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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스크랩] 현대철학의 흐름

by 8866 2007. 4. 6.

 

현대철학의 흐름

 

강영계

 

 

 

 

  헤겔은 자신의 변증법을 역사철학, 법철학, 종교철학, 미학 등 철학의 모든 분야의 원리로 제시했다. 그는 세계를 종전과 달리 동적 체계로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거대한 관념론적 정신의 변증법 체계에 의해서 파악하고자 했다.

헤겔 철학은 그로부터 현대의 다양한 경향의 철학들이 나을 수 있었던 거대한 호수였다. 그의 철학 이념은 19세기와 20세기에 특히 정치철학적인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철학의 핵심원리는 헤겔로부터 빌려온 변증법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헤겔 철학을 받아들였고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형이상학적 및 종교적인 견지에서 헤겔 철학을 받아들였다. 구소련에서는 민족적, 문화적인 입장에서 헤겔 철학을 수용했다.

헤겔 철학은 철학 이외에도 법학, 역사학, 사회학과 같은 개별 과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듀이, 마르크스 등 현대의 철학 경향들은 대부분 반헤겔적 또는 친헤겔적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헤겔 철학으로부터 현대 철학이 흘러나왔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현대 철학을 두루 살펴봄으로써, 현대의 특징인 세계 위기에 철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현대에는 철학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나아가 현대의 인간에게 철학은 어떤 의미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 보기로 하자.

앞에서 나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 철학을 비교적 길게 설명했다. 헤겔은 독일 관념론을 집대성하여 거대한 체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헤겔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은 헤겔 철학이 극단적인 관념에 흐르고 구체적인 현실과 생생한 삶을 등한히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헤겔로부터 특정한 방법을 빌려왔으면서도 헤겔의 관념론을 반박했다.

서양 철학은 특히 20세기에 접어들면서 19세기까지 지녔던 영향력과 관심을 잃게 되었다. 물론 19세기 중반부터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이 나타나 헤겔 철학에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철학의 관심과 영향이 극도로 쇠퇴해 철학 자체가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다. 이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경향들의 철학적 움직임이 활발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니체는 삶과 세계에 대한 심원하고도 광범위한 안목과 문제점들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가지고 새로운 삶의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삶의 의미를 결단으로서의 실존에서 구하려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삶과 세계의 본질을 비합리적으로 꿈틀거리는 삶의 의지에서 찾고자 했으나, 이러한 의지는 맹목적인 것으로서 윤리적으로는 고통에 불과하다고 보아, 궁극적으로 열반에 도달하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딜타이는 현대의 삶이 소유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석학적 입장에서 풀어 보려고 했다.

지금까지 예로 든 철학자들은 철학의 위기를 절박하게 느끼고 사유했기 때문에 단순히 관념의 지평에만 머물지 않았다. 구체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추구했으며, 삶의 상황으로서의 세계 위기를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로 보았다.

니 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은 종교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당시의 철학의 위치를 대변한다. 나아가 그 말은 철학의 관심과 영향 곧 철학의 역할에 관해서도 암시를 던져 준다. 헤겔적 체계에 의해서 확립된 이성과 정신으로 완전히 무장한 관념 철학은 더 이상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삶의 근원적 측면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존재 방식이 종래의 철학이 해석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니체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반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철학은 그 이전 세기의 사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질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완강한 반발과 투쟁이 라고 말할 수 있다.

엄청나게 거대한 이성 및 정신의 체계는 19세기 철학의 특징이었다. 그러한 전통은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을 거쳐서 독일의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가 매우 깊은 것이었다. 이러한 합리적 체계의 사고방식은 일차원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 자체 안에 이미 서구 문화의 위기라는 싹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는 이성적, 형식적, 절대적인 관념의 체계를 파괴하고 유기적인 삶과 실존의 기치를 내걸었다. 또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바탕으로 헤겔의 역사철학을 방향 전환시켜, 물질의 자기 전개를 역사 과정으로 보았다. 한편, 엄밀한 자연과학의 훈련을 수단으로 삼은 실증주의의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학적 진리를 추구하려 했다. 프로이트는 심층심리학 이론으로써 의식의 새로운 영역을 제시해 전통적 사유에 일대 경종을 울렸으며,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고전물리학적 시간 개념에 혁명적인 변혁을 가져왔다.

엄밀하게 학적인 의미에서 현대 철학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경향으로는 19세기 말의 '학문비판'을 꼽을 수 있다. 이 경향은 지금까지 역학이 근거로 삼았던 수학적 자연 과학의 입장을 유지하지 않고 학문의 독단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인식론적 분석을 핵심으로 취한다. 이 경향은 학문의 정립 근거를 결코 합리적 체계와 형식적 범주에 의해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전하며 변화하는 탐구 정신과 가치 보장을 근거로, 사유 모델과 개념들의 존재 구조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학문 비판의 목적이었다.

독일에서는 이미 19세기에 헬름홀츠, 키르히호프 등이, 오스트리아에서는 마흐가 이러한 경향을 대변했다. 또 프랑스에서도 학문 비판의 경향이 강하게 일어나, 과학 일반에 대한 비판이 활발해졌다. 포앙카레, 루지에 등이 이 경향을 대변했다.

영국에서는 화이트헤드, 러셀 등에 의해서 수학과 자연과학의 기초에 대한 비판이 활발히 진행되었다.이들은 인간의 인식 가능성이 어디까지 현실화될 수 있고 어떤 점에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날카롭게 물었다. 이들이 제기하는 물음은 미래의 새로운 문제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지닐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일반 과학 전체에 대한 비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후설로부터 출발하는 현상학이다. 후설은 의식과 체험의 영역인 현상에 관한 엄밀한 탐구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철학의 자기 정립 및 근거의 불확실성에 대한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아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을 확립하고자 했다. 후설의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의 개별 과학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상당수의 개별 학문들은 탐구 방법으로서 현상학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주어진 현상으로서의 구체적 체험 내용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것이 현상학의 주된 방법인데, 이러한 방법을 근거로 그것을 한층 더 확장시켜서 가치 문제와 존재 문제에까지 논의를 이어 나간 사람들이 셸러와 하르트만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정신과학(문화과학 또는 인문과학)의 근거 정립이 커다란 문제였다. 신칸트학파의 빈델반트, 리케르트 등은 정신과학의 근거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딜타이는 정신과학 자체의 체계와 이 체계의 고유한 이해에 관해서 심도있게 탐구했다.

현대의 가치 문제는 사회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탐구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니체는 가치의 전도를 주장하고 인간의 약동하는 삶에 고유한 '힘에의 의지'가 바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에 비해 후설, 셸러, 하르트만 등은 정신적이며 윤리적인 삶의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의 본질과 구조를 살피려고 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제임스, 듀이 등의 실용주의가 철학을 대변했다. 실용주의는 앎과 진리의 개념을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기능으로 파악했다. 실용주의는 특히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 적용되어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용주의는 유럽의 철학 전통과 미국의 서부 개척 정신이 결합된 특수한 형태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말할 수 있다. 비판철학과 분석철학이 그것이다. 비판철학은 선험적 의식의 반성을 특징으로 가지며 삶의 철학 내지 실존철학의 형태를 가진다. 딜타이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은 비판철학의 경향을 지닌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은 비록 정치학, 사회학 및 정신분석학적인 차원에서 철학의 문제들을 전개해 나갈지라도 여전히 삶의 철학과 실존철학에 대해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분석철학은 과학철학, 일상 언어철학, 기호 논리학 등 취급하는 내용에 따라서 입장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실제적인 경험과 검증 및 그것에 의한 언어 분석 그리고 명제의 참거짓에 대한 판단 등의 공통된 방법을 가지고 있다.

물 론 이러한 경향과는 약간 다르게 다시금 전통 철학의 주제들에 접근해 삶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베르그송, 하르트만 등에 의해서 수행되어 왔다. 이들은 삶의 본질을 종전과 같이 철학의 특정한 한 분야로부터가 아니라 철학의 전체 분야들의 종합적 측면으로부터 탐구함으로써 삶과 세계의 본질 및 구조를 해명하려고 했다. 특히 셸러가 대변하는 철학적 인간학은 종합적 관점에서 인간을 밝히고자 했다. 개별 과학으로서의 정신과학이나 자연과학은 인간의 삶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연구하는 데 비해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삶을 유기적 통일성과 전체성으로 그리고 세계를 구체적으로 직접 체험하는 주체로 탐구한다. 철학적 인간학이 인간의 삶을 탐구하면서 제기한 것은 절대자, 이성, 이념, 영원성 등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제한된 인간 존재가 가지는 고유한 체험의 구조 및 그것의 의미였다.

야스퍼스와 하이데거는 철학적 인간학이 제기한 문제를 한층 더 심도 있게 탐구했다. 야스퍼스는 삶의 상황을 좌절로 보고 이 좌절 속에서 현존재가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실존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세상은 암호로 가득 차 있다. 암호는 존재 자체 또는 포괄자(신적인)의 암호이고 삶 자체의 암호이다. 야스퍼스가 말하는 좌절은 암호 해독을 위한 하나의 실존적 계기이다. 하이데거 철학의 시발점은 일상성으로서의 현존재이다. 현존재는 은폐된 자이고 비진리이다. 이 가면의 세계가 비은폐된 세계의 진리 및 개방된 것으로 이행할 때 실존의 의미가 밝혀진다. 마르크스의 사회변혁을 시도하는 철학적 경향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된 형태로 전개되어 왔는데 이 역시 비판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호르크하이머로부터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비록 마르크스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노동자에 의한 혁명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비판 작업과 의사 소통에 의해서 사회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판 철학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 철학의 대체적 경향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경향을 눈여겨봄으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통찰하게 된다. 우선, 현대라는 상황은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특정한 사유의 방향에서 현대의 상황을 한 눈에 명백하게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현대라는 시점에서 인간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상황들이 지배적이므로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방향을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무수히 많은 관점에서 수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삶과 세계의 본질과 구조를 해명하고 정립하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삶의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도식화된 무기적 집단화와 기능화에 시달리고 있다.

철학의 뜻은 '철학'이라는 고정된 형식적 개념이 아니라 '철학한다'는 유기적, 통적 개념에서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의 참뜻은 삶과 세계를 해석하면서 동시에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과연 철학은 소멸되어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때 비로소 철학은 새로운 힘을 가지고 우리의 존재와 삶의 역동적인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이다.

 

 


1. 삶의 철학

1) 쇼펜하워


쇼펜하우어가 삶에의 의지를, 니체가 힘에의 의지를 형이상학적 원리로 삼았다면, 베르그송은 '삶의 약진'을 핵심으로 하는 생명을 형이상학적 원리로 고양했다.

쇼 펜하우어(1788~1860)는 헤겔의 형식적이며 체계적인 변증법적 관념론의 철학을 허풍선이의 철학이라고 맹공하면서 비합리주의적 경향의 삶의 철학을 정초했다. 그는 피히테, 셸링, 헤겔 등의 철학이 관념에만 몰두하는 사변철학이라고 보고 생동하는 삶의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



1)허무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플라톤, 칸트 그리고 인도 철학의 영향을 보여주면서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현상과 물 자체의 이원론을 받아들이면서도 물 자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존재의 근거'인 의지가 물 자체라고 본다. 통일적인 세계 의지는 곧 '삶에의 의지'이며 이것이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이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해당한다. '삶에의 의지'는 합리적이며 목적론적인 종전의 이성이나 정신 또는 신 등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으로서, 꿈틀거리는 생명력 자체이다.

쇼펜하우어는 무기적 자연(무기물)과 유기적 자연(생명체)에서 의지는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본다. 유기적 자연에서 의지는 의식으로 고양되며,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 의지는 지성에 의해 표상으로 전개된다. 칸트는 감성 형식과 오성 형식에 의해서 파악되는 세계를 현상이라고 했다. 칸트의 현상은 쇼펜하우어의 표상에 해당된다. 쇼펜하우어는 표상 세계의 모든 변화는 인과율의 원리에 따라서 일어난다고 본다. 그러나 나 자신과 세계의 존재 근거는 의지이다. 무기적 자연에 있어서 의지는 맹목적이다. 쇼펜하우어는 유기적 자연의 기초를 무기적 자연으로 보기 때문에 의지의 기본 형태는 혼돈에 찬 무이성적 의지이다. 맹목적 의지는 결국 윤리적 측면에서 전체의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혼돈에 찬 의지로 인해 고통과 권태라는 두 가지 악령이 삶을 물들인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권태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혼돈에 찬 의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지의 극복에는 소극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자세가 있다고 본다.

쇼펜하우어가 의지의 본질을 맹목적인 것, 혼돈에 찬 것으로 보면서 그것이 윤리적으로 고통과 권태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이다. 또한 의지의 본질을 혼돈에 찬 것이라고 말하면서 의지를 극복하려는 것 역시 모순을 범한다. 우선 소극적인 의지 극복은 무관심한 직관적 미적 고찰에 의해서 가능하다. 인간 주관은 순수한 플라톤적 이데아를 직관하면서 의지의 욕망을 망각하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또 자살에 의해서 의지를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살은 신체만 소멸시키고 의지는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역시 적극적인 방책이 될 수 없다.

적극적인 의지 극복 방법은 '열반'에 의해서 가능하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삶에서 완전히 멀리하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필요를 침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영원한 정적인 열반에서 비로소 의지를 극복한 성자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의지의 전적인 부정인 허무에서 비로소 의지의 극복이 가능하다. 고통과 권태로운 삶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삶의 뿌리인 의지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를 기초로 한 삶의 철학은 후에 니체, 바그너, 헵벨 그리고 현대의 호르크하이머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비록 그의 사상이 체계적으로 비약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비합리주의적이며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를 삶과 세계의 근거로 본 그의 사상은 고정된 형식적 세계관을 파괴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2) 니체

<힘에의 의지와 초인을 믿은 니체>


니체 (1844~1900)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과학적 생물학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삶의 의지의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의 생동감 없는 합리적, 관념적인 체계의 철학을 과감히 해체하고자 했다. 형식주의를 붕괴시키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니체를 자기들의 선구자로 여기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니체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현대 사상의 전환점을 장식한 사상가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현대 초기까지의 세계관을 전도시킨 점이다. 이들은 인간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종래의 고정된 형식주의를 타파해 버림으로써 우리들에게 은폐된 것 그리고 고정된 이론이 아니라 생동하는 실천과 실천에 걸맞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들과 공통된 입장을 유지하면서 특히 니체는 관념론 및 형이상학과 기독교에 의해 채색된 염세주의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가치의 전도를 꾀함으로써 우리들에게 초인 사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형식적 이성주의를 타파하고자 한 노력은 마르크스를 위시해서 베르그송,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현대 철학자들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철학은 더 이상 세계를 해석할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마르크스), 삶을 이론에 의해 형식적으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 삶을 순수 지속으로서 직관해야 한다는 견해(베르그송), 계몽 변증법에 의해서 도구 이성만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실천적 부정 변증법에 의해서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은 모두 이성적 형식주의를 타파하려는 시도들이다.

니체 철학은 문명 비판의 특징을 가지는데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철학이 소크라테스주의가 대변하는 형식적 이성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전통형이상학이나 단순한 관념론은 니체에 의하면 염세주의이다. 니체에 의하면 "사람은 확고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 되며, 용감하게 자신의 두 다리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전혀 사랑할 수 없다." 니체는 형식적, 고정적인 소크라테스주의와 기독교도덕을 가면 또는 허구라고 하여 그것들을 배격하고 전도시키고자 한다.

니체는 형식주의적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를 디오니소스적 염세주의에 의해서, 곧 부정의 부정에 의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결국 니체는 삶을 긍정한다. 니체는 타락한 본능과 최고의 긍정을 대립시킨다. 타락한 본능의 예들은 기독교, 소크라테스주의이며 이것들은 관념론의 형태를 가진다. 니체는 초기에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에서 쇼펜하우어가 칸트를 넘어서서 불가지론을 극복하고 '삶에의 의지'를 제시한 것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말기에 와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관념론으로 낙인찍고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형식주의적 염세주의와 타락한 본능에 속한다고 본다. 니체는 부정의 부정에 의해 최고의 긍정을 찾는다.

고통과 죄와 현존재의 낯설고 의문스러운 모든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긍정하는 것이 최고의 긍정이다. 삶에 대한 긍정을 가장 잘 제시해주는 것은 그리스 비극이다. 그리스 비극은 형식주의를 붕괴하고 동적 디오니소스와 정적인 아폴론의 조화를 창조함으로써 역동적인 삶 자체를 표현한다. 니체가 염세주의의 극복이나 삶에의 긍정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운명애와 일맥상통한다. "자. 일곱 번째 넘어졌으면 여덟 번째는 다시 일어나라"는 니체의 외침은 삶에 대한 긍정과 운명애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니체 철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영겁회귀이다. "영겁회귀는 만물의 무조건적이며 무한한 반복된 순환 운동이다"라는 니체의 말에서 세계는 양적으로는 동일하게 제한되어 있지만 질적으로는 무한한 운동과 변화 과정에 있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니체의 영겁회귀는 '동일한 것의 영겁회귀'라고 일컬어진다. 니체는 "보편적 해결과 불완전에 대한 경직된 감정에 대립해 나는 영겁회귀를 주장한다"라고 말한다.

니체의 영겁회귀 사상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 사상과 비슷하고 또한 불교의 '제행무상'과도 유사하며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에도 근접한다.

니 체는 결국 모든 가치들을 전도시킴으로써 초인을 정립하고자 한다. 니체는 스스로 '비도덕자'가 되어 무화의 쾌락을 맛보고자 하며 모든 가치들의 전도를 통해 최고의 자기사려를 획득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과 악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우선 파괴자가 되어 가치들을 붕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니체는 미래의 철학, 곧 낙관적인 세계관을 구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초인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모든 가치들의 전도를 제시했다. 그것은 형식적이며 관습적인 것을 반박하고 생동감 넘치는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고 더 나아가서 힘에의 의지의 관점에서 기독교 도덕과 소크라테스주의의 허구를 파괴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시된 것이다.

니체는 특히 <이 사람을 보라>에서 관념론과 기독교를 파괴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염세주의를 극복함으로써 운명애에 의해 삶을 긍정하고 모든 가치들을 전도해 영겁회귀를 인정하고 힘에의 의지를 긍정함으로써 초인을 정립한다. 이와 같은 철학적 주제들의 전개는 니체의 전체 저술들에서 일목요연하게 전개되고 있다. 니체의 초인은 실존적 인간을 말한다. 초인의 본질은 힘에의 의지이다.

니체는 현대 문명의 허구성과 제한성 및 일차원적 단편성을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창조적 인간상과 인간의 본질을 창출해 열린 문명에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서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러한 점에서 하이데거를 비롯해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인 푸코, 리오타르, 데리다 등은 니체의 해체주의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3) 베르그송

<삶의 창조적 진화>


베르그송(1859~1941)은 특히 생명의 창조적이며 유동적인 특징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생명(삶)을 형이상학적 원리로까지 끌어올렸다. 쇼펜하우어가 삶에의 의지를, 니체가 힘에의 의지를 형이상학적 원리로 삼았다면, 베르그송은 '삶의 약진'을 핵심으로 하는 생명을 형이상학적 원리로 고양했다. 이와 유사한 입장을 취한 또 하나의 철학자는 짐멜이다.

베르그송은 삶을 창조적 활동성 자체로 보았다. 기계론이나 목적론은 고정된 형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삶 자체를 결코 붙잡을 수 없다. 삶은 정지되어 있지 않으며 미리 결정된 일정한 계획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매순간 스스로를 새롭게 창조한다. 베르그송은 삶이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근원적 힘을 삶의 약진(elan vital)이라고 부른다.

삶의 약진은 스스로 전개되어 본능과 지성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기능으로 된다. 본능은 현실에 직접 적응하기는 해도 의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 대상을 알지 못한다. 지성은 의식을 가지긴 해도 현실을 공간화하고 간접적 상징 개념에 의해서 현실을 파악한다. 따라서 지성은 현실 자체와 삶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삶의 피상적 단편만을 이해한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철학은 본능에 의존해서도 안되고 지성에 의존해서도 안되며 오직 내적 직관에 의해서 삶의 본질인 순수 지속을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베르그송은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롯해 전통 철학의 형식성을 비판하고 삶의 약진에 의해서 전개되는 순수 지속으로서의 삶을 직관에 의해서 파악하는 것이 참다운 철학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는 삶이 창조적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견해는 유기체 진화설을 근거로 삼아 성립한 것이다. 베르그송의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은 매우 예리하고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직관 이론은 다분히 신비주의 철학의 색채를 띠고 있다.



2. 후설

<사태 자체로 탐구의 눈을 돌린 후설>


후설에게 있어서 의식의 본질과 구조는 바로 '사태 자체'이다. 그러므로 후설의 현상학은 사태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엄밀하고 보편적인 기초학으로서의 철학을 확립하고자 한다.

오 늘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 방법론으로 널리 채택하고 있는 현상학의 창시자는 후설이다. 후설이 현상학을 창시하게 된 동기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후설은 철학을 세계관적 전제 또는 개인의 특별한 성향을 떠나서 엄밀학이나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을 구축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그는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논리학 등 모든 철학 분과의 기초학으로서 선천적 학문을 정립하고자 한다. 세번째로 그는 이 선천적 학문을 직접 우리의 직관에 주어지는 본질에서 찾으려고 하고 칸트처럼 우리의 인식 형식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후설은 철학과 실질적 문화 내용의 거리를 극복하고 철학에 실질적인 것을 부여하려고 한다.

후설이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식 현상이다. 후설은 종래의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며 나아가서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도 극복하고자 한다. 후설의 현상은 칸트 식의 인식된 대상으로서의 현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헤겔 식의 절대정신의 전개로서의 현상도 아니다. 후설의 현상은 의식하는 의식과 의식된 것을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의식의 본질과 구조는 바로 '사태 자체'이다. 그러므로 후설의 현상학은 사태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엄밀하고 보편적인 기초학으로서의 철학을 확립하고자 한다.

후설은 의식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매우 정교하게 인식론적 논리적으로 의식 현상을 탐구하기 때문에, 그의 탐구의 전개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적인 번거로움에 빠져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의식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면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엄밀하고 보편적인 철학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후설의 생각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 것은 형상적 환원이고 두 번째 것은 선험적 환원이다. 후설은 이들 두 가지 환원을 합해서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른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

우선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는 방법을 볼 것 같으면 그것은 소박한 사고방식을 동반하는 경험이다. 이 경험 안에는 시간적, 공간적인 사실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편견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 사실들을 괄호 안에 넣고 판단 중지(epoche)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형상적 환원에 의해서 종래의 형이상학적 세계와 경험적 객관 대상에 대해서 판단을 중지하고 의식과 의식 대상을 기술할 수 있다. 즉 형상적 환원은 특정한 개별자가 아니라 의식의 본질을 기술한다.

판단 중지에 의해서 우리는 종래의 형이상학이 자명한 것으로 주장하던 신, 자아, 논리 법칙 등의 존재에 대한 판단을 중지할 뿐 아니라 경험적인 객관 대상들에 대해서도 판단을 중지한다. 판단 중지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유사한 것 같지만 전적으로 서로 다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들을 의심한 결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의 제1원리를 이끌어 내지만, 후설을 의심하지도 않고 증명하지도 않으면서 전통적 사고의 대상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다. 우리는 흔히 신, 자아, 세계 등을 믿는데 후설은 판단 중지에 의해 그러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중지하고 그러한 것들을 믿는 의식을 통찰할 것을 요구한다.

형상적 환원의 다음 단계는 선험적 환원이다. 선험적 환원에서는 내재적 세계로서의 순수 의식의 영역이 발견된다. 의식은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의식의 본질은 지향성이다. 순수 의식의 지향성은 의식하는 의식과 의식되는 의식의 구조를 소유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종래의 인식론과 달리 의식 자체를 엄밀히 분석함으로써 의식의 본질과 구조를 탐구하는 후설의 고유한 연구 태도를 반영한다. 후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데카르트의 합리론, 브렌타노의 기술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고유한 현상학을 체계화한다. 물론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및 칸트가 후설에게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후설 이후 현상학파에 속하는 많은 학자들은 현상학적 방법에 의해서 철학의 엄밀한 형식과 함께 풍부한 내용까지도 획득하고자 했다. 후설 이전까지는 신칸트학파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학문의 인식 가능성 그리고 선험적 조건으로서의 인식 형식이 중요한 철학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말하자면 내용이 결여되어 있었다. 현상학자들은 학문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해 분석하고 기술하고자 했다. 셸러와 하이데거가 가장 대표적인 현상학자들이다.

셸러는 철학적 인간학의 입장을 대변하지만 삶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방법론적으로는 현상학적 직관주의의 태도를 취한다. 셸러는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 윤리학>에서 칸트의 형식주의적 윤리학을 반대하고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가치 질서의 객관성과 선천성을 논증함으로써 실질적인 가치 윤리학을 성립시키려고 한다. 또한 셸러는 모든 형태의 지식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지식의 사회적 조건을 논함으로써 지식 사회학을 정초하려고 한다. 특히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해명하고 인간과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와의 관계 및 인간의 지위 등을 탐구하는 철학적 인간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은 후설의 현상학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삶은 삶 자체로부터만 해석 가능하다는 딜타이의 해석학적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은 나아가서 참다운 존재는 유한하고 개별적인 단독자일 뿐이라고 하는 실존주의를 기초 체험으로 택한다.

하이데거는 일상성 속에 타락해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인간 현존재를 분석함으로써 결단에 의해서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하고 현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여기에서 그의 실존의 개념이 드러난다. 후설의 현상학은 셸러, 하이데거뿐만 아니라 메를로 퐁티, 하버마스 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논리학, 윤리학, 미학, 사회학, 법학, 교육학 등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실존철학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본질 철학은 인간을 탐구할 때 인간이 '무엇'인지를 탐구함에 비해, 실존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야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실존의 문제는 다른 어떤 존재자도 아니고 오직 인간에게만 일어난다. 실존주의는 존재나 존재자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탐구 과제로 삼는다. 전통적 서양 철학은 주로 본질의 문제를 탐구했음에 비해 실존주의는 실존의 문제를 탐구한다. 본질철학은 인간을 탐구할 때 인간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데 비해 실존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야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본질철학은 인간의 본질(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거로서의 이성이나 정신)을 탐구함에 비해 실존철학은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 방식에 대해서 물음을 제기한다.



1)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단 앞에 선 키에르케고르>


키 에르케고르(1813~1855)에 의하면 헤겔의 변증법은 양적 변증법에 불과하고 자신의 변증법은 질적 변증법이다.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은 형식주의에 빠져 있으므로 양적 변증법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변증법이 양을 극복하고 비약을 포함하기 때문에 질적 변증법이라고 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각 단계는 특정한 실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미적 실존의 단계이다. 돈 주앙의 삶이 그것을 대변한다. 돈 주앙은 오직 향락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다. 돈 주앙은 한 가지 일에 곧 싫증을 내고 끊임없이 새로운 향락의 대상을 따라 다닌다. 이 단계에서 흔히 사람은 본래의 자기를 상실한다.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 실존은 미적 실존으로부터의 비약이다. 이 단계는 성실한 결혼 생활에 어울린다. 서로 다른 성의 남녀가 만나 엄숙한 결혼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며 사랑하지만 사랑은 습관화되어 권태를 초래한다. 부부는 권태를 탈피하기 위해서 결혼 당시의 황홀한 사랑으로 되돌아와서 사랑을 유지하며 서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나 항상 후회와 오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실존은 윤리적 실존으로부터의 비약이다. 종교적 실존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맺어진 생활을 영위한다. 영원한 하느님은 그리스도라는 인간 존재에 의해 현실화된다. 그리스도는 영원이지만 현실의 시간상 제한 받기 때문에 타락의 가능성이다. 그렇지만 영원한 시간을 소유하기 때문에 신앙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키에르케고르의 역설적인 실존적 의미가 성립한다. 신이면서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삼음으로써 인간은 종교적 실존자가 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사상의 출발점은 자기이다. 그의 자아는 불안을 안고 있다. 이 불안으로부터 하느님이 요청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하느님이 은폐되어 있으므로 자아는 불안하다. 인간은 불안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구하고 하느님 안에서 본래적 자기로서 구원될 수 있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앞에 항상 단독자로 선다.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의 좌절로부터 종교에의 비약을 수행하기 때문에 종교적 실존에서 인간의 참다운 실존적 의미를 발견한다.



2) 야스퍼스

< 암호 해독과 야스퍼스>


야스퍼스는 현존재 분석을 통해서 실존철학의 사유를 밝히고자 한 독일의 대표적 실존철학자이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했음에 비해, 야스퍼스는 유태인 부인과 이혼하면 교수직을 계속 지녀도 좋다는 나치의 지시를 거부하여 교수직을 버리고 부인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했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적 사유에 의해 인간은 참다운 자기 자신을 획득한다. 실존적 사유는 개별 대상에 대한 인식을 초월해 자신의 자유에 호소함으로써 초월자(포괄자)를 만나고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을 위한 무조건적 행위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야스퍼스의 주장이다.

야스퍼스의 실존은 개별 대상을 초월하는 형이상학적 사유에 의해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인간 현존재를 일컫는다. 우리들 인간은 누구나 고통, 우연, 죄, 죽음 등의 한계 상황에 던져져 있으며 그 앞에서 항상 좌절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사유는 개별적 대상에 대한 사유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것은 한계 상황과 아울러 자신의 무제약성, 곧 자유를 조명한다. 형이상학적 사유는 초월자의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현존재 인간의 실존을 증명한다.

인간 현존재는 고통, 우연, 죄, 죽음 등의 한계 상황에 처하게 되면 세계 과정의 모순과 파괴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한계 상황은 없다가 있고 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현존재 인간이 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야스퍼스는 인간의 가능적 실존은 한계 상황에 처해 초월자의 암호를 해독할 때 비로소 현실적 실존이 된다고 말한다.

야 스퍼스의 실존은 자신의 자유를 구현하는 자유로운 인간 존재이다. 인간 현존재가 한계 상황에 처해 좌절로 인해 고뇌하면서 드디어는 초월자의 암호를 해독할 때 인간은 각성적 진단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각성적 진단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회상하게 하는 작업이다.

각성적 진단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나는 염세주의적 경향이다. 즉 인간의 역사는 자유롭게 되려고 하는 헛된 시도라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비록 현실적이라고 할지라도 무의미하며 매순간 좌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수면 상태의 현존재 중에서 우선 자연적 현존재를 다음으로는 기술적 현존재를 말할 수 있다. 자연적 현존재는 무의미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이며, 기술적 현존재는 단지 수단적 과학 기술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양자는 모두 인간의 소멸과 종말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뜻하지 않는다.

각성적 진단은 또 다른 한편으로 낙관적 경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즉 몰락과 좌절이라는 염세주의의 절정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기 존재의 원천성을 통찰한다. 인간 현존재는 세계의 모든 것들이 암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각성한다. 불가피하게 여겨지는 한계 상황은 모두가 암호에 불과하다. 암호를 모두 풀고 나면 초월자(포괄자)와 대면해 있는 자유로운 자기를 보게 된다. 야스퍼스는 현존재 인간이 암호를 해독해 초월자와 대면하는 것을 일컬어 초월자를 향한 실존의 비약이라고 본다.

야스퍼스는 후기의 대표 저술 <이성과 실존>에서 비대상적, 초월적 존재를 포괄자라고 부른다. 포괄자는 우선 주관적 존재로서의 포괄자와 객관 존재로서의 포괄자로 구분된다. 주관적 포괄자는 다시금 내재적 포괄자(현존재, 의식 일반, 정신)와 이것들의 바탕인 실존으로 구분된다. 객관적 포괄자는 세계와 포괄자 자체인 초월자로 구분된다. 이들 모든 포괄자를 결합하는 것이 이성이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이성에 의해서 실존이 해명될 수 있고 또 실존에 의해서 이성은 내용을 가질 수 있다. 각성적 진단은 이성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하며 인간 현존재는 각성적 진단에 의해서 주관적 포괄자와 객관적 포괄자 그리고 궁극적으로 초월자의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결국 실존으로부터 초월자로의 비약을 성취할 수 있다.



3) 하이데거

< 일상성으로부터 실존으로 향하는 하이데거>


하 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과 딜타이의 해석학을 자신의 철학적 방법으로 채택해 자신의 고유한 형이상학 내지 존재론을 정립한 현대 독일 철학의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나치에 협조함으로써 오늘날 인간 하이데거와 그의 사상이 과연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을 가장 심원하고 종합적으로 분석, 진단함으로써 삶과 세계의 의미를 해명한 그의 철학적 작업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이데거 에 의하면 '일상성'을 특징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바로 현존재이다. 현존재인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분위기를 느끼면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현존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있다. 현존재 인간은 자기가 아닌 영역, 곧 세계 속에 있는 세계 내 존재이다.

현존재는 염려하는 것의 전체성으로서 언제나, 기구들, 즉 재봉틀, 차량, 기계 등을 가까이에 가지고 있다. 각각의 기구는 현존재가 활동하는 목적을 지시한다. 현존재는 기구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때의 염려는 동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현존재는 가까이 있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의미(실존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만일 기구들에 대한 염려로부터 현존재가 자신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단지 대상적 의미만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실존의 특징은 현존재의 본질과 아울러 현존재의 근원에 있다. 이러한 실존(자기 자신이 결단해 존재 근거를 밝히는 현존재 인간)은 인간 현존재의 자기 염려로부터 밝혀진다. 염려는 기구나 대상에 대한 것도 있으나 실존을 해명해 줄 수 있는 염려는 현존재에 앞서서 언제나 있는 염려이다.

현존재 인간은 자기 밖의 기구(대상)에 대해서 염려하고 또한 자신의 본질과 원천에 대해서 염려하기 때문에 '염려'는 세계-내-존재인 현존재 인간의 근거이다. 하이데거는 기구나 사물에 대한 염려를 '고려'라고 부르며 현존재 인간들에게 공동으로 부여되고 있거나 아니면 이웃에 대한 염려를 일컬어 '배려'라고 부른다.

염려는 현존재인 인간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에 대한 염려로 나타날 경우 현존재의 자기 존재가 부각되며 이 자기 존재는 세 가지 위협에 처해 결국 타락하게 된다. 우선 현존재인 인간은 익명의 공동체인 전체성에 종속됨으로써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다음으로 현존재인 인간은 순간적인 일상성에 던져지며, 마지막으로 현존재인 인간은 일상적 활동에 몰두해 타락한다.

하이데거는 공포와 불안을 구분한다. 번개나 호랑이 같은 특정한 대상 앞에서의 두려움은 공포이다. 그러나 고독이나 죽음과 같이 특정대상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이다. 현존재인 인간의 타락은 고유한 존재 가능성의 상실이고, 이러한 상실은 특징 없는 중성적 인간, 일상성으로 던져짐, 타락 등으로 의식된다. 불안은 현존재인 인간으로 하여금 무를 직면하게 한다. 사람들은 불안과 함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모든 인간 현존재는 무, 곧 죽음에 직면해 있으며 따라서 현존재는 '죽음에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은 무의 절정이므로 그것은 우리가 건너뛸 수 없는 현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근원적 가능성이다. 현존재인 인간이 '죽음에의 존재'를 의식할 때 현존재는 죄에 직면한다. 현존재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기획하고 이때 염려는 양심의 형태를 소유하게 된다. 양심은 현존재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결단하게 하며 결단성에 의해서 염려는 결국 자신의 고유성에 도달한다.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의 본질을 염려에서 찾는데 염려는 시간성과 아울러 죽음에의 존재로 증명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은 '죽음에의 존재'이다. 불안은 죽음에의 존재에 직면할 때 생기며 이러한 불안 속에서 현존재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앞서서 결단할 때 비로소 실존은 가능해진다. 결국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며 이러한 자각에 의해서 현존재가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고 그때 비로소 현존재 인간과 세계의 근원인 '있음'(존재)이 진리로서 드러난다고 본다.



4)  샤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 사르트르>


우 리는 실존주의라는 말과 실존주의 철학이라는 말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존주의는 현존재 인간의 자유와 자기 결단을 실천적으로 성취하려는 경향을 일컬으며 실존주의 철학은 실존주의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작업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키에르케고르나 니체 등은 실존주의자이며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은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다.

사 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존 사상을 실존주의라는 명칭으로 널리 전파시킨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또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말은 사르트르가 남긴 유명한 말들이다. 사르트르는 한때 하이데거에게서 배웠으며 제2차 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196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얼마 후 공산주의 사상을 버렸다. 그는 <존재와 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등의 철학 저술과 소설, 희곡 등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주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자신의 핵심 사상을 전개한다. 도구 존재의 경우 연필, 시계, 책상 등은 제작자의 두뇌 안에 그것에 대한 틀(무엇임), 곧 본질이 먼저 있은 다음에 만들어져서 존재하기 때문에, 도구 존재에 있어서는 본질(무엇임)이 존재(있음)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 만일 신이 있어서 신의 생각 속에 인간의 본질이 있은 다음에 인간이 창조되어 존재하게 되었다면 인간에게서도 본질(무엇임 곧 인간다움)이 존재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사르트르는 신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실제로 존재할 뿐이고 실존에 앞서서 본래부터 있는 본질은 없기 때문에 인간은 무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실존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인간 이해를 전개해 나간다.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에서 세계를 의식(정신)과 대상으로 구분하고 또한 후설의 영향 아래에서 의식을 현상학적 지향성이라고 말한다. 의식은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며 어떤 것은 사물 존재이다. 어떤 것은 의식되든 되지 않든 간에 언제나 의식을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에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자체적으로 자신과 밀착되어 존재하는 즉자(en-soi)이다.

그러나 의식은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의식, 곧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가지는 지향성이기 때문에 대자(pour-soi)이다. 자기 아닌 것으로 넘어가는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으로서 자기 자신을 논리부로 내어 던지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해서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이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은 탈자적, 초월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인간 현존재이다.

샤르트르에 의하면 인간 현존재의 운명은 자유이다. 인간은 항상 모든 것을 초월하며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대자이고 무이기 때문에 무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으로부터 자유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들은 자유를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사르트르에 의하면 자유의 근거는 무이기 때문에 자유는 인간의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에 불과하다.

사르트르는 대자로서의 의식과 즉자로서의 사물 존재의 통일을 즉자-대자(en-et-pour-soi)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통일은 오직 관념론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자로서의 의식은 무를 바탕 삼아 항상 자기를 버리고 초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미래에 자신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는 행위는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니고 책임 있는 참여로서의 행동이다.

각 인간의 자기 선택은 전인류의 선택일 것이기 때문에 각자는 책임감을 가지고 공동 사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 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종래의 관념론이나 합리론 등의 본질철학에 대해서 커다란 반성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그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주장은 키에르케고르나 니체의 실존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며 인간의 불변하는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와 책임 및 양심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이냐 하는 현존재 인간의 존재 방식을 해명하고 실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4. 철학적 인간학


자연과학적 인간학과 문화 인류학 및 사회 인류학은 인간의 신체적 특징과 문화적 성과만 탐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에 반대하고 인간 자체의 의미를 묻는 입장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철학적 인간학이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의 자기 인식에 대해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물음이다. 원래 인간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인간학은 생물학의 한 분과로서 인간 신체의 특징들을 탐구하는 자연과학적 인간학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원인류의 두개골 발견 이후 인간학은 인류의 자연사를 체계화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연구에 진화론과 아울러 유전학이 도움을 주었다.

또 한편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민족학 내지 인류학의 분야에 속하는 문화 인류학과 사회 인류학이 발전하였으며 자연과학의 측면이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유형과 특징을 탐구했다. 자연과학적 인간학과 문화 인류학 및 사회 인류학은 인간의 신체적 특징과 문화적 성과만 탐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에 반대하고 인간 자체의 의미를 묻는 입장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철학적 인간학이다.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본질, 인간의 삶의 원리 및 인간의 특수성에 관해서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인간의 본질이 역사 및 사회에서 드러나는 형태, 인간의 삶이 형성하는 문화, 그리고 역사 및 사회와 삶의 관련 구조 등에 대해서도 철학적 인간학은 관심을 가진다. 철학적 인간학이 체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독일의 막스 셸러나 클라게스 등에 의해서이다. 여기서는 셸러와 카시러의 철학적 인간학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막스 셸러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와 막스 셸러>


셸 러는 서구의 인간 유형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서 파악하고자 하며,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세계 개방성을 정신에서 찾으려고 한다. 셸러는 서구의 역사적 성격에 따라서 인간 유형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고찰한다. 이러한 고찰은 인간의 특징 내지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셸러가 말하는 서구의 다섯 가지 인간 유형은 이성적 인간, 종교적 인간, 도구적 인간, 세기말적 인간, 인격적 인간 등이다. 이성적 인간은 서구의 가장 뚜렷한 인간관이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이래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서양에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성적 인간관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구분되는 점을 이성에서 찾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인간의 본질이 있다.

종교적 인간은 유태교, 기독교의 전통을 업고 있다. 인간은 창조주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자이고 죄를 범한 자이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자 신에게 복종하고 귀의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을 대표하는 것은 중세 기독교 철학 일반이며,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칼뱅, 칼 바르트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세 번째 인간 유형은 도구적 인간이다. 인간의 활동은 자기 보존을 목적으로 삼으며,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이 도구적 인간관에서 주장된다. 근대의 자연주의, 실용주의, 실증주의 등은 도구적 인간관을 대변하는 사상들이다. 네 번째 인간 유형은 세기말적 인간인데 이는 퇴폐적 인간이기도 하다. 세기말적 인간관은 인류 역사에 대해서 염세적이며 비관적이다.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는 삶의 근거를 맹목적 의지로 보고 그것에서부터 전개되는 삶과 역사를 병든 것 그리고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다섯 번째 인간 유형은 인격적 인간 내지 미래적 인간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윤리적 존재자로서의 인격이다. 하르트만과 니체가 말하는 미래적 인간은 바로 인격적 인간에 해당한다. 인격적 인간관은 인간의 자율성 및 도덕적 책임을 보장하기 위해서 요청적 무신론의 입장을 가진다.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절대자 신이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다섯 가지 인간 유형은 서양의 역사 발전 과정에 따라서 각각 그리스적, 중세적, 근세적, 세기말적 및 미래적인 성격의 인간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셸러가 이렇듯 다섯 가지 서구의 인간 유형을 역사 전개 과정에 따라서 구분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을 찾기 위함이다. 셸러는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지위>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더 높은 존재의 본질 형식과 아울러 더 낮은 존재의 원리들을 내면에 포함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인간만이 고유하게 소유하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 셸러는 인간을 고등동물로 보는 자연과학적 인간관과 인간을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는 철학적 인간관의 대립을 극복함으로써 유기적 생명체들의 영역 안에 속하면서도 자기만의 고유한 본질을 소유하는 인간의 특징을 해명한다.

인 간은 생물이기 때문에 생물들이 가지는 특징을 모두 소유하면서 동시에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셸러는 네 단계의 원리들이 생물에게 고유하다고 본다. 우선 식물은 감각 충동을 가지는데 여기에서는 감각과 본능이 구분되지 못한다. 감각 충동은 성장과 번식을 가능하게 하는 충동으로서 모든 생물에게 가장 기초적이다. 다음 단계는 본능이고 이것은 타고난 능력을 말한다. 본능은 동물의 설득적 능력이지만 인간은 타 동물에 비해 본능의 힘이 약하다. 세 번째 단계는 연상적 기억이고 이것은 본능의 반복에 의존한다. 동물의 연상 기억은 충동 충족에 종속하지만 인간의 연상 기억은 전통과 함께 형성된다. 네 번째 단계는 실천적 지능이고 원인류와 아울러 인간도 실천적 지능을 소유하고 있다. 셸러에 의하면 이들 네 가지 단계의 본질 형식은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향한 생명체의 특징들을 보여주기는 해도 어떤 것도 인간만이 소유한 본질 형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들 네 가지 본질 형식 이외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분될 수 있는 고유한 본질 형식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개가 정원에 있을 때 개는 정원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적 사고에 의해서 "내가 정원에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정원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다. 인간은 환경을 벗어나서 자신의 내면적 인격에 의해서 정신적으로 환경을 상황으로 만들고 따라서 세계를 개방한다. 인간은 낮은 본질 형식들의 강한 충동을 억제하고 정신적 반성의 힘에 의해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보존해 나간다.



2) 카시러

<상징 형식으로서의 철학>


셸러와 함께 철학적 인간학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겔렌과 포르트만이 있다. 이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과 관련하여 인간의 고유한 특징을 제시했다. 겔렌은 인간을 가리켜서 확정되지 않은 미완성의 존재, 따라서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아, "훈육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겔렌의 인간 이해는 역설적 인간관이다.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허약함과 인간의 가능성이라는 양자의 모순 관계 속에서 인간의 가능성이 문화를 창조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1차적 환경인데, 인간은 본능의 허약함으로 인해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것을, 곧 문화를 창조해 2차적 환경인 문화 안에서 삶을 영위한다. 문화 창조의 능력은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 곧 미완성의 존재, 다시 말해서 훈육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부터 생긴다.

포르트만 역시 카시러나 겔렌과 유사한 관점에서 인간이 생물학적 환경이나 구속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독립해 문화를 창조하는 특징을 소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출생 및 성장 과정이 특이하다고 본다. 그는 우선 발생학적 측면에서 인간은 자궁 외 조기출산을 특징으로 가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소나 코끼리 등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서 임신 기간이 짧다. 그러면서도 성장기간은 다른 포유동물들보다 훨씬 더 길다. 인간의 짧은 임신 기간과 긴 성장기간은 인간이 출생해서 사망할 때까지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학습 존재임을 증명한다. 인간의 세계는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 개방된 세계이다 인간은 결국 제한된 환경, 곧 생물학적 구속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이다.

카시러는 겔렌, 포르트만, 셸러 등과 비슷한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문화를 상징 형식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철학적 인간학을 정립한다. 그는 <상징 형식으로서의 철학>에서 언어, 신화, 예술 및 정치제도를 인간의 삶의 상징 형식으로 보고 인간을 일컬어 상징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카시러에 의하면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하는 것은 너무 좁은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언어나 기호 등의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는 상징 능력의 소유자이다. 모든 생물은 감수 체계와 반응 체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생물이든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며 또한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반응한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생물과 질적으로 다른 것은 인간이 감수 체계 및 반응 체계 이외에 또 다른 고유한 상징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감수 체계와 반응 체계는 외부 자극에 대해서 곧바로 직접 작용하지만, 상징 체계는 인간만이 소유하는 상징의 우주로서 인간은 상징 체계에 의해서 문화를 창조한다.

인간은 언어와 기호 등의 상징 능력을 통해서 자신의 고유한 상징적 세계의 부분들인 신화, 예술, 학문, 종교 등의 영역을 개척해 왔다. 상징 세계는 인간 자체도 아니고 객관적 자연 대상도 아니다. 상징 세계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적인 세계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삶에 고유한 문화 세계이기도 하다.

철학 적 인간학은 근대 이후 자연과학 일변도의 인간관 그리고 유물론적 경향이 강한 실증주의적 인간관 및 기계론적 인간관에 대해서 인간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철학적 인간학은 마르크스주의라든가 독점 자본주의에 의해서 폐쇄적으로 되어 가는 인간의 의미를 '문화창조'의 측면에서 확장시켜 준다는 데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5. 해석학

<삶 자체의 의미를 해석한다>


체험은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현실을 나에게 속한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존재한다. 체험은 사유에 의해 대상이 된다. 딜타이는 체험에 의해 삶의 전체성을 이해하려 한다.

오 늘날 철학을 비롯해 인문, 사회과학에 속하는 문학, 사회학, 교육학, 신학 등이 방법론으로 택하는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가 해석학이다. 해석학(Hermeneutik)이라는 말은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그리스의 혜르메스(Hermes) 신에서 온 것으로서, 그 의미는 '해석하는 방법'이다. 해석학은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에 의해서 철학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1) 딜타이

<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을 이해한 딜타이>


해 석학은 원래 인문과학의 방법 문제와 연관되어 등장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문과학을 탐구하는 방법은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브렌타노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학이나 물리학 또는 천문학 등 자연과학의 방법을 기초로 삼았다. 그 당시에는 인문과학의 고유한 방법이 인정되지 않았다. 19세기 말 빈델반트 등 독일 철학자들에 의해서 인문과학을 탐구하는 고유한 방법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빈델반트는 1894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총장 취임 연설에서 모든 학문을 법칙정립적 과학과 개선기술적 과학 두 가지로 분류했다. 즉 자연과학의 방법은 일정한 법칙을 정립하는 것이고 인문과학(정신과학 또는 문화과학)의 방법은 특수한 개성을 기술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리케르트는 빈델반트가 구분한 두 방법을 보편화하는 방법(자연과학의 방법)과 개성화하는 방법(인문과학의 방법)으로 나누어, 모든 학문을 자연과학과 문화과학으로 구분했다. 그 후 딜타이나 가다머는 문화과학을 일컬어 정신과학이라고 했다. 딜타이는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구분했다. 딜타이에 따르면 정신과학의 특징은 이해하는 방법에 있다.

애초 딜타이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대립하는 정신과학의 방법론으로 해석학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는 후에 삶 자체를 해석학적이라고 말했다. 이해는 정신과학의 방법이기를 떠나서 삶의 가장 본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해 석학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슐라이어마허는 성경 등의 고전을 가장 옳게 이해하기 위한 탐구 방법을 해석법이라고 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평생에 걸쳐서 독일어로 번역한 슐라이어마허는 처음에는 문장의 이해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차츰 이해 자체의 현상에 주목해 이해의 보편적 원리 내지 법칙을 알고자 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이해의 현상을 이해하는 인간의 사유 형성과 언어적 표현의 계기에 의해서 파악하고자 했다.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방법으로서 이해 내지 해석의 개념을 사용한다. 자연은 주관에 대립하는 타자이고, 이 타자의 구조나 체계를 설명함으로써 자연과학이 성립한다. 그러나 정신 세계는 우리가 원자적 요소로 분석할 수 있는 객관 대상이 결코 아니다. 나아가서 정신 세계는 모두 의미와 가치와 구조에 있어서 유기적인 전체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단순히 설명되지 않는다. 정신 세계는 인간의 창조적 표현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때문에 정신과학이 성립할 수 있다.

딜타이에 의하면 삶 자체를 해석학적인 것으로서 내적 및 역사적인 삶의 구조로써 통찰할 경우 삶의 범주들이 드러난다. 체험과 표현과 이해는 삶의 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삶의 범주들이다. 딜타이에 의하면 체험은 다음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체험 개념은 현실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특수한 존재 형식을 말한다. 체험은 마치 지각된 어떤 것 또는 어떤 표상처럼 내 앞에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현실을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내가 현실을 직접 나에게 속한 것으로 가짐으로써 체험은 나에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체험은 사유에서 비로소 대상이 된다." 딜타이는 주관주의에도 그렇다고 객관주의에도 집착하지 않고 체험에 의해서 삶의 전체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체험을 표현하고 또 표현을 이해한다. 따라서 체험과 표현과 이해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순환구조가 가능한 것은 인간의 창조성이 있기 때문이다.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을 한층 더 체계적으로 심화시킨 것이 딜타이이며, 딜타이의 해석학을 자신의 존재론의 관점에서 발전시킨 사람은 하이데거이다.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로서의 실존은 감존성과 함께 이해를 구성한다고 본다. 이해는 인간 현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조이다.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를 구성하는 구조로서 감존성과 이해 그리고 언어를 열거한다.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해석학을 한층 더 확장시키고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2) 가다머

<텍스트를 이해하는 철학적 해석학>


가다머는 인문학의 방법론으로서의 해석학을 거부하고 인간의 이해의 과정으로서의 해석학을 제안한다. 예술과 문학작품의 이해는 예술과 문학작품의 진리를 체험하게 한다.

가다머는 프랑스의 리쾨르와 함께 해석학을 대변하며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이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예술 및 문학 작품의 이해 내지 체험과 연관된 철학적 해석학의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가다머는 학창시절 하이데거와 함께 수학하였으며, 그의 철학적 해석학의 일부 사상은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현상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예술 체험은 진리 체험이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해(Verstehen)이다. 가다머가 말하는 이해는 방법적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실증주의적 자연과학의 실험이나 관찰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해란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을 직접 대할 때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체험 내지 사건이다.

<진리와 방법>에서 가다머는 우리의 예술 체험이 철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예술 작품을 체험할 경우 그것은 바로 진리 체험이기 때문이다. 이해는 세계-내-존재인 현존재 인간의 존재론적 특징이다. 가다머는 딜타이와 마찬가지로 이해는 체험 및 표현과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가다머는 예술 체험을 진리 체험으로 개방함으로써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단지 제한된 의미에서 사용하였던 미학을 철학적 해석학으로 전환시킨다. 칸트의 미적 체험은 쾌감을 소유하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이지만 가다머는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에 대한 우리의 미적 체험은 언어와 대화를 통해서 이해되기 때문에 진리체험으로 확장된다고 본다.


<철학적 해석학>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시간적이며 역사적인 인간 현존재에 대한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해가 가능한 것은 역사적 의식 때문이다. 우리들 인간의 의식은 역사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역사의 결과에 대하여 개방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역사적 및 종교적 텍스트와 예술 작품들이 전통과 함께 전해진 것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이해의 지평을 소유한다.

이 해는 구성적 역할을 담당하는데 가다머의 이해는 딜타이 및 하이데거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매개적이며 순환구조를 가진다. 이해의 순환구조는 악순환이 아니고 구성적이며 창조적이다. 왜냐하면 이해는 텍스트의 부분들과 예술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전체로서의 진리를 계획하고 체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가다머의 해석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유희(das Spiel)이다.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예술 작품을 체험할 때 우리는 마치 어떤 놀이에 흠뻑 빠지는 것처럼 텍스트나 예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특히 가다머는 해석학적 체험의 매개를 언어로 보며 진리 체험은 개별적 경험의식이 아니라 대화로서의 언어 유희에서 성립한다고 한다.

대화를 통해서 타자의 지평과 나의 지평이 만나기 때문에 가다머는 주관주의를 극복한 진리 체험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데리다나 하버마스 등에 의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기는 했어도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적 경향 중의 하나이다.



3) 리쾨르

<은유와 상징을 해석하는 리쾨르>


리쾨르는 현상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를 해석학적 입장에서 이해함으로써 텍스트 개념을 바탕 삼아 체계적인 해석학 이론을 정립하였다. 특히 리쾨르는 은유와 이야기를 해석하여 창조와 사상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탐구과정

현 재 생존하여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들 중 리쾨르는 독일의 가다머와 함께 해석학을 대변하는 프랑스 철학자이다. 리쾨르는 초기에 야스퍼스의 실존주의 철학 및 후설의 현상학에 심취하였다. <의지의 철학> 1권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의지적 측면과 비의지적 측면의 상호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현상학적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리쾨르는 <의지의 철학> 2권에서 인간이 오류 및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신화와 상징의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파리의 지식층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두 가지 경향은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이다. 리쾨르는 <해석: 프로이트론>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의식되지 않은 것의 정신과정은 해석활동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쾨르는 정신분석학을 일종의 해석학으로 본다. 정신분석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과 말을 특수한 규칙, 가정, 전형 등에 의존해서 분석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특정한 자연과학이 아니라 역사 비평이나 문학 비평처럼 해석학에 속한다는 것이 리쾨르의 주장이다.

리쾨르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및 그것으로부터 영향 받은 구조주의 철학을 비판한다. 구조주의의 방법은 제한된 체계 내지 구조를 근거로 언어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 때문에 사태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리쾨르의 지적이다. 예컨대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에 대한 구조주의적 해석은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화는 제한된 구조에서 생기기보다 장구한 역사 전통을 통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은유와 이야기>

해석학적 입장에서 볼 때 넓은 의미의 텍스트는 삶 자체이고 좁은 의미의 텍스트는 기록된 담론이다. 기록된 담론은 음성적 발언과 몇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텍스트에서는 기록된 것만 의미를 지닌다. 발언에서는 말한 것의 의미와 말하는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이 있으므로 정확한 의미가 이해되기 힘들다. 발언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말한 것의 의미가 겹치지만 기록된 담론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발언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삼는데 비해서 기록된 담론은 상대적으로 보편적이다. 발언에서는 연관된 주변 상황이 발언에 많은 영향을 주지만 기록된 담론에서는 주변 상황이 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리쾨르는 텍스트를 해석 대상으로 삼으면서 설명적 분석방법을 사용할 경우 해석과정은 한층 더 쉬워지며 풍요롭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해석이론>에서 리쾨르는 텍스트가 기록된 담론의 특징들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석학과 인문학> 및 <텍스트로부터 행위로>에서 리쾨르는 텍스트를 확장하여 인간의 행위를 텍스트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행위는 텍스트의 기록된 담론의 특징들을 소유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의 행위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리쾨르는 그의 말기 저술에 속하는 <시간과 이야기> 세 권을 통해서 은유와 이야기가 지닌 창조적 국면을 밝히고자 한다. 특히 언어에서 은유와 이야기는 창조적 국면을 가지는데 이는 인간이 언어에서 생산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구성적 해석을 통해서 은유와 이야기가 포함하는 창조성과 상상력을 이해할 수 있다.
리쾨르에 의하면 이야기의 핵심은 줄거리(플롯)에 있으며 줄거리는 성격, 목표, 기회, 원인, 결과, 어법 등을 동반하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건을 구성한다. 줄거리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이다. 리쾨르의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전개된 모방이론을 채택한다.

<시간과 이야기>에서 리쾨르는 인간의 행위와 존재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모방적 기능(미메시스)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역사적 이야기라든가 허구적 예술 작품은 모방적 기능에 의해서 은유와 이야기로 구성되면서 인간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표현한다.



6. 구조주의

1) 소숴르

< 언어의 기호는 체계이다>


소쉬르는 언어가 선험적 법칙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관습적인 기호체계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구조주의 언어학을 대변한다.

현대철학의 조류 중 하나인 구조주의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1916)는 구조주의 언어학을 대변하며 더 나아가서 구조주의 철학이 형성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소쉬르는 19세기의 전통적 언어학자들에게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언어는 특정한 선험적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임의적인 역사적 관습 체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기호체계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언어학 탐구는 언어 비교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간의 진행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언어 형식을 연구해서는 안 되고 어떤 주어진 시간에 동일한 체계에 속하는 기초들의 관습적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 소쉬르는 언어 연구는 공시적(synchronique)이어야 하고 통시적(diachronique)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랑그와 파롤

소쉬르 언어학의 출발점은 랑그(la langue)와 파롤(le parole)의 구분이다.
모 든 언어는 기본적인 관습의 체계와 그 체계의 일상적 사용으로 구분된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독일인은 리베(Liebe)로, 프랑스인은 아무르(amour)로, 미국인은 러브(love)로 발음하며 기록한다. 이처럼 실제로 사용되는 말이 파롤이며 파롤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관습 체계는 랑그이다.

우리들은 사회생활에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파롤을 사용하기 때문에 파롤은 의도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파롤의 근거가 되는 관습 체계로서의 랑그는 실생활에서 사용되지 않고 단지 논리적으로 파롤에 선행하며 동시에 파롤보다 더 추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관습적인 언어의 기본 체계인 랑그이다.


(2)기호체계

소쉬르는 오늘날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의 선구자 퍼스와 함께 현대 기호학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소쉬르의 기호론에 의하면 모든 기호는 청각적 국면과 개념적 국면을 소유한다. 예컨대 사나이, 사내, 사내자식 등의 청각적 국면은 남자라는 개념적 국면에 대응한다. 이 말은 한 단어가 청각적 국면(Signifiant: 기표)과 개념적 국면(signifie: 기의)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한 단어에 있어서 청각적 국면과 개념적 국면의 관계는 선험적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소쉬르는 단어의 청각적 국면과 개념적 국면의 관계가 언어 이외의 다른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언어 심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들의 지각 과정에 있어서 청각상은 에코(echo)로 그리고 시각상은 아이콘(icon)으로 우리들의 뇌에 코드화되어 저장된다. 대상을 지각할 때 에코로 코드화하는 것은 아이콘으로 코드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지각된다. 이러한 이론은 소쉬르가 말하는 단어의 청각적 국면의 이론을 뒷받침해준다.

소쉬르는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자신의 언어학을 사회심리학 그리고 일반심리학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기호학이라고 한다. 언어는 기호체계(랑그)를 바탕으로 삼으며 기호체계는 사회적 관습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방법론은 후에 메를로 퐁티, 레비 스트로스, 바르트, 라캉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현상학, 해석학 등의 등장에 따라 구조주의는 쇠퇴의 길을 걸은 것도 사실이다.



2) 레비 스토르스

< 세계의 심층 구조를 읽힌 레비 스트로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방법론은 언어 현상 및 친족 관계에서 큰 성과를 성취했다. 그는 사회학적이며 보편주의적인 방법으로 친족 관계의 기본구조가 무엇인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우 리의 세계와 삶은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는 자연과 인간 및 사회와 문화의 현상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것들의 심층 구조는 항상 은폐되어 있다. 이 심층 구조를 드러낸 보편 법칙을 해명함으로써 보편 법칙에 의해서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은 1960년대 후반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에 의해서 새로운 철학적 방법으로 정립된다.


인간과 자연과 문화의 심층 구조

레 비 스트로스가 구조주의를 구상하게 된 밑바탕에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사상 그리고 지질학이 깔려 있다. 그는 <슬픈 열대>에서 자신의 '세 가지 만남'에 관해서 기술한다. 첫째, 어떤 현실 유형을 다른 유형으로 환원시킬 때 참다운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참다운 현실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진리란 본질상 스스로 은폐하려는 면밀성에서 암시된다고 하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무엇보다도 프라그 학파가 발전시킨 음운론의 방법과 성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말하자면 그의 구조주의 방법론은 구조주의 언어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음운론이 우리들의 과학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언어학자는 낱말들을 분석하고 음운의 실재를 해명한다. 만일 언어학자가 여러 언어들 속에서 동일한 대립음소들의 적용을 확인한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개성적 언어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 서로 다른 대상들의 심층적 동일성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보장하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상호 유사한 현상들이 아니타 동일한 사실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의식적 표면으로부터 무의식적 심층으로 이행하는데, 이 이행은 특수한 개성으로부터 보편적 절대성으로의 이행이다. 언어학에서 이 보편성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학에서도 똑같이 보편성이 중요하다. 우리는 언어에서 표현된 상징적 기능을 연구한 결과 모든 언어의 바탕에는 동일한 원리(또는 형상)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재료에 특정한 원리를 부여한다. 이 원리는 고대인과 현대인 그리고 원시인과 문명인에게 동일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모든 제도와 습관의 심층에 있는 무의식적 구조를 찾아낼 수 있다.

레비 스트로스는 언어 현상과 아울러 친족 관계에서 구조주의적 방법론의 큰 성과를 성취했다. 지금까지의 민속학자나 인류학자들이 사용했던 관찰 방법은 개별적이며 생물학적인 것이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러한 방법을 떠나서 사회학적이며 보편주의적인 방법에 의해서 친족 관계의 기본 구조가 무엇인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친족 관계의 기본 구조는 '교환'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친족 관계의 기본 구조>에서 어떤 형태의 결혼 제도이든 결혼 제도의 공통된 기초는 교환이라고 주장한다.

언어의 시초를 상징적 사유라고 할 것 같으면 자연으로부터 순화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교환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근친상간의 금지를 비롯해 다양한 결혼 제도를 설명하면서 교환의 의미를 밝힌다. 같은 씨족이나 부족에 속하는 여자를 자연적 본능 충족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일종의 교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은 여자를 사회라는 관계 체계의 기호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들 인간의 사회적 삶은 기호의 교환이다. 또한 문화는 상징의 해석이므로 문화는 곧 언어생활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친족 관계를 연구한 후 토테미즘을 연구함으로써 인간 사회의 심층에 깔려 있는 원리들을 한층 더 명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지금까지 종교 사학자들 및 인류학자들이 설명한 토테미즘의 현상은 항상 경멸하고 멸시하려는 문명인들의 관습이 날조해 낸 것에 불과하다.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학을 연구하기 위한 구조주의적 방법으로서 다음과 같은 가설적 모델을 제시한다.


1 연구해야 할 현상을 둘 또는 그 이상의 여러 가지 표현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한다.
2 이러한 표현들 사이에 가능한 모든 교환 관계의 도식을 작성한다.
3 우선 연구 대상으로 드러난 경험적 현상을 여러 가지 교환 관계들 중 하나의 결합으로 여기고 그것을 전체 체계의 일부로 설명한다.


레 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토테미즘이란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성립하는 관계들에 관한 현상이다. 자연은 범주와 개체를 그리고 문화는 집단과 개인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토테미즘이란 대립되는 반대 개념들인 문화나 자연의 개념이 특정한 형식으로 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토테미즘이란 멸시나 경멸의 대상도 아니고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니며 단지 보편적 법칙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레 비 스트로스는 아메리카의 토인 부족들의 상하 관계. 전쟁과 평화 등 대립 개념들과 중국의 음양의 조화로운 대립적 요소들을 연구해 심층의 보편적 구조를 해명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신화와 음악의 구조도 연구해. 공간적 신화로부터 시간적 신화로의 변천, 그리고 감성적 성격의 논리로부터 심층적 현상을 향한 논리의 변천을 연구함으로써 자신의 구조주의적 탐구의 심도를 깊게 했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탐구 방법은 특히 오늘날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7.  심층 심리와 정신분석학

1)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은 의식하기 어려운 정신의 심층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또한 이 심층 의식과 관계 있는 일상생활의 심리 현상에 대해서 연구한다.

프로이트는 정신병리학과 심층심리학을 기초로 정신분석학을 체계화했다. 프로이트는 마르크스, 니체,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현대 사상에 일대 충격을 가져다준 정신 분석학자이다. 그는 유태인으로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당시 유태인에 대한 박해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개업 의사가 되어 일생 동안 정신분석학 연구에 몰두했다. 말년의 프로이트는 서른 세 번이나 구강암 수술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연구를 계속했다.

프로이트의 학설은 충동론, 인격 구조의 이론(심적 장치론), 심층 의식론, 심적 기제론, 방어 기제론, 신경증론, 꿈의 해석론 등 여러 분야로 나누어진다. 정신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심리학의 과제이다. 그러나 모든 정신 현상이 직접 관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처럼 일상생활의 의식과는 전혀 분리되어 있어서 의식과 상관없이 행동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정신분석학은 보통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있는 정신의 심층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또한 이 심층 의식과 관계 있는 일상생활의 심리 현상에 대해서 연구한다.

처음에 프로이트는 심층 의식을 분석하기 위해서 최면술이나 전기요법 등을 사용했으나 곧 포기하고 자유 연상법을 채택했다. 연상법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계속해서 연상하게 함으로써 의식 내의 감정적 복합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프로이트는 신경증(노이로제)을 치료하기 위해서 자유 연상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을 이용해서 그는 의식의 내면을 탐구하고 동시에 신경증을 치료했다.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준 친구 브로이어의 두 가지 관찰>

프로이트는 친구 브로이어의 관찰을 기초 삼아서 1893년과 1895년에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빈의 정신과 의사 브로이어가 프로이트에 영향을 미친 관찰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이다.

브 로이어는 히스테리 증세를 지닌 안나라는 미모의 젊은 여성을 진단했는데 그녀는 멀쩡한 눈을 가지고 자주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호소했다. 안나는 꿈꾸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브로이어는 꿈꾸는 상태에서 중얼거리는 환자의 말이 마음속 깊이 그녀가 품고 있는 것과 관계 있다고 여기고 안나가 중얼거린 말들을 기록한 다음에 그녀를 최면 상태에 끌어들인 후 그 말들을 다시 들려줌으로써 그녀의 마음 깊이 사무쳤던 사건들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안나는 중병 앓는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너무 울어서 멀쩡한 눈이지만 눈물이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안나는 브로이어의 치료를 6개월 정도 받고 정상인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여성 운동가가 되었다. 브로이어는 환자 치료에 최면요법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브로이어의 치료를 받은 또 다른 환자는 물 마시기를 거부하는 증세가 있었다. 브로이어는 이 환자를 최면 상태로 끌어들인 다음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게 했다. 이 환자는 가정교사에 대한 고통스러운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가정교사가 마시던 컵에 든 물을 그녀의 개가 마시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음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마음속에 품었던 것을 털어놓음으로써 환자는 지금까지 억제해 왔던 분노를 터뜨리고 차츰 컵의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의 관찰과 치료를 근거로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고 거기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신경증의 증상은 잊혀졌던 과거의 일들과 관계가 있으며 그 일들을 회상함으로써 증상이 제거될 수 있다. 환자는 과거의 일들을 억제하고 있어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으므로 그것이 신체의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과거의 일들을 재현시켜 주지 않으면 환자는 치료될 수 없다. 프로이트는 이 연구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과를 이끌어 냈다. 우선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증상은 우연히 발생되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의해서 발생되어 결정된다는 심적 결정론에 도달했다. 다음으로 그는 증상의 원인은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환자 자신은 그 증상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 번째로 그는 증상의 원인, 곧 억압이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증상의 원인이 불쾌한 체험이었다든가 또는 다른 경향과 충돌하기 때문에 의식에 떠오르지 않게 의식의 심층에 묻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는. 무의식 안에 발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억압 충동은 어떤 계기를 맞이해 말이나 행위로 터져야만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카타르시스(세제 요법) 이론을 제시했다.
억압된 관념은 성적인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최면요법의 한계를 발견하고 자유 연상법을 제시했다. 그는 <꿈의 해석>과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를 저술해 일상인의 심리 현상을 연구했으며 말이나 글의 잘못은 모두 심층 의식(무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밝혔다. 차츰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원인이 성적인 요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성의 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에서 억압된 관념은 성적인 것이며 성욕은 이미 유아의 구강기부터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동의 발달을 구강기, 항문기, 성기기 및 잠복기로 구분하고, 구강기에는 입으로 빠는 것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고 항문기에는 배설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며 성기기에는 아동이 직접 자신의 성기를 접촉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성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했으며, 또한 신경증의 원인을 억압된 과거의 사건보다 성적 소질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정신적인 비정상 상태가 성적 요소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아 범죄와 종교 심리 그리고 문학과 정신병 치료에 있어서 성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신분석학 연구를 계속했다. 뒤이어 프로이트는 인격 구조를 연구하고 인격 구조를 이루는 요소들로 의식적 자아, 원시적이고 충동적인 자아의 심층 부분인 이드, 그리고 유아 시절 부모의 교육에 의해 형성된 초자아(양심) 등 세 가지를 말했다. 여기에서 의식적 자아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알고 있는 '나'이며 이드는 심층의 충동이고 초자아는 유아기에 어른들에 의해서 주입된 도덕적 및 관습적 생각들이다. 크게 보면 인간의 의식은 의식적 자아와 심층 의식(이드와 초자아)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말년의 프로이트는 심층 의식의 충동을 본능으로 보고 이 본능 또는 힘을 죽음의 충동과 삶에의 충동으로 나누어 보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개인 심리에 치우쳤고 또한 지나치게 성적 요소를 강조했기 때문에 말년에 제자로부터 반박당했다. 융과 같은 제자는 스승 프로이트와 다른 각도에서 정신분석학을 탐구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개인 심리 연구에 치중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확장해 사회 심리 연구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더 강하다. 마르쿠제나 하버마스, 프랑스의 리쾨르나 라캉 등은 프로이트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철학자 또는 심리학자이다.



3) 융

<집단무의식>

융은 프로이트와 함께 고전적 정신분석학을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이다 융은 처음 몇 년 간 프로이트를 추종하면서 인간의 정신과정의 근원을 성충동으로 여겼으나 곧 프로이트에게 반기를 들고 프로이트와 결별하였다. 융은 더 이상 프로이트의 결정론을 따를 수 없었다.

융은 인간의 정신과정(심리과정 또는 영혼과정)을 집단무의식, 개인무의식 및 자아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집단무의식은 태곳적으로부터 현재까지 경험한 것들이 심층 의식에 쌓여 있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암흑과 뱀을 무서워한다. 원시인들은 밝고 따뜻한 태양과 캄캄하고 차가운 밤을 경험했으며, 공룡과 같은 파충류 앞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장기간 축적되어 심층 의식을 이루며 이것이 바로 집단무의식에 해당한다.

우리들 각자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고 다양하게 행동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기술이나 행동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곧 자동적으로 처리한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심층 의식을 집단무의식이라고 한다면 개인의 심층 의식은 개인적 무의식이다. 그런가 하면 각 개인은 언제나 의식적인 나를 주장하는데 이것은 자아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각하고 기억함으로써 인지하고 사유하며 판단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정서와 감정을 표현한다. 집단무의식(원시형: Archetyp)과 개인무의식 이외에 인지하고 사유하고 의식하는 나는 자아이지만 두 가지 심층 의식과 자아를 통합하는 것은 자기(Selbst)이다. 융이 보기에 바람직한 인간이란 얼마만큼 균형 잡힌 자기를 소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융의 정신분석학은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꿈을 분석하고자 한다.



3)  신정신분석학자들

<신정신분석학자들이 보는 기본적 욕구의 원천>


아 들러, 프롬, 호나이, 설리반과 같은 신정신분석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적 자아가 기본적 욕구의 원천을 가진다는 프로이트와 융의 고전적 정신분석학의 이론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신정신분석학자들은 기본적 욕구의 원천을 프로이트처럼 성충동으로 보지도 않고 융처럼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들러는 인간이 소유한 기본적 욕구의 원천은 바로 열등감이라고 한다. 인간은 외딴 섬에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누구나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창조적 자기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열등감이야말로 인간을 보다 바람직한 삶을 향하여 발전시키는 기본적 욕구의 원천이며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한 사람인 프롬은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정신분석학 이론을 전개한다. 프롬에 의하면 인간은 상반되며 갈등하는 다섯 가지 기본 욕구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소속욕, 초월욕, 착근욕, 정체욕, 준거욕이다. 예컨대 인간은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고자 한다.

현실의 삶에서 상반되며 갈등하는 욕구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인간상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갈등하는 욕구들을 반영하는 사회조건 또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조건은 인간의 삶을 특징짓는 중대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성 정신분석학자 호나이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충동이나 욕망)를 불안으로 본다. 심층 의식 안에 억압되어 있는 욕구는 신경증적 불안으로서 이것은 바로 기본 불안이다. 이 기본 불안은 다음과 같은 열 가지 것을 원하는 신경증적 불안이다: 애정, 이성, 자신의 영역, 권력, 타인 지배, 명예, 자기 찬미, 성취, 독립, 완전. 우리 각자가 이들 열 가지 기본 불안을 어떻게 충족시키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간상이 결정된다.

설리반에 의하면 자아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관계에서 생긴 가상적 개념이다. 우리는 습관적 역동과 인격화에 익숙하다. 인간 관계에서 습관적 역동에 익숙한 사람은 큰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우리들은 각자가 나름대로 사람들을 멋대로 평가하는데 이것이 인격화이다. 대상을 정확히 인지할수록 습관적 역동에 잘 적응할 수 있으므로 설리반은 인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정신분석학을 대변하는 프랑스의 현대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대해서는 독립된 절을 마련해서 따로 소개하기로 한다.



8. 사회주의


1)  맑스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한 마르크스>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크게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구분된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은 엥겔스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우 리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철학을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들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세 개념들을 혼동하기 쉽다. 사유재산 제도가 인정되지 않고 개인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이 사회주의이다.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 영국의 고전 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요소로부터 영향 받아 자신의 고유한 사상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철학과 경제 및 정치를 종합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

마르크스주의는 크게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은 뒤에 가서 마르크스의 친구인 엥겔스에 의해서 명백하게 체계화되었다.

마 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의 공식을 세 가지로 말한다. 가장 먼저 사회적 생산 활동에 있어서 인간은 물리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걸맞는 생산 단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전체는 사회의 참다운 기초를 이루는 경제 토대를 형성한다. 이 토대는 근본적인 하부구조이고 이를 근거로 정신적인 것들, 즉 학문과 예술 및 종교 등의 상부구조가 성립한다. 다음으로 만일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생산 관계와 모순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사회 혁명의 시대가 다가온다. 경제기초가 무너지면서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붕괴된다.

마 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정신이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는 헤겔의 주장을 배격하고 물질적인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각 사회 발전 단계의 특징은 각 단계마다 생활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에 따라서 파악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사회구조론, 사회의 역사적 발전 이론, 사회의 역사적 인식 방법론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산 관계에서 규정한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 조직과의 관계를 뗄 수 없다. 인간과 사회 조직과의 관계는 생산 관계이다. 생산 관계의 총체는 역사 발전 단계에서 각 관계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형성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이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사회는 기본적인 하부구조와 부차적인 상부구조로 구분된다. 모든 생산 구조는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인 생산력 및 생산 관계의 경제 구조가 변하면 그에 따라 제약받고 변화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철학이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음에 비해 자신의 철학의 과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생산 관계가 무너지고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이 극도에 달하면 새로운 생산 관계가 형성되어 혁명이 일어난다고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에서 자본가의 착취가 극도에 달하면 노동자는 생산품이 자신의 노동에 의한 산물임을 의식하고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혁명은 정신적 의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 곧 물질적 생활의 모순으로부터 생긴다. 정신적 의식은 상부구조에 속하기 때문에 의식의 변혁은 물질적 삶의 모순으로부터 자동적, 법칙적으로 생긴다.

마르크스는 사회 발전에 관한 역사적 인식 방법을 생산 방식의 고찰에서 찾고 있다. 즉 역사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에 의해서 일정한 사회의 형태를 가지고 변화하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는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에 따라서 원시 공동사회로부터 노예제 사회로,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로, 마지막에는 사회주의 사회로 발전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의 종착점은 사회주의 사회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공동 분배와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행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칼 포퍼와 같은 현대의 사회철학자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일컬어 '역사법칙주의' 라고 칭하고, 그것은 폐쇄된 사회만을 가져온다고 비판한다.



2) 엥겔스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운동법칙에 따르는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논하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면, 그의 친구인 엥겔스는 유물사관을 자연으로 확대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체계화하려고 했다. 엥겔스는 공장주의 아들로서 마르크스와 친교를 맺은 후 마르크스를 경제적으로 후원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에 동조해 공동 저술 활동을 하기도 했고 마르크스가 죽은 후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확고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엥겔스가 주장한 '과학적 사회주의'는 후에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서 '과학적 세계관'으로 일컬어졌다. 엥겔스가 체계화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후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핵심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엥겔스는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을 철저하게 물질 내지 자연의 변증법으로 전환해, 정신에 대해서 물질이 근원적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발전의 동기는 사물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에 있다고 보는 유물 변증법은 진보와 비약, 연속과 단절, 양적 변화와 함께 질적 변화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사물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은 사회에서 부르주아지(유산계급 또는 유산자)와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 또는 무산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의 내면적 논리에 대응한다. 이 계급투쟁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 수단의 개인적 소유 사이에 있는 모순으로부터 생긴다.
계급투쟁의 논리를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낡은 질의 사회를 새로운 질의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체 사회를 형성하는 긍정적이며 보수적인 힘과 부정적이며 혁명적인 힘의 투쟁이 필연적이다. 엥겔스에 의하면 모순이나 투쟁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발전에 그리고 인간사회의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가장 명확한 기본 법칙이다.

엥겔스 는 헤겔의 예를 따라서 자연현상에도 변증법적 발전이 있고 이와 동일한 발전이 사회에서도 일어난다고 본다. 물이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수증기가 된다. 즉 사물의 양이 극한점에 달하면 사물은 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도 이와 같은 결정적인 비약이 있어서, 서로 다른 힘들이 충돌함으로써 발전의 역사가 전개된다. 결정적 순간이 지나면 투쟁은 법칙의 완성에 도달하는 사회가 형성된다. 엥겔스나 마르크스는 인간 해방을 위해서 사회의 개혁을 주장했으나. 엄밀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탐구가 부족했다. 1980년대 말을 기해 소련과 동유립의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부터 마르크스주의는 점차로 철학적 비중을 잃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주장한 인간 해방이나 사회의 개선에 관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맥을 이어 오고 있다.



9. 실용주의

<실용적인 것이 진리이다>


19세기 후반 퍼스로부터 시작되는 실용주의는 전통적인 유럽의 합리주의 사상과 미국의 서부 개척 정신이 결합된 미국의 고유한 철학 경향이다.

실 용주의는 19세기 후반 퍼스로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철학이지만,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퍼스, 제임스, 듀이 등은 실용주의 범주 안에서 제각기 조금씩 다른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실용주의는 전통적인 유럽의 합리주의 사상과 개척 정신이 결합된 미국의 고유한 철학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퍼스

<퍼스의 발상법과 기호론>


퍼스의 실용주의는 개념의 의미를 명백하게 하는 방법이다. 퍼스는 <우리들의 관념을 분명하게 만드는 방법>에서 개념의 의미가 명백하지 못하면 공허한 논쟁을 되풀이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공허한 논쟁을 막기 위해서는 실용적 준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개념의 대상이 실천적 영향을 소유하리라고 여겨지는 어떤 결과들을 가질 것인지 고찰하라. 그러면 이러한 결과들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 전체이다." 이 말은, 개념이 포함하는 가능적 경험을 생각할 경우 개념의 의미가 파악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만일...라면, 그렇다면...이다"라는 실용적 준칙이 성립하는데, 실용적 준칙이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요구됨을 말한다. 칸트의 '실천적'이라는 표현과 '실용적'이라는 표현은 다같이 행위에 관계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대립된다. 실천적이라는 표현은 단적으로 타당한 것을 말하는 반면, 실용적이라는 말은 "만일 A를 원한다면 B를 해야 한다"는 가언명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보여준다. 실용적 준칙이 적용될 경우 개념의 의미는 실천적 결과에 의해서 명석하게 판명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실험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퍼스는 일생 동안 칸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인식론은 기호론을 기초로 한 발상법(abduction)이다. 기호, 대상, 해석자 및 해석의 네 가지 요소에 의해서 기호론이 성립한다. 퍼스가 기호론을 근거로 전개하는 발상법은 과학적 탐구에 필요한 가설의 논리이다. 퍼스에 의하면, 발전적 과학 지식에 있어서 새로운 관념을 가설적으로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발상법을 사용해야 한다. 발상법에 의해서 일단 어떤 가설이 성립되면 연역법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생길지를 예견한다. 다음으로 예견될 결과가 사실과 일치하는지는 귀납법으로 검증한다. 그렇게 해 검증된 타당한 것이 곧 진리이다. 퍼스의 실용주의는 실상 실험주의이고 그가 말하는 진리는 제임스가 말하는 실제적 유용(practical utilities)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2) 제임스

<실제적 유용성과 제임스의 실용주의>


제임스(1842~1910)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진리는 고정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생활에 실제적 유용성을 가져다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관념은 여분의 진리로서 쓸모 없는 것이다. 제임스는 일원론을 거부하고 다원적 세계관을 옹호한다. 유물론적 일원론 내지 관념론적 일원론은 절대 실체를 내세워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일원론의 체계는 인간의 본성에 깃들어 있는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세계의 가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적 세계관을 가질 때 인간의 행위는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이 제임스의 주장이다.

제임스는 프랑스의 삶의 철학자 베르그송과 오랜 친교 관계를 유지했고 생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임스에 의하면 다원론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대상은 생명의 직접적 흐름으로부터 파악된다. 참답게 존재하는 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미완성의 것이며 경험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실용적 방법에 의해서 정당화되어야 한다. 신 존재는 과학적 논증의 대상이 결코 아니고 인간의 믿으려는 의지(will to believe)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제임스는 실용주의의 극단적인 입장에서 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신 존재가 참답고 신을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신 존재가 참답지 않다고까지 말한다.



3) 듀이

<듀이의 도구주의>


듀이 (1859~1952)는 퍼스와 제임스의 실용주의를 종합하면서 칸트의 인식론, 헤겔의 변증법 그리고 다원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실용주의를 도구주의로 발전시켰다. 듀이는 <탐구의 이론>에서 논리적 체계를 확립했다. 듀이에게 있어서 탐구란 문제가 생긴 상황을 몇 가지 단계를 거쳐서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안에 살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문제적 상황에 직면한다. 듀이의 '탐구의 이론'은 불확정한 상황, 가설 형성, 추리, 실험, 확정된 상황의 단계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 듀이의 탐구 이론은 퍼스의 발상법과 유사하며 실험주의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탐구의 최종 단계에서 듀이는 확정된 상황에 도달해 '보증된 언명 가능성'(warranted assertibility)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문제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일까? 듀이는 그것을 창조적 지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은 현재 우리의 행동의 지침이 되며 동시에 현재의 조건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예견한다. 지성은 인간의 창조적 도구이다. 우리는 지성에 의해서 이미 주어져 있는 것과 불필요한 것 사이의 충동을 제거할 수 있다. 듀이는 도구주의적 입장에서 진리관을 제시한다. 지성의 산물인 관념, 견해 그리고 개념 등은 모두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고 이 도구가 환경과의 조화와 아울러 적응을 우리에게 보장한다면 도구는 진리로 일컬어질 수 있다. 듀이에 의하면 도구의 성공적 작용은 진리의 기준이나 원인이 아니고 진리 자체에 해당한다.

듀이의 실용주의는 도구주의이며 또한 그것은 실험주의이다. 듀이는 도구주의에 의해서 개념과 판단을 논리적으로 정학하게 만들고자 했으며, 그럼으로써 미래의 결과를 실험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도구주의 사상은 오늘날 철학을 비롯해 교육학, 심리학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0. 논리실증주의

<형이상학적 명제에 반대한다>


형이상학적 명제는 참거짓을 결정할 수 없으며 분석적인 것도 아니고 경험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명제는 거짓 명제, 곧 사이비 명제이다.

논 리 실증주의란 1920년대 빈 학파를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 철학의 한 경향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경험적 실증주의라고도 일컬어지며, 파이글과 같은 학자는 논리 실증주의를 논리적 경험론이라고 부른다. 미국으로 건너간 논리 실증주의는 실용주의와 폴란드의 의미론을 결합해 과학적 경험론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논리 실증주의의 일반적 경향>

크게 보면 논리 실증주의는 소위 분석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현대 철학의 한 경향이다. 분석철학은 20세기 초반 헤겔의 절대적 사변(관념)철학에 대한 비판을 시발점으로 삼아 확대된 철학적 탐구의 방법이다. 분석철학은 형이상학적 명제를 배격하고 철저한 논리적 분석에 의해서 문제를 명백하게 해결하고자 한다. 명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할 때 우리의 사고는 언어라는 매개체에 의해서 전개되고 표현되므로, 분석철학에서는 언어 분석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분석철학의 입장을 지닌 학자들은 각기 색깔이 다른 여러 집단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일상언어학파, 의미론적 분석학파, 프랑스와 스위스 및 이탈리아의 과학론 그룹, 캠브리지 분석학파, 경험철학협회, 북유럽분석학파, 실용주의, 조작주의, 빈 학파 등이 대표적인 집단들이다. 이들 여러 그룹들은 철학을 과학화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방법문제와 철학의 주제 선택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논리 실증주의를 탄생시킨 빈 학파는 쉴릭을 중심으로 1924년에 창시되었다. 쉴릭, 카르납, 파이글, 노이라트 등 주로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모여서, 논리적 분석으로 철학을 과학화하는 것에 대해서 다각도로 논의했다. 당시 이 학파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논리 실증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대표적인 두 사람으로는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를 꼽을 수 있다.

논리 실증주의가 논의 대상으로 삼은 주제는 광범위했지만 그 중에서도 주로 형이상학, 명제의 진위(참과 거짓) 문제, 검증 가능성의 원리 및 프로토콜 명제(Protocol-Satz, 명제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명제), 명제의 진리와 의미 그리고 과학의 통일 등이 주된 논의의 대상이었다.

우선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적 명제(예컨대 신, 자유, 영혼불멸 등에 관한 명제)는 참거짓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한다. 무의미한 명제는 거짓 명제, 곧 사이비 명제(pesudo-proposition)이다. 형이상학적 명제가 무의미한 이유는 그것이 분석적인 것도 아니고 경험적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분석적 명제는 술어가 주어를 해명해 주는 명제로서 대표적인 것은 수학 명제들이다. 예컨대 'A는 A이다'와 같은 동치 내지 동의어 반복의 명제는 분석적 명제이다. 명제가 분석적이어서 논리적 및 수학적으로 참거짓이 밝혀지거나 명제가 경험적이어서 명제의 참거짓이 실험, 관찰 및 검증에 의해서 드러나면 그러한 명제는 의미 있는 명제이겠지만, 형이상학적 명제는 분석적이지도 그렇다고 경험적이지도 않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명확한 근거에 의해서 철저한 사고 및 그것의 언어적 표현을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카르납

<형이상학을 배격한 카르납>


카르납은, 물 자체, 존재, 무, 절대자, 신, 실체 등에 관한 명제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또 경험을 초월하는 지식을 나타내는 명제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이며, 참거짓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에 학문의 범주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형이상학적 명제를 무의미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의 참거짓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지 형이상학적 명제가 전적으로 쓸모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카르납에 의하면 형이상학이란 비논리적이고 경험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므로 시와 마찬가지로 상상적 성격을 갖는다. 형이상학은 시와 마찬가지로 감정의 산물에 불과하다.

시는 원래부터 허구적이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지만, 형이상학은 경험을 초월하는 것에 관해서 마치 사실을 기술하는 것처럼 주장하기 때문에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카르납의 주장이다. 카르납에 의하면 철학이 사용하는 언어 기능은 대상 표시 기능이어야 하는데, 형이상학은 시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의사표시 기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근거에서 카르납은, 형이상학이 실제로는 아무런 지식도 가져다주지 못하면서도 지식이라는 착각 내지 환상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므로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카르납은 <철학의 논리적 구문>의 제1장 '형이상학의 배격'에서 위에서 언급된 내용에 관해 밀도 있게 다루었다.

영국의 일상언어학파에 속하는 에이어도 카르납과 비슷한 입장에서 형이상학적 체계의 모든 언명을 철학적 논의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카르납이나 에이어가 명제의 참거짓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검증 가능성의 원리이다. 그것은 명제가 분석적이든가 아니면 경험적으로 검증이 가능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카르납에 의하면 명제를 검증하는 방법으로는 직접적 검증의 방법과 간접적 검증의 방법이 있다. 우리가 관찰해서 검증할 수 있으면 그것은 직접적 검증 방법이고, 간접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간접적 검증 방법이다.

에이어는 카르납보다 더 구체적으로, 실제적 검증 가능성과 원리상의 검증 가능성을 구분한다. 우리가 지구상의 물을 직접 관찰해서 물의 존재를 검증할 경우 그것은 실제적 검증 가능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화성의 물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추론해 검증한다면 그것은 원리적 검증 가능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들 양자는 각각 강한 의미의 검증 가능성과 약한 의미의 검증 가능성에 대응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경험적 명제는 약한 의미에서 검증 가능하다는 것이 에이어의 견해이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적 명제를 무의미한 것으로 배격하고 검증 가능성의 원리에 적용될 수 있는 명제를 의미 있는 명제, 곧 프로토콜 명제라고 불렀다. 프로토콜 명제는 직접적 명제 또는 관찰 명제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카르납과 노이라트 등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의 통일을 또 하나의 과제로 생각했다. 이들은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사실과학과 규범(가치)과학 등 서로 다른 여러 과학(학문)들이 있다는 것을 반대하고, 과학의 통일을 꾀했다. 즉 그들은 과학의 통일에 의해서 자연과 인간 생활의 현상에 관한 프로토콜 명제로부터 포괄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인식론적으로 동일한 성질을 가진 명제 내지 문장을 과학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카르납은 노이라트와 함께 포괄적 법칙에 도달하는 명제를 얻기 위해서는 물리적 언어 내지 사물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들에 의하면 물리적 언어는 감정적 언어와 전혀 다르게 개별 과학들의 기초 언어일 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들을 포괄적으로 다를 수 있는 보편언어이다. 최근 논리 실증주의는 무엇보다도 기호 논리학의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발전했으며 또한 의미론 연구와 과학의 분석 분야에 있어서도 현저하게 발전했다.



2)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분석적 언어철학에서는 경험을 근거로 삼아 기호 안에서 언어의 의미를 찾는다. 해석학적 언어철학에서는 언어가 해석학적 체험의 매개물이라는 것에서 언어의 의미를 찾는다.

오늘날의 과학철학과 현상학, 그리고 분석철학과 해석학 등은 탐구 과제와 방법론에 있어서 서로 접근하는 것같이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살펴볼 경우 이들은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분리되고 또한 각각 고립되어 가는 경향이 강하다.

현대에 들어와서 전통적 의미의 인식의 문제를 비롯해 실체와 윤리, 논리와 미학의 문제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언어의 본질과 구조에서 추구하려는 경향이 매우 두드러진다. 우리들 인간의 사고나 감정은 논리적이든 아니든 간에 언어로 표현되고 또한 언어를 수단으로 삼아 인간의 의사 소통이 성립되고 삶이 표현된다.



3) 현대 언어철학의 두 갈래

폭 넓게 볼 때 현대의 언어철학은 대강 두 갈래의 흐름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대륙의 해석학적 입장이고 또 하나는 영미의 분석적 입장이다. 해석학적 입장은 다시 현상학적 견해, 구조주의적 견해 및 해석학적 견해로 세분될 수 있다. 분석적 입장은 다시금 비트겐슈타인과 태도를 같이하는 견해, 비트겐슈타인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옥스퍼드 학파 및 기호 논리학적 견해로 세분된다.


우 리들은 언어를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할 수 있으나, 오늘날 언어철학의 주된 관심사는 언어와 사유, 언어와 논리, 언어와 사회 등이다. 그러나 언어철학의 주된 관심사들을 탐구하기에 앞서서 밝혀져야 할 것은 언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언어철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언어의 의미에 있다. 분석적 언어철학에서는 언어 현상, 곧 언어가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반면, 해석학적 언어철학에서는 언어의 본질, 곧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분석적 언어철학에서는 경험을 근거로 삼아 기호 안에서 언어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런가 하면 해석학적 언어철학에서는 언어가 해석학적 체험의 매개물이라는 것에서 언어의 의미를 찾는다. 이들 두 입장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의 의미에 관해서 분석적 입장과 해석학적 입장은 어떤 점에서 서로 양립하는가, 그리고 언어의 의미는 포괄적 입장에서 밝혀질 수 없을까 하는 것은 해결되어야 할 물음들이다.


(1) 분석적 언어철학

분석적 언어철학의 입장에서는 우선 현상을 '사태'로 본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모든 대상이 주어져 있다면 모든 가능한 사태로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사 태는 상을 형성한다. 상은 우리의 언어에 의한 표현 형식을 떠날 수 없다. 표현 형식은 명제로 나타난다. 명제는 사물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현상만을 언급한다. 표현이 의미를 가지는 장소는 오직 명제이다. 만일 우리의 사유 구조가 사태 구조와 논리적으로 서로 상관 관계에 있다면 언어의 의미는 명제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아질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명제가 의미 있는지 아니면 의미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찾아야만 한다. 명제의 의미는 검증 원리라는 기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 분석적 언어 철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현상을 '말놀이' (Sprachspiel)에서 밝히고 있다. 선생님이 한 대상을 의미하는 말을 하면 학생이 따라서 말할 때 이와 같은 현상을 말놀이라고 한다. 언어와 언어가 결부된 행위의 전체는 말놀이이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이러한 말놀이에 있어서도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명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제를 이해하는 것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다.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기술을 지배하는 것이다.
분석 적 입장에서 볼 때 검증 원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과학적 가설이나 상식적 언명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의 의미가 타당할 수 있는 범위는 검증 원리의 범위와 일치한다. 그러나 분석적 언어철학은 언어를 형식적, 논리적 측면에서만 탐구해 언어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 자체의 표현인 언어를 전체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단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 해석학적 언어철학

분석적 언어철학에서는 형이상학적 명제가 검증 원리에 타당치 못하기 때문에 거짓이고, 따라서 탐구 대상으로부터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해석학적 언어철학에서는 언어를 해석학적 체험의 매개물로 그리고 또한 해석학적 존재론의 지평으로 이해한다. 물론 언어는 인간의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인 의미 체계이지만 해석학에서 문제삼는 언어의 의미는 언어 현상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에 있다.


하이데거는 "언어의 실존: 존재론적 기초는 대화"라고 말함으로써, 언어가 대담이 아니라 대화에 뿌리박고 있음을 밝힌다. 대담은 물론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단순한 음성의 연속이고 의미가 없다. 야스퍼스도 비슷한 입장을 전개한다.

외침, 피리 불기, 바람소리, 새나 개구리의 울음 등은 전혀 언어가 아나다. 언어는 내가 듣거나 말하는 소리 속에서 대상에 관한 나의 의향과 의미를 이행할 때 성립한다. 내가 소리 속에서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대상을 의식하면서 지향하는 그것이 근본 현상이다.

단순한 대담은 지껄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의미를 소유하치 못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바로 대화라고 한다. 인간은 서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존재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론적으로 현존재의 존재인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지금까지의 논리적 언어 탐구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논리적 언어 형식은 살아서 생동하는 언어의 내용과 전체성을 무시하고 단지 언어의 껍질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언어 형식에 의해서 우리는 결코 '사태 자체'를 획득할 수 없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언어는 존재의 언어이며 일종의 존재 방식이다. 그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집 안에 인간이 산다. 생각하는 자와 시 쓰는 자는 이 집의 문지기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구름이 마치 하늘의 구름인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존재의 언어"라고 설명한다.

언어의 본질은 본질, 곧 존재의 드러남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언어의 의미는 형식적 문법과 논리적 측면을 넘어서서 역사적으로 인간 존재를 보장하는 최고의 가능성이며, 또한 진리를 드러내는 존재 방식이기까지 하다.

가 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하이데거의 입장을 한층 더 심화시켜, 플라톤의 로고스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의 세계 체험에 있어서의 언어는 존재에 관한 사유를 발전시킨 실마리로 본다. 가다머에 의하면 언어는 세계 체험으로서의 언어이다.


(3) 분석적 언어철학과 해석학적 언어철학의 의미론적 지양

이제 분석적 언어철학과 해석학적 언어철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서로 보완하는 입장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놓고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비 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목적은 사유의 논리적인 해명이다. 철학은 교훈이 아니라 해명이다. 철학의 결과는 철학적 명제가 아니고 명제에 의한 해명이다"라고 말한다. 사유로서의 사유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 표현은 논리적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석적 입장이나 해석학적 입장에 의존하지 않고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의미론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의미론에 의존할 경우 형식으로서의 언어와 내용으로서의 사유 사이의 내면적 연관성이 드러날 수 있다. 언어의 의미는 사유 현상으로서 언어의 본질과 현상에 모두 타당하다.

우리는 언어의 의미를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탐구할 수 있지만 언어의 의미는 주로 형식적 현상의 측면에서 그리고 본질의 측면에서 탐구된다. 한국말만 아는 사람은 "She is very nice"라고 말하면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매우 멋지다"라고 말하면 곧 이해한다. 신호등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섬 아이가 서울에 와서 신호등을 보면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이나 설명을 통해서 아이는 곧 신호등에 적응하게 된다. 우리들 인간은 어떤 경우든지 이해하기 위해서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기호 상황을 만든다.

분석적 언어철학에서 보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언어의 의미는 논리적 사태에 관한 사유의 형식이다. 그러나 해석학적 언어철학에서 보면 언어의 의미는 가다머가 말한 것처럼 세계 체험의 지평이다. 언어는 대상을 지시하기 때문에 언어의 의미는 대상이고 의미가 입고 있는 틀로서의 명칭은 기호이다. 이 경우 기호는 단순히 기호 논리학적 의미의 기호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기호는 형식이면서도 항상 사유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의미는 명제의 참거짓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대상과 사유 관계의 특징이고 더 나아가서 존재 방식이며 우리들 인간의 체험의 지평이기도 하다.



11.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의 모험>


미셀 푸코 이후 데리다, 리오타르 등의 철학자들은 근대와 현대의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 문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르몽드>는 그러한 경향을 일컬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렀다.

우 선 포스트모더니즘이 실존주의나 실용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현대 철학의 한 조류인지의 여부를 물을 필요가 있다. 최근 철학이나 문학 또는 예술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거의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은 철학의 한 조류로서 명확하게 규정도 어떤 경향도 지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셀 푸코 이후 데리다, 리오타르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이 근대와 아울러 현대의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 문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와 같은 경향의 주장을 일컬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최근의 프랑스 일부 철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큰 영향을 받은 미국의 일부 철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큰 영향을 받은 미국의 일부 예술 평론가들이 대변하고 있는 탈근대성 이론이라고 넓게 말할 수 있다.

이미 현대라는 시점을 맞이하면서 과거의 형식적, 제한적 세계관 및 인생관을 전도시킨 대표적인 사상가들로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을 꼽을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히 니체의 '모든 가치들의 전도'라는 기치를 이어받으면서 전통을 해체하려는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전 통적인 철학의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대안과 시도를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직접적 시발점을 마련한 사상가는 니체이다. 또 그 중간 다리는 현대인의 소외의 원인을 기술로 보고 존재론적 차원에서 결단하는 주체로서 현존재 인간을 주장한 하이데거이다. 푸고 데리다, 리오타르 등은 정신분석학, 언어학, 문예학 등을 바탕으로 삼고 현실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전통적 형이상학 및 합리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이며 폐쇄적인가를 밝혀 낸다. 이들은 삶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서 근대성 전반을 비판하고 그것을 해체해 구속당하지 않은 삶과 문화를 정립하고자 한다.


1)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모더니즘(근대성)을 대변하는 말은 이성과 합리화이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대성은 바로 근대성의 연장에 불과하다. 자연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자연관도 근대성의 특징이며 진보의 이론도 근대성의 특징이다. 이러한 견해는 니체의 입장과 일치한다. 니체가 보는 근대성은 합리주의와 기독교 도덕의 결합에 의해서 생긴 것이다. 그것은 허구이자 날조이며, 따라서 퇴폐주의와 허무주의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의 부정적 한계를 예리하게 통찰하고 비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인간이 이성을 확고하게 신봉함으로써 삶과 사회의 합리화가 촉진되었지만, 그것은 일방적 독단적인 것으로서 정당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병적인 것이라고까지 본다. 예컨대 푸코는 <광기와 문명>에서 이성의 담론체계가 비이성의 담론체계를 폐쇄하고 억압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이성의 비이성에 대한 억압을 해체시키려고 한다. 정신병자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해 끊임없이 감시하며 저주하는 것은 광기를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언제나 이성의 냉혹한 응시 대상과 감시 대상으로 남게 한다. 푸코는 정치, 경제, 사회적 제도를 주의깊게 살핌으로써 이성의 비이성에 대한 억압과 지배의 발생을 고찰하고, 그와 같은 병적 상태를 해체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의 인간이 더 이상 이성적 합리성의 주체일 수 없고, 자연 또한 유기적 전체가 아니며, 사회나 역사의 진보 역시 날조된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 다시 말해서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그러한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을 때 세기말의 새로운 현실(후기 자본주의라든지 후기 산업사회와 같은)을 해명하고 새로운 시도를 마련하기 위한 실험적 태도가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2) 모더니즘 위기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 태도

(1) 모더니즘의 위기


사 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화, 기술적 계산, 과학적 전문화가 점차로 증가하는 것을 일컬어 합리화라고 부르는데, 그가 보기에 이러한 합리화는 돌이킬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사실 오늘날 베버적 의미의 합리화는 극단에 달한 감이 있다. 모든 생산체계의 자동화, 컴퓨터의 지배 등은 우리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경제 및 국가의 체제는 합목적적 행위 방식을 기초로 삼고 있으며, 그것은 합리주의라는 명칭을 가지고 삶 전반에 확산되어 가고 있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들도 도구 이성이 이끌어가는 계몽 변증법이 현대사회를 지배해 경직된 형식적 합리주의가 세계를 좌우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베버와 마찬가지로 삶을 염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실천 이성에 의해서 일차원적 사회의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볼 경우 실천 이성 역시 이성 중심적 합리주의의 한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2) 푸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적 태도>


푸코는 로고스(이성) 중심의 합리주의를 전복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를 이어받은 리오타르는 전통과학으로부터 단절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포스트모던의 과학을 예로 들어, 형식적, 독단적, 체계적인 '큰 이야기'를 파괴하고 다양하며 이질적인 '작은 이야기들'을 정립하고자 한다.

리오타르가 말하는 '큰 이야기'는 한마디로 독단적 주장으로서의 허구를 일컬으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성 및 이성에 대한 신뢰를 가리킨다. '작은 이야기'는 독단적 전제를 배제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다원적 담론의 체계들이다.

로티는 <철학과 자연의 거울>에서 해석학은 설명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서 훌륭하게 적응하는 방법으로서의 해석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종래의 인식론 대신 해석학을 인간의 삶의 체험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근대적 사유는 확고한 근거를 바탕으로 삼는 인식론과 아울러 표상이론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로티는 확실한 기초를 근거로 삼아야 확실한 인식이 성립한다거나 또는 외부 실재를 표상할 때 비로소 언어가 의미를 갖는다는 근대적 사유가 더 이상 정당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다양하고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언어도 세계 관계에서 어떻게 쓰여지느냐 하는 '사용으로서의 의미이론'으로서만 타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로티의 입장은 신실용주의 또는 후기 분석철학이라고 일컬어지지만, 형식적, 고정적, 일차원적 사고방식을 해체하려고 하는 점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사상의 흐름은 당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한다. 포스트모더니즘도 예외는 아니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전개되는 무수히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할 때,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 중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푸코: 지식의 고고학과 성의 역사>

푸 코는 데리다, 리오타르와 함께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하는 철학자이다. 푸코의 초기 저술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적 현상학의 영향권 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푸코는 곧 자신의 독자적 사상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푸코는 개인적 신념과 의도를 떠나서 추론적으로 형성되는 지식의 고고학을 발전시켰다. 지식의 고고학은 지식의 근원을 추적함으로써 인간 중심적 사고를 탈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식의 고고학은 한 체계로부터 다른 체계로 사상이 전환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푸코는 니체를 모델로 삼아 계보학적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푸코는 예컨대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와 같은 결정론적 독단론을 배격한다. 왜냐하면 소위 관념론이나 경험론이라고 하는 전통철학은 포괄적인 설명의 도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러한 역할은 단지 허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푸코가 보기에 사상의 체계들이란 무수하게 많은 작고 상호연관성이 없는 원인들이 모여서 된 우연적 산물들에 지나지 않는다. 푸코에 의하면 지식과 권력은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지식은 근세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자발적인 지적 구조가 아니고 사회적 조종체계에 종속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와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한다. 푸코의 철저한 사색의 목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윤리적 자아를 이해하는 데 있다.


<고고학적 방법>

푸코의 고고학적 방법은 바슐라르와 캉길렘의 과학철학, 루셀과 바타이유 및 블랑쇼의 모더니스트 문학 그리고 브로델과 아날 학파의 사료 편찬 등을 종합한 결과이다. <병원의 탄생: 의학적 관점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정신 질환에 대한 윤리적 비판을 신체적 질환에 대한 윤리적 비판으로 확장시킨다. 그러나 푸코는 곧 현대 의학의 바탕에 깔려 있는 언어학적 및 개념적 구조를 분석하기에 이른다.

푸코의 고고학은 특히 문학적 언어구성에 있어서 개인적 주관을 탈피하고 사상사에 있어서 근본적인 범주와 구조를 찾아내고자 한다. 푸코의 계보학적 탐구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한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 체계는 특정한 권력제도가 채용하는 자발적인 지적 구조가 아니다. 권력은 억압적일 수도 있고 창조적일 수도 있어서 그와 같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 조종에 지식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의 역사>

푸코의 말기 저술 <성의 역사> 두 권은 각각 <쾌락의 사용>과 <자기의 관심>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다. 푸코는 성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근대의 주체 개념의 원천을 해명하려고 한다. 푸코는 우선 성에 관한 담론은 인간 의식의 배후에 있는 심연으로부터 형성된다고 본다. 다음으로 그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자기 창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성윤리의 기준은 쾌락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인들은 중세 기독교도들처럼 성행위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성행위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위험하다고 여긴 것은 성 자체가 아니라 지나친 성행위였다. 따라서 푸코는 성에 관해서 인간존재의 미학을 탐구할 경우 우리는 근대의 그릇된 성 관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푸코는 무릇 철학적 주제들은 큰 담론이 아니라 작은 담론에 의해서 논의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3)  데리다

<해체주의자 데리다>


데리다의 해체주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니체, 마르크스, 후설, 하이데거,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 레비나스, 프로이트, 라캉 등 매우 다양한 사상가들의 핵심 이론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데리다가 말하는 해체(deconstruction)는 바로 차이(difference)를 근거로 삼고 있다. 해체는 전통적인 존재 형이상학의 해체이며 동시에 독단적 사유의 해체이다. 일부 사람들은 데리다의 해체를 일컬어 텍스트 읽기의 한 양식으로 본다. 즉 텍스트를 고정된 틀 안에서 읽지 않고 자유롭게 읽는 양식을 해체라고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는 데리다 자신의 철학함의 방법이며 그것은 전통형이상학을 떠나서 전적으로 다른 것에 접근함으로써 불가능한 것을 체험하는 태도이다.

데리다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것의 체험이란 독단적 형이상학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해체의 방법에 의해서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차이와 동일성>

데리다에 의하면 전통형이상학은 자기 동일적 직립성을 진리의 가치로 주장한다. 예컨대 전통적 의미에서 실체는 자기-원인을 소유하며 자기 동일적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글보다 말이 존재론적 우월성을 가진다는 전통적 사고에 의해서 동일성만 주장되고 차이는 무시되었다고 주장한다. 차이는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 데리다의 견해이다.

데리다의 차이, 해체 등의 개념은 헤겔 및 하이데거의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 하이데거는 시간을 존재의 지평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데카르트, 칸트에 이르기까지의 형이상학의 역사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형이상학적 시간은 동일성의 시간이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견해를 따라서 모든 개념은 차이들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본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형이상학의 역사의 해체는 존재자들의 존재에 관하여 근원적인 예술적 언명을 밝혀주지만 데리다는 사유의 출발점으로서의 근원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원이란 실체와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동일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언어 문제를 논의하면서 전통철학에서는 발언이 글쓰기 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말한다. 발언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서 직접 사유를 표현함에 비해서 글쓰기는 발언의 기호 역할만 담당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음향적 글쓰기는 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데 반해서 비음향적 글쓰기는 덜 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데리다에 의하면 존재의 형이상학의 바탕을 구축한 것은 논리 중심적, 음향 중심적 사유이므로 그는 그러한 사유를 해체하고자 한다.

데리다는 발언과 글쓰기를 엄밀히 구별할 수 없으며 발언과 글쓰기 모두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차이라고 말한다. 물론 데리다는 존재의 형이상학(동일성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해서 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차이는 모든 종류의 첫째가는 또는 중심되는 용어가 참다운 의미에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즉 실체와 같은 용어는 발언에 의해서 성립된 동일성을 표현하므로 실체라는 용어는 해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이는 해체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며 차이라는 용어는 예컨대 혜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흐른다',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 또는 '한 번 들어간 물에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명제들이 뜻하는 생성 변화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데리다의 차이 개념에 대해서 가다머, 하버마스 등 여러 사람들이 반박했지만 데리다는 그러한 반박을 또 다른 차이로 여겼다. 데리다는 윤리, 정치적인 측면에도 차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전통적 현실을 해체하고 개방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4) 리오타르

<작은 담론을 주장하는 리오타르>


리오타르는 푸코 및 데리다와 함께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하는 철학자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 형이상학적 철학을 해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리오타르가 보기에 현대의 후기 산업 사회와 후기 자본주의 사회 역시 형이상학적 철학의 산물로서 인간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리오타르는 작은 담론(petit discours)에 의해서 큰 담론(grand discours)을 해체함으로써 개방적인 새로운 철학함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큰 담론의 해체>

리오타르는 형이상학적 철학(전체화의 철학)을 해체해야 할 가장 대표적 예를 아우슈비츠에서 찾는다. 근대성은 자유, 해방, 휴머니즘의 보편적 실현을 목적으로 삼는 낙천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근대성의 이러한 경향은 정치, 경제, 과학, 예술 철학에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좌절과 실재를 맞이하였다. 리오타르가 보기에 이것은 근대성의 위기이며 형이상학적 철학 내지 독단적, 이론적 미학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근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후기 산업사회에서도 여전히 큰 담론(형이상학적 독단적 철학)이 지배적이다. 큰 담론을 구성하는 것들은 정신의 변증법, 의미의 해석학, 합리적 주체, 노동자의 해방 등이다. 큰 담론의 형태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그것들은 합리론, 관념론을 비롯하여 실증주의,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등 결정론적인 독단적 형이상학의 성격을 지닌 것들이다.

포스트모던의 미래지향적 지식의 조건이라는 관점에서 볼 경우 큰 담론은 현재 상태의 위기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증대시키기까지 하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또는 철학)은 작은 담론에 의해서 큰 담론을 해체하고자 한다.


<형상과 리비도와 작은 담론>

리오타르가 작은 담론에 의해서 큰 담론을 해체하려고 할 때 도대체 작은 담론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리오타르에 의하면 작은 담론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형상인데 형상은 심도에 따라서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것들은 각각 상의 형상, 형태의 형상 그리고 모체의 형상이다. 우리는 담론의 표현에서 상의 형상을 그리고 담론 내에서 형태의 형상을 발견한다. 그러나 담론 자체의 근거는 환상적 모체 내지 원형의 형상이다.

물론 담론은 언어에 의해서 성립하는데 언어의 논리적 질서는 상의 형상에 해당하고 언어 내의 비-언어의 현존은 형태의 형상이며 그것은 담론 안에 자리잡고 형상들은 논쟁(differend)의 요소들로써 예술은 이 요소들에 의해서 성립한다. 리오타르의 논쟁은 데리다의 차이(difference)에 매우 근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오타르에게 있어서는 형상론이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나 철학의 기본이기도 하다. 형상들은 큰 담론을 해체하는 작은 담론의 기초이자 근거이다.

리오타르의 형상론은 이미 그의 비판적 미학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채용하고 그것을 적용해서 예술의 성립요소들을 분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리오타르에 의하면 예술은 형상을 원하고 아름다움은 형상적이며, 연결된 것이 아니고 율동적인 것이다. 여기서 연결된 것이란 체계적이며 형식적인 것을 그리고 율동적인 것은 역동적이며 심층적인 것을 의미한다.

리 오타르는 "인간의 작품이 모체의 후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작품은 우선 예술을 그리고 다음으로 인간이 만든 모든 산물을 뜻하며 모체는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원형으로서의 욕망, 곧 리비도를 뜻한다. 리오타르에 의하면 우리는 욕망(리비도)을 작은 담론에 의해서 표현할 수는 있어도 결코 큰 담론에 의해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 경제, 예술, 사회, 과학, 철학 등에 있어서의 절대론이나 결정론은 큰 담론으로서의 허구이므로 작은 담론에 의해서 해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리오타르의 철학함의 궁극 목적은 자유와 해방이다. (리오타르에 관한 설명의 대부분은 필자의 저서 <니체와 예술>에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12.  들뢰즈

<생동하는 이미지>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처럼 전통형이상학의 철학을 해체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선험적인 제1원리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들뢰즈는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 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베르그송 등의 사상을 철학사적 맥락에서 연구하였고 그들의 사상을 종합하여 생동하는 철학함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들뢰즈의 철학은 철학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성립하지만 그의 철학사는 서양철학사 전체를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철학자들을 골라서 그들의 사상만 탐구한다. 그 결과 들뢰즈는 전통형이상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양자를 모두 연결할 수 있는 중도적 철학을 구성한다.

들 뢰즈의 철학은 단순히 정지되어 있는 형식논리를 떠나서 차이와 우연을 부가시키며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주장하는 기표와 기의의 기호가 아니라 사건 내지 사태로서의 대상을 탐구한다. 또한 들뢰즈의 철학은 지속의 철학이므로 힘의 내용과 표현형식을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힘의 내용과 표현형식은 분리 불가능하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시간과 강도와 지속은 모두 뿌리줄기(rhizome) 이다. 뿌리줄기는 객관이나 주관을 고정시키는 단위가 아니고 항상 생성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들뢰즈가 그의 동료인 정신분석학자 가타리와 함께 말하는 뿌리줄기는 구조적이거나 발생적인 관계가 아니라 다른 뿌리줄기와 연결될 수 있으므로 뿌리줄기의 어떤 점은 수시로 소멸하고 동시에 생성된다.


<이미지-운동과 이미지-시간>

들뢰즈는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는, 다시 말해서 부분들을 초월하여 전체를 주장하는 철학을 벗어나서 연속적인 운동의 관계를 주장한다. 전통형이상학의 철학은 독단적 원리를 강조했음에 비해서 들뢰즈는 생성 변화하는 관계(뿌리줄기들의 관계)를 제시한다.

-운동> 두 저술을 통해서 물질과 기억(정신)의 특징 및 관계를 밝힌다. 들뢰즈가 이미지를 논의하는 것을 보면 그가 베르그송의 생명의 약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들뢰즈는 물질과 기억 역시 분리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미지-시간(기억-지속)의 관계 또는 확장에 의해서 이미지-운동(물질)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물질이나 공간은 단지 실용적 지성의 산물이고 물질과 공간도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약진인 지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물질은 뿌리줄기(rhizome)들로서의 지속의 관계 내지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는 영화를 감상하면서 생생한 역동적 감동에 젖는다. 영화필름은 수많은 조각으로 연결된 공간적 물질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우리가 영화를 감동적으로 감상하는 이유는 물질적 영화필름의 근거가 바로 이미지-시간(기억-지속)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창조는 개념의 창조이다>

들뢰즈는 정신분석학자이며 정치활동가인 가타리와 세 권의 저술을 공저하였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두 권은 각각 <앙티-외디푸스>, <백 개의 고원>의 부제목을 가지고 있으며 전자는 현대사회의 허무주의적 성격을 분석하고 있고 후자는 무수한 뿌리줄기(rhizome)들, 곧 개방된 전체의 실현을 의도하고 있다.

소쉬르는 기호에 있어서 청각상(signifiant)과 개념(signifie)을 구분하지만 들뢰즈는 어떤 사건에 의해서 내용과 형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내용과 형식을 절대적으로 구분하면, 개방된 전체가 드러날 수 있다.

들 뢰즈는 가타리와 함께 철학의 과제는 과학의 과제와 다르다고 말한다. 과학은 진리와 창조의 외적 국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추구하는 데 비해서 철학은 개방된 전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곧 기억-지속을 제시하기 위하여 개념을 창조한다. 과학은 사건의 상태와 물체의 혼합을 추구하지만 철학은 지속적 사건의 내재적 변화로부터 개념들을 창조한다. 세계의 근원인 뿌리줄기를 지속적이고 창조적으로 보는 들뢰즈에게 있어서 철학의 과제가 개념을 창조하는 데 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개념은 기존의 정지된 형식적 단어가 아니고 베르그송이 언급한 개방 도덕이나 동적 종교에 대응한다. 들뢰즈는 뿌리줄기들이 구성하는 부정적 국면과 긍정적 국면 양자를 모두 보면서도 개방된 전체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는 후기 산업사회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암울한 모습을 응시하면서도 창조적 기억-지속의 가능성을 역설하였다.



13. 라캉

<상상과 상징과 실재를 말하는 라캉>


라캉은 프로이트주의자를 자처하면서 헤겔과 하이데거의 철학 그리고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및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간학을 정신 분석학에 접목시킴으로써 현대 프랑스 정신분석 학의 새로운 위상을 확립한 이자 철학자이다.


<주관과 객관 사이의 틈>

라캉은 헤겔 변증법 철학의 영향을 받아 주관과 객관 사이에는 차별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헤겔은 <정신 현상학>의 자기 의식을 다루면서 자기 의식의 예로서 주인과 노예를 제시한다. 주인은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예가 노동한 결과를 소유하고 노예는 노동하지만 결과물을 소유하지 못한다. 주인의 의식과 노예의 의식은 모두 불완전한 의식이고 결국 노예가 노동하여 생산한 것을 소유할 때 노예는 참다운 자기 의식을 소유한다. 주인과 노예의 틈 내지 갈등(모순)을 근거로 라캉은 프로이트의 의식되지 않은 것을 이해한다.


<상상과 상징과 실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찬가지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궁극적 목적은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라캉은 인간의 심리과정을, 그 중에서도 특히 의식되지 않은 것(심층 심리과정)을 분석하여 그 이론을 전개시킨다.

라캉에 의하면 자아 기능을 구성하는 첫 번째 단계는 거울 단계로서 그것은 상상의 단계이다. 생후 6개월 이후 아이들은 의도적 통일을 위해서 외적 모델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은 거울을 통해서 또는 타인의 행위를 모방함으로써 자기들의 상을 발견하는데 이것이 바로 상상의 단계이다.

라캉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과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간학의 영향을 받은 이후 상상이론을 상징이론으로 대치시킨다. 소쉬르에 의하면 모든 단어는 청각상(signifiant)과 개념(signifie)으로 구성되는 기호이다. 라캉은 소쉬르를 따라서 인간의 모든 정신과정은 의식하는 것과 의식된 것의 갈등(틈)을 소유한다고 본다.

욕망 안에서 언어는 기호화하는 것을 통해 기호화된 것을 표현하지만 이들 양자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있다. 욕망은 기표로부터 기의로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동일화(자아)를 산출하지만 항상 새 동일화를 산출하기 때문에 언제나 동일화를 해체한다. 이 단계에서 욕망(의식되지 않은 것)은 기호체계의 상징 역할을 담당한다.

말년의 라캉은 프로이트의 죽음의 충동이라는 에너지를 상징적인 것에 의해서 순화시키려고 하였다. 결국 라캉이 보기에 실재는 상상도 아니고 상징적인 것도 아니며 현실적으로 파악 불가능한 실재이다.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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