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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권여선/사랑을 믿다

by 8866 2009. 3. 18.

권여선/사랑을 믿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지난 2월 늦은 저녁이었다. 혼자 이 술집에 들른 것은 내 입장에서도 다소 의외였다. 나는 소주나 막걸리를 즐기지 않았고 이 집은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은 팔게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을 시켰다.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 전에 김치와 나물들이 나왔다. 제대로 들어왔다는, 아니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느낌이었다. 밑반찬만으로 술을 반 병 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후로 이 집은 내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 들르는 단골 술집이 되었다.

빈대떡에 막걸리, 찌개에 소주, 몇 가지 나물들과 김치를 늘어놓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하는 생각이란,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는 식의 소소한 과거사이다. 이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당장 해결해야할 시급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곳은 내게 오로지 기억, 기억, 그렇게 속삭이는 장소가 되었다. 천천히 술을 마시다 보면 홀연,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듯, 기억 속의 내가 뭣도 모르고 살아온 모양이 환등처럼 떠오른다. 현실의 시간은 밤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기억의 한낮을 산다. 요즘 내가 그 땡볕 아래서 기다리는 인물은, 숨겨둔 단골 술집처럼 나는 남몰래 마음에 두고 좋아하지만, 그쪽은 이제 나를 한낱 친구로만 여기고 잊었을 한 여자이다.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는 방식이며 포즈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운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온 인류가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극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는,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삼 년 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는 정도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비밀도 아니다. 난 사랑을 믿은 적이 있고 믿은 만큼 당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는 고백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사랑과 믿음, 상당히 어려운 조합이다. 그나마 소망은 뺀다 쳐도, 사랑과 믿음 중 하나만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터에 감히 둘을 술목관계로 엮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니. 믿음을 사랑한 적이 있다는 말만큼이나 뭐가 뭔지 모르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나처럼 겁과 의심이 많고 감정에 인색한 인간이 뭘 믿은 적이 있다고? 티컵 강아지가 드래곤을 대적하겠다고 날뛰는 것만큼 안쓰럽고 우스꽝스러운 경우가 아닌가.

인생을 살다 보면 까마득하여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 의외로 손쉽게 실현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순간에 들렸던 것뿐이다.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산이나 상비약을 챙기듯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퇴치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문이 벌컥 열리듯 밖에서 열리는 종류의 체험이니까. 두 손 놓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니까.

하지만 가장 기막힌 경우는 따로 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유유히 빠져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저지른 죄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몰랐기 때문에, 몰랐다는 사실까지 나의 죄에 곱절 가중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사랑을 몰랐다는, 발등을 짓찧을 죄까지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그녀는 못 생긴 편도, 매력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내 어법이 이렇게 졸렬하고 인색하다. 누군가가 아름답다든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일이 나로서는 쉽지가 않다. 대상이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고 긍정하는 순간, 불현듯 그 규정의 한 모서리가 대상과 어긋나는 듯한 불편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서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첫인상은 평범했지만 콧날 끝에서 윗입술에 이르는 인중선이 깎은 듯 단정해 과녁처럼 시선의 포인트가 잡혔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의 윗입술의 움직임에, 다시 말해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막연히 예쁜 얼굴보다 여러 모로 유리한 얼굴이라 할 수도 있었다. 키는 중간 정도에 날씬한 편이었다. 몸매처럼 성격도 기름기가 없이 박하처럼 싸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녀는 머리가 나쁘지도 않았고 몸이 게으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재빠르다는 느낌을 줄 만큼은 아니었는데, 마치 암컷 영양처럼 우아하게 민첩하고 영리할 따름이었다.

그녀에 대해 여기까지 생각한 후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취기 때문에 내가 그녀에 대해 너무 너그러워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서툴고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넘쳐흐르는 감정의 절실함보다 한 오라기의 자존심을 선택하는 인색한 성격이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이래로 내 머릿속의 그녀는 어디에 놓든, 무엇을 담든, 항상 아담하면서도 고독해 보이는 도자기의 윤곽선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그때 그녀에게서 들은 묘한 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삼 년 전 내가 한 여자로부터 실연을 당했을 즈음의 얘기이며, 그녀를 한동안 못 보고 지내다 삼 년 만에 만났을 때의 얘기이다. 삼층짜리 건물에 얽힌 얘기기도 하니, 삼박자가 딱 들어맞는 얘기다.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예약해둔 술집까지 십오 분가량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지?”

나는 물론 괜찮다고 했다. 화장을 하지 않은 그녀는 얼굴빛이 어두웠고 볼이 약간 부어 동남아 여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모자 달린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었는데 그 차림에 맞게 걸음도 빨랐다.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춰 섰을 때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지난주에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어.”

내가 오, 그래? 하는데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나는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왜 피식 웃는지 의아했다. 신호가 바뀌자 그녀는 횡단보도 쪽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희한하다든가 뭐라고 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희한한 것은 없었다. 굳이 희한하다면 그녀 쪽이 약간 그랬다.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왜 피식 웃느냐 말이다. 예전부터 그녀는 내게 가끔 이런 의아함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편이긴 했다.

그녀가 안내한 술집은 몹시 좁고 기차처럼 길었다. 그런 후미지고 허름한 술집을 예약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지 네 개의 테이블이 일렬종대로 놓여 있을 뿐이었고 오른쪽 벽을 따라 겨우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통로가 있었다. 입구 맞은편 기차 머리 쪽이 주방이었다. 우리가 앉은 세 번째 자리의 왼쪽 벽에는 작은 유리창이 뚫려 있었는데, 말이 유리창이지 미닫이도 여닫이도 아닌, 벽에 박힌 직사각형의 유리에 불과했다. 바깥은 조그만 주차장이었다. 유리 너머로 캄캄한 주차장에 웅크린 몇 대의 차들과 희미한 주차관리소 불빛이 보였다.

“제육과 해물을 반반 주세요.”

그녀의 말에 어려 보이는 여종업원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반반? 무엇이, 반반을요?”

여종업원은 한국어가 서툰 것 같았다.

“이것과 이것을 반반씩 달라고요.”

그녀가 벽에 붙은 메뉴판의 항목을 하나씩 가리켰다. 여종업원은 메뉴판 위쪽 얼룩진 천장 모서리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무슨 거창한 암산이라도 하는 듯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주방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제육볶음과 해물볶음을 반반씩, 가격은 이만오천 원에 하기로 주인 여자와 삼초 만에 결정을 보았다.

“내 마음대로 시켰는데, 괜찮지?”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냉동 재료를 벌건 양념에 대충 볶아내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안주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터라 달리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투덜거렸다.

“여긴 다 좋은데 종업원이 자주 갈려. 올 때마다 늘 반반씩 시키는데도 말이 안 통하는 종업원이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축적의 보람이 없어.”

“그래도 주문하는 네 노하우는 상당히 축적된 것처럼 보이던데?”

“글쎄. 설왕설래하는 시간이 좀 단축된 듯도 하고.”

“여기 자주 오나 보지?”

“비싸니까 자주는 못 와. 가끔 오지.”

그녀는 조금 변한 듯했고 나는 그녀가 조금 낯설어졌다. 그 집의 모든 안주는 일괄 이만 원이었다. 술집 외양에 비해서는 비싼 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이만 원이었다. 그녀는 이만 원짜리 안주 두 가지를 반반씩, 오천 원만 추가하는 선에서 시켰고 이제껏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이십대 후반을 함께 보냈다. 자주 만날 때는 일주일에 두어 번, 드물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는 사이였다. 딱히 약속을 정해서 만난 기억은 없었다. 같은 일을 하다보니 오다가다 부딪치고 얽히게 되었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비슷해 각별한 친밀감을 느꼈다. 우리의 만남이 끊어진 건 그녀가 업무를 바꾸면서부터였다. 마침 그때 나도 막 연애에 돌입한 시점이라 그녀에게 따로 연락을 하게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경제관념이 생긴 것, 자기 입맛 위주로 음식을 시키는 것, 이런 것이 그녀가 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차림새로 보아 그녀가 예전보다 수수해졌다는 건 분명했다. 예전엔 목걸이나 반지는 몰라도 귀고리 하나는 독특한 걸로 달고 다니길 즐겼는데 그날은 아무 금붙이도 달거나 걸고 있지 않았다. 나는 경제관념이 가난에서 온다는 편견을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기 입맛 위주로 음식을 시키는 것, 이 대목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별안간 미식가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든 탓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입맛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지낸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이럴 경우, 이것은 그녀에게 생긴 놀라운 경제관념과 더불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녀가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대단히 가난해졌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가 못 보고 지낸 삼 년 동안에.

“한 이 년쯤 됐나?”

내가 삼 년이라고 정정해주려는데 그녀가 유리 너머 주차장 쪽을 응시하며, 처음 이 집에 온 게,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저 오 그래? 하고 말았다. 그녀가 잠시 뒤 덧붙였다.

“실연당한 친구 덕에 이 집을 알게 됐지.”

실연이라는 말에 나는 기습을 당한 듯 움찔했다.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가 나를 떠났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독초처럼 쓰디쓴 고통의 싹이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실연당한 친구?”

“응.”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친구는 남자에게 심한 배신을 당하고 그녀에게서 조언과 위로를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내가 적잖은 관심을 보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통로를 지나 주방 앞으로 간 그녀는 여종업원에게 냉장고 안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해보였다. 술을 시키는 것 같았다. 술이 필요한 얘기이긴 했다. 특히 내게는 더 그랬다.

나는 종종 실연의 유대감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떠나든 그들이 떠나든 둘 중 한 쪽은 어느 별인가로 떠났으면 좋겠다 싶은, 참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인간형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우연히 그들 중 누군가가 얼마 전에 지독한 실연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나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기조차 싫었던 그 인간을 내 집에 데려와 술을 대접하고 같은 천장 아래 재울 수도 있다. 심지어 술 냄새를 풍기는 그 인간의 입술에 부디 슬픈 꿈일랑 꾸지 말라고 굿나잇 키스까지 해줄 용의가 있다. 허기의 유대나 가난의 유대 같은 것이 있고, 시험강박의 유대, 채식주의의 유대, 실종 자녀를 둔 부모들의 유대 등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별난 인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실연의 유대만큼 대책 없이 축축하고 뒤끝 없이 아리따운 유대를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그때 그 기차간 같은 술집에서 나는 그녀가 술을 시키는 걸 바라보면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녀의 친구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의 친구와 나 사이에 생겨날 실연의 유대에 대한 예감만으로도 가슴이 설?다. 물론 그녀의 매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가 물었다.

“차도 안 가지고 왔으니까 조금 마시는 것도 괜찮지?”

나는 역시 괜찮다고 대답했다.

“맥주하고 소주 시켰는데 어때?”

오, 그래? 나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런 기차간 같은 분위기에서 실연에 대한 얘기를 듣다보면 소주 몇 잔 정도는 곁들이게도 될 테니까.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자. 괜찮지?”

맥주에 소주를 섞는다니 기겁을 할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엉겁결에 괜찮다고 말해버린 후였다. 그녀는 뭔가를 미리 결정한 후 한발 늦게 내 의사를 타진해왔다. 이것도 그녀가 변한 부분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만난 후 줄곧 오, 그래? 아니면 괜찮아, 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그 친구한테는 뭔가 도움이 되는 얘길 해줬어?”

“그 친구? 아아.”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내가 도움이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왜?”

그녀의 친구는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인 와중에서도 하루 전에 미리 이 술집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그건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

“희망? 무슨 희망?”

“사는 데 애착이 있는 한 희망은 있는 거잖아. 나는 그 희망을 은근히 훼방 놓는 시늉만 하면 됐고.”

희망을 훼방 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야 거기 희망이 있다는 걸 알지. 뭔가 잔뜩 어질러 놓아야 거기 공간이 있다는 걸 알듯이.”

설명을 듣고 나면 더 모를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이 또한 그녀의 희한한 면 중 하나였다. 훼방을 놓아야 거기 희망이 있다는 걸 안다니. 뭔가를 잔뜩 어질러 놓아야 거기 공간이 있다는 걸 안다니. 무슨 설명이 이런가.

여종업원이 쟁반을 날라 왔다. 쟁반에 놓인 것들을 흘깃 훑어보던 내 시선이 술병에 고정되었다. 그제야 나는 비싸서 이 집에 자주 못 온다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것은 안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술에 대한 얘기였다. 국그릇과 반찬 접시들 옆에 맥주 두 병과, 목이 긴 도자기병에 든 안동소주 한 병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맥주에 안동소주를 섞자는 거였다. 이 또한 희한했다.

이집 반찬들은 확실히 납품받지 않은 것들이라고, 직접 아주머니가 장을 봐서 매일 만드는 것들이라고, 그녀를 이곳에 처음 데려온 친구는 힘주어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묻지도 않고 그녀의 잔에 맥주를 따르고 안동소주를 섞었다.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친구는 술부터 들이켰고 그녀는 국부터 떠먹었다. 들이닥쳐 냉수 한 잔 먹고 바로 본론에 돌입하는 빚쟁이처럼 친구는 술잔을 내려놓고 다그치듯 물었다.

“넌 그때 어땠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계속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는 거야?”

내 어리둥절한 표정에 그녀가 술을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내가 일 년 먼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

처음 듣는 얘기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누가 보았다면 그때 나의 표정은 안주 반반을 이해하기 위해 여종업원이 지었던 바로 그 복잡다단한 표정과 흡사했을 것이다. 그녀의 친구가 이 년 전에 실연을 당했고 그보다 일 년 먼저 그녀가 실연을 당했다면 그녀는 삼년 전에 실연을 당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년 전이라면 우리는 스물아홉이었고,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은 만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녀의 상대가 내가 아는 녀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문득 얼토당토않은 의혹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고작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오 그래?”

일년 전 그녀는 어떻게 숨을 쉬었던가. 그녀에게도 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던가. 물론 있었을 것이다. 결코 희망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아 그녀가 그것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이야.”

그녀의 말에 친구가 처연히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돌아보면 여전히 뭔가 남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대관절 뭐가 남아 있다는 거야?”

“글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별로 보잘것없는 것들이긴 하지.”

“그러니 무슨 상관이야?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남아 있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

친구가 한 손으로 과장되게 허공을 그었다.

“아니! 보잘것없어! 정말 보잘것없는 것들만 남아 있지!”

친구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그녀가 구원의 메시지를 주리라는 기대와 어떤 것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리라는 체념이 안주 반반처럼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보잘것없는 것들이 상황을 바꿔 놓거든. 거의 뒤집어놓는다고도 할 수 있지.”

친구가 갑자기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는 거야?”

친구는 그녀의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상황이 뒤집힐 수 있다는 의미를 어떻게든 애인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 비법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선 곤란했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할 필요를 느꼈다.

“이를테면 친척집에 심부름을 간다든가, 업무 파트너의 경조사를 챙긴다든가 하는 것들. 그런 일들을 받아들여.”

순식간에 친구의 눈빛에 배신감이 차올랐다. 친척집? 경조사? 친구는 그녀가 자기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심지어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상체를 뒤로 물렸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차라리 할 말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있어 주든지.”

친구는 갑자기 국그릇 위로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원래 눈물이 많았는데 연애를 하면서 눈물이 더 늘었고, 애인과 결별한 후론 눈물이 거의 주량만큼 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안동소주가 섞인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너무 초라하고 하찮아서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덤벼들 마음이 생기지 않는 그런 것들 있잖아.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이 네 주위에 널려 있거든. 대상이든, 일이든, 남아 있는 그것들에 집중해. 집중이 안 되면 마지못해서라도 감정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아주 미세한 각도를 만들어주라고. 네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여주라고.”

그러나 친구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녀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녀도 일 년 전, 몸이건 마음이건 어느 쪽으로도 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겉으로는 살 맞은 짐승처럼 꿈틀댔지만, 그 안쪽에서는 표면장력으로 팽팽한 절망의 비커를 붙들고 쓰디쓴 고통의 한 방울도 쏟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내면은 어떤 위로나 이해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가히 미친 균형이라 부를 만한 부동의 자세로 육체의 성마른 날뜀을 꼿꼿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시절을 견디자면 어쩔 수 없이 표독해지기 마련인데 그 표독함은 이를테면 맥주에 희석된 안동소주처럼 너무도 특별하고 아름다운 표독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자기 앞에서 울고 있는 친구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이 이 고통을 누구보다 즐기고 있다는 것을. 오래도록 기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고통이 사라진 뒤를 더욱 견딜 수 없어한다는 것을.

나는 그녀가 따라놓은 술을 마셨다. 싱거운 맥주 맛 속에 뾰족한 심처럼 독한 안동소주 향이 박혀 있었다. 그녀의 친구는 이미 원경으로 물러났다. 이제 실연의 유대는 그녀와 나, 둘 사이에 맺어졌다. 나는 떫은 혀끝으로 더듬더듬 물었다.

“너는 그때 어떻게 극복, 아니, 수습? 너는 어떻게 했지?”

그녀는 국그릇 옆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 경우는 운이 좋았지.”

그녀의 어머니는 탁월한 훼방꾼 역할을 했다. 그녀는 결국 큰고모님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계속해서 조르지 않았다면, 그리고 혹시 그 사람이 금전적인 문제로 자신을 떠났을지 모른다는 망상이 그날 아침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그녀가 무거운 선물 보따리를 들고 큰고모님 댁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금전적인 문제로 실연을 당했단 말야?”

나는 그녀가 실연을 당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랐다. 실연의 상대가 혹시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의혹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 대신 그때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그녀가 금전적인 문제 따위로 배신할 놈을 사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가, 하는 오라비 같은 회한이 밀려왔다. 그저 내 생각에, 라며 그녀는 빈 국그릇을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여전히 의심쩍어하는 내 표정을 보고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금전적인 문제는 아니었어. 하지만 워낙 몰리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불현듯 내 여자가 나를 떠난 이유가 금전적인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럴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워낙 몰리고 있는 셈인가. 어이없게도 그랬다. 그녀가 내 컵을 잡으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

그녀의 큰고모님 댁은 전철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시 외곽 끝자락에 있었다. 그녀가 방문하기 일 년 전쯤 그곳으로 이사했는데, 그녀는 큰고모님이 이사한 후로 한번도 그 집을 방문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로는 전체가 사층 건물로, 삼층에는 큰고모님 부부만이 외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식이 없으니까…….”

그녀의 어머니는 이 대목에서 말을 흐렸다. 처음부터 큰고모님 부부에게 자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녀의 고종사촌 오빠는 어려서도 아니고 젊어서 죽었다. 서른이 되기 직전이었고 제대 후 삼 년 반 넘게 준비한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술에 취한 상태로 화장실에 가다가 난간이 없는 계단 옆으로 추락하는 어이없는 사고였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하루가 지나서야 머리가 피범벅이 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큰고모님 부부의 소유로 된 사층 건물이 하나밖에 없는 조카딸인 그녀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그녀가 그 댁을 자주 방문해 살가운 딸 노릇을 하며 미래의 소유물을 찬찬히 살펴두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열흘 동안 미주관광을 다녀오는 길에 사온 선물을 꼭 큰고모님 댁에 전해달라고 며칠 동안 그녀를 설득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뭐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무척 무거웠거든. 설마 미국에서 꿀 같은 걸 사오진 않았을 텐데 꼭 꿀단지였던 것 같아.”

“꿀 비슷하다면 잼 아닐까?”

“잼? 환갑 넘은 노인들에게 잼을 선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노인들이 단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그럼 잼이라고 해두지 뭐.”

그녀는 무거운 잼 단지가 든 보따리와 대충의 약도만 가지고 큰고모님 댁을 찾아 나섰다. 비록 변두리라고는 해도 사층 건물이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떠났다는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그녀는 그 사람이 무엇을 놓쳤는지 꼼꼼히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자기 소유물의 가치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그녀가 동전 한 푼을 챙기는 순간 그 사람은 동전 한 푼을 빼앗기는 식이었다. 그런 텅 빈 탐욕의 몸짓만이 다시는 만날 길 없는 그 사람에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그녀가 그런 산수에 골몰했다는 게 나로서는 적잖이 흥미로웠다. 배울 수 있다면 가장 배우고 싶은 산수였다.

그녀가 직접 가보니 안타깝게도 큰고모님 부부의 상가건물은 사층이 아니라 삼층이었다. 모든 건물이 그렇듯 옥상 위에 평수가 작은 성냥갑 모양의 옥탑방이 얹혀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것도 엄연히 한 층으로 계산에 넣은 것이었다. 사거리 근처의 상가 밀집지역에 위치하긴 했지만 큰고모님 부부의 건물은 주변 건물에 비해 면적도 좁고 초라했다. 일층은 돼지갈비와 삼겹살을 파는 음식점이었고, 이층은 조그만 여행사 사무실이었다. 소위 사층이라는 조그만 옥탑방은 철학관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녀는 무거운 잼 단지가 든 보따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계단을 올라갔다. 큰고모님 부부가 살고 있다는 삼층의 현관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초인종 옆에 옥상 쪽 철학관을 표시하는 작고 빨간 플라스틱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녀는 초인종을 누를까 하다가 열려 있는 문을 그대로 당겼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주름진 회색 커튼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현관 입구에 커튼을 쳐놓은 집을 처음 보았다. 왼편에는 거울이 달린 신발장이 놓여 있었다. 커튼과 거울이 놓인 좁다란 사각의 공간은 지하상가에 흔히 설치된 증명사진을 찍는 무인촬영소의 내부와 흡사해서, 그녀는 신발장 어딘가에 돈을 밀어 넣고 뭔가를 작동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짐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으려다 멈칫했다. 어디다 신발을 벗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적동색 타일이 깔린 현관에는 이미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큰고모부의 것으로 짐작되는 남자 구두 한 켤레와 슬리퍼, 큰고모의 것으로 생각되는 여성용 단화, 고무신, 샌들 등이었다. 일단 신발들만 봐서는 큰고모님 부부만 외롭게 사는 집이 아니라 대가족이 북적대는 집 같았다. 그녀는 현관 한 귀퉁이에 신발을 벗어놓고 주름진 회색 커튼을 들추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회색 커튼을 젖히기 직전 그녀의 가슴속에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몰려왔다.

커튼을 젖히고 안쪽으로 한발 내딛는 순간 그녀는 실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기 쪽으로 집중되는 걸 느꼈다. 선물 보따리를 끌어들이느라 커튼 안으로 상체만 들이민 상태에서도 그녀는 그들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 창 쪽에도 두꺼운 회색 커튼이 드리워 있어 한낮인데도 실내는 밝지 않았다. 왼편 소파에 웅크린 세 명의 여자가 노골적인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다리던 안주 반반이 나왔다. 상추를 곁들인다거나 브로콜리를 얹는 따위의 데코레이션이 완벽하게 생략된, 둥근 접시에 검붉은 빛깔의 내용물만 반반씩 담겨 있었다.

“먹어봐. 한번 먹으면 잊기 힘든 맛이야.”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마루타가 된 기분으로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제육과 오징어를 함께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무엇이라고 할까, 혀의 돌기들이 일제히 놀라 일어나며 환호하는 느낌이었다. 재료나 양념도 훌륭했지만 프라이팬에 볶은 것을 다시 연탄불에 직화구이를 했는지 맵고 기름진 맛 끝에 고소한 탄불맛이 느껴졌다. 술은 술대로 안주는 안주대로 한겹 한겹 얇고 정교하게 엇갈리고 스며드는 독특한 맛의 조화였다.

“대단한데!”

나 는 그녀를 만난 뒤 처음으로 내 느낌을 솔직히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밟아 껐다. 이 집에서는 그런 고전적인 담뱃불 끄기가 허용되나 보았다. 나는 돌연 유쾌해졌다.

“그래서? 그 여자들은 누구였는데?”

“가만, 가만. 나도 안주 좀 먹고.”

“그래. 그렇지. 어서 먹자. 먹고 얘기하자.”

내가 아니라 혀의 돌기들이 말했다.

그녀는 엉겁결에 세 명의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제일 안쪽에 앉은 여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녀는 선물 보따리를 벽에 세워 놓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하게 산다던 큰고모님 부부 댁에 그렇게 많은 손님들이 방문해 있으리라곤 짐작도 못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자들의 연령대가 아주 다양했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딱인 안쪽 여자는 족히 칠십은 훌쩍 넘긴 노파였고, 눈가에 기미가 촘촘히 박힌 가운데 여자는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그녀 가까이에 앉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여자만이 큰고모님과 비슷한 환갑 언저리인 듯했다.

“이쪽으로 와 앉으셔.”

노파가 말했다. 그러나 노파의 손가락은 이쪽이라는 말과 달리 맞은편에 놓인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를 가리켰다. 그곳은 실내에서 가장 밝다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곳에 앉는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큰고모님은 지금 안 계신가요?”

그녀의 물음에 세 여자가 일제히 반응을 보였다. 큰고모님이라네, 라고 노파가 말하자, 그러게요, 라고 가운데 여자가 대꾸했고,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그녀 쪽으로 목을 쭉 빼며 물었다.

“큰고모님이라면, 여길 자주 들락거리는 편인가?”

들락거린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뇨. 자주는 못 오고, 한참 만에 왔습니다. 큰고모님은 어디 가셨어요?”

그 러자 또 여자들이 활기를 띄었다. 어디 가셨을 리가 있냐느니, 문도 열려 있지 않았냐느니, 먼저 온 손님이 계시다느니, 우리도 기다리는 중이니 처녀도 거기 앉아 기다리라느니, 누가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말들이 그들 무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노파가 재차 손가락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는 바람에 그녀는 엉겁결에 그 자리에 뙤똑 앉았다. 모두들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기색이어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큰고모님이 여기로 옮겨오신 후론 처음 와 뵙는 거예요.”

그녀의 말에 다시 여자들이 술렁거렸다. 그녀가 무슨 말만 하면 그런 식이었다. 기미 낀 여자가, 여기로 옮겨오신 지 얼마 안 되었나 봐요, 하자 노파가 그러게, 라고 대꾸했고,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다시 목을 쭉 빼며 물었다.

“처녀는 고모님이 여기로 언제 옮겨오셨는지 아나?”

“한 일 년 정도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전엔 어디 계셨는데?”

“서울 화곡동 쪽에 사셨습니다.”

“어머, 화곡동에 우리 큰형님이 사시는데 그때 함께 올걸.”

가운데 여자가 안타깝다는 듯 외쳤다.

“그래, 화곡동에 계실 적에도 자주 드나들었나?”

이번에는 노파가 그녀를 구슬리듯 물었다.

“아뇨. 자주는 못 뵙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녀는 살짝 횟수를 늘려 말했다.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날카롭게 추궁하듯 물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이면 자주 아닌가?”

“자주라고는 할 수 없지.”

노파가 큰고모님을 자주 방문하지 못한 그녀를 힐책하듯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가씨는 무슨 볼일로 왔어요?”

가운데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거, 초면에 그런 걸 물으면 실례 아닌가?”

노파의 말에 눈꼬리 사나운 환갑 여자가 큭큭 웃었다. 그녀는 좀 성가시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운데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찔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려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뜨개질감을 손에 들고 뜨개질을 시작한 것이었다. 알록달록한 치마 위에 알록달록한 뜨개실과 바늘을 얹어 두었나본데,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그녀로서는 그 번개 같은 뜨개질 동작이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마법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가운데 여자는 손을 빠르게 놀려 뜨개질을 하면서 말했다.

“저는요, 할머니. 이름 보고는 딱 남잔 줄 알았거든요.”

노파가 낮게 웅얼거렸다.

“여자라니까, 여자.”

“차라리 여자인 게 낫지요.”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말을 받았다. 그들은 그녀가 오기 전에 나누던 얘기라도 있었던지 이런 소리들을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못 들은 척했다. 지금이라도 큰고모님이 나오기 전에 선물 보따리만 놓고 가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세 여자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대 한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저는 이걸 큰고모님께 전해드리고 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여기 놓고 갈 테니 말씀 좀 전해주시겠어요?”

노파가 괘씸하다는 듯 손을 홰홰 내저었다.

“아니 무슨 소리! 여기까지 왔으면 뵙고 가야지.”

“손님들도 많이 계시고 해서…….”

노파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날을 잡고 뵈러 왔으니 여유를 갖고 기다려. 뭐 급한 일이 있다고? 왕고모님이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나? 또 아나? 왕고모님이 좋은 선물을 주실지.”

노파의 말에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또 큭큭 웃었다. 환갑 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럴 리는 없지만 그녀는 세 여자가 자신이 큰고모님을 방문한 의도에 대해 무슨 낌새를 채고 자기들끼리 눈짓을 해대며 번갈아 그녀를 떠보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큰고모님을 무슨 이유로 왕고모님이라고 바꿔 부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큰고모님 부부가 언제 이사왔는지 모르는 걸 보면 이 집과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상가 임대료나 파출 업무 같은 사업상의 문제로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여자들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들이 공연히 그녀에게까지 불순한 혐의를 두고 저의를 탐색하려는 것 같아 그녀는 가능한 한 말을 아끼기로 했다.

실내를 가득 채운 낡은 가구들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 얼룩덜룩 때가 낀 리놀륨 바닥은 집주인의 오랜 방치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 퇴락한 분위기 속에 낯선 여자들과 함께 앉아 있자니 그녀는 약간의 곤욕스러움을 느꼈다. 침묵을 지키는 그녀가 못내 아니꼽다는 듯 마침내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애기엄마는 집에 대관절 무슨 일이 있어?”

노파가 물었다.

“전 정말 죽어도 여기 안 오려고 했어요.”

가운데 여자가 목숨이라도 건 듯 빠른 속도로 뜨개질을 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오게 됐어?”

눈꼬리 여자가 물었다.

“즈이 큰형님 말씀이 사람이 살면서 너무 까칠하게 그러는 거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옳지! 화곡동 사신다는 그니로군.”

“네, 맞아요, 할머니. 즈이 큰형님은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는 선생님이세요.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들 여러 군데서 알아보고 다닌다네요.”

“그렇다니까, 글쎄!”

눈꼬리 여자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면서 이러시는 거예요. 세상에 죽어도 못하는 게 어딨고 죽어도 꼭 해야 하는 게 어딨냐고요.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콕 집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주머니? 살다보면 죽어도 이건 못하겠다 죽어도 이건 해야겠다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죽어도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런 건 없다 생각하니까 못 올 것도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 들은 이제 그들만의 이야기에 빠져 그녀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그녀 쪽에서 그들에게 부쩍 관심이 생겼다. 그녀는 그들의 얘기 속에서 큰고모님 부부와의 친교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고 애썼지만 대화 내용이 워낙 요령부득이라 쉽지 않았다.

그들은 정해진 순서라도 있는 듯 돌아가며 얘기를 했다. 우선 노파가 옛이야기책에나 나올 법한 희한한 질병에 관한 얘기를 하자, 뒤를 이어 눈꼬리 여자가 얼마 전에 신문에 보도된 유괴사건 얘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가운데 여자가 남자의 지독한 바람기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얘기가 한 바퀴 돌자 다시 노파가 쥐나 벌레를 이용한 민간요법적인 처방을 줄줄 늘어놓았고, 눈꼬리 사나운 여자는 이를 갈며 우리나라 경찰의 무능함을 개탄했다.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도 가운데 여자가 조용히 뜨개질만 하는 바람에 실내에는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애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기가 몇이야?”

“하나요.”

“하나? 아들이겠군.”

노파가 끼어들었다.

“네. 이제 겨우 초등학교 삼학년이에요.”

“우리 막내 손주보다 한 학년 위군.”

눈꼬리 사나운 여자가 무슨 선서라도 하듯 엄숙하게 말하더니, 살아 있다면, 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신호로 노파는 신들린 듯 만능 고약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고, 눈꼬리 사나운 여자는 낮게 염불인지 주문인지를 외웠고, 삼십대 여자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콧물을 훔칠 때 빼고는 양손으로 빠르게 뜨개질을 계속했다.

그 녀는 머릿속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의미라기보다는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그것은 꿀이나 잼처럼 끈적하게 조이고 당겨오는 불행의 인력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슬픈 리듬을 띤 환상성을 갖고 있어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었다. 갑자기 노파가 쉰 소리로 툴툴거렸을 때에야 그녀는 긴 몽상에서 깨어났다.

“되게 더디네, 거참.”

눈꼬리 올라간 환갑 여자가 대꾸했다.

“먼저 온 손님이 오래 걸리는 모양이에요.”

“누구든 사연이 많겠죠.”

어느 새 울음을 그친 삼십대 여자가 받았다.

“목이 칼칼하네.”

“자판기라도 하나 마련해두지 않고서.”

“그러게 말이에요.”

그녀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자동판매기를 들여놓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때 커튼 너머에서 현관문이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녀의 고개도 돌아갔다. 킁킁거리면서 쩝쩝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튼이 훨쩍 열리더니 그녀의 큰고모부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큰고모부의 흐릿한 눈빛에서 그녀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걸 느꼈다. 큰고모부는 입에 이쑤시개를 문 채 그곳에 앉은 여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노파가 고개를 까딱하며 이쪽으로 와 앉으셔, 했다. 큰고모부는 그 말은 무시한 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뭐들 보러 오셨나본데.”

큰고모부는 안쪽으로 잠깐 시선을 돌렸다.

“이 사람은 아직도 자나?”

큰고모부는 다시 그들을 향하더니 가볍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철학관 오셨으면 한 층 더 올라가세요.”

“네에? 여기가 아니라고요?”

세 여자가 동시에 일어섰다. 가운데 여자의 알록달록한 치마에서 실뭉치가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보면 모르십니까? 여긴 가정집이오.”

노파가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벗어놓았던 버선을 꿰며 말했다.

“아이고. 다들 가정집 같은 데다 신단을 꾸미고들 하니까 여기도 그런 줄 알았지.”

큰고모부는 천천히 이를 쑤시면서 말했다.

“그놈의 콩꼬투리만한 철학관 딱지를 떼고 당장 큼지막하게 새로 만들라고 하든지 해야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세 여자들을 따라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초인종 옆에 붙은 빨간 딱지 속에서 자신들이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변명거리를 찾으려 했다. 철학관 딱지에는, 기미 낀 여자가 “이름 보고 남자인 줄 알았어요” 했던 남자 이름 석 자가 ‘도사’라는 글자와 함께 새겨져 있었다. 글자 아래에 위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있었는데 그 가느다란 선이 세 여자의 원성을 샀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갔고 그녀는 계단을 내려왔다. 옥탑방 도사는 자신이 왕고모님으로 불린 사실을 모르겠지만, 그녀는 세 여자가 왕고모님 도사에게 어떤 선물을 받으러 가는지 알 수 있었다. 계단을 한칸 한칸 밟을 때마다 그녀는 뭔가에 들씌운 듯 빌고 또 빌었다. 희귀병을 앓는 친지의 완쾌를, 유괴된 손자의 생사를, 바람난 남편의 귀가를, 자식을 앞세운 뒤 늙어가는 부부의 평안과 명랑을 빌었다. 그녀가 타인을 위해 뭔가를 이토록 절박하게 빌어본 적은 없었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다만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온 것뿐인데, 삼층 큰고모님 댁에 무거운 잼 단지만이 아니라 그녀를 그녀이게 만들었던 본성의 작은 칩마저 함께 두고 온 듯했다.

그때 뵈었던 큰고모부님이 일 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지난달에 그녀는 큰고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연사라는 사실이었다. 큰고모부님이 자살한 지 일 년 만이었다. 기일은 하루 차이였다. 아들이 죽은 뒤로 늘 기운이 없고 비몽사몽이라 남편 점심 한번 제대로 차려준 적 없던 큰고모는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장을 보러 나섰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늦추위에 꽁꽁 언 채 삼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와 집에 들어서자마자 큰고모는 몸을 녹일 셈으로 뜨거운 물을 마셨다. 그게 화근이었다. 큰고모는 뜨거운 물을 삼킨 순간부터 끙끙 앓다 그날 밤에 돌아가셨다. 생전의 큰고모부가 점심때마다 내려가 식사를 하곤 했던 일층 식당의 주인여자가 임종을 지켰다. 마지막 유언은, 그때 찬물을 먹었어야 했는데, 였다고 했다. 그리고 삼층 건물은 그녀에게 상속되었다.

그녀의 얘기는 여기까지였다. 이 얘기를 듣는 데 서너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안동소주 한 병과 셀 수 없이 많은 맥주병을 비웠고 이십 분 간격으로 번갈아 주차장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누가 물어온다면 나는 다만 그녀의 얘기의 개요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이야기에서 개요란 얼마나 허망한가. 우중충한 공예품이 가는 솔질에 의해 희끄무레한 먼지를 벗고 세밀한 장식의 윤곽과 색깔을 드러내듯, 인중선이 분명한 그녀의 윗입술에서 흘러나온 찬찬한 묘사는 내게 정오 무렵 낡은 삼층 건물 가정집 거실에서 일어난 풍경들을 오롯이 드러내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이 정도로밖에는 전달할 수가 없다. 나는 그녀가 낯선 여자들과 마주 앉아 있는 동안 그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녀 또한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게 무엇이든 어디 보자 하고 덤벼들면 보잘 것 없는 것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바꿔놓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술집을 나올 때 나는 그녀가 이미 계산을 마쳤다는 걸 알았다. 먼저 만나자고 연락한 내가 술값을 내도록 해주는 게 도리였다. 내 표정에서 비난의 기미를 알아챈 그녀가 피식 웃었다. 피식. 그렇다. 순간 나는 모든 걸 깨달았다. 얼토당토않은 의혹은 진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큰고모님께서 돌아가셨다고 말하면서 피식 웃었던 것이다. 나도 피식 웃었지만,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 입가에 인 조용한 경련에 가까웠다. 나는 그녀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중얼거렸던 말을 상기했다. 과연, 그녀의 큰고모님 부부와 나의 인연은 희한했다. 내가 한 여자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실연의 고통을 안고 큰고모님댁 삼층 건물을 방문했고, 내가 그 여자에게 실연을 당하고 삼년 만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돌아가신 큰고모님 부부로부터 삼층 건물을 상속받았다. 나는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낡은 삼층짜리 상가 건물을 떠올렸다. 회색 커튼을 쳐놓은 괴상한 현관과 어두운 실내,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벽에 붙어 있었을 빨간 플라스틱 딱지까지 생생했다.

그녀는 주차장 쪽에서 나온 늙은 남자에게 살짝 손을 들어보였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일곱 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의 각도처럼 편안해 보였다. 그녀가 편안하다면 나로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누구를 만나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자신에게 가슴이 설레길 원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고통으로부터 너무 먼 어딘가로 초월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훨씬 더 관대하고 자연스러워졌지만 더 이상 사랑을 믿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나를 슬프게 했다. 자신의 소유물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나로부터 그것을 하나하나 빼앗는 식의 무력한 산수에 골몰했던 스물아홉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때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놓쳐버린 스물아홉의 그녀로 인해 뒤늦은 실연을 앓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늦어 격렬하지는 않겠지만, 격렬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입술을 피나게 씹어대진 않겠지만, 희미해진 사진 속 윤곽을 더듬듯 손끝이 닳도록 무언가의 테두리를 하염없이 더듬어나갈 만짐의 세월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이었다. 그 예감은 지난 2월 내가 이 술집을 찾아든 순간 적중했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겼다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사랑을 믿던 한 시기가 끝났으며, 뒤를 돌아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서른다섯이라는 인생의 한낮을 지나고 있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지만 이미 저묾과 어둠을 예비하고 있다. 내 생애의 조도는 여기가 최대치다. 이보다 더 밝은 날은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이 연령의 절반을 꼭지점으로 하여 직각으로 꺾이는 형태라면, 그녀의 인생은 오른쪽이 다소 높은 산의 능선처럼 삼분의 일 지점에서 봉우리를 이룬 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형태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멜로디가 있다. 이십대 후반 무렵 나만큼이나 겁이 많고 감정에 인색했던 그녀가 내게 보내온 노래는 매우 낮은 음역의, 들릴 듯 말 듯한 작고 희미한 멜로디였으리라. 나는 그것을 나와 무관한, 그녀의 희한한 개성으로 간주했다. 스물아홉의 봉우리에서 그녀는 너무 일찍 철들었고 다가올 어둠에 너무 일찍 눈이 익어 버렸다. 낡은 삼층 건물의 어둑한 실내에서 그녀가 낯선 여인들을 통해 본 것은 그녀의 미래가 그리는 능선이었을까. 삼년 전 그녀는 이미 오후를 사는 사람의 나른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지금의 내 대낮같은 기다림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작은 노랫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여자의 새된 노래에 혹한 내 귀의 어두움에서 비롯된 일이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희한한 건 그녀의 큰고모님 부부와 나의 질긴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옥상에 옥탑방을 얹은 낡은 삼층짜리 건물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며 가벼운 실수나 후회거리가 생기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때 찬물을 먹었어야 했는데.

헤어지기 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괜찮지?”

“괜찮네.”

물론 기차처럼 긴 술집에 대한 품평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내가 겪고 있는 실연의 고통이 서서히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대답을 되풀이하면서, 그녀가 자꾸 나의 안부를 묻고 나는 그것에 괜찮다고 대답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괜찮지? 괜찮아. 그러면서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이제 모든 것은 소소한 과거사가 되었다. 나는 기차간 모양의 술집 분위기를 내는 이단골 술집에 혼자 앉아 그녀의 이름, 그녀가 했던 얘기들, 그녀의 피식 웃던 표정, 그녀의 단정한 인중선과 윗입술을 생각한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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