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을 만나다 7
[에크리]를 통해 라캉을 만난다
글쓴이: 한살림07.09.22 07:13
라캉의 경험론과 데카르트의 Cogito
라캉은
이 점과 관련하여 미국을 풍미한 행동주의(심리학)을 잠시 살펴본다. 행동주의는 실증주의가 과학 담론을 지배하던 시절에 나온 극단적인 경험론의 일종이다. B. F.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흔히 S-R 패러다임으로 불린다. R에 초점을 맞출 때 행동주의가 갖는 인간공학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 패러다임이 구성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산출하기 위해 특정한 자극을 가하는 것이 핵심 절차이다. 행동주의의 기념비적인 주체인 파블로프의 개는 이 패러다임이 기초하고 궁극적인 전제를 노출한다. 사람은 개일 따름이다. 그래도 사람은 조금 복잡한 개이기에 조금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사람과 개에 공통된 기계적인 매카니즘이 소위 S-R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은 사람이 개가 아니라면 사람을 개로 우선 환원해야 한다. 이 환원은 행동주의자들이 생각한 만큼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패러다임은 S-O-R로 진화되었다. O는 Organism을 의미한다고 한다. 개인차를 괄호에 넣으면 (또는 넣을 수만 있다면) 행동주의에서 S와 R의 필연성은 의심없이 확보된다. O는 한 개인의 경험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행동주의은 개인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행동주의는 ‘평생교육’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이다. 행동주의는 근대 과학과 실증주의 철학을 포함하는 경험론의 세계를 가장 간명하게 보여준다.
라캉은 경험론을 비판함으로써 정신분석학에 접근한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데카르트의 ‘Cogito’를 극복하기 위하여 경험론의 통찰에 기대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Cogito’는 오직 변증법적으로 지양될 뿐이다. 라캉에게 문제는 데카르트가 모순없이 동일한 ‘Cogito’를 상정했다는 점이다. 만약 Cogito가 복잡한 구조를 가진 마음으로 결국 자기 모순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이것이 라캉이 프로이트에서 발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캉처럼 천주교의 영향에서 자란 사람에게 있어서 데카르트의 순수 동일자로서의 Cogito의 개념은 현실에서 살고 있는 ‘나’는 마귀들린 도착자 (possessed pervert)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분리(ego-splitting)과 억압(repression) 등을 통해 나도 구원받은 선량한 천주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라캉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반추할 때 이 결론에 언제나 자기 기만에 연루됨을 안다.
푸코가 광기의 근대적 출현을 목격한 시기에 종교개혁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분리된 것은 중세 교회가 타락했다는 사실보다 훨씬 깊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베버는 개신교가 자본주의에 앞서 등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천주교에서 개신교로의 변화는 초기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근대인의 출현에 필수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르틴 루터 (1483-1546)는 왜 로욜라 이그나시우스 (1491-1551)처럼 천주교를 정화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새로운 교파를 창설하였나? 복잡한 정치 사회적 영향들은 역사가들이 다룰 몫이고 나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려 본다.
로욜라 같은 천주교 내 개혁을 주도한 인물들을 이끈 사상은 청빈(淸貧)인 데 비해 루터 등 개신교를 이끈 종교 개혁의 지도자들을 이끈 사상은 청부(淸富)였다. 청빈과 청부를 대비할 때 개신교와 초기 자본주의가 갖는 연관은 즉시 명백해진다. 청부와 청빈은 플라톤-아우구스타누스-데카르트에 의해 신학적 면모를 갖춘 기독교가 신자들에게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해결하려는 두 가지 대조적인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로욜라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극단적 금욕을 통해 데카르트적 Cogito에 도달하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약]에 나오는 예수처럼 세상을 전체로서 거부함으로써 존재의 순수를 획득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의 방법은 이후 역사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루터 등은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다른 방법을 제시하였다. 소위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모든 자아의 방어매카니즘을 이용하여 기독교에 사로잡힌 마음이 갖는 내적 모순들을 자각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이 주는 것들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알고 즐기는 전혀 새로운 기독교인들이 출현하였다.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개 세상과 별로 갈등을 빚지 않는 행복한 신자들이다. 청교도의 청빈한 신앙과 도덕적 위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현상은 어떤 면에서 경이롭다. (그러나 근대 이후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가끔 약물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내적 모순을 누르고 잘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푸코가 현대인을 여전히 빅토리아적 인간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 점에서 일리가 있다.)
20세기에도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돈을 번다. 이런 영화들에서 악마와 대결하는 인물로 천주교의 신부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축귀에 주목하는 목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로서의 개신교는 귀신들린 기독교인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니체나 키에르케고르나 잉마르 베르히만 등은 개신교에도 기독교적 광기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최근에 화제거리가 되고 있는 마더 데레사는 많은 개신교들에게는 믿음 잃은(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위 천주교 수도원의 세계에서 그녀는 광기와 신성모독의 경계에서 신성과 일치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에 연루된 영혼이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Cogito가 사람의 실존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자신은 광인 또는 저주받는 자의 자리에 선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로욜라와 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단식과 금욕을 통해 Cogito의 순수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20세기를 살았던 라캉은 단순히 기독교를 비웃으면서 버리고 유쾌한 정신분석가가 되지 못했는가? 지젝의 책들은 이 ‘세속화’가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신분석학의 주춧돌과도 같은 통찰의 하나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것들이 삶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로서 라캉의 삶은 이 점에서 천주교와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가 떠오른다.) 라캉의 천주교는 데카르트의 Cogito에서 궁극적인 표현을 발견하였다. 라캉은 쉽게 데카르트를 버리고 흄이나 로크의 품에 안길 수 없었다. 라캉에게 있어서 데카르트의 Cogito는 버림과 부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째 뽑혀야만 한다. (나는 이 점에서 라캉과 들뢰즈의 차이는 거의 극복할 수 없지 않을까? 데카르트에 사로잡힌 라캉과 흄에 사로잡힌 들뢰즈가 아닌가? 그렇다면 칸트와 헤겔에 사로잡힌 지젝은 그들을 종합하는 꿈을 꾸고 있는가? 나는 독일의 관념론이 어떤 종합에 도달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칸트에만 주목하면 그는 여전히 합리론에 가깝다. 아마도 대륙과 섬으로 철학의 방법들을 나누는 것은 여전히 일리가 있을 것이다.)
라캉에게는 데카르트의 Cogito를 극복하는 일이 단순히 지적 유희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였다. 어떤 사람이 “신은 죽었다”는 말을 중심으로 니체와 사르트르를 비교한 것이 생각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면서 미친 반면 사르트르는 살롱에 앉아 ‘신은 죽었다’고 말하면서 파이프를 뻐금거리고 있었다. 신에 목숨을 건 니체와 (거의) 처음부터 신을 믿지 않았던 사르트르는 동일한 말을 한다고 하여도 마음의 상태는 달랐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사르트르에 가깝고 라캉은 니체에 가깝다. 프로이트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이 자신에게는 이미 사멸하였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라캉은 자신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괴물을 처치하려고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또는 나에게 그렇게 보인다). (이 점에서 지젝은 라캉보다는 프로이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진리를 확신하여 사회를 개혁하려는 프로이트/지젝과 진리를 찾아 헤매며 끝내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니체/라캉의 차이는 그들의 이론들만큼 중요할 수 있다. (이 점은 근거없이 멀리간 억측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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