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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스크랩] 하나님은 없다

by 8866 2006. 11. 4.

 

  모든 종교는 죽음의 공포를 팔아먹는 사기술이다-에피큐로스

     (도올선생 TV강의에서)

 

 연재 6

 

 갈빗대는 여자가 만들어질 때부터 남자신체의 한 부위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에게 예속된 여자의 운명은 하나님이 내려준 것이다. 성경이 기독교신자들의 주장처럼 절대진리라면 여자들은 남녀불평등 때문에 느끼는 불만을 남자들을 향해 터트릴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원망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의 의지대로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던지.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더라(2:25)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동물과 달리 인간이 윤리적 존재임을 의미한다. 인류문화는 윤리적 당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도덕을 벗어난 행위는 곧 수치스러움이고 수치스러움은 악에 대한 선의 각성이다.  악은 늘 도덕이 부재하는 자리에 존재한다. 인간이 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하사받은 (강요당했다고 하는 표현이 훨씬 적절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속성 가운데는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와(더 정확히 말하자면  윤리적 사고)수치심을 느끼는 도덕성조차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무지가 질타의 대상이 될 대신 도리어 그것을 알려는 행위가 죄악시되고 있다.

 

 

  2장 이른바 원죄와 에덴동산에서의 최초인의 세가지 행위    

 

 1. 인간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가?

 

 최초의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모두 세가지 행위를 하고 있다.

 첫째로는 아직 이브가 창조되기 전인데 아담이 하나님이 이끌어온 동물들의 이름을 지은 것이고

 둘째로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며

 셋째로는 무화과나뭇잎을 따서 치마를 엮어 입은 것이다.

 

 
 인간의 문명은 무화과나뭇잎 한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앞의 두 행위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의지적인 행위가 아닌 남이 시켜서 한 타율적 행위이다. 동물의 이름을 지은 것은 하나님의 지령에 따른 것이고 선악과를 훔쳐먹은 것은 뱀의 유혹에 빠진 것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을 행하도록 시켰고 (예를 들면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한 것)뱀은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이렇듯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 그리고 자율적 행위의 기능이 없게 된 원인은 다름아닌 선악을 분별하는 지능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당연히 외적자극이나 유혹의 유도하에서만 제한된 타율적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첫번째로 되는 인간의 자각적 선택과 행위가(무화과나뭇잎으로 성기를 가리는 행위)선악과를 훔쳐먹고난 다음이라는 사실에서도 추측이 가능하다. 선악을 분별할줄 알았기 때문에 자율행위가 비로서 가능해진 것이다선악과를 훔쳐먹기 전에는 수치심이 뭔지도 놀랐다. 말하자면 문명과는 거리가 먼 동물에 불과했음을 알수 있다.

 

 
 뱀과 이브

 뱀의 정보제공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영원히 무지몽매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창조했는가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나 천사들이 선악과를 식용으로 했다는 내용도 없다. 선악과는 비록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식용으로 하지 않아도 선악을 알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듯 하나님과 천사들에게도 필요없는 나무라면 더구나 그 나무의 존재가 의심된다.

 

 동산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1:9)

 

 무용지물이긴 생명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체는 우주와 더불어 하나님이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왜 별도로 생명나무가 창조되었을까? 혹시 생명은 물질에서 산생되었음을 은연중 암시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생명은 하나님과 물질 두가지 경로를 통해 산생했다는 메시지일까.

 설령 그것이 생명을 산생시키는 나무가 아니라 생명의 장수를 가능케하는 열매라고 해도 그 의미는 여전히 아리송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아담과 이브를 창조할 때 제한된 생명을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몰라도 적어도 최초의 인간은 생멸生滅을 초월한 존재였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이 유한이 아닌 무한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은 또다시 하나님이 내린 축복과 모순된다. 죽음이 배제된 생육과 번성은 생멸生滅에 의해 균형이 잡히게 되는 생명의 순환질서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죽음이 배제된 생육과 번성은 결과적으로 일방적 인구포화로 치달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창조가 처음에는(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균형과 비례질서가 온전하게 잡히지 않았음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된다. 

 

 
 별 쓸모가 없는 생명나무

 인간의 생멸과정은 인간이 죄를 지은 다음에 별도로 추가된 기능이다. 그러니 생명나무는 평범한 열매로서 배를 불리는 이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있을 수 없다.

 아무튼 생명나무이건 선악과이건 둘 다 무용지물이긴 마찬가지인데도 또 생명나무는 식용이 허용되고 선악과는 이상하게도 식용이 엄격히 금지된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생명자체이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따위는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인간은 허락된 생명나무는 먹지 않고 금지된 선악과를 훔쳐먹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간은 이미 생명을 얻었으며 또 장수할 수도 있었기에 생명과일은 먹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물론 뱀의 유혹이라고 하지만)선악을 분별할줄 아는 도덕적 존재가 되고 싶어던 게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또 제기된다.

 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할 때 선만 부여하지 않고 악까지 부여했는가 하는 사실이다. 선악과의 존재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는 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도 함께 공존함을 분명히 설명한다. 하나님은 선과 함께 악도 창조했다. 환언하면 하나님은 선과 악 두가지 속성을 죄다 포괄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그것이 인간더러 악행을 저지르게 한 최초의 원인제공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악이(뱀, 사탄) 없었다면 인간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뱀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도 눈이 밝아 악을 버리고 선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눈이 어두우면 선을 모르고 악을 행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면 그게 왜 나쁜 일인지 납득이 안간다.그런데도 하나님은 몽매한 인간이 그런 지혜를 가지는 것을 극력 저지하고 있다. 인간에게  뱀의 존재는 어찌보면 순종만을 강요하는 절대권위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진리에로 인도해주고 무지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계몽시켜준 최초의 선각자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것은 의미없는 영생과 무지몽매이지만 뱀의 덕분에  인간이 얻게 된 것은 그보다 훨씬 많은, 선악을 구별하는 지혜와 문명의 열차를 달릴 수 있는 철길-도덕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밖에 생육, 노동 등의 기능도 사실은 뱀의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선악을 구별한다는 표현이 행함의 의미가 결여된 단순한 판단력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면 분명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는데 만일 그러한 기능이 행동이 배제된, 판단력에만 국한될 뿐이라면 하나님은 판단만 할뿐 행할 능력은 없다는 해석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림에서 선과 악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몸체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이 자신과 같아지는 걸 두려워했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사이에 주종관계를 유지하고 순종만을 받기 위해서는 능력의 차별을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문명화된, 유능한 인간을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순종만 하는 인간을 바랐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오늘날의 인간, 발달한 과학문명을 소유한 현대인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과학마저도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본다. 자신의 영역인 신비의 공간을 압박해들어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훔쳐먹은 절도죄를 범하게 된 원인은 최초인이 그때까지도 선악을 분별할 도덕적, 지적능력이 결여되었다는데 있다. 자각적인 행동도 아니었다. 분별력결여로 사탄의 충동질에 속아넘어갔을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문명의 길로 가는 통행증인 지혜와 도덕을 도둑질로 훔쳐야만 했다. 결국 그것이 죄가 되고 순종의 빌미가 되고...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3:1)

 

 간교함 역시 하나님의 걸작이다만일 하나님은 선한 뱀을 창조했는데 뱀이 스스로 간교해졌다면 그건 기독교가 가장 반대하는 <진화론>을  승인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로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세계가 정반합구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싶다. 악이 없으면 선도 있을 수 없다는 진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

 

 뱀은 간교할 뿐만 아니라 선견지명이 있는 지혜로운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주 월요일에 계속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출처 : 문학과 작가
글쓴이 : 아데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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