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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라캉을 만나다 17

by 8866 2009. 2. 17.

라캉을 만나다

[에크리]를 통해 라을 만난다

 

라캉, 지천명에 이르다 (그리고 Dora의 사례)

글쓴이: 한살림

 

라캉은 <Presentation on Transference>를 1951년에 어떤 정신분석학회의 모임에서 발표하였다. 같은 해에 라캉은 유명한 세미나를 시작하였다. 소위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때였다. 라캉이 쉰 살이 되어 천명을 알았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 자신의 소명(calling)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공자가 쉰 살이 되어 천명을 알았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이 왕도를 실현하는 데 쓰이지 않을 것을 알고는 교육에 힘썼다. 라캉도 쉰 살이 되어 자신에게 걸맞는 교육의 현장과 방법을 모색하였다.

 

라캉은 현대의 유명 지식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기념비적인 저작을 생산함으로써 유명해졌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예수처럼 어떤 저작을 남김없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현대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근/현대는 자신(만)의 책을 쓴 사람들이 지성의 무대를 주름잡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지식인들 가운데 이런 저작을 갖기 않은 사람은 드물다. 책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보이는 자크 데리다도 후학들이 읽기에 벅찰 만큼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런 배경에서 라캉이 1951년에 자신의 세미나를 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그는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였지만 독특한 사유를 담은 책을 출간함으로써 ‘학계’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런 책의 반열에 들고 있는 [에크리]는 라캉이 오랫동안 세미나를 개최한 후에 ‘회갑논문집’처럼 출간된 것이다.

 

세미나를 시작하던 1951년에 라캉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1781)을 발표했을 때 오십대 후반이라서 그를 대기만성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십 즈음에 상당한 양의 책을 저술하였고 철학계에 확고한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라캉이 이따금 비판하고 있는 프랑스 실존주의의 거두인 사르트르와 까뮈는 무엇보다도 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서 노벨문학상을 받는 인물들이었다. 라캉이 스승으로 삼은 프로이트도 거대한 전집을 남기지 않았는가? 라캉이 자신의 책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공자에 버금가는 知天命의 경험을 했다고 상상해 본다.

 

그러면 오십에 이른 라캉은 자신을 누구에 견주었을까? 나의 마음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소크라테스이다. 그는 변증법을 선보인 인물이며 자신의 저작을 남기지 않고서도 유럽 문명의 시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나는 라캉이 소크라테스를 삶의 모델로 삼았다고 상상해 본다.

 

그런데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라캉이 인류를 위해 하나의 진리를 마음에 담았다고 하자. 진리는 한 사람의 마음에 안주하지 못한다. 진리는 스스로의 여정을 찾아 나선다. “세상에 외치고 싶어 당신이 누구신지...” 이 성가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의 특징을 요약하고 있다. 진리는 인류에게는 선물(gift)로 주어진다. 기독교에서 복음(福音)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가 세상에 선포되었다는 말이다.

 

1950년 즈음에 라캉은 자신이 하나의 정신분석학의 도(道)를 깨달았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문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 발표되고 있는 세미나들로 보아 그의 사유는 방대한 양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것의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어놓지 못했다.

 

그러면 라캉은 어떻게 자신의 도를 전할 것인가? 라캉은 전통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 ‘아카데미’를 열자. 그리고 라캉은 1951년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세미나를 열기 시작하였다. 이십년 이상 라캉은 이 세미나를 계속하였다. 이 긴 세월을 통해 그의 지천명이 출세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음을 안다. 종교적 열정에 가까운 정신분석학에 대한 신념이 아니고서야 이 세월 동안 세미나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라캉의 <Presentation on Transference>는 이 즈음에 발표되었다. 1953년에 로마에서 발표된 유명한 논문에서 분명하듯이 라캉의 사유는 상당한 정도로 성숙하였다. 라캉은 이 논문이 정신분석학자들에게 주체(subject)를 부각하기 위함에 있었다고 첨언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이후 나타난 대상관계심리학과 에고심리학에서 ‘주체’라는 말은 낯설다. 나는 정신분석학 또는 심리학에 ‘주체’라는 말이 도입되는 역사를 모른다. 그렇지만 이 시기를 즈음하여 라캉이 러시아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과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라캉의 ‘주체’는 소쉬르와 야콥슨의 ‘언어 주체’와 즉각적으로 연결된다. 복잡한 사유/정신의 소유자였던 라캉은 주체(subject)가 갖는 다의성(多義性)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흔히 서양 언어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사태를 생각해 보자. SP. 이 단순한 두 개의 기호는 인간을 보는 매우 다른 시각들을 담고 있다. S가 무엇인가? 그것이 데카르트의 순수사유라면? 또는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잡종체라면? 등등.

 

이 논문은 프로이트의 유명한 <도라의 사례>에 대한 라캉의 독해이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고전적인 사례 연구. 프로이트의 도라를 둘러싸고 무수한 글들이 존재한다. 라캉의 글을 읽기 위해 우선 이 사례 연구를 읽어야 한다. 상당히 흥미있는 드라마 하나를 보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도라의 사례>를 방법 하나를 소개한다. 오래 전에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할 때 주디스 허만 (Judith Herman)의 [Trauma and Recovery]를 읽었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의 이론적 변절을 공박하는 대목이 담겨 있다. 허만에 따르면, 도라는 실제로 일어난 (성적) 폭력에 따른 외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도라가 보여주는 증후들은 감당할 수 없는 (내적) 환상들(phantasies)의 비어져나옴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외상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 폭력과 결부되어 있다. 허만 등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이 초기의 유혹/외상 이론을 초기하고 환상 이론으로 나아갔다. 허만은 이 전환 (또는 변절)이 프로이트의 난처함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과 결부된) 외상의 만연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성적 폭력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신에 프로이트는 이 외상들이 아동들의 환상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이 때 프로이트는 환자 (또는 내담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를 착취한 자의 자리를 점한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는 다시 희생된다 (revictimization). 허만은 프로이트의 <도라 사례>에서 프로이트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발견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동심리학자 앨리스 밀러(Alice Miller)의 저작들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밀러는 성폭력의 맥락은 아니지만 (서양) 문화 전체가 ‘해로운 육아법 (poisonous pedagogy)’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주장이 맞다면 외상이 없는 – 또는 비교적 외상에서 자유로운 – 어른은 예외에 속한다.

 

이제 이 논문에서 라캉이 주장하는 바를 검토해 보자. 라캉은 프로이트가 실패한 지점을 발견하지만 그의 사유가 전반적으로 엉터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프로이트가 근본에 있어서는 옳다고 믿는다. 흔히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라캉을 생각하면서 광신자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라캉은 자신의 비판정신을 몰각하기는커녕 가장 날카로운 메스를 프로이트에게 가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는 원래 사유가 보여준 전복적 창조성을 회복하자는 말이다. 프로이트의 저작들은 전복성과 반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라캉에 따르면, 프로이트 사후의 정신분석학의 역사를 보면 이후의 프로이트가 가지고 있는 혁명성이 아니라 반동성이 부각되었다. 에고심리학. 라캉의 말을 인용하면 “Whereas Freud assumed responsibility for showing us that there are illnesses that speak (unlike Hesiod, for whom the illnesses sent by Zeus come over men in silence) and for making us hear the truth of what they say, it seems that this truth inspires more fear in the practioners who perpetuate this technique as its relation to a historical moment and an institutional crisis becomes clear.” (E. p.177; F. p. 217) 라캉은 이 대목에서 미국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에고심리학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라캉이 보기에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혁명성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그의 말을 인용하면 “For ‘truth’ is the name of the ideal movement that this discourse introduces into reality. In short, psychoanalysis is a dialectical experience, and this notion should prevail when raising the question of transference.” (E. p. 177; F. p. 216)

 

이 대목에서 다시 라캉과 소크라테스의 대비는 중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불렀다. 라캉과 소크라테스는 동일하게 주체 또는 영혼이 진리라고 하는 아이를 낳는 과정을 돕는다. 라캉이 말하는 진리는 언제나 ‘주체의’ 진리이다. 이 경우에 정신분석의 주체는 자신의 진리를 ‘아는’ 데 있어 특별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정신분석가는 소크라테스처럼 말(words)을 이용하여 (주체의) 진리의 출산을 돕는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이라는 산파술의 실례를 도라의 사례 연구에서 발견한다. 이 사례 연구는 주체의 진리 낳기의 과정 (그리고 그 실패)를 보여주는 문서이다. 이 실패는 프로이트의 다양한 편견들로 인해 나타난다.

 

라캉의 요약을 따라가 본다. 정신분석의 주체로서 도라는 프로이트를 대면한다. 이를 라캉은 첫번째 발달(a first development)라고 부른다. 이 때 도라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아버지 등등과는 달리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다시 말하면 프로이트는 ‘들을 귀’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도라의 말들을 거짓말이라고 말할 때 프로이트는 ‘적어도’ 처음에는 실제로 일어난 일로 받아들인다. 이를 알아차린 도라는 다른 사람 – 또는 심지어 자신에게도 숨겨진 –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이제 프로이트는 정말로 이 일들이 일어났다면 자신이 무엇을 할까를 자문한다. 이를 통해 프로이트는 도라에게 묻는다. 라캉은 이 단계를 첫번째 변증법적 반전(a first dialectical reversal)이라고 부른다. “너는 이 드라마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니?” 이 질문과 더불어 도라는 진리의 두번째 발달 (a second development of truth)에 이른다. 도라는 자신이 불륜의 공깃돌처럼 사용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대목에서 도라는 아버지의 애정행각에 대해 강렬한 질투심을 보인다. 프로이트는 다시 묻는다. “이 질투의 이면에 있는 근본 동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과 더불어 두번째 변증법적 반전 (the second dialectical reversal)이 일어난다. 이 질문과 씨름하면서 도라는 진리의 세번째 발달 (a third development of truth)에 도달한다. 도라는 K.부인(Frau K.)과 대면한다. 프로이트는 도라와 K.부인과의 관계를 해석함으로써 세번째 변증법적 반전(the third dialectical reversal)을 야기한다. 이 대목에서 프로이트는 실패한다. 그는 도라에게 있어서 Frau K.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그녀에게 돌려주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도라는 프로이트를 떠난다. 프로이트는 도리어 자신을 K.씨 (Herr K.)와 동일시함으로써, 그리고 동성애를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도라를 이해하는 자리가 아니라 도라를 비난하는 자리에 선다.

 

라캉의 논문에서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 실패의 분석이다. 프로이트는 이 사례가 완결되지 않은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각주에서 자신의 실패의 본질에 접근한다. 그는 1905년에 동성애에 대해 적절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도라와 Frau K.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 라캉의 말을 직접 인용한다. “And all her dealings with the two men [즉 Herr K.와 프로이트] manifest the aggressiveness in which we see the dimension characteristic of narcissistic alienation” (E. p.181; F. p.222).

 

이 때 프로이트가 파악하지 못한 것은 도라가 남성인 아버지=Herr K=프로이트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현상이다. 프로이트는 도라가 어머니=Frau K.와 갖는 관계를 적절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대신에 프로이트는 도라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는 이성애(heterosexuality)를 거부하는 데 있다고 파악하였다. “너는 왜 Herr K.의 사랑을 거절하는가?” 이 대목에서 프로이트는 도착적으로 보인다. 도라에게 아버지의 애인의 남편을 애인으로 가질 것을 권고할 수 있을까?

 

라캉은 하나의 각주에 주목한다. “What we then find is this: Freud admits that for a long time he was unable to face this homosexual tendency … without failing into a state of distress…. [문단바뀜] I would say that this has to be ascribed to a bias, the same bias that falsifies the conception of the Oedipus Complex right from the outset, making him consider the predominance of the paternal figure to be natural, rather than normative …” (E. p. 182; F. p. 223)

 

동성애 – 또는 동일시 현상-에 대한 프로이트를 비판하고 있는 라캉에게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이제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된다. ‘아버지의 이름’은 프로이트가 믿었듯이 높여진 아버지 (exalted father)가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의 바닥에 놓여 있는 남성기(penis)의 부재에 연루된 남근(phallus)에서 솟아오른다. (이 점에 대한 논의는 연기되어야 한다. 이 논문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라캉은 이 문제에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다.

 

라캉의 논문에서 매우 중요한 언급을 인용하고 이 노트를 맺는다. “What thus happened during the scene of the lakeside declaration, the catastrophe which drove Dora to illness, leading everyone to recognize her as ill – this, ironically, being their response to her refusal to continue to serve as a prop for their common infirmity (not all the ‘gains’ of a neurosis work solely to the advantage of the neurotic)?” (E. p. 183; F. p. 224)

 

이 대목에서 비극적이지만 매우 창조적인 여성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착적 관계망에서 자신의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지 않는가? 정략결혼에 얽힌 여성들을 생각해 보라. 도라는 처참한 모습일망정 도라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프로이트가 이 여성에 대해 느꼈던 매력은 그녀가 청춘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옴짝달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여성을 프로이트는 (적어도 라캉은) 분명 느끼지 않았을까? 그녀는 (푸코의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관계망에 속한 현대인의 표상으로도 이해된다. 우리는 그녀보다 나은 탈출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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