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 (東胡)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bc770-bc221)부터 한(漢bc202-ad220)나라 초기까지 내몽골 동쪽에
있었던 수렵목축민족(狩獵牧畜民族). 흉노(匈奴), 즉 호(胡)의 동쪽에 거주했다는 뜻으로서의
호칭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직접 이웃한 연(燕)나라가 동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상곡(上谷)·
요동(遼東) 등에 5군(郡)을 설치하고는 동시에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회래(懷來)에서
랴오닝성[遼寧省]의 요양(遼陽) 사이에 장성(長城)을 구축하고 이들의 기마병을 방어하였다.
진(秦)에 이르자 동호는 더욱 강해져서 서방의 대월지[大月氏]와 더불어 흉노를 위협했으나,
전한(前漢) 초기에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에게 급습당하고 괴멸되어 그들의 세력하에 들어
갔다.
흉노는 동호왕(東胡王)을 두어 이를 지배하였으며, 오환(烏桓)·선비(鮮卑)·거란(契丹) 등은
동호의 후예라 한다. 동호란 퉁구스의 음역(音譯)이라고 하는 퉁구스설(說)이 있으나,
이는 다만 흉노 즉 호의 동쪽에 거주했다는 의미이고, 민족계통에 관해서는 몽골계(系)를
주로 하여 여기에 퉁구스계가 혼합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오환 (烏桓)
고대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 오환(烏丸)이라고도 쓰며,
전한(前漢bc202-)시대 초부터 후한(後漢-ad220) 말까지 활약하였다.
오환의 선조는 동호(東胡)인데, 동호가 BC 3세기 말 흉노(匈奴)의 모둔선우(冒頓單于)에게
격파되면서 일부는 시라무룬[西喇木倫]강을 중심으로 한 선비(鮮卑)가 되었고,
또 일부는 랴오허강[遼河]을 중심으로 한 오환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정사에 따르면 수렵·교역 외에 계절적 농경을 한 흔적이 있고, 샤머니즘을 믿었으며
비세습(非世襲)의 대인(大人)에 의해 통솔되었다. 초기에는 흉노에 복속되었으나,
후에 한(漢)나라에도 조공하였다.
한나라의 흉노억제책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이에 후한 광무제(光武帝)로부터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후한 말 답둔이 여러 부를 통일하면서, 유성(柳城)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으나, 조조(曹操)의 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북위(北魏) 이래 한민족과 융합되었다.
거란 (契丹)
4세기 이래 동몽골[東蒙古]을 본거지로 하고 있던 유목민족. 동호(東胡)의 후예로서 몽골과
퉁구스의 혼혈이라고도 하나, 대체로 몽골계에 속한다. 5세기 중엽부터 랴오허강[遼河] 상류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당대(唐代)에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부족 중에서 특히 8부족이 강력하여 그 중에서
추장을 뽑았는데, 당의 말기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등장하면서 907년에 거란족을
통일하고 제위(帝位)에 올랐다.
그 후 거란은 국호를 요(遼)라 칭하고, 그 위세는 만주·화북(華北)·몽골[蒙古]·신장[新疆] 방면에
까지 미치어 북아시아에서 일대세력을 형성하였으나, 1125년 만주에서 일어난 금(金)에게 멸망
되고 말았다. 당시 그 일족인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중앙아시아로 달아나 서요(西遼)를 세웠다.
거란은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으로부터 키타이(Kitai)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후에 차이나로 와전되어서 중국을 지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영어의 <Cathay(중국)>가 그것이다.
거란은 한인(漢人)을 지배하여 한문화(漢文化)에 접하게 되었으나,
민족 의식이 강하여 독자적인 거란 문자를 만들었으며,
후에 서하문자(西夏文字)나 여진문자(女眞文字)의 제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선비 (鮮卑)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인종이나 언어계통에 대해 상세한 것은 알 수 없다.
BC 3세기 초에 동호(東胡)를 구성하는 한 부족으로서 대싱안링[大興安嶺]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BC 206년 무렵 동호가 흉노(匈奴)의 모둔단우(冒頓單于)에게 격멸되자 흉노에게 복속되어
서서히 남하, 시라무룬강(遼河 上流) 유역에서 수렵·유목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흉노를 따라
한(漢)나라의 북동쪽 변방을 침입하기도 했다.
48년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된 뒤, 자립하기 시작하여 54년에는 추장인 어구분(於仇賁) 등이
후한(後漢)의 도읍 뤄양[洛陽]으로 가 조공을 바쳤고 광무제(光武帝)는 그를 왕에 봉했다.
2세기 중엽에 나타난 대추장 단석괴(檀石槐)는 북흉노의 잔류 부족을 비롯하여 몽골평원의
여러 유목민족을 귀속시켰고 동쪽으로 랴오둥[遼東], 서쪽으로는 준가얼분지[準喝爾盆地]에
이르는 대세력을 구축하여 중국의 북변(北邊)에서부터 서변(西邊)으로 침공,
후한의 조정을 괴롭혔다.
단석괴가 죽은 뒤, 각 부족의 대인(추장)의 자리가 선거추대제에서 세습제로 바뀜에 따라
통일세력은 와해되었다. 3세기 초에는 보도근(步度根)·가비능(軻比能) 등의 대인이 나오기는
했지만 통일은 이루지 못했고 3세기 중엽부터 모용(慕容)·우문(宇文)·단(段)·걸복(乞伏)
·탁발(托跋)·독발(禿髮) 등의 부족이 유력하게 되었다.
유력부족은 기마군단의 힘을 배경으로 한족(漢族) 지배층과의 결속을 다져가면서
5호16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의 화베이[華北]에서 격전을 벌였다.
모용씨는 전연(前燕)·후연(後燕)·서연(西燕)·남연(南燕)·토곡혼(吐谷渾),
걸복씨는 서진(西秦), 탁발씨는 대국(代國;北魏의 전신), 독발씨는 남량(南凉)을 세웠다.
그 뒤의 북조(北朝)의 왕조(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 및 수(隋)·당(唐)나라 왕조의 종실(宗室)도
조상은 선비계이다. 1980년 여름 대싱안링 북부 원생림의 한모퉁이에서 수렵·유목단계에 있던
선비 탁발부족의 제사 혼적이 있는 동굴이 발견되었다.
동굴 안의 벽에는 443년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일찍이 탁발부족이
이 땅에 살았다는 것, 동굴 안의 제단에서 천지와 조상에 제사를 올렸다는 것,
당시 선비의 추장을 가한(可汗)이라 하였던 것 등을 알 수 있다.
퉁구스어 (-語)
퉁구스족의 고유언어. 만주어(滿洲語)라고도 한다.
오늘날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 유역으로부터 동쪽지역·캄차카·사할린·연해주·싱안링·훌룸부이르
신장(新疆)의 일부와 몽골 북부 에 분포해 있다.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5∼6만 명이다.
각 방언은 매우 달라 완전히 별개어로도 볼 수 있으며, 전지역에 걸친 공통어는 없다.
다음 4가지 방언으로 구분되어 있다.
① 에벤어·에벤키어·솔론어·네기달어
② 우데헤어·오로치어
③ 나나이어·올차어·우일타어
④ 만주어. 그 밖에 12세기에 금(金)나라를 세웠던 여진족의 여진어라는 역사상의 언어도
만주어에 포함된다.
퉁구스어는 모음조화의 제한이 있어 어떤 모음과 다른 어떤 모음은 같은 말 속에
공존하지 않는다. 단어는 흔히 교착적 구조로서 어간과 이에 따르는 접미사와 어미로 분해되며,
또 어간만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다.
문자에 있어 여진어는 여진대자(大字), 나중에는 여진소자(小字)를 썼다.
만주어는 만주글자를 사용한다. 그 밖의 퉁구스 여러 언어에는 옛날에 문자가 없었지만,
오늘날 러시아령에서 에벤키어·에벤어·나나이어의 서사어(書寫語)의 경우 러시아 글자를 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진어에서는 12, 13세기 비문, 만주어에서는 17세기 초의 문헌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에벤키어·에벤어는 17세기말 네덜란드인 저서에 그 어휘가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퉁구스 여러 언어로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자료는 19세기 이후의 것이다.
우일타어는 19세기 중엽 기록된 단어자료가 있다.
이러한 퉁구스 여러 언어는 공통된 퉁구스 조어(祖語)에서 분화된 것이다. 퉁구스어는
몽골어·터키어와도 공통된 조어를 가지며, 이것들이 알타이어족을 이룬다는 설도 있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몽골족 (-族 Mongolians)
12∼13세기에 칭기즈 칸의 인솔로 아시아에서 유럽에 걸친 대제국을 세운 유목민족.
좁은 의미로는 몽골(외몽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할하족(族)을 가리키나,
넓은 의미로는 러시아연방령 바이칼호(湖) 주변의 부랴트족, 볼가강 하류유역의 칼미크족,
몽골내에 거주하는 약간의 소수부족과 거기에 중국의 둥샹족[東鄕族]·다촨얼족[達斡爾族]·
투족[土族]·바오안족[保安族] 등도 포함된다.
인구는 몽골에 약 260만명(1999), 내몽골자치구에 약 233만명(1997) 등이다.
편평한 얼굴, 눈에 두꺼운 몽골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팔·다리는 짧으나
체격은 전체적으로 우람하고 튼튼하다.
그들의 거주지인 몽골고원에서 고비사막에 걸친 지역에는 일찍이 흉노(匈奴)·선비(鮮卑)
유연(柔然)·위구르 등의 유목기마민족이 활약하였고 몽골족의 선조라 생각되는 사람들은
당대(唐代)에 몽골[蒙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민족으로서의 기반이 확립된 것은 칭기즈 칸에 의해 여러 부족이 통합되고부터이다.
대제국의 성립에 따라 몽골족은 중앙아시아·서아시아·유럽 각지로 거주지를 넓혀갔으나
대부분이 그 지방의 토착민족에 동화, 흡수되어 버렸다.
제국이 붕괴된 뒤에도 몽골족은 현재의 내·외몽골에서 신장[新疆]에 걸친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했으나, 동서(東西)로 분열하여 결국 만주족인 청(淸)나라에 병합되었다.
1921년에 소련의 원조로 외몽골은 독립을 이루었으나 내몽골은 중국령(領)에 머물고,
또 부랴트가 근접하면서도 러시아연방 영내에 있는 등 현재 몽골민족은 3개의 국가로 나뉘어
살고 있다.
서요(西遼)-카라키타이 (Kara Khitai)
12∼13세기에 거란인[契丹人]이 중앙아시아에 세운 국가. 서요(西遼)라고도 하며,
카라키타이는 이슬람 역사가가 일컫는 이름이다. 1124년 요나라가 금(金)나라에 멸망될 때,
외몽골로 탈출한 요나라 왕족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알타이를 넘어 중앙아시아로 진출해
위구르인 등의 원조를 얻어 1132년 카라 카간왕조를 멸망시키고 발라사군에서 제위를 계승해
구르 칸이라 칭하였다.
중국에서는 덕종(德宗)이라고 한다. 1137년 투르키스탄에 침입, 1141년 사마르칸트 근처에서
벌어진 셀주크제후의 대군과 싸워서 결정적으로 승리함으로써 동서 투르키스탄 전역이
카라키타이의 영토가 되었다.
이 왕조는 3대 80여 년간 계속되었으나 1211년 칭기즈 칸에게 쫓긴 나이만부(部)의 왕자
쿠출루크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다. 불교를 신봉하고 중국식 제도를 사용하는 등 증국문화의
서방전래를 보인 것은 유명하나, 그것은 수도 부근의 거란인·중국인 이주자 사회에 국한
되었으며, 이슬람교도인 터키인 주민들에게는 강요하지 않았다.
요약
동호 (몽골계와 퉁구스계의 혼혈)
BC770-A220 몽골지역거주 흉노에게 멸망당함 선비,오환,거란의 선조
거란
4세기-1125 요하상류-시라무렌강 금나라에 멸망당함 서요의 선조
*서요 1124-1200 투르크스탄 전역 지배
오환
BC202-220 요하거주 위(조조)에 멸망당함
선비
BC3세기- 시라무렌강-대흥안령 남북조의 북조,수,당 건국
** 몽골족 당나라때 처음 몽골족 이름 등장
퉁구스족 퉁구스어를 쓰는 민족,동호의 음역.
퉁구스어 퉁구스족의 언어,현재는 만주어와 3-4개의 소수부족이 남아있음.
결론
1. 동호는 현재의 시라무렌강과 대흥안령산맥일대 즉 중국의 북부와 동북부 일대에 거주하던 단군조선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동호가 몽골과 퉁구스의 혼혈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 몽골지역은 당시에는 유연,위구르,흉노,선비등의 유모기마민족들이 살고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있다. 몽골이 민족으로서 형성되어 역사에 등장한 것은 당나라시대라고 하였다. 그럼 있지도 않은 민족이 어떻게 동호의 선조가 된단 말인가?
- 그리고 퉁구스를 동호의 음역이라고 본다면 동호와 몽골의 혼혈이 동호다라는 말이 된다.이 또한 말이 안된다. 동호는 그냥 동호일 뿐이다. 혼혈이 아니다.
- 퉁구스족에 대한 것은 정의도 되어 있지 않다. 퉁구스어를 쓰는 민족이 퉁구스족인데 현재는 5-6만명이 남고 사라졌는데 대표적인 언어가 만주족이 쓰던 만주어이다. 그런데 만주족은 알다시피 숙신,읍루-말갈,물길-여진-만주등 지금의 만주지역에 살던 우리 민족을 중국이 왕조가 바뀔 때마다 호칭을 달리한 것이다. 숙신이 주신,조선에서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퉁구스라 불리는 민족역시 우리 민족인 것이다.
2. 동호의 후예라 불리는 선비,오환,거란 역시 단군조선의 후손들을 중국놈들이 달리 부르는 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호가 흉노에게 망한 후 시라무렌강 유역에 사는 종족은 선비,요하유역에 거주역
종족은 오환,요하상류와 시라무렌강 유역에 사는 종족은 거란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지역은 동호가 살던 지역을 나눈 것에 지나지 않는다. 흉노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어 서로 왕래가 줄어들고 교통이 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몇십년이나 몇 십년 사이에 민족이 변질되어 완전히 다른 민족이 되지는 않는다. 즉 동호=선비=오환=거란이 되는 것이다.
3. 중국역사의 대부분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의 역사에도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한나라 이후 북부에 세워진 대부분의 국가는 선비족이 세운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수,당의 왕조가 선비족이 왕족이다. 중국은 5호16국이니 5대10국이니 해서 용어를 혼란시키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나라들이 모두 단군조선의 후예들이 세운 국가들이다. 그리고 오환,거란,선비가 망한 후 한족에 동화되어 없어졌다라고 한다. 하지만 한족들의 숫자보다는 그 주변민족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동화된 것인가?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당나라 그리고 투르크스탄(돌궐)전역을 통일한 서요등을 함께 생각하면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건국을 해서 다스린 지역은 고려시대까지해도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접근한다.
4. 순수 한족은 없다. 허상일 뿐이다.
중국은 한족을 중심에 두고 주변의 민족을 오랑캐라 부르고 그들이 망한 후에는 모두 한족화되었다는 시나리오를 모든 왕조마다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한족이 순수하게 세운 나라는 진,한,송 나라 밖에 없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그리고 민족의 사람숫자만 따지더라도 순수한족보다는 그 외의 민족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동화되어 사라진 것은 순수한족인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 중국인들의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대부분 단군조선의 후손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정적인 것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다스린 청나라(후금)가 바로 단군조선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아니 더 직접적으로는 신라의 후손이다. 그러니 순수한족이 몇명이나 남아있겠는가?
일본놈들이 90% 우리의 복제품이라면
중국은 80% 우리민족의 복제품일 것이다.
5. 남은 과제
그렇다면 순수한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민족, 로마를 멸망시킨 민족 흉노와
이슬람시대에 전세계의 거의 절반을 통치했던 투르크(돌궐)
그리고 유연이니 위구르니 하는 민족들도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bc770-bc221)부터 한(漢bc202-ad220)나라 초기까지 내몽골 동쪽에
있었던 수렵목축민족(狩獵牧畜民族). 흉노(匈奴), 즉 호(胡)의 동쪽에 거주했다는 뜻으로서의
호칭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직접 이웃한 연(燕)나라가 동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상곡(上谷)·
요동(遼東) 등에 5군(郡)을 설치하고는 동시에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회래(懷來)에서
랴오닝성[遼寧省]의 요양(遼陽) 사이에 장성(長城)을 구축하고 이들의 기마병을 방어하였다.
진(秦)에 이르자 동호는 더욱 강해져서 서방의 대월지[大月氏]와 더불어 흉노를 위협했으나,
전한(前漢) 초기에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에게 급습당하고 괴멸되어 그들의 세력하에 들어
갔다.
흉노는 동호왕(東胡王)을 두어 이를 지배하였으며, 오환(烏桓)·선비(鮮卑)·거란(契丹) 등은
동호의 후예라 한다. 동호란 퉁구스의 음역(音譯)이라고 하는 퉁구스설(說)이 있으나,
이는 다만 흉노 즉 호의 동쪽에 거주했다는 의미이고, 민족계통에 관해서는 몽골계(系)를
주로 하여 여기에 퉁구스계가 혼합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오환 (烏桓)
고대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 오환(烏丸)이라고도 쓰며,
전한(前漢bc202-)시대 초부터 후한(後漢-ad220) 말까지 활약하였다.
오환의 선조는 동호(東胡)인데, 동호가 BC 3세기 말 흉노(匈奴)의 모둔선우(冒頓單于)에게
격파되면서 일부는 시라무룬[西喇木倫]강을 중심으로 한 선비(鮮卑)가 되었고,
또 일부는 랴오허강[遼河]을 중심으로 한 오환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정사에 따르면 수렵·교역 외에 계절적 농경을 한 흔적이 있고, 샤머니즘을 믿었으며
비세습(非世襲)의 대인(大人)에 의해 통솔되었다. 초기에는 흉노에 복속되었으나,
후에 한(漢)나라에도 조공하였다.
한나라의 흉노억제책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이에 후한 광무제(光武帝)로부터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후한 말 답둔이 여러 부를 통일하면서, 유성(柳城)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으나, 조조(曹操)의 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북위(北魏) 이래 한민족과 융합되었다.
거란 (契丹)
4세기 이래 동몽골[東蒙古]을 본거지로 하고 있던 유목민족. 동호(東胡)의 후예로서 몽골과
퉁구스의 혼혈이라고도 하나, 대체로 몽골계에 속한다. 5세기 중엽부터 랴오허강[遼河] 상류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당대(唐代)에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부족 중에서 특히 8부족이 강력하여 그 중에서
추장을 뽑았는데, 당의 말기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등장하면서 907년에 거란족을
통일하고 제위(帝位)에 올랐다.
그 후 거란은 국호를 요(遼)라 칭하고, 그 위세는 만주·화북(華北)·몽골[蒙古]·신장[新疆] 방면에
까지 미치어 북아시아에서 일대세력을 형성하였으나, 1125년 만주에서 일어난 금(金)에게 멸망
되고 말았다. 당시 그 일족인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중앙아시아로 달아나 서요(西遼)를 세웠다.
거란은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으로부터 키타이(Kitai)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후에 차이나로 와전되어서 중국을 지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영어의 <Cathay(중국)>가 그것이다.
거란은 한인(漢人)을 지배하여 한문화(漢文化)에 접하게 되었으나,
민족 의식이 강하여 독자적인 거란 문자를 만들었으며,
후에 서하문자(西夏文字)나 여진문자(女眞文字)의 제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선비 (鮮卑)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인종이나 언어계통에 대해 상세한 것은 알 수 없다.
BC 3세기 초에 동호(東胡)를 구성하는 한 부족으로서 대싱안링[大興安嶺]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BC 206년 무렵 동호가 흉노(匈奴)의 모둔단우(冒頓單于)에게 격멸되자 흉노에게 복속되어
서서히 남하, 시라무룬강(遼河 上流) 유역에서 수렵·유목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흉노를 따라
한(漢)나라의 북동쪽 변방을 침입하기도 했다.
48년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된 뒤, 자립하기 시작하여 54년에는 추장인 어구분(於仇賁) 등이
후한(後漢)의 도읍 뤄양[洛陽]으로 가 조공을 바쳤고 광무제(光武帝)는 그를 왕에 봉했다.
2세기 중엽에 나타난 대추장 단석괴(檀石槐)는 북흉노의 잔류 부족을 비롯하여 몽골평원의
여러 유목민족을 귀속시켰고 동쪽으로 랴오둥[遼東], 서쪽으로는 준가얼분지[準喝爾盆地]에
이르는 대세력을 구축하여 중국의 북변(北邊)에서부터 서변(西邊)으로 침공,
후한의 조정을 괴롭혔다.
단석괴가 죽은 뒤, 각 부족의 대인(추장)의 자리가 선거추대제에서 세습제로 바뀜에 따라
통일세력은 와해되었다. 3세기 초에는 보도근(步度根)·가비능(軻比能) 등의 대인이 나오기는
했지만 통일은 이루지 못했고 3세기 중엽부터 모용(慕容)·우문(宇文)·단(段)·걸복(乞伏)
·탁발(托跋)·독발(禿髮) 등의 부족이 유력하게 되었다.
유력부족은 기마군단의 힘을 배경으로 한족(漢族) 지배층과의 결속을 다져가면서
5호16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의 화베이[華北]에서 격전을 벌였다.
모용씨는 전연(前燕)·후연(後燕)·서연(西燕)·남연(南燕)·토곡혼(吐谷渾),
걸복씨는 서진(西秦), 탁발씨는 대국(代國;北魏의 전신), 독발씨는 남량(南凉)을 세웠다.
그 뒤의 북조(北朝)의 왕조(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 및 수(隋)·당(唐)나라 왕조의 종실(宗室)도
조상은 선비계이다. 1980년 여름 대싱안링 북부 원생림의 한모퉁이에서 수렵·유목단계에 있던
선비 탁발부족의 제사 혼적이 있는 동굴이 발견되었다.
동굴 안의 벽에는 443년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일찍이 탁발부족이
이 땅에 살았다는 것, 동굴 안의 제단에서 천지와 조상에 제사를 올렸다는 것,
당시 선비의 추장을 가한(可汗)이라 하였던 것 등을 알 수 있다.
퉁구스어 (-語)
퉁구스족의 고유언어. 만주어(滿洲語)라고도 한다.
오늘날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 유역으로부터 동쪽지역·캄차카·사할린·연해주·싱안링·훌룸부이르
신장(新疆)의 일부와 몽골 북부 에 분포해 있다.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5∼6만 명이다.
각 방언은 매우 달라 완전히 별개어로도 볼 수 있으며, 전지역에 걸친 공통어는 없다.
다음 4가지 방언으로 구분되어 있다.
① 에벤어·에벤키어·솔론어·네기달어
② 우데헤어·오로치어
③ 나나이어·올차어·우일타어
④ 만주어. 그 밖에 12세기에 금(金)나라를 세웠던 여진족의 여진어라는 역사상의 언어도
만주어에 포함된다.
퉁구스어는 모음조화의 제한이 있어 어떤 모음과 다른 어떤 모음은 같은 말 속에
공존하지 않는다. 단어는 흔히 교착적 구조로서 어간과 이에 따르는 접미사와 어미로 분해되며,
또 어간만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다.
문자에 있어 여진어는 여진대자(大字), 나중에는 여진소자(小字)를 썼다.
만주어는 만주글자를 사용한다. 그 밖의 퉁구스 여러 언어에는 옛날에 문자가 없었지만,
오늘날 러시아령에서 에벤키어·에벤어·나나이어의 서사어(書寫語)의 경우 러시아 글자를 쓴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진어에서는 12, 13세기 비문, 만주어에서는 17세기 초의 문헌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에벤키어·에벤어는 17세기말 네덜란드인 저서에 그 어휘가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퉁구스 여러 언어로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자료는 19세기 이후의 것이다.
우일타어는 19세기 중엽 기록된 단어자료가 있다.
이러한 퉁구스 여러 언어는 공통된 퉁구스 조어(祖語)에서 분화된 것이다. 퉁구스어는
몽골어·터키어와도 공통된 조어를 가지며, 이것들이 알타이어족을 이룬다는 설도 있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몽골족 (-族 Mongolians)
12∼13세기에 칭기즈 칸의 인솔로 아시아에서 유럽에 걸친 대제국을 세운 유목민족.
좁은 의미로는 몽골(외몽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할하족(族)을 가리키나,
넓은 의미로는 러시아연방령 바이칼호(湖) 주변의 부랴트족, 볼가강 하류유역의 칼미크족,
몽골내에 거주하는 약간의 소수부족과 거기에 중국의 둥샹족[東鄕族]·다촨얼족[達斡爾族]·
투족[土族]·바오안족[保安族] 등도 포함된다.
인구는 몽골에 약 260만명(1999), 내몽골자치구에 약 233만명(1997) 등이다.
편평한 얼굴, 눈에 두꺼운 몽골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팔·다리는 짧으나
체격은 전체적으로 우람하고 튼튼하다.
그들의 거주지인 몽골고원에서 고비사막에 걸친 지역에는 일찍이 흉노(匈奴)·선비(鮮卑)
유연(柔然)·위구르 등의 유목기마민족이 활약하였고 몽골족의 선조라 생각되는 사람들은
당대(唐代)에 몽골[蒙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민족으로서의 기반이 확립된 것은 칭기즈 칸에 의해 여러 부족이 통합되고부터이다.
대제국의 성립에 따라 몽골족은 중앙아시아·서아시아·유럽 각지로 거주지를 넓혀갔으나
대부분이 그 지방의 토착민족에 동화, 흡수되어 버렸다.
제국이 붕괴된 뒤에도 몽골족은 현재의 내·외몽골에서 신장[新疆]에 걸친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했으나, 동서(東西)로 분열하여 결국 만주족인 청(淸)나라에 병합되었다.
1921년에 소련의 원조로 외몽골은 독립을 이루었으나 내몽골은 중국령(領)에 머물고,
또 부랴트가 근접하면서도 러시아연방 영내에 있는 등 현재 몽골민족은 3개의 국가로 나뉘어
살고 있다.
서요(西遼)-카라키타이 (Kara Khitai)
12∼13세기에 거란인[契丹人]이 중앙아시아에 세운 국가. 서요(西遼)라고도 하며,
카라키타이는 이슬람 역사가가 일컫는 이름이다. 1124년 요나라가 금(金)나라에 멸망될 때,
외몽골로 탈출한 요나라 왕족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알타이를 넘어 중앙아시아로 진출해
위구르인 등의 원조를 얻어 1132년 카라 카간왕조를 멸망시키고 발라사군에서 제위를 계승해
구르 칸이라 칭하였다.
중국에서는 덕종(德宗)이라고 한다. 1137년 투르키스탄에 침입, 1141년 사마르칸트 근처에서
벌어진 셀주크제후의 대군과 싸워서 결정적으로 승리함으로써 동서 투르키스탄 전역이
카라키타이의 영토가 되었다.
이 왕조는 3대 80여 년간 계속되었으나 1211년 칭기즈 칸에게 쫓긴 나이만부(部)의 왕자
쿠출루크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다. 불교를 신봉하고 중국식 제도를 사용하는 등 증국문화의
서방전래를 보인 것은 유명하나, 그것은 수도 부근의 거란인·중국인 이주자 사회에 국한
되었으며, 이슬람교도인 터키인 주민들에게는 강요하지 않았다.
요약
동호 (몽골계와 퉁구스계의 혼혈)
BC770-A220 몽골지역거주 흉노에게 멸망당함 선비,오환,거란의 선조
거란
4세기-1125 요하상류-시라무렌강 금나라에 멸망당함 서요의 선조
*서요 1124-1200 투르크스탄 전역 지배
오환
BC202-220 요하거주 위(조조)에 멸망당함
선비
BC3세기- 시라무렌강-대흥안령 남북조의 북조,수,당 건국
** 몽골족 당나라때 처음 몽골족 이름 등장
퉁구스족 퉁구스어를 쓰는 민족,동호의 음역.
퉁구스어 퉁구스족의 언어,현재는 만주어와 3-4개의 소수부족이 남아있음.
결론
1. 동호는 현재의 시라무렌강과 대흥안령산맥일대 즉 중국의 북부와 동북부 일대에 거주하던 단군조선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동호가 몽골과 퉁구스의 혼혈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 몽골지역은 당시에는 유연,위구르,흉노,선비등의 유모기마민족들이 살고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있다. 몽골이 민족으로서 형성되어 역사에 등장한 것은 당나라시대라고 하였다. 그럼 있지도 않은 민족이 어떻게 동호의 선조가 된단 말인가?
- 그리고 퉁구스를 동호의 음역이라고 본다면 동호와 몽골의 혼혈이 동호다라는 말이 된다.이 또한 말이 안된다. 동호는 그냥 동호일 뿐이다. 혼혈이 아니다.
- 퉁구스족에 대한 것은 정의도 되어 있지 않다. 퉁구스어를 쓰는 민족이 퉁구스족인데 현재는 5-6만명이 남고 사라졌는데 대표적인 언어가 만주족이 쓰던 만주어이다. 그런데 만주족은 알다시피 숙신,읍루-말갈,물길-여진-만주등 지금의 만주지역에 살던 우리 민족을 중국이 왕조가 바뀔 때마다 호칭을 달리한 것이다. 숙신이 주신,조선에서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퉁구스라 불리는 민족역시 우리 민족인 것이다.
2. 동호의 후예라 불리는 선비,오환,거란 역시 단군조선의 후손들을 중국놈들이 달리 부르는 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호가 흉노에게 망한 후 시라무렌강 유역에 사는 종족은 선비,요하유역에 거주역
종족은 오환,요하상류와 시라무렌강 유역에 사는 종족은 거란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지역은 동호가 살던 지역을 나눈 것에 지나지 않는다. 흉노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어 서로 왕래가 줄어들고 교통이 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몇십년이나 몇 십년 사이에 민족이 변질되어 완전히 다른 민족이 되지는 않는다. 즉 동호=선비=오환=거란이 되는 것이다.
3. 중국역사의 대부분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의 역사에도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한나라 이후 북부에 세워진 대부분의 국가는 선비족이 세운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수,당의 왕조가 선비족이 왕족이다. 중국은 5호16국이니 5대10국이니 해서 용어를 혼란시키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나라들이 모두 단군조선의 후예들이 세운 국가들이다. 그리고 오환,거란,선비가 망한 후 한족에 동화되어 없어졌다라고 한다. 하지만 한족들의 숫자보다는 그 주변민족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동화된 것인가? 그리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당나라 그리고 투르크스탄(돌궐)전역을 통일한 서요등을 함께 생각하면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건국을 해서 다스린 지역은 고려시대까지해도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접근한다.
4. 순수 한족은 없다. 허상일 뿐이다.
중국은 한족을 중심에 두고 주변의 민족을 오랑캐라 부르고 그들이 망한 후에는 모두 한족화되었다는 시나리오를 모든 왕조마다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한족이 순수하게 세운 나라는 진,한,송 나라 밖에 없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그리고 민족의 사람숫자만 따지더라도 순수한족보다는 그 외의 민족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동화되어 사라진 것은 순수한족인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금 중국인들의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대부분 단군조선의 후손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정적인 것은 1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을 다스린 청나라(후금)가 바로 단군조선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아니 더 직접적으로는 신라의 후손이다. 그러니 순수한족이 몇명이나 남아있겠는가?
일본놈들이 90% 우리의 복제품이라면
중국은 80% 우리민족의 복제품일 것이다.
5. 남은 과제
그렇다면 순수한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민족, 로마를 멸망시킨 민족 흉노와
이슬람시대에 전세계의 거의 절반을 통치했던 투르크(돌궐)
그리고 유연이니 위구르니 하는 민족들도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출처 : 할미꽃당신 TS16949
글쓴이 : 빙혼서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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