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마로니에공원 코너
연재 6
경찰이 범죄 신고를 받고 병원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21분 45초가 지나서였다.
그중 인솔자인 듯한, 몸집이 뚱뚱한 형사는 더워서인지, 급히 달려와서인지 온 얼굴에 땀투성이였다.
“피사체가 어디 있죠?”
피사체란 말에 명진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시체를 확인하거나 사건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경찰은 사내의 죽음을 피살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제보자는 누굽니까?”
“네, 접니다.”
형사의 의심에 찬 눈길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으며 두세 번이나 반복되는 동안 명진은 전신에 얼음이 돋으며 소름이 쫙 끼침을 느꼈다. 그 눈길에는 노골적이고 적대적인 의혹으로 가득 찬 예리한 가시가 촘촘히 돋아있었다.
내가 왜 이런 눈길을 받아야 하는가. 칭찬을 받아도 모르겠는데…
“형사반장 박 형삽니다. 피살자와는 어떤 관곕니까?”
냉기가 서걱거리는 사무적인 어조다. 그리고 경관의 손에는 벌써 기록노트가 들려있었고 그의 살진 손가락에 묶인 볼펜은 몸부림치듯 종이위에서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표지를 보지 않아도 ‘범죄현장기록부’나 뭐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얼음구멍에 내던져진 듯 살갗이 오싹 오므라든다.
“이름은요?”
잠시 머뭇거렸다. 성함도 아니고 성명도 아니고 이름이다.
“이름이 뭔가 묻지 않습니까?”
“아니 그런 걸 꼭 조회해야 합니까? 전 사람을 구하려고 제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왔을 뿐인데요.”
“신원조회절차가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은요?”
“김명진입니다.”
주위사람들의 눈길이 무겁게 의심을 실은 채 그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직업은?”
“S대 국어국문과…”
“직업을 물었습니다.”
“교숩니다.”
영문 없이 얼굴이 화끈해졌다. 심문이나 취조를 당하는 죄인 같은 입장에서 교수라는 신분 제시는 자존심손상을 느끼게 했다.
“교수라.”
경관은 게슴츠레하게 뜬 비난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명진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주민등록번호는요?”
“아니 사건경위 같은 걸 물으셔야 순서가 아닙니까!”
화가 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우유부단하고 소심성 있는 성격 때문에 도리어 더 낮고 부드러워졌다.
그때 2층으로 올라갔던 다른 강력계형사들이 시체를 들것에 담아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밖에서는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앰뷸런스가 귀청을 찢는 경적소리를 울려대고 있었다.
“반장님, 피사체에선 신원을 확인할만한 아무런 소지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키가 크고 안경을 쓴 형사가 거친 음성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그제야 명진의 머릿속에는 벤치위에 나뒹굴던 망자의 저고리가 떠올랐다.
“참 이 남자의 저고리가 공원에 떨어졌던데 바쁘다보니 사람만 그냥 업고서…”
“사건이 발생한 지점이 어디라고요?”
“마로니에공원입니다.”
“마로니에공원이라고. 그럼 교수님께서도 증언 차 우리와 함께 현장으로 가셔야겠습니다. 김 형사는 피사체를 병원에 맡겨 법의에게 해부를 의뢰하고 최 형사와 이 형사는 나와 함께 현장으로 가자.”
형사들은 반장의 뒤를 따라 피사체를 들고 우르르 밖으로 쓸어나갔다.
내가 왜 저들과 같이 사건현장으로 다시 가야 되는 거지. 혐의범도 아닌데.
잠시 망설였으나 반장의 눈길이 뒤를 쏘아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공포감에 질려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섰다.
길가에 주차시켰던 자신의 차에 오르려던 그는 그제야 보닛에 4만 원짜리 과태료딱지가 부착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그 차는 놓아두고 우리 차로 갑시다. 과태료는 우리가 보증서줄 테니 걱정 마시고.”
박 형사가 등을 떠미는 대로 패트롤카에 승석할 수밖에 없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거리에는 차량들이 내쏘는 헤드라이트불빛이 불의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마로니에공원은 언제 피살사건(명진이 자신도 언제부턴가 피살사건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이 발생했던가 싶게 밤의 고요와 정적 속에 잠들어있었다. 은밀한 애정을 나누는 젊은 연인들이 이따금 보이긴 했지만 낮의 활기와 낭만은 자취를 감췄다.
아가씨가 남자에게 건넸던 커피 컵도 보이지 않았고 양복저고리도 보이지 않았다. 커피 컵을 버렸음직한 쓰레기통도 말끔히 청소해내고 새로 비닐봉투가 갈려있었다.
“바로 이 벤치입니다. 남자는 여기 앉아서 신문을 보았고 아가씨는 저쪽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와 사내에게 건네는 걸 보았습니다. 남자는 커피를 몇 모금에 다 마셔버렸고요. 저는 저쪽 맞은편 벤치에 앉아 그들을 스케치했고요.”
“그게 대체 언제쯤이었죠?”
“해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오후에 수업이 일찍 끝났기에 스케치를 하려고 들렀다가 뜻하지 않은 봉변에…”
“이 저고리가 그 사람의 옷이 아닙니까?”
느닷없이 공원관리직원이 양복저고리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벤치위에 버려져 있기에 건사해 두었습니다.”
“네. 이 저고리가 맞습니다. 검은색의 양복저고리였거든요.”
“급하셨다면서 옷 색깔까지 그렇게 똑똑히 보실 수 있었나요? 그리고 검은색 양복저고리가 얼마나 많다고…”
경찰관의 반문에 명진은 대답이 궁해졌다. 정말 그랬다. 그 자신만 해도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지 않는가. 물론 밤이 되었는데도 유별나게 더워 저고리도 벗고 넥타이도 풀어 팔에 걸치긴 했지만. 자기 눈으로 보고서도 확실하다고 확언할 수 없는 것이다.
박 형사가 저고리 호주머니를 깐깐히 뒤졌으나 100원짜리, 50원짜리, 10원짜리 동전 몇 푼이 소지품의 전부였다.
카메라촬영과 현장기록을 마친 뒤 공원을 떠났다.
“미안하지만 경찰서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죄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또 경찰서로 가야죠? 시간도 늦었으니 전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명진은 택시를 잡으려고 대학로 쪽으로 걸어갔다.
“교수님, 경찰에 협조하지 않으실 겁니까.”
형사반장의 말에 흠칫 놀란 명진은 그 자리에 발길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청구가 아닌 협박으로 들렸다.
“교수님께서는 이번 마로니에공원피살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혐의범입니다. 라는 의미로 들렸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또다시 병원에서와 똑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박 형사는 직접 컴퓨터 키를 두드리며 그의 대답을 일일이 입력하여 증언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김명진입니다.”
“직업은?”
“교숩니다.”
“주민등록번호는?”
“□□□□□□□□□□입니다.”
“전화번호는?”
“□□□□□□□□□입니다.”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울화가 치밀수록 침착하고 소심해지는 명진이었다. 벽시계를 쳐다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넘었다.
“형사님, 저 잠시 집에 전화 걸어도 될까요? 아내가 무슨 일인가 기다릴 것 같아서요.”
“그러세요.”
박 형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에 놓인, 푹 젖은 손수건을 집어 얼굴에 번진 땀을 훔친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든다.
“여보, 당신이죠? 지금 어디 계세요? 또 현주랑 같이 있어요?”
늦기만 하면 현주랑 같이 있냐는 의문부터 퍼붓는다. 현주가 남편이 근무하는 S대학에 강사로 발령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아내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수화기안에서 들려오는 에누리 없는 음악소리에 명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여기 경찰서야. 좀 늦게 들어갈 테니 그리 알라고.”
“경찰서에요? 경찰서엔 무슨 일로요? 현주랑 술 마시고 음주운전단속에 걸린 거죠?”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무튼 전화로 말하긴 저기하고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이만 끊어.”
일방적으로 통화를 중단했다. 아내가 다시 걸어올 전화를 미리 방비하기 위해 아예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또다시 그 따분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꼬치꼬치 계속되던 질문은 결국 스케치북까지 화제에 끄집어냈다.
“그 그림이 어디 있습니까. 좀 봅시다.”
그림을 보여준다고 문제될 것이 없었기에 얼른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내어 박 형사에게 건넸다. 느닷없이 그림이라는 말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여기저기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명진은 초라한 전시회 같은 건 두어 번 개최하여 관객들을 맞이해보았지만 이렇게 경찰서에서 범죄사건 증언용으로 그림을 형사들에게 제공하긴 처음이었다. 형사들에겐 그 그림이 예술작품이 아니라 범죄사건의 증거물중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굴욕감을 느꼈다.
“이 남자가 피사체의 모습입니까?”
“네.”
“비슷한가?”
형사반장은 수하형사들을 둘러보며 씽긋 웃었다. 저희들끼리는 제법 인정스러운 표정들을 교환하고 있었다. 전혀 다르다는 사람, 비슷하다는 사람, 평판은 각이했다.
“내가 보기엔 비슷하지 않아. 당신 화가시오?”
“아니 그냥 취미로.”
“그러니까 이 아가씨가 그 커피를 뽑아주었다던?”
“네.”
“아가씨는 그런대로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군. 다른 사람들 모습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어. 그런데 공원의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필이면 사건당사자들을 그렸다는 사실이 교수님께서 보시 건대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 연유도 없이 말이죠.”
범법자들만 다루다보니 형사반장의 입에는 이미 반말이 굳어버린 듯 경어도 반 말투로 들려 불쾌한 인상을 주었다. 비웃는 듯한 풍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가씨의 보기 드문 미모에 매료되어 스케치소재로 선택했다는 말이 왜서인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미모의 여자에게나 눈길을 주는 행위를 예술창작활동이라고 이해하기엔 너무나 거친 성격의 직업병을 가진 형사들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들이 보기엔 이런 행위가 교수라는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시선이 가는 대로 그리다보니…”
“신기하게도 이 그림 속에는 얼굴을 알아볼만한 사람은 혐의범아가씨와 피살자밖에 없는데… 그리고 이 사내 옆에 앉은 아가씨는 또 누굽니까? 전혀 모습은 알아볼 수 없지만 윤곽은 잡혀있고…”
“글쎄요?”
명진은 그제야 사내 옆에 또 한 여자가 앉아있음을 스케치 속에서 발견했다. 사실 그 자신도 그 여자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 여자를 화선지위에 재현했다는 기억조차도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죄다 계란이나 호박이나 오이 같은 둥글둥글한 모양이 되고 말았군요. 이것이 예술이 표방하는 이른바 미학이라는 건가요. 그렇습니까, 교수님?”
“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처에 사람 죽이는 권총이 언뜻거리고 연행된 범죄자를 심문하는 거친 음성이 난무하는 이 험악한 분위기속에서 그처럼 우아한 「예술」이요 「미학」이요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끌어들이는 박 형사의 무례함이 거의 모독에 가까운 것임을 느끼며 명진은 전율했다. 한 시라도 빨리 이 답답한 구속에서 해탈하고 싶을 뿐이었다.
“김 형사, 이 그림을 갖고 가서 몽타주를 만들어 와. 세 사람 다.”
김 형사는 콧등위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연신 추슬러 올리며 스케치북을 들고 어디론가 재빨리 사라졌다.
한 30분 경과해서야 김 형사가 몽타주를 들고 돌아왔다.
컴퓨터기능의 도움으로 더 확실해진 혐의범아가씨의 용모는 사진처럼 또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 아가씨가 맞습니까?”
“네. 입술이 조금 클 뿐 다른 이목구비는 거의 완벽하게 재현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협조해주시라라 믿습니다.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명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금이 지끈지끈 저렸다. 과태료문제를 말할까하다가 그 때문에 1분이라도 여기서 더 지체하게 되는 것이 싫어 그냥 돌아서 나왔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차를 세워둔 병원 앞에 와보니 보닛에 부착했던 과태료딱지는 누군가 벌써 철회해가고 없었다. 영문 없이 기분 나쁜 얼굴이었지만 형사반장은 약속을 지키는 의리쯤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건졌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카 시계를 보니 자정도 10분이 넘어있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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