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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공지영-한국 소설의 미래인가?

by 8866 2009. 3. 11.

공지영은 한국 소설의 미래인가

그의 눈부신 성공과 함께 2000년대 문학의 위기를 생각하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 공지영씨

지난 2월22일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기초예술연대가 주최한 ‘한국 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에서 예정된 주제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작가들이 창의력과 문화적 상상력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개탄하면서 공지영을 ‘한국 장편소설 최후의 마지노선’이라고 평했다. 마지노선. 말 그대로 한국 소설이 지켜야 할 최후의 방어선.

지난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한국 소설 중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별들의 들판> <봉순이 언니> 같은 그의 이전 작품들도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었다. 한국 소설 시장의 불황을 생각하면 이건 안타 정도가 아니라 연타석 홈런이다. 2000년대 한국 작가들이 선동렬 앞에 선 주눅든 타자처럼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그는 선두에 서서 한국 소설의 자존심을 지켰다. 공지영이 쳐올린 공이 우리 머리 위로 멀리 날아가고 우리는 환호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감상적이다”라는 고질적인 비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지영에 대한 평가에는 2000년대 한국 소설에 드리운 짙은 위기감과, 그 위기를 진단하는 다양한 시각들이 충돌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공지영은 한국 소설의 미래인가 과거인가, 공지영의 인기는 독자들의 진보인가 퇴행인가 하는 문제다.

위기의 책임을 2000년대 문학에만 돌린다면, 공지영은 하나의 대안이다. 그는 서사의 빈곤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그의 의식은 현실 고발(<동트는 새벽>), 후일담(<인간에 대한 예의>), 페미니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을 거쳐 더 넓게 진화하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인 서사의 미덕을 지키고 있다. 독자들은 ‘깃털처럼 가벼운’ 2000년대 소설 대신 공지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모든 가능성이 리얼리즘에 갇혀있던 80년대 문학은 아름답기만 했고, 신세대 작가들이 그 판을 망쳐놨으며, 공지영이 이를 새롭게 복구한다는 도식은 좀 공상적이지 않을까.

위기의 책임을 민족문학 진영을 포함한 모든 문학인들과 우리 문학의 구조에 돌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독자들은 한국 소설에서 그들이 원하는 다양성과 발랄함, 폭과 깊이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외국 소설 서가로 발길을 돌렸다. 김훈이나 박민규 같은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면, 독자들이 한국 소설에 기대하는 것은 낡은 멜로 드라마다. 공지영은 늘 과거의 발목을 잡고 ‘징징댄다’. 감상성과 나르시시즘과 눈물의 향연. 독자들은 여기에서 멈춘다. 그렇다면 공지영은 ‘과거’이고 그의 인기는 독자와 한국 소설의 퇴행이다.

공지영의 몸에는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라는 세 개의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그의 시간을 규정한다. 공지영은 누구인가. <한겨레21>은 문학평론가 이명원씨의 옹호론과 정문순씨의 비판론을 함께 싣는다. 이 작은 기획이 2000년대 문학 논쟁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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