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상인들이 사용한 운송도구
1. 조선시대의 수상 운반수단.
사공은 머릿수대로 운임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짐은 어떻게 했을까. 그림 가운데의 소쿠리 정도야 부피와 무게가 적으니 그냥 넘어가더라도 소의 경우는 따로 삯을 쳤을 것이다. 다만 그 매기는 값의 기준이 궁금해진다.
참고자료 - 롯데민속박물관
2. 짐을 나르는 나룻배
짐과 사람들을 싣고 나르는 나룻배의 모습.
나룻배는 나루(=진두)에서 쓰인 배로 진선(津船)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룻배가 국가적으로 관리되었는데, 책임자를 도승(渡丞)이라 하였고 그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를 배치하였다.
보통의 나룻배는 모두 평저선(平底船)으로, 건조 뒤 5년이 되면 수리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3. 사람과 가축을 나르는 나룻배의 모습.
나룻배는 나루(=진두)에서 쓰인 배로 진선(津船)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룻배가 국가적으로 관리되었는데, 책임자를 도승(渡丞)이라 하였고 그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를 배치하였다.
보통의 나룻배는 모두 평저선(平底船)으로, 건조 뒤 5년이 되면 수리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4. 나루터의 전경.
나루란 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다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도록 정해놓은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루터 혹은 진두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나루터는 국가제도로 규정되어 국가적으로 관리를 받았다. 담당관리를 도승(渡丞)이라고 하며, 도승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가 배치되었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5. 나룻배의 모습.
나룻배는 나루(=진두)에서 쓰인 배로 진선(津船)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룻배가 국가적으로 관리되었는데, 책임자를 도승(渡丞)이라 하였고 그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를 배치하였다.
6. 짐을 나르는 뗏목의 모습.
똇목은 나무나 대나무 혹은 풀의 줄기를 배열하여 끈으로 고정시킨 후 그 부력을 이용하여 수상운반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똇목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첫번째는 산지에서 벌채한 목재를 수송하기 위하여 목재를 묶어 하류의 집산지까지 하천을 따라 흘러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가 간단한 배로 사람과 짐따위를 운반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있다.
위의 그림은 후자의 용도에 속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7. 땔감을 나르는 배의 모습.
위 그림에서 이용된 것은 똇목인듯 하다.
똇목은 나무나 대나무 혹은 풀의 줄기를 배열하여 끈으로 고정시킨 후 그 부력을 이용하여 수상운반의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똇목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로, 첫번째는 산지에서 벌채한 목재를 수송하기 위하여 목재를 묶어 하류의 집산지까지 하천을 따라 흘러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가 간단한 배로 사람과 짐따위를 운반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있다.
위 그림의 경우가 전자의 용도로 쓰인 예이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8. 배를 이용하는 상인들의 전경.
나룻배는 나루(=진두)에서 쓰인 배로 진선(津船)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룻배가 국가적으로 관리되었는데, 책임자를 도승(渡丞)이라 하였고 그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를 배치하였다.
보통의 나룻배는 모두 평저선(平底船)으로, 건조 뒤 5년이 되면 수리하였다.
또한 배의 크기에도 규제가 따랐는데, 대선이 51자 이상, 중선이 46자 이상, 소선이 41자 이상 이었다.
위의 그림에서는 사람들을 비롯해 가마와 세곡으로 짐작되는 곡식더미까지 그 수와 종류 및 부피가 많고 큰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대선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객주』이두호
9. 해로를 이용한 상인들의 나루터 전경.
나루란 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다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도록 정해놓은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루터 혹은 진두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나루터는 국가제도로 규정되어 국가적으로 관리를 받았다. 담당관리를 도승(渡丞)이라고 하며, 도승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가 배치되었다.
그림에서도 보이다 시피 나루터에는 길손을 위한 먹거리가 풍성하였다. 천막을 친 좌판부터 숙박이 가능한 주막까지 그 종류역시 다양하였다.
참고문헌 - 『객주』이두호
10. 해로를 이용한 상인들의 상업활동 모습.
나루란 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다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도록 정해놓은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나루터 혹은 진두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나루터는 국가제도로 규정되어 국가적으로 관리를 받았다. 담당관리를 도승(渡丞)이라고 하며, 도승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가 배치되었다.
그림에서도 보이다 시피 나루터에는 길손을 위한 먹거리가 풍성하였다. 천막을 친 좌판부터 숙박이 가능한 주막까지 그 종류역시 다양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루터는 각지의 상품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발 빠르고 셈 빠른 상인들의 흥정은 이곳부터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 『객주』이두호
11. 짐 나르는 말의 모습.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12. 짐만 나르는 소들의 모습.
짐을 나르는 소의 경우 역우라고 하여 구별되었다. 황갈색 단색인 황소가 바로 그 예이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13. 수레의 모습.
소나 말의 힘을 빌리는 짐수레 즉 달구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달구지는 ① 틀과 쳇대를 따로 만들어 이어 붙인 후 이를 소 등의 길마에 얹어 소가 몸으로 끌도록 하는 방식과 ② 틀과 하나를 이룬 쳇대를 소 목의 멍에에 연결하여 목뼈로 끌도록 하는 방식의 2가지 연결 방식으로 나뉜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14. 영세한 나무꾼이 산에서 긁어 모은 솔가지와 가랑잎을 소에 잔뜩 싣고 고개를 넘어오고 있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15. 운송수단의 하나인 나귀.
당나귀라고도 한다.
나귀는 먹이에 구애받지 않고 잘 성장하며 오래산다. 발굽은 작지만 단단해서 먼 거리를 걷는 것은 물론 바위가 많은 곳에서도 잘 걷는다. 또 힘이 좋고 부지런하며 하물 운반용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16. 수레의 모습.
소나 말의 힘을 빌리는 짐수레 즉 달구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달구지는 ① 틀과 쳇대를 따로 만들어 이어 붙인 후 이를 소 등의 길마에 얹어 소가 몸으로 끌도록 하는 방식과 ② 틀과 하나를 이룬 쳇대를 소 목의 멍에에 연결하여 목뼈로 끌도록 하는 방식의 2가지 연결 방식으로 나뉜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17. 달구지의 부분 명칭도.
소나 말의 힘을 빌리는 짐수레 즉 달구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달구지는 ① 틀과 쳇대를 따로 만들어 이어 붙인 후 이를 소 등의 길마에 얹어 소가 몸으로 끌도록 하는 방식과 ② 특과 하나를 이룬 쳇대를 소 목의 멍에에 연결하여 목뼈로 끌도록 하는 방식의 2가지 연결 방식으로 나뉜다.
참고문헌 - 『조선시대생활과풍속-서문당』서문당
18. 말을 이용한 상인들의 이동모습
참고문헌 - 『객주』이두호
19. 나룻배의 모습.
나룻배는 나루(=진두)에서 쓰인 배로 진선(津船)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룻배가 국가적으로 관리되었는데, 책임자를 도승(渡丞)이라 하였고 그 밑으로 각급 진리(津吏)와 나룻배를 배치하였다.
보통의 나룻배는 모두 평저선(平底船)으로, 건조 뒤 5년이 되면 수리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의 상거래』도판
20. 수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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