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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스크랩] 노마드와 혁명

by 8866 2007. 1. 2.

노마드와 혁명

Sadie Plant


Ⅰ 

들뢰즈가따리의 천개의 고원과 앙띠 외디푸스라는 두 배치물인 기계는 68년 혁명이 제기했던 전통좌파를 넘어서는 권력과 욕망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 두 사람은 미쳐가는 자본주의를 심판하면서도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정립하거나 승인하는 것으로 멈추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 두 사람의 미지정치학은 겉으로는 시스템을 거부하면서도 밀접하게 유사한 시스템을 구축하였던 맑스주의 내에 있는 헤겔적 전제조건을 거부한다. 이제까지 전통적 혁명주의 노선은 전체주의에 반대하면서도 필연적으로 정체성이라는 권위를 부과하면서 대항혁명으로 사람들을 단일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정치투쟁의 새로운 형태에 찬사를 보내왔다. 그러나 유목민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게릴라전술은 혁명전략을 대신하여 욕망을 계급이나 집단 또는 개인들간의 연합과 분리시키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분리만이 시스템화되지 않고 선형적이지 않은 계기 속에서, 이행하는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다중(multitude)의 야성화된 수준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화를 거부하고 코드와 질서의 권위에 저항하면서 유목민의 세계에 대한 탈영토화는 세계를 안정화하고 코드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혁명적인 것은 모든 요구를 자유롭게 하고 그들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체성과 결속을 침식하는 것일 뿐이다.

들뢰즈와 가따리의 노마돌로지는 반예술적 운동인 다다이즘과 68년 5월 투쟁과 아우토노미아운동과 반체제 청년운동과 부르주아 관습에 대한 여행자들의 유목민적인 저항이라는 가차없는 전복의 경로를 따라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들뢰즈에게 왜 노마드적 전략이 중요한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들뢰즈 가따리의 저작이 말하고 있는 근본적인 반역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들뢰가따리에 의해 이론화했던 코드를 전복하고 그로부터 탈주하려는 파괴자, 예술자, 시인은 혁명세대의 모험과 패배의 과정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됐다. 물론 들뢰즈와 가따리의 실천적 사유는 역동적인 정치적 텍스트로 이야기될 수 있다. 그 이론은 리좀, 노마드, 분자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면서, 재현적인 형태로의 인도를 회피하고 추론적 기능이라는 전위적인 개념을 거역한다. 들뢰즈가따리의 저작은 권고, 추천, 함축의 의미로만 평가될 수 있다. 엄밀한 철학과 이론의 원형이라기보다는 특이한 접근을 통해서 들뢰즈가따리가 갖고 있는 이론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정치적 빛을 비출 수 있을 것이다.



Ⅱ 

노마드적 사유는 푸꼬와 리오타르에 의해서 1968년 이후에 추구하던 노선이기도 하다. 그 시기 이론가들은 일종의 변증법적 사유가 권력과 질서의 한 측면이라고 보았으며, 사유의 방식을 해결책과 동일성에 대한 숨막히는 효과에 맞서게 하고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저항과 반역의 순간은 위대한 이념과 중심적인 적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분열적 다양성에 의해 세례받은 사건, 경험, 욕망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만개하였다. 이들의 사유들은 헤겔과 맑스의 틀에서 전제되었던 사회라는 개념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1968년 이후에 이들 이론은 자본주의를 단일하거나 중심적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유연하고 변화하는 것으로, 권력의 실행자와 권력이 없는 자간의 어떠한 명백한 구별도 없는 권력의 다중성으로 구성된 혼재된 비시스템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차이와 다중성에 대한 관점은 분자적 배치에 관련된 미시정치학에 관심을 갖는다.

들뢰즈가따리의 미시정치는 전통적 정치철학이 의존해 왔던 사회적 정체성과 주체를 침식하면서도 생산하는 욕망기계의 느슨하고 아나키적인 배치로 인식된다. 이러한 욕망들은 사회적 조직들에 의해 코드화되고 식민화되었을지라도 지속적으로 전복적이다. 그러므로 국가들이 만드는 제 조건은 의도치 않게도 혁명적이고, 대중적이고 소수적이고 소통적인 기계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유례없는 조건들, 즉 대항공격의 가능성을 재창조한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를 생산하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따리는 사회적 질서가 맑스의 말처럼 '자본주의의 무덤파는 자를 생산하는 방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1970년대에 가따리는 새로운 전선의 증식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 새로운 전선을 증식하는 운동은 이민노동자, 강제노동에 대해서 불행하게 생각하는 숙련노동자, 이중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 생태론자, 민족주의자, 정신병자, 동성애자, 노인, 어린이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어떻게 시스템에 요구할 수 있으며, 시스템의 배후에서 분자혁명의 벡터장을 구축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들뢰조가따리안의 정치학적 질문으로 간주된다. 일단 주변그룹들의 중요성과 그들의 경험이 구축되면서, 어떻게 그들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위계제적인 조직과 제한적 코드와 포획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가? 1973년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혁명의 문제는 특이한 목적의 투쟁들이 당이나 탈영토화라는 자유를 반대하는 덫들에 빠지지 않으면서 연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즉, 무엇보다도 노마드의 문제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한 진술은 전쟁기계의 생산으로 인식되어진다. 그러한 정치학은 사회적 조직과 사유와 닫힌 구조가 고립되고 동일화되는 것을 탈안정화하고 방해하는 탈주선을 따라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는 전쟁기계를 전유하는 군사기계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인식하면서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된 전쟁기계는 국가의 적이라고 말한다. 탈주선은 지속적으로 코드화와 통제에 대한 투쟁을 생산할 뿐이다.

들뢰즈가따리는 서구이성을 특징짓는 기원과 단일성과 질서지워진 해결책에 대한 전반적 추구를 거부한다. 주체나 사회적인 조직된 원칙이나 억압과 소외, 착취들의 어떤 여지도 갖지 않고, 오래된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침식되었다. 이제 권력관계는 일반적 원칙을 넘어선 구조적 차원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시스템적인 것이나 노동자, 여성, 청년 소수자들에 대한 일반화된 억압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해방이란 불안정성을 코드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증식을 원하는 것이다. 즉, 차이와 특이성이 만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새로운 혁명- 노마드-는 흑인과 백인과의 차이를 계급투쟁으로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며, 욕망의 복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들뢰즈가따리의 실천은 분자적인 것이 되는데, 분자적인 것이란 민중적 사회적 집단의 연대가 아니라 욕망의 배치를 다루는 것이다.



Ⅲ 

주된 관심은 '재영토화에 저항하려는 욕망이 어떻게 강렬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이다. 우리가 노마드적 저항의 문학적이고, 파격적인 사례를 살펴본다면, 영국사회에서는 자유 페스티발운동을 하는 여행자들, 미디어를 통해 정체성을 갖는 산만한 작품들, 적대의 다양한 수준들, 평화시위대, 히피시위대, 새로운 집시집단 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들뢰즈가따리의 노마드처럼 사건들과 욕망들을 관통하고 형성하는 바로 그 코드의 실존에 대해 저항한다. 그들은 더 오래된 코드를 전유하고, 새로운 코드를 창안하면서, 그것을 넘어서고, 그것에 딴지를 걸어보고, 유행하는 그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살아간다. 실존하는 이 여행자집단은 실존하는 코드와 영토를 거부하면서도 모든 형태의 코드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들의 노마드적인 거부행위는 새로운 도덕적, 미학적, 정치적 코드의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다.

들뢰즈가따리는 우리에게 노마드란 반드시 여행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노마드란 구축된 코드와 관습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들뢰즈가따리가 강조하는 구축된 질서와 조직의 시스템과 영토에 대해서 자유롭게 되라는 것은 1968년 혁명에서 만개했던 실천이기도 하다. 혹자는 68년 혁명은 냉전이후 세대의 소비문화적인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죽음을 선고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혁명은 이제 가능하지 않다고까지 말할 것이다. 그러나. 1968년 혁명은 전통 혁명노선을 넘어선 쾌락, 욕망, 상상, 자발성, 직접성등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혁명과업을 절규하며 말하기보다는 페스티발적이고 카니발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한 그들이 거대한 반란을 만들었던 것이다.

예술가가 예술의 해방을 말하고, 축구선수가 메니저를 걷어차면서 '축구는 축구선수에게 맡겨라'라고 요구할 때, 무덤파는 자는 묘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재현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사람들은 소통의 매개없는 비판을 요구하게 된다. 68년 혁명은 바로 모든 정치적 재현 형태 자체마저도 비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재현의 정치학을 열어제꼈다.

관료제와 위계제, 분리와 매개, 조직화와 권위에 대항한 투쟁과 연루되면서 68년 활동가들은 산만하고 파악하기 힘든 운동이었지만, 정부에 맞서게 되었다. 들뢰즈와 가따리는 관례적인 용어들과 기존 혁명정치학의 이론으로는 이것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사고를 계발한다. 활동가들은 전통조직들과 대항조직이 적합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위는 와일드 캣(불법시위)이었고, 대부분의 조직의 형태도 공장평의회에서 일어났다. 활동가들은 오래된 정치적 실천을 따르기를 거부하였고, 동일화되고, 코드화되고, 영토화되고, 포획되기를 거부했다. 이 운동에 적용된 전술 중의 하나는 주어진 정립된 목표가 없으며, 받아들여져야 하고 이해될 만한 방식으로 틀지워져 있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동이 위계제를 거부하였다 할지라도 지도자와 스타와 조직가는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스테리하게도 아나키스트와 트로츠키주의자의 침투로 인한 것이라고도 언급되기도 했다. 학생혁명에 있어서도 가디언이 말하는 의존할 만한 두 사람은 마르쿠제와 콘 벤디트였다. 그러한 언급을 운동을 재포획할 위험을 드러낼 뿐이다. 들뢰즈와 가따리에게 있어서 1968년 5월은 거시정치학의 관점에서는 더 이상 받아들여 질 수 없는 분자적인 것이었다.

68년 혁명에 주로 영향을 준 것 중에 하나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와 같은 초기의 전위적 운동이었다. 다다이즘의 실천적인 니힐리즘의 외침은 들뢰즈가따리가 주장하였던 일종의 노마드적 전략과 매우 밀접하다.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국가와 도시를 횡단하듯이 이상을 횡단한다. 노마드임에는 틀림없다." 다다이즘의 주장자는 '모든 것은 소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를 위해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무의미한 단어인 다다는 도전이었으며, 그들 자신보다는 용어상으로 정립할 수 없는 다다의 규정은 운동의 구별되는 성격이었다. 다다는 목표와 희망없이, 조직없이 존재하며, 인간의 이성적인 사기를 파괴하고, 자연적이고 비이성적인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트리스탄 짜라(Tristan Tzara)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여전히 똥이지만 이제까지 우리가 원했던 오색찬란한 똥이다." 그리고 그는 1918년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히 오해될 강하고 직설적이고 꼼꼼한 작품이다." 다다이즘은 스스로 도발과 충격 전략이 갖는 효과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운동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소멸하였다. 그 자리에 초현실주의가 만개하는데,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처럼 코드화와 정체성화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것을 거부하고, 거의 비밀스러운 행위자로서 작업을 선택하였다. 그들의 구성원은 겉으로는 시인이나 예술가인 척 했지만 사실은 동시에 혁명가로서의 통합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종의 일종의 게릴라 전사로서 참여하였으며, 그들 스스로가 경멸하는 도덕적, 미적 코드 안에서 그것에 맞서기 위하여 활동하였다.

다다이즘은 전쟁의 광기를 문학적으로 취하려는 시도였다. 들뢰즈가따리의 용어를 빌자면 다다는 우리 사회의 매끄러운 기능을 배제한 탈주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게릴라적 행동은 내적이고, 도발적이고, 중단시키는 기법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기법은 이후에 들뢰즈 가따리에 의해서 횡단하고 탈영토화하는 전쟁기계라는 용어로 이론화된다.

이러한 전쟁기계라는 표상은 비정체성화된 것이었지만 정체성화의 도전에 의해서 반체제 젊은이들(Ansry Brigade)의 폭력적인 행동이 되었다. 국가장치를 넘어선 전쟁기계라는 표상은 테러리스트의 행동과 쉽게 동일시될 위험이 있다. 반체제 젊은이들은 익명성과 편재성이라는 의미를 증식시켰다. 그들의 공격목표는 상징적인 것이었으며, 어떤 특정한 의미가 연루되어 있었다. 그 운동은 1970년대 말 68년 혁명이 정체되어가는 과정에서 연일 신문지상에는 폭탄투척과 테러로 변질된다. 그 테러리스트들은 그것을 통제의 메커니즘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

"믿을 만한 것은 우리의 투쟁이 경찰(pig)들이 가장 중한 범죄자라고 규정되는 바에 제한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때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첼시의 폭탄투척에서의 발표문을 읽어보자.


당신이 지겨워지는데 바쁜 것만은 아니라면, 소비하는데 바쁜 거겠지,

미래는 우리 것이라네

인생이란 최신의 스커트나 셔츠에 임금을 소모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지겨운 것만은 아니지.

형제들여, 자매들이여,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뭐야?

마약가게에 앉아 있는 거야? 멀고 먼 텅비고 지겨운 것을 바라보는 거야? 무미건조하게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거야?

혹은 이런 거 아닐까 이런 걸 모두 날려버리고 태워 버리는 거 아닐까?


이 반체제 젊은이들이 외적인 통제와 구조에 맞서고 있었을 때, 그들은 자율주의적 노동자계급의 자발성에 대해서 신뢰를 보내고 있었고, 직접행동과 욕망의 실현을 선동했다. 이들 게릴라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노동자와 학생, 교사와 노동조합원, 동성애자와 실업자와 여성들로 구성된 혁명의 폭력적 행동주의였다. 반체제 젊은이들은 거대하고, 산만하고, 정립되지 않은 반체체분자의 연합의 이미지를 증식시켰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알기에는 너무 많이 모였다.

이제서야 우리는 그들 모두가 우리 형제 자매로 소유권에 맞서서 범죄를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우리는 한 사람이 있든지, 반체체운동의 멤버가 있지 않든지 요구할 입장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말한다. 반체제 운동은 도처에 있다고 말이다.

열 명의 남성과 여성이 만나더라고 그들은 삶의 고통보다는 폭력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려고 할 것이다. 절망의 끝과 전략의 시작으로부터 말이다.

편재되어 있고, 비정체성화되어 있다는 생각은 이렇게 표출된다. '그들은 우리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이다.

테러리즘의 문제가 들뢰즈가따리에게 적용되면서 전쟁기계로 머리에서 떠올랐을 것이다. 70년대 이탈리아는 붉은 여단이 더 파괴적이고 혼란된 선언을 하였고,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체제 운동은 대학과 공장에서의 1977년 로마와 밀란에서의 거대한 시위와 연관되어 있다. 77년 운동의 과정에서 네그리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붉은 여단의 수괴라는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그 근거로 그의 정치비평이 실재연루처럼 덮어씌워졌다. 들뢰즈가따리에 의해 고무된 철학은 사실상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 자율주의적 활동의 과정에서 갱신된 발전과 직접적 실현에 기초한다. 77년 운동은 직접성의 요구로 구성된다. 그 운동은 위대한 사상의 전체주의적인 추상과 노동과 희생이라는 모든 형태와 당기관과 다른 관례적 기관과의 협동을 모두 거부하였다. 붉은 여단의 게릴라 활동은 전쟁기계의 형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 납치랄지 폭탄투척 등을 수행하면서 사실상 들뢰즈가따리의 노마드적 전략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권력과 미디어가 작동하고, 어떻게 민중이 코너에 몰려 있고, 어떻게 수감되어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의심할 바 없이 화가 나게 된다. 그러면 어디에선가에서 민중들의 다리로 총알이 날아들 것이다." 가따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노마드적 전쟁기계의 무기가 반드시 테러리스트 조직의 무기인 것은 아니다. 게릴라의 전쟁수단은 메트로폴리탄의 인디언에게 직위를 부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얼굴에 페인트칠을 한 파라독스적인 인문들로서 다르게 행동했다. 그들은 이따금씩 가게를 털어 쓸만한 물건을 전유했으며, 자주 우아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랄지, 최고급 레스토랑에 나타나서는 돈을 내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라디오 알리체 운동과 연루되었는데, 이 자유라디오는 이후에 이 시대 상징으로 불리웠을 정도로 실험의 잊지 못할 시절들을 만들었으며, 지성을 축적하였고, 조직과 정치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라디오를 작은 전쟁기계로 사용하면서 여론과 대중미디어의 독점적 사용과 관습적 소통에 맞섰다. 라디오 알리체는 예술적 소통과 혁명적 변화와 전복적 실천들 사이에 다리를 잇는 전위예술가의 꿈이 되었다. 그것은 욕망하는 목소리를 가져다 주었고, 선동가로서 말하였다. 가따리에 따르면 1977년운동은 21세기의 운동의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질서를 보여준다. 경찰이 알리체를 압수했을 때 가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혁명적 탈영토화의 운동은 여전히 소멸할 수 없을 것이다...."


Ⅳ 

들뢰즈가따리의 철학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상상적이고, 유동적이며, 노마드적인 그러한 전략의 특성은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해방적인 것으로 떠받들어지고 지지될 것이다. 다다이즘의 운동에서, 68년 반체제운동에서 70년대 자율주의운동에서 들뢰즈가따리의 노마드적인 전쟁기계라는 용어는 더 풍부하게 논의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부분은 스스로 코드의 특정한 부위와 특정한 사회적 배치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코드와 구조 자체를 문제삼았었다. 심지어 다다이즘마저도 그들이 자의적이고 무의미하게 목적없이 행동을 수행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대를 함축하고 있었다. 다다이즘은 문학적으로 비관주의적인 아니었다.

들뢰즈가따리는 그들이 기술하는 운동의 입장을 취했을 것이다. 국가권력, 구축된 질서, 노마드와 전쟁기계, 구성과 재구성을 둘 다 유지하기,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탈코드화와 재코드화, 끊임없는 역능과 활력의 작용 등이 그러하다. 이것은 탈주선이라는 탈코드화가 재출현할 지라도 낮 이후에는 밤이 오듯이 혁명에는 반혁명이 따른다는 슬픈 순환고리에 사로잡힌 코드는 아닌가? 그러나 그들의 전술은 노마드적인 것일지라도, 전략은 혁명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단지 혁명과 해방만을 만드는 전복적인 질서의 욕망의 능력만은 아니다. 그러한 판단은 그들이 채택하는 노마드적 형태라기보다는 특정한 요구와 투쟁의 내용의 기반을 만들어 줄 것이다.

들뢰즈가따리는 특정한 사건과 특이한 요구와 욕망의 다중성을 해석하려 하는 전체주의자적 사고에 위험에 대해서도 말한다. 노마드적 실천의 역동성과 유동성은 많은 다른 그리고 더 의미있는 투쟁에 유용할 것이다. 들뢰즈와 가따리의 노마드 전술은 전략을 급상승시킬 것이며, 특정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 안에서 그에 맞선 유동하는 가치의 전술이라기보다는 규범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될 것이다.

붉은 여단은 스스로 광범위한 정치적 맥락을 파악하는데 최종적인 무능력을 드러냈다. 그들은 만개하고 있고, 다양화되고 있는 운동을 상처 입히고, 비밀조직을 선동하면서, 사회적인 공통된 적으로서의 행동을 수행하여, 유례 없는 감시와 통제의 상황을 초래하고, 테러의 지배보다 민주주의의 희생이 낫다는 관점을 불러 일으켰을 뿐이다.

우리는 역사와 문맥과 목적에서 광범위한 인식을 공유하는 동일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는데, Wat Tayler라는 농부가 일으킨 세금수납반대운동 같은 것이다. 노마드전술이 놀라울 정도로 자유와 상상적인 전복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많은 급진단체들은 기존의 병들고 노쇠한 용어들에 천착하고 있다. 미시정치학이 갖는 위험을 들뢰즈가따리는 명료하게 표현한다. 그것은 단지 수단일뿐 이론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기획은 분명 특정한 형태의 정치적 활동의 열정과 취향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반역과 혁명의 세대가 발전시킨 이 이론을 넘어서서 효과적으로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일반적인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끄는가? 같은 전체적으로 유용한 질문 말이다.

내용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redshand님의 블로그
출처 : "아드랜찌크"의 밤
글쓴이 : 레르몬또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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