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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3

by 8866 2007. 11. 2.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스토크바이 네일랜드"와 마로니에 미완성 스케치 A

 

 연재 3

 

 현주가 처음으로 이 대학에 국문과강사로 발령받아 왔을 때 명진은 그녀가 홍현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현주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 명진은 그녀가 거느리고 온 성숙과 지적인 이미지에 압도되어 이전처럼 현주야 하는 호칭을 부를 수가 없었다. 현주는 더 이상 철부지소녀가 아니었다. 홍 박사나 홍 강사 아니면 현주 씨라고 호칭할 수밖에 없을 만큼 요조숙녀로 환골탈태해있었다. 그리고 현주 역시 소매물도에서처럼 촐랑거리며 오빠 오빠하고 천진한 애교를 부리지도 않았다. 정중하고 담담하게 교수님이라고 존칭했다. 그렇다고 교수, 강사라는 하늘과 땅과 같은 신분과 권위에 기가 꺾이어 비굴하거나 점수 따려는 은근한 아부 같은 구린내 나는 짓거리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달관의 경지에 이른 선인 같기도 했다.
 그녀를 완벽한 성숙의 경지에 떠밀어 준 추동력은 무엇일까?
 명진은 잠시 선 자리에 우두커니 심어진 채 테이블위에 엉거주춤 주저앉아 있는 수석만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밑변 40cm, 높이 30cm의 장방형 수석은 얼핏 보기엔 무성하게 자란 열대선인장 숲 같았다. 그러나 앉아서 보니 위에서 굽어볼 때와는 달리 기이한 연봉이 첩첩한 산악과 계곡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니 그 기봉들은 각양각색의 동물상 같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도깨비무리들 같기도 하다. 추상석이라 함은 문자 그대로 그 형태가 추상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수석전문가인 그녀가 짓지 못한 이름을 나더러 지으라는 그녀의 의중이 궁금해질 뿐이다.
  하루 이틀에 풀 수수께끼가 아니라는 생각을 건지며 명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보름간이나 퇴근하면 꼭 들리곤 하는 곳이 있었다.
  명진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어 존 컨스터블의 명화와 현주의 추상석 중에서 어느 쪽을 사색의 소재로 선택할까 하는 갈등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둘 다 사유의 공간에서 추방해버렸다. 부담 없이 마로니에 행에만 심취하고 싶었다. 선택이란 건 상실을 전제로 하기에 그 결단에 고통이 필수적이며 그 때문에 언제나 부담스럽다.
  일방주행로를 따라 차를 천천히 운행시키면서 그는 가끔 여유 있는 시선을 차창밖에 던져 캠퍼스 내에 조성된 녹지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금시 여태껏 눈에 띄지 않던 수종樹種들이 시선에 잡힌다. 어제까지도 저들은 명진에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들에 불과했다. 좀 더 눈길을 주어보았자 가로수, 정원수, 조경수라는 의미를 아는 것으로 족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나무들이 풍부한 의미들을 거느리고 그의 시야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존 컨스터블이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화면 속에서 이미지들의 세부묘사를 거부한 것도, 나이, 표정, 의상 등 완벽한 내용을 떠난 『농부』라는 의미, 수종이나 수령이 무시된 『나무』라는 의미, 주인과 건축양식, 건재가 무시된 『집』이라는 의미, 모양과 재목, 적재내용물의 제시를 거부한 『수레』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목적 실현이 충분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늘 보아온 은행나무와 벚꽃나무, 향나무 속에 웅장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섬세하고 느긋한 회화나무와 기품이 도도하고 화려한 계수나무, 꽃잎은 자질구레하나 숲이 무성한 붓순나무, 단아하고 미끈한 몸매의 연필향나무, 싱싱하고 기백이 넘치는 전나무, 평화롭고 여유 있는 벽오동과 세련된 균형미를 과시하는 메타세쿼이아 같은 나무들은 오늘에야 가까스로 그 이름들을 케케묵고 녹 쓴 기억 속에서 들춰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조경수, 정원수들이 원예사의 배려덕분에 식생하고 있었지만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장장 7년 동안이나 다닌 길이다. 저 나무들은 7년 동안 변함없이 저곳에 서 있었을 텐데도 명진은 놀랍게도 오늘에야 그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지난날의 내가 정상이었는가 아니면 오늘의 내가 정상인가. 어쩌면 전번 날 마로니에공원에서 발생했던 그 이름모를 사내의 영문모르는 죽음 때문에 정신적으로 충격이라도 받은 것일까? 그 사내의 미스터리죽음이 있었는데도 나는 끈질기게 마로니에공원으로 이끌려가는 발길을 멈추지 못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무슨 영문인가.
 캠퍼스를 벗어나 차도에 진입하자 명진의 시선은 습관적으로 노면의 주행표시와 도로위의 신호등에 단단히 묶이고 말았다. 그러나 명진은 적신호등에 막혀 잠시 정차하는 시간일망정 오늘은 눈길을 교통표지에서 분리하여 거리의 경관에 돌렸다. 종래로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의 층수 같은 데는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다. 건축양식이나 건물의 색깔, 간판 같은 것들도 일일이 주시해보지는 않았다. 이제 그것들에 시선을 던지고 보니 모든 건물과 행인들이 낯설어 보였다. 거리와 거리들은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또 그만큼 낯설다는 걸 발견하고 명진은 놀랐다. 교통표지로만 인식했던 거리들이 싱싱한 낯설음을 거느리고 그의 시선을 유혹했다. 틈만 생기면 건물들의 층수도 세어보고 양식과 디자인 그리고 숲처럼 총총한 간판들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마로니에공원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차를 대려고 공원 뒷골목 유료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붉은 조끼의 유니폼을 입은 주차직원이 땅속에서 불쑥 솟아나기라도 하듯이 차 앞에 나타났다. 명진을 향해 허리를 굽실하며 벌쭉 웃는다. 그리고는 잽싸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시간을 확인한 뒤 주차영수증에 숫자를 기입하더니 쫙- 찢어서 윈도와이퍼에 끼워 넣는다. 허리를 굽혀 시창에 다가온 직원의 얼굴에서 그의 쌍까풀이 외짝임을 발견했다. 저렇게 만날 때마다 반가운 미소로 맞아주지만 2분을 주차해도 1천 5백 원, 기준시간 30분에 1분을 초과해도 3천 원에서 10원 한 푼 깎아주지 않는 짠돌이영감이다.
 건축양식이 특이한 대극장과 미술관의, 장중한 느낌의 붉은 벽돌벽체가 낙조의 조명까지 받아 핏빛처럼 보였다.
 진입로 왼편에는 호떡, 쥐포, 문어발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고 오른편에는 목조벤치들이 설치되어있었다. 붉은 황혼 속에서 금화처럼 반짝이는 노란 은행잎들은 참숯같이 새까만, 그래서 쇳덩이처럼 견고해 보이는 줄기와 대조되며 더욱 밝고 싱싱했다. 공원광장 도처에 우뚝 솟은 은행고목들은 고색창연한 역사를 증명하듯 거창하고 늠름하다.
 명진은 새로운 눈길로 주위의 경관을 흔상하며 통행로를 따라 끝까지 걸어갔다. 길섶에는 사주관상쟁이들이 늘어앉아 길손들을 불렀고 거리화가들도 이따금 보인다.
 서쪽 입구에는 불그레한 녹물이 번진 철제 탑 하나가 서있었다. 해설판에서 명진은 그 탑이 『제27차 ITI총회세계연극제(97서울)경기조형 탑』이라는 해설문을 읽을 수 있었다.
 별 볼거리가 없는 서울바닥에서 드문 낭만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거리, 이름 하여 젊음의 거리, 문화의 거리, 예술의 거리인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에서 백주에 젊은 남자가 피살되다니!
 아직도 며칠 전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던 그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명진은 잊을 수가 없었다.
 명진은 미끄럼대가 설치된 놀이터와 공원매점을 지나 비둘기 떼와 관광객들이 점령해버린 광장을 거쳐 『서울대학교 유적기념비』와 은행나무사이를 걸어갔다. 그날도 명진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마로니에공원연작스케치작업을 위해 대학로를 찾았었다. 그렇다. 바로 저기 「김상옥열사의 상」이 있는 왼편, 미술관 쪽에서 두 번째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때는 저녁시간. 막 부챗살을 접기 시작한 석양이 은행나무 잎을 붉게 물들이며 금싸라기처럼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명진은 『서울대학교 유적기념비』 쇠 울타리 옆자리에 앉아있는 노점상할머니를 스케치하려고 스케치북을 막 펼치고 있었다. 미모의 아가씨는 바로 그때 진입로 변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나타났었다. 아가씨의 움직임은 그대로 광채의 이동이었고 꽃물결의 흐름이었다.
 명진은 그날 아가씨가 걸어오던 족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놓으며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울타리로 둘러막힌 조경정원안의 땅바닥 석조표지판에서 그는「푸른 쉼터 1호」라는 설명내용을 읽어냈고 명칭이 지워진 기둥모양의 조각과 「피안의 눈」이라는 해석이 첨부된 조각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공원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고목이 마로니에나무라는 사실도 알았다.
 마로니에공원에 다닌 지 얼만데 지금까지도 이들의 존재를 몰랐을까싶은 생각에 허탈감이 들었다.
 난 도대체 뭘 보고 다닌 거지?
 그날 사내가 앉았던, 마로니에나무의 바로 앞, 쓰레기통 옆의 벤치에 앉았다. 아가씨는 커피 두 잔을 들고 『피안의 눈』이라는 조각 옆을 에돌아 남자 쪽으로 급촉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가씨는 옥으로 다듬어낸 조각 같았고 벤치는 노란 색깔의 각목과 철제로 제작되어있었다. 황금빛장식을 한 로마풍의 화려한 가로등은 사치하고 우아했다. 그러나 벌써 그의 기억 속에서는 그 아가씨의 미모가 희미하게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그림을 꺼내 보지 않고서는, 추억만으로는 퇴색한 기억을 복원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명진은 급급히 가방 안을 뒤졌다. 스케치북을 꺼내어 그림을 그려야 했다. 오늘은 테니스라켓과 공을 판매하는 노점상할머니를 스케치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가방 안을 샅샅이 뒤적여도 그가 찾는 스케치북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분명 이안에 있었는데.
 스케치북은 항상 가방 안에 휴대하고 다녔다. 그의 공식직업은 S대국문과 교수였지만 여유시간은 대체로 그림을 취미로 보내고 있었다. 유명한 화가였던 아버지는 자식이 화가가 되기를 기대하여 어려서부터 명진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그러나 명진의 꿈은 작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는 아들의 입장이라 싫은 대로 아버지의 미술 강의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배워 둔 미술공부가 취미생활의 의미 있는 내용으로 될 줄까지는 몰랐었다.
 아무튼 스케치북이 없으니 오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셈 이다.
 아내가 한 짓이 분명하다. 아내는 언제부턴가 무지한 시골아낙처럼 쩍하면 남편의 호주머니며 가방이며 소지품들을 뒤져댔다. 아니, 언제부턴가가 아니라 현주가 S대학에 강사로 발령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그림조차도 아내의 감시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스케치에 그려진 희미한 윤곽을 판독전문가처럼 깐깐히 들여다보곤 했다.
 “아니 정말 이러기야? 뒤지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 그런데 보고는 제자리에 놓아두어야 할 거 아니야.”
 명진은 중얼거리며 가방을 들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에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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