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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스크랩] [김 일]김일성과 항일유격대에 참가

by 8866 2006. 5. 22.
김일(金一) - 김일성과 항일유격대에 참가

김일(金一)1910∼1984.

사회주의운동가·정치인. 본명은 박덕산(朴德山).

함경북도 경성군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1년 동만주에서 반제동맹에 참가하였고, 1935년 1월 공산청년동맹 연길현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같은 해 10월 항일유격대에 참가하였다.

1938년 11월, 항일연군 제1로군의 조직재편이 단행되어 김일성(金日成)이 이끄는 제6사가 제2방면군으로 개편될 당시 제2방면군 제8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1940년 이후 일제의 대토벌을 피해서 소련영내로 이동해 간 후, 1941년에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에 있던 항일유격대의 남야영(南野營) 당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소련으로 이동해 간 뒤에도 소부대를 이끌고 만주로 돌아가 왕청현(汪淸縣) 일대에서 지하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42년 7월에 결성된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에서 김일성(金日成)이 영장이었던 제1영의 당서기가 되었고, 항일유격대 출신인 허창숙(許昌淑)과 결혼하였다.

광복 직후 북한으로 돌아온 뒤, 초기에는 당과 군사분야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평북도당 위원장이 되었고, 1946년 4월에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6년 8월 신설된 보안간부훈련대대부 문화부사령관에 취임하는 한편, 북조선노동당이 창립되면서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4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된 이래 사망시까지 계속 당선되었다.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군시 문화부사령관(文化副司令官)에 취임하였다.

한국전쟁중 민족보위성 부상·내무성 정치국장·전선사령부 군사위원으로서 군의 정치사상분야를 담당하였으나, 1950년 12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차전원회의에서 군의 정치공작사업 실패를 이유로 비판을 받고 파면당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그는 곧 재기하여 전후에는 줄곧 정권기관에서 김일성을 보필하였다. 1953년 6월 박헌영(朴憲永) 등 남로당계 지도인사들이 당에서 축출되는 과정에서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되었다. 1953년 8월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뽑혔고, 1954년 3월에는 내각 부수상에 기용되었다.

1959년 1월부터 1972년 12월까지 내각 제1부상으로 내각 수상 김일성을 보좌하였고, 시종일관 김일성·최용건(崔庸健)에 이어 권력서열 3위의 자리를 지켰다.

1972년 12월에 새로이 제정된 헌법에 따라 생긴 정무원의 총리가 되었으며, 1976년 4월에는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되었다. 1984년 3월 9일 오랜 병고 끝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와다 하루끼 저, 이종석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2),
조선로동당연구(이종석, 역사비평사, 1995),
東北抗日遊擊日記(周保中, 北京, 人民出版社, 1991),
東北地區革命歷史文件匯集 61(甲)∼65(甲)(東北地區革命歷史文件匯集編輯委員會, 白城市, 中央黨案館·遼寧省黨案館·吉林省黨案館·黑龍江省黨案館 共同出版, 1990∼1992),
現代史資料 30(姜德相 編, 東京 みすず書房, 1976),
김일동지의 략력(로동신문, 1984.3.10.).
<이종석(李鍾奭)>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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