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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16

by 8866 2008. 2. 2.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홍현주 코너

 

 연재 16

 

 

 홍현주 코너

 

 


 현주는 아까부터 정지용의 시어 『유리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시인은 완전한 이미지인 「유리」를 명시적인 것과 은폐적인 것으로 분해하여 불완전한 이미지로 축소 내지는 단순화시키고 있다. 여기서 명시적 이미지는(방안과 외곽을 차단시키는 유리의 고체적 성질) 독자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은폐된 이미지는 (안팎의 시각적 소통을 가능케 하는 유리의 투명성) 독자에게 미적추구의(이미지적 추구)의 참여공간을 제공하는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밖에도 유리의 이미지들은 많다. 광물성분(석영. 탄산나트륨. 석회), 특성(쉽게 깨어짐), 용도(물리적 차단과 시선개방) 등. 그러나 이러한 유리의 이미지들은 지용의 주시선에서 소외 또는 배제되고 있다. 시어의 의미는 바로 이렇게 시인에 의해 은폐되고 소외된 즉 몽롱화, 불확실화 된 이미지들에 의해 깊숙이 저장되며 그것은 다시 명시적 이미지의 유도에 의해 독자들의 참여와 발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결국 독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명시적 이미지가 표현하는 불확실성에(시인의 의도적인 이미지분해에 의한) 대한 보완심리의 욕구에 따른 확실성의 지향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최종적으로 발굴하게 되는, 상실된 부분의 이미지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은유 또는 소외된 이미지의 다양성은 독자들의 감성의 다양성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사실 시어에서 분해 된 명시적 이미지라고 하는 것도 직접적인 설명이 아닌 우회적인 것이어서 역시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리창』이라는 이미지의 선택에 있어서도 정지용은 차단과 투명성에 의한 시각소통의 이미지만을 분해하고 창문의 개방적 이미지는 소외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리창』이라는 활자들이 별안간 생명체로 변하기라도 한 듯이 벌레처럼 살아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의 독서로 눈의 피로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현상인가 싶어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뜻밖에도 그 활자들은 김명진이라는 세 글자로 바뀌어있었다.
 김명진!
 그 이름 석자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기억의 울타리에서 뛰어나오곤 한다.
 전번 날 부탁한 추상석의 이름은 지었는지? 당황해하던 김 교수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얼토당토않은 부탁에 어리둥절했을 것이 분명하다. 교수님이시니까 부탁의 숨은 뜻을 아실 테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왔다.
 거실로 나와 녹피를 들고 좌대위의 수석들에 묻은 먼지를 닦고 수반에 진열한 수석들에 물을 뿌려주었다. 이렇게 수시로 손으로 매만지고 물을 뿌려주어야 이끼가 자라고 물때가 올라 돌 표면의 피부를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다듬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 거친 사람의 손에서는 고품격의 감상가치가 높은 양석良石이 생산될 수 없다. 수석이란 탐석도 중요하지만 확실한 모습을 만들어 가는 창조 작업에 더 의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하나의 수석들이 오늘따라 모두 김 교수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
 돌이켜보면 현주가 팔자에 없는 이 수석에 입문하게 된 이유도 결국은 김명진교수 때문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7년 전에 있었던 소매물도에서의 김명진과의 만남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화면그대로다. 김 교수와 보냈던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들, 텐트 안에서 그가 휴대해온 김밥을 맛있게 먹었던 일이며, 돌밭 길을 걸을 때 몸의 균형을 잃고 그의 가슴에 상체를 기대었던 일이며, 비 오는 날 글씽이굴을 구경하던 일이며, 어두운 섬 길의 폭우 속에서 그의 등에 업혔던 일이며……
 소매물도를 떠나 대전에서 헤어질 때 현주는 워낙 언니 영희의 전화번호를 그에게 알려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메모지에 자신과 언니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었다.
 그런데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 될 줄이야.
 명진은 서울로 상경했고 현주와 영희는 대전의 대학에 남아야만 했었다. 그 뒤로는 학업 때문에도 그랬고 왕복열차이용의 교통 불편 때문에도 그랬고, 이래저래 김 교수와의 만남이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틈을 내서라도 장거리왕복열차여행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와의 만남을 시도했었다. 대체로 현주가 서울로 올라가는 편이었다. 당시 S대학에 강사로 발령받은 김 교수는 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대전행을 거절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쯤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가 남자를 찾아다닌다고 자존심이 상하거나 남들의 조소의 눈총이 두렵거나 하지도 않았었다. 김 교수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했다.
 상경 때마다 현주는 언니 영희더러 동행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청이라면 무엇이던 거절한 적이 없던 언니가 그 청만은 한사코 거절하는 것이었다.
 “싫어. 내가 거길 가서 뭐하니. 너나 가 봐.”
 하긴 아무리 막역지우이라도 사랑은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 현주는 더 이상 강권하지도 않았다.
 김명진도 그녀를 부담 없이 반갑게 만나주었다. 함께 영화구경도 가고 등산도 하고 놀이동산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풀려나갔고 이제 남은 절차는 결혼하나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정은 현주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학을 졸업한 언니 영희는 고향인 수원으로 올라가버렸고 그 뒤 6개월도 지나지 않아 현주의 손에는 김명진과 이영희의 결혼청첩장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붉은 청첩장을 손에 받아든 현주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이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는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몰라 한식경이나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김명진과 이영희의 결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현주가 함께 가자고 졸라도 거절해온 언니였다. 그렇다면 언닌 날 속였단 말인가. 두 사람은 현주 몰래 전화통화를 나눴고 그녀의 시선을 피해 은밀히 만났던 것인가. 어찌 이럴 수가! 동생의 사랑하는 남자를 언니가 가로채다니?!
 그런 은밀한 관계가 없었다면 갑작스런 결혼선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사실이 명백해졌을 때 이름 할 수 없는 배신감이 현주를 혼절시켰다. 동생의 사랑하는 연인을 빼앗아간, 연적으로 변한 언니의 배신행위, 결혼해주마고 약속해 놓고서는 그 신성한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여자와 밀애密愛한 김 교수의 기만행위! 꿈에도 예측할 수 없었던, 전혀 뜻밖의 현실이었다.
 김 교수와의 사랑은 확실한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던 현주였다.
 영희와의 자매지정도 완벽한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던 현주였다.
 그런데 현실은 무자비하게도 그녀의 확신을 붕괴시켰으며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현주와의 우정이 진심이었다면(이 사실이 있기 전까지 현주는 자매지정의 진위여부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언니는 설사 김 교수가 먼저 구애를 해왔다 하더라도 거절해야 했을 것이다. 또 김 교수도 소매물도에서의 현주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더라면(현주의 프러포즈를 그가 장난으로 받아들였던 진심으로 받아들었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약속은 약속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때 현주의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설령 언니가 먼저 꼬리질을 했더라도 거절했어야 할 것이다. 아니, 최저한도로 현주에게 죄송하다는 사과한마디쯤은 미리 건네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현주가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믿어 온 언니와 김 교수는 그녀를 완전히 상실의 심연으로 밀어 던졌고 우정과 사랑의 동산에서 축출하고 소외시켜버렸던 것이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순식간에 그녀가 정성들여 쌓아온 모든 믿음과 확실함의 긍정적 가치관이 붕괴되며 현주는 절망에 휩싸여 전율했다. 약속도 우정도 욕망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이 존재하고 믿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하나 사리와 사욕뿐이었다.
 현주는 억울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분김에 곧장 대전역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열차에 승차하기까지 했던 그녀는 발차직전 발길을 되돌려 하차하고 말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소 잃고 외양 고치는 격이었다. 이미 결혼까지 선포한 그들에게는 그녀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녀의 항의가 무슨 효과가 있으랴.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현주와 영희, 현주와 김 교수 사이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추억뿐일 것이며 불신과 적의와 경계심뿐일 것이다. 벌써 영희는 장차 현주의 몫이 되었을 김 교수의 모든 것을 소유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 나머지를 구걸한다고 한들 차례질 것이며 또 그로인해 자신을 사랑의 거지로 비참한 운명에 내던지고 싶지도 않았다. 실패와 좌절을 맛본 자에게는 자존심하나밖에 남는 것이 없다.
 기숙사로 돌아온 현주는 그날부터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고 식음도 끊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워 울기만 했다. 김 교수가 없는 미래는 너무나도 암울하고 참담했다. 더 이상의 생존의미가 존재하지 않았다. 믿음을 상실한 세상, 불확실함 때문에 불안한 세상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났다.
 어느 깊은 밤, 동료들이 죄다 꿈나라로 들어간 뒤 현주는 끝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극약을 복용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사망명부에는 아직 그녀의 이름이 없었다. 현주는 동료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치료덕분에 죽음의 문턱에서 목숨을 되찾았다.
 재생했음을 깨달은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면 그것은 죽기 전의 현주가 아니라 새로 태어난 현주라고 생각했다. 그런 만큼 그녀는 죽기 전의 현주의 과거와 결별해야만 했다.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현주는 김 교수와 영희의 결혼을 담담한 기분으로 축하해줄 수까지 있었다.
 “안 올 거니?”
 새 신부가 된 언니는 결혼식 날인데도 그 목소리가 행복에 들뜨거나 흥분되지 않고 차분했다. 그녀는 결혼을 행복의 시작이라거나 사랑의 정점이라는 식의 낭만으로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그냥 평범한 일상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언니도 김 교수와의 결혼식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일까.
 “몸이 불편해서…… 결혼 축하해!”
 자신이 언니에게 해줄 말도 위선과 불확실함밖에 없다는 사실에 현주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현주는 와야지. 그래야 그이가 기뻐하실 거잖아.”
 우리 현주라고?
 그래야 그이가 기뻐하신다고!
 내가 왜 영희네 현주이고 그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난 더 이상 옛날의 현주가 아니야. 영희의 의자매동생이 아니고 김 교수의 연인이 아니야. 현주는 야비한 당신들 때문에 절망한 나머지 독극물을 마시고 자결했어.
 눈물이 왈칵 치솟았고 울음이 터져 나왔으나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독극물을 마시고 죽음의 계곡에서 헤맬 때 그녀는 꿈속에서처럼 김명진의 모습을 보았었다. 그의 모습은 짙은 안개에 휩싸인 듯 희미했다. 아득히 높은 영마루에 선 그는 산신령 같기도 하고 부처님 같기도 했지만 분명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윤곽만 아리송했다. 그것이 현주와 마지막으로 본 연인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보았던 김 교수의 모습은 소매물도에서의 우연한 첫상봉 때부터 시종 그러한 윤곽뿐이었던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현주는 오로지 김 교수만 바라보았었다. 그토록 많은 남자들이 현주의 미모에 무릎을 꿇고 구애와 프러포즈를 해왔지만 그녀의 눈에는 김 교수 외에는 어떤 남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맞대고 눈길을 교환하면서 대화를 나누면서도 남자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뻔뻔스러운가. 남의 연인을 빼앗아가고도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버젓이 결혼청첩장을 띄우고 전화까지 걸어오고 있다. 미안하다는 사과한마디 없이 당연한 일을 한 듯이 말이다. 나를 청해서 제물로 삼고 그 제단에서 백년가약을 맺으려 하는 건가.
 너무나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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