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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라캉을 만나다 3

by 8866 2008. 9. 12.

 

라캉을 만나다 3

[에크리]를 통해 라캉을 만난다.

 

[에크리 읽기 3] 프로이트의 제자로서의 라캉

글쓴이: 한살림 조회수 : http://cafe.daum.net/9876/3Mhq/4

 

불현듯 [에크리]는 늙은 라캉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1966년에 출간되었으니 그가 예순 다섯 해를 지상에서 보낸 후였다. 프랑스에서 1960년에 태어난 남자는 평균하여 66.5년을 살 것으로 기대되었다. 라캉은 이보다 훨씬 이른 1901년에 태어났으니 그는 평균적인 관점에서 죽을 나이를 지났었다. 죽음이 단순히 사유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임박한 가능성으로 다가온 나이에 라캉은 서른 다섯 개의 텍스트들로 구성된 [에크리]를 출간하였다. 연대기적으로 볼 때 [에크리]에 실린 글들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Beyond the “Reality Principle”>로 1936년에 쓰여졌다. 이 논문보다 두어 달 앞서 라캉은 <The Mirror Stage>라는 논문을 제14차 국제 정신분석학 모임에서 발표하였다. [에크리]에는 이것 대신에 1949년에 재차 발표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Science and Truth>는 1966년에 발표된 것으로 가장 늦게 쓰여진 논문이다. 그리고 [에크리]를 책으로 묶으면서 라캉이 새로 쓴 짧은 글들이 몇 개 있다.

 

문득 나는 이런 상념에 잠긴다. 긴 삶을 산 후에 친구 두어 사람과 함께 앉아 서랍에서 오래 전에 찍은 사진들을 꺼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런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노인을 떠올린다. [에크리]는 라캉이라는 인물이 정신분석가로 살아오면서 사유한 이정표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는 1932년에 박사논문을 출간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에크리]가 그의 첫 책은 아니다. 박사논문이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의 출사표와 같은 것이라면 [에크리]는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보는 거장의 회고록같은 것이다. 그래서 [에크리]는 라캉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헤겔이 역사를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의 기록으로 규정한 데 비추어 라캉은 자신의 사유가 지나온 중요한 지점들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서양에서 자서전의 전범이 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원래 교육적인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직 청춘의 피를 갈무리하지 못한 채 수도원이 요구하는 성적 순결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젊은 수도승들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어쩌면 라캉의 [에크리]도 이런 관점에서 읽혀야 할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사유에서 드러난 진리에 의지하여 살아온 삶을 고백하고 있다.

 

말년에 많은 추종자들이 자신들을 라캉주의자라고 규정했을 때 라캉은 스스로를 프로이트주의자라고 말했다. 이 말은 라캉이 평생 외친 “프로이트에게로!”라는 구호를 요약한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 바오로(바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스스로 스승이 되지 않고 제자로 머물었는가? 그는 자신이 이미 계시된 진리(예수)를 전파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 경우 그는 진리의 해석자의 위치를 점한다. 이 점은 혁명적 사유의 출현과 전개와 소멸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바디우는 이 혁명적 사유(새로운 진리)를 사건(Event)라고 부른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사건이며 바오로는 ‘스승의 음성’을 듣고 평생 절개(faith)를 지킨 제자의 원형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관계에 적용하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사건이고, 라캉은 프로이트라는 스승의 음성을 듣고 제자로 머물고자 하였다. 라캉이 자신의 사유에 새로운 진리는 없다고 주장함을 의미한다. 그는 바오로와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의 진리를 해석하는 ‘겸손한’ 자리를 자처하였다. 라캉은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오만방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유(진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의 오만방자함은 사유(진리)에 ‘절대적’으로 충실하려는 그의 결단(신앙)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캉은 매우 다양한 방법 – 불교에서 말하는 방편- 으로 이런 저런 해석들을 제시하였을 뿐 프로이트의 진리와는 다른 진리를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Beyond the “Reality Principle”>에서 언급된 “프로이트 혁명 (the Freudian revolution)”는 정확하게 이 점을 의미한다. 바오로가 “예수 혁명”에 참여하듯이 라캉은 “프로이트 혁명”에 참여한다. 나는 프로이트의 ‘진리’와 라캉의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렇지만 라캉은 자신의 진리는 오직 ‘프로이트의 진리’일 뿐이라고 믿었다. 이 때문에 나는 이따금 라캉에게서 아주 ‘심각한’ 선승(禪僧)의 모습을 발견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는 외침은 스스로 스승이 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스승의 음성에 절대적으로 충실하려는 자세에서 발설된다. 라캉도 그렇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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