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의미의 공간
  • 자연과 인간
한국문학

배수아/목요일의 점심식사

by 8866 2009. 1. 16.

 

목요일의 점심식사/배수아


나는 천구백육십오년 삼월 어느 목요일 서울 필동에 있는 대평의원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날은 흐리고 추웠다. 아직 꽃은 피기 전이고 바람이 싸늘했다. 갓 태어난 나는 무엇이 그리 슬픈지 한없이 울었다. 비슷비슷한 신생아들이 수십 명이 태어났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서 아기들이 뒤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에는 어디에나 짐승의 덫이 있어서 날카롭게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살해당하기 쉽다. 대평의원의 너스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스물아홉 해가 지난 뒤 나는 그것을 알았다.



“난 목요일에 태어났어.”


“그게 어쨌다는 거야?”


제이는 무거운 눈동자를 들어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에는 어울리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던 제이와 나는 그날 집을 나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각자의 퇴근길에 우리는 버스에서 만났다.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야무지지 못하게 젖었다. 버스는 기다려도 잘 오지 않고 버스 정류장은 혼잡했다. 서울역에서 간신히 버스를 탔는데 시청 앞에서 제이가 비슷하게 젖은 모습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같은 집에서 살고는 있었지만 얼굴을 마주 본 것은 며칠 만인지 몰랐다. 나는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최대한으로 긴장하고 있었고 제이는 많이 마시려고 극단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색하고 서걱거리는 시간이었다. 제이와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그 마지막의 삼 년 동안은 같은 집에서 가난하게 같이 살았다. 제이와 알고 지내는 동안 나는 제이가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고아처럼 나는 혼자가 되었다.


“목요일에 태어나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태어난 시간도 불길하고 현기증이 나지. 제이, 이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어. 무의식적인 원인. 나는 벗어날 수가 없어. 나,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외로워.”


“넌 나쁜 년이야.”


“핑계를 대는 것 같니?”


“넌 나를 배신했어.”


“나에 대해서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제이. 제발 부탁이야.”


“넌 하고 싶은 대로 했어, 뭐든지. 내 생각을 하면서 너를 참은 적이 없지? 옛날부터 그랬어. 난 생활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았어.”


그랬다. 제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나와의 생활을 위해서 참았던 모든 것들을. 어머니와의 불화, 가난한 셋방, 학위를 따기 위한 공부를 도중에 마쳐야만 했던 것, 그가 가지고 있던 종교와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와의 결혼, 정의로웠던 그의 대 사회적 신념들을 포기해야 했던 삶에 대해서. 그건 우리들이 남보다 더욱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제이는 착한 아이였고 그 인생의 봄바람 같은 모퉁이에서 만난 어느 여자아이에게도 해야만 한다면 그 모든 것들을 그는 주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종족으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보석 같은 신의를 배반했고 그의 용서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우리가 술을 마시고 헤어진 다음에 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밤늦게 비가 내렸다. 나는 홀로 있을 제이의 어깨에 내릴 차가운 빗물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아팠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나는 갈 곳이 없이 서울의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붉은 투피스를 입고 있었고 검은 구두를 신었다. 홈리스처럼 헤매고 다니기에는 그다지 적절한 복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나는 우산도 없고 레인 코트도 없었다. 그때 나는 관공서에 취직한 지 일 년 남짓 되었고 그달 내 통장에 들어온 월급은 이십오만원 정도였다. 하룻밤 재워달라고 전화할 수 있는 친구도 없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흠뻑 젖은 채로 거리의 편의점으로 들어가 작은 타월을 사서 머리칼을 닦았다. 제이는 잠들어 있을까, 이 거리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을까, 내가 어디로 가서 잠들 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가슴 한편이 허물어지는 듯이 어지러웠다. 나는 이제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는 생을 살게 될 터였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회사로 출근까지 해야 한다. 나는 한강으로 가서 그 다리 아래에 죽은 듯이 누워 있고 싶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나는 부랑자로 잡히지 않기 위해서 건물 그늘에 몸을 숨겼다. 셔터가 내려진 건물은 어둡고 깊은 입구를 갖고 있었다. 나는 건물 입구에 앉았다. 큰길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입구였다. 시계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 되려면 여러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제이는 언제나 이른 아침에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제이가 출근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제이는 어쩌면 나를 기다릴지도 몰랐다. 길가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있고 나는 제이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었다. 제이, 나 잘 있어. 여긴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야. 그러니 제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날 기다리지도 말아. 난 비에 젖지도 않았고 비참하지도 않고 혼란스럽지도 않아. 가난하지도 않고 또 배가 고프거나 피곤하지도 않아. 정말이야 제이. 그러니까 이제 나 같은 건 잊어. 나 정말 혼자 살 수 있어.


제이는 나를 걱정하면서 물었었다.


너, 이제 일 년만 있으면 서른이 되는데,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니. 인생에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제이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준비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 한 번도 저축이란 걸 한 적이 없고 학교 다닐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열등생이었으며 믿음으로 사귀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고 정말로 어려울 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잊었으며 자격증을 따거나 토플 시험을 본 적도 없고 주변에서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못했고 충동적인 욕망을 계산 속에 감추어본 일이 없으며 게다가 늘 그 흔적을 남겼고 고통을 참을 수 없으며 치명적으로 한참이나 늦된 머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로 필요한 그 순간에 정확히 인지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혼란과 불안만이 가득한 상태 속에서 살아왔다. 제이는 나의 이 모든 것을 일기처럼 다 알고 있는 이 세상 유일한 사람이었다.


너무나 피곤하고 비에 젖어서 구토가 밀려왔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비가 그치기를, 그래서 제이가 회사로 출근하기를, 내가 빈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할 수 있기를, 이 모든 악몽의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제발 시간이여, 흘러라 흘러.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악어의 가죽처럼 단단해져서 아무것도 모르게 될 때까지. 늙은 무당처럼 뻔뻔해질 때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 아직 최초의 강간을 당하기 이전의 여자아이의 모습처럼.



나는 많은 폭력 속에서 자랐다.


나의 부모는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포함한 그들의 아이들을 보호해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기르고 싶어했다. 아마 그들도 지금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겠지만. 아무리 도도한 부모의 아이들이라 해도 이 세상의 수많은 짐승의 덫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내가 처음 제이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제이에게 나의 전부를 말해주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나의 첫번째 젖니가 어떻게 빠졌는지, 내가 처음으로 읽은 한글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대학 사학년 가을 바이오케미스트리의 DNA추출 실험 마지막 부분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불가사리에 대해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임수경과 노스코리아와 김일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무협만화 『비천무』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십 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학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있어서 너를 만났다, 이건 절대적이지? 하고 물었다. 제이가 그때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아서 지금 난 그것을 모른다. 내가 제이에게 마저 이야기하지 못한 나머지 것들은 부족한 시간 때문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르고 리포트를 제출하고 제이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며 군대에도 가야 했고 조교로 근무도 해야 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직장에도 다녀야 했다. 나는 내 나머지의 부분을 제이에게 이야기해줄 시간을 놓쳐서 그것이 문득 허전했다.


나는 여섯 살쯤 된 어느 날 나를 집으로 데려다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이면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차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어린아이들에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법이라든지 자동차를 피해 가는 법 따위들을 유치원에서 주의 깊게 가르치기 전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길 건너편에 세워진 검은 자동차가 혹시 아빠가 나에게 보낸 차가 아닐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넜다. 끼익하는 소리, 클랙션을 울리는 소리, 덩치 큰 버스가 나를 가깝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아무 곳도 다치지 않고 두려움조차 느끼지도 못하고 길을 건넜다. 다만 마지막에 인도의 보도 블록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다. 두껍고 하얀 타이츠에 겨울 스커트를 입고 있었던 나는 더웠다. 날은 햇빛이 밝고 따뜻했다. 길 건너편의 차는 아빠의 차가 아니었다. 나는 실망하고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넘어지면서 흙이 묻은 내 무릎을 털어주고 사탕을 쥐어주었다. 아마 내가 조금 울었나보다.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동정하는 착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 사람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를 집 잃은 아이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마도 경찰서 건물이었을 것 같은 문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집이 어디냐? 이름은?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나는 말없이 사탕을 빨았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나는 상점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말을 걸고 물건을 사거나 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심지어 돈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말을 못 하니?


제복을 입은 그 사람은 인내심을 가지고 상냥하게 다시 물었다. 어느새 나는 그 사람의 무릎에 앉혀져 있었다. 내려진 블라인드는 부연 먼지가 덮여 있었고 나무로 만든 의자가 불안하게 소리를 냈다. 나는 다른 어른들이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엉덩이를 만져줄 때와 같은 기분으로 그 사람의 손이 내 타이츠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얌전하게 참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어두운 구석에서 경찰들의 구두를 모아서 닦고 있던 꼬마 거지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보다 더 나이가 먹었을 것 같지 않은 남자아이였다. 제복을 입은 사람은 내 타이츠와 속옷을 내리고 나를 책상 위에 놓은 채 초록빛 체크무늬 스커트를 들어올리고서 그 아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 눈, 나는 갑자기 그런 눈이 기억이 났다. 무슨 일인가 나는 아팠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의 의사가 내 옷을 벗기고 그런 눈으로 내 몸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의사는 나를 보다가 엄마를 보고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의사가 정말 보았던 것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제복을 입은 남자가 그 다음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너무나 오래 전 일은 부분적으로 기억나지 않거나 아니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의미를 전혀 모르는 기억은 더욱 그렇다. 나는 두려움이 너무나 늦게 찾아왔다. 나는 한때 학습부진아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늦된 아이였던 것이다. 다만 선명한 기억은 그때 어두운 경찰서 구석에서 구두를 닦던 꼬마 사내아이가 끝까지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던 것은 어린 내 손에 들린 빨간 막대 사탕이었고 나를 찾으러 경찰서로 찾아왔다 책상 위에서 울고 있던 나를 본 아빠의 운전기사는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느라 시간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나를 길 잃게 만든 것에 대해서 끝내 시치미를 떼었었기 때문에 혹시 경찰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에게 한 일로 어른들에게 혼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던 내가 크게 안심한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 학교 선생님이 정말로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했을까요? 아이들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의 불완전한 경험에 투영되어서 말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뒤숭숭하고 불안한 화제. 나는 제이에게 줄 저녁을 만들면서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의 소리를 들었다. 제이는 곧 돌아올 것이고 나는 소금간이 맞지 않아 싱겁거나 짠 시금치와, 간장을 너무 넣어 팬에서 흉측하게 타버린 불고기와, 온갖 조미료의 맛이 제각각 따로 노는 이상한 국물을 가진 생선국을 제이의 식탁에 올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조금 의외였다. 모든 조그만 여자아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다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걸로 알고 있었다. 늦된 아이는 성장발달단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치명적으로, 그리고 좀더 영악한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그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이었나? 나는 바기나에 폭력을 당한 여자아이들의 일이 마치 이 세상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어떤 특별하고 끔찍한 일인 양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있는 리포터가 도리어 이상하다. 나는 제이에게 내 경험을 말하고 물어보리라고 생각한다.


돌아온 제이는 그러나 이미 다른 일로 흥분해 있었다. 회사 노조에서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다. 모 방송사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농성이었나 아마 그랬을 거다. 그래서 나는 제이의 화제에 같이 휩싸여버려 기억도 희미한 대수롭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 말할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것말고도 할말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조합이 어디까지 체제전복적 성향이 될 수 있을까, 지식인 계층에 의한 사회 혁명이 과연 가능한가, 극도의 사회불안이 인간에게 미치는 성적인 영향의 상관관계는? 불안과 긴장의 섹스가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도 가능한가? 언제나 시간은 초조할 만큼 부족했다.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텔레비전의 나머지 부분을 들었다. 외국의 케이스를 설명해주면서 프로그램이 끝나고 있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내 바기나에 손을 넣었어, 하고 어린아이가 말하자 그 어머니가 거짓말하지 말라며 딸에게 벌을 주었다. 그렇다.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는 제이에게 물었다.


“제이, 발을 씻어줄까?”


제이는 이미 샤워를 했으니 필요없다고 하면서 『창작과비평』에 새로 연재중인 소설을 읽고 있다.


“그럼 제이, 귀를 파줄까?”


“아니 별로 가렵지 않아.”


“제이, 나 그네가 타고 싶어.”


“이 밤에?”


제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제이, 비가 오면 내가 생각나니?”


“무슨 소리야?”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제이, 문득 창밖을 바라보고 비가 내리고 있으면 내가 생각나니? 그러니? 나의 수아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나니?”


제이는 『창작과비평』에서 눈을 떼고 잠시 생각하다가 회사의 사무실에는 유리창이 없어서 비가 내리더라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 내 바기나에 손을 넣지 않아도, 아무런 선정적인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 그런 폭력도 있었다. 그건 죽음이었다. 제이와 내가 헤어지기로 결정했을 무렵 나는 죽어가는 친척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내가 제이와 함께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나는 극도의 혼란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차표를 한 장만 사서 떠났다. 죽어가는 친척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였다. 바삭바삭 말라가는 얼굴로 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나는 그것이 내 얼굴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침대를 내려다본다. 누구나 결국은 혼자 죽는 것이다. 그 친척 여자에게도 한때는 봄비 내리는 날의 안개 같은 삶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간절함의 처음이 있었을 것이고 불 꺼진 텅 빈 집의 어둠 같은 마지막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떠나간 남자도 있었을 것이고 그녀가 떠나온 남자도 있었을지 모른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아직 죽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영혼의 축복이란 얼마나 하찮은 속임수인가. 나는 죽어가는 친척 여자의 병든 마지막 삶 앞에서 전율했다. 어머니,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싫어요. 혼자 죽어가는 것은 싫어요. 외롭고 고독합니다. 제이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요. 이 벌은 너무 가혹하군요. 나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니 때로는 나쁜 기생충처럼, 야만인처럼, 들개나 도둑고양이처럼, 가증스런 솔잎혹파리처럼 살고 싶어요. 사촌들 사이에서 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들은 내가 친척 여자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름저녁의 검은 모기가 내 팔에 앉아 피를 빨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매일매일이 악몽의 연속이었다. 잠깐 잠이 깨어났을 때 내 옆자리에는 골프채를 가진 오십대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내 잠든 얼굴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바라보았다고 말했다. 나는 잠이 덜 깨 지옥처럼 멍한 표정을 보냈다.


오래 전에 남쪽 지방에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아가씨의 얼굴이 너무 닮아서 그 사람의 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 이름이 뭔가요?


좀더 기분이 좋았던 날, 그런 비슷한 질문을 받는 적이 가끔 있었다. 내가 삼십 년 전 알았던 누군가를 연상시키는군요. 아주 닮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아니면 손금을 보아줄까요? 머리카락을 들어 이마를 보여주시겠어요? 술을 한잔 더 마시겠어요? 그 정도로 취하다니 말이 안 되죠. 밤에는 혼자 무섭지 않나요? 꿈 내용을 말해주시겠어요? 난 오십 년 동안 꿈을 연구했어요. 아아, 그건 잠재된 욕망입니다. 등등. 밤의 기차처럼 빠르게 나는 혼돈과 상심, 공포와 환멸, 오한과 열병의 바다에서 표류했다. 저항하거나 인내해야 한다고 깨닫기에는 나는 너무나 지치고 한계상황이었다. 나는 달아나고 싶었다. 달아나서 절대로 다시는 결혼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남자를 만난다거나 하는 것은 꿈속에서라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때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접었다.


아아 그래요. 우리 어머니 이름은 바다의 선녀라는 뜻이죠. 하지만 아저씨 같은 남자를 알고 지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는 남쪽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난 어머니를 조금도 닮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난 병원에서 바뀐 아이니까요.


남자와 여자의 성적 관계라는 진부한 화제도 아니고 죽음이라는 거창한 테마가 아닌 폭력도 우리 생에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가장 흔한 예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병을 앓는 가족이라든가 그런 가족에게 당하는 학대, 학교 내에서의 그 흔하고 일반화된 폭력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수록 잔인하고 집단중심적이어서 소외된 존재에 대한 그 폭력의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상처를 입히기 위한 온갖 말들. 집중적으로 한 아이를 이지메하기. 말이 서툴고 시력이 나쁘고 공동의 놀이를 잘 모르는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에 대한 따돌림,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푸른색으로 하늘을 잔뜩 칠하라고 하고 나는 푸른색 크레파스가 없다. 스케치북의 반 이상은 하늘이다. 아무도 나에게 푸른색 크레파스를 빌려주지 않는다. 나는 절망에 빠진다. 저어 미안하지만 나에게 푸른색 크레파스를 빌려주지 않겠니? 넌 이미 두 개나 가지고 있잖아. 나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오십 명도 넘는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 파란 하늘을 그리고 있다. 오월은 어린이의 천국이었다. 그래서 종이 봉지에 든 버터빵을 하나씩 받아들고서 모두 열심히 천국의 하늘을 색칠하고 있는데 나만이 할 수가 없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런 상황에 빠진 나를 도와줄 수가 없다. 나는 차가운 아이들의 뒤에 앉아서 어찌할 줄 모르고 손가락을 빨고 있다가 검은색으로 하늘을 칠해버린다. 어떤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이 하늘이 선생님에게는 푸른색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 하고 간절하게 바란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나는 결국은 교실 뒤에서 벌을 서게 된다. 아이들은 내가 어떤 벌을 받을까 호기심과 기대에 가득 차서 바라본다. 조금 더 자라면 학교는 선생님들이 휘두르는 폭력의 제국을 이룬다. 여자아이들의 귀를 만지며 벌을 주는 변태적인 교사, 남자를 아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새벽부터 밤까지 온갖 모욕적인 말로 수치심을 자극하는 교사. 그 삼십대였던 여교사는 교실 앞으로 불러내고 지휘봉으로 가슴을 쿡쿡 찌르며 나에게 말한다. 너 어젯밤에 어디 있었어? 걸레 같은 년, 너 같은 애는 동두천에서 빌어먹고 사는 게 어울리는데 어쩌자고 학교라는 곳에 다니는지 모르겠다. 더러운 것, 속옷은 흰색만 입으라고 했지? 왜 색깔 있는 브래지어를 하는 거야? 남자 선생님들이 있는데. 그 여교사의 지휘봉이 가슴을 정통으로 찔러댔기 때문에 나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 그런 학대에 견디다 못한 여자아이들 중에는 정말로 집을 나와 동두천으로 가버린 애들도 있다. 새벽부터 밤까지 볼모로 잡혀 있어야 하는 학교에서 그런 식의 집요한 학대를 몇 년이고 받게 되면 누구나 견딜 수 없게 된다. 좀더 철학적이고 염세한 아이들은 본드를 하거나 자살을 하고 질긴 신경을 가진 아이들은 가출을 하거나 극단적인 반항아로 학교에 남는다. 대개 국립대학의 졸업장을 가진 좋은 학벌의 교사들일수록 굶주린 맹수처럼 가학적이었다. 그들은 성적이 나쁘거나 행실이 나쁜, 특히나 여자아이들을 못 견뎌했다. 이래도 니가 계속해서 학교에 다닐래? 이래도, 이래도? 이래도 부족하단 말이니?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열등감이나 콤플렉스, 신체적 장애, 비정상적인 가족관계, 피학적이 되려는 욕망, 그리고 마침내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망각까지도.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온갖 형태를 달리한 폭력의 연속이다. 도대체 벗어날 수도 없고 피하려고 하는 의지마저 마비시킨다. 여덟 살쯤 되었을 때 엄마는 나를 데리고 지금은 없어진 시내의 백화점엘 갔다. 종로와 안국동의 중간쯤에 위치한 백화점이었고 엄마가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바깥의 계단에 서 있었다.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계단 아래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고 햇빛은 두터운 구름 아래로 찜통처럼 열을 내고 있었으며 좁은 뒷골목 사이로 아무렇게나 버린 개숫물이 흘러넘쳤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 기타 케이스를 든 젊은이들, 직업이 없이 빈둥거리는 창백한 결핵환자, 자전거를 탄 점원, 여름 제복을 입은 경찰, 구두통을 메고 일부러 얼굴에 약칠을 한 꼬마 불량배들. 나는 여러 사람들이 무심히 오가는 가운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계단에서 두 팔을 벌리고 아래로 떨어졌다. 백화점의 뒷계단은 더럽고 축축했다. 나는 떨어지면서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한 아득함을 맛보았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황홀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계단의 시멘트 난간에 걸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계단으로 바로 떨어져 이마와 코에 무서운 멍이 들었다. 잠시 기절했으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금방 정신이 든 나는 어이없어하는 어른들을 뒤로 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 자리를 떠났다. 신기하게 공포나 통증은 조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내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얼굴은 재를 뒤집어쓴 것 같은 검은 멍으로 뒤덮였다.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수돗물을 수건에 적셔서 가만히 그 상처에 내려놓자 쿡쿡 쑤시는 듯한 최초의 통증이 찾아왔다. 나를 따라서 화장실로 들어온 여자들이 물었다.


아가, 괜찮은 거니?


…….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엄마는 어디에 있니?


…….


말해봐. 아니면 누가 밀었니?


내가 밀었어요.



나는 건물의 그늘에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한여름밤의 폭우를 바라보면서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무심히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 그 전율스럽고도 기막히던 기분. 나중에 야단맞을 걱정을 충분히 보상시켜주는 다리 사이의 불안한 떨림. 그때까지 언제나 나는 폭력의 피해자였을 뿐이었고 그런 때처럼 주눅드는 죄책감도 하나 없이, 온갖 해악의 가해자가 되는 그 선명한 첫번째 기쁨을. 제이, 이제 비가 오면 여전히 나를 생각할 거니? 내가 그네를 타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겠니? 새벽이 다가왔을 때 나는 더할 수 없이 피곤하고 지쳤다. 온몸의 뼈가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었다. 비틀거리면서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갔다. 세검정으로 가주세요, 하고 택시기사에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온몸에서 젖은 빗물이 떨어졌다. 택시기사는 나를 힐끔거리고 무서운 속력을 냈다. 제이는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나는 침대로 쓰러졌다.


“어디 있었어?”


제이는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어떤 놈이랑 같이 있었어?”


“제이, 나 죽을 정도로 피곤해.”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 같다. 이건, 같이 지내는 게 서로에게 지옥이야. 벌써 이게 몇 번째니?”


제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방 한구석에서 간밤에 제이가 산산이 부숴놓은 전화기를 보았다. 그도 나만큼 피곤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샤워를 하면서 난 생각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제이가 두려워서 같이 잘 지내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제이는 무엇인가를 의심할 것이고 나는 나를 제어하지 못해 허둥대며 제이의 눈치를 볼 것이다. 어쩌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제이는 나를 때릴지도 몰랐다. 가정에서 버려져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자라고 최초의 조직사회인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언제나 두통에 시달리는 유년기를 보내고 왕족인 부모를 갖거나 영리하고 이성적인 머리를 타고나지 못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한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가나. 그들은 마침내 사회의 가장 말단 생산단위로 편입되고 가장 질이 낮은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향유하게 되며 불안정한 노동과 그 대가로 지속적인 자기 발전을 바랄 수 없으며 황폐한 정서로 인해 믿을 수 없을 만큼 유혹에 약하며 그 때문에 더욱 자기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그게 나였다. 이제 제이와 나는 완전히 다른 계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제이는 샤워를 하고 있는 나를 때리는 대신에 벽에 기대서 잠시 울고 그리고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이른 아침 남자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그 이후에 여러 번 비슷한 눈물을 보았지만 눈물은 연민과 동시에 증오, 때로는 좌절감을 자아내었다. 옷을 갈아입고 출근하자 내 책상 앞에는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감사가 시작된다는 거다. 전화는 쉴새없이 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비서를 시켜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직접 똑같은 내용의 행정절차를 물어왔다. 그리고 언제나 있는 행정당국의 관료주의와 경직성과 제도 자체의 모순과 절차의 비효율성에 대한 하루 한두 건의 강도 높은 콤플레인.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제이와 내가 동시에 또다른 종류의 폭력의 가해자가 된 일도 있었다.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제이와 나는 처음으로 강원도를 같이 여행하게 되었다. 아주 아름답고 멋진 여행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많았다. 버스에서 내려 푸르고 높은 하늘과 바다 냄새와 무심히 흩어진 구름과 자전거 전용도로와 구운 감자 냄새를 느낄 때까지도 나는 우리 생의 아름다움과 희망에 대해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길을 건너가려고 건널목에 서 있었다. 우리와 같은 길을 건너간 사람 중에는 아주 늙은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더니 길을 건너다가 차도 한가운데서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우리는 그때 둘다 마음이 착하고 여렸다. 도와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신호등이 바뀌고 차들이 높은 클랙션 소리를 울렸다. 제이와 나는 그 노인의 팔을 부축해서 길을 건너게 해주었다. 그런데 간신히 길을 건넌 노인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그 노인을 바라본 우리는 경악했다. 길에 쓰러진 그 노인의 눈과 코와 입에서 냄새나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무심하게 팔을 부축해서 길을 건너게 해준 그 노인은 사실은 다 죽어가는 행려병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일어서지 못했다. 우리는 그 노인을 도와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시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면. 제이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그 곁에 서 있었다. 낯설고 아름다운 곳으로 와서 처음으로 만난 일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그렇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젊었고 즐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으며 젊음은 짧았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주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였다. 사람들이 기대에 부풀어 찾아오는 7번국도의 어느 곳. 그런데 제이와 나는 잘못된 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영악하지 못하게도 행려병자의 몸에 손을 대었고 책임감 없게도 그냥 그 곁을 떠났다. 죽은 고양이를 피해 가는 운전자들처럼 그렇게 영리할 수도 있었는데 제이와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아,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저 노인을 친절하게 길을 건네주어야겠다, 하고 그냥 단순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꽃냄새를 가득 품은 채로 달콤하고 길은 앞으로 아득하게 뻗어 있어 영원히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만 덫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질 못했다. 제이는 언제나 나에게 강하고 늠름하고 흔들리지 않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날의 여행이 어땠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제이와 내가 같이 잠자리에 들었던가?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옷을 벗었던가? 그리고 제이가 옷을 벗고 누운 나를 카메라로 찍었던가? 우리는 마지막까지 그날의 여행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폭력의 가해자였고 공범자였고 동시에 피해자였다. 나는 그날 밤 내내, 그 이후의 제이와의 밤 내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우리들 최초의 여행이었던 그날의 다른 것이 왜 아무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일까.



“제이 듣고 있니?”


“음.”


제이는 『창작과비평』을 얼굴에 덮고 잠자듯이 누워 있다.


“비가 내리고 있니?”


“아니.”


“내가 귀찮니?”


“…….”


“말해봐, 사실대로 말해도 돼. 내가 귀찮니?”


“결혼한 부부는 이런 식으로는 살지 않아.”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본능적인 느낌이다. 그러나 어느 날 실제로 그들이 관계를 가지게 될 때 그들은 갑자기 깨닫는다. 그들은 본능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교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황한다. 왜 하필 이 순간에 그걸 깨닫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불안감은 정체가 없을 뿐, 안심하라. 그냥 단지 잘못된 줄에 서 있었을 뿐이라고. 사랑이란 너의 이름과 너의 재능과 너의 두뇌와 너의 취향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더이상은 무엇이 있나?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제이, 우리가 그날 만나지 않았더라면,”


“언제를 말하는 거야?”


“우리가 처음 도서관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우연히 그날 같은 시간에 도서관을 찾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모르고 지냈을 수도 있겠지?”


“글쎄, 아마 그랬겠지.”


“그러면 제이 너는 다른 여자애를 만나서 섹스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결혼까지 했겠지. 그리고 그것이 지상 유일의 감정이라고 믿었을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리고 비가 오면 그 여자를 생각하고. 그렇지?”


“와, 이제 그만해.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잠 좀 자자.”


“제이, 머리를 감겨줄까?”


“지금은 밤이야.”


“그러면 입으로 해주기를 원하니?”


“그러면 잠 못 자잖아. 난 어제도 밤샘해야 했던 것 알잖아.”


“그러면 다른 것, 뭘 원하니?”


“아무것도 원하는 건 없어. 그냥 잠이 자고 싶어.”


“제이,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너를 기다렸어.”


“알고 있어.”


“도대체 왜, 뭐가 잘 안 되는 거니?”


“그런 거 없어. 정말이야.”


“우리 정말 우연히 만난 걸까?”


“모두들 우연히 만날 뿐이야. 하지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줄게. 우연히 만났다면 그런 거고 예정된 운명이라면 그런 거야.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난 우리 엄마보다 네가 더 좋고 내 불쌍한 여동생보다도 더 널 생각해. 그래, 또 그런 대답을 원하는 거지? 수아, 네가 남자에게 원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제도권으로의 편입도 아니고 안정은 더더욱 아니고 희망이나 동지도 아니고 집착의 대상이야, 그렇지? 그래 그러니까 난 뭐든지 다 되어줄 수 있어. 봐, 지금 새벽이 다 되려고 그래. 그러니까 이제 잠 좀 잘 수 있겠니?”


제이의 마지막 말은 정말로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제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제이의 발바닥을 만졌다. 제이 잠들지 말아, 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나에 대해서 다 말하려면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가 같이 있어도 시간이 부족해.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잖아. 그러니까. 그런데 넌 잠이 들려고 하는구나. 너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무슨 세상을 헤매고 다니는지. 제발 꿈속에서라도 만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날이 며칠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불 꺼진 주방에 칼이 보였다.


제이는 나를 때리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다 못해 나를 죽일지도 몰랐다. 아무도 없는 밤, 빈 집에서 제이가 칼을 만지면서 했을 생각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제이의 집을 완전히 나가야만 했다. 속옷과 티셔츠 몇 벌만을 가방에 넣고 택시를 부르고 어디론가 가야 했다. 서울의 어느 거리 어디쯤. 가난한 사람들이 좁고 어두운 집에서 모여 사는 곳. 제이와 함께했던 삶보다 더 가난하고 더 어둡고 전망이란 없는 곳으로. 나는 내려간다. 한없이 한없이 더 깊은 곳으로. 그렇게 집을 떠나온 후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그때 내게 가난이나 불결에 대한 공포보다 더욱 두려웠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도 유리창을 열고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그것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무엇일까? 그것은. 그날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감도 희열도 없이 살아갈 것을 예감하면서도 마침내 집을 나오고 말았던 그것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나는 이십 몇 만원의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처럼 해를 보지 못하고 근무해야 했고 전철역의 소음에 시달리면서 잠을 설쳐야 했고 온갖 종류의 변태성욕자들로 가득한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어울리지 않는 시를 썼으며 아무에게도 내가 어디에 사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는 전화를 걸어왔다.



밥은 먹었어? 몸은 아프지 않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이 모든 것에 대 해 내가 최종결정을 해야만 하는 거니? 왜, 왜 그런 거니?


너가 결정해 제이.


그래서 제이는 결정을 했다. 우리는 완전히 헤어지고 남남이 됐다. 난 밤에 걸려오는 전화가 두려워 자동응답기를 틀어놓고 잠들었기 때문에 내 개가 동물병원에서 죽어가는 것도 몰랐다. 깊은 밤 자동응답기의 테이프는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갔다. 나는 베개로 귀를 막고 잠들었다. 내 개는 오랜 시간 빈집에 방치되었기 때문에 우울증과 정서불안 증세가 심각했다. 기분이 내키거나 생각날 때만 사료를 주었기 때문에 위장장애를 일으키고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댔다.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가니 한 달간 입원을 시키라고 했다. 입원비는 나에게 큰돈이었다. 어쩌시겠어요? 하고 동물병원의 의사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의사의 말은 안락사 시키겠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아니 알았다 할지라도 차마 그렇게 해주세요, 하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 내 경제상황으로는 내가 아팠다 해도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하지 못하는 내 개의 눈동자가 너무 슬퍼 보여 돈을 빌려서 입원을 시켰다. 그런 내 개가 죽은 다음 나는 빈집에 돌아가는 것이 좀 쓸쓸했다. 내 개는 하루종일 빈집을 지키다가 늦은 밤 내가 돌아오면 다가와 힘없이 머리를 내 몸에 기대고 잠들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다음날이면 앙상하게 말라 구두를 핥고 있기도 했다. 나는 자주 내 개에게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프니? 나도 그래.


라디오를 틀어줄까? 음악을 좋아하니?


어디까지 굶어야 죽을 수 있나 어디 우리 시험해볼까?


그때는 추석인지 구정인지 해서 연휴의 한가운데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문득 잠을 깨고 나니 배가 맹렬하게 고팠다. 냉장고에는 물 한 방울 없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굴러다니는 빵 한 조각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모두 셔터를 굳게 내린 상점들뿐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사람들은 모두 다 고향으로 떠나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잘 세트된 가족이 없는 사람은 이런 연휴 동안에는 아무와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무 곳에서도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건물의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넘치는 가족들 사이의 어딘가 외따로 있는 섬에 유배된 것 같았다. 어딘가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정도는 살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내 개가 침대 속에서 기어나와 내 얼굴을 핥았다. 스킨십을 유난히 좋아하던 개였다. 쉬는 거다. 휴일이 다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밤에는 음악을 틀고 새벽에는 700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당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살, 그런 내용의 멘트를 들었다. 국제전화를 걸어 별점과 카드점을 보기도 했다. 시간은 잘 가지 않고 나는 살아남았지만 내 개는 병이 들었다. 내 개가 죽은 다음에 나는 빈집에서 문득 혼자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쭈쭈, 이 여자 참 예쁘지? 신문에 사진이 실린 이 여자 말이야. 시집을 내었다는구나. 쭈쭈, 니가 보기에도 여기는 너무 좁다고 생각하지? 침대를 놓고 나면 공간이 거의 남지 않잖아. 너도 넓고 잔디가 있는 마당에서 놀고 싶지? 그럴 거야.


다른 개를 살까. 나는 침대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맞은편 식탁에 카메라를 놓고 리모컨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나의 사진을 찍는 것은 아주 자유롭고 릴렉스한 좋은 기분이었다. 리모컨은 빨갛게 불이 들어온 다음 정확히 삼 초 후에 플래시가 터졌다. 다른 개를 갖더라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개를 홀로 놓아둘 것이고 밥을 잘 주지 않을 것이고 화가 나면 목욕탕에 가둘 것이고 신경질적인 음악을 틀어서 약올릴 것이고 때로는 빗을 집어던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내 개는 우울증과 신경쇠약과 위장병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이미 바닥이 나버린 통장을 온통 털어서 내 개를 입원시킬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상실감을 맛볼 것이다. 죽은 내 개는 그 자체가 아니라도 좋았던 그냥 보통 애완용 개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쭈쭈 너, 너의 존재 자체가 그리워서 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만남은 그냥 우연일 뿐이니까. 너는 내가 아니었어도 그리고 나는 쭈쭈 너가 아니었어도 너는 사람을 만나고 나는 개를 만나 비슷비슷한 개와 사람으로 불특정한 그 인연에 매여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그리워해서 다른 개를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마지막으로 제이를 만난 것은 일 년 전쯤 되었다. 제이는 다시 결혼을 했고 전보다 부유해졌으며 첫딸을 낳은 지 그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보다 십 킬로쯤 살이 쪘다. 술이 늘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제이의 얼굴은 전에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옛날처럼 제이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많아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멍해져서 술잔만 내려다보았다. 처음 만나는 높은 사람처럼 그가 어렵기도 했다. 일 주일에 일곱 번을 만나고 심지어는 여덟 번을 만나기도 하면서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그때의 내가 정말 나였고 그때의 제이가 정말 제이였나. 아니면 이제 우리가 서로 자라서 말해지지 않는 것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 제이 넌 이제 어른이 된 거니? 제이가 딸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이가 자리를 잡고 어른으로 성숙하고 중산층으로 편입하고 더이상 불안하고 가난한 존재가 아니고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으로 의젓하게 삶의 정도를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평화롭게 밥을 먹고 술을 조금 마셨다. 그러나 내가 십오층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발밑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단순히 어지러워서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신문을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이 서울에 드물게 찾아온 지진인 것을 알았다.



얼마 전 목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그 전에 홀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군인들은 강원도의 깊은 산속을 깎아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만들어놓았고 나는 그 길로 찾아갔다. 군인들을 실은 산만큼한 트럭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고 길 아래편으로는 진한 초록색 강물이 흐르고 까마귀가 불에 타 죽은 나무에 앉아 있었다. 길이 너무나 험해서 나는 타이어에 펑크가 나지 않았나 길가에 내려서 살펴보아야 했다. 차에서 내리니 절박한 침묵이 나를 점령했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오직 숲속에서 우는 까마귀 소리만이 들려왔다. 내가 차에서 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디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강원도의 산으로 생각하고 그곳을 아무 느낌이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그곳은 처음의 내 목적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지 않는 길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목적하지 않은 곳에서 문득 차에서 내리게 될 때, 그것이 불의의 사고 때문이든 아니면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이든 간에 낯설디낯선 운명의 한 장면을 만나게 된다.


내가 타이어를 걱정하면서 요란한 X-JAPAN의 음악을 끄고 차에서 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일몰 후 통행금지라고 적힌 어두운 터널의 입구에서 그토록 지독한 고요 속의 까마귀떼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잠시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마치 한낮의 꿈속에서처럼 몽롱한 군사지역의 어디쯤인가를 걷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로는 초록빛 강물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나는 강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뢰지대라는 표지판이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내가 돌아가지 않더라도 내가 어디에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크게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일요일 잠에서 깨어나니 오전 열한시였는데 나는 그 시간이 마음에 들어서 강원도로 여행이 가고 싶었다. 아마 누군가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은 일요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여행이 하고 싶었고 고속도로를 타고 바다로 가서 몰려앉아서 일출을 보고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그런 여행말고 다른 것이 하고 싶었다. 나는 다리를 핸들에 올리고 끝없이 까마귀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해가 다 지고 밤이 될 때까지 그리고 다시 날이 밝고 다시 해가 질 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버려질 때까지. 그런 곳에서 밤을 보낸다면 느끼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절대의 어둠이 어떤 것인지, 절대의 침묵이 어떤 것인지. 절대의 불안이나 고독이 어떤 것인지. 까마귀처럼 지뢰 위를 날아서 죽은 짐승을 찾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지 않을 만큼 내가 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이어의 펑크나 오십년대의 지뢰나 까마귀가 먹다 남긴 시체나 모든 것으로부터의 실종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내가 강하다면.


강원도에서 돌아온 다음주에 전화가 왔다.


“점심 하겠어?”


“언제요?”


“음 수요일, 아니 목요일이 어떨까, 그날은 오전에 일을 끝낼 수가 있어.”


“목요일이라면 나도 좋아요. 메뉴는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게 뭐지? 해물핏자? 안심스테이크? 초밥?”


“상상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나요? 난 일본 라면이 먹고 싶어요.”


“일본 라면? 그런 것은 어디서 팔지? 일식집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점심 먹기 위해서 일본까지 갈 수는 없잖아.”


“그게 안 된다면 아무거라도 좋아요.”


내가 이틀 정도 엑셀 일을 도와준 사람이 점심을 사준다고 한 날은 목요일이었고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에게 점심을 사준 사람은 그걸 몰랐다. 나는 강원도에서 돌아왔고 그런 여행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인생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결혼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그것에 대해서 묻고 싶은 생각이 문득 났다. 저어, 나보다 더 오래 살았고 경험도 많으실 테니까 뭔가 더 아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시겠어요? 인생의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은 불공평해요, 하고. 스파게티는 맛있었지만 나는 고무줄처럼 씹어서 간신히 삼켰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오징어를 먹지 않는다. 목요일 점심식사를 같이 한 그 사람도 당연히 그걸 몰랐다. 그래서 나는 스파게티에 잔뜩 든 오징어를 접시 가장자리에 골라내었다.


“어쩐지 부족하다는 느낌인데? 일을 그렇게 많이 도와주었는데 겨우 스파게티라니,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냐?”


“아니, 내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요, 뭘.”


“그래도 너무 적게 먹는 것 같군.”


“난, 원래 목요일에는 많이 먹지 않아요.”


“그건 또 무슨 이유일까.”


“그냥 사소한 계명이죠. 이유는 없어요.”


“사실은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이 났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 신세를 졌으니. 마치 생일처럼.”


“어머, 하지만 받은 걸로 생각하겠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아니면 나중에 영화라도 볼까?”


“글쎄요.”


“보고 싶은 영화 미리 생각해놔. 아니면 지금 말하든지.”


“강원도의 힘.”


“뭐?”


“강원도의 힘, 보고 싶어요.”


“그거 영화 이름 맞아?”


“그럼요.”


“어느 나라 영화야?”


“당연히 한국영화일 테죠. 근데 아직 개봉하지는 않았어요.”


“음, 그거 혹시 이대근이 나오는 영화인가?”


“설마.”


“아니 강원도의 힘, 그래서 마치 이대근처럼 정력 좋은 강원도 사내가 나와서 서울 남자들 기를 죽이는 영화인가 싶어서.”


“농담하시는 거죠? 아니면 정말로 그런 것이 연상되나요?”


“농담 아냐. 난 언제나 진지한 거 알잖아.”


그 사람은 냅킨을 나에게 집어주면서 손가락으로 내 뺨을 건드렸다.


“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뭘 말하는 건가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육체적인 힘, 말이야.”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유혹. 난 내 생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일날은 많이 먹지 않으며 섹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나에게 그런 식으로 함부로 말을 걸어왔다. 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소하지? 그런 가벼운 것들에 대해서.


“나, 그만 먹겠어요. 전철역까지 데려다주실 거죠?”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는 화이트칼라들이 거리에 넘쳤다. 스파게티를 먹은 집에서 내가 타야 할 전철역으로 가는 도중에 제이의 회사가 있었다. 제이의 회사 근처를 지나치면서 나는 제이가 동료들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리는 차가 막혀서 거의 멈추어 서 있다시피 했다. 나에게 점심을 사준 사람은 서울시장의 무능력과 잘못된 교통정책과 밥만 축내는 정책결정자들과 한국인들이 IMF를 너무 서둘러서 잊어버린다는 것에 대해서 맹렬하게 불평하고 있었다. 그리고 YS에게 투표한 것에 대해서 자신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분통해했다. 그러나 나는 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는 피곤하고 평범한 회사원들의 무리에 섞여 천천히 걷고 있었다. 붉어진 목 뒤를 만지면서. 그때, 내가 만난 이후보다 삼 킬로쯤 살이 더 찐 것처럼 보였다. 제이, 나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려가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제이는 내가 탄 차를 지나쳐서 회사를 향했다. 제이도 이제 몇 년만 있으면 곧 마흔 살이 된다. 마흔 살,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처음 제이를 만났을 때 제이는 스무 살을 넘긴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지금보다 이십 킬로는 덜 나갔다. 제이와 내가 마흔 살이 되어 처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도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며 삶을 보냈을까? 넌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소하지? 그런 가벼운 것들에 대해서. 그러면서 목요일의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생일을 말하지 않으며 엑셀 일따위를 핑계로 전화를 할까. 그 모든 지리멸렬을 지진처럼 불길하게 느낄 때면 아무 상관 없는 정치가들에게 대신 분통을 터뜨리면서. 목요일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다른 수백만의 남자와 여자들처럼.


나는 제이를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짐작하고는 있지만 선명한 기억까지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지금도 제이의 주민등록번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우리는 입던 속옷도 나누어 입었고 입 안에 든 음식도 서로 나누어 먹었다. 때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런 제이와의 환각을 흉내내려 해본 적이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알고 지내던 시간 동안 제이가 나에게는 절대적이거나 배타적인 섹스파트너가 결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런 것은 절대로, 절대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려서 그걸 몰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에 묻히는 방법도 몰랐다. 마치 약에 취해서 난교 파티에 불려 나갔다가 다음날 아침 결국 헤어진 사랑하는 어린 연인들처럼 제이와 나는 봄바람의 기억만을 가진 채 다시 안 보는 편을 택한 것이다. 미친 삶의 예감에 시달릴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대 진정 그러했는가? 봄바람, 봄바람뿐이었나? 산산이 찢어지는 고통과 피학도 결국은 같은 모습이었는데. 왜 내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서나?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제이.


그러나 차는 큰길로 나오고 제이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알았다. 서울에 지진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제이와 나는 서로 더할 수 없는 타인이었다. 정말 거대한 폭력은 생의 마지막에 가까운 때에, 아주 늦게, 오랫동안 동거하던 사람의 얼굴처럼 그렇게 찾아왔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한 공무원과 〈강원도의 힘〉을 보러 갔다. 영화를 본 다음 우동을 먹고 다트 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십사 시간이 지난 그 다음날 어느 순간에 나는 〈강원도의 힘〉을 같이 본 그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 느낌이 시작되고 있어, 하고 말했다.


이십사 시간 만이야. 새벽부터 일하고 있었어. 그런데 알았어. 지금 마음이 산산이 깨지고 있어.


난 열두 시간 만에 같은 증상이 오고 있어. 지금 진행중이야.


그 공무원은 침착하게 대답했고 덧붙여 물었다.


싸늘하고 냉담하게 살아. 일은 바쁘니?


바빠. 공문 읽었어?


응, 봤어.


우리 노동자 맞아?


너 지금 뭐하고 있니? 새벽부터 뭐하고 있었어?


노동.


그거 말고 너에게 팔 수 있는 다른 게 조금이라도 있니?


없어.


나도 그래. 적어도 너와 나는 노동자 맞아.


아아.


안심이 되니?


그래 안심이 돼.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니?


응, 왜 그런데 이십사 시간 만일까?


음, 너 보기보다 상당히 불감하군.



초라하게 낡은 옷을 차려입은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출국서류를 작성하러 왔다. 아버지의 얼굴은 일생을 논밭의 노동자로 산 듯 더할 수 없이 검게 타고 주름이 가득하다. 등은 구부정하고 볼펜을 든 손가락은 갈퀴같이 휘었다. 그런 아버지가 덩치가 산만큼한 아들을 조심스럽게 데리고 서류를 작성한다. 아들은 약간 모자란 듯이 말이 없다. 빈 칸을 하나하나 메워가는 아버지의 한 손은 아들을 잡고 있다. 나는 볼펜을 빙빙 돌리면서 그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작성하기를 기다린다. 아버지가 내민 서류에는 빈 칸이 있다. 나는 하루에 수백 번에 걸쳐 하는 똑같은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는다.


“빈 칸을 다 쓰셔야죠.”


아버지가 비워놓은 칸은 그 아들의 병역사항과 출국사유란이다. 군복무는 마쳤는지, 마쳤다면 현역인지 방위인지, 아니면 면제되었는지. 외국에 가는 이유가 뭔지.


“우리 아들은 군대를 가지 않았는데요.”


나는 그 아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온통 부스럼으로 뒤덮인 얼굴, 약간 사팔기가 있는 눈동자, 침이 흐르는 벌어진 입술, 누렇게 풀린 흰자위, 거기다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거구의 몸. 그 아들의 몸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앙상한 손마디.


“면제받았나요?”


“그렇습니다.”


“사유는요?”


나는 서류의 빈 난을 채워나간다.


“어렸을 때부터 간질, 간질이 있어서.”


“출국사유는요?”


“중국에, 얘가 결혼하러 갑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취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결국은 차선이다. 차선과 최악의 어디쯤인가에서 나는 웃으며 방황하고 있는것이다. 제이, 나는 늦되었기 때문에 너에 대한 모든 것도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마지막으로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라는 이름의 폭력. 목요일에 태어남, 최초의 여행과 고독과 의사소통의 부재와 홀로 떠난 곳에서 본 까마귀. 주방에 있던 칼,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학대당하고 죽어간 내 개, 경찰관의 제복과 가난한 소년 거지. 그리고 강원도의 행려병자. 돈을 받고 팔려오는 중국의 신부. 혼외정사의 벌로 잔인하게 방치된 신부. 이십사 시간 만에 찾아든 거대한 상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지진. 그리고 목요일의 점심식사 후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는 짐승의 덫에 걸려 고통마저도 부질없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경숙/빈집  (0) 2009.02.02
배수아 소설  (0) 2009.01.22
"무릎팍도사" 황석영 출연  (0) 2008.10.30
한·중·일 대표 작가들 모여 동아시아 가치·미래 토론  (0) 2008.10.05
조용한 비 배수아  (0) 2008.07.3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