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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25

by 8866 2008. 4. 18.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잃어버린 세계 A              

 

 연재 25

 

 5. 잃어버린 세계 A

 

 명진은 연구실에만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세 가지 일을 확인하고야 시름을 놓는다.
 추상석과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와 마로니에미완성스케치이다.
 오늘도 명진은 하나하나 빠짐없이 그것들을 체크했지만 별 소득은 없다. 추상석은 볼수록 아리송했고 존 컨스터블의 그림에서는 더 이상 발견할 만한 것이 없이 극심한 두통만 자극했다.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에서 뭔가를 더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전번날 밤에 꿈과 같은 시각으로는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현주가 그 현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여유 있게 스케치북을 펼치고 미완성스케치 보완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거의 주말마다 다녀온 곳인데도 확실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경관인 문예진흥원과 ‘푸른 쉼터1호’는 윤곽만 어렴풋할 뿐 세부묘사가 불가능했고 기둥의 조각과 마로니에나무, 심지어는 철제울타리의 형태와 그 옆의 벤치가 몇 조각의 각목으로 무어졌는지도 모호했다. 원이나 곡선으로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기억을 재생시킬 수가 없었다. 아내가 현주라고 주장하는 아가씨의 모습은 고사하고 그녀가 입은 옷의 모양조차도 기억에 입력되어있지 않았다. 어제도 현장을 다녀왔는데 이럴 수가 있을까?
 미술작품은 현재시선과 과거시선이 결합되어 구성된다. 그러나 과거시선은 기억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모호하며 세부묘사에서는 언제나 현재시선의 보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거시선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문학작품과는 달리 세부형태묘사를 요하는 그림은 많이는 현장스케치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명진은 가방을 들고 연구실을 나왔다. 아무래도 현장에 가야 무뎌진 감각이 살아날 것 같았다. 그는 어느새 연구실 안과 캠퍼스, 거리와 마로니에공원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찰습관을 기르려던 의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또다시 수많은 시각권내의 대상들이 그의 눈길에서부터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차장에 나타난 직원영감도 간단하게 무시되고 말았다.
 명진의 발길은 저절로 그에게 익숙한 벤치에로 다가갔다. 그곳은 명진이 피살사건당일 미완성스케치를 그리던 벤치였다. 왜 이곳에만 오면 이 벤치를 찾게 되는지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불완전한, 불확실한 무언가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추구에 떠밀렸던 건지도 모른다. 이상한 꿈을 꾼 뒤로 명진의 발걸음은 더 자주 이 벤치를 찾는다. 어쩌면 그 미모의 여자가 또다시 저기 마로니에나무아래의 벤치에 꿈속에서처럼 홀연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도 없지 않았다. 그날 목격한 사건이 진실이 아니었다면 그런 황당하고 진실하지 않은 착시현상은 또다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없다는 반발심 같은 심리였다.
 벤치에 앉아 스케치북을 꺼냈다. 오늘은 무엇이고, 풀 한포기, 나뭇잎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관찰하리라 작심하며 연필을 손에 들었다.
 고개를 들어 앞쪽의, 그날 미모의 아가씨가 앉았던 벤치 쪽에 시선을 던지던 명진은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자리에는,
 그 자리에는 분명 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아내가 말하던,
 아내가 말하던, 타원형 하나와 점 세 개 그리고 곡선 하나뿐이던 그 미완성스케치의 주인공이다.
 홍현주 박사.
 오늘 그는 복도에서도 연구실에서도 현주를 만나지 못했었다. 퇴근하면서도 복도나 캠퍼스의 어느 골목길에 문득 그녀가 나타날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농간을 부려 발생한 착시현상은 아닐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현주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끈한 다리위에 짧지도 길지도 않게 드리운 맵시 있는 스커트는 눈빛처럼 하얗다. 목 단추 두 개를 끌러 여유와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귤색 티셔츠는 단아하면서도 세련돼 보인다. 미소는 없어도 우울하지는 않고 냉담해보이지만 몰인정하지는 않다.
 명진은 저도 모르게 벤치에서 일어섰다.
 “현주 씨, 현주 씨가 여길 어떻게?”
 “전 이곳에 오면 안 되나요? 시민휴식공간인 공원이 아닌가요.”
 “그렇긴 합니다만……”
 대학근처에도 휴식공간은 많았다. 마로니에공원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시설도 완벽한 공원들이 많은데 하필이면 여길까 싶었다. 하긴 이곳에 올 확률이나 가능성이 더 많은 쪽은 명진이 아니라 현주다. 그녀는 아가씨이고 유부남인 명진이보다 훨씬 젊은 나이니까 『젊음의 거리』인 대학로가 더 잘 어울릴 것이다.
 “교수님께서 자주 오시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 궁금해서 왔어요.”
 소매물도에서 보여주던 그녀의 솔직함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명진은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면 있는 학생들의 눈길이라도 있을까 두려웠다. 유부남교수와 처녀강사의 밀회는 한편의 스캔들을 만들어 내기에는 충분한 스토리일 것이다. 더구나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실력보다는 연애상상력이 뛰어나다.
 “우리 어디 카페에라도 들어갑시다.”
 “제가 교수님의 스케치에 방해라도 된 건가요?”
 “천만에요. 오늘은 스케치를 하러 나온 게 아니고 그냥 답답해서 나온 겁니다.”
 계단을 따라 지하철입구로 내려갔다.
 “교수님, 어딜 가시려는 거예요. 공원주변에도 카페가 많잖아요.”
 “길 건너편에 「오감도」라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습니다. 멀지 않아요.”
 문인, 예술가들의 발길이 잦은 카페라 명성에 걸맞게 실내분위기도 우아했다. 붉은 벽돌장식으로 간벽을 막고 목조계단과 스페인 풍의 인테리어를 한 2층 카페 홀은 아늑하면서도 고전적이다. 벽체며 바닥, 천장인테리어까지도 대체로 붉은 색깔인데도 격조나 운치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뭐로 드실 겁니까?”
 “칵테일이요.”
 주류가 음료보다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손님을 청해놓고 대방의 주문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카카오 두 잔을 청했다. 파란 유리잔 안에 투명한 얼음조각들이 짤랑거린다. 술에 띄운 체리와 레몬의 빨강과 노랑색이 현란하게 조화를 이뤘고 작은 우산은 깜찍했다.
 한 모금 마시니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곡향穀鄕이 상쾌한 진토닉향기와 어울려 감미롭다. 거기에다 실내에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의 아름답고 화려한 음악의 선율이 가미되어 한결 풍미하다.
 “추상석의 이름은 지으셨어요? 제가 너무 독촉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직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군요.”
 앉음 자세나 발화發話자세나 어느 모로 보아도 현주는 더 이상 소매물도에서 보았던 천진난만하고 경망한 소녀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때에도 현주의 이런 지적 성숙이나 세련이 완숙까지는 몰라도 요소요소에 존재했는데도 명진이가 그걸 보아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현주가 여자로, 이성으로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 앉아있는 현주는 터지도록 무르익고 완벽하게 성숙한 하나의 탐스러운 이성임에 틀림없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천천히 보세요. 급한 일도 아닌데요 뭐.”
 짧은 침묵이 흘렀다. 명진은 그녀와의 사이에서 공유할 수 있는 화두가 어떤 것이 적합할까 잠깐 화제를 뒤져보았으나 쉽게 골라지질 않는다.
 느닷없이 현주의 예고 없는 방문이 혹여 아내에 대한 화제를 꺼내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녀가 한 번도 아내에 대한 화제를 꺼낸 적은 없었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그것이 우려가 된다.
 “정지용의 작품에 대한 논문 집필은 순리롭게 진행되고 있나요?”
 담론을 의식적으로 학문 쪽으로 돌려버렸다. 현주가 가장 쉽게 수락할 수 있는 화두였고 수석과는 달리 명진이도 동참할 수 있는 공감대까지 있어 최적의 화제라고 생각되었다.
 “네. 그런 대로요. 교수님말씀처럼 남들이 많이 다룬 시인이라 새로운 안목으로 신선한 견해를 내놓는 작업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요.”
 아픔을 딛고 일어선 여자. 그 세월의 상처가 그녀의 얼굴에서 흐르던 미소의 샘물을 막고 메마르고 고달픈 면부에 냉담을 심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자살시도소식을 들었을 때 명진은 실로 커다란 충격과 경악을 느꼈었다. 등대섬에서의 그녀의 청혼이나 구애가 소녀의 천진난만함에서 발생한 장난기나 일시적 감정의 포말이라고만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왔었다. 신중성을 필요로 할 만큼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왔었다. 오빠로서의 사랑만 주면 그녀와의 관계는 충분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경시해온 그녀의 감정이 이토록 진지하고 신중한 것일 줄은 정말 몰랐었다. 자살까지 시도했다면 그녀의 사랑은 진심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때는 아내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아내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남편을 속였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고 현주에게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인제는 과거가 되고 말았다. 누구도, 명진이도 현주도 아내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구도 그 사실을 망각한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은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가슴속 깊숙이 은폐된 채 세 사람의 정서와 오묘한 관계를 배후조종하고 있었다.
 현주의 음주속도가 빨라지더니 어느새 잔이 비어버렸다.
 명진은 웨이터를 불러 카카오 두 잔을 더 추가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사유와는 다른 화제에 보조를 맞춰야 했다.
 “나도 시평을 주로 합니다만 문학은 미술보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평의 난이도가 훨씬 높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작품은 현장스케치에 주로 의존하는 데 반해서 시나 소설은 기억이나 표상에 많이 의존하지 않습니까. 기억과 표상은 현장에서의 시각포착에 비해 보다 더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불완전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시작품은 미술작품보다 모호성과 불확실성의 비중이 높으며 그 때문에 비평도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난이도가 역으로 비평범위의 확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물론 미술작품도 완전한 현재시각포착으로서의 촬영과는 달리 기억과 표상에 의한 즉 외시각이 아닌 내 시각의 포착에 의한 작업실에서의 뒤처리와 보완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미술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건 어디까지나 현장스케치에 의한 시각적 포착입니다. 반대로 시작품은 외시각이 아닌 기억화 된 외시각이 욕망의 호명을 받고 표상으로 재현된 후 그것을 다시 내 시각에 의해 포착한 것입니다. 물론 현장스케치식의 즉흥시처럼 예외도 있습니다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이며 또 그렇게 창작된 시작품은 대체로 미완성품입니다. 표상도 내시선에 의해 포착되는 이미지적 대상으로서 주시선과 차시선, 주시선의 미달선과 초월선의 원칙이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기억정보들은 내시각에 의해 그 전부가 포착,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지의 정체성이 해체 또는 분리되기도 하고 기억의 일부만이 선택되기도 하죠. 여기서 소외와 굴절은 불가피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작품의 모호성은 언어기호자체의 무의미성과 개별성, 대상과의 불일치에서 초래하는 불완전함과 판독에서 오는 차이 그리고 언어를 중개로 해야만 가능한 표상에의 간접적 접근, 문법과 수사에 의한 복잡화 등 2중3중의 모호화와 불확실화가 개입되어 비평이 더구나 어려워지겠죠.”
 사실 지금 명진이 말하고 있는 건 그가 이미 정지용에 관한  비평저작에서 발표된 적이 있는 내용의 복술에 지나지 않았다. 요즘 그는 시평보다는 미술에 더 정력을 쏟고 있었다. 미술은 문학보다 적어도 시각적 감각에서는 확실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신분이 문학비평가이며 국어학박사이자 교수이고 그녀의 선배라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설령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이성간이라고 할지라도 서열관념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권리의 배분이기 전에 질서이기 때문이다.
  “저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주시선 관점에서 시작품을 판독하면서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정지용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유리창』을 보면 시인의 주시선에 포착된 사물, 이미지들은 중복된 것들까지 모두 합쳐 10개에 불과해요. 「유리(반복)」,「입김」,「날개」,「밤(반복)」,「물」,「별」,「보석」,「폐혈관」,「산새」등이지요. 이들 이미지들은 각각 「찬-비치다」,「닦다-유리」,「흐리오니-입김」,「파다거리다-날개」,「새까만-밤」,「먹다-물」,「반짝-별」,「박힌다-보석」,「찢기다-폐혈관」,「나르다-산새」등 상관 이미지들과의 타협을 통해 주시선의 폭과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시인의 주시선에 의해 기타 이미지들은 전체성에서 분리 또는 분해되거나 소외되고 있었어요.”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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