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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스크랩] 하나님은 없다

by 8866 2006. 10. 8.

 

 

연재 2

 

2장 하나님 우주창조설과 여러 나라 우주창조신화와의 비교

 

 에누아 엘리쉬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의 우주창조신화이다. 아카드어설형문자가 새겨진 이 사본의 구운 점토판 7개가 1849년 레이야드(A.H.Layard)에 의해 이라크의 쿠준직(koujunjic) 마수르에서 발굴되었다.

 이야기의 기본내용은 다름아닌 우주창조와 인간창조이다.

 물론 이 신화도 성경이 모세와 제사장들을 비롯한 특권귀족층의 정치적 목적으로 집필된 것처럼 함무라비왕조와 그 뒤를 이은 통치자 앗시리아가 권력을 도모하기 위해 집필되었으며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그 내용도 상황에 맞게 수정되었다.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림 1. 메소포타미아 고대지도

 

  높은 곳에서...

  하늘이 이름지어 지지 않았고

  땅이 불리지 않았으며

  아눈나키(Anunnaki)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태초의 아버지인 압수와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티아맛 뿐

  두 수체(水體)가 하나가 되도다

 

 태초의 우주는 <성경>과 다를바 없이 혼돈과 무의 세계였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혼돈의 우주에서 유일한 질서는 오로지 하나님 뿐이었지만 여기서는 남자인 압수와 여자인 티아맛(Tiamat) 두 신이 공존한다. 더구나 두 남자도 아니고 두 여자도 아닌 남여이다. 이들의 성적결합에 의해 우주는 합리적으로 탄생한다. 물론 그들은 사람이 아닌 물(水體)로 표현되고 있다. 압수는 담수淡水의 신이고 티아맛은 염수鹽水의 신이다. 이러한 다신多神에 의한 우주창조현상은 일본신화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천지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을 때 천상계에 나타난 신의  이름은 아메노미나카누시가미(天之御中主神)이다. 그 다음으로 나타난 신은 타카미우스히노가미(高御彦單日神)이고  그 다음으로 나타난 신의  이름은 칸무스히노가미(神彦單日神)였다. 이 세 명의 신은 모두 단독의 신으로 있다가 몸을 감추었다.

                                                                                                                           <일본고사기>

 

 여기서도 신은 하나 뿐이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독신이요 그 때문에 독선적존재로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

 <고사기>를 보면 그 뒤에도 많은 신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나중에는 여러 천신들이 이자나키노미코토(伊耶那岐多)와 이자나미노미코토(伊耶那美命)의 두 신에게 명하여 국토를 창조하도록 한다. 그들은 남여신으로서 로맨틱한 현대식 연애를 통해 결혼하며 자식을 낳는데 그 자식들이 바로 국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성적인 결합마저 전혀 없이 홀로, 단지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우주를 창조한다.

 그리고 일본신화나 메소포타미아신화, 중국신화를 살펴보면 창조주는 죄다 생멸(태어나고 죽는)과정을 거친다. 압수도 나중엔 죽고 중국신화의 창조주 반고도 <어둑한 한덩어리의 혼돈으로 마치 큰 달걀과 같은>무질서한 우주의 산물로 태어나서 1만 8천만년만에 죽는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탄생이나 죽음에 대한 기술이 전무하다. 그는 유아독존이고 영생불멸의 존재이다.

 성경 이외의 신화들에서 천체와 인간은 신의 연장이며 일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이 비록 신의 피조물이긴 하지만 신과의 사이에 주종관계가 없는 평등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신화에서 압수와 티아맛의 피조물들은 창조에서나 능력에서나 지혜에서나 어느 면에서도 신보다 못하지 않음을 알수 있다.   

 

  그때

  라무(lahmu)와 라하무(lahamu)가 창조되어

  그들의 이름이 불렸다

  그들의 지혜와 키도 자라기 전에 

  안샤르(Anshar)와 키샤르(kishar)가 창조되었으며

  그들의 조상들을 능가하였다.

 

 창조주가 창조한 건 신이다. 일본신화에서도 신이 신을 창조하고 있다, 창조는 하나님의 경우처럼 한 신의 손에서 완성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신을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여기서 지나치지 말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구절이 있다. 창조주의 피조물인 안샤르와 키샤르는 <그들의 조상들을(즉 창조주) 능가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지혜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그자체만으로도 죄악으로 간주된다. 아담과 하와가 금과를 훔쳐먹고 선악을 알게된 것이 인류의 첫 죄악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후대로 내려갈수록 에누마 엘리쉬신화에서는 후손들이 조상들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에아에 이르러서는 <명철과 힘이 커져>갔으며 <위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의 첫선조인 아담은 신의(압수와 티아맛)결합으로 탄생한 라무, 라하무, 에아와는 달리 진흙으로 빚어진, 선택의 권리마저 없는, 선악조차 분별할줄 모르는 무지의 존재였다.

 하나님이 지혜도 능력도 없는 이러한 백치를 창조해낸 건 인간의 지혜와 권능이 자신과 동등해지거나 초월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그가 인간에게서 바란 건 오로지 하나 순종뿐이었다.

 하나님의 인간창조는 순종을 기대하는 의도에서 발상된 것이었지만 메소포타미아신화나 일본신화를 보면 창조주들의 결합에 의해 자연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창조에는 피조물에 대한 대가요청이나 기대같은 것이 없었다. 그것은 조물주의 자유의지마저 초월하는 창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존재의 정상적생멸의 과정이었을 따름이다. 결코 <보시기에 좋아서> 창조한 것도 아니었다.

 

 

 그림 2. 에아(압수라고도 부름)와 시중드는 신들

 

 신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압수의 휴식을 방해하게 되었다. 화가 난 압수(창조주)는 우주를 원래의 혼돈상태로 회귀시키려고 시도한다. 하나님도 인간의 죄악을 징벌하려고 <노아의 홍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러나 압수는 결코 피조물이 자신한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물주의 뜻에 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벌을 내린 것도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는 털끝 만큼의 굴욕적인 주종관계도 없었다. 그저 공존자로서 평등하게 대결하고 있다.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징벌에 당하기만 할 뿐 반항을 못한다. 그러나 이 신화에서는 피조물인 에아가 창조주인 압수와 당당히 맞설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를 죽이고 승리를 쟁취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피조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에 예속되지 않는 완전한 독립적존재였다는 점이 오늘 날까지도 죄인으로 벌을 받아야 하는 인간의 노예적 운명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선택권마저 없다

 

  신성한 압수의 심장에서

  바르둑이 창조되었다

 

 창조는 일차적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성경에서처럼 6일 동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피조물은 진흙이 아닌 창조주의 심장에서 창조된다. 피조물은 곧 창조주의 분신인 셈이다.

 중국신화에서도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반고가 죽어갈 때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으로, 목소리는 천둥소리로,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쪽 눈은 달로, 몸은 대지와 산으로, 피는 강물로, 혈관은 길로, 살은 전답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별로 피부와 털은 화초와 나무로, 이와 뼈, 골수 등은 금속과 단단한 돌로 변한다. 

 

 

 그림 3. 천지개벽의 신 반고

 

 이처럼 신들은 자신의 온몸을 헌신하고 있다. 우주는 곧 신의 연장이며 그런 연유로 우주와 신은 주종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주창조와 인간창조에 손톱 하나, 머리카락 한 가닥 소모하지 않는다. 그가 우주와 지구와 동식물을 창조하는데 사용한 것이 있다면 단 세가지-소량의 진흙과 입김, 그밖에 아담의 갈비뼈 한 토막뿐이었다. 그러니 이 우주와 인간에 대해 각별한 애착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태초의 상태가 암흑과 혼돈이었다는 건 어느 신화에서나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단 6일만에 일차적으로 우주창조를 전부 완성한다. 그러나 여러 신화들에서는 우주와 인간창조는 일차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신이 아니라 여러 신을 전전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모든 신은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주이다.

 

  그의 (마르둑)눈빛은 예지에 빛났고

  그의 걸음은 위엄 있었고

  그의 형체는 경외를 표할만 했다

 

 이 신화를 읽노라면 창조주의 위대함보다도 피조물의 위대함에 필묵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담과 하와는 예지와 위엄은커녕 선악도 분별할줄 모르는 어리석고 유치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물론 여기까지는 아직 최초의 인간이 아닌 신들의 세계이지만 그들은 압수와 티아맛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피조물임에는 틀림없다.

 

  에아는 마르둑을 무결無缺하다고 선포했으며

  그에게 두 배의 신성을 부여하였다.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물인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하고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이다. 에아는 마르둑의 창조주이며 아버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마르둑을 과감히 <그의 조상들 위에 높이 세웠>을뿐만 아니라 <모든 조상들 위에 가장 높이 세웠>으며 거대한 힘과 통찰력을 부여한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가릴줄 알게될 거라고 유혹한다.(이 말이 사실이라면 뱀이야말로 인류를 무지와 유치함에서 계몽에로 유도해낸 첫선각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더러 선악과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그들이 눈이 밝아져 자기와 같은 지혜를 얻를까 두려워서였다.

 순종에는 지혜가 필요없다. 자신의 의지를 포기한, 믿음과 결탁한 무지 하나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는 (에아의 아들 마르둑)명확히 들었고

  그는 꿰뚫어보았다.

 

 피조물이 눈이 밝아져 선악을 분별할줄 알았음을 의미한다. 에아가 그에게 <두 배의 신성을 부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도 마르둑은 최초의 창조주 티아맛을 향해 무례하게도 도전장을 내던진다.

 

  그대는 자신의 자녀들을 내팽개쳤다

  ... 

  그대의 괴물들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 그대에게 도전하니

  ...

  나와 결투다 일대일로

 

 성경에서라면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패덕을 꾸짖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마르둑은 과감하게 주의 패덕을 질책하며 당당히 도전한다. 그들 사이의 서열적균형을 유지시켜주는 명분은 주종관게가 아니라 윤리적당위의 정의와 정당성이다.

 <모든 신을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구절에서는 창조주라고 해서 무조건 진리의 체현자는 아니라는이치를 말하고 있다. <일대일로>라는 표현에서는 양자대등관계를 다시 한번 입증해주고 있다.

 이어 창조주와 피조물은 치열한 격투를 벌인다. 티아맛이 입을 벌리자 마르둑은 광풍을 그녀의 입에 불어넣어 팽창시킨 다음 번개화살을 쏘아 그녀의 심장을 맞힌다. 마르둑은 죽어가는 티아맛의 육체를 밟고 승리자가 된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갈등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하나님인 성경과는 달리 이 신화에서는 반대로 피조물이 역전승한다.

 

그림 3. 중국TV드라마 반고의 광고포스트

 

 역시 여기서도 우주는 신의 육체를 재료로 창조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티아맛의 시체를 돌로 쪼개어 하늘과 땅을 창조한다. (천지가 탄생하기 전인데 돌이 어디서 생겨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이렇듯 신과 우주는 불가분으로 연결되어있으며 하나의 수평선상에 놓여있다. 

 물론 여기까지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사연이 아니라 신들의 세계에서 그들 간에 벌어지는 사연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압수와 티아맛의 피조물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어 마르둑과 에아는 인간을 창조할 계획을 의논한다.  우주창조와 인간창조는 하나의 전능한 신적존재나 일차적수행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들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며 특히나 인간의 창조는 기나긴 준비과정과 신중한 구상, 면밀한 계획과 반복적인 의논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들은 신인 킹구를 죽여 그의 피로 인간을 창조한다. 인간 역시 근본은 신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진흙이나 갈비뼈가 아닌 신의 피로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 살며 동식물을 관리할 벼슬 아닌 벼슬을 하사하지만 이들 신들은 최초인에게 일을 하도록 기능을 부여한다. 

 성경에서 인간의 노동은 선악과를 훔쳐먹은 죄악에 대한 징벌이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신화에서도 인간은 처음부터 일할 운명을 타고난다. 그때는 아직 동물도 창조되기 전이었다. 동물들은 노동의 고역을 면하긴 했지만 그대신 인간이 가진 지능은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은 지능적활동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우주창조설과 우주창조신화의 비교에서 창조주는 독단적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방대한 신들의 공동체였음을 알게 된다. 우주와 인간은 여러 신들의 지혜에 의해 창조된다. 

 

 . 하담과 하와의 역사       

 

 1장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했는가?

 

 1. 하나님의 형상

 

 다음주 월요일 계속                      

출처 : 문학과 작가
글쓴이 : 아데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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