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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스크랩] 하나님은 없다

by 8866 2006. 10. 29.

 

 

 연재 5

 

 이와같이 하나님의 우주창조는 7일만에 모두 끝난다. 물론 그 중에는 대기와 같이 생명체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들의 창조가 루락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인정하건대 필요한 건 죄다 창조된 셈이다.

 그런데 아래 구절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참으로 창조가 모두 완료된 건 아님을 알게 된다. 여기서부터 창조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음으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2:5)

 

 7일만에 모든 창조가 끝났는데 아직도 들에는 초목과 채소가 나지 않았다니 이게 웬일인가?!

 제1장 30절에 보면 <푸른 식물>들은 이미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창조의 다섯번째 날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2:7)

 

 역시 사람은(남녀) 6일만에 이미 창조되었다. 물론 제2장은 앞서 6일간의 창조를 구체적으로 반복,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제1장 20절, 25절에 보면 생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있으나 제2장 19절에 보면 각종 생물진흙으로 빗고 있다. 혹여 이러한, 동일한 창조물에 대한 부동한 창조방법을 에덴동산에만 국한된, 특수지역에 대한 창조에만 적용되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도대체 에덴동산의 창조는 하나님 창조역사의 그 6일 동안에 진행된 것인가 아니면 그와는 별도로 추가로 창조된 것인가. 만일 추가로 행해진 별도의 창조라면 창조작업을 끝내고 취한 7일만의 안식일은 중도에서 취한 것이 될 것이며 그러면 그 안식일은 나중에 백성이 지키지 못하면 죽임을 내릴만큼 신성한 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와신이 흙으로 사람을 빚는다


 만일 에덴동산의   창조가 6일 안에 진행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이곳의 창조만은 별도의 방법으로 진행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다시말하면 지구 위의 모든 생물과 동물은 말씀으로 지으시고 에덴동산의 동식물만은 진흙으로 빚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창조가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계속 진행되었다는 판단과  6일간의 창조에 별도의  창조방식이 적용되었다는 것은 죄다 불가능한 일이다. 집필자의 실수로 문장의 중복에서 우발된 오류라고 눈감아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성경의 학술적 가치와 신빙성이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에 이 역시 불가능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앞뒤가 맞지 않는 기술이 있다.

 제1장 26절, 31절에서는 동물을 창조한 다음에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제2장 18절에서는 인간창조 다음에 동물이 창조된 것으로 되어 있다. 

 도대체 순서가 어떻게 되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아무튼 인간은 우주창조에서 티끌 하나 사용한 적이 없는(에덴동산의 동식물 창조에서 진흙을 사용해 빚어낸 기록은 위에서 보았듯이 문제가 많다) 하나님의 우주창조에서 진흙으로나마 재료를 사용한 유일한 한 차례의 창조이다. 우리가 2절에서 잠간 살펴보았듯이 메소포타미아신화, 중국신화, 일본신화들에서는 신의 육신이 (비록 죽은 다음이긴 하지만)천체나 인간창조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2차적 피조물인 진흙이 인간창조의 재료가 되고 있다. 이는 신과 인간의 귀천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서술이다. 에누아 엘리쉬신화에서 인간은 신인 킹구의 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인간과 신은 직접적인 혈통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진흙으로 빚은 인간은 하나님과 어떠한 혈육관계도 있을 수 없다. 그럼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혈통관계가 아닌 단순한 주인과 종이라는 수직적 서열관계일 수밖에 없다.

 혈통관계가 인전되면 주종관계가 불가능해진다. 하나님이 다른 무엇도 아닌 진흙으로 인간을 빚은 건 바로 이 주종관계를 건립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흙이 인간창조의 재료가 된 원인이 하나 더 있다면 인간을 흙에 매워 사는 운명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주의할 점은 에덴동산의 동물과 인간은 같은 재료인 진흙으로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하나님에게는 처음부터 동물로 간주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 뿐이다. 사실 인간의 지능도 창조 초기에는 동물보다 별로 우?션? 것이 없었다. 선악의 분별력도 없었고 벌거벗고도 부끄러운줄을 몰랐으니 말이다. 동물과 다른 노동기능과 도덕성은 원죄에 대한 징벌로 강요된, 후천적으로 추가된 능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능력이라기보다 형벌과 고문의 수단이었다.

 한가지 더 첨부한다면 세계의 여러 인간창조신화들에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설이 많은데 성경집필자도 그런 내용을 참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표현은 거의 무당의 주술적 기능을 연상케 한다. 숨결과 호흡은 산소흡수와 이산화탄소의 배출이다. 인간은 산소를 흡수해야 살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기를 창조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주었다는데 동물의 생령은 어떻게 주었을까 궁금해진다.  

 

 에덴동산은 왜 창조했는가?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2:8)

 

 6일간의 우주창조와는 별도의 추가창조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대목이다. 하나님자신을 위해, 천사들을 위해 창설된 특별구역이었던지도 모른다. 인간은 동산의 모든 동식물을 다스리기 위해 창조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이 다스려야 할 동식물도 창조되기 전에, 텅 빈 공간 안에 인간이 창조되고 있다. 그래도 6일 간의 창조일정을 보면 동식물이 먼저 창조되어 인간이 다스려야 할 대상이 존재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동물은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덜기 위해 창조되고 있다.

 

 









에덴동산의 원래 위치라고 주장하는 자료들

 
사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덴동산이라고 해서 다른 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라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천사의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여느 고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명수와 선악과가 있다는 것뿐이다.샘물과 과일은 비옥한 땅이라면 어디에도 있었을 것이다. 금은, 진주, 마노도 에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산은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오랫동안 느껴야 했던 하나님과 천사들의 권태와 무료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듯 싶다. 선악의 분별력과 지혜도 없는 인간에게 동식물을 다스리는 벼슬자리 하나 때문에 동산이 낙원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과 천사에게는 낙원이었음에 틀림없다. 흑암과 혼돈의 세계에서만 살아온 그들에겐 이 모든 질서의 세계가 난생처음이었을 것이 틀린없다. 동산에는 또 그들을 위해 순종만 하는 종, 인간이 있었고 동물도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지혜와 능력을 가진 하나님과 천사들의 종노릇을 해야 하는 불행한 운명의 소유자였을 뿐이다. 그러니 인간에게는 에덴이 결코 낙원일 수 없었다. 그 곳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박탈당한(선악과를 먹을 권리도 없었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마저도 박탈당했다)구속의 땅, 무지의 땅이었을 뿐이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2:9)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네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2:17)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2:5)

 

 먹지 못할 과수는 왜 만들었을까.

 하나님과 천사들에게는그것이 피조물이니까 선악과를 먹지 않고도 선악을 분별할 능력이 있었을 게 아닌가. 그러한 사실은 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두번째로 의문되는 점은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인간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할줄 아는 것을 두려워 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것을 먹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할만큼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는 지헤를 가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선악을 알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면 그게 왜 나쁜 일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기대한 건 맹목적이고 무지한 순종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가 필요없었다. 주종관계의 확립은 능력의 차이에서만 비로서 가능해질 수 있다. 능력이 대등하면 순종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한사코 선악과를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의지를 초월한, 어떤 제 2권능자에 의한 불가피한 창조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인간이 먹을까 두려워하면서도 선악과를 창조하였으니 말이다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2;19)

 

 앞에서와는 달리 말씀으로가 아니라 으로 생물을 빚고 있다.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마을이요 인간이 사는 고장이라서 짐승도 말씀이 아닌 흙으로 특별히 빚어낸 것일까. 

 의문만 무성할 뿐 혼란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아담에게서 취한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2:22)

 

 남녀불평등은 하나님의 인간창조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계속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출처 : 문학과 작가
글쓴이 : 아데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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