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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문화

한중일 차문화

by 8866 2009. 9. 23.

 

[펌] 한중일 차문화

 

일상생활과 가까웠던 다실의 풍경을 통해 동양 삼국 차문화의 또 다른 일면을 알아보자.
흔히 다실이라고 하면 정원이 딸리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아늑한 공간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다실의 충분조건중 하나라면 몰라도 필요조건은 아니다.
필자의 다실에 대한 정의는 원래의 그 건축공간의 주된 용도를 불문하고 차를 마실 수 있고
또 차를 마시는 공간이면 모두 이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전제 하에 논지를
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중일 동양 삼국의 차문화의 발전과정에서 다실이라는 것
자체가 생활주거공간과 밀접한 관계 하에 성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중일 삼국다도의 동부동’에서 그 특징의 단면으로 중국의 다예, 우리나라의 다례,
그리고 일본의 다도와 같은 표현법을 되새겨 볼 필요는 있다. 그만큼 각종 다서나 고문서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각 나라의 문화사조 속에서 그 나라 다도의 특성으로서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궁정다례나 문인다도가 당연히 존재하였지만 일찍이 발달한
다관이나 다루를 통해 모두가 손님의 입장에서 차를 주문하여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자연스럽게 다관의 차박사(茶博士; 학위가 아닌 다루나 다관
의 종업원을 지칭)에 의해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예적인 면이 많이 가미되었고 그것이
현대 다인의 손에 의해 이른바 <중국다예> 등과 같은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17세기 말엽부터 쵸우닝(町人)문화라 불리던 상인경제의 부흥에 따라
이들의 교양으로서 말차도가 유행하자, 다례법의 교습을 전문으로 하는 각 유파는 이에모토
(家元)제도의 도입으로 기업화, 세습화에 성공함에 따라 오늘날까지 다도라는 모습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는 승가다도나 문인다도 그리고 궁중에서의 다례
모두가 각 시대를 걸쳐 존재하였지만, 가장 확실한 사료로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역시 궁중
다례였고 그것은 사대부들의 가례와 접합되며 오늘에 이름으로써 다례 자체가 우리를 대표하
는 다도의 형태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양 삼국의 다도문화는 주거문화와 밀접
한 관계 속에서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의 다실의 구조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었다.
중국의 생활문화는 의자문화로 표현할 수 있듯이 중국다예의 행다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다실 즉 다관이나 다루 자체도 경관이 수려한 호수나 강가에
위치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다다미문화였기 때문에 온기를 위한 다로가 다실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온돌 문화의 특성상 굳이 방안의 온기를 위해 화로를
들여올 필요가 없었고, 때문에 각종 민화들을 보더라도 차는 마당에서 시동이 끓여 손님에게
대접한 것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의 다실에 관해서만 상호 비교해 보면 더욱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
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와 상응하는 일본의 가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시대까지는 거의 양국
이 유사한 형태의 다실을 가졌었다. 비록 일본의 서원차가 등장하거나 투차가 유행하던
시기의 차회의 형식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나 차를 마실 때 골동품을 진열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공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경관이 수려한 곳에 정자를 세워 차를 즐겼던
고려시대는 일본의 금각사나 은각사로 대표되는 당시의 화려한 다실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일본은 에도바쿠후(江戶幕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인 격차를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사대부들의 문인다도는 서재이자
접빈실이던 사랑방이 다실의 역할까지도 겸하게 된다. 고미술품 중 문방구도 등에서 쉽게
서책들과 다구들이 서가에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승가다도는
각 사찰의 암자를 중심으로 전해지며 자연스럽게 암자는 선승의 도량 이자 다실이기도
하였다. 일지암이 바로 승가다도의 대표적인 다실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경우에는 무사의
다도가 승가의 다도와 혼합되고 이것이 재차 쵸우닝의 다도와 융합되면서 일본 다도의
주류로 계승됨에 따라 다례법을 가르치고 그 수입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전문다인들이
세습제를 확립함으로써 차만을 목적으로 마시고 가르칠 수 있는 전문 공간인 다실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고 또 대대로 전해질 수 있었다.
다실은 음다문화의 가장 중심적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렇듯 중국과 우리나라는 일상
생활 공간 속에서 차는 객을 접대하되 주객이 따로 없이 동등하게 차를 마시고 또 차는
접빈수단이었기에 별도의 차만을 위한 전문 공간의 필요성은 적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쵸우닝의 다도가 기업화되면서 다례법을 가르치는 것이 세습되고 생활이
가능하게끔 전문 다실이 필요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다실(喫茶之亭)의 주인인 테이슈(亭主)와 손님이라는 등식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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