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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라캉을 만나다 9

by 8866 2008. 10. 27.

라캉을 만나다 9

[에크리]를 통해 라캉을 만난다

 

글쓴이: 한살림 조회수 : 99 07.10.10 06:46

http://cafe.daum.net/9876/3Mhq/17

 

라캉의 초기 논문을 통해 과학을 생각한다

소위 붓가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마지막으로 [에크리]에 대한 노트를 적은 지도 오래되었다. 어떤 글을 쓰기에는 마음이 산란하여 [에크리]를 집어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여전히 그의 <Beyond the “Reality Principle”>에서 머물고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혁명적 방법을 다루기 전에 당시 지식 담론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경험론적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영역본에서 불과 두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글은 지금 읽어도 매우 새롭다는 느낌을 준다.

 

1930년대에 프랑스 또는 유럽에서 인식론이 도달한 수준이 놀랍다. 실증주의의 고전적 저작인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칼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는 1934년에 발표되었고 영역본은 1959년에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알렉상드르 꼬이레 (A. Koyre)가 새로운 과학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1959년 출간된 [From the Closed World to the Infinite Universe]를 통해 과학철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주장을 하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1962년에 출간되었다. 영국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는 1925년에 [과정과 실재]는 1929년에 나타났다. 대략 유럽과 미국 사이에 한 세대 정도의 지성사의 격차가 있었다. 쿤은 새로운 과학철학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기 보다는 전세계로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과학철학을 주로 포퍼와 쿤의 논쟁을 통해 처음 접한 나는 쿤이 새로운 과학의 주창자로 보이지만 이미 유럽에는 인기있던 이론을 미국에 소개한 사람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화이트헤드의 책들에서 쿤의 입장보다 훨씬 세련된 과학이론을 발견했을 때 참으로 신선했다. 라캉이 1936년에 쓴 논문에서 화이트헤드-꼬이레-쿤을 아우르는 과학철학이 개진되고 있다. 이 때문에 벌써 칠십년이 묵은 논문이 최근에 쓰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경제와 군사의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의 영역에서도 막대한 이익을 보았음을 본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미국에서 활동한 사상가들은 대부분 인생의 한 때를 유럽에서 유학하였다. 그런데 2차세계대전을 전후로 미국에 망명한 유럽의 지식인들에 힘입어 미국은 한 세대 이상 뒤떨어진 후진성을 극복하고 첨단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공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라캉이 이 논문을 쓸 즈음에 유럽에는 이미 실증주의 논쟁이 정점에 달했다. 이미 쿤의 입장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는 우리들은 라캉의 논문에서 새로운 과학 철학을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라캉의 주장들은 쿤에 비해 훨씬 뉘앙스들이 풍부하다. 쿤의 입장이 인기를 누린 것에는 패러다임론의 간략함과 명쾌함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쿤이 개진한 입장을 가장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은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이다. 193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망명한 정신분석학자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행동주의와 실증주의에 굴복하여 공학적 에고심리학으로 전환된 후에야 살아남았지만, 영국에서 늙어 은퇴한 후에 하바드대학의 석좌교수로 초빙된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입장을 굽힐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수학자이면서 과학철학자인 화이트헤드의 입장을 심각하게 생각한 미국의 과학자들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다만 1940년대에 하바드에서 공부하여 학위를 받은 쿤은 분명 화이트헤드의 저작들을 읽었을 수도 있다. 화이트헤드는 기독교 신학에만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실증주의가 휩쓸고 있던 미국에 화이트헤드를 위한 자리는 넓지 않았다. 그가 한 이십년 젊었더라면 분명 과학철학을 주도하였을 법도 하다.

 

라캉은 오늘 내가 읽은 부분에서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속히 라캉의 [에크리]가 한글로 읽힐 날을 기다려 본다. 이 글에서 느낀 감동을 나누기 위해 영역본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비교적 평이한 영어이기에 번역의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Let me try to make my point clear. I am not playing at being paradoxical by claiming that sceince need know nothing about truth. But I am not forgetting that truth is a value that (cor)responds to the uncertainity with which man’s lived experience is phenomneologically marked or that the search for truth hisotrically motivates, under the heading of the spiritual, the mystic’s flights and the moralist’s rules, the ascetic’s prograss and the mystagogue’s finds alike. [para.] This search, by imposing on an entire culture the preemience of truth in testimony, created a moral attitude that was and remains for science a condition of its existence. But truth in its specific value remains foregin to the order of science: sceince can be proud of its alliances with truth; it can adopt the phenomenon and value of truth as its object; but it cannot in any way identify truth as its own end.” (영역본 p.63; 불어본 p. 79)

 

라캉은 과학(자들)이 왜 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연루되는가를 묻는다. 그는 과학이 경험 이외에는 아무 전제도 갖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박한 후에 과학도 (대부분의) 인간 활동과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한 믿음에 기대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음으로써 과학은 자신의 정합성을 확보한다. 도대체 과학자들은 무얼 위해서 천문학적 돈이 드는 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위 과학전쟁 (Science Wars)을 벌이고 있는가? 또는 천문학적 돈이 드는 우주 개척이라는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까? 과학은 이런 질문들을 망각한 채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열정과 공포를 이용하여 끝모를 지점까지 나아간다.

 

황우석 사태는 생명공학의 꿈에 유혹되었지만 그것의 논리와 기법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냉전 시대에 미소 양국의 막대한 군비경쟁은 그 자체로 첨단 과학 경쟁이기도 했는데 미소 양국민들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적대감과 공포에 의해 가능했었다. 소칼이나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현대에서 제대로 과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든다는 것과,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과학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과학을 해야 하는 시간에 쓸데없는 논문이나 써서 탈현대의 사상가들이란 기초 논리도 모르는 사기꾼들이라고 주장하거나, 종교와 철학 등을 뭉뚱거려서 미친 놈들이나 하는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쓰고 있다. 그들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을 과학도 팽개치고 계몽운동에 나서게 만드는 근본 동기는 무엇인가?

 

돈이나 명예만이 아니라 진리도 인간을 행동으로 내몬다. 푸코가 ‘앎에의 의지’라고 명명한 것이 종교와 과학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다른 영역을 달구는 공동의 기초이다. 철학은 과학에 대해 진리에 대한 근본 물음을 던진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에 답하는 대신에 막강한 폭탄을 사용하여 철학자들을 쓸어버리고자 한다. 과학이 보여주는 엄청난 성공도 몰라보고 쓸데없는 것을 묻는 자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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