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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스크랩] 푸코의 생각

by 8866 2006. 8. 4.

문화의 해체와 성의 복원 - 인간은 죽었다

무늬와 흔적 2006/04/25 00:42 유목민|seulsong

 21세기 여성 시대 - 문화의 해체와 성의 복원(4)

 - 계몽적 현대 이성주의를 해체하고 왜곡된 담론과 금기된 성과 광기 속에 숨은 진실 복원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사르트르 이후 지식인의 전형을

전복시키며 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해체와 그 동안 금기시 된 비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의미 부여로 그 속에 숨겨진

진리의 길을 트고

性과 권력과 지식에 대한 상호 연관성 속에

인간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가는 점을

고발하며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전형을 제시하여

성과 범죄와 정신착란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사르트르가 죽은 후 누가 지식인의 정상에 설 건가 사람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흔히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 급진적 정신분석 학자 자크 라캉,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그리고 미셀 푸코 등을 꼽는다. 이 4인방에 푸코가 끼여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비중이 큰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는 너무나 여러 분야를 다루었기 때문에 그의 업적을 분류하기 어렵다. 철학, 역사, 정신분석, 사회학, 여성학, 의 학, 문학, 문학 비평 등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푸코는 18세기 이후 20세기 사회에서는 모든 지식이 권력을 강화하고 그 의지의 보조 역할을 해 왔다고 보고 있다.

 

권력 즉 지식(le pouvoir-savoir)란 이 말은 권력이 달라지면 지식이 달라진다(autre pouvoir-autre savoir)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는데, 그는 일관되게 지식과 권력(savoir-pouvoir)의 상호 작용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늘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념을 강요하여 그런 믿음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떤 권력이 개입되어 있는 지, 그 과정을 규명하러 무진 애를 썼다.

 

맨 처음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결정한 사람들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까지도 우리보다 더 아는 것처럼 규정하는지에 대해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물리적 권력에 알게 모르게 시달려 왔다. 이제는 우리도 어느 정도 그런 권력 행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는 되었지만, 모든 인문과학은 각기 나름의 인간을 관찰하면서 그것들을 정신 병원, 학교, 공장, 감옥 재판소 등의 기관과 함께 각기 특정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푸코는 사회 과학의 중심적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연구를 통해 인간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의 책들은 비정상적 여러 형태의 연구를 하는데 그것은 광기, 범죄, 변태적 성행위 그리고 질병 등에 관한 것들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것과 그와 같지 않은 다른 모든 것을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정상적인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 우리 주변에 있는 것, 다른 것은 언제나 쉽게 구별되는 것,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푸코는 방대한 역사 자료를 훑어본 후에 이 모든 가설에 도전장을 냈다. 광기, 질병, 변태에 대한 정의가 시대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수용 시설에 가두거나 병원에 입원시킬 어떤 행위가 어느 시대에는 영웅시되는가 하면 또 다른 시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광기란 정신병이며 ,따라서 엄격한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을 뒤엎고 푸코는 그것이 문화의 소산이며, 서구 부르주아 문명의 발명품이라 믿었다.

 

뭐니뭐니해도 권력의 가장 적나라한 행사는 죄수에 대한 행사권의 해석이다. 이 분야에 대한 푸코의 세밀한 고고학은 이 분야에 대한 그 완벽한 고증과 해석이 가히 독자의 전율을 일으킬 정도다 .

 

규율이란 강제의 원칙이며 그 목적은 모든 사람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드는 규격화(normalization)에 있다. 그리고 누가 그 규범을 어겼는지 확인하는 것은 감시를 통해서이다. 그러니까 감시와 규격화는 근대 권력의 필수적인 도구이다.

 

이런 장치는 감시인은 독방에 수감된 사람들은 완전히 보지만 자신은 수감자에게 보이지 않는다. 죄수를 바라보는 감시인은 죄수의 모든 것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감시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죄수는 감시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시선의 불균형은 지식의 불균형을 낳고, 지식의 불균형은 권력의 불균형을 낳는다. 그리고 지식은 담론이 되어 사람들을 억압하는 교묘한 수단이 된다.

 

푸코는 이런 사회 분석의 도구로 이성의 틀(로고스logos)보다는 인식의 틀(에피스테메épistème)로 모든 진리의 실체를 재배치한다.

 

이성/비이성의 경계, 계몽/몽매의 경계선을 허물고, 또 내부/외부, 정상인/비정상인의 경계를 허물고 늘 심술궂은 질문과 괴상한 가설로 모든 진실을 상대화하였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은 언뜻 매우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어렵다. 그 경계선에는 언제나 안개가 끼여 있고, 영역 분쟁이 끊임없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주인공 맥 머피로 분장한 배우 잭 니콜손이 보여 준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완강히 부정하다가도 자신이 환자 일 수도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다. 감시와 처벌의 역사는 갈수록 지능화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는 비정상적인 인간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검사하고 조사하는 한편 그들은 가두고, 내몰고, 감추는 일을 꾸준히 늘려 왔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옛날에 미친 사람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집에서 병 치료를 했다. 지체 부자유자나 흉측한 사람들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없애 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고, 범죄자들은 가능한 한 공개적으로 처벌받았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추방했지만 그들이 우리 문화에서 덜 중요하게 된 건 아니었다. 정상인들은 비정상과의 비교 속에서만 규정되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비정상적인 것을 통해서 정상을 규정한다. 비정상을 통해서 우리는 정상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래서 비록 비정상적인 것이 추방되고 숨겨졌지만,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 다시 말해서 정상인들은 끊임없이 그리고 강박적으로 비정상인들을 연구하고 조사했다.

 

비정상에 대한 연구는 사회에서 권력 관계가 수립되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일단 비정상과 그 반대항은 정상이 규정되면 거기에선 언제나 정상인이 비정상인에게 권력을 휘두르게 되어 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에게 미친 사람이나 환자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 생각하는 것을 이미 부적절한 것으로 제쳐놓는다. 왜냐 하면 원래 그들에게는 아무런 지식이 없으니까.

 

푸코는 어떤 인물인지 좀더 알아보자. 그는 여느 프랑스 지식인처럼 최고 수재들이 모인다는 고등사범 학교(ENS) 출신이다.

 

그러나 그 시절, 푸코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점점 의기소침해져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더니 결국은 자살을 기도할 정도까지 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고 여기서 미셀은 의사에게 동성애 대한 성적 관심을 털어놓았다. 그 당시 정신과 의사들은 동성애를 심각한 질병으로 취급했음으로 이 치료는 푸코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별로 도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그는 아마도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병자들을 단순히 돕는 이상의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그들은 한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다는 것을 정하는 정신적 경찰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심리학에 끌려서 혼자 그 공부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프로이트를 읽었고, 킨제이 보고서를 알게 되었다.

 

고등 사범 시절, 교수들은 학생들을 파리의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 환자들을 직접 보여 주었고, 매년 한 주일은 오를레앙 근처의 다른 정신과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 과정을 견학시켰다.

 

푸코는 ‘로르샤크(성 클리닉) 테스트’에 매력을 느껴, 곧 가까운 학생들에게 이 테스트를 실시하여 그들의 은밀한 심리 상태를 단시간 내에 측정하기도 했다.

 

그의 동료들이 대부분이 그랬듯이 푸코는 잠시 공산당(1951년)에 입당했다.

 

1955년 푸코는 프랑스어 교수 자리를 얻어 스웨덴 웁살라오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16세기부터 20세기 사이의 의학 자료를 모아 놓은 거대한 도서관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몇 년 간 그는 이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면서 연구를 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광기와 정신착란> 그리고 <진료소의 탄생>의 결실을 맺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푸코는 고문서 연구가로 열렬한 음악 애호가로 사회 운동가로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글쓰기 그 자체가 기존 질서에 대한 열정적 전복을 확보하는 권리를 얻기 위한 몸짓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디드로, 사드, 헤겔, 라블레 전통에 서 있으며 그가 기존의 철학을 넘어서는 데는 버릇없는 그의 말투, 예컨대 “누더기 옷 사이로는 사소한 악덕도 드러나 보이지만, 법복과 모피 가운은 모든 것을 감춰 준다네.”라든가 “엉뚱한 말속에는 바른말이 합쳐져 있네.(광기 속에도 이성은 있어!)” 등등은 필수적이었다.

 

그는 불가해성 학문적인 틀에서 벗어나, 권위주의적 가설, 혼란스러운 연대기, 잘못 다루어진 텍스트들, 너무나 조잡하여 믿을 수 없는 오류들을 일반사의 중심에서 이탈한 그의 새로운 역사학인 계보학이나 고고학을 통해서 설득시켜 나갔다.

 

지식과 권력의 결속력과 배타적이고 비정상인을 압박하는 역사적 담론과 성의 사회적 구조와 성격을 정밀조사하기도 했다.

 

그의 회의론은 정신병의 카테고리에서 시작되었고 메타 역사의 딜레마를 분산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는 것(se déprendre de soi-même)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하였다.

 

푸코는 <바보들의 배: 15세기 부랑자들을 가득 채운 상상 속의 배>를 타고 비이성의 세계를 순례하며 니체, 사드, 바슐라르, 바타이유, 블랑쇼, 아르또, 알튀세르, 하이데거 등과 만나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완성된 근대 정신 이성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했으며, 인간의 초월적 능력은 합리적 억압과 지배를 통하여 조용한 개인 의식의 심층을 내면화하는 동시에 비이성을 이탈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지식과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과 주관성의 파괴를 고발하고 있다.

 

이 근대적 권력은 개인 행동을 합리적으로 통제 지배하여 그 영향력을 개인의 의식을 내면화해 가는 과정을 푸코는 난해하고 충격적 내용으로 기술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참된 주체성의 추구’ 방법은 혁명적 방법보다 지적 방법을 택했고 푸코의 계보학 ‘지식 즉 권력(savoir-pouvoir)’ 그 전문 지식으로 그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시켜 주며 더 나아가 생체 권력 (bio-pouvoir)이라는 개념까지 낳게 되는데 이는 권력이 신체에까지 직접 작용하고 신체에까지 영향을 주는 개념이다.

 

권력은 신체를 통해서(bio-power) 사회적 지배가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우리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 지배로 내면화하기도 한다. 신체를 통해서 효과를 미치고자 한 권력이 이 과정에서 가장 적절하고 교묘하게 동원되는 것이 성은 금지되기도 하고 조작되기도 하면서 개별자에게 권력이 요구하는 도덕률과 개인적 양심이라는 고상한 이념을 내면화시킨다,

 

19세기 제레미 벤담이 창안한 원형 감옥은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도덕, 법률, 죄의식, 양심 등으로 인간이라는 주체를 효과로서의 주체로 전락시키고 만다.

 

푸코는 철학의 고전적 주제로 돌아감으로써 효과로서의 주체를 벗어버리고 권력이 의도화 내면화된 자기 지배로부터 해방 추구하였다.

 

자유로운 완전히 해방된 자아 위해서 푸코는 자아의 전략 자아의 기술 탐색하며 스스로 한계 경험까지 여긴 동성애 탐닉한다거나, 범죄 현장의 탐방 운동 현장 참여하고, 바스 하우스 순례 등을 주저하지 않음으로 죽음에 대한 그의 열망을 숨기지 않는다.

 

개별자에게 참된 행복 가져다 줄 해방된 자아 추구하며 삶을 지배하는 주체가 되려는 몸부림을 끊이지 않았다.

 

신체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만이 신체를 통해서 내면화된 권력을 철폐시킬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평생 죽음에의 매료에 빠지게 되었고 말년에 스스로 죽음을 찾는 순례를 자초하기도 했다.

 

마지막 진리인 죽음을 찾아 고행하는 성자의 수난기를 겪으면서 성과 광기, 감옥, 병원 등 역사적 실증적 작업을 기묘한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명백한 반사회적 행위로 인해 스스로 죽이는 것만을 꿈꾸는 ‘사회로부터 거세된’ 사람들의 한계 행위에서 문화가 정치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문화 이론가보다 더 실존적으로 보여 주었다.

 

벤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시켜 준다고 주장한 ‘원형 감옥’같은 사회 통제 기제가 개개인 모두에게 완벽하게 기능 하는 사회와 니체 하이데거의 초인적이고 디오니소스적 요소가 활개치는 사회와는 근본적 차이가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매순간 단계마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자신이 말하고 있은 것을 하고 있는 것 자기 자신인 것과 대면시켜야 한다

 

역사는 없고 단지 중복되고 상호 작용하는 일련의 정당화된 역사와 배제된 역사가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합리주의 이성은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서 그 역이 되는 광인, 범죄자, 정신 이상자의 사회적 범주들은 필요로 하고 심지어는 그 범주를 창출한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적 잣대의 이성은 그에게 있어 성차별적, 인종 차별적, 제국주의적이다.

 

그의 이론과 실천은 개별적이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투쟁의 의식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약화(힘 빼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계보학이나 고고학은 현재의 관점에 비추어 현재의 개입으로서 쓰여진 효과적 역사 기술 방법으로 지식은 권력과 연결됨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감옥은 지식의 도구다.’라는 그의 담론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푸코식 반체제운동은 사르트르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국가적 양심으로 간주되었던 이 저명한 지식인 사르트르는 중요한 정치적 도덕적 이슈에 대해서 자신의 철학을 적용했지만, 푸코는 지식인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이 기자와 TV 카메라의 시선을 감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언론의 시선은 오히려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71년, 72년 프랑스의 감옥들에서는 일련의 폭풍이 일어났는데 푸코는 수감자들이 감옥의 극도로 가혹한 생활 조건을 책으로 써 그들을 도와주었다.

 

푸코는 일관되게 감옥의 역사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감옥에 대한 그의 관심은 처벌의 형식으로서 감옥의 기원을 조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 그의 관심은 권력 관계 안에서의 담론의 역할에 모아졌으며, 겉보기에 추상적인 담론이 어떻게 사람들이 육체에 직접 구체적, 물리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지에 집중되었다.

 

<감시와 처벌>에서는 감방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꼼꼼하게 통제하는 것은 사형 당한 시체를 일반에게 공부하는 것보다 사실상 훨씬 더 철저한 권력의 행사라고 보았다. 푸코는 역사의 한 중요한 부분이 묵살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어쩐 일인지 전통적인 존재로 간주할 뿐, 육체를 가진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국가에 의해, 또는 국가와 연관이 있는 하위 기관에 의해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특히 육체적인 제재를 얼마나 받았는가를 한번 눈여겨본다면 엄청난 전면적인 변화가 18세기 말에 생겨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형벌 제도의 밖으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개인을 개조하는 새로운 과학 - 정말로 인간 공학이 만든 군대, 학교, 병원, 정신병 요양소, 구빈원, 그리고 공장 속에서 인간은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GIP(Prison Information Group) 1970년 수감자 권익 옹호 실천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생산 양식의 모순에서 인간 해방을 주장했다면, 푸코는 정보 양식의 감시에서 해방되는 역사를 추구하였다.

 

만일 감옥이 이 규율의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의 개조에 성공했다면 거기서는 어떤 인간이 생겨나는 것일까? 주어진 일을 아무런 질문이 없이 묵묵히 하는 고분고분한 일꾼이 생겨날 것이다. 공장에 적합한 자동 기계 인간처럼...

 

그렇다면 감옥이 개조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실패작? 그들은 감옥으로 자꾸만 되돌아온다. 감옥이 재범자 제조소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또 주요 재범 그룹인 창녀들의 예를 들어보자. 사회는 창녀를 단죄하는가? 아니면 그들을 만들어 내는가? 논센스 퀴즈다. 그 대답은 둘 다 맞는 것이다. 창녀들은 감옥의 연대를 통하여 동업자들을 얻고 포주를 정한다. 그러나 법의 강제력과 매음 사이에는 언제나 긴밀한 관계가 연결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에 이 관계가 정착되었다. 매음은 불법이 아니라 단지 지역 경찰에 등록하지 않고 하는 것이 불법이다. 경찰은 위생 검사관과 포주를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매음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다. 매음은 잠적으로는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성적 차별에 대한 반항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남성에 의해, 그리고 남성을 위해 운영되고 있고, 여성 창녀들은 모든 점에서 가혹한 남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다시 요약하지만 성의 역사는 철저하게 정치 권력과 긴밀한 관계와 보호 속에서 유지 발전되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교수도 재판관이요, 의사도 재판관이요, 교육자도 재판관이요, 사회 운동가도 재판관이다. 이 합법적 감옥 체계(le système carcéral)와 원형 감옥의 감시 체제는 성에 대한 죄의식과 ‘구경 사회(la société de spectacle)’ 에서 ‘감시 사회’로 완전히 굳어져 버린 것이다.

 

아폴로적 것보다 디오니소스적 사회 욕망 성 역사는 성 과학이나 관능의 기술 발달이 아니라, 성과 죄의식 성욕을 억압하거나 침묵을 강요하여 결국 생태적 권력과 성까지도 전산화하며, 합리적 사회라는 명목으로 순종적 인간만을 양상했다.

 

17세기의 상이 종교적 도덕적 통제를 받았다면 20세기의 성은 철저하게 권력에 의한 관리 체제 즉 공권력의 통제를 받는다.

 

원래는 아가페와 에로스 사랑 사이에 구별이 필요 없는 것이다. 고대 희랍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소년을 더 좋아하는 것은 성도착이 아니었다

 

그의 성의 역사는 성의 억압에 대한 가설이다. 한 예로 우리는 모두 빅토리아 시대의 성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남이 보는 앞에서는 지나치게 얌전을 뺀다. 마치 성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또한 사람들에게는 육체가 없는 듯이 그들은 정숙한 여자에게 성은 전혀 즐거운 것이 아니고 남편이 성 관계를 원할 때는 다른 일 예컨대 부엌 청소 같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편 집밖에만 나서면 창녀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왜냐하면 은밀하게 빅토리아 사람들은 극도의 섹스광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밤낮으로 그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성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억눌려 있었으므로 그들의 성은 한없이 왜곡되고 점점 더 병적으로 되어 갔다.

 

이 병을 치료하려 애쓴 첫 번째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이다. 외설이라는 금기를 깨고 성에 대한 가능한 정직하고 공개적이고 건강한 태도를 취했다.

 

갑자기 성에 대한 담론이 중요해졌고 성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면서 성의 과학은 서구 문명의 중요 과정의 하나가 되었다. 성의 역사에서도 푸코의 결론은 역시 권력과 쾌락의 끊임없는 나선형적 순환을 캐내는데 있었다.

 

만일 우리가 성의 다양한 메커니즘 등의 전술적인 전복을 통해 육체와 쾌락과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에 대해서 그 다양성과 가능성의 통치에 대항하려면 우리가 분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성의 대리업(agency)이다.

 

푸코는 남자를 위해서 조작된 여성은 성의 정치권력의 희생자임을 폭로하며 해방된 자아의 추구 과정에서 신체화된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으로서의 성의 역사를 추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성은 권력의 기술이고 과학은 지배의 도구이며 강압과 윤리에의 복종, 기독교의 탈쾌락화, 사회적 종교적 법률적 보다 더 나아가 생태적 권력을 비판한 푸코는 이처럼 무정부적이고 히피적이고 반문화적이고, 더 나아가 강단 허무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반항 주체로 부정을 통한 긍정 주체를 찾으려 했지만 카뮈처럼 부조리에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푸코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사회적 검열에 민감한 것은 그가 동성 연애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인습을 위반하려 애썼던 사드, 룻셀, 바타이유, 클로소프스키 등의 작가들에게서 강한 애정을 느꼈으며 르네 샤르의 시구 중 「그대의 남다름을 계발하라!」라는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푸코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에피스테메라고 잣대로 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과학을 뜻하는 에피스테메는 푸코에게 있어서 한 시대 또는 어떤 특정 사회 그룹의 고유한 준거와 그의 지식의 총체성의 상징이다.

 

50-60년대 같았으면 가난의 상징이었을 찢어진 청바지가 왜 지금은 가장 멋스러운 젊은이의 옷차림으로 여겨지는가? 그것은, 그 시대와 지금의 에피스테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에피스테메를 다루는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18세기 이전까지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폭탄 선언을 한다. 이것은 우리 인간은 인류의 비교적 최신의 발명품이며, ‘지금 막 사라지려 하고 있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져, 니체가 신을 죽인 이래 푸코는 인간을 죽였다는 경구를 낳았다.

 

18세기 이전에는 모든 지식의 근원은 신이었다. 신은 지식은 무한하고 절대적인데 비해 인간의 지식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런데 18, 19세기에 이르러 신이 그 확고한 자리를 잃게 되자 인간은 갑자기 중심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었으며, 모든 지식의 근원도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이제 인간은 학문 연구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상으로 떠올랐다. 인간이 최신의 발명품이다 라는 말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그의 저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담론(discours)이라는 말은 구조주의 영향하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의 대한 정의는 그리 쉽지 않다. 사전에는 이야기, 담화, 연설, 훈시, 인사 등의 뜻이 있는 담론은 철학에서는 사고의 언어적 표현이며, 따라서 직관의 반대말이다.

 

푸코의 담론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한 대상의 인식이 바로 담론이다. 그러니까 데모 현장의 짤막한 구호도 담론이고, 마르크스의 방대한 <자본론>도 담론이다. 소리나 문자가 되어서 우리가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인간의 모든 생각들, 이것이 담론이다. 푸코에 말에 의하면 말과 생각 사이에 있는 것, 기호라는 옷이 입혀진 생각, 또는 말에 의해 가시적으로 된 생각이다.

 

따라서 일상적 화제나, 개인간의 계약서, 대학 화장실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구호, 대통령의 담화문, 성경 말씀, 법조문이 모두 담론이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칸트의 이론이 다 담론이며, 수학, 생물, 경제학 같은 분야 하나하나도 모두 담론이다.

 

이처럼 담론은 학문, 이데올로기, 지식 등을 포괄하는 아주 편리한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말이 푸코 철학의 체계를 떠받치는 중요 개념이 된 것은 그것이 권력을 실어 나르는 운반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소수를 보던 시대 고대 근대 스펙터클(구경거리)의 시대 거대한 공동체 친밀성 축제 그러나 근대 현대는 소수가 다수를 보는 시대 이런 사회는 공동체는 깨어지고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개인들뿐이다. 현대인은 정보의 대상일 뿐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아니다. 현대인은 관중석에도 무대 위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판옵티콘 원형 감옥 〔한 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건물 전체의 내부가 다 보이도록 설계된 건물〕의 기계 장치 속에 갇혀 있기 대문이다.

 

침묵하는 메시지가 담긴 다양한 문화 예술과 유물을 통해 과학이나 역사에 나오지 않는 잊혀진 사물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면에서 그의 학문은 고고학이라고 명명하게 된다.

 

에피스테메가 한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이 담론을 통해서이다. 푸코는 담론이 가진 통제의 기능을 외부 통제와 내부 통제로 나눈다. 외부 통제란 금기, 진실에의 의지들이다. 내부 통제란 주석, 저자, 말하는 사람에 대한 제한 등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재야 사학자들이 정통파 사학자들로부터 적대적 통제를 받는 것이 진실에의 의지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제한이라는 이중 통제 방식이다.

 

그러나 누구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여기서 문제가 떠오른다. 권력 있는 자의 담론이 사회를 지배한다. '권력이 곧 정의다'라는 격언은 아는 것이 권력이다. 라는 격언과 함께 푸코의 체계를 떠받드는 두 개의 중심 기둥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나 무슨 이야기든지 할 수 있는 사회인 듯해도 실제로는 엄격한 금기와 제한이 우리의 말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다. 말에 대한 깊은 공포가 있는 것이다.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무신론과 반이성주의에 미쳐 아폴로적 질서와 형식보다는 디오니소스적 열정과 광란을 더 좋아하였고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기독교적 사상을 넘으려 했듯이 푸코도 그의 초인 감정과 직관을 중요시 여겼다.

 

푸코는 합리적 인간과 절대적 진리의 개념을 거부하고 역사를 그 비합리성과 우연성 속에 파악했다.

 

<지식의 고고학>이나 <도덕의 계보학>이라는 책에서 위대한 도덕적 진실의 근원을 찾으려는 전통적 역사학은 완전히 헛짚었다고 보았고, 모든 것이 역사의 파편화된 시각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보았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했듯이 푸코는 인간의 죽음을 예언했다. 인간이 최근의 발명품이며, 이제 곧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엄청난 주장이 푸코를 프랑스 사상의 전면으로 끌어내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니체적 초원의 힘을 상실하고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를 망각한 채 끊임없이 원형 감옥의 전면적 감시 속에 있게 된다

 

그의 이런 고백은 그의 지적 경향과 한 지식의 심각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인습이 여전히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조용히 혹사하는 체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실체를 폭로하여 그것을 변화시켜, 완전히 뒤집어엎어 버려야 한다. 내가 저술 작업에서 할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

 

20세 말 정보 양식 사회에서 성과 지식과 권력의 새로운 형태의 총체적 문화 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는 푸코의 극단적 담론은 21세기 신세기를 문턱을 넘긴 우리에게도 한 번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1. 생명빛 2006/04/26 06:09

    긴 글 잘 봤습니다.
    푸코에 대해서 많은 흥미가 생기는군요.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이 분이 말씀하시는 '인간해방'이라는 것이 기존의 집단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종교나 영성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 분은 당연히 권력화된 종교일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셨을 것 같지만, 종교의 본질인 영성 혹은 그것을 통한 초월 및 '깨달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졌을 것 같은데, 혹시 이런 부분에 관해서 이 분이 남기신 의견이 있는지요?

  2. 유목민 2006/04/26 10:41

    푸코에 대해서 아는 건 없고 다만
    그는 인간이 인간을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서구적 이성주의를 완강히 반대했죠. 당연히 사형제도에도 반대했고요.

    그는 현대를 과거보다 더 잔인한 감시 사회로 보았죠.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고 보았죠. 그걸 신체권력이라고 해요.
    개개인의 솜털까지 감시하니까요. 그러니 인간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죠.

    푸코는 20세기에 들어와 겨우 노자 비슷한 경지에 도달한 셈이죠.

    물론 자아를 이야기하는 불교의 개인 혁명보다
    이웃사랑을 이야기 하는 기독교가 훨씬 강력한 사회혁명이죠.
    유럽 사회보장제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고요.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약자보단 강자를 보호하자
    지식인이 나서 그 시대의 위선을 폭로하고 우상을 파괴한거죠.
    신성이란 것도 인성에서 나오죠.
    종교도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니까요.

    사르트르의 대타존재(be for others)나 성서의 이웃사랑과 같은 뜻이죠.
    교회가 그것을 못하니까 무신론자인 지식인이 그걸 본으로 보인 셈이죠.
    푸코도 마찬가지예요. 신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거죠.

  3. 출처 : 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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