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난다. 그런데 16절에서는 <그 사람들>로 기록되어 있고 3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을 마치시고>로 되어 있다. 또 1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마무레 상수리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로 되어 있다. 이 구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만난 신은 분명 하나님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19장에서는 여호와가 <세 사람>, <두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고 19장 1절에서는 <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로 돌변한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만난 것은 하나님인가 천사인가?
그리고 그들은 1장 26절에서 언급된 <우리>인가?
많은 성서그림들에서도 아담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천사들이 그려져 있다. 야곱도 벧엘 땅에서 꾼 꿈 속에서 천상으로 이어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보았고 여호수아에게도 천사가 나타났으며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i아낸 다음 천사더러 생명수를 지키게 하고 있다. 그러니 천사들이 하나님과 함께 존재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등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천사들은 도대체 누가 창조한 것인가?
야곱이 꿈에서 보았다는 천사들의 모습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날개가 달렸는가 하면 날개가 없는 천사도 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권에서 제외된 독립적 존재인가. 그들의 권능은 하나님과 동등한가. 아니면 인간처럼 하나님과 주종관계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야곱이 꿈에 본 천사들은 어떤 그림에서는 남자로 어떤 그림에서는 여자로 그려져 있다.) 천사는 하나님처럼 역시 신적존재인가. 신적 존재라면 자신 이외의 모든 신을 배척하는 하나님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어찌되었든 문제는 천사들이 하나님 우주창조 이전의 태초에서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권능이 하나님과 거의 동등하다는 것이다. 날아다니고 변신하고 예언하고 축복하고 징벌하고 대행하고...
하지만 이들 천사들은 이름 한 자 남기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외모와는 달리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성경의 곳곳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물론 아담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도 하나님을 닮았을 것이니 우리 자신을 미루어 하나님을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성경에서는 하나님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성격적 특징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성경 속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격적 특징은 <질투>이다. 이에 못지 않게 빈번히 노출되는 성격적 특징은 <진노>이다. 자비와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예수와는 달리 자신의 흥분을 억제하는 자제력이 결핍한 충동적 성격의 소유자임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걸핏하면 질투하고 진노한다. 일단 분노하면 이성을 상실하고 감정적 복수나 징벌에만 급급해진다. 누구든 순종을 거부하기만 하면 참지 못한다. 교화하고 설득하는 인내성이나 관용의 미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폭력이다. 구원은 순종할 때만 베풀어지고 있다. 순종을 거역하면 위협과 공갈을 동원한 언어적 폭력이나 죽임을 내리는 육체적 가해를 무차별적으로 강행한다.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1:26)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최초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른바 치자治者로 창조된 아담과 이브에게는 치자로서 가져야 할 아무런 능력도 없다. 선악을 분별할줄 아는 능력마저도 없다. 또 관할 영역이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으로 되어 있지만 2장 19절에서는 다시 각종 짐승을 창조하고 그에게 관리를 일임하고 있다. 즉 그의 관리 범위는 땅위에 있는 전부의 짐승이 아니라 이른바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에 국한되고 있다. 아담이 지었다는 짐승이름들도 에덴동산의 짐승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겐 이러한 동물들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혜와 힘 두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보다시피 창조 6일만에 남자와 여자는 이미 창조되었다. 그러나 2장 7절에는 인간인 남자 아담이 다시 창조되고 있으며 여자는 2장 22절에서 재창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창조의 6일 간에는 동물이 먼저 창조되고 사람이 그 뒤에 창조되고 있지만 2장 7절과 2장 19절을 보면 사람이(아담) 먼저 창조된 다음 짐승이 나중에 창조되며 다시 사람이(이브) 창조되고 있다. 도대체 어느 설을 믿어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완전히 혼란상태이다.
하나님은 <우리> 또는 하나님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되어 있는데 과연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에게서 체현되었는가, 이브에게서 체현되었는가. 하나님은 남녀의 두가지 기능을 다 가진 존재인가. 그것도 아니면 <우리>들 중에는 이미 아담과 이브가 닮은 남녀성별이 나뉘어져 있었는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다
날개가 달린 모습은 천사를 닮았다
그리고 하나님 또는 <우리>가 창조한 아담과 이브는 아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성인(어른)이었다. 성장과정이 완전히 무시 또는 생략되고 있다. 즉 정자와 난자의 결합, 임신, 출산, 영아, 소년, 어른에 이르는 성장과정이 무시된 채 처음부터 성인으로 탄생한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러한 성장과정들이 창조 초기에는 고려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추가된 기능들일까.
2. 인간은 무지, 무능한 존재였다.
복을 주시며(1:28)
다스리는 것과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최초인에게 주어진 이른바 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조차 없었으며 벌거벗고 생식기를 드러내고서도 수치스러운줄도 모르며 성적느낌이 전혀 없다. 여자를 창조한 이유는 단지 남자가 홀로 있는 모습이 보기가 싫어서였을 뿐이다.(2:18)일단 그들이 성적 결합을 시도하고 생육을 하였을 때는 그런 과정들과 최초인이 범한 원죄에 대한 징벌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는 복조차 그들에게는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문구를 보면 인간에게 내려진 복은 이것이 아니라 생육과 번성임을 알 수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1:28)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훔쳐먹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성기에 대해 전혀 부끄러운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생식기와 성기의 기능과 용도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도 선악과를 금한 걸 보면 아담과 이브의 성기능에 대한 인지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성기창조목적은 무엇인가. 남녀성기중 어느쪽이 하나님의 모양을 모방한 것일까 하는 불손한 의문을 접어두고서라도 성기의 창조는 단순히 인체내 노폐물배설기관으로서의 작용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선악과를 훔쳐먹지 않았더라면 아담과 이브는 영원히 성기가 생식기관임을 모르고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앞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성기를 배뇨기관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자의 유방은 생육과 육아목적 외엔 별도의 용처가 없으니 하나님의 성기창조가 만일 배뇨기관의 용도로 그쳤다면 유방의 창조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모습이 그러했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긴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왜 유방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선악과의 식용을 금지시킨 건 남녀의 성결합과 출산을 바라지 않았고 또 인간이 땅덩어리 위에 번성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대목에서는 인간더러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내리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내려주었다는 복인 생육과 번성의 기능을 하나님의 제지 때문에 억압되어 있다가 선악과를 훔쳐먹고서야 비로서 성기의 용도를 알고(수치심) 그것이 배뇨기관인 동시에 생식계통임을 깨닫게 되어 무화과나무잎으로 앞을 가린다.
선악과를 훔쳐먹는 아담과 이브
당시만 해도 쓸모가 없었을 유방이 임산부처럼 너무 풍만하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
생유과 번성은 원죄에 대한 징벌인 동시에 인간에게 내린 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에게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인간은 자신의 생육을 통한 번성의 권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른 셈이다. 아니었다면 인간은 영원히 선악도 분별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로 초식을 하며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은 채 사랑도 모르고 생육도 없이 둘만이 살았을 것이다.
아담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워낙 이브를 창조할 계획이 없었다. 아담을 만들어놓고 보니 그가 보기에 외롭고 고독하여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음으로> 그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창조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배필>이란 남녀의 성결합을 전제로 한 부부라는 의미가 아니다. 2장 18절에 보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고는 흙으로 각종 짐승들을 지었다는 문구를 보고서도 그러함을 일 수 있다. 배필은 곧 벗이다.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1:29)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하사받은 음식물은 육류가 아닌 초식이다. 당시에는 유독성식물이 없었거나 아니면 유독성식물을 먹어도 인간은 중독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씨를 맺고 씨를 가진 열매와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식용으로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이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선악과는 열매를 맺고 씨를 가진 식물이지만 식물食物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지적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식물食物임에도 불구하고 금지되어 있다. 하나님에게는 선악을 분별할줄 아는 지혜로운 인간보다 순종을 잘하는 무지몽매한 인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였음이더라.(2:3)
이와 같이 하나님의 우주창조는 7일만에 모두 끝난다.
혼란스럽기만 한 7일간의 창조과정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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