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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7

by 8866 2007. 11. 30.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교향곡과 말티즈 그리고 철민이 A

 

연재 7                                  

 

 

                                     2. 교향곡과 말티즈 그리고 철민이 A

 

 

 명진은 차를 아파트주차장에 대고 시동을 끈 다음 하차했다.
 그는 이제부터는 습관화하기로 한, 의식적인 눈길로 정원 안을 자세히 휘둘러보았다. 입식立式배열된 조경석들은 석질은 물러 보이지만 대신 풍화작용에의 저항력이 약해 석면石面표층에 화려한 무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무늬들은 지도地圖 같기도 하고 강물이나 산 그리고 숲을 나타내는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하고 새나 들짐승 형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자연히 현주가 부탁하던 추상석이 기억의 파문을 타고 표상의 기슭으로 밀려나왔다.
 추상석이름을 뭐라고 지어야지? 수석을 받았으니 부탁은 수락한 셈이고.
 조경석들과 조화를 이루며 식재한 철쭉, 진달래, 라일락, 장미, 개나리, 소나무, 향나무, 벚나무들은 무성한 숲을 이루고 각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며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후각을 가동시켰으나 그 향기가 벚꽃향기인지 개나리꽃향기인지 식별이 되지 않는다. 후각 역시 시각이나 청각처럼 제구실을 못하는 듯싶어 실망하고 말았다.
 어떤 정원수들은 그 키가 아파트 18층까지 치닫고 있었다. 가끔씩 수양버들도 보였고 포플러도 보였다. 포플러의 그 미끈한 몸매는 그날 마로니에공원에서 보았던 그 미모의 아가씨의 날씬한 몸매를 연상시켰다.
 붉고 노란 색깔이 황홀한 조화를 이루는 놀이터에는 노인 몇 사람과 애들 몇이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명진은 이 아파트에 산지 몇 해 되지만 한번도 그 놀이터에 가 본적이 없다. 그 놀이터는 그에게 불타는 듯한 빨간색과 따스한 노란색갈의 현란한 조화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늘은 저들 놀이기구가 어떤 재목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목재는 어디서 채벌되었고 수령은 얼마나 되며 어떤 목공들에 의해 어떤 기하학적 원리로 제작되었는지 하는 따위의 배면에 숨겨진 의미들까지 궁금해진다. 또 그 놀이터에서는 어떤 연애사가 진행되었고 인간사가 흘러갔을까? 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날마다 눈으로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시야에서 소외된 이미지들이었다.
 현관문으로 들어서며 명진은 하루 적어도 두 번씩 오르내리는 아파트계단이 6단이며 경비실아저씨의 이마에 커다란 흉터가 있음을 발견했다. 가위로 전지한 철쭉 밑 화단에는 왕개미들이 무언가 자기 몸보다 부피가 몇 배나 더 큰 무거운 먹이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분주히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고 참새가 나무줄기사이로 불린 풍선처럼 퐁퐁 뛰어다니고 등판에 화려한 꽃무늬를 수놓은 무당벌레도 나뭇잎사이로 보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동함을 목격하면서 명진은 지어 흥분하기까지 했다.
 허리를 굽실하는 경비의 인사에 가볍게 답례를 하면서 그는 2층위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그러나 꿈속에서도 그 소리를 듣기만 하면 진저리나는 음악소리를 들었다.
 아내가 즐기는 교향곡이었다. 눈만 뜨면 그 곡부터 틀어놓는 아내였다. 때때로 다른 곡을 바꿔 들어도 이처럼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1년 365일 슈만, 슈베르트, 베를리오즈의 그 세 곡뿐이다.
 오늘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다.
 “또 베를리오즈야. 좀 다른 곡으로 바꾸면 안돼.”
 명진은 방에 들어서자 이맛살을 찌푸리며 실내가 미어지도록 요란한 입체음을 발산하는 오디오확성기에 아니꼬운 눈길을 던졌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귀가하세요?”
 남편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의문부터 의사일정에 부치는 아내, 곡을 바꾼다는 건 협상할 여지도 없다는 강경어조다.
 아내는 조잡하고 어두운 다자인의 무늬가 있는 헐렁한 추리닝을 걸쳤고 역시 헐렁하고 단조로운 창살무늬의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도 꾸미지 않았고 화장도 하지 않았으며 브래지어도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쪽다리는 가랑이까지 불쑥 걸어 올리고 있었다. 손에 비누물이 묻어있고 셔츠앞섶이 젖은 걸 보니 화장실에서 말티즈를 목욕시키던 중인가보다.
 지금 이 모습을 보고서 누가 그녀를 대학까지 나온 지성인으로 보겠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천박한 시골아낙네거나 깔끔하지 못한 게으른 아줌마로 볼 것이다. 아니면 싱겁게 키만 껑충한, 어리바리한 여자로 볼지도 모르겠다. 밖에서나 사교장소에서 남들에게 보이는 아내의 이미지는 그 세련미와 반듯한 교양미, 단정하고 여유 있는 자태 때문에 숙녀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단 집안에만 들어오면 그녀는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무식한 촌부처럼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아내는 입을 다물고 조용한 자세를 취할 때는 균형과 지적인 미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만 일단 입을 열고 말을 하거나 웃음을 지으면 순식간에 균형이 깨어지며 부조화와 텅 빈 공허감을 주는 일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정교하고 우아한 백자가 박살나는 듯 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그녀의 진실한 모습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그림 그리러 대학로에 가지 않으셨나 보죠.”
 방안에 뒹굴어 다니는 음악소리 때문에 그녀의 말소리는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당신이 「환상 교향곡」을 좋아하는 일이.”
 정말이지 아내가 무엇 때문에 베를리오즈, 슈베르트, 슈만의 음악에만 미친 듯이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 말티즈가 콩콩 짓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발톱으로 문을 허비기 시작했다.
 아내는 정신없이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아내가 30평짜리의 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온종일 하는 일은 음악을 듣고 말티즈를 관리, 훈련시키는 것뿐이었다.
 그야말로 아들 철민이는 제멋대로 크고 있었다.
 명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석간신문을 집어 들었다.
 저 레코드판들은 아내가 직접 골라서 구입한 것도 아니었다. 명진이 미국유학시절 무시무시하게 엄습하는 고독과 외로움에서 해탈하기 위해 중고음반가게에 가서 50달러에 15장이나 하는 세일음반을 닥치는 대로 집어 50장이나 구입한 레코드판이었다. 역시 중고전축에 레코드판을 장착하고 닥치는 대로 청취하는 것으로 좀먹어들어 오는 고독을 견뎌냈다. 그 레코드판에는 고전파음악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도 있었고 낭만파음악가 슈베르트, 루시니,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국민파음악가 슈만, 쇼팽, 바그너, 베르디와 후기낭만파인 시트라우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독치니의 곡들과 인상파의 드뷔시, 시벨라우스, 라흐마니노프, 현대음악의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등 무엇이든 다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4번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그는 애청했다.
 그러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명진은 그 레코드판의 존재를 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내가 느닷없이 낡은 그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50장이나 되는 레코드판 중에서 슈베르트, 슈만, 베를리오즈의 음반만을 골라내었던 것이다. 처음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 세 음악가의 작품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여 들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그 곡들을 틀어놓는 바람에 명진은 이제 반감까지 들었다.
  아내는 아기를 다루듯이 수돗물에 털이 젖은 말티즈를 가슴에 안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지금 아내의 저 꾀죄죄한 모습과 화려한 로마귀부인들의 따스한 품속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던 유명한 명견 말티즈의 우아한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내는 말티즈를 구들바닥에 내려놓더니 마른 타월로 털의 습기를 제거하느라 전신마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언제나 자기를 냉대하는 주인의 태도에 불만이라도 품은 건지 명진을 보자 낯선 사람이라도 대하듯 왕왕 짖어댄다.
 “아니 저 음악이 지겹지도 않아. 7년이 다 되잖아. 제발 좀 꺼버리고 잠시라도 평온한 시간을 가져보자.”
 자꾸만 아내가 저 음악에서 들으려하는 것이 무엇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듣는 것이 무엇인가가 못 견디게 궁금해진다. 무엇이나 다 들으면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음악문외한만이 느끼는 그 모호와 불확실의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스릴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내는 대답을 침묵에 맡긴다. 빗으로 기다란 말티즈의 털을 훑기만 한다. 말티즈는 가려운 피부가 시원한 듯 짓기를 멈추고 아예 눈을 감더니 방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좀 다른 곡을 바꿔 틀라고. 내 말이 안 들려. 자기 저 작곡가가 누군지 알기나 하고 좋아하는 거야?”
 “그건 알아서 뭘 해요. 음악만 들으면 되는 거죠.”
 “이상한 작곡가만 좋아하니까 그러지.”
 “그게 음악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내는 작곡가를 안다는 것과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듯 대수로워하지 않는다. 브러시를 집어 들고 개털을 솔질하기 시작했다. 목욕시키고 타월마찰해주고 훑고 솔질하자 말티즈의 긴 털은 금방 윤기가 흐르며 눈빛 같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과 코 입은 은백색의 비단실 같은 화사하고 기다란 털과 대조적으로 석탄덩이처럼 까만 것이 퍽이나 영리하고 귀엽게 보인다. 그러나 명진은 말티즈가 싫었다. 동물과 한방에서 거처한다는 사실에도 거부감이 들었고 아내를 빼앗아 간「연적」이라는 사실에도 미웠다. 아니 그 모든 이유를 떠나서 하나의 평범한 동물에게 본래의 값어치를 초월한, 잉여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헬리에타 스미드슨과의 결혼실패 때문에 고뇌와 몸부림 속에서 마취제투약에 의한 자살을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적 혼수상태에서 쓴 곡이란 말이야. 다시 말하면 「환상 교향곡」에는 작곡가의 병적인 몽롱한 정서가 배어있단 말이야.”
 “그런 데는요?”
 놀랄 줄로만 알았던 아내는 뜻밖에도 어떠한 자극도 받지 않고 담담한 표정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말티즈의 얼굴에 길게 드리운 털을 리본으로 묶어 올린다.
 뭔가로 그녀가 놀랠만한 카드를 제시하여 저 지겨운 음악에서 분리시켜야만 한다고 생각되었다.
 “당신 도대체 저 음악에서 뭘 듣는 거야?”
 “음악을 듣죠.”
 “저 소리들이 무슨 소리인지, 어떤 소리가 어떤 악기의 음인지 분간이나 할줄 알아.”
 “그건 알아서 뭘 하게요. 그냥 듣기 좋으면 되는 거죠.”
 “악기는 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특정한 연주법과 그에 따른 분위기가 있는 거야.”
 “그러는 당신은 지금 저기 들리는 소리들이 어떤 악기음인지 죄다 분간할 수 있나요?”
 명진은 느닷없는 반문에 정곡을 찔려 말티즈의 발톱을 깎고 있는, 긴장을 풀고 펑퍼짐해진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대답을 잃고 말았다.
 실로 그랬다. 그는 『환상 교향곡』에서 무엇을 들었는가?
 제1악장 『꿈과 정열』- 꿈속에서처럼 고요한 가락의 도입부가 유도해낸 혼란스러운 선율과 정열의 표현이 이어진다.
 제2악장 『무도회』- 명쾌한 왈츠와 서정곡이 황홀하게 교차한다.
 제3악장 『들의 풍경』- 구성진 목가를 부르는 두 목동과 서늘한 바람과 평화로운 풍경…
 이런 식의 공식적인 이해는 누구라도 시중에 흔한 클래식해설서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저 음악을 이해한 것일까? 선율이 아닌 문자를 통한 이해가 과연 얼마나 완벽할까? 물리적 진동으로서의 최초의 음이 아닌 공명음을 듣고 본음이 아닌 배음을 듣는다고 음악의 의미를 이해한 것일까? 제1악장 소나타에서의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에서 반복되는 제1주제곡과 제2주제곡, 제2, 제3악장을 통해 복잡해지고 장황하게 주제가 변화하지만 재현되는 주제의 무수한 반복을 듣는 것이나 제4악장에서 론도에 의한 주제의 되풀이를 듣는 것이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한 것일까?
 아내는 둥글게 만 약솜에 알코올을 묻혀 말티즈의 귀 안을 조심스럽게 청결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듣고 있는 음악 역시 단순한 선율의 반복은 아닐까? 몇 년을 들어왔는데도 그녀는 그 반복과 되풀이에 지루해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욱 깊숙이 심취해가고 있다.
 명진은 오래간만에 음악의 선율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경쾌한 유니슨연주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명진은 여러 가지 악기들의 유니슨연주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바이올린, 트럼펫, 오보에, 플루트의 화려한 음색을 가려냈다. 아니 그는 베를리오즈의 음악뿐만이 아니라 모든 교향곡을 감상할 때에도 이 몇 가지 악기의 소리를 즐겼다. 이들 악기의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교향곡을 듣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바이올린의 네 개의 현마다 각이한, 화려한 음색들은 그를 황홀경에 빠뜨리곤 했다. E현의 자유분방함과 화려함, D현의 엿가락처럼 녹아드는 달콤함, A현의 환상적이고 비단결 같은 부드러움의 음색에 도취되면 마치도 아름다운 꿈속을 거니는 듯한 들뜬 기분이 되군 했다. 더구나 비브라토, 스타카토, 글리산도주법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현란한 운궁법과 살탄도 피치카토, 트레몰로특수연주기교가 생산해내는 화려하고 환상적인 음색효과는 신비와 감상의 미궁에로 끝없이 유혹해 가는 듯싶었다. 그리고 플루트의 맑고 우아하고 투명한 음색과 트럼펫의 낭랑한 음질은 천성적으로 우유부단하고 내성적인 그의 잔잔한 마음의 호수에 거센 파문을 일으켰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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