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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불교와 현대철학/김종욱

by 8866 2009. 11. 29.

 

불교와 현대철학

 

동국대 불교학과 김종욱교수의

불교로이해하는 현대철학

 

제1강 불교와 철학 왜 만나야 하는가?


불교는 2500년 동안 神을 얘기하지않았던 것은 무슨 경쟁력일까?
창조주는 유일신을 얘기하지않았는데도 살아 남을 쑤 있는 이유는 뭔가?
 
서양에서는 자아 해체론으로 가고 있다.
 
 
신을 생각하지않으면서 고도의 철학을 할 수 있었다,.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이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유일신을 모시고 제일 시끄럽다.
오늘날 전쟁의 근원지는 유일신을 근원지로하는 곳이다.
과학과 충돌한다
갈릴레오, 생명공학과 대립하는데
자연과학은 자연 내부를 두고서 설명하지마 기독교는 자연 밖의 초월적인 것으로 설명하려고한다.
불교는 세상 밖에 것이 아닌 12연기로 설명한다.
그래서 과학과 충돌되질 않는다.
과연 어떤 종교가 살아 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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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철학의 만남
 
제1강 아리안족과 셈족 그리고 한족
 
불교 기독교(2000년) 이슬람(1300년)
 
서양현대 철학은 니체 이후 신이 없는 철학을 하고 있다.
 
고대 : ~4세기
중세 : 5세기 14세기
근대 : 17세기 19세기
현대 : 20세기~
 
15세기 르네상스 - 문화 예술..
16세기 리포메이션 - 종교개혁(이때가 중심이 된다)
17세기 - 과학혁명 - 합리화
18세기 - 시민혁명 - 민주화
19세기 - 산업혁명 - 산업화
..혁명의 시대로 이어졌다.
 
신 - 창조주
인간
자연
트라이 앵글, 인간이 가운데, 신을 중심으로 하고(섬기고)그밑에 것을 지배한다
 
자연지배 - 산업혁명 - 자연의 죽음 - 환경파괴
인간지배 - 제국주의 - 인간의 죽음(이성의 죽음) 전쟁의 역사
신의존재 - 신의죽음 -
 
불교는 신을 얘기하지 않고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이다.
불교는 자연을 사물의 내부로 설명하고 인간을 인간의 내부의 연기법으로 설명하고 기독교는 유일신으로 설명하려니 한계가 있는 것이다.
 
 
윤회는 인도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인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카타르시스 : 배설. 설사. 대변 - 정화와 승화의 뜻.
 
기독교 : 윤회를 배척하고 부활을 믿는다.
 
神 :
申 날일자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네 개의 뭉게 구름 사이로 지나가는 - 번개
示 二 둘이 아니라 上을 뜻하여 하늘을 뜻하고 그 밑에 있는 세 개는 해 별 달 의 세 가지이다.
神하늘 길흉화복을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하늘 위력 신묘
 
天 :
(人)인간위에 있는 것 즉 하늘
자연즉 의미 : 하늘
인간적 의미 : 帝(주제자)
도덕적 의미 : 정권 흥망
 
중국(한족) - 독자성 - 폐쇠성. 독자성. 우월의식. 고립성. 배타성.
->이러한 쪽으로 빠지질 않으려면 문화적 충격이 있어야 겠는데 인도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보편적이고 다양함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제5회 서양철학의 원류와 불교 - 로고스와 다르마
 
철학 - 필롭소피
필롭 - 좋아함 에로지
소피아 - 지혜의 대상이 되는 로고스
불교의 지혜 - 반야 - 바라밀
 
 로고스와 다르마
logos : 명사, 외계인을 명사함.
로고스 - 세상의 이치
변화는 생성과 소멸이니 - 낮이 가고 밤이 오고 - 달이 차고 기울고 -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해간다.
일정한 주기적 패턴이 있다.
세상의 주기적 패턴을 잘 맞추어 간다는 것은 그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의 이치를 로고스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道(타워)라고 했다 - 세상의 이치 근원.
인도인들은 다르마라고 표현한다
 
legein :
1 - 모으다..
2 - 정돈하다..
3 - 셈하다.
4 - 말하다.
5 - 생각하다.
 
logos  :
1 - 수집. 채집.
2 - 질서. 이치. 법칙. 근거. 이유. 기준
3 - 계산. 비율.
4 - 말씀. 언어. 설명. 담론.
5 - 사유. 이성. 분별 식별력.
 
코스모스 -> 숫적 질서가 잘 잡혀 있다는 뜻.
 
성부. 성자. 성령 = 로고스. 하느님. 예수
->성부. 성자. 성령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어찌 하나가 되는 것이냐고 반대를 하였던 것이다.
유교는 종교이기전에 조상 숭배인데 어찌 아버지가 아들이고 아들이 아버지인가..?
 
기독교는 - 천지 창조 - 아담이브 - 원죄 - 추방 - 구원보장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면 신의 딸도 있고 손자 손녀도 있는가?
신이 가족이 있다면 하느님도 아버지가 있고 엄마가 있는가..?
 
도를 언어로 한다면 상도가 아니다. 비가도 비상도.
 
종 - 궁극의 진리
교 - 언어로 가르침
언어를 떠났다는 것이다. 말할수 없다고 가르치질 않는다면 진리가 아니다.
언어가 전부는 아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드러난다 - 기독교가 법이약한 이유
 
서양 - 자연법칙 - 수학 - 계산 - 일의성 - 정일성 - 과학 + 기술 (사이언스+테그롤로지 -이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국 - 자연법칙 - 상징 - 해석 - 다양성 - 수양론 - 도학자(士) 농공상(장인) 중구이 과학 최고 -종이 화약
과학과 기술이 따로 두었기에 아편전쟁에 졌다.
..수학은 계산이라(1+2=2) 답이 하나지만 동양학은 상징이라서 여러 개의 답이 될 수 있다.
이세상에 답이 하나라면 점집도 하나라야한다.
해석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합리주의 : 비합리적. 우련적인 것을 배척하고,
이성적, 논리적,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주의
 
창조능력 - 神중심
사유주의 - 인간
 
 제4강 서양철학의 원류와 불교

 
多, - - 爲 - 可變 -------- 不變 -  眞 -    一   ..... 본질주의
차이 - 惡 - 可滅 --eros-- 不滅 - 善 - 동일성 -  이성주의(합리론)
특수 - 醜 - 可死  초월충동 不死 - 美 - 보편성 -  정신주의 (관념론)
 
진선미의 반대는 위악추爲惡醜를 극복한다.
 
서양철학사 :
고대철학 - 이데아(本),
중세철학 - 神,
근대철학-자아,
 
에로스-죽음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생사를 초탈하고자 하는 욕망.
 
 
파라마 - 波羅蜜 - 도피안, 완성
 
生滅 - 不生不滅
生死 - 涅槃
輪廻 - 不生不滅
衆生 - 佛
 
불변... - 변화부정(서양철학)
무집착 - 집착부정(불교)
 
解脫 - 生과 死에서 나오는 번뇌의 산란한 마음이 가라 앉는 마음
곧 涅槃
 
生도 滅도 관념적인 것일 뿐이다.
 
 
不生不滅은 변화를 부정(서양-에로스)
不生不滅은생성 소멸 모두를 부정한다(불교-파라밀)
 
 
不生不滅 생멸변화를 부정하는 것이아니라
生이라는 일념적 관념
滅이라는 일념적 관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오는 것을 生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生이 있기 위해서는 씨앗의 죽음이 있었으니 滅의 전제가 있어야한다.
따라서 滅은 곧 生이니 보는 사람의 관념에 의해서 生이다 滅이다 하는 것이다.
 
진상 즉 실상은 生과 滅을 관념적으로 일관되지않고
 生滅은 여여하다는 것이다
여여하다는 그러그러하다는 것은 진짜 그렇다는 것이니 진여이다.
기신론 - 불생불멸 - 진여
 
不生不滅은
生과滅의 애착을 귾으라는 것이다.
生과 滅에 메이지 않을 때에는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불교에서 윤회하는 이유를 業에 의해서 나왔고 業은 행위라는 뜻이고(까르마)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냥하는 행동은 없고 모든 行은 의도가 있다.
의도와 의지는 마음의 문제이다.
 
윤회의 원인은 業 즉 行 있고 業은 의지 의도하는 마음에 있다
끊없는 업장의 두터움은 生과 死의 윤회는 마음에서 지어가는 것이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 열반하는데 해탈 열반하면 어딜가는가 가긴 어딜 가는가?..
소위 해탈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윤회는
業에 의해서 윤회가 나왔고(지어서)
그業은 마음 즉 번뇌로 지어서 업과 윤회를 낳고 그런 번뇌의 소멸이다.
윤회와 해탈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의 문제이다.
 
진리 그자체가 되니 法身이 되는것이고 진리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니 이우주와 한 몸이 되어 버린 것일 뿐이지 그것 말고는 없다
마음 밖을 벗어나는것은 없고 그마음 때문에 부처가 되는 것이다.
 
생일을 기뻐할 필요가 없다.
장례식장에서 끝장 났다고 한 없이 슬퍼한다.
 
生에 메이고 死에 메에면 그업작의  윤회는 계속된다.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는다 하여 두려움이 없다면 해탈인 것이다.
..열반 해탈의 무집착이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다.
 
無執着 :
생멸에서 불생불멸의 진여로,
생사에서 열반으로,
윤회에서 해탈로,
중생에서 부처로 되게 한 것.
 
善에서 惡을 응징하는 것은 기독교다.
불교는 선악의 긴장은 아니다.
 
분별은 집착의 수반이다.
분별은 취사선택을 하기 위함이다.
분별은 소유와 집착을 유발한다.
 
서양의 역사는 선과 악의 싸움이였지만따지고 보면  싸움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선의 싸움이다.
..따라서 천태 불교에서는 내가 악을 인정하면 오히려 세상을 구원된다.
오히려 평화롭다. 악을 응징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아집과 아만일 뿐이다.아를 탈락시키니 무아로 나아가는 방법 뿐이다.
 
불교는 :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경지 不死善 不死惡
불교의 중도는 선악을 버리는 중도이다. 회색분자가  아니다.
중도와 무집착은 아집과 아만이라는 것을 알자고 하는 것이다.
 
俗 과 眞 모두 집착하지말라.
진리(지혜) 역시나 집착하지 말라.
俗도 진리이다(서양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진리는 오직 하나다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진리가 하나라고 하기 때문에 나만이 진리라고 하기 때문에..
진정한 진리는 중도 일 뿐이다. 그것이 眞이든 俗이든..
 
고집도 진리고 멸도도 진리다.
一締(맺을 제) < -> 서양에서는 자기 만의 유일 진리.
이것만이 진리라고 한다면 진리가 그것을 구속시킨다.
 
이제- 집착부정
삼제 - 공가중 - 중국천태학 연기하니 공정된 실체는 비어 있다.
사제 - 고집멸도 - 멸도만이 진리가 아니라 고집도 진리인 것이다.
 
 
..진정한 진리는 다수적인 다양한 그것이다.
이것만이 진리라고 한다면 진리가 그것을 구속시킨다.
그렇다면 싸움이 일어나질 않는다.
 
바라밀 정신 = 무집착
바라밀은 무집착이 원동력이다.
도피안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
도피안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 피안에 집착하지 말라.
내가 깨닭았다고 하면 내가 부처라면 부처에 메였다.
 
다시 중생을 위해 하강하니 자비이다 중생과 동고동락하는 것. 同事
불교는 초탈인 염원인 동시에 지혜와 자비의 완전한 정화이다.
부처 아닌 부처 = 중생과 같이 하는 부처.
초월했다가 다시 들어가는 것이되니 차이가 없다.
중생즉 부처
생사즉 열반
윤회즉 해탈
..무집착과 자비의 정신으로 인해 생사 윤회와 해탈 열반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不李) 하나가 된다 印化
 
에로스적 초탈은 - 지배
불교적인 초탈은 - 자비
 
 제3강 서양 철학의 원류와 불교

可變 - 不變
可滅 - 不滅
可死 - 不死
..인간은 초월충동이 있다.eros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계속 살기를 원한다.
따라서
초월충동이,
 
1. 생식eros에로스-> 자신은 죽지만 자신의 자손은 남아 있으니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충동이고 강력한 생명력이다...육체적
 
2. 철학 에로스 -> 로고스 탐구(불교의 다르마)지혜 세상의 궁극적 이치를 탐구.
 
3. 종교 에로스 -> 절대자를 섬겨 자신을 극복하려고 한다.
 
4. 예술 에로스 -> 아름다움을 갈망, 예술가가 죽어도 자신의 작품은 남는다.
 
2,3,4는 인간만이 가진 문화이다.
 
..인류문화의 원동력은 에로스이다. 에로스는 강력한 생명력이다.
 <-> 타라토스->파괴-죽음에의 갈망. 굴종의 종속되기를 원하는 것.
개를 묶어 놓고 매일을 찌르다가 풀어 놓으면 도망가야하는데 도망 가질 않는다.
 
인간의 흐름은 에로스와 타라토스의 이중주이다.
 
플라톤 - 에로스 - 불멸의 단계로 발전하려는 정신적 충동이다.
 
에너스의 탄생은,(그리스 로마의 신화-다신교)
미의신인 아프로디테 생일 잔치에 모든 신들이 왔는데
페니아(여신인데 궁핍의 여신)  프로스(풍요의 남신)가 술취해 누워있을 때
같이 잠자리를 하여 생겨서 놓았다.
궁핍과 풍요가 혼재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것이 숙명적으로 있다는 것이고
에로스의 삶을 방향은 부족한 것을 채우고 풍요를 넘어 초월하는 것이다.
 
동양은 無로서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
 
善 - 羊 양에서 나왔다
 
하나님 자체가 진선미이다.
 
싸움은 선과 선의 싸움이다.
자기 이익을 위한 충돌임을 인정하여야 싸움이 중단된다.
자기라는 자아를 내려 놓는 무아로서 선과 악을 내려 놓아야 한다.
아만과 아집을 내려 놓을 때 평화가 생겨난다.
 
 
 
 제2강 불교와 철학, 그 의미는 무엇인가

哲밝을 철 필로소피 - 일본(철학) - 한국
철학은 일본어이다.
뺀도 바께스가 싫다고 버려야한다면 ,,버리긴 버려야 하지만
철학도 빼야한다.
그렇게 되면 국어사전의 절반을 버려야한다.
서양의 학문이 일본을 거처서 한국으로 들어온 언어가 많기 때문이다.
소사이어티 - 사회(연대의식 같은 모임,시민의식연대..) 會모일 회 社모일사 에서
사회로 바뀌었다.
 
질문이 성립되지 않을 때는 침묵하라
 
불교는 종교다
종교라는 한자식 표현은  불교의 고유한 용어이다.
종교 - religion 릴리종 재결합 - 기독교 - 신을 섬긴다?
그래서 불교도 종교냐고 묻게 된다.
원죄에서 다시 재결합된 종교.
 
 
..종 -> (싯단타 - 인도어) 마루종 으뜸 궁극적 승의(파라마르타)-궁극적. 가장 뛰어나다
..교 -> (데시안아-인도어) 언설
기독교는 십자가의 사건에서 부터 시작이지만 불교는 깨닭음에서 부터이다.
 
부처님께서는 범부의 고민은 깨닭았지만 성인의 고민은 남으셨다
..가르쳐야할까말까..이것을 두고 일주일을 고민하셨다.
이러한 이치를 전달 가능할까 때문으이것은 언어가 끊어진 자리다.
언어는 복잡한 것을 가능한 짧게 지징해주는 것이다.
..그경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말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밖에-불교의 자비 정신이다.
 
宗-勝義- 말할 수 없는 것 - 離言- 禪 - 眞 - 지혜
敎-言設- 말할수 밖에 없는 것 - 依言 - 敎 - 俗 - 자비
불교는 하나이며, 유일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집착하면 더이상의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二
諦 살필 체, 울 제

이제 삼제로 나가다가 중도가 나오는 것이다.
궁극적 진리는 중도이지 특정한 진리가 진리는 아니다.
지혜와 자비가 두 개의 날개짓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신과 인간이다.
불교는 진리와 언어이다.
따라서 불교가 철학적일 수 밖에 없다.
 
불교 - 철학에는 지혜가 있고, 종교에는 자비심이 있으며, 과학에는 법이라는 다르마가 있어서 절대 충돌하지 않는다.

제6강 서양철학의 원류와 불교 - 로고스와 다르마
 
세상의 이치 밤이가면 아침이 온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로고스-그리스, 道-중국, 다르마-인도.
 
다르마 : 유지 지탱
1. 인간사회를 유지하다. 지탱하다. 사회의 질서. 질서. 의무 -> 카스트제도. 흰두교적 다르마
2. 우주만상을 유지하다. 지탱하다. 우주의 질서. 법칙. 이치 -> 연기.
3. 법칙 유지 지탱- 세상 모든 사물과 사건들 -> 諸法
4. 법칙 가르치는 것 -> 가르침 경전 교리 -> 佛法
 
브라만-사제
크샤트리아-무사
바이샤-평민
슈트라노예
불가측천민 - 접촉조차 못하는 사람들
아리안이 드라비드라를 점령하고보니 점령된 드라비드라의 사람은 노예가 된다.
 
예수 당시에는 알려지질 않다가 사도 바울에서 알려지고
부처님 당시에는 급속히 전파되어 종단을 이루었다.  크샤트리아의 왕족의 동질성 때문이였다.
 
승단 내부에서는 화합이 필요했고 共(함께공)이 필요로 했기에 - 카스트제도를 없애버렸다.
2천5백년전에 제도를 없애버렸으니 혁명적 조치였다.
 
힌두교는 다른 나라에서 퍼지질 않는 것은 민조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연기(프라띠띠아(의해서) 사무띠아(함께) 우트파아(일어남))
- 무수히 많은 조건이  그들이 잘 만나 화합 조화하고 무엇인가가 형성되는 것.
-> 상호의존성 모든 것은 모든 것을 의존한다-인테딘펜터
 
 
物 : 盛住壞空 - 盛住壞空 - 盛住壞空..
身 : 生老病死 - 生老病死 - 生老病死..살아간다는 죽어가는 것인데 늙으면서 죽어간다는 것이다.
心 : 生住異滅 - 生住異滅 - 生住異滅..
우리는 念起念滅의 삶이다.
 
 
무상無常 :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다. 덧 없이 흘러가니 열심히 공부하라
마음이 지어낸 모든 것은 무상하다.
念 =아이디어
한 생각이 또다른 생각을 놓고 또다른 생각을 낳는 것이다.
수많은 조건의 개입으로 끝없이 변해가니 영원불변은 없다.
神역시나 念인 이상 생주이멸 할 뿐이다.
마음이 지어냈으니 생주하다가 사라진다.
神 역시나
 
연기이니 無我이다 : 고정된 동일한 자아이다.
삼세의 나를 철학에서는 자아라고 한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10년 후에도 나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이름만 있다고한다.
즉 그자아에 걸맞는 실물과 실체는 없고 이름 뿐이라는 것이다.
이름과 관념일 뿐이다.
변해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죽고 싶어하질 않으니 아를 붙잡는 것이다.
" 내 것 ->  내손안에 있는 그것도 변치 않는다고 생각한다"
놓치 않으려고 아집과 애착이 생긴다.
 
아집 -> 아소 -> 아
아집때문에 시끄럽고 아소때문에 시끄럽고 我때문에 시끄러우니 무아많이 해결책이다.
업장이 두텁다보니 무아로 나아가기는 어려우니 수행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치 : 로고스 - 이치 이성. 중국-道 성리학에서는 理 - 다르마
세상이치 : 필지스 - 자연 본성. 중국-器 성리학에서는 氣 - 다르마
 
기독교 - 세상이치를 세상밖에서 찾는다 - 초월한 것 - 神
결국 과학은 세상과 자연의이치를 자연안에서 찾는데 세상이치를 밖에서 찾으려는
기독교는 불편 할 수 밖에 없다.
자연과학은 자연 안에서 찾는다.
불교는 세상 이치를 세상 내부에서 찾는 자연과학과 모순되지 않는 종교이다.
 
..달려오는 코끼리 - 웅덩이 - 코브라 - 칡뿌리를 갉아먹는 들 쥐들- 꿀 물을 먹는다--꿈을 깬다.
이치도 공이다. 법조차 공이다 공도 공이다 어떤 것도 절대화될 수 없다.
어디에도 메이지 않으니 중도이다.
어떤 이치도 절대가 될 수 없다. 집착하게 만들면 이치도 불필요한 것이 된다.

 

 

제7강 소피아로서의 지혜
 
필롭소피아 - 지혜를 좋아한다.
필링 좋아한다
소피아 지혜
 
좋아한다 -에로스
에로스 - 초월 충동 욕망
소피아 - 지혜 - 로고스 -세상이치 중국은 道 인도는 다르마
 
에로스 근원적인 충동 = 불교 바라밀
 
지식 - 뭔가를 안다. 노하우. 방법. 기술
지혜 - 노웨이 왜 그런가를 아는 것. 그이유. 의미를 아는 것
 
삶을 얘기하라면 신진대사일 뿐이다.
새로운 것을 먹고 낡은 것을 보내는 것
 
대사. 생식. 진화 - 생물학 과학
 
서양철학은,
앎 - 이성 - 반성 - 추상적 경험 - 객체적 - 연속적 - 보편 - 一 - 동일 - 이데아(원형 원본)
앎 - 감성 - 경험 - 구체적 경험 - 주체적 - 불연속 - 특수 - 多 - 차이 - 카피. 복사
 
고대-이데아-인식하는 것
중세--神
근대-자아
 
고대-인간의 지혜
중세-신의 지혜
근대-인간의 지혜
 
중세=세상의 지혜 <-> 신의 지혜
이성의 지혜 <-> 신앙의 지혜
 
기독교는 다스림이고 지배를 당하고있는데
어감이 좋지 않아서 은총이라고 한다 = 다스림
 
지식은 권력이다.
그시대의 지식을 지닌자가 그시대를 지배한다.
서양고대 -철학
중세-신앙
근대-과학
현대는 과학기술이다.
 
조선-주자학 - 백성을 지배
 
분별 지배 권력...
...이것들을 내려놓은 진정한 지혜 즉 반야

 

 

제8강 반고로서의 지혜
 
반야=쁘라진야
불교에 관한 지혜 1: 無分別智
일상을 지식과 지혜에서 뛰어 올라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
 
불교에 관한 지혜 2 : 法所依智
법에 의지하는 지혜는 법에 대한 관찰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불교는 연기이니 無常 苦 無我의(삼법인) 원리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의미.
 
불교에 관한 지혜 3 : 轉識得智
번뇌가 열반으로 간 경지.. 의식을 보리와 열반으로 전환으로 얻어진 지혜.
 
불교에 관한 지혜 4 : 後得智
진정한 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위하여 훌륭한 방편을 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위해 평소와 같이
분별하는 자비로운 지혜.
..분별하다가(유분별지)-> 득도후에(무문분별지)->유분별지(득도 이전의 중생의 분별과는 다르다)
 
 
유식학의 識은 의식작용과 관념작용이 아니라 의식내용과 인생 전체를 의미를 말한다
 
緣起이므로 無常하다.
物 : 成 住 壞 空 : 밤 하늘의 별이 성립되어 있다가 , 어느 순간 중력이 있는 곳으로 뭉처지면 별이되고 머물러 있다는
것은 무너저 있다는 것(루파-色-물질) 파괴 되다가 공간에 흩어지고 다시 중력에 멈칙으로 모였다가 흩어진다.
 
身 : 生 老 病 死 : 늙는 것은 싫어하지만 올드(태어나면 늙는다 한 살이라도 늙는다 하올드유-영어) 병들면서 늙고 죽는다
 
心 : 生 住 異 滅 : tv강의듣다가 드라마한다고 채널 돌리다가 뉴스한다고 채널 돌리는 식,,
 
->住. 老. 住에 머룰러 있으려 하지만 실상은 머물지 못하지만 우리는 계속 머물려고 합니다.
- 실상을 모르니 無知이며, 즉 痴(어리석을 치) 無明 -> 소유와 집착 탐욕貪慾 -> 채워지질 않으니 嗔
결국 탐진치이 번뇌가 괴롭히는 것이다.
 
서양은 로고스, 중국은 도, 인도는 다르마.
 
지혜의 반대가 번뇌다.
 
주객 능소 분별 서브잭트
 
분별(중생-산은 산이다) - 무분별(반야-산은 산이 아니다) - 분별(자비 보살의 분별-산은 역시 산이다)
應無所住而生基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生한다-
무심無心이 진심眞心이다.
무심은 자비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제9강 서양 철학의 원류와 불교 - 이데아
 
idea(모양) : 보다.
본다=모양-> 겉모양 - 현상. 서로모방의 관계이다.
본다=모양-> 본모양 - 본체. 서로모방의 관계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本이다 本 - 원본. 근본. 본체. 본뜨다. 본 받다.Paradigm(페러다임)
 
원래는 '보이는 것', 모양·모습, 그리고 물건의 형식이나 종류를 의미하기도 했다. 플라톤 철학에서는 육안(肉眼)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아이데스(보이지 않는 것)라고 불리며, 이성(理性)만이 파악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고 단일한 세계를 이루어, 끊임없이 변천하는 잡다한 감각세계의 사물과는 구별된다.
 
이세상은 copy 뜬 세상이다. 불완전한..모두가..그모두가..
 
플라톤의 이데아는 본이다 완전에 가까운..
플라톤의 이데아는 현실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생성소멸하기에 진짜가 아니고 진실로 실제는 사라지질 않는 이데아이다.
 
 
copy
그려진 원 - 겉모양 - 현상  - 구체 - 가상 - 소멸 - 多  - 개별적 - 僞惡醜
원.... 자체- 본모양 - 본체  - 추상  - 실체 - 불멸 - 一  - 보편    - 眞善美
 
體 - 몸... - 바다
用 - 몸짓 - 파도
不二 : 몸짓이 없는 몸은 죽은 몸이다. 바다가 파도이고 파도가 바다이다. 바다는 파도로써 드러낼수있다.
서양은 불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二分論이다.
 
보편 - 일반 - 실재한다.
불교 - 총상 - 별상 假(없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임시적인 것.
 
플라톤 - 실재 - 이데아 - 불변불멸 - 동일성 - 신. 하느님. 근대철학의 자아 - 실재를 불변으로 보기에 자아를 주장한다.
불 교.. - 실상(제법실상) - 如如(있는그대로) - 세상이 연기하고 - 무상(무수히 많은 조건에의해서 변화해가고)
불 교.. - 무아(고정된 자아가 없다)
불교는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이데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데아는 필요에 따라서 마음이 지어 낸 것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상한데 신이 어디 있으며 하느님이 어디 있겠는가?
 
현대의 서양철학은 플라톤과 멀어지고있다는 얘기는 불교와 가까워져 간다는 것이다.

 

 

 

제10강 서양철학의 원류와 불교 - 신
신을 증명하는 자는 인간이다.
인간은 제한된 이성이기게 무한한 이성의 존재를 논할래야 할 수 없는 것이다.
근대철학의 신은 칸트가 요청정도이다 "필요하다" 는 식으로,
 
현실 세속의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을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덕과 필요함에 의해서 인간에게 신이 필요로 해져 버렸다.
필요에 의해서 신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인 것에의해서 필요한 것이다.
 
니체 신은 없다.
나는 신이 불필요하다.
 
이데아가 있다면 그이데아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불교인은 마음에서 왔다 갈 뿐인 것이다.
이데아는 신에서 왔다면 신은 어디서 왔는가?
기독교인들은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것인데 그것은 질문이 되질 않는다고 할 것이다.
..어느 선사왈 세상에 근원이 있겠느냐는 물음에
그근원은 하나일 것인데 그근원은 어디로 가느냐는?
기독교에서는 오만방자한 것이 지만 불교는 마음에서 왔을 뿐이다.
 
즉명 :
볼펜 누군가가 공장에서 만들었다. 종이 누군가 공장에서 만들었다. 가방 누군가가 공장에서 만들었다.
형광등 누군가가 형관에서 만들었다. 커피 잔 누군가가 공장에서 만들었다.
밖에 가로수는 누가 만들었지 산은 누가 만들었나
하늘은 누가 만들었지 우주는 누가 만들었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가 만들었놓은 것이니
어느순간 비약했고 오버했다.
출발은 경험에서 출발하여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다가 어느순간 경험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무를 만든자 산을 만든자 하늘을 만든자를 보았는가?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도구를 만들었던 것처럼 철저한 인간중심의 사고 발상이다.
그러하다면 명백히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환화幻化 실체가 없는 것을 현재에 있는 것처럼 幻術로 만들어 낸 것.
없는 귀신을 그려 놓고 무서워서 그방에 들어가질 못하는 상태.
 
본체 - 최고원인 - 창조신
실재 - 항상존재 - 절대有. 존재자체
보편 - 유일자... - 유일신
 
제작 : 有근원->有세상 - 제작신 목수(책상의 디자인과 재료가 잇어서 나왔으니 있는 곳에서 나왔다)
창조 : 無근원->有세상 - 무한소급의 부정(근본 재료인 나무 같은 것은 창조론)
불교 : 無始無終. 무한소급 인정. 원환적 시간관
연기-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非有非無
 
..모든 종교와 과학은 인과율을 바탕으로 한다.
인과율: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기독교:모든 것의 원인이 있다.
불 교 : 그원인에도 원인은 있다. 원인 원인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니 연기이며 무시무종無始無終
 
기독교 : 신은 사물을 창조했을 뿐이지 인간이 악함은 인간 스스로의 행동과 행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자유의지만을 창조했지 천지를 창조했지 악행은 창조하지 않았다.
악은 신 악마 아님 인간에서 왔는 것인데
신은 선이니 아니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서 나왔으니 인간에서 왔다는 것이다.
사과 자체가 선과 악이였다.
인간의 자유의지이전에 인간이 따먹었으나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악 : 신. 악마. 인간 -> 신은 아니고 인간의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잘못구사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선-자기에게 유리한 것-이것은 我가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선도 악도 지워지질 않으니 和(화합할 화)가 되는 것이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불사선 불사악

제11강 서양철학의 원류와 불교 - 자아와 이성
15세기 르네상스 교회의 이미지 획신 르네상스-다시 살려낸다.
16세기 종교개혁
 
그리스나 로마는 다신교.
 
사람의 감각기관도 거짓말인 것이
독감이 심하게 걸렸을 때는 설탕물도 달지않고 쓰다.
꿈에서 누군가 나의따귀를 세게 때리면 아야하며 깨어날 것이고
현실에서도 누군가에게 세게 맞으면 아프다고 할 것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렇듯이 감각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여주질 못하기 때문에 믿을 것이 못된다.
 
이것이 깨기전에는 꿈인줄 모른다.
 
데카르트.
의심의 대상은 의심할수있지만(감각,숫자1+1=3.4..) 의심하는 나는 의심하고 있다고 의심할수없다.
속고있는 동안 사유하는 동안 ..내가 생각하는 동안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니존재한다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사유.생각) 하지 않았다
의심 -> 신과 자아를 빼 놓았다.
17세기에는 神을 의심할 수 없었다.
불교는 연기론이라 무수한 조건과 상호 작용에 따라 일어난다.
연기이니 무상無常이다. 무수한 조건들에 찰라 찰라가 변화해 갈 뿐이다.
신과 자아만이 진정한 철학적 사고 일텐데 그것을 제외한 사유가 어찌 철학이
될 수 있겠는가?
..의심할만한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심 무아 무상은 실상이다.

 

 

제12강 서양철학의 구조와 불교
 
고대 철학의 구조 - 이데아
플라톤의 이데아 - 本
현상 - 본체
가상 - 실체
개별 - 보편
--< 기독교 성립전 예수 출생전
..초월의 충동은 에로스
 
 
중세 철학의 구조 - 신
피조물 - 창조주(유일신.하느님)
육체 - 영혼. 예수-무엇이 부활하였는가(모두 부활이지만)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아테네를 벗어나자는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치며
약사발을 마시고 육체적 감옥에서 벗아났다.
 
 
근대 철학의 구조 - 자아
객체(오브잭트) - 주체(서브잭트 사유의 주관)
타자 - 자아
감성(감각수용.감성적) - 이성(사유능력)
물질 - 정신
의지 욕망 - 의식
자연 - 인간
여성 - 남성
산업사회가 되면 생산은 남성이고 소비는 여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근대화
17세기 - 과학혁명 - 합리주의 - 합리화
18세기 - 시민혁명 - 민주주의 - 민주화 민주주의 계몽주의몽매한 것을 이성으로 깨어나게 하는 것
19세기 - 산업혁명 - 산업주의 -
토끼를 잡을 때는 혼자서 하게 되면  잡으면 하루 한 마리 잡기 힘들고 세 사람이 잡으니 한 사람이 몰고 두사람이 때려잡으니
하루에 9마리 잡으니 생산성이 높다.
쟁기가 나무로 되어 있을 때는 땅 속을 깊이 파지를 못하지만 쟁기가 쇠로 되어 있다면 땅 속 깊이 팔 수가 있어서
토질이 비옥하여 농업 생산력이 높아지게 된다.
 
이데아. 신. 자아 는 초월하여 있으니 지배의 개념이고
이데아의 맞은 편은 복사본
신의 맞은 편은 피조물
자아의 맞은 편은 타자
이데아는 分有하게 해주었고 신은 창조하게 해주었고 자아는 사유하게 해주었으니 복종이다
이데아  신    자아
分有    창조  사유
 
스탠바이
한 그루의 측백나무가 베임을 당하여 책장이나 가구되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톱질만을 기다리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여성이 어찌 남성이 손길을 기다리고 잇단 말인가
 
分別=執着
분별하지 말라는 것은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한 편을 지배하게 된다.
이성적 구조란 지배의 구조이다.

 

 

제13강 니체 철학과 불교 - 신은 죽었다
 
데카르트의 생각에는 신과 자아를 빼 놓았다.
니체 4세 부친 사망 어머님과 할머님 손에 서 컸다.(누나)
 
여성적 생활 분위기에서 태어났지만 글만큼은 남성적이다.
25세 인문학 교수가 되었다.  1870년대 26살에 첫 출판
 
하느님을 공격한 기독교 집안의 아들
 
1900년 56세 사망.
 
아버지이 뇌 질환이였듯이 미처서 죽엇다(지병)
 
니체는 삶을 긍정했지만 기독교는 삶을 부정햇다.
 이성(분리적)인 삶을 거부했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초인간적인,, 인간의 한꼐를 넘는,,

 

 

제14강 니체 철학과 불교 - 불교적 무신론
 
인간은 신을 숭배하고 자연은 지배한다 - 중세
신은 인간과 자연을 지배한다.
 
니체 - 신의 죽음 - 초인 - 인간의 또다른 죽음
프로이드 - 의식의 죽음 - 무의식 - 자아의 절대화
칼 막스 - 정신의 죽음 - 물질의 부활(경제적 생산 양식) - 생산성의 신화화
 
신의 죽음-기독교의 신은 죽이고 그리스 다신은 살리자.
 
 
..기독교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왜 이세상을 부정하겠는가?
죽어서 천국을 말하고 있으니 살아 있는 이세상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신=창조주
불교에서는 자재신이라고 부르지만 인정하지않는다.
이세상은 연기하기 때문이고 연기는 수많은 조건과 조건의 개입에서에서 생겨지니
이세상은 연기이니 세상은 무상(영원불변하는 것은 없고) 연기이므로 무아이다.
고정불변의 자아는 없다 . 영원불변의 자아는 없다.
그래서 불교는 無神이며 연기이다.
 
니체-신이 되고자 신을 죽였고, 신의 권력을 갖기 위해

불교-연기론의 관계에서 무슨론을 폈다. 신조차 비웠고,

 

불교의 무신론은 공이라는 비우는 과정이라면

니체는 권력의지의 충만이다.
무신론은 같지만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제15강 니체 철학과 불교 - 니힐리즘과 영원회귀
모든 현대 철학은 니체부터이다 - 신은 죽었다 -무신론 - 인간이 신이 되는 것.
 
플라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가상의 세계(카피)라고 했고 저세상을 원본의 세상인
이데아의 세상이라고 했다.
 
기독교는 이세상을 부정하고 저세상을 긍정한다.
니체가 기독교를 보는 것이 허무주의라고 한다.
 
의탁하여 의존하니 수동적 의존주의가 기독교라고 니체는 말한다.
 
기독교는 이세상을 부정하고 니체는 ㅈ세계를 부정하니 플라톤을 부정하고 이세계를 긍정한다.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 과거 현재 미래가 없지만 그래도 인정할수잇는 것은
순간이니 바로 지금이다.
 
세상은 영원불변이 아니라 영원 변화이다.
다르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초인이다. 짜라투스트라. 니체
 
이세상을 긍정하며 살아라.
 
회자정리 라 헤어지면 만나게 되어 있다.
 
찰라생 찰라멸은 허무가 아니라 찰라의 소중함을 불교와 니체는 말한다.
 
고정된 자성 고정된 실체 고정된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는 무자성이니 공이다.
신조차 공하다 오직 영원회귀 영겁을 회귀한다고 하니 니체는 불교와 많이 닮아 잇는 부분이다.
 
니체는 호의적이며 반감도 가지고 있다.

제16강 니체 철학과 불교 - 니체의 불교 평가
 
그리스-디오니소스.
페르시아-짜라투스트라.
인도-붓다.
 
샘족-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 유일신.
 
유태교를 비판하면서 기독교가 나왔고
브라만교를 비판하면서 불교가 나왓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기독교전의 유태교는 민족주의적 종교에 불과하지만
불교이전에 브라만교는 종교이전의 고도이 철학이였다.
..기독교적 유일신과는 철학적으로 다른 고도의 철학신이다.
이처럼 출발이 다르니 품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유태교 민족의 작은 종교 목장?
 

 

제17강 니체 철학과 불교 - 초인과 포스트 모던
1.신은 죽었다.
2. 니힐리즘(허무주의)
3. 영원 회귀
4. 힘에의 의지.
5. 초인
이세계-저세계
피조물-창조주
악(원죄)-선(절대선,신)
..선악의 저편으로 가자는 것이 니체의 사상이다.
이세계 부정-수동적 허무주의-기독교
저세계부정-능동적 허무주의-니체
목숨걸고 아파본 사람은 이세계를 부정하지않고 저세계를 부정할 것이다.
절대의 괴로움을 안다면 진정한 삶으 참 맛을 알게 되니 온몸으로 아프라.
이세계의 긍정-영원 회귀-니체
..플라톤은 이세계를 capy의 세상이라고 했고,
저세계를 idea의 本세상이라고 했다. 이세상을 가짜라고 했다.
초인 :超人(뛰어넘을 초)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성적 인간을 일컬는 말

 

 

 

제18강 니체 철학과 불교 - 초인과 보살
기독교 - 노예 천민 굴종의 종교
불 교 - 최상층의 식자의 종교이며 약자의 종교
 
기독교의 원죄.
세습적 죄라는 것은 노예적 삶이다.
내아버지가 빨갱이라고 해서 나도 빨갱이란 말인가?
 
니체가 본 기독교.
이세상->저세상
악->선
피조물->신
copy->idea = 플라톤
현상->본체
 
니체가 본 불교
현상주의
 
원죄라고 하는데 죄는 느낄수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고통은 느낄수 있으니 사실이다.
 
 
..불교는 실상을 보는 종교이다. 연기하는 것을 본다.
조건과 조건에서 생겨나고
 
니체 : 세상의 타락은 악이 아니라 무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세상긍정. 질서. 영원회귀.
이세상은 수 많은 조건과 조건의 투쟁의 관계속에 있다.(상호 투쟁)
자기강화. 그힘으로 지배.
니체식은 세상이 조용하지 않다.
초인적 지배주의
 

불교 : 무지에서 시작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法은 실상이며 질서이다. 영겁연기
이세상은 수 많은 조건과 조건의 의존관계에 있기에 내가 있다 (상호 의존성) 서로 도움이 된다.
자기강화. 타자의 사랑. 타자의 존중 반야즉 지혜는 자비로 이어진다..
이타적 실용주의

 

 

 

제19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생애와 사상
 
천주교 문지기 아버지와 농부딸의 어머니라 부유한 형편은 아니였고
 
존재의 근거 - x
존재의 의미 -ㅇ
존재자체에
 
철학은 개념이 추상적이라 어렵다.
존재-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하이데거는 현상 사태에 관심이 있다 그전에는 이것이 무언가에 관심이 있었다.
 
봄의 따뜻한 기운을 맞으며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무슨 나무지? 연령은? 한국산?
이것은 경이로움이 아니고 이것을 어떻게 써먹고 이용할까를 생각했다.
이러한 것을 하이데거는 거부하고 존재그자체의 신비만 보았다.
 
고등학교 때에 천주교 장학금이 신학수업하고
22세 심장병으로 휴학 후에 신학을 포기하고 철학을 하게 된다.

 

 

 

제20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철학의 출발점
가장 선택받는 유태인만 6백만이 죽었다.
무책임 내지 무능력 내지 존재하지않는다는 것이다.
 
잣나무는 잣나무의 고유성이 있는데 인간은 과학을 두고서 종자 개량한다.
고유성을 상실 시킨다.
인간 그자신도 고유성을 상실된다.
자기만의 역사 자기만의 인생의 드라마가 있는데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이익창출의 도구만 될 뿐이다.
 
테크놀로지의 시대는 인간은 기능일 뿐이다.
과학 기술의 효과이다.
 
1. 전쟁의 시대 - 죽음 - 실존
2. 신의 죽음이후 문제 - 존재 - 죄 - 설정
3. 과학 기술의 시대 - 고유성
 
인간의 평등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
 
기독 사상이 강하다 보니 죽음을 빠지니 철학이 구체적이질 못했다.
 
죽음은 수용하라.
삶은 죽음을 통해서 완결된다.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아담과 이브가 과수원에서 먹었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왜 죄인지..?
 
현실과 사실에서 살자.
 
나엑 잣나무는 무엇인가로 본다.
목수는 목재로 중간 상인인은 어떻게 할까로 본다.
마침 신이 인간을 지배한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 놓았다.
 
진리-참과 거짓이 아니라 감추지 않고 모두 드러나는 것
 
잣나무는 잣나무의 생이 있다. 차 위로 뛰워 질려고 잣나무는 살지 않는다.
 
장미 - 어느 여인에게 바치라고 피지 않고, 천 원한다고, 품종이 뭐라고,,
저 꽃의 근거를 찾지말라.
장미 자체에 관심을 가져라.
왜 없이 피어 날 뿐이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이세상 그무엇도 나를 대체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사람입니다.
무심코 꺽은 꽃이 지만 하나의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 수많은 인과 연이 있었습니다.
 
그대는 그대로서 도구화 기능화 부품화 되진 마십시오.

제21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존재의 두 방식
존재..
 
존재의 두 방식.
 
 
 
1)경이의 방식 : 있는 그대로 있음
경이. 경외 신비로 이해 사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에 놀라움을 느낌
있는 그대로 있음. (있음자체 존재 자체)으로 이해
 
우리는 주관적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해서 가치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장미가 피어난 것은 물物이 아니라 사事 사건이다.
인연과 인연이 만난 것의 사건이다.
 
..신을 믿는 곳에서 구원이 있는 것이아니라 우리 생각 방식을 전환 할 때
구원이 있는것이다.
나무를 꽃을 보면 쓰기 위해서 베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존재의 두 방식.
2) 일상의 방식
존재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어찌했냐?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문제는 :"그존재자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직업과 봉급으로 사람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것은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심
무심
방하착
분별심을 내려놓자

 

 

제22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존재자성
 
하이데거의 중심은 존재이고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산은 산이다 - 일상의 방식
하이데거 = 우리에 대해 무엇으로 있음
불교=자성
 
산은 산이 아니다
하이데거-존재자성이 아니다.
불교-무자성 - 진공 철저하게 모든 것을 공으로 보는 것.
집착
 
산은 역시 산이다.
하이데거-있는 그대로 있음 존재자체
반야
 
주객이 무너저야 한다.
내가 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벽이 나를 보는 상태
불교-진여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져 있지 않는 상태.
자비
 
없는 것도 있다.
철저하게 비워냈을 때 다들어낸다.
 
 
고대 : 형상 - 모사물 - 모사되어 있음 - 기하학
중세 : 현실성 - 피조물 - 하느님으로 창조 되어 있음 -신학
근대 : 표상성 - 대상 - 표상되어 있음 - 인식학 수학 인간학
현대 : 몰아세움 - 부품.- 몰아 세워져 있음 - 테크놀로지. 기술
사물은 사물되로 인간은 인간되로 어느 곳에 쓰여지는 부품으로 전락된다.
이것은 시대마다 표준이 되는 존재를 보는 관점이다.
 
..사물이 부품화 되는 시대에는 사물만 부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나 부품화 되니 각자가 지닌 역사성과 고유성은 없게 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자꾸만 멀어져 간다.

 

 

 

제23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자성
부처님의 사상은 연기와 무아의 공사상.
아비달마 부파불교.
 
연기니까 무상한 것은 없다.
영원하다라고 하는 자아는 영원할 것이라고 하지만 고정되질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계속 머무는 (주) 하고 싶지만 노병사로 간다.
 
무상 무아 고.
 
무아 : 오온무아 색-물질. 수-감각적. 수-수용작용.상-표상.행-의지. 식-의식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나니
 
영화 영상의 그림속에 다이아가 좋다고 무대위로 올라가는 여자는 없다.
그이유는 무상이고 무아라는 거승ㄹ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세상이다.
스크린은 환이다.
 
자성의 세가지.
1. 연기라 하더라도 자성은 있다(실유자성)
2. 연기이므로 자성은 없다(무자성공)
 
 
하이데거는 각각의 고유성을 주장했다.
 
실일체유부 - 고유성 - 연기 - 유자성
종관학 - 실체성 - 연기 - 무자성
 
중국으로 가면 건불교 즉 견성 - 자성과 불성을 바로 보고 찾자는 것이니
소승에 가깝다.
선불교 - 본래성 - 연기를 깨닭을 수 있는 자성이 있다
선불교는 중국적 불교이다.
불교는 중국 것이아니다.
공자 노자 장자 이후에 들어 왓다
성선설 성악설의 性은 마음과 살생(태어남)이 합친 글자이다.
 
연기=관계성
현대적으로보면 비실체성과 본래성의회복이다.

 

 

 

제24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무(無) 
--산은 산이다 - 존재자성 - 자성自性 - 실유實有 = 중생의 삶(있다고 생각한다)
--산은 산이 아니다 - 無 - 空 - 진공眞空(모두 비운다 비우면 채워진다)= 어떠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산은 역시 산이다 - 존재자체 - 진여 - 묘유妙有
..無일때 존재자체가 나타난다 ->하이데거식 논리학적 방식.
불교의 無 ->자성을 부정(분별하지 않음).
 
無를 설명할수는 없다.
서양철학에서의無는 사유의 대상이 되질 않는다 龍같은 것..
서양의 형이상학은 존재만 생각한다.
無보다는 神의 영원한 존재만 긍정한다.
동양은 無에서 출발한다.
노자는 자연이고 無역시나 爲라고했다.
불교는 공이며 이것은 진여로 가는 것이다.
 
존재자는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존재자를 "무엇","본질"은 뭔가를 생각하고
하이데거는 존재자에게 존재하게 해주는 "존재자성"
이존재자는 우리의 밍의대로 처분할 수 있다.
 
왜 도대체 존재자는 있고 도리어 무는 아닌가?
 
서양의 학문은 존재자만을 철학의 사유이고 無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시각은 1면 밖에 볼 수 없으니 경험과 체험이 중요한 것이다.
 
불안과 공포 무의미와 맞닿닥뜨리면서 비로소 인생과 우주를 생각하게 된다.
그속에서도 잣나무는 잣나무다.
잣나무가있다는 것이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니체-삶의의지 권력의 의지. 존재의 의미.

 

 

제25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공(空)
 
연기 : 수많은 조건과 조건의 관계성.
 
色변화해가는 것 루빠
연기 - 무상,무아(실유가 없고) 나는 이름일 뿐이다. 5온(실제하는 것) -
무아-색수상행식.
 
현상 - 무상,무아 - 생성,소멸 - 스크린 모습
본체 - 요소들 - 계속존재 - 필림 컷트들
영화 화면은 실유가 아니고 필림은 실유이다.
 
설일체유부 - 연기이므로 자성은 있다. 我空法有
중관학파 - 연기이므로 자성은 없다. 我空法空
我를 부정 하니 無我
 
모든 것이 공이면 공도 포함된다.空亦復空
허전함을 느끼고 허전함에 집착하면 불교는 아니다.
 
세상의 실상은 연기이므로 공이다.
 
空이란 연기하여 드러난 모든 것에는 자성이 없으므로 분별하여
집착할만한 것이 없다는 깨우침을 주기위한 최소한의 표현일 뿐이다.
 
비우라는 그것 역시 붙잡아서는 안된다.
空과 假의 중도
 
하이데거 :  無 - 존재자성 거부 - 존재자체
불교 : 空 - 자성거부(실체성) - 진여의 실상(진공묘유) 비우니 드러난다.
 
진짜 악몽은 귀신보다 어두운 심해에 빨려들어가는 꿈이다.

제26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모든 사물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것이 자신의 전개이다.
고유성인가?
 
-존재자는 존재자가 아니다 - 무로서의 존재 - 공으로서의 진여(진여는 있는 그대로)
-존재자는 존자자적인 것이 아니다 - 존재론적 차이 -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다  -
진여는 실유가 아니다.
-표상의 대상이 아니다 - 우리에 대해 무엇이 있음 - 분별화 주관과 객관
 
산 - 식물학자. 부동산. 개발학자.... -  대상자 - 분별하여 말한다 - 나와 그것이 갈라진다.- 산이 산으로 존재하지를 못한다. 분별은 소유를 낳고  소유는 집착을 낳는다.
 
산이 산을 위해 있듯이 뜰 앞에 잣나무는 자기 자신을 위해 있다.
분별심의 대상이 아니다 - 무심
 
-존재는 존재자체 존재자성으로 표상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있음이다 - 존재자체
 
산은 있는 그대로의 그자신으로 있다. 가장 고유하게 있음 그자체다.
 
장미꽃이 천 원 짜리로 팔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듯이
누군가의 무엇이 되기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직장의 누군가의 아무개 - 부품화
자기전개 자신을 그냥그대로 들어 낼 뿐이다. 피지스 자연 여여
 
당신에게는 사건이지만 그냥그대로 있을 뿐인 그것의 고유성 그자체가 사건이다.
공기 대지에 발디디고 있는 나. 밤하늘의 별 이것이 사건이다.
 
그냥그대로 볼 뿐이다
맑은 연못에 사슴의 모습이 비치듯이
 
고유성은 관계 속에서만 들어난다.
 
분별심만을 내려 놓으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사건이지 대상은 아니다.
 
내맡김 : 비움 덮어쒸우지 않는다.
내려놓음 - 뜰앞에 잣나무는 그냥그대로 존재할 뿐 - 비움 --품종. 얼마나 열리고 하는 것을 내려놓음 그것을 내려 놓음이 나를  털어 내려 놓는것
나의 분별심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뜻되로 할는 것을 내려 놓으면 자신이 드러난다 - 방하착 자신의 고유함이드러난다.

 

 

 

제27강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진여(眞如)
산은 산이다 -실유 - 實有
산은 산이 아니다  - 眞空 - 부정 - 是是非非(바를 시) 如如(같고도 같다)so so
산은 역시 산이다 -  妙有 - 긍정 - 진여眞如 - 진실로 같다.
如實 - 있는 그대로이다. - 諸法實相 - 法性 -心 - 性起 - 法性 - 佛性
 
如來藏 - 如來=佛. 藏=性 - 가능성에 초첨을 맞추어 놓은 것이고 된다는 보장은 없는 중생의 한계성을 말한다
性-마음심변의 생으로 태어남이고 여래장은 태어나기 전의 마음이다.
 
중국인들은 현실주의자로서 태어나기 전과 후에는 관십없다.
성인은 살아 생전에되는 것으로 죽은 후의 성인은 설득력이 없다보니 그래서 기독교의 교리 전파가 되질 않는다.
 
불성의 佛은 인도 개념이고 性은 중국 개념이 합처진 것이다.
불이 성품으로 현 세계를 본다.
중국인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산천초목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인도의 철학에서는 초목이 성불의 개념이 들 수 없고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성불의 범주가 초목에는 없다고 본다.
 
뜰 앞에 잣나무가 그만의 것이가장 잘 드러난 것은 잣나무 다움인데 그정도 되어 있다면 부처인 것이다.
그만의 것이 가장 잘 들난 것이 최상의 경지이다.
 
바위가 뭘 깨닫는다고  부처라 했는가?
문자가 아니라 그만의 고유성을 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돌이 멋있으면 들고 가서 팔거나 하려고 하지 돌의고유성으로보질 않는다.
 
事 사건
物 - 물체 시체.
 
주역 계사전.
形而上者 = 道 형상을 총괄하는 법칙 같은 것이 도이다.
形而下者 = 器 형상의 형태를 띠는 것인 사물 입이 네 개이고 大는 사람을 표현.
 
形而上者 = 道 - 理 - 理
形而下者 = 器 - 事(心)(性-마음은 마음인데 날때부터의 마음) - 氣
왜 物이 아니고 事냐는 관계속에 드러나는 사건 안벌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그것.
 
불교는 이기理氣나 이사理事나 같은 이원론적이 아니라 이사무애라고 했다.
이사무애에서 사사事事무애의 경지를 추구한다.
중국불교의 모토는 卽事理眞으로 사가 곧 진리다.현실이 곧 진리다.
이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현실적이질 않다면 옳바른 것이 아니다.
 
현생 이곳 이자리에서이다.
 
그자신 그자리에서의 고유함을 가르친 것이다.
 
그물코에 구슬이 메여 있으면 다른 구슬이 그구슬에 들어 오니 相入 서로가 서로에게 침투해 들어가니 연기이다.
서로 대등하니 相卽 잘난사람 못난사람도 어ㅏㅄ고개와 인간의 차별은 없는 것이다.
 
차별은 내 마음에 가치기준을 두면서 있다 나의 미학적 기준에 이돌이 좋다 나쁘다 할 뿐이다.
 
내맡김 - 내려놓음 - 방하착 - 집착을 내려 놓는 것
이것만이 인간의 바람직한 태도이다.
과학기술이 첨단을 달릴수록 그만의 고유성은 없어지고 모든 것은 부속품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이런 시대속의 갈 길은 고유성을 찾아 회복하는 길이고 마음의 문제이다.
하이데거는 사유의 전환하여 우주 자신과의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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