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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빨치산 서울입성"등 러시아 영상물 첫 공개

by 8866 2006. 5. 19.
"빨치산 서울입성" 등 러시아 영상물 첫 공개
소련군 북한 진주, 김일성 동독 방문 등 담겨
빨치산 서울입성, 46년 인민위 선거 등 확인성과
하니Only 김학준 기자
▲ 김일성 모스크바 방문 모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18일 공개한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에 나오는 1949년 3월 김일성의 러시아 방문 모습.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18일 러시아사진영상기록보존소가 소장하고 있던 1945년 소련의 대일전 참전부터 1956년 김일성 동독방문까지 168건, 13시간 분량의 영상기록물과 200여장의 사진을 수집해 공개했다.

영상물은 △소련의 대일 참전 △북한의 진주과정 △북한의 사회상 △북한인민위원회 선거 △초기 북한군대의 모습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과 인민군 △전후복구 광경 △1949~56년 북한의 외교와 대외문화예술 활동 등이다.

국가기록원은 △1946년과 1947년의 인민위원회 선거 모습 △빨치산의 서울입성 첫 확인 △신천 민간인 학살 현장 기록물 등의 확인을 의미있는 성과로 꼽았다.

국가기록원은 지난해 9월 러시아 연방기록관리청과 산하기록보존소인 국립문서보존소 및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존소 등과 기록교류 협정을 체결했으며, 러시아 정부가 소장한 한국관련 기록의 수집을 정부간 협력 차원의 사업으로 추진해왔다.

<한겨레>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 북조선여성동맹 강연회1(1946)

▲ 북조선여성동맹 강연회2(1946)

▲ 철도와 산업을 북한에 양도하는 소련군사령부(1946[1].8)

▲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중공군(1953[1].7)

▲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미군(1953[2].7)

▲ 철수하는 소련군(평양, 1949[1].2)

▲ 중공군의 참전, 수송부대의 탄약이동(1952)

▲ 중공군의 전후복구 참여(1953)


평양시민들의 소련군 입성 환영 모습.


조선 인민군악단의 협주 1952.


전쟁의 폐허 1950.


인민군이 노획한 미군 탄환과 비행포탄(1952)


북한의 전쟁 포스터(1950.12)


미군포로들(1950.8)


면리(동)인민위원회선거(평양,1947.3)


면리(동)인민위원회선거(1947.3)


남포의 소비에트 병원(1947.5)


1949년 김일성의 모스크바방문(1949.3)

[자료해설] 상실된 역사 복원의 의미, 기록적 가치 높아

기광서(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러시아 영상문서보관소는 러시아연방 기록청 산하에 11개 문서보관소의 하나로 제정러시아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필름과 사진 자료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 관련 자료는 해방 이후 시기 북한 관련 기록 필름 1,000여분 분량과 사진 650여장이 확인된다.

이번에 수집된 영상자료는 제2차세계대전 말기 대일(對日)전쟁에서 1980년대 조소관계에 관한 영상필름과 사진이다. 이제까지 일부의 기록이 국내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다수는 내용은 새로 공개된 것들로서 매우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할만한 기록을 큰 틀에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소련의 대일전 전투

2. 북한의 해방과 소련군 입성

3. 해방직후 북한의 풍경

4. 북한지도부의 활동

5. 1946년 11월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6. 소련군의 북한 철수

7. 1949년 김일성의 방소

8. 한국전쟁(소련의 시각)

9. 전후 복과와 북한의 상황

10. 1956년 김일성의 방소

영상자료는 소련이 대독(對獨)전쟁 승리 후 연합국과의 합의에 따라 대일(對日)전 준비를 진행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대독전쟁의 모습이 비춰진 이후 소련군의 행진과 열차를 통한 극동으로의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극동군 총사령관 바실리예스키와 제1극동전선군 사령관 메레츠코프 등 소련군 수뇌부의 작전회의 광경과 대일전 작전 개시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는데, 특히 소련군 진격 시 만주 지역의 험로를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만주 지역과 태평양 지역(사할린과 쿠릴열도)에서 육군과 해군의 동시 작전과 전투 후 항복한 일본군 포로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소련군이 각 지역을 장악한 다음 감옥을 열어 정치범을 비롯한 수형자들을 석방시키는 광경은 소련군의 ‘해방적’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련군의 북한 진주 시 수많은 주민들이 태극기와 소련국기를 들고 이들을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이다. 냉전 시기 소련에서 쓰인 여러 문헌들이 주민들의 소련군 환영에 대해 쓰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영상물이 공개된 적이 없다. 본 영상물은 여러 지역에서 소련군의 진주와 환영 인파를 보여줌으로써 처음 소련군에 대한 조선민중의 인식의 단편을 엿볼 수가 있다.

토지개혁에 관한 영상은 각 농촌 지역별로 인민위원회측의 주도하에 농민 집회를 열어 토지개혁 법령을 낭독하고, 이 개혁의 목적과 의의를 설명해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땅을 받게 된 농민들이 이에 환호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북한 전역에서 벌어졌다.

주목을 끄는 것은 북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위원장인 김일성이 남측에서 온 첩보원을 면담하고 남측 관련 사진자료를 보고 있는 광경이다. 남한에서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북조선공산당(북로당)이 남한 내 통일전선 사업에 관여하게 되는 전초로 볼 수가 있는 모습이다. 이후 북로당은 독자적이라 할 만큼 남한 내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에 관한 영상 기록은 당시 선거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함흥시의 선거 이전 풍경, 후보자들의 선거포스터, 김일성의 선거관련 연설, 선거 당일 축제와 선거하러 가는 사람들, 투표장 광경 등은 예전에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록들이다. 북한지도부가 선거를 축제행사로 만들어 주민들의 대대적인 참여를 적극 홍보한 것을 보면 이 선거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 수 있다.

선거 과정과 절차에 관한 영상 또한 매우 가치 있는 기록물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흑백투표의 광경이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투표함이 완전히 노출되지는 않았고, 병풍으로 둘러친 ‘반(半)공개’ 선거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소련군의 철수 장면은 이를 환송하는 인파와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소련군이 지나는 지역마다 수많은 군중들이 인공기와 소련기를 들고 조선의 ‘해방자’로 간주된 소련군의 철수를 환송하는 장면이다. 소련군의 북한 주둔 3년은 북한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소비에트식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이는 봉건적인 북한에 ‘선진문명’의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으로 파악할 수 도 있지만 남북간 이질화를 이끈 점에서 부정적인 유산도 동시에 낳았다. 소련군을 열렬히 환송하는 군중들이 실제로 어떠한 생각과 느낌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일은 향후 연구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여태까지 해방 이후 북한 관련 영상기록이 극히 미미했음을 감안을 볼 때 이번 국가기록원의 북한 관련 영상기록 수집은 이들 자료는 ‘상실된’ 역사에 대한 일정한 복원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또한 문헌자료를 통해 역사적 해석에 주력해 왔던 많은 연구자들에게 해당 시기에 대한 보다 실증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출처 : 007NIS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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