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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18

by 8866 2008. 2. 22.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홍현주 코너

 

 연재 18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합니까?”
 “정지용 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에요.”
 “무척 힘들 텐데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뤘잖습니까.”
 “보는 관점에 따라 사람마다의 견해가 다르잖아요.”
 “물론이죠. 다만 비평의 공간이 좁다는 뜻입니다만…… 취미생활은요?”
 “탐석도 하고 집에서 양석도 해요.”
 “수석이요?”
 “네.”
 “홍 박사한텐 버거울 텐데…… 수석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어쩌다가 수석을 취미생활로 선택한 거죠?”
 “그냥요.”
 이러루한 짤막한 대화들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화제 속에는 두 사람의 숨은 뜻들이 충분히 담겨있었다. 김 교수는 그녀의 취미생활에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수석에 입문하게 된 이유를 들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가 걷히고 기회가 마련되면 그때 가서 말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채석한 수석의 불확실성을 세심한 관찰과 오랫동안의 양석을 거쳐 확실한 의미로 다듬어내는 작업은 힘들지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더 이상 불확실한 세상과 믿음이 깨어진 진실 앞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만 있지 않았다. 그것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개정해나가려는 강한 의지적 여자로 변한 것이다. 확실함은 확실함을 욕망하는 자에게만 소유의 권리가 배당된다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나무 한대를 자른 농부는 그것을 깎아 도끼자루를 만든다. 다듬고 깎기 전에 그 나뭇가지는 하나의 평범한 나뭇가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강가나 산속의 흙에 파묻혀 있는 돌들은 그것이 수석가의 손에 의해 발견되고 다듬어지기 전에는 수많은 돌들 중의 한 개에 불과할 따름이다. 현실 또한 인간 앞에 던져진 한 가지의 나무이며 하나의 돌멩이인 것이다. 인간에 의해 수용되고 다듬어지기 전에는.
 현주는 김 교수가 그녀의 접근을 피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김 교수의 진정한 마음이 아니란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미 결혼이라는 인생카드의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선택권을 행사한 사람이다. 이제 그의 선택권은 아내인 영희에게 이속되었으며 아내의 영역 속에 구속된 처지이다.
 현주도 자신의 접근시도가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나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이미 일회적 사랑의 선택권을 소비한 유부남이며 그래서 그들의 접근은 불륜일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늘 그녀의 마음의 그림자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욕망은 그러한 불안의 추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불륜이나 도덕적, 양심적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이미 영희한테서 시작된 것이라고 변명까지 늘어놓았다. 언니는 현주와 김 교수의 불투명한 관계를 악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챙긴 것이다.
 욕망의 유혹을 따라가는 미래에 대한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모호함과 불확실성뿐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미지의 장래를 거부하지 않고 채석한 돌들을 배낭에 넣어 집으로 가져오듯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듬고 양석하고 심혈을 기울이노라면……
 그러나 당신이 소장하려고 하는 그 수석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로 된 것이오!
 양심은 그렇게 그녀의 욕망을 일깨워주기도 했지만 들리지는 않는다.
 현주는 검푸른 이끼가 돋기 시작한 수석을 유심히 관찰하며 김 교수에게 부탁한 추상석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을 연고로 오랫동안 방치했던 두 사람사이의 인연을 복구하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 수석은 적당한 이름을 붙여줄 수 없을 만큼 모양과 형태가 천태만상이었다. 마치도 겉모습만 보고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영희와 명진의 마음처럼.
 그러나 그 추상석에 어떤 이름을 달아주었다고 해서 그 이미지로 고정될 수 없듯이 김 교수의 마음이 영희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할 충분한 근거로는 되지 않는다. 추성석에 달아준 이름이 그 순간의 인상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영희의 선택은 그때의 감정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지금 김 교수가 겉으로는 주위의 비난의 눈길 때문에 현주를 피하지만 속으로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관심이 없다면 명진이 무엇 때문에 그녀가 뽑아주는 커피를 기꺼이 마시며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추상석까지 받아주었겠는가. 그 의미의 폭이 단순히 예의의 차원에 국한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그들 사이에 오고간 눈빛의 교환이 깊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현주는 풍문을 통해 김 교수와 영희의 부부애정이 깊지 못하여 불안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확실여부는 파악불능이지만 아무튼 불안정한 환경 속에 처한 김 교수의 추상석에 대한 관심도는 남다른 것이 틀림없었다. 늦지마는 그 추상석의 존재를 통해 그가 선택한 아내 영희는 이름이 쉽게 지어진 단순한 수석에 불과하며 현주는 이름을 짓기가 어려운 추상석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다행 중 다행일 것이다. 추상석은 이름 짓기는 어려워도 양석을 통해 고색창연한 빛을 발산하는 명석으로 될 수 있으며 그 가치와 의미도 무궁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추상석을 자세히 관찰하노라면 순간적 시선으로는 포착 불가능한, 욕망의 시선 때문에, 취미의 시선 때문에 소외되었던 많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름을 쉽게 지을 수 있었던 수석 같은 영희의 의미와 가치는 그 한계가 너무 협소했을 것이 분명하다.
 명진이 추상석에 무슨 이름을 달아줄지 그것이 못 견디게 궁금했다.
 현주는 천태만상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무늬석에 심었던 눈길을 뽑고 허리를 폈다. 불확실함은 그 몽롱함 때문에 현란하다. 여길 보면 매화 같고 저길 보면 나비 같고 멀리서 보면 은하수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새들 같고…… 밝고 투명한 색깔의 덩이들은 마네의 눈부시고 화려한 미술작품 같기도 하다.
 다시 서재로 들어왔다.
 김 교수가 그 추상석에 달아줄 이름은 지금의 그의 감정을 잘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 이름 하나만 잘 읽어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현주자신의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일 수도 있다. 추상석은 명진의 테이블위에서 현주를 대신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계속 던져줄 것이며 김 교수는 그 질문 속에서 현주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의 속마음을 읽게 될 것이다.
 이제 그녀는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컴퓨터를 작동시켰다.
 정지용의 시 『유리창』전문이 화면에 떴다. 그녀는 그동안 무뎌진 사유의 보습을 갈아 살지고 기름진 시어의 이미지들의 밭이랑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주먹만큼 큰 탐스러운 감자처럼 구수한 이미지들이 보습에 갈려 돌아눕는 흙밥 속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오기 시작했다.
 현주는 무궁무진한 이미지의 찬란한 유혹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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