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홍현주 코너
연재 30
유리창 2
이러한 관점에서 『유리창 2』의 시전문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창 2』에서는 시인의 현실참여의 격렬한 욕망이 폭발하고 있으나 『유리창』의 차단에 의해 좌절을 거듭하고 있다.
본문: 내어다 보니
해석: 시적세계에서 현실세계를 관망.
본문: 아조 캄캄한 밤
해석: 약탈과 폭압만 군림하는 암담한 식민지현실.
본문: 어험스런 뜰앞 잣나무가 자꼬 커올라간다.
해석: 나날이 가혹해지기만 하는 일제의 폭정, 끝없이 이어지는 식민지통치.
본문: 돌아서서 자리로 갔다.
해석: 백성의 고통과 참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시인의 괴로움.
본문: 나는 목이 마르다.
해석: 식민지통치하에서 유린과 고통을 당하는 조국에 대한 연민,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갈망.
본문: 또 가까이 가
해석: 유린당하는 조국의 현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시인의 현실참여의 강력한 의지.
본문: 유리를 입으로 쫏다
해석: 일제식민지통치와 검열제도에 대한 저항의지.(쫏다) 작품(입)을 통해, 그것을 피해 민중에게로 다가가려는 시인의 불타는 의지.
본문: 아아, 항 안에 든 金붕어처럼 갑갑하다
해석: 현실과 단절된 시인의 답답한 심정. 시적자아의 영적고통. 식민지의 쇠고랑에 묶인 조국과 민족.
본문: 별도 없다. 물도 없다. 쉬파람 부는 밤
해석: 희망도(별) 없고 독립과 자유도(쉬파람) 없이 음산한 바람만 분다.
본문: 小蒸氣船처럼 흔들리는 窓
해석: 불안한(小蒸氣船)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고민하는(흔들리는) 시인의 정신세계.(窓) 또는 공포의 식민통치.
본문: 透明한 보라ㅅ빛 누뤼알아
해석: 양의 탈(투명한 보라ㅅ빛)을 쓴 늑대(뉘리)의 폭정.
본문: 이 알몸을 끄집어 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해석: 협소한 시적세계에 안주하기보다 차라리 현실세계에서 싸우다 죽으려는(이 알몸을 끄집어 내라) 시인의 비장한 결의.(때려라. 부릇내라.)
본문: 나는 熱이 오른다.
해석: 목적을 이루지 못한데서 오는 울화.
본문: 뱀은 차리리 戀悄스러히
해석:?!
본문: 유리에 부빈다. 차디찬 입맞춤을 마신다.
해석: 위험과 공포를 무릎 쓰고 차디찬 검열에 도전.
본문: 쓰라리, 알연히, 그싯는 音響
해석:?!
본문: 머언 꽃
해석: 그러나 자유와 독립(꽃)은 이상향일 뿐 시인에게서 멀기만 하다.
본문: 都會에는 고흔 火災가 오른다.
해석:?!
문학비평의 이와 같은 다차원적 해석은 작품의 불확실성이 열어준 공간의 신축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분석은 기존비평의 불확실함만큼 불확실하지만 가치 있는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이튿날 대학에 출근한 현주는 냉커피 두 컵을 만들어 가지고 김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명진은 돋보기를 들고 허리를 굽힌 채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교수님, 뭔데 그렇게 열심히 보고계세요?”
컵을 건네주며 현주도 테이블위에 눈길을 던졌다. 한 폭의 서양화이다.
“추상석이름은 지으셨나요?”
“아니요. 아무래도 내 능력으로는 힘들 것 같아요.”
“급해하실 것 없어요. 천천히 두고 보시노라면 어느 날 문득 좋은 이름이 생각날 수도 있잖아요. 참. 교수님. 전번 날 저더러 마로니에공원에 갔었냐고 물으신 것 같은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셨던가 봐요.”
명진은 잠시 망설이더니 가방 안에서 스케치북을 꺼내놓았다.
“사실은 이 그림 때문에……”
“이건 무슨 그림이죠? 마로니에공원연작스케치를 그리신다던……”
“맞습니다. 그런데 홍 박사는 혹시 이 스케치 속에 그려진, 이 모습 없는 윤곽의 아가씨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습니까?”
“글쎄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누구죠?”
“그림을 그린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세요! 왜죠? 어떻게 보면 제 모습 같기도 한데요.”
“정말 그렇게 보입니까?”
별일도 아닌데 명진이 몹시 놀라는걸 보고 현주가 도리어 의아해졌다.
“왜 그렇게 놀라시는 거죠?”
“이 그림이 홍 박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런데 난 그날의 기억이 전혀 없군요. 내가 본 사람이 진실인지 착각인지 궁급했습니다.”
“사모님께서 저 같다고 그러시던가요?”
명진은 대답대신 그림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제가 마로니에공원에 갔었는가가 궁금해지신 거군요. 글쎄요. 간 것 같기도 하고 가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저도 기억이 아리송하네요. 워낙「갔다」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하니 말이에요. 전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 너무나 모호하고 불확실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밥을 먹는다.」라는 표현을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질서적인, 구조적인 의미체계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이미지들뿐이지요. 「밥」이라는 이미지부터 그렇죠. 밥은 곡물의 종류에 따라 쌀밥, 조밥, 보리밥, 기장밥, 약밥 등으로 분류되고 지은 시간에 따라 더운밥, 찬밥, 묵은 밥, 담는 그릇에 따라 공깃밥, 접싯밥으로, 짓는 방법에 따라 찐 밥, 솥 밥, 돌솥 밥, 전기솥 밥으로, 먹는 방법에 따라 비빔밥, 주먹밥으로 다양하게 분류되는 거잖아요. 그밖에도 사용된 그릇, 수저, 끼니에 따른 조반, 오찬, 만찬, 그냥 식사로서 빵, 국수, 치킨 자장면, 피자 같은 것도 「밥을 먹는다.」고 말하거든요. 「먹는다.」라는 표현도 모호하긴 마찬가지에요. 그와 같이 「갔다」라는 말도 자가용, 버스, 전철, 택시, 도보 중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으며 출발지점과 경과지점 그리고 도착지점, 날자, 날씨, 시간, 목적, 경위 등 많은 요소들이 소외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소외된 이미지들을 원상 복구시키려면 시선의 이동에 따라 기존 이미지의 소외가 전제돼야만 하잖아요. 즉 복구는 어떤 의미에서는 먼저 파괴이지요. 그런데 여기 모습이 잘 드러난 아가씨와 남자는 누구죠?”
명진은 그제야 마로니에공원 피살사건 경과를 간단하게 들려주었다.
“착각일 수도 있잖을까요?”
“내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두 여자의 모습은 완전히 일치했어요.”
“그렇지만 범인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거의 한달 가까이 시간이 지난 뒤였다면서요. 옷차림도 달랐고요.”
“그러나 얼굴이나 몸매는 너무나 일치했습니다. 더구나 이 그림까지 있었거든요.”
“시간을 경과한 뒤의 일치함은 유사성이었을 가능성이 더 많을 수도 있잖을까요. 우리는 소설에서「꽃잎처럼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묘사를 읽으며 전혀 닮은 것이 없는 두 사물인 「얼굴」과「꽃잎」을 유사하다고 느끼잖아요. 비교되는 둘 사이의 유사성이「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의 공통성 때문이라면 미모의 용모는「꽃잎」이 아닌 임의의 그 어떤 다른, 아름다운사물과도 비교가 될 수 있어야 해요. 즉「도자기처럼 아름다운 얼굴」, 「골동품처럼 아름다운 얼굴」,「가로등처럼 아름다운 얼굴」, 「조개껍질처럼 아름다운 얼굴」…… 두 사물간의 모호성의 영역은 너무나 넓잖아요. 다만 둘 사이의 유사성을 가능하게 했던 아름다움의 공통성만 전제된다면 말이에요. 유사성이라는 건 이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한거니까 어떻게 섣부른 확신을 할 수가 있겠어요. 교수님의 그림도……”
“그림과 소설은 다르죠. 회화는 현장스케치에서 포착한 시각적 이미지에 의존하지만 소설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한 기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내 시각에 포착된 표상에 의존하니까요.”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화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전혀 의문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이 사건을 다시 재수사했으면 싶지 만 범인으로 신고 된 서혜란 씨가 모든 범죄를 승인했기에 어렵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교수안을 챙겨들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교수님, 언제 한번 저희 집에 모시고 싶다고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현주는 한마디 남기고는 현관 밖으로 나갔다.
명진은 대답을 비웠다.
그러나 현주는 반드시 그를 집에 초대하고야 말 것이라는 자신감에 부풀어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추천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편소설 "붉은아침" (0) | 2008.06.05 |
---|---|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31 (0) | 2008.05.30 |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29 (0) | 2008.05.16 |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28 (0) | 2008.05.09 |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27 (0) | 2008.05.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