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을 만나다 4
[에크리]를 통해 라캉을 만나다.
라캉과 에고심리학 그리고
글쓴이: 한살림 http://cafe.daum.net/9876/3Mhq/5
나에게 있어서 라캉의 사유에서 에고심리학에 대한 비판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부분이다. 라캉에 진지하게 접근하기 전에 프로이트와 에고심리학과 자기심리학을 오래 공부했기 때문이다. 자기심리학은 하인쯔 코핫 (Heinz Kohut)에 의해 1970년대에 창안되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의 정신분석가로 대학을 마친 후에 미국 시카고에 정착하였으며 정신분석학의 제3세대에 속한다. 라캉과 클라인과 에고심리학자들은 제2세대에 속한다.
코핫은 오랫동안 에고심리학자였다가 말년에 에고심리학 또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결정적으로’ 비판하는 몇 권의 책들을 출간하면서 (적어도 미국에서는) 새로운 정신분석학을 제시하였다. 코핫은 이 새로운 입장을 에고(ego)심리학과 구별하여 자기(self) 심리학이라고 불렀다. 나는 지난 몇 년간 프로이트와 코핫 사이에서 나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유를 정리하고 있다. 멜라니 클라인에서 시작하는 대상관계이론을 코핫보다는 훨씬 먼저 알았지만 결국에는 코핫의 정신분석학에 더 매료되었다. 사년 전에 코핫의 입장에서 [논어]를 분석하는 짧은 글을 썼을 때 나는 마침내 자기심리학자가 되었다는 생각마저 하였다.
그런데 ‘비평고원’을 통해 한국에서부터 오는 지적 흐름은 나를 라캉의 [에크리]와 대면시켰다. 그 때 푸코나 데리다나 크리스테바와 관련하여 이따금 라캉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수천의 이름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입장을 얻었다고 느꼈을 때 다른 사상가들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라캉처럼 독창적인 사상가는 분명 나의 입장을 흔들어 버릴 것이다. 이미 가진 것을 박탈당한 채 짙은 안개속을 헤맬 것이다. 미국의 응용(이론) 정신분석학의 세계에서 코핫이 작은 이름이 아닐 때 쓸데없이 라캉 같은 인물에 유혹되어 겨우 마련한 발판을 스스로 버리는 일은 실용적 관점에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의 세계에 살고 있는 한 라캉을 피해갈 수 없다.
자신의 입장을 세우기 전까지 에고심리학이 철저하게 옳다고 믿었던 코핫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라캉주의와 깊이 씨름할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코핫의 책에는 [에크리]가 참고문헌으로 나온다. 코핫이 과학 (정신분석학)을 보는 입장은 화이트헤드-코이레-쿤과 유사하다. 알렉상드르 코이레 (A. Koyre)의 이름이 코핫과 라캉에게 중요했다는 점이 나에게는 고무적이다.
미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라캉주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그 때 코핫은 죽고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운이 느껴지던 1970년대에 코핫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새로운 입장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코핫은 라캉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남기지 않았다. 코핫의 제자들은 코핫과는 달리 ‘포스트모던’ 미국에 살지만 라캉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결국 나는 코핫과 라캉이 헤게모니를 두고 갈등하는 장소를 내 안에 마련해야만 한다. 이런 각도에서 나는 라캉의 [에크리]를 읽는다.
내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라캉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모든 이해는 선이해(先理解)에서 출발한다. 이해의 과정은 진화론적이라기 보다는 변증법적이다. 프랑스 인지구조주의 심리학자인 장 삐아제는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을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Assimilation과 accommodation. 마음은 무작위로 세계를 경험하지 않는다. A라는 개념틀(schema)가 우선 존재한다. 인식하는 사람은 모든 경험을 A를 통해 가공한 후에 이해할 것이다. 그는 A와 상충하는 경험들을 억압 왜곡 무시되면서 A와 조화되는 형태로 변형할 것이다. 그런데 A와 상충하는 경험들이 너무 많은 경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B라는 새로운 개념틀을 시험할 것이다. A-B-C. 쿤의 과학이론이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칸트주의자로서의 삐아제와 쿤.
내가 [에크리]를 읽을 때 어떤 선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라캉이 [에크리]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에게 명확하지 않다. 이 경우 나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이미 아는 것에 기대에 [에크리]의 한조각을 해석한다. 이를 X라고 하자. X는 [에크리]를 공략하는 임시적인 거점의 역할을 한다. X는 [에크리]가 옳다거나 틀렸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 오히려 X는 [에크리]를 읽기 위한 구실의 역할을 할 뿐이다. X는 [에크리]를 읽으면서 옳거나 그를 것이다. X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버릴 것은 [에크리]가 아니라 X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Y를 시험할 것이다. 등등.
그러면 나에게 X의 역할을 하는 선이해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있지만 여기서는 에고심리학을 생각해 본다. 나는 이미 자기심리학의 눈으로 에고심리학을 보기 때문에 에고심리학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에고심리학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다. 이는 내가 라캉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지식으로 작용한다.
라캉이 정신분석가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 에고심리학이 있었다. 순종할 것인가 또는 반항할 것인가. 라캉은 후자를 선택하였다. 1920년대 말에 라캉이 처음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하였을 때 그의 분석가는 루돌프 뢰벤스타인(R. Loewenstein 1898-1976)이었다. 라캉이 [에크리]에서 에고심리학의 트로이카의 한 명으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1938년에 뢰벤스타인이 나찌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라캉은 그에게서 정신분석을 받았다. 당시에는 일주일에 5일동안 한 시간씩 분석을 받는 것이 관례였으니 이들의 십년 세월이 별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라캉이 정신분석가로 떠오르는 시기였던 이 때 그와 뢰벤스타인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라캉이 처음 발표한 ‘거울 단계’에 대한 논문은 뢰벤스타인의 분석을 받고 있던 시절에 발표되었다. 에고심리학의 기본적 저작들은 독일계 정신분석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나타났다. 안나 프로이트, 하인쯔 하르트만, 루돌프 뢰벤스타인, 에른스트 크리스는 모두 1930년대에 이론적 기초를 닦았다. 미국 자본주의가 에고심리학이 왕성하게 작용하는 토양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에고심리학은 미국에서가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에서 처음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클라인 등의 영향으로 대상관계이론이 번창하였다.
라캉은 어떻게 십년 이상 에고심리학자의 상담을 받았을까? 그리고 뢰벤스타인이 미국으로 떠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 즉각적으로 그를 공격하는 글들을 쏟아낼 수 있었을까? 라캉은 어릴 때부터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었다. 로마 카톨릭의 영향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대목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라캉은 예외적이기보다는 전형적이다. 환경(가족)이 자유로운 반항의 표출을 허용하지 않을 때 ‘어떤’ 사람들은 급진적으로 비판하는 자아를 내면에 구축하여 환경의 절대적 지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시도한다. 밖으로는 전통에 모범적으로 순응하지만 속으로는 전통을 통째로 거부하는 자세를 갖는다. 서서히 비판이 무르익고 때가 이르면 외부 사람들이 짬짝 놀랄 비판을 뱉어낸다. (이 점과 관련하여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는 매우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한다.)
정신분석학은 자연과학보다는 문학과 닮은 면이 있다. 자연과학자는 자신의 인간적인 성숙 또는 발달과는 무관하게 대상을 탐색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대상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신분석학도 정신분석가의 경험에 기대어 출현한다. 정신분석가는 (자신을 포함하여) 내담자를 이해한 것을 정리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구축하여 제시한다. (좋은) 문학작품이 작가의 환상이라기 보다 자서전인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정신분석학은 분석가의 자서전이라는 관점에서만 이론으로 정립된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보편성을 확보하는가? 이는 훌륭한 문학 작품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확보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자연과학은 자연과학의 방법이 허용하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인)문학은 인문학의 방법이 허용하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두 보편성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지 않는다.
통섭은 매우 유혹적이지만 삶을 파악하는 적확한 개념이 아니다. 통섭의 유혹은 삶의 복합성을 파악하는 데 실패하고 환원적인 독단론을 낳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통섭에 유혹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양자물리학을 과학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삶을 파악할 때 보다 적확한 개념은 화이트헤드가 제시한 Contrast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좀 더 익숙한 개념을 사용하면 음양과 오행의 조화. 이 경우에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마오쩌뚱의 “모순”이다. 변증법은 순간적인 합을 낳지만 다시 정으로 전화되어 새로운 합을 향한 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의 끝에 God이 있든지 또는 라캉의 결핍과 공허가 있든 ‘무관하게’ 사람의 삶은 죽는 그 순간까지 운동한다.
라캉이 끊임없이 헤겔에 유혹되는 것은 헤겔이 모순의 철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화이트헤드가 더 역동적으로 이 모순을 설명하지만 라캉에게 이 빅토리아 신사는 체질적으로 역겨웠을 수 있다.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프러시아에서 최종적인 종합을 발견하고 있는 헤겔은 어떤가? 헤겔의 제자들 가운데 키에르케고르, 마르크스, 루카치, 레닌, 아도르노, 라캉, 지젝 등등이 나온 정황에서 판단한다면 헤겔의 사유는 최종적인 종합이라는 스스로의 목적에 저항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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