. 그냥 자리만 푹 팡 있는데, 날개가 찢겨진 자리가 선명해. 너무 오래 난 거지. 나비한테는 바다는 너무 넓단 말이야. 그 사람도 자네처럼 한국 사람이었는데…… 참 안됐지.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나비 문신을 했단 말야. 그리고 바다로 갔는데, 팔과 다리밖엔 안 남아 있었어. 그 한국 사람의 몸통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고 중얼거리기 시작한 노인의 말을, 나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알아들었다. 그때 내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더니, 팔과 다리 아래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없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데, 남편의 몸통이 바다 위를 둥둥 떠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몸통에서 떠나간 팔다리를 보고 싶지 않은 듯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곧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채금에게서 전화는 더 이상 걸려오지 않았다. 하긴 마지막 전화에서 그녀는 해야 할 인사를 다 챙겼다. 채금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채금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의 식당에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 한국에서라도 그녀를 만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채금이 그런 것처럼 내게도 채금에게 남아 있는 용건 겉은 건 없었다. 마지막 전화에다 대고 나는 말하지 않았던가? 잘 가서 잘살라고…….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던 것 같기도 했다.

며칠 후, 나는 가정교사에게 중국말로 조선족은 뭐라고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다음엔 마을이 뭐냐고 묻고 마지막으로는 택시기사에게 조선족 마을로 가자고 하면 알아듣겠냐고 물었다. 비로소 내 의도를 알아차린 가정교사가 채금의 집 앞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나섰지만, 나는 택시만 잡아달라고 했다. 가정교사는 왕복 택시비까지 흥정을 해놓은 뒤 내게 문을 열어주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40분쯤 후, 채금과 함께 왔었던 조선족 마을에 도착했으나 채금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방마다 들여다보았는데, 사람은 없고 커다란 트렁크 하나만이 새것으로 놓여 있었다. 채금의 짐을 챙겨놓은 트렁크일 것이다. 문득 그 트렁크를 열어보고 싶은 것은 자기 방에도 없고, 집 어느 곳에도 없는 채금이 실은 그 트렁크 안에 들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두 눈을 꼭 가린 채, 마치 ꡐ씨아즈ꡑ처럼…….

트렁크를 열어보는 대신 나는 채금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을 끌어 당겼다. 첫 장을 열자, ꡐ안녕하세요ꡑ라는 글귀가 보였다. 어느 나라 말의 교본이든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ꡐ안녕하세요ꡑ이다. 채금은 바로 그 옆에다가 서툰 한글로 ꡐ안녕하세요ꡑ를 반복해 써 놓았다. 연습장도 없이 교본에다 직접 글씨 쓰기 연습을 했던 모양이었다.

다음 장, 다음 장에도 채금의 서툰 글씨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나는 이채금입니다.

- 안녕하세요. 나는 이채금입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느닷없이 가슴이 결려오는데, 그건 채금이 써놓은 ꡐ한국 사람입니다ꡑ라는 서툰 글자 때문일까, 아니며 그 페이지를 온통 뒤덮듯이 써놓은 ꡐ안녕하세요ꡑ라는 글자들 때문일까. 안녕하세요, 라고 나는 혼자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순간 내 입속에 모래가 한 움큼 들어차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곧 내 온몸이 모래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채금의 방 문턱에 앉아서 채금이든, 채금의 아버지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20분 30분이 흐르도록,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집 앞에 멈춰 있는 택시도 움직이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그 사이에 낮잠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운전석 차창 밖으로 그의 고개가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떨궈져 있었다. 가을이었으나 무더운 바람이 끈끈하게 불고 있는 한낮이었다.

채금 아버지가 한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던 날도, 혹시 이런 날씨였을까. 나는 채금의 방문 문턱에 앉아 얼마 전의 저녁에도 바라보았던 채마밭을 내다보았다. 그날은 어둠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채금의 집 채마밭에 굵직굵직한 파들이 고랑을 따라 자라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날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파 냄새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냄새를 피로한 생과, 죽음의 냄새라고 생각했었을까.

내가 느닷없이 채금의 집을 찾은 것은, 채금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얄팍한 여비 봉투나 내밀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듯했다. 나는 아마도 채금의 아버지를 한 번쯤 더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무슨 뜻이었느냐고…… 그날, 당신은 나를 어떤 눈으로 보았던 거냐고…… 아마도 묻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벌판 저쪽 논두렁 사이에서 절뚝거리는 걸음새가 뚜렷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만나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채금의 집에 머문 시간이 50분…… 그만하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나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본 것 같은 붉은 간판의 가게를 보았다. 바람결에 가게의 발이 흔들리는데, 그 안쪽으로 얼핏 내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택시를 세우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별 방법이 없었다. 택시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택시가 바다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다에는 팔다리가 사라진 그가 둥둥 떠 있다. 비록 몸통뿐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를 아주 오랜만에 안아주고 싶었다. 팔다리가 없어서 나를 마주 안을 수가 없는 몸통뿐인 그는, 내게 안겨서도 점점 더 푹, 짠 소금물에 절여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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