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의 기원
그림 1 탄생과 함께 만나는 옷, 강보에 싸인 아기
아기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외부환경은 바로 아기를 감싸는 천인 강보(그림 1)이다. 강보는 아기가 처음 입는 옷이며 이후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가장 많은 시간동안 피부에 직접 접하며 옷을 입는다. 시간을 할애하여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고 옷차림으로 인하여 돋보이기도 하고 쾌적하기도 하며 활동에 제약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의복은 ‘제 2의 피부’라고 불리며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환경으로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복은 인체를 감싸는 것으로 평상시 우리가 ‘옷’이라 부른다. 옷은 의복, 피복, 의류, 의상, 복장, 복식 등의 다양한 용어로 불리며 서로 혼용되어 사용하기도 한다.
인간이 왜 옷을 입기 시작하였을까? 다양한 대답이 있겠으나 어느 한 가지를 복식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의복에 기대하는 인간의 욕구는 단순한 이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하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의복에 대한 증거는 약 4~6만 년 전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무덤과 동굴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서남아시아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진화 발달하여 유럽으로 이동한 네안데르탈인들이 극심한 추위를 이기기 위하여 사냥한 짐승의 털을 감싸기 시작한 이후부터라고 추정된다. 이렇게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주위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는 지혜를 길렀다.
인류가 의복을 몸에 걸치기 시작한 동기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과 주장이 있다. 의복의 기원을 정리해보면 다음의 몇 가지 이론으로 설명된다.
신체를 보호하는 신체보호설, 악을 피하고 행운을 기리는 심리적 보호설, 나체를 수치스럽게 여김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정숙설,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성흡인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장식의지를 표현한 신체장식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신체보호설
의복의 기원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기는 하나 다른 동물에 비하여 신체적으로는 매우 약하다.
그림 2 (구석기시대 네안데르탈인의 의복)
몸을 보호하는 털이 없고 피부가 매우 약하여 추위나 더위로부터 체온을 쉽게 잃는다. 또한 벌레에 물리거나 외부로부터의 충격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 쉬우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보호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외적 환경을 극복하고 스스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의복이다. 의복으로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은 생명유지와 관련이 되는 실용적 기능이다. 덥고 건조한 모래사막 지역에서는 뜨거운 태양열과 모래바람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에 온 몸에 천을 둘러 입지만(그림 3), 같은 더운 지역이라도 열대 아프리카는 나무가 무성하고 습도가 높아 간단한 형태의 의복으로 더위를 이긴다(그림 4). 반면 에스키모인은 강한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털옷으로 몸을 보호한다(그림 5).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견디기 위한 계절복이 잘 발달한 나라이다.
이처럼 추위, 더위 등의 기후적 조건 이외에도 여러 혹독한 자연풍토, 독충 등의 외부 환경으로부터 노출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의복을 착용해야만 한다. 이는 현대사회의 패션디자인 분야에서 쾌적한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의복 선택과 직결된다. 특히 특수한 상황에서의 신체보호를 위한 기능복 디자인 개발이 요구되는 영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격렬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복, 위험한 환경에서 신체를 보호하며 작업해야하는 소방복 등이 대표적이며 신체보호와 쾌적한 삶을 위해 기능적이며 인간공학적인 패션디자인 제품의 개발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림 3 모래사막의 의복
그림 4 더운지역의 의복
그림 5 에스키모인의 방한복
2. 심리적 보호설
물리적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경우 외에도 초자연적인 악을 피하고 행운을 기리는 것과 같은 심리적인 보호를 위해 의복을 착용한다. 인간은 자연환경을 지혜로 극복하면서 살아가지만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앙에는 무력하므로 초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하여 심리적으로 보호 의지를 가지게 된다.
신앙을 통해 안녕과 행복을 바라면서 정신적인 안정을 얻기도 하고, 신념을 갖는 대상의 상징성을 통해 보호받고자 한다. 이때 신앙의 형식을 행위로 옮기는 것 중에는 몸에 치장을 하거나 부적을 달거나 색다른 의복을 입어서 표현한다. 맹수의 뼈나 이빨, 뿔 등을 몸에 지니고 다님으로 그 동물의 힘이 자신에게 옮겨진다고 여겼고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했다(그림 6). 몸에 페인팅을 하거나 상처를 내는 것, 인체 장식을 하고 색을 맞추어 옷을 입는 것 등이 바로 이런 주술적인 뜻이 있는 것이다. 옷이 필요 없는 더운 열대지역에서의 민속신앙의 의식(儀式)을 위한 복식이 여기에 속한다(그림 7). 고딕시대의 끝이 뾰족한 신발과 모자가 악마를 물리친다고 여긴 것이나 우리나라 전통혼례 때 신부의 얼굴에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로 연지, 곤지를 찍었던 것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개종족으로부터 인류문화의 원천을 찾아보려 했던 민족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복식의 시작을 심리적으로 스스로 보호하려는 주술(呪術)이나 부적(符籍) 등 정신적 요소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현대사회의 경제력과 지위상승의 연관성과도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는데 현대인들이 값비싼 명품으로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여 사회적인 우월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심리도 현대패션에 나타나는 심리적 보호설이라 볼 수 있다.
그림 6 심리적 보호를 위한 장식
그림 7 민속신앙의 의식복
3. 정숙설
정숙설은 인간이 자신의 벗은 몸에 대해 수치를 느끼기 시작하여 신체의 치부를 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기독교 성격 속의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은 후 자신들이 옷을 입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게 되었다는 기록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정숙설은 인간이 나체에 대한 수치심으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었기 때문에 나체에 대한 수치심이 생기게 되었다는 반론이 있다. 어린아이의 경우 반복적으로 옷을 입히는 행동과 교육 때문에 옷을 입지 않은 것을 창피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와 시대에 따라 수치를 느끼는 개념과 신체부위는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는 얼굴이 노출되는 것은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나 이슬람 지역의 여성들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전통복식인 차도르(chador)와 머리쓰개인 히잡(hijab)을 착용한다(그림 8). 19세기 여성들의 발목 노출은 에로틱한 것이었으나 오늘날 발목을 노출하는 일은 더 이상 눈길을 끄는 일이 아니다. 1960년대 이전에 길거리에서 여성의 무릎이 드러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으나 미니스커트의 등장 이후 현재까지 여성들의 신체 노출 수위는 다리, 어깨, 등, 배꼽 등으로 매우 과감해졌다(그림 9). 우리나라 조선시대 말기에는 길거리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활보하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아들을 낳아 젖먹이가 집에 있다는 자랑이었다(그림 10). 또한 아프리카 원주민은 복부에 정신이 있다고 여겨 전신을 노출한 채 허리를 감싸는 요의(腰衣)를 입는다(그림 11). 이렇듯 정숙설에서 수치를 느끼는 신체부위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현상과 다른 기준을 보이고 있다.
그림 8 이슬람여성의 히잡과 차도르
그림 9 60년대 미니스커트
그림 10 조선말한국여성
4. 이성 흡인설
남녀가 서로 이성을 끌기 위한 동기에서 옷이 발생했다는 것으로 ‘성욕설’, ‘종족보전설’이라고도 한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대다수의 동물의 미에 대한 동경은 이성의 주의를 끄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주장을 통해 살펴보면 의복의 기원은 이성 흡인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성의 주의를 끌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은폐하는 방법과 눈에 잘 드러나도록 장식하는 방법이다. 원시인들은 종족의 번식을 위한 생식과 관련된 신체부위를 매우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이를 과장하여 장식하였고(그림 11)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복인 코드피스(codepiece)도 남성성을 과시하는 매우 에로틱한 의복이었다.(그림 12) 여성복식도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코르셋을 착용함으로 인체의 볼륨을 과장하여 성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그림 13).
그러나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 은밀하게 감추는 방법은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 큰 성적 자극이 되고 있다(그림 14). 부분적인 은폐가 전라보다 더 흡인력이 크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현상이다. 옆이나 뒤가 길게 트인 좁은 스커트, 인체의 볼륨이 그대로 드러나는 몸에 꼭 맞는 실루엣, 깊게 파인 네크라인, 훤히 비치는 시스루(see through)의 옷들은 신체를 덮고 있을지라도 충분히 성적인 자극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의복이 성적매력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실례로 파티복과 작업복을 비교해서 드러나는 양면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의복의 형태로부터 성적 관심이 활발해야 할 때인가 아니면 성적인 자극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림 11 남근을 강조하는 부족장식
그림 12 16세기 코드피스
그림 13 볼륨을 강조하는 코르셋
그림 14 성적 자극을 유발하는 은폐
5. 신체장식설
인류가 복식을 착용하게 된 동기 중에 하나가 자기도취(narcissism)에 있다는 학설이다. 좀 더 아름다워지고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돋보이고 싶은 욕망은 몸을 치장하게 된 본능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랭거(Langner, 1959)는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을 숨기고 더욱 더 신처럼 되기 위하여 자신을 장식한다고 하였다. 신체장식설은 지구상의 모든 종족 중에 의복을 착용하지 않은 종족은 있으나 신체 장식이 없는 종족이 드문 것으로 보아 매우 설득력 있는 유력한 학설이다.
신체장식은 신체를 변형하는 것과 외부적인 형태를 덧붙여서 장식하는 것로 구분된다. 또한 영구적인 장식(그림 15)과 일시적인 장식(그림 16)으로 구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일시적인 장식과 외부적인 형태는 쉽게 제거되는 의복, 악세서리, 화장 등이며 영구적인 장식과 신체를 변형하는 것은 문신, 상흔, 피어싱, 현대의 성형수술 등이 있다.
자연스러운 인체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만들어내는 중국여성의 전족, 중세 유럽에서 오랫동안 유행한 코르셋, 엄청난 신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다양한 문신과 상흔을 내어 신체를 장식하는 지구상의 여러 민족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예를 통해 신체를 변형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신체를 장식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의복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장식은 의복의 기능보다 미에 비중을 더 두는 것으로 신체장식을 통해 성적 매력, 지위 등을 나타내고 착용자의 감정을 표현한다. 현대에도 문신이나 성형수술 등을 통한 다양한 패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림 15 신체적 고통을 감수한 장식(상흔, 전족, 코르셋, 목과 입술의 신체변형)
그림 16 바디페인팅과 타투를 통한 신체장식
출처: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예술학부 박진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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