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그림자들의 전쟁"
연재 20
그러나 쾌감의 뒤에는 어김없이 밀려드는 허탈감, 피로감, 탈진감, 자괴감, 의욕부진, 체념 , 자비감 따위로 고통스러운 후유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침이면 처리해야 하는 일중에는 성욕 말고도 식욕이 있다. 자위행위가 끝나기 무섭게 자기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육신을 괴롭히는 건 시장기다.
시침은 어느덧 오후 1시를 넘어섰고 지난밤 과음한 술기운은 아직도 깨지 않은 상태이다. 위장은 갈퀴로 허비듯 쓰려나고 혓바닥은 소태처럼 쓰다.
느닷없이 해장국이 먹고 싶다.
해장국!
아버지가 과음한 이튿날 아침이면 잊지 않고 찾던 해장국이다. 이른 새벽부터 기침해서는 해장국을 끓여 올리라고 어머니를 닦달하는 통에 나까지 덩달아 잠을 설쳐야 하는 곤욕을 치르곤 했다.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시래기 있지? 감자와 돼지고기도 푸짐히 넣어. 고춧가루를 얼큰하게 넣어서 말이야. 빨리빨리. 나 속 쓰려 죽겠다, 고마.”
그러면 엄마는 말없이 일어나 주방으로 나갔다. 아버지의 식성을 잘 아는 엄마인지라 주방에는 언제라도 해장국을 대령시킬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있었다. 담배 한대 태울 동안이면 구수한 토장냄새를 풍기며 뽀글뽀글 끓는 해장국을 받쳐 들고 올라왔다.
“카-맛 좋다. 둘이 먹다가 한 놈이 뒈져도 모르겠다. 구수하고 얼큰하고!”
나에게는 퀴퀴하고 구리게만 느껴지는 된장냄새도 싫었고 쩝쩝거리는 아버지의 입질소리도 싫어 이불을 머리위에 푹 뒤집어쓰곤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몇 술 뜨고는 또 술을 찾는다.
“이봐. 거기 어디 소주 있지. 한잔만 주구려.”
말이 한잔이지 술잔을 들었다하면 적어서 두세 병이다. 그렇게 전날 마신 술이 깨기도 전에 아침부터 또 곤드레만드레 취해 이태백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잔소리 한마디 못하고 고분고분 술시중을 든다. 거역했다간 당장 밥상이 뒤번져질 거라는 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과는 온갖 아양을 다 떨었지만 엄마에게는 미소 한번 지어보이지 않는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미운 것만큼 싫었던 해장국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해장국 생각이지? 해장국이 먹고 싶어 입안에 군침까지 도는 걸 느낀 나는 그만 당황해졌다.
안 먹어. 안 먹어! 죽는 날까지!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리며 힘껏 고개를 가로저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리고는 늘 준비되어 있는 브리오슈를 꺼내어 커피에 적셔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빵 조각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커피마저 평소의 향긋하고 깊은 맛을 잃고 쓰기만 하다. 엄마가 주발에 담아주던 그 노란 누룽지 물은 구수한 향기가…… 나도 모르게 윤미와 함께 갔던 한식당이 생각난다.
“코리언이 한국음식을 싫어하다니요.”
의문이 찰랑이던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망울도 새삼스럽다.
피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부모형제, 계례…… 내가 그것들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이 그 흔적의 노예가 되어야만 하는가. 이 몸이 하나의 흔적인 타자일 뿐이라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흔적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윤미의 시도와 흔적에서 한사코 이탈하려는 나의 지향은 어떻게 다른가.
식사를 포기했다. 습성에 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만의 새로운 섭취방법을 개발할만한 능력도 없다.
전화벨이 울렸지만 나는 (수많은 나중의 어느 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예 작동을 꺼버렸다. 어떤 간섭에서도 도망하여 자유롭고 싶다. 은정, 정 교수, 윤미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예속의 위치에만 서게 되는 나의 불리한 처지를 개변하고 싶다. 그들은 저마다 나를 자신들의 의지대로 지배하려든다. 거기에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가세한다.
나는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콧구멍만한 다락방창문으로 멀리 사크르쾨르대성당의 위용이 보인다. 그 밑에는 태르트르광장이 있을 테고 거기에는……
나는 다급히 시선을 말아 들였다. 그날 테르트르광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윤미의 얼굴이 기억의 수면에 떠올랐다.
오선보를 펼쳐놓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마르셀교수가 내준 리포트를 완성해야 한다. 그의 요구대로 그가 만족하고 OK할 때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자피아노앞에 마주앉기만 하면 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는 것은 할머니의 굿 노래이고 할아버지의 해금연주소리뿐이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의 굿 노래를 물귀신소리 같고 원시미개인들의 괴성 같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할아버지의 해금연주는 악음樂音이 아닌 소음, 잡음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아닌 거친 마찰음 같다고 비하시켰다. 그런데도 그 노랫소리와 연주소리는 나의 청각을 정복한 채 퇴각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의 작곡이란 불가능함을 깨닫고 손에 쥔 연필을 전자피아노건반위에 내동댕이쳤다. 연필은 땡그랑하고 건반위에서 곤두박질을 하더니 장판위에 때구루루 굴러 떨어졌다. 보지 않아도 연필심이 토막토막 끊어졌을 것이다.
몽마르트언덕의 이 콧구멍만한 다락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위행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나는 절망 속에 빠져 모든 것을 체념했다. 이제 나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모든 흔적들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유하고 싶다. 은정과 정 교수와 윤미와 마르셀교수도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서양음악과 동양음악도 양식과 한식도…… 그 모든 것을 내 의식 속에서 말끔히 추방하고 싶다.
나는 허둥지둥 옷을 걸치고 서둘러 다락방에서 도망쳤다.
골목을 따라 무작정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불꼬불하고 수많은 계단들로 이어지고 포석을 한 좁은 거리들은 죄다 사크르쾨르대성당으로 이어져있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그 유명한 골목인 루스티크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 거리를 정확히 표현한다면 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테르트르광장이 나타날 것이고 사크르쾨르대성당에까지……
테르트르광장. 거리의 화가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상은 윤미의 얼굴이었다.
내가 왜 테르트르광장으로 가는 거지? 난 그리로 갈 생각이 없었어. 윤미를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 이건 누군가가 나를 배후에서 조종한 게 분명해.
나는 발길을 돌려 다시 올라오던 길을 따라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어떠한 과거의 인연과도 오늘만큼은 단절하고 싶었다. 나 혼자만의, 내가 의지하는 대로의,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인연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당도한 곳은 뜻밖에도 피갈광장이었다.
나는 광장의 중앙에 우뚝 박힌 채 잠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단과 선택은 수용에 앞서 먼저 상실이기에 망설임을 유발한다. 앞에서 보이는 이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은 엄마의 유전이다. 뒷짐을 짓고 다리를 턱하니 벌린 채 턱을 잔뜩 쳐들고 있는 모습은 허장성세를 멋으로 여기는 아버지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서있는 나를 윤미는,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그 무슨 화상을 꼭 닮았다고 한다. 나 자신도 그날 윤미네 집에서 동자스님의 그림을 보고 놀랐었다. 동자스님이 장발을 하고 양복을 입었거나 내가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었거나 했다면 정말이지 나 자신도 어느 쪽이 내 모습인지 가려내지 못할 만큼 흡사했었다. 그러나 정작 어느 곳이 닮았느냐 따지고 보면 이거라고 꼭 짚을 데도 없었다. 굳이 짚으라면 자그마한 코, 두툼한 입술…… 그러한 유사성은 코리언이면 누구나 비슷한 외모가 아닌가.
광장주변에는 유흥업소들의 현란한 간판들이 숲을 이룬 환락가가 즐비했다. 디스테크, 나이트클럽, 카바레, 뮤직바의 간판들은 평소에는 그 존재 자체마저도 모르고 있던 것들이었다. 이런 곳에 들락거릴 만큼 지갑도 두툼하지 못했다. 사실 그 엷은 지갑의 돈도 은정이 달마다 송금해오는 구걸금이었으니 유흥가출입 같은 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저 눈부신 간판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요염한 유혹의 추파를 던져온다. 그리고 나를 옥죄고 지배하는 모든 흔적들에서 탈피할 수만 있다면 어떤 곳으로도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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