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한국문학(韓國文學)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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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문학작품. 한국 민족은 역사적으로 역경과 고난을 뚫고 살아왔으며, 그만큼 문학에도 그런 시련을 끈질기게 견디고 줄기차게 생존 투쟁을 거듭해 온 민족의식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인상이 짙다. 또한 동양적인 윤리관(倫理觀)이 지배하는 전통적인 사회성향(社會性向)으로 한국의 문학에는 동적(動的)이고 전향적(前向的)인 경향보다는 회고주의(懷古主義)나 과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국문학을 개관할 때 원시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장구한 길목마다 독자적인 전통의 바탕과 역사적 현실에 대한 독특한 창조의욕이 고갈되는 일 없이 면면(綿綿)히 이어져 내려옴을 보게 된다. 한편, 한국 민족은 태고적부터 스스로의 사고와 감정을 나타내는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표기하는 고유의 문자를 가지게 된 것은 훨씬 후대에 이르러서였다.
즉, 조선시대 초기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기까지는 음운(音韻)과 문법체계를 달리하는 중국의 문자인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서 표현해야만 되었다. 그것이 곧 삼국시대에 이미 이루어진 향찰(鄕札) 또는 이두(吏讀)이지만, 이와는 달리 중국의 전통적인 한문체(漢文體)에 의한 문학활동도 매우 왕성하여 이는 한글이 출현한 후에도 끊이지 않고 대략 20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문학의 시대구분 방법은 역대 왕조의 변천사에 따르는 것이 보통이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이 성립하기까지의 문학을 ‘상고시대의 문학’, 그 3국이 정립하던 시대의 문학을 ‘삼국시대의 문학’, 신라가 3국 통일을 이룩하고 그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통일신라시대의 문학’, 고려가 창건되고 그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고려시대의 문학’,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후 임진왜란기까지의 문학을 ‘조선 전기 문학’, 그 이후 갑오개혁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조선 후기 문학’이라 일컬으며, 이것을 모두 아울러 고전문학이라 한다. 그리고 이들 고전문학과 대조적인 개념을 가지는 새로운 문학, 곧 서구문학의 영향으로 발달한 문학을 신문학(新文學)이라 불러 2가지를 구분하였다.
고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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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
한국문학의 여명기(黎明期)는 멀리 기원을 전후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민족의 경우이거나 문학은 시가(詩歌)와 무용과 음악이 한데 어울린 종합적인 원시예술의 형태로 발생하였음을 본다. 한국의 경우도 옛 기록에 나타나는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그리고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삼한(三韓)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통해 이루어진 가무(歌舞)와 음주(飮酒)의 습속에서 고대가요의 원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대가요는 민족 고유의 신앙이나 농경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어떤 특정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와 같은 종합예술은 사회적인 통일을 위한 정치적인 기능과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고 악령(惡靈)에 의한 재앙을 면하고자 하는 종교적인 기능 및 노동의 피로를 줄이고 식생활에 안정을 누리기 위한 경제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식으로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이 점차 원시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생활수단이 분업화되어가면서 예술도 차차 종합적인 형태에서 해체·분화되어 표현방법이 다양해지자 시가·무용·음악 등 개별적인 분야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렇게 따로 떨어져나온 시가는 구전(口傳)의 형태로 전승되면서 구비문학(口碑文學)을 이루고 문자를 갖게 된 이후 그것이 문헌에 정착됨으로써 신화와 전설 또는 고대가요의 한역가(漢譯歌) 등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이와 같은 신화와 전설이 수록된 옛 문헌으로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하여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 등이 있고, 금석문(金石文)인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의 비문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이들 옛 기록들에는 한국의 국조(國祖) 신화인 단군신화(檀君神話)를 비롯, 고주몽(高朱蒙) 건국신화, 신라의 시조(始祖) 신화들 및 가락국(駕洛國)의 수로왕(首露王) 신화 등이 실려 있다. 또한 고대가요의 모습을 고문헌에서 찾아보면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구지가(龜旨歌)》를 비롯하여 《삼국사기》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유리왕조(瑠璃王條)의 《황조가(黃鳥歌)》, 그리고 중국 진(晉)나라 때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는 《공후인(引)》(公無渡河歌라고도 함) 등의 한역가가 그 유래와 함께 실려 전한다.
그 밖에도 이 무렵 신라에는 《도솔가(兜率歌)》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기사가 《삼국유사》 <신라본기> 유리왕조(儒理王條)에 실려 있다. 이상의 기록이 모두 한문으로 된 기사로 전해옴은 물론이며 기원후 85년에 세워진 점제현신사비(蟬縣神祠碑)가 평남 용강군(龍岡郡) 해운면(海雲面)에 현존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한자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대개 짐작이 갈 것이다. 이와 같이 한자 문화가 전래된 시기는 매우 오래 되었으나 중요한 것은 한국민족에게 문자가 없던 시대에 그것이 오히려 한국 고유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음운의 체계가 전혀 다른 외국 문자인 한자를 빌어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도 사실이지만 또 그만큼 문학다운 문학을 출현시키는 데 힘이 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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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은 일찍부터 대륙문화와의 접촉이 있었다. 특히 지리적인 조건 등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가장 잦았던 고구려에서는 국립교육기관에서 한자와 중국 고전을 가르치는 한편, 일찍이 고구려의 역사를 편찬한 《유기(留記)》가 있었고 그것을 뒤에 태학박사(太學博士) 이문진(李文眞)이 《신집(新集)》으로 개찬(改撰)하였다. 또한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는 한국 최초의 한시로 일컬어지는 우수한 작품이며,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은 고구려의 웅대한 판도와 아울러 그 찬란한 문물을 짐작케 하는 산 증거이다.
그 밖에도 만주와 한반도에 걸치는 웅대한 판도를 개척하던 고구려인의 기개는 웅혼(雄渾)하고 동적(動的)인 서사문학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고구려의 건국 신화 이외에도 《유리왕전설》 《온달(溫達) 설화》 《미천왕(美川王) 설화》 《호동왕자(好童王子) 설화》 등의 여러 전설·설화를 형성하였다. 고구려의 가요로서 그 가명(歌名)만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내원성가(來遠城歌)》 《연양가(延陽歌)》 《명주가(溟州歌)》 등이 있으나, 당(唐)나라의 장수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그 고도의 문물에 놀라 모든 전적(典籍)을 불살라버려 오늘날 고구려 문학의 전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백제는 육상으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는 한편 해상으로도 중국 육조(六朝)의 문물에 자주 접할 수 있어 한문학의 수준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에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고흥(高興)이 375년(근구수왕 1)에 지은 《서기(書記)》라는 역사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왕인(王仁)은 일본에 처음으로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를 전해주어 그들의 한문학을 일으키는 등 일본 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한반도 서남부에 자리잡아 온화한 기후와 풍요한 풍토의 혜택을 누리던 백제에는 주로 서정적인 문학이 융성하여 《선운산(禪雲山)》 《무등산(無等山)》 《방등산(方等山)》 《지리산(智異山)》 등 평화롭고 아름다운 가요를 많이 낳았으며, 오늘날 그 모습을 알 수 있는 노래로는 《정읍사(井邑詞)》 1편이 전한다.
그 밖에 백제의 대표적인 설화로는 《도미전(都彌傳)》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가로막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고유문화와 외래문화를 서서히 융합시키는 작용을 하여 3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신라 역시 고구려나 백제와 비슷한 시기에 한자가 전해졌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거칠부(居柒夫)가 《국사(國史)》를 편찬한 시기는 545년(진흥왕 6)으로 백제보다 거의 2세기나 뒤진 때였다.
진덕여왕(眞德女王)이 지은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은 비록 당나라의 환심을 사기 위한 굴욕적인 송시(頌詩)이기는 하나 운치가 깃들인 주옥 같은 내용으로 신라 문학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한다. 가악(歌樂)을 숭상하던 화랑의 등장은 후일 향가문학(鄕歌文學)이 성립되는 요람 구실을 하였으며,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미 고신라시대에 《서동요(薯童謠)》 《혜성가(彗星歌)》 《풍요(風謠)》 등의 향가 작품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회소곡(會蘇曲)》 《물계자가(勿稽子歌)》 《우식악(憂息樂)》 《달도가(歌)》 《실혜가(實兮歌)》 등 많은 가요와 여러 설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수록되어 전한다. 또, 신라의 삼국 통일을 전후한 시기에는 강수(强首)와 설총(薛聰) 등의 학자가 등장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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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것은 민족적인 통일국가를 이룩해 놓았다는 정치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단일(單一)한 고유문화를 처음으로 형성시켰다는 문화적 측면에서도 그 의의는 크다. 그 때까지 고구려와 백제의 세력을 견제하기에 여념이 없던 신라의 국력은 이제 그 힘을 안으로 돌려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때마침 황금기를 맞이하던 당나라의 문학은 신라에 큰 자극을 주어 신라 조정에서는 해마다 많은 견당(遣唐) 유학생을 중국에 파견하여 난숙한 한문화(漢文化)를 흡수·수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미 전대(前代)에 전래되었던 불교는 이제 확고한 자리를 굳혀 신라의 귀족층을 형성한 승려나 화랑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예술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무르익은 문화적 환경 속에서 나타난 것이 이두(吏讀)와 그것을 표기수단으로 하는 향가문학이다. 설총이 생존한 시기를 전후하여 정리·종합된 것으로 보이는 이두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한국말을 표기하도록 만든 일종의 차자문자(借字文字)로서, 이 이두문자의 창안(創案)으로 한국 고유의 향가문학이 이루어지고 그것은 한국문학에서 완전한 문학으로 최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신라시대의 향가는 《삼국유사》에 실려서 전해지는 14수가 전부이지만, 이는 당시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향가가 지어진 최고(最古)의 연대는 진평왕대(眞平王代) 이전이며, 아래로는 헌강왕대(憲康王代)에 이르는 280여 년 간에 걸쳐 작품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 향가 작품 중에서도 월명사(月明師)의 《제망매가(祭亡妹歌)》, 충담사(忠談師)의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영재(永才)의 《우적가(遇賊歌)》 등에서는 뛰어난 수사(修辭)의 기법과 숭고한 시정신(詩精神)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며, 《처용가(處容歌)》는 후대에 윤색·첨가되어 조선시대의 궁중가무로 이어졌다. 이들 작품에 공통되는 특징은 현실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한 정토(淨土)를 희구하는 관념이 그 바탕을 이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편, 진성여왕(眞聖女王) 때에 대구화상(大矩和尙)과 위홍(魏弘)이 《삼대목(三代目)》이라는 향가집을 엮었다고 하나 실전(失傳)되었다.
통일신라의 서정문학이 불교문학에서 그 정점(頂點)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서사문학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불사(佛寺)의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비롯한 수많은 설화문학을 탄생시켰다. 이와 같은 신라의 설화 가운데에서 오늘날까지 남아서 전해지는 것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기록을 다시 옮겨 쓴 고려 때의 기록을 통해서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에는 삼국통일기 이전의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 《설씨녀(薛氏女)》 설화를 비롯하여, 의인법(擬人法)으로 왕을 풍유(諷喩)한 《화왕계(花王戒)》, 인생의 허무함을 묘사한 《조신몽생(調信夢生)》, 김현(金現)이 호랑이를 감화시켰다는 《호원(虎願)》 등 많은 설화문학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특히 《조신몽생》은 불교적인 교훈이 짙게 풍기는 불교설화이지만 압축된 주제와 짜임새 있는 구성이 이미 소설의 경지에 다다랐는가 하면, 《화왕계》는 설총이 그 작자로 밝혀진 작품이라는 데에 특징이 있다.
그 이전의 설화는 뚜렷한 작자가 없이 다만 전승되던 구비문학(口碑文學)이었으나 이 때에 이르러 비로소 개인의 작품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신라시대에 성립한 설화 문학은 뒷날 조선 후기에 발달한 고대소설의 근원설화(根源說話)로 되살아나게 되는데, 예컨대 조선시대에 씌어진 《토끼전(傳)》은 김유신(金庾信)의 전기에 나오는 <귀토설화(龜兎說話)>가 그 근원설화이고, 《흥부전(興夫傳)》의 근원설화는 <방이설화(旁닮尋?>였다. 이 밖에 본격적인 한시를 비롯하여 사륙변려문(四六儷文)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발전을 본 통일신라시대의 한문학은 강수·김인문(金仁問)·설총·김대문(金大問)·최치원(崔致遠) 등으로 대표된다. 특히 최치원의 문명(文名)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동방 한문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그의 《계원필경(桂苑筆耕)》이 남아 있고 《동문선(東文選)》 등에 그 시문(詩文)이 전한다.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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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향가는 고려 초기까지 그 명맥이 유지·계승되었다. 특히 신라 말기에서 고려 광종(光宗) 때까지 생존한 고승(高僧) 균여(均如)가 불교의 정토사상(淨土思想)을 읊은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11수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향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 빛을 더한다. 균여가 지은 이 11수가 예술적으로 비록 높은 경지의 것들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불교문학적인 향취와 세련된 수사(修辭)의 기교는 신라 때 향가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균여의 작품으로는 이 밖에도 수십 수의 향가가 있었다고 하나 모두 실전(失傳)되었다. 또한, 예종(睿宗:재위 1105∼22)이 고려의 개국공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과 김낙(金樂)을 추도하여 지었다는 《도이장가(悼二將歌)》와 정서(鄭敍)가 유배지(流配地)에서 임금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정과정곡(鄭瓜亭曲)》 등은 그 형식이 다소 변화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향가의 흔적이 남은 고려가요들이다.
이 무렵, 문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시가 형식에 별곡(別曲)이 있다. 이 별곡은 당시 성행하였던 팔관회(八關會)나 연등회(燃燈會)의 가무백희(歌舞百戱) 등에서 연희되기에 알맞도록 만든 분장(分章) 형식의 장가로서 새로이 등장한 시가형태였다. 그것은 《처용가》의 경우를 보더라도 곧 알 수 있는데, 신라시대의 향가 작품인 《처용가》가 단장(單章) 형식의 짧은 시가였음에 비하여 고려 때의 것은 비교적 장형(長形)으로 변화하였다.
이와 같이 변모·발전한 고려의 시가는 고려 중기 이후 더욱 성행하면서 말기까지 이어졌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서경별곡(西京別曲)》 《청산별곡(靑山別曲)》을 비롯하여 《정석가(鄭石歌)》 《유구곡(維鳩曲)》 《귀호곡(歸乎曲:가시리)》 《상저가(相杵歌)》 《이상곡(履霜曲)》 《만전춘(滿殿春)》 《쌍화점(雙花店)》 등 많은 가요를 들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별곡의 이형(異形)이라 할 수 있는 한문체(漢文體) 가사의 경기체가(景幾體歌)는 《한림별곡(翰林別曲)》이 그 효시를 이룸으로써 ‘별곡체’ 또는 ‘한림별곡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관동별곡(關東別曲)》 《죽계별곡(竹溪別曲)》이 모두 여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들 고려 중기 이후의 시가 작품은 때마침 몽골의 침략과 무신정권(武臣政權)의 전횡 등 불안한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 내용이 퇴영적·향락적인 경향으로 흘렀으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는 척신(戚臣)과 무신의 횡포 및 몽골 세력이 구축됨으로써 국가의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대두한 주자학(朱子學), 곧 유학자(儒學者)들의 손으로 새로운 시조(時調) 시형이 창조되었다. 시조는 초기의 성립단계에는 딱딱한 한문투의 문장으로 이루어졌으나, 이윽고 서정성(抒情性) 넘치는 한국말을 자유로이 구사하게 되면서 간결하고 아름다운 고유의 정형시(定型詩)로 다듬어졌다. 이와 같은 단가형(短歌形)의 시조 이외에 장가형의 율문시(律文詩)인 가사(歌辭) 문학이 대두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렇게 볼 때 고려시대의 문학은 시가문학에 있어 마치 물을 모아두었다가 흘려 보내는 보(洑)와 같은 구실을 한 셈이다. 곧, 그 초기에는 신라 향가의 마지막 등불을 밝혔는가 하면, 다음에는 고려 당대의 문학인 별곡을 만들어냈고, 나아가 조선 시가문학의 꽃이라 할 시조와 가사의 태동을 알렸기 때문이다. 한편, 서사문학(敍事文學)에 있어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설화문학을 계승·발전시킨 신화·전설·민담(民譚)과 불교설화의 자취를 고려 초엽 박인량(朴寅亮)의 《수이전(殊異傳)》과 중엽의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서사문학은 그 기록자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끊임없는 정서(整序)·통합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점차 창작적인 성격을 뚜렷이 띠어 나가게 되었다.
그 결과 고려 중기부터 말기에 걸쳐 유행한 것이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과 《공방전(孔方傳)》, 이곡(李穀)의 《죽부인전(竹夫人傳)》, 이첨(李詹)의 《저생전(楮生傳)》 등 가전체(假傳體) 소설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서사문학의 백미편(白眉篇)은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과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이다. 이 두 작품이 비록 한시의 오언(五言) 또는 칠언(七言)의 운문체(韻文體)를 빌어 기술되었지만, 그 바닥에는 외적(外敵)에 대한 의연한 항거정신이 맥맥히 흐르는 가운데 장중하고도 웅대한 구성과 묘사로 빼어난 민족의 영웅서사시를 이루어 놓았다.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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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학은 크게 고려시대 이전과 조선시대 이후의 2기(期)로 양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1446년 세종(世宗)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로 한국의 문학이 조선 전기부터 언문일치(言文一致)의 표기수단을 얻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한국문학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데 연유한다. 신라에 이미 한국 고유의 향가문학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 표현수단이었던 이두문자만으로는 한국의 사상과 말을 완전히 나타낼 수 없었고, 고려에 시가문학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미처 문자로 정착되지 못한 하나의 유동문학(流動文學)이었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에서의 한국문학은 한글의 출현에 의하여 비로소 그 자리를 찾아 정착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조선 건국 초부터 여러 개국공신들이 왕조의 창업을 찬미한 송축가(頌祝歌)로서의 악장(樂章)이 문자로 정착될 수 있었고, 경전(經典)과 고전의 번역·편찬 등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먼저 세종은 1446년의 훈민정음 반포에 앞서 그 실용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대표적 악장의 하나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권제(權) 등으로 하여금 짓게 하였다. 한글 반포 이듬해에 간행된 이 악장은 모두 125장(章)으로 이루어진 조선왕조 창업(創業)의 송축가(頌祝歌)로서 한국 최초의 한글 문헌이었다.
이어서 세종은 불교찬가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친히 지어서 간행하기도 하였는데, 이 또한 《용비어천가》 다음가는 최고(最古)의 한글 문헌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악장체(樂章體)의 시가 중에는 조선 초에 유행한 한문체의 송축가가 많이 있었으나, 이윽고 그것은 차차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시조(時調)와 가사(歌辭)가 시가문학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시조나 가사가 이처럼 확고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은 수사(修辭)에 있어 이 두 가지 형식이 한국말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형태적 특징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즉, 시조는 간결한 가운데에서도 소박한 취향을 존중하는 유학자(儒學者)들의 서정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형태였고, 가사 또한 현실적이면서도 설유적(說諭的)인 유교의 이념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형태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려 중기에 이미 싹이 튼 시조는 조선 전기에 이르러서도 아직 그 진가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 무렵에 발표된 시조는 고려 유신(遺臣) 등이 읊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길재(吉再)·원천석(元天錫)의 《회고가(懷古歌)》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사육신(死六臣)의 《충의가(忠義歌)》나 김종서(金宗瑞)의 《전진가(戰陣歌)》, 그리고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등에 이르러서는 그 내용에 크나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즉, 그것은 작자 자신의 입장과 생활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개성의 문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발전 단계에 접어든 시조문학은 이윽고 이현보(李賢輔)·송순(宋純)·황진이(黃眞伊) 등의 뛰어난 작가를 만나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2대 성리학자인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가 있으며, 정철(鄭澈)의 여러 시조에 이르러 조선 전기의 시조문학은 절정에 다다랐다. 조선 전기의 가사문학도 시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글 창제 이후 국자(國字)에 의한 표현수단을 얻게 됨으로써 크게 발전한 자유형의 시가이다.
최초의 가사작품으로는 성종 때 정극인(丁克仁)이 지은 《상춘곡(賞春曲)》을 꼽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것은 이 작품이 형식과 내용이 잘 다듬어진 초기 가사문학의 대표적 작품인 까닭이다. 이후 가사문학은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仰亭歌)》를 거쳐 정철의 여러 작품에 이르러 마침내 황금기를 맞고 활짝 개화하였다. 그의 시가집인 《송강가사(松江歌辭)》에 실려 전해지는 가사작품은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續)미인곡》 《성산별곡(星山別曲)》 등 모두 4편인데, 한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호탕하고도 비장한 시풍은 가히 가사문학의 절정이라 일컬을 만하다.
그밖에도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가사로서는 유배(流配)가사의 효시인 조위(曺偉)의 《만분가(萬憤歌)》, 왜구(倭寇)를 무찌른 내용을 읊은 양사언(楊士彦)의 《남정가(南征歌)》, 정철의 《관동별곡》에 영향을 준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關西別曲)》, 자연 속에 한가로이 묻혀 지내는 심정을 읊은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江村別曲)》, 벼슬 아치의 자세를 머슴에 빗대어 한탄한 허전(許f)의 《고공가(雇工歌)》 등 많은 작품이 있다. 한편, 산문에서는 조선 전기를 통하여 한문체에 의한 문학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
김시습(金時習)이 한국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것을 비롯하여, 서거정(徐居正)의 《동인시화(東人詩話)》,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성현(成俔)의 《용재총화(傭齋叢話)》,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畢齋集)》, 조광조(趙光祖)의 《정암집(靜庵集)》 등이 이 시기의 산문문학을 대표하는 저술이었다. 또한, 번역문학 분야에서는 칠서(七書), 곧 ‘사서(四書)’와 ‘삼경(三經)’ 및 《소학(小學)》 《효경(孝經)》 등의 언해본(諺解本)이 간행된 것을 비롯하여 《능엄경(楞嚴經)》 《법화경(法華經)》 《금강경(金剛經)》 등의 불경과 《두시언해(杜詩諺解)》 《황산곡시집언해(黃山谷詩集諺解)》 등의 번역문학서가 잇따라 나타났다. 특히 이 시기를 통하여 성현 등이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하는 가운데 이 때까지 구전(口傳)에만 의존해오던 《동동(動動)》 《정읍사(井邑詞)》 등 여러 고가(古歌)를 비로소 문헌에 정착시킨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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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가 한국문학의 역사를 크게 양분하는 분수령(分水嶺)이었다고 하면, 임진왜란은 조선왕조의 역사를 크게 갈라놓은 분기점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르고 난 조선사회에는 큰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물질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신적인 타격과 충격 또한 막심하였다. 전쟁을 통하여 양반 귀족계층의 무력함을 절감한 평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현상(現狀)에 대한 비판의식이 거세게 일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평민의 자각은 문학에도 반영되어 이윽고 평민문학의 대두와 융성을 가져오게 된다.
조선 전기의 문학이 주로 귀족적인 시가문학에 기울었던 데 대하여, 후기에는 그것이 평민들 사이에도 확산되어 시조작가의 수가 격증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가사(歌辭)에도 능했던 박인로(朴仁老)의 《오륜가(五倫歌)》 등 70여 수의 시조작품을 비롯하여 장경세(張經世)의 《강호연군가(江湖戀君歌)》나 이항복(李恒福)·김상용(金尙容)·남구만(南九萬) 등의 시조는 손꼽을 만한 작품이다. 내용면으로도 어지러운 당쟁을 통분한 이덕일(李德一)의 《당쟁차탄가(黨爭嗟嘆歌)》, 임진왜란의 용장 이순신(李舜臣)의 시조, 병자호란의 치욕을 비분하고 충의(忠義)를 읊은 봉림대군(鳳林大君)·김상헌(金尙憲)·이정환(李廷煥) 등의 시조가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시기의 시조문학을 대표하는 최고봉은 윤선도(尹善道)였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나 《산중신곡(山中新曲)》 같은 작품은 그의 자연시인으로서의 풍모를 뚜렷하게 할 뿐 아니라 시조문학의 가치를 한껏 발휘하였다. 윤선도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 시조문학은 이후 평민작가들이 그 주역을 맡게 되면서 김성기(金聖器)·김유기(金裕器)·김천택(金天澤)·김수장(金壽長)·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 등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작자인 동시에 창곡가(唱曲家)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서민계층으로 흘러들어간 시조는 사설시조(辭說時調)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낳았는가 하면, 지난날의 시조를 수집·정리하는 가집(歌集) 편찬이 평민 가객(歌客)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다.
즉,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비롯하여 김수장의 《해동가요(海東歌謠)》, 박효관·안민영이 함께 엮은 《가곡원류(歌曲源流)》가 있으며, 그 밖에도 《고금가곡(古今歌曲)》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동가선(東歌選)》 등 많은 가집이 출현하였다. 한편, 가사문학에는 조선 전기에 속하는 정철 같은 대가에 이어 후기에는 그와 쌍벽을 이룰 만한 박인로가 나타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임진왜란 때 읊은 《태평사(太平詞)》와 《선상탄(船上嘆)》을 비롯하여 《누항사(陋巷詞)》 《사제곡(莎堤曲)》 《독락당(獨樂堂)》 《영남가(嶺南歌)》 《노계가(蘆溪歌)》 등 7편의 가사가 전해진다. 그러나 박인로의 특출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때 가사문학이 시조에 밀려 그 기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영조 이전까지는 이원익(李元翼)·이수광(李光)·무옥(巫玉)·임유후(任有後) 등이 가사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숙종 이후 소설의 융성과 더불어 가사는 다시 번성하여 장편가사가 널리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영조 때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정조 때 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萬言詞)》, 헌종 때 한산거사(漢山居士)의 《한양가(漢陽歌)》, 철종 때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北遷歌)》, 고종 때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燕行歌)》 등이 모두 1,000여 구(句)에서 4,000구에 달하는 장편가사였으며, 그 밖에도 유명 무명의 작가들이 창작한 수많은 가사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영남(嶺南)의 부녀자 사이에서 주로 유행한 내방가사(內房歌辭)가 많이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특기할 만한 문학양식으로서 판소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판소리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정설이 없는 형편이지만, 대체로 근원설화(根源說話)가 판소리로 전화(轉化)한 뒤 이윽고 그것이 문자로 정착한 것이 판소리 계통의 고대소설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불렸는지 확실치 않으나, 기록에 따르면 그 시창자(始唱者)는 숙종 말의 하한담(河漢潭)과 최선달(崔先達)이었다. 《춘향가》를 비롯하여 《심청가》 《흥부가》 《토끼타령》 《장끼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변강쇠타령》 《화용도(華容道)》 《강릉매화타령》 《무숙(武淑)이타령》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등 판소리 열두 마당은 고종 때 신재효(申在孝)에 의해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가루지기타령》 《적벽가(화용도)》의 여섯 마당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고대소설의 개화(開花)이다.
세조 때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가 나타난 이후 발전단계로 접어든 조선의 소설은 광해군 때 허균(許筠)의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출현시켰다. 흔히 최초의 한글 소설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계급사상을 타파하고 사회 개혁을 시사한 사회소설로서 당시의 시대 배경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었다. 허균에 이어 조선의 소설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이끈 작가는 숙종 때의 김만중(金萬重)이었다. 그가 남해(南海)에 유배되었을 때 어머니를 위하여 지었다는 《구운몽(九雲夢)》과 임금을 참회시키기 위하여 집필했다는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김만중 소설에서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그 밖에 작자 미상의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은 김만중의 작품과 같은 시대에 씌어진 회장소설(回章小說)로서 빼어난 작품이다. 이윽고 영·정조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이한 조선의 소설문학은 실학(實學)의 발흥 및 중국소설의 유입과 함께 대단한 흥성을 보게 되었다. 오늘날 전해지는 수백 종의 유명 무명 작가에 의한 고대소설들은 거의가 이 무렵의 소산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먼저 박지원(朴趾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허생전(許生傳)》 《양반전(兩班傳)》 《호질(虎叱)》 《민옹전(閔翁傳)》 《광문자전(廣文者傳)》 《마장전(馬傳)》 등 10여 편의 단편소설을 창작하였는데, 비록 그 표기는 한문이지만 한국 사실주의 소설의 빛나는 걸작들이다. 엄격한 비판정신에 입각한 박지원 소설은 당시 양반 계층의 무능과 위선을 고발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이 무렵 중국소설의 영향으로 군담소설(軍談小說)과 염정소설(艶情小說)이 많이 등장했는데, 전자가 남성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여성의 문학이라 일컬을 만한 것이었다. 군담소설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임진록(壬辰錄)》을 비롯하여 《조웅전(趙雄傳)》 《유충렬전(劉忠烈傳)》 《임경업전(林慶業傳)》 《소대성전(蘇大成傳)》 《장인걸전(張人傑傳)》 《곽재우전(郭再祐傳)》 《장익성전(張翼星傳)》 《여장군전(女將軍傳)》 등이 있으며, 염정소설류로는 《춘향전》을 비롯하여 《숙영낭자전》 《옥단춘전(玉丹春傳)》 《운영전(雲英傳)》 《이진사전(李進士傳)》 등 다수의 작품이 전해지나 그 중의 백미는 《춘향전》이다. 그 밖에도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등의 가정소설, 《심청전》을 비롯한 도덕소설, 《옥루몽(玉樓夢)》 등 일련의 기연소설(奇緣小說), 《흥부전》 등의 우화소설 등 여러 유형의 고대소설이 속출하여 소설문학을 풍성하게 하였는가 하면, 궁정기사체(宮廷記事體)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도 발달하여 《계축일기(癸丑日記)》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등이 나타났고 이와 같은 궁정문학은 더욱 발달하여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한중록(閑中錄)》 《의유당일기(意幽堂日記)》 등의 여류문학을 형성하였다.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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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현대 문학은 금세기 초에 전개된 신문학(新文學)운동으로부터 8·15광복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성된 문학을 지칭한다. 1894년의 갑오개혁을 경계로 한반도에는 위로는 정치제도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서양의 선진 문화를 뒤따르려는 근대적인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이 신기운을 개화기(開化期)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한국의 신문학운동도 이 개화기의 한 산물이다.
개화란 서구화를 의미하는 면이 강했지만 그것이 국적이나 민족을 무시 또는 초월하는 근대의식이 아니었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고취하려는 의지를 근간으로 하였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며, 실상 한국의 근대적 민족주의와 민족문학은 이 개화기부터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현대 문학은 민족의식과 근대적 자아의식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민족의 독립·번영에 대한 일체의 도전에 대한 저항과 예술적 창조의 두 국면의 긴밀한 관계를 파악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개화기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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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문학은 번역·창가·신소설의 세 가지 형태로 집약할 수 있다. 번역은 성서(聖書)와 찬송가의 번역과 함께 J.버니언의 《천로역정(天路歷程)》 번역(1895)이 있었고 이어 일본을 통한 중역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조중환(趙重桓)의 《장한몽(長恨夢)》, 이상협(李相協)의 《해왕성(海王星)》 등이 나왔는데 이것은 한국 근대문학 발생에 있어 서구문학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들이다. 창가는 1890년대 후반에 《독립신문》의 발간과 함께 나타났는데, 이용우의 《애국가》, 이중원의 《동심가》 등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이 중추를 이루었다.
창가는 그 뒤 7·5조, 8·5조 등의 가사 형태로 발전,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라는 신체시(新體詩)를 낳았다. 신소설의 첫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인직(李仁稙)의 《혈(血)의 누(淚)》는 1906년에 《만세보(萬歲報)》에 발표되었으며, 이어 같은 작가의 《귀(鬼)의 성(聲)》(1907), 이해조(李海朝)의 《빈상설(上雪)》(1908) 《자유종(自由鐘)》(10), 최찬식(崔瓚植)의 《추월색(秋月色)》(12) 등이 나왔는데 이들 작품의 주제는 자주독립, 근대적 민주사상, 신교육사상, 기성인습의 비판, 미신타파 등의 근대적 내용을 담았으나 권선징악, 인물의 정형성(定型性), 인위적인 종말 등의 요소는 고대소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어서 나타난 춘원 이광수(李光洙)는 근대소설의 시초라 할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발표하고 계속해서 《개척자(開拓者)》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작품은 개화기 소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일상어에 의한 산문문장과 작품 구조의 확립, 장편소설의 가능성 등에서 문제가 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근대문학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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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한국의 신문학운동에 있어 개화기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문학 근대화의 한 고비가 되는 셈이다. 물론 문학의 근대화라면 우선 그 환경이 문제가 되고 민족적인 독립국가라는 큰 전제가 필요하지만, 한국 신문학의 경우 10년에 국권피탈로 인하여 근대화의 환경으로서는 불모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신문학운동은 전개되어 19세기의 근대문학 사조인 낭만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 등이 들어와서 문예사조를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사조들을 타고 문학지들도 많이 등장하였는데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 지상에는 김억(金億)·황석우(黃錫禹) 등이 자유시를 발표하였고, 문예동인지 《창조(創造)》에서는 일본 낭만파 시의 대량 번역과 함께 주요한(朱耀翰)의 휘트먼적 의지, 전원구가(田園謳歌), 도시통매(都市痛罵) 등 이상적 경향의 시를 볼 수 있었다. 이어 《장미촌(薔薇村)》(21), 그리고 김억·남궁 벽(南宮璧)·나혜석(羅惠錫)·오상순(吳相淳)·황석우·염상섭(廉想涉) 등을 동인으로 한 《폐허(廢墟)》(1920), 박종화(朴鍾和)·홍사용(洪思容)·노자영(盧子泳)·이상화(李相和)·박영희(朴英熙)·나도향(羅稻香) 등이 동인이었던 《백조(白鳥)》(1922), 양주동(梁柱東)·이장희(李章熙)·유엽(柳葉) 등을 동인으로 한 《금성(金星)》(1924) 등이 발행되었는데, 이들 동인지에 나타난 대부분의 시는 허무적인 낭만주의를 주조로 하였다. 여기에 김소월(金素月)의 민요적 정한(情恨), 한용운(韓龍雲)의 구도적(求道的) 시정신을 추가할 수 있다.
이광수의 계몽주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김동인(金東仁)을 비롯하여 전영택(田榮澤)·현진건(玄鎭健)·염상섭·나도향 등은 1920년대 초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 가운데 김동인은 문학의 계몽성을 거부하는 순문학을 탄생시켜 근대적인 문학정신을 심어놓은 작가라는 점에서, 또 염상섭은 냉철한 리얼리즘을 보여준 최초의 작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20년대에 나타난 문학운동 중 색다른 것은 소위 신경향파(新傾向派) 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다. 이 두 개의 문학은 20년 초부터 밖에서 들어온 사회주의사상과 풍조를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것이다.
신경향파는 시보다도 소설에서 더 활발한 면을 보였는데 그 특색은 하층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극빈적 가난을 그리되 결말에 가서는 지주(地主) 등 상류계급에 대한 반항을 나타내는 것이 상례였다. 그 대표적 작가로는 최서해(崔曙海)를 들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25년에 프로 문학단체인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가 결성되어 약 5·6년간 문단의 패권을 쥐다시피 하였는데 이 프로문학의 특징은 마르크스적 이데올로기의 주입과 계급혁명이라는 정치성이 노출되어 문학적인 작품으로서의 성과를 남기지 못하였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 문인은 임화(林和)·이기영(李箕永)·김남천(金南天) 등이었다.
30년대의 문학과 모더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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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의 한국의 문학은 20년대 후반에 성행했던 프로문학에 대한 반발과 파시즘의 대두 및 중·일전쟁 발발로 불안의식이 고조되어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객관적 정세가 악화될 때 문학은 위축되고 안이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 시기의 문학을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그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시나 소설에서 서정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이다. 시에서 김영랑(金永郞), 소설에서 이태준(李泰俊)의 작품들이 이 범주에 속하며 이효석(李孝石)의 후기 작품도 같은 경향이다.
거기에는 민족주의적인 애상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둘째는 33년을 전후해서 등장한 모더니스트의 일파이다. 이 모더니즘은 시인들이 중심이 된 문학운동으로 서양의 상상파(이미지즘)의 계통을 본떠서 모더니티를 강조한 것이다. 김기림(金起林)이 주동이 되고 김광균(金光均)·장만영(張萬榮)·장서언(張瑞彦) 등의 시인들이 뒤를 따랐다. 9인회의 한 사람이었던 정지용(鄭芝溶) 또한 언어의 조탁(彫琢)과 리듬의 추구에 주력하면서 모더니즘의 선행주자의 역할을 했으며, 이 파를 이론적으로 도운 사람은 새클리 등의 주지파(主知派) 문학을 도입 소개한 평론가 최재서(崔載瑞)였다.
한편 이상(李箱)도 이와 같은 경향을 띠고 작품활동을 한 작가이다. 그는 초현실주의 시(詩) 《오감도(烏瞰圖)》(34)와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 《날개》(36)를 써서 현대시와 현대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30년대 후반기에는 재능 있는 신인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의 대륙침략전이 한창이던 때였으므로 한국문학의 주경향은 도시의 현실을 도피하여 자연을 가까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역사소설의 대거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김동명(金東鳴)·김상용(金尙鎔)의 전원시(田園詩), 이무영(李無影)의 농민문학이 그것을 증명하며, 이광수가 《단종애사(端宗哀史)》를, 김동인이 《운현궁의 봄》을, 현진건(玄鎭健)이 《무영탑(無影塔)》을, 박종화(朴鍾和)가 《대춘부(待春賦)》 등 역사소설을 내놓은 것도 그들의 민족주의 사상과 무관하다 할 수는 없으나 앞에서 말한 현실도피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 무렵 심리주의와는 반대로 세태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일군의 세태소설이 등장했다. 채만식(蔡萬植)의 《탁류(濁流)》(38),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川邊風景)》(36)이 그것인데, 유진오(兪鎭午)도 《김강사와 T교수》(35)를 거쳐 시정(市井) 세계를 묘사한 《주붕(酒朋)》(40)을 발표하였다. 이 밖에 인상파 작가로 불리는 계용묵(桂鎔默)·김유정(金裕貞)의 활약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의 후반기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유능한 신인들의 등장이라 하겠는데 시에서 서정주(徐廷柱), 소설에서 김동리(金東里)·박영준(朴榮濬)·정비석(鄭飛石)·최인욱(崔仁旭) 등 신인이 한국의 토착적·풍토적인 데서 제재를 찾아 작품을 형상화함으로써 높은 예술성의 획득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특히 김동리는 《무녀도(巫女圖)》 《바위》 등의 수작들을 발표하여 한국의 문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4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전쟁 말기로서 한국문학은 암흑기에 처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에 두 개의 문학잡지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이 존재하여 문학을 지키는 교두보의 역할을 했다. 이 잡지를 통해서 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薰) 등 청록파 시인과, 소설에 최태응(崔泰應)·임옥인(林玉仁)이 등장하였다. 조지훈의 자연적·선적(禪的)인 고아한 율조, 박목월의 토속적 민요적 자연친화(自然親和), 박두진의 이상적인 자연승화 등은 특히 괄목할 업적이었다.
8·15광복과 민족문학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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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한국 민족과 그 문화를 지난 36년간의 일제의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켰다. 문학도 8·15광복의 환희 속에서 민족문학 건설의 기치를 높이 내세우고 새출발을 하였다. 많은 시인·작가·비평가가 등장하여 《백민(白民)》 《민성(民聲)》 《신천지(新天地)》 《학풍(學風)》 《예술조선(藝術朝鮮)》 《문예(文藝)》 등 여러 지면을 통해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말미암아 쓸 자유를 완전히 빼앗겼던 문학인들은 광복의 감격 속에서 언어를 깎고 다듬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현상은 혼란기를 틈타서 빚어진 좌익 문인들의 책동을 민족진영의 젊은 문인들이 작품과 단체활동으로 분쇄한 사실이다.
좌우익의 논전은 에세이스트에 지나지 않았던 김동석(金東錫)의 <순수문학의 정체>와 순수문학의 기수인 김동리(金東里)의 <독조문학(毒爪文學)의 본질>로써 시작되었다. 이 논전에 좌익계의 김병규(金秉逵)가 가담했고 민족주의 진영의 조연현(趙演鉉)·이헌구(李軒求)·조지훈(趙芝薰)이 지원사격을 가하였다.
이 무렵의 논전을 요약하면 ① 계급문학 대 민족문학, ② 물질 대 정신, ③ 사회성 대 인간성, ④ 공식주의 대 다양성, ⑤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가 된다. 그러나 뒤이어 밀어닥친 6·25전쟁은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고 공산주의의 비인간성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문학이 제대로 발전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문학잡지, 특히 순문학을 지향하는 《문예(文藝)》가 문단에 큰 활기를 불어넣었던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 지면을 통하여 기성작가의 작품도 적지 않게 발표되었지만, 새로운 세대를 짊어질 신인들이 많이 등장하였고 그들은 잇따라 주목할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소설에 장용학(張龍鶴)·손창섭(孫昌涉)·강신재(康信哉), 시에 한성기(韓性祺)·이수복(李壽福)·박재삼(朴在森) 등이다. 이보다 약간 앞서지만 박두진·박목월·조지훈의 《청록집(靑鹿集)》과 박인환(朴寅煥)·김수영(金洙暎) 등 모더니스트들이 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이 시기를 장식한 작품들이다. 50년대 초반은 6·25전쟁으로 전선에 종군한 시인·작가들의 르포르타주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으나 접전 현장이 작품으로 형상화된 것은 거의 없다. 작품의 무대는 대체로 전선 아래에 있는 병영이거나 전쟁이 휩쓸고 간 마을 또는 먼 후방의 도시였으며 주요 작품으로 조지훈의 《풍류병영(風流兵營)》, 구상(具常)의 《적군묘지 앞에서》 등의 시작품과 황순원(黃順元)의 《학(鶴)》, 안수길(安壽吉)의 《제3인간형(第三人間型)》,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密茶苑時代)》 등의 단편소설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전후파 기질 및 실존주의가 문단을 풍미한 사실이다. 서구와 일본 사회에서는 전후파적인 풍조가 제2차대전 후에 곧바로 나타났지만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나타나 이 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폐허와 허무와 절망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즉 기존의 질서와 도덕을 부정하고 권위를 부정하며 모든 속박으로부터 일단 자유로워지고 싶어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서기원(徐基源)의 《암사지도(暗射地圖)》, 한말숙(韓末淑)의 《신화의 단애(斷崖)》 등을 들 수 있다.
60~70년대 이후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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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으로 한국 민족이 입은 물질적 손실과 정신적 상처는 60년대 초엽에 이르러서도 작가들이 쉽게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남아, 오상원(吳相源)·서기원·강용준(姜龍俊) 등이 이 시기에 전쟁의 여러 상흔을 계속 보여주었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경험하면서부터는 작가의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적 각성 및 비판의식이 높아지면서 김정한(金廷漢)의 《모래톱 이야기》, 이호철(李浩哲)의 《판문점》, 남정현(南廷賢)의 《분지(糞地)》 등이 생산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현실을 고발하고 풍자하며 민중의 정서와 가락에 특별한 관심을 쏟아온 시인들의 업적, 즉 김수영(金洙暎)·신동문(辛東門)·신동엽(申東曄)·신경림(申庚林) 등의 작업을 간과할 수 없다.
또 시의 표현기교에 새로운 실험을 끈질기게 시도한 김춘수(金春洙)·전봉건(全鳳健)·신동집(申瞳集)·김구용(金丘庸)·문덕수(文德守)·김종삼(金宗三)·박희진(朴喜璡) 등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과 함께 재래적인 정서와 풍속과 윤리와 신앙과 사상의 중시, 회고적이며 소박한 자연에의 도취, 토속어의 애용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 시의 전통을 이어온 시인들이 있는데, 이원섭(李元燮)·김윤성(金潤成)·이동주(李東柱)·천상병(千祥炳)·박용래(朴龍來)·이형기(李炯基)·박재삼(朴在森)·이성교(李姓敎)·김관식(金冠植)·구자운(具滋雲)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김소월과 김영랑에서 출발하여 김광섭(金珖燮)·서정주와 맥을 잇고 청록파 시인에게서 한 봉우리를 이룬 전통적 서정주의에 바탕을 둔 시인들이다.
한편, 소설에서는 60년대 이후 내성적 기교주의로 불릴 만한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이청준(李淸俊)·박태순(朴泰洵)·전상국(全商國)·유재용(柳在用)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이들의 작품세계에서는 50년대 작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개인주의적 내성과 새로운 감성의 세계를 섬세한 언어기교로 그려냈다는 특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소설사에서 볼 때 이 때에 이르러 단편소설 위주에서 벗어나 장편소설 시대로의 전기(轉機)가 마련되었다. 문학 전문지는 물론 종합월간지에서 중편이나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안수길의 《북간도(北間島)》, 박경리(朴景利)의 《토지(土地)》, 최인훈(崔仁勳)의 《광장(廣場)》 등은 이 때의 작품들이다.
70년대 이후 ~ 90년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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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는 그 동안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던 기성 문인들이 퇴조의 기미를 보이는 한편 젊은 신인들의 눈부신 움직임이 단연 각광을 받게 되었다. 소설분야에서는 최인호(崔仁浩)·황석영(黃晳暎)·조해일(趙海一)·조선작(趙善作) 등 여러 젊은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소위 70년대 작가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가장 많은 독자를 차지하는 신문소설에서도 그 자리를 휩쓸다시피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故鄕)》, 조해일의 《겨울 여자》 등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종의 소설 황금시대를 구가(謳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작품 경향에 대해 그 상업주의(商業主義) 문학으로서의 병폐를 지적하는 비평의 소리가 일각에서는 높아지기도 했다. 한편 산업사회(産業社會)의 도래와 함께 그 병리적인 면을 작품을 통해 표현한 조세희(趙世熙)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의 작품집이 나와 단편집으로서 드물게 많은 독자를 얻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황석영은 공사판의 노사관계를 다룬 《객지(客地)》라든지 남북분단의 비극을 작품화한 《한씨 연대기(韓氏年代記)》 등을 발표하였다.
70년대의 시단에서는 먼저 유신체제와 어두운 정치상황 아래에서 시인 김지하(金芝河)가 발표한 《오적(五賊)》이 필화사건(筆禍事件)을 몰고 와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밖에도 두드러진 작품활동을 한 시인으로서는 정진규(鄭鎭圭)·정현종(鄭玄宗)·박이도(朴利道)·이승훈(李昇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변모를 가져오는 데 가장 앞장서는 구실을 했다. 80년대에 와서 소설에서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 것은 그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던 대하소설(大河小說)의 등장이다. 이것이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황석영(黃晳暎)의 역사소설 《장길산(張吉山)》과 조정래(趙廷來)의 《태백산맥(太白山脈)》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이문열(李文烈)의 장편 《영웅시대(英雄時代)》도 문단의 많은 주목을 받고 그 후 그는 90년대에 넘어 오도록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는 이성복(李晟馥)·황지우(黃芝雨)·최승자(崔勝子)·김광규(金光圭) 등이 발랄한 작품활동을 했고, 이 밖에 노동시를 쓴 박노해와 기록적인 시집의 판매 성적을 올린 서정인도 80년대에 빠질 수 없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에 접어들어 많은 상업주의적인 소설이 나타나 독자들을 혼란케 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25년만에 완성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 밖에 작가 홍성원(洪盛原)도 60년대에 등단한 이후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먼동》 《달과 칼》 등의 대장편을 발표하고 있다. 또 신경숙·공지영 등의 젊은 여류작가들의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시에서는 70년대 이후 두드러진 작품 활동을 해온 고은(高銀)이 《만인보(萬人譜)》 《백두산(白頭山)》 등의 장시(長詩)를 완성하고 30년대에 시단에 나온 서정주(徐廷柱)가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 이후 계속해서 작품을 쓰고 있다. 여류시인들도 홍윤숙(洪允淑)·김남조(金南祚)·김지향(金芝鄕)·천양희(千良姬) 등이 50년대 이후부터 시작품의 꾸준한 발표를 이어 오고 있다.
상고시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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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기원은 구석기시대의 원시종합예술까지 거슬러 올라가 소급된다. 원시종합예술은 무용·음악·문학이 함께 어우러진 예술형태로서, 사회적인 통합을 기하려는 정치적 기능,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재앙을 면하려는 종교적 기능, 생산활동을 고무하여 식생활의 안정을 누리려는 경제적 기능을 아울러 수행하는 제전형식으로 발생한 것이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는 풍요를 기원하는 농업노동요와 소박한 단계의 신화 및 서사시가 생겨나 구비전승되었을 것이나 온전한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신석기시대 이래 수차례에 걸친 민족의 이동과 원주민과의 동화가 이루어지면서 고아시아 계통의 선행문화가 알타이계 이주민의 신화·서사시와 결합하여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단계인 청동기시대의 건국신화·건국서사시로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상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에서 변신한 웅녀 사이에서 단군이 태어났다는 고조선 〈건국신화〉, 해모수와 유화 사이에서 주몽이 태어났다는 부여·고구려계의 〈동명왕 신화〉,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김알지 신화〉, 가야의 〈김수로왕 신화〉 등은 공통적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건국영웅의 위대한 행적과 지상의 지배자로서 천상적 권위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건국신화들은 주로 국중대회라는 축제의 형식을 통하여 전승되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국중대회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하늘의 권위를 지닌 동시에 집단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군주의 신화적인 내력을 노래와 몸짓으로 구현한 국가적인 행사였다.
신화·서사시의 시대를 지나면서 변모된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들이 생겨났다. 한역가로 현전하는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황조가 黃鳥歌〉·〈구지가 龜旨歌〉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공무도하가〉는 연속적인 세계관에 기반하는 신화적 질서가 불연속적인 세계관에 기초하는 새로운 질서로 바뀌는 양상을 보여주며, 〈황조가〉는 파탄에 이른 고구려 유리왕의 개인적인 고독을 하소연한 최초의 서정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화적인 질서의 동요 흔적은 이러한 고대가요에서 뿐만 아니라 고구려 초기의 해명태자, 호동왕자 전설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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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삼국이 한문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고 유학과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이루어졌다. 한문의 사용은 〈유기 留記〉·〈신집 新集〉·〈서기 書記〉·〈국사 國史〉와 같은 역사책을 편찬하고,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陵碑〉·〈진흥왕순수비 眞興王巡狩碑〉 같은 금석문을 짓는 등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구비전승에만 의존했던 한국문학이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을 공유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하는 중대한 구실을 했다. 유학과 불교도 보편적인 이념을 구현하면서 한국문학의 주제를 심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 與隋將于仲文詩〉는 고구려인의 넘치는 기상을 드러냈고, 진덕여왕의 〈치당태평송 致唐太平頌〉은 그 내용이 비록 사대적이기는 하지만 신라문학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노랫말이 온전하게 전하지는 않지만 고구려에는 〈내원성가 來遠城歌〉·〈연양가 延陽歌〉·〈명주가 溟州歌〉 등의 가요가 있었고, 신라에서는 〈도솔가 兜率歌〉·〈회소곡 會蘇曲〉과 같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불렀으며, 백제에서도 〈선운산 禪雲山〉·〈무등산 無等山〉·〈방등산 方等山〉·〈지리산 智異山〉 등 자연을 노래하는 가요가 유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신라에서는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향찰(鄕札)이 창안되면서 향가가 나타났다. 〈서동요 薯童謠〉·〈풍요 風謠〉와 같은 4구체 향가는 민요적 특성을 보이는 초기의 향가라고 할 수 있다. 이 4구체를 거듭하여 8구체 향가가 생겨났고, 신라 귀족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사뇌가'(詞腦歌)라고도 하는 10구체의 정제된 형식의 향가가 이루어졌다. 불교적인 주제를 다룬 사뇌가의 대표적인 작자층은 화랑·승려인데, 융천사(融天師)의 〈혜성가 彗星歌〉는 사뇌가가 화랑의 등장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충담사(忠談師)의 〈찬기파랑가 讚耆婆郞歌〉, 희명(希明)의 〈천수대비가 天手大悲歌〉 등은 향가의 작자층이 확대되면서 창작되었고, 〈처용가 處容歌〉는 주술시가(呪術詩歌)의 일면을 보여주는 후대의 작품이다. 진성여왕 때 〈삼대목 三代目〉이라는 향가집이 편찬되어 향가를 집대성했다고 하나 오늘날 전하지 않고 〈삼국유사〉에 14수만이 전한다. 고구려나 백제에도 신라의 향찰과 향가에 상응하는 표기방식과 노래가 있을 법하나 그 자취를 더듬어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한문학 은 본격적인 발전을 이룩했는데, 설총·강수·김인문·김대문·최치원으로 이어지는 6두품 출신 문인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이들은 유학과 문학의 의의를 주장하면서 문학주도층으로 성장했다. 국학 설립에 관여한 설총은 꽃을 의인화하여 왕을 풍자한 〈화왕계 花王戒〉를 지었으며,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했던 최치원은 시와 문을 지어 그 명성을 드높이고 한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설화 쪽에서는 김춘추의 영웅상을 부각시키는 과정에 삽입된 〈구토지설 龜토之說〉, 왕의 횡포로 처참한 시련을 겪는 〈도미설화 都彌說話〉, 여왕을 사랑하다 불귀신이 되었다는 〈지귀설화 志鬼說話〉 등이 등장하여 신화적 인물의 영웅적 투쟁과 성취를 다룬 전대 설화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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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신라가 세력을 잃고 후삼국간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신이한 능력을 타고난 인물이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나라를 건국한다는 신화가 재현되는 듯했다. 고려의 경우는 왕건의 선조가 여러 대에 걸쳐서 신화적인 내력을 지닌다고 했으나 그 신화의 위력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고려 전기는 신라의 문학을 계승하면서 불교와 유학의 이념을 구현하는 데 힘썼으며 한문학이 왕성하게 번성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신라에서 비롯된 향가는 고려 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 화엄사상(華嚴思想)에 입각하여 교화의 뜻을 담은 균여의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는 향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예종이 건국의 공신인 신숭겸과 김낙을 추모해서 지었다는 〈도이 장가 悼二將歌〉, 정서(鄭敍)가 유배지에서 의종을 그리워하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는 〈정과정곡 鄭瓜亭曲〉 등에서도 향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광종 때 실시된 과거제는 유교 경전의 이해와 더불어 시문 창작능력을 중시함으로써 한문학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 문인인 최승로·최충·박인량 등은 훌륭한 문장과 시를 지어 나라 안팎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부식은 유학의 경전을 모범으로 삼는 고문을 이룩하고자 했고, 김황원·정지상은 절실하고 아름다운 표현을 중시하는 문학을 이룩하고자 하여 서로 대립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설화 방면에서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저술이 이루어졌다. 문종 때 금관(金官)지방의 수령노릇을 하던 어느 문인이 옛 금관가야의 중심지인 금관, 즉 김해지방에 전하는 가야의 전설·사적·민속을 모아 〈가락국기 駕洛國記〉를 편찬했다. 또 신라 때부터 있었던 책을 박인량이 개작했으리라고 보이는 〈수이전 殊異傳〉에는 〈수삽석남 首揷石枏〉을 비롯한 신이한 설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는 역사보다도 설화가 중시되는 풍조를 시정하고 유학에 입각한 통치이념을 확립하고자 한 정통적인 역사서이지만, 〈삼국사기〉 역시 설화자료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열전〉 부문에는 우수한 표현을 보인 설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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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김극기와 죽림고회(竹林高會)라는 모임을 만들었던 오세재·이인로·이규보 등이 주축이 된 한문학은 대단히 융성했다. 특히 이 시기에 비평문학이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인로는 〈파한집 破閑集〉을 편찬하여 위기에 몰린 문학을 옹호하고 빈부와 귀천으로 우열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오직 아름답게 아로새긴 문장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규보는 〈백운소설 白雲小說〉이라는 시화집을 통해 문학은 수식보다는 내용이 우선이며 무엇보다도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등 문학의 이론과 작품의 창작을 잇는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최자의 〈보한집 補閑集〉, 최해의 〈동인지문 東人之文〉, 이제현의 〈역옹패설翁稗說〉 등이 이 시대에 활동한 신흥사대부들의 문학관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선종이 중심이 된 불교문학은 지눌을 위시하여 혜심·충지·경한·보우·혜근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문학의 영역을 확대했다. 또한 이규보의 〈동명왕편 東明王篇〉은 고구려 건국서사시를 재현함으로써 민족적 긍지를 드높였다. 각훈의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 일연의 〈삼국유사〉 등은 〈삼국사기〉의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민족사를 주체적으로 재인식하려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 帝王韻記〉는 민족사의 전개를 중국의 경우와 대비하여 노래한 또 하나의 서사시이다.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전 (傳)이 한문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이색은 불운한 일생을 보내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문제가 되는 인물을 다루는 전을 지었고, 이규보와 최해는 자신을 다른 인물에다 가탁하여 칭송하는 탁전(托傳)을 지었다. 또 사물을 의인화한 가전(假傳)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전이 나왔는데, 임춘의 〈공방전 孔方傳〉·〈국순전 麴醇傳〉, 이규보의 〈국선생전 麴先生傳〉, 이곡의 〈죽부인전 竹夫人傳〉, 이첨의 〈저생전 楮生傳〉 등은 각각 돈·술·대나무·종이 등을 의인화하여 세상 형편을 흥미롭게 서술했다. 〈고려사〉 악지에 소개되고 〈악장가사〉에 노랫말이 전하는 속악가사(俗樂歌詞)는 고려 후기에 궁중에서 노래로 불렸던 또 하나의 문학 장르이다. 이들 중에는 〈정읍사 井邑詞〉·〈처용가 處容歌〉처럼 삼국시대의 전통을 이은 것도 있고 〈쌍화점 雙花店〉 같은 창작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당시의 민요를 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임을 그리워하는 달거리 노래인 〈동동 動動〉,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가시리〉·〈이상곡 履霜曲〉·〈만전춘별사 滿殿春別詞〉·〈서경별곡 西京別曲〉, 유랑민의 소망 또는 지식인의 현실에 대한 체념을 노래한 〈청산별곡 靑山別曲〉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밖에도 〈유구곡 維鳩曲〉·〈상저가 相楮歌〉 등 단장(單章)으로 된 짧은 노래가 있는가 하면 연장(連章)으로 된 긴 노래도 있다. 이제현과 민사평이 각기 편찬한 〈소악부 小樂府〉는 이들 노래와 유사한 내용의 노래들을 한시의 형태로 채록하고 있어, 이 시기 가요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신흥사대부가 문학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그들의 풍류를 자랑하는 노래로 경기체가가 창안되었다 . 〈한림별곡 翰林別曲〉은 고종 때의 문인들이 공동으로 지은 최초의 경기체가이고, 안축은 〈죽계별곡 竹溪別曲〉·〈관동별곡 關東別曲〉을 남겼다. 이들 작품은 한자어구로 지칭되는 사물을 열거하면서 문인사회, 개인으로서의 문인·관인(官人)의 자부심과 흥취를 노래했다. 조선시대의 시가문학을 주도한 시조와 가사 도 이 시기에 창안되었다. 향찰로 표기된 혜근의 〈승원가 僧元歌〉는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포교를 꾀한 작품으로서, 가사가 고려말에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4음보 3행 시가인 시조는 인간의 심성과 자연미를 읊은 서정시가의 길을 이었는데, 현재 우탁과 이조년 등이 쓴 몇몇 작품만 전한다.
조선 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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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건국되면서 문학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대립양상을 보였다. 정도전·권근 등은 건국과 문학의 이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왕조의 위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었음에 반해, 길재·원천석 등은 은거하면서 고려 왕조를 회고하며 그에 대한 절의를 표방하고 세태를 개탄하는 작품을 창작했다.
건국 당시의 일시적인 혼란을 극복하고 지배질서를 확립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국문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이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건국시조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찬양한 왕조서사시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와 석가모니의 일생을 다룬 불교서사시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은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문문학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자못 크다. 유교에 입각하여 행실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책을 만들고 불교의 경전을 번역하여 간행하는 사이에 국문문장의 실용성과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새 왕조의 창업을 송축하는 노래인 악장도 국문으로 창작된 것이 많았다 .
정도전의 〈문덕곡 文德曲〉·〈무덕곡 武德曲〉을 비롯하여 상진의 〈감군은 感君恩〉에 이르기까지 악장은 국문시가의 한 갈래를 형성했다. 고려 후기에 발생한 경기체가는 조선 전기의 문인들에게도 계승되어 권근의 〈상대별곡 霜臺別曲〉, 변계량의 〈화산별곡 華山別曲〉 등이 창작되었다. 처음에는 악장 구실을 겸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나 점차 개인적인 관심사를 노래하는 쪽으로 변모되고 형식도 산만해지더니 조선 중기에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가사는 정극인의 〈상춘곡 賞春曲〉, 조위의 〈만분가 萬憤歌〉 등이 창작되어 사대부문학으로 자리를 잡고 은일·유배·기행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다채롭게 발전했으며, 정철의 〈성산별곡 星山別曲〉·〈관동별곡 關東別曲〉·〈사미인곡 思美人曲〉·〈속미인곡 續美人曲〉 등이 그 절정을 이루었다.
시조는 초기에 구왕조인 고려에 대한 회고, 사육신의 충절, 무장의 기개 등을 읊은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현보의 〈어부사 漁父詞〉 등이 창작되면서 연시조로도 발전했다. 주세붕의 〈오륜가 五倫歌〉와 정철의 〈훈민가 訓民歌〉는 유교적 실천윤리를 노래하는 교훈시조의 길을 열었으며, 이황의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 이이의 〈고산구곡가 高山九曲歌〉 등은 자연 속에서 규범적인 진리를 구가하는 강호가도의 전통을 수립했다. 황진이·이매창 같은 기녀들도 남녀간의 애정을 정감어린 표현으로 노래함으로써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한문학도 새롭게 정비되었다. 서거정은 〈동문선 東文選〉·〈동인시화 東人詩話〉를 편찬하여 신라시대 이래의 시문을 집대성하여 비평했고, 성현은 〈용재총화 용齋叢話〉를 지어 사장파(詞章派) 문학의 전통을 이룩했다. 이들 사장파와 대조적인 면모를 보인 것이 김종직에서 김일손으로 이어지는 도학파(道學派) 또는 사림파(士林派) 문인들이다. 서경덕·이황은 도학과 문학의 원리를 아울러 탐구함으로써 문학의 사상적 깊이를 더했다. 방외인의 성격을 지닌 김시습은 이단적·반항적인 시를 짓고 〈금오신화 金鰲新話〉와 같은 소설을 창작했다.
그런가 하면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일컬어지는 이달·백광홍·최경창은 생활감정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시풍을 정착시켰고, 여류시인으로는 허난설헌이 명성을 얻었으며 기녀들 중에서도 한시에 재능을 발휘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고려 후기에 융성한 가전문학은 이 시기에 이르러 김우옹의 〈천군전 天君傳〉, 임제의 〈수성지 愁城志〉 등으로 계승되었다. 심의의 〈대관재몽유록 大觀齋夢遊錄〉, 임제의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은 몽유록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실험한 작품이고,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 강희맹의 〈촌담해이 村談解이〉, 송세림의 〈어면순 禦眠楯〉 등과 같이 음담패설을 한문으로 옮긴 저술도 나타났다. 명혼설화(冥婚說話)와 몽유설화(夢遊說話)를 수용하여 김시습이 지어낸 〈금오신화〉는 비록 한문 표기이기는 하지만 소설문학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조선 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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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문학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亂中日記〉와 시조, 박인로의 〈선상탄 船上嘆〉, 유성룡의 〈징비록 懲毖錄〉, 강항의 〈간양록 看羊錄〉 등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기록하여 그 수난과 분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궁녀가 쓴 〈산성일기 山城日記〉, 김상헌과 3학사의 시조, 윤계선의 〈달천몽유록 達川夢遊錄〉, 〈피생명몽록 皮生冥夢錄〉, 〈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 등은 병자호란의 참상과 후유증을 절실하게 표현했다. 한문학은 전통적 규범과 격식을 떨쳐버리려는 방향과 회복하고자 하는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권필과 허균은 전자의 입장에서, 이정구·신흠·이식·장유 같은 한문사대가는 후자의 입장에서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박지원을 비롯한 실학파는 현실로 관심을 돌려 생동하는 문체를 창안했고, 정약용은 민요풍의 한시를 짓고자 했으며, 신위는 개성적인 표현으로 한시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한시의 소재를 이 땅의 풍속과 현실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어 〈해동악부 海東樂府〉가 거듭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위항인(委巷人)이라 일컬어지는 중인·서리·시정인들이 한문학 창작에 적극 참여했다. 정내교·장혼·조수삼을 위시한 위항인들은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시 창작에 열의를 보였으며 자기들의 한시를 풍요(風謠)라 하고 이를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해 〈소대풍요 昭代風謠〉·〈풍요속선 風謠續選〉·〈풍요삼선 風謠三選〉 등을 편찬했다.
문학관 및 문학사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허균은 도학의 굴레를 벗어나 자연스러운 감정을 담은 문학을 주장했고, 김만중은 모방에 치우치는 한문학보다 나무꾼과 빨래터의 아낙네가 부르는 민요가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만종은 〈시화총림 詩話叢林〉을 편찬하여 국문시가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고, 홍대용은 천기론(天機論)을 내세워 새로운 문학론을 전개했다. 박지원은 현실을 비판하는 방법을 문학에서 찾았으며, 정약용은 조선시(朝鮮詩)를 주창했다. 사대부의 시조는 윤선도에 이르러 세련된 언어미를 획득했지만 현실감각은 오히려 무뎌졌다.
그러한 가운데 권섭은 시조 창작에만 전념하다시피 한 작가로서 끊임없는 자기 확인과 풍속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정보는 탈속한 경지의 흥취를 노래하면서 사대부로서는 드물게 애정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왕족의 한 사람인 이세보는 다양한 제재와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 세도정치와 잘못된 사회의 병폐를 강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남겼고 458수나 실은 개인 시조집을 엮었다.
시조의 창작과 연행에 위항인들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담당층이 확대되었다. 위항인 출신의 가객들은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 등의 가단을 형성하여 시조창법을 개발하고 시조집을 편찬했다. 김천택의 〈청구영언 靑丘永言〉을 비롯하여 김수장의 〈해동가요 海東歌謠〉, 안민영의 〈가곡원류 歌曲原流〉 등의 시조집은 그때까지 구비전승되어오던 작품과 문헌상에 기록된 작품 및 동시대 작가들의 새로운 창작품을 집대성하여 시조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가사는 갈래 자체가 지니고 있던 복합적인 성격이 극대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서정적인 내용을 다루던 조선 전기와는 달리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 홍순학의 〈연행가 燕行歌〉와 같은 장편기행가사가 나타나고,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한양가 漢陽歌〉·〈우부가 愚夫歌〉와 같은 풍속가사가 성행했다. 종교적 교리를 담은 천주가사(天主歌辭)도 적잖은 수에 이르렀으며, 규방의 여인들을 중심으로 가정의 규범과 교훈은 물론 가정생활의 애환을 다양하게 다루는 규방가사(閨房歌辭)가 나타나 상당한 세력을 떨쳤다.
야담은 역사적인 내용을 지닌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데, 유몽인의 〈어우야담 於于野談〉이 나온 후로 작자 미상의 〈청구야담 靑丘野談〉, 이희준의 〈계서야담 溪西野談〉, 이원명의 〈동야휘집 東野彙輯〉 등에서 야담이 거듭 수록·정리되었다. 〈금오신화〉에서 시작된 한문소설은 허균의 〈장생전 蔣生傳〉·〈남궁선생전 南宮先生傳〉으로 이어지면서 뚜렷한 주제의식을 드러냈으며, 정태제의 〈천군연의 天君演義〉처럼 심성을 의인화한 가전소설도 나타났다.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구운몽 九雲夢〉·〈옥루몽 玉樓夢〉 등은 한문본과 국문본이 모두 광범위한 인기를 얻어 유행했다. 한문단편으로 분류되는 박지원의 〈양반전 兩班傳〉·〈허생전 許生傳〉은 치밀한 구성과 뚜렷한 주제를 통하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드러냈고, 이옥·김려도 그에 못지 않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閑中錄〉은 비극적 체험을 우아한 문체로 나타내어 여류 궁중실기의 전통을 이었고, 박두세의 〈요로원야화기 要路院夜話記〉는 국문실기로 당시의 세태를 묘사했다. 국문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 洪吉童傳〉에서 시작되었다. 도술을 부리는 주인공의 활약상을 다룬 〈전우치전 田禹治傳〉, 중국을 무대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영웅들의 투쟁을 그린 〈조웅전 趙雄傳〉·〈유충렬전 劉忠烈傳〉, 여성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숙향전 淑香傳〉 등이 널리 읽혔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중후한 주제의식과 세련된 표현을 갖춘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는데, 김만중의 〈구운몽 九雲夢〉·〈사씨남정기 謝氏南征記〉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남영로의 〈옥련몽 玉蓮夢〉, 작자 미상의 〈천수석 泉水石〉과 같은 장편소설이 나타나고 〈명주보월빙 明珠寶月聘〉·〈완월회맹연 玩月會盟宴〉과 같은 장편대하소설로 이어진 것은 당시 소설의 대중적 인기를 입증한다. 국문소설은 방각본(坊刻本)으로 널리 보급되어 상품화되었고, 길거리에서 소설을 낭독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던 전기수(傳奇8)와 같은 사람들 또는 소설을 상품으로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세책가(貰冊家)들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판소리는 서사무가가 대중적 취향에 맞게 세속적·일상적인 차원으로 변모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직업적인 광대들이 생업으로 삼아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만화본(晩華本) 〈춘향가 春香歌〉는 판소리가 숙종말부터 영조초 사이에 발생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판소리는 원래 12마당이었는데 고종 때 신재효가 〈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가루지기타령〉·〈적벽가〉 등 6마당으로 개작·정리했다.
판소리는 대개 표면적으로 충·효·열과 같은 관습적인 도덕을 내세운 것 같지만 이면적으로는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문소설의 유행과 함께 이들 판소리 사설 가운데는 〈흥부전〉·〈심청전〉처럼 소설로 개작된 것도 있다. 무당굿놀이·꼭두각시놀음·탈춤 등 전래의 민속극은 사회적 통념과 권위의식을 풍자하고 비판함으로써 비판적 희극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뚜렷하게 가지게 되었다. 서울 근처에는 산대놀이, 황해도지방에서는 해서탈춤, 낙동강 유역과 동해안지역에는 오광대(五廣大)·들놀음[野遊] 등의 탈춤이 각각 성행했다. 한편 〈기음노래〉·〈합강정가 合江亭歌〉·〈거창가 居昌歌〉 등과 같이 항거와 고발의 내용을 다루면서 민요와 가사의 중간형태를 띤 작품들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개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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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계몽 운동과 신문학의 성립
한국의 현대문학이 성립되기 시작한 첫 단계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이다. 이 시기에 봉건적인 조선 사회가 붕괴되고 새로운 서구 문물이 수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세의 침략적 위협에 대응하여 민족 국가의 독립과 자주 의식을 강조하던 사회 계몽 운동이 폭넓게 전개되었다. 이 시기에 새롭게 형성된 문학을 개화 계몽 시대의 문학이라고 한다.
개화 계몽 시대의 문학은 전통적인 문학 양식의 근대적인 변혁과 새로운 외래적인 문학 양식의 수용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문학이 지니고 있던 고정적인 관념이나 인습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전통적인 시가 형태인 시조가 음악적인 창곡과 분리되어 시의 형식으로 고정된 점이다. 소설의 경우에는 비현실적인 초월적 세계의 개입이 사라지고 일상의 삶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서사 구조에서 시간의 역전적 전개를 구성의 원리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학을 통하여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계몽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도 등장하고 있다.
개화 계몽 시대에 전통적인 문학이 새로운 변혁을 이루게 된 것은 신교육과 국어 국문 운동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갑오개혁(1894) 이후 새로운 교육이 시행되면서 서구적인 신식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새로운 서구 문물과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교과용 도서의 출판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독서층이 확대되었고, 문자 생활에서 한문의 제약성을 벗어나 국문 사용이 폭넓게 확대된 것이다. 한문의 정보 기능이 퇴조하면서 한문체와 국문체의 절충 형태인 국한문체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 시기의 문학 양식은 대체로 국문체를 수용함으로써, 국문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문학의 확립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개화 계몽 시대 문학은 대중적 매체로 등장한 신문과 잡지를 통하여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대한민보〉 등의 신문은 대부분 소설, 시조, 가사 등의 문학 작품을 일반 기사와 함께 수록하고 있다. 여러 사회 단체들이 간행한 〈기호흥학회회보〉·〈대한자강회보〉 등과 같은 학회보와 〈소년〉과 같은 잡지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문학의 형태를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인쇄술의 도입과 상업적인 출판사의 등장으로 문학 작품의 상업적 출판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전기와 우화, 그리고 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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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서사문학 양식으로는 전기, 우화, 신소설 등이 있다. 개화 계몽 운동과 함께 새로운 시대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널리 영웅적인 역사적 인물의 전기가 많이 등장했다. 전기는 전통적인 한문학의 전(傳)과 역사적인 맥락이 이어지며, 애국사상의 계발, 민족의식의 각성 등 계몽적 의도에 의하여 창작된다. 서양의 위인 전기인 〈이태리 건국 삼걸전〉(신채호역, 1906)이 번역되었고, 〈애국부인전〉(장지연, 1907)·〈을지문덕〉(신채호, 1908), 〈동국거걸 최도통전〉(신채호, 1909) 등이 당대 현실에서 요구되는 영웅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 사회와 시대 상황을 풍자·비판하는 우화는 안국선의 〈금수회의록〉(1908)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인간 세상의 도덕적 타락과 혼란을 비판하는 동물들의 연설을 통해 충효, 화친, 우애 등의 전통적인 윤리적 규범과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세종〉(김필수, 1908)·〈금수재판〉(1910) 등이 유사한 계열의 작품이다. 꿈이라든지 초현실적인 공간을 설정하여 현실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몽견제갈량〉(유원표, 1908)·〈지구성 미래몽〉(1909)·〈몽배금태조〉(박은식), 〈꿈하늘〉(신채호) 등도 우화적 요소가 강하다.
이러한 작품 형태는 현실과는 상반되는 꿈의 장면을 그려놓고 꿈 속에서 서사적 자아의 이상과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전통적인 '몽유록'과도 그 속성이 흡사하다. 이같은 전기와 우화는 모두 개화 계몽 운동의 정신을 잘 대변하고 있다. 침략적인 외세에 대해 비판적이며, 민족주의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 양식들은 일제 통감부 설치 이후 규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압수되거나 발매 금지 처분을 받게 되어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이 시기에 등장한 신소설은 이인직·이해조·최찬식·김교제 등의 직업적인 작가층의 형성과 함께 대중적인 독자 기반을 확보한 서사문학의 양식이다. 〈혈의 누〉(1906)·〈치악산〉(1908)·〈은세계〉(1908) 등을 발표한 이인직의 뒤를 이어, 이해조는 〈빈상설〉(1908)·〈구마검〉(1908)·〈화의 혈〉(1912) 등을 발표하고 있다. 최찬식의 〈추월색〉(1912)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혈의 누〉는 조선 말기 청일전쟁을 겪은 평양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청일전쟁은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지만, 전란 속에서 가족을 잃은 여주인공은 일본 군인들의 도움으로 개화의 길로 인도되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게 된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청일 전쟁의 승리자가 된 일본이 전란 속의 조선인을 구출하고 문명 개화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구원자로 등장하고 있는 점이다. 일본을 매개로 하여 조선의 개화를 주장하고자 했던 작가의 시대의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소설 〈혈의 누〉의 이야기는 여주인공의 가족 상봉과 신식 결혼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설 〈모란봉〉으로 연결된다.
〈모란봉〉은 여주인공의 귀국과 가족 상봉이 중요한 골격을 이루고 있지만, 결혼에 얽힌 여러 가지 뒷이야기를 과장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여주인공이 추구했던 개화 문명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윤리와 가치의 붕괴라는 또다른 현실의 문제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신소설 〈은세계〉는 갑신정변을 전후한 시대를 배경으로하여 부패한 사회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정치 제도의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이 소설의 전반부는 봉건적인 사회 제도와 부패한 탐관오리의 학정을 고발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후반부에서는 이 주인공의 자녀들이 성장하여 외국 유학을 거쳐 문명 개화의 이상을 안고 귀환하는 과정을 보여 주지만, 이야기의 완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해조는 신소설의 대중화를 이루어 놓은 작가이다. 〈빈상설〉은 처첩간의 갈등과 그 해결의 과정을 권선 징악의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야기의 내용 자체가 세속화되고 개인화된 삶의 변화를 반영한다. 〈구마검〉의 경우는 미신 타파라는 사회적인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개인의 세속적인 욕망과 그 문제성이 깔려 있다. 신소설은 이해조 이후 최찬식, 김교제와 같은 작가로 이어졌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의 욕구대로 개인적인 취향물로서의 통속적인 이야기책으로 변모되고 있다. 신소설 작가들이 보여준 대중적인 흥미성에의 집착은 신소설의 사회계몽적 기능을 약화시킨 대신, 그 방향을 개인적인 취향 문제로 전환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개화 가사, 창가, 신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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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계몽시대의 시가 양식을 보면, 전통적인 시가 형태의 근대적 변모와 새로운 시가 형태의 등장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 시대 시가문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시조는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시의 형식으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개화 시조는 가창의 형식으로 음악과 함께 향유되던 관습에서 벗어나 음악과 분리된 시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대한매일신보〉·〈대한민보〉 등에 발표된 수백 편의 시조들은 그 작자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조의 시 형식을 통해 현실 비판 의식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주 독립의 의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개화 가사는 전통적인 가사 형태에서 운문의 형식적 요건만을 계승하고, 그 내용은 다양한 분화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 비판적이고 논설적인 내용을 운문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한매일신보〉의 〈사회등 가사〉는 개화 가사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개화 가사는 그 율문적인 형식의 자유로운 확대가 허용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적 서정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내용의 개방성으로 인하여 당시의 여러 가지 산문 형태와도 서로 경쟁하면서 새로 등장하는 창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
개화 시조와 개화 가사가 전통적인 문학 형태의 계승에 해당한다면, 창가와 신체시는 개화 계몽 시대의 새로운 시문학의 등장을 의미한다 . 이 새로운 시 형태는 근대적인 자유시 형성 과정의 첫 단계에 등장하고 있다. 창가는 〈독립신문〉에 독자 투고 형식으로 발표된 〈애국가〉가 대표적인 형태인데, 전통적인 가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반복적인 후렴을 붙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같은 창가는 서양 음악의 곡조에 맞춰 가창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최남선의 〈경부철도가〉 등에 이르면 개화 가사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서 길이가 확대되고 가사의 고정적인 율격의 패턴에서 벗어나 7.5조의 새로운 율격이 등장하고 있다.
창가는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노래하거나 문명 개화의 이상을 노래하고 있는 계몽적인 요소가 그 내용에 담겨져 있다. 신체시는 시적 형태의 고정성에서 벗어나 자유시의 형태에 접근하고 있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꽃 두고〉·〈태백산시〉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이 작품들은 개화 가사나 창가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정적 형식에서 벗어나 시행의 구분이 비교적 자유롭고 전체적인 시적 형식도 어떤 규칙적인 틀을 벗어나고 있다. 신체시는 그 형식상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정서보다도 시대적인 이념을 노래한 것이 많다. 이같은 형식의 등장은 자유시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계라는 점에서 일정한 문학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창극과 신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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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계몽 시대의 극양식은 판소리의 창극화 과정과 일본 신파극의 수용과정으로 그 특성을 요약할 수 있다. 전통적인 연희 형식 가운데 판소리는 판소리 사설이 지니는 서사적 요소와 그 창곡의 음악성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명창에 의해 구연된다. 그러나 이같은 판소리에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사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역할을 분담하여 노래하는 새로운 방식이 19세기말부터 등장한다. 이것을 창극(唱劇)이라고 한다. 창극의 등장은 전통적인 판소리가 연극적인 형태로 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창극 형식은 이인직의 소설 〈은세계〉(1908)가 창극적인 형태로 공연되면서 점차 근대적인 연극의 형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편 이 시기에 일본 신파극의 수용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신파극은 그 내용이 직접 번역 소개된 것이 아니라 대개 한국적인 시대 상황에 맞춰 극의 구성과 내용을 번안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파극은 임성구가 창립한 극단 혁신단이 〈불효천죄 不孝天罪〉(1911)와 같은 작품을 공연함으로써 시작된다. 신파극은 대중적인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에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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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상황과 문학의 변화
한국문학은 1910년 일본의 강점에 의해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부터 역사적 시련을 맞고 있다. 일본은 한일합병을 강제로 체결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후 한국에 대한 무단통치를 실시한다. 개화기 문학에서 볼 수 있었던 자주적인 국권 회복과 문명 개화에 대한 의지는 엄격한 언론 출판에 대한 규제로 인하여 더 이상 표출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서구적인 개념에 따른 문학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개인적 정서에 근거한 예술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진다. 이광수는 〈문학의 가치〉(1910)에서 '인간의 정적 분자를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는 뜻으로 문학의 개념을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개인의 내면적 고뇌를 그려낸 단편소설 〈소년의 비애〉(1917)를 발표하고, 장편소설 〈무정〉을 내놓으면서 문단의 중심인물이 된다.
〈무정〉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에 철저하지는 않았으나, 개인의 운명적인 삶과 시대적 조건을 결합시킨 장편소설로서 그 근대적 성격이 인정되고 있다. 〈무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요소는 자아의 각성에 근거한 사랑과 배움의 문제를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의 각성은 사회 현실에 근거하여 한 개인이 자기 존재의 인식을 확대시켜 나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무정〉은 이같은 문제성에 접근하면서 전통적인 윤리 의식과 규범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반성적인 자기 각성의 단계를 거쳐 사회적인 존재 의미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을 계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한국문학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하여 민족과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자세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3·1운동을 통해 촉발된 민족적 자기 각성에 힘입어, 문학은 자아의 발견과 개성의 표현에 적극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현실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게 된다. 〈창조〉(1919)·〈폐허〉(1920)·〈백조〉(1922) 등의 문예동인지가 등장하여 문단이 형성되었으며, 〈개벽〉(1920)과 같은 종합지의 발간으로 문학 창작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기도 한다. 특히 〈동아일보〉·〈조선일보〉 등의 민족지가 간행됨으로써, 문예활동의 폭넓은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근대소설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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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기의 문학은 근대적인 자아의 추구로부터 민족적 현실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소설의 경우에는 암울한 현실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기도 하고 비참한 노동자·농민의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동인은 일본 유학 시절 문학동인지 〈창조〉의 발간을 주도했고, 〈약한 자의 슬픔〉·〈배따라기〉·〈감자〉 등을 통하여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성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배따라기〉는 열등의식과 오해가 빚어낸 형제간의 파멸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훼손된 삶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을 통해 삶의 비극적인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감자〉는 주인공이 가난 속에서 도덕적 의지와 윤리 의식을 상실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사건의 경과만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간결한 문체가 특히 주목된다.
현진건은 〈백조〉 동인에 참가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좌절과 고뇌를 그린 〈빈처〉·〈술 권하는 사회〉·〈타락자〉 등과 함께 궁핍한 노동자의 삶의 단면을 그려낸 〈운수 좋은 날〉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도향은 〈백조〉 동인의 한 사람으로 〈벙어리 삼룡〉·〈물레방아〉·〈뽕〉 등을 발표했다. 〈벙어리 삼룡〉은 신분적 육체적 불구성을 자기 희생의 과정을 통해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물레방아〉와 〈뽕〉은 빈궁과 애욕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염상섭은 〈폐허〉의 동인으로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했으며,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함께 3부작을 이루고 있는 〈암야〉·〈제야〉 등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분명하게 한다. 그의 초기 작품 가운데에서 〈만세전〉이 특히 주목된다. 이 작품은 3·1운동 직전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동경 유학생이 조선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하는 동안 목격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실의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사실적 인식이 이 작품에서처럼 구체화된 경우를 이전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에서부터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 상황을 통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근대소설의 면모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자유시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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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시문학은 서구적인 자유시 형태를 수용하면서 한국 근대시의 독자적인 형식을 추구하고 있다. 초기 시들은 감상주의에 빠져들어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현실적 상황에 대한 시적 인식의 확대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적인 운율의 발견을 통해 한국 근대시의 시적 형식을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다.
주요한의 〈불놀이〉(1919)가 보여주고 있는 자유시에의 지향은 시적 자아의 확립과 개성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시형식의 확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시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1925)에서 전통적인 민요의 율격을 재구성하여 서정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으며, 이상화는 시대의 고통과 개인의 고뇌를 극복하고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시적 인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1926)에서 역사에 대한 신념을 여성적 어조로 형상화하여 새로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김소월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발전 과정에서 시적 형식의 완결을 추구해온 개인적인 노력이 독자적인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예로 손꼽을 수 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김소월은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내기보다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 속으로 자연을 끌어들여 그 정조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즐겨 다루어지고 있는 자연은 서정적 자아의 내면 공간으로 바뀌고 있으며, 개별적인 정서의 실체로 기능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진달래꽃〉·〈산유화〉·〈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접동새〉 등이 모두 이같은 예에 속한다. 김소월의 시가 지니고 있는 또다른 미덕은 토착적인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가 실감의 정서를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언어적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용운은 '님'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적 관심은 모두 님이라는 존재에 집중되고 있으며, 시를 통해 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님은 시적 자아와 함께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님은 이미 현실에서 떠나가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용운은 님이 떠나버린 슬픔은 말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님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신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용운의 시는 의지적이며 강렬한 어조가 돋보인다. 한용운의 시의 정신은 역사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가 삶에 대한 정직성을 지키고, 악에 항거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 투쟁했던 행동적 실천가였음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의지를 시적으로 구현하면서 가장 서정적인 어조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일이다.
이상화의 현실 감각은 김소월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보다 더 비장하고 절망적이다. 김소월이나 한용운의 경우에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정 자아가 이상화의 시에서는 파멸하는 존재로 부각되는 경우도 많다. 무자비한 고통의 현실을 이상화는 어둠의 동굴, 죽음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시적 주체로서의 서정적 자아는 어둠의 현실을 등지고 동굴과 밀실 속으로 도피하고 격앙된 어조로 삶의 구원을 희구한다. 이상화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어둠의 현실을 뚫고 현실의 한복판에 나서는 경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역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급문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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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문학은 식민지 현실에 대응하여 민족주의적 이념을 추구하는 경향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지향하는 경향 사이에 갈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3·1운동 직후의 현실지향적인 문학의 경향이 사회주의 사상과 접맥되면서 계급문학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1925년에 결성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계급문학운동은 계급의식의 고양과 정치적 투쟁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조직을 확대하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념적 규정을 강화하게 된다 . KAPF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두고 정치·사회 단체와도 횡적인 연대를 확보함으로써, 문학운동의 집단적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계급문학운동은 신경향파의 시대를 지나 목적의식기로 접어들면서 이념성이 강조되고 있다. 1927년의 방향전환 이후에는 대중성의 획득을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상대로 하는 노동문학과 농민문학의 실천에 주력한다. 그 결과로 소설의 경우, 최서해의 〈탈출기〉(1925), 조명희의 〈낙동강〉(1927), 이기영의 〈고향〉(1934), 한설야의 〈황혼〉(1936) 등이 발표된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계급의식에 기초하여 식민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계급투쟁이라는 무산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내세우고 있다.
이기영은 계급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농민들의 삶을 다룬 〈홍수〉·〈서화〉 등을 발표한다. 장편소설 〈고향〉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 허덕이는 소작 농민들의 고통과 이들을 착취하는 지주 세력의 횡포를 대조적으로 제시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지식인 청년의 등장과 함께 점차 계급적 자각과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에 눈을 뜨는 농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서로 단합하여 지주 세력에 대응하게 된다. 농촌 현실과 농민들의 의식의 성장 과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농민들의 삶과 그 풍속적 재현에도 성공하고 있다.
한설야는 〈과도기〉·〈씨름〉·〈사방공사〉 등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인 형성과정과 그 의식의 추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장편소설 〈황혼〉은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식민지 예속 자본가 계층의 생활과 의식이 그 전반부의 줄거리를 형성한다.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자본가들의 행태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확대과정과 맞물려 있고, 그러한 현실적 상황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조직적 실체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시의 경우, 박세영·박팔양·임화·김창술 등이 식민지 현실의 계급적 모순을 비판하고 계급투쟁 의식을 강조하는 경향시를 많이 발표하고 있다.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네거리의 순이〉 등은 이른바 단편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했는데, 계급적 현실의 모순을 시적 정황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식민지 시대 후반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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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문학은 일본의 군국주의가 강화되고 문학에 대한 사상적 탄압이 자행되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KAPF의 해체(1935)를 고비로 하여, 192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주조를 형성하고 있던 집단적 이념 추구의 경향이 사라지고 개인적 정서에 기초한 순수문학의 다양한 경향이 뚜렷하게 등장하고 있다. 193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시문학〉·〈시인부락〉·〈자오선〉·〈삼사문학〉·〈단층〉 등의 시 동인지가 발간되면서 소그룹의 동인 활동을 중심으로 창작에 참여하는 문인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신동아〉·〈조광〉·〈중앙〉과 같은 월간 종합잡지를 신문사에서 간행하여 문예의 영역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켜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1930년대 말기에 간행된 〈문장〉·〈인문평론〉은 순문학잡지로서 문학활동의 중요한 매체가 되어, 많은 신인들을 배출하고 중요작품들을 널리 수록하고 있다. 구인회와 같은 문학 동인 조직이 형성되어 소설의 영역에서 이태준·박태원·이효석·이상·김유정 등의 활동이 두각을 드러내었고, 시 동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정지용·김영랑·박용철 등 시문학파의 등장으로 시의 모더니즘적 경향이 자리잡게 된다. 서정주·오장환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시 동인지 〈시인부락〉의 경우에도 인간의 삶의 본질과 생명 의식에 대한 시적 추구작업을 전개한 바 있다. 이 무렵에는 일본에 유학하여 본격적으로 문학을 전공한 문인들이 해외문학에 대한 소개도 활발하게 함으로써, 문학의 경향이 더욱 다채롭게 전개된다.
소설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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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 이후의 소설에서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적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문학 내적인 요건에 대한 예술적 추구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계급문단의 강제 해체 이후에 민족과 역사, 계급과 현실에 대한 관심을 배제시킨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문학적인 테마로 다룰 수 없게 되자, 일상적인 개인의 삶과 내면 의식을 추구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소설적 기법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공간 의식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적인 소설이 많이 등장했고 예술의 자율적 속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가능해진다. 특히 다양한 주제의 장편소설들이 등장하여 소설문단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박태원은 일상의 의미를 소설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모더니즘의 소설적 경향을 대표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성탄제〉·〈천변풍경〉 등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인공은 주변의 생활이나 다른 인물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도시 공간을 방황한다. 사회적인 현실과 단절된 상태로 개체화되어버린 인간의 내면 의식을 따라가는 심리소설 기법이 이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상은 〈지주회시〉·〈날개〉·〈동해〉 등의 작품에서 현실과 대립된 자아의 욕망과 그 존재의 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날개〉는 자아의 형상과 그 존재 방식에 대한 회의와 그로부터의 탈출 욕망을 공간화의 기법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도시의 병리를 대표하는 매춘부인 아내와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좁은 방으로 표상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태준은 인물에 대한 내관적인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달밤〉·〈가마귀〉·〈영월영감〉 등의 작품은 허무와 서정의 세계 속에서도 시대정신에의 강렬한 호소를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이다. 〈달밤〉은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있는 인정미를 그려내고 있으며, 〈가마귀〉는 죽어가는 인물을 연민의 시선으로 그려나가는 작가의 감각적 묘사 능력이 잘 나타나 있다.
이효석의 문학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도시와 유령〉·〈노령근해〉 등 계급적 경향의 소설을 발표했던 동반자 작가로서의 활동이 그 전기에 해당한다면, 1933년 〈돈〉을 기점으로 하여 〈산〉·〈메밀꽃 필 무렵〉 등을 발표하게 된 것이 후기에 해당한다. 이효석의 후기 작품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성적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 많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소설의 문맥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자연과의 친화, 본원적인 인간의 삶과 원초적인 사랑은 이효석 문학의 주제로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배경과 인물 및 사건의 긴밀한 조화를 추구하는 서정적 문체는 이효석 문학의 독특한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다.
김동리의 문학 세계는 토속성이 근간을 이룬다. 그의 소설이 지닌 토속성은 〈무녀도〉에 잘 투영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소설 창작의 원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무녀도〉에서는 토속신앙과 외래 기독교 신앙의 충돌로 인해 생기는 정신사적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황토기〉의 경우에도 토속적인 신비의 세계가 등장한다. 이밖에도 김유정의 〈동백꽃〉, 최명익의 〈장삼이사 張三李四〉, 허준의 〈습작실에서〉, 박화성의 〈홍수전야〉, 최정희의 〈흉가〉,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등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지목되고 있다.
1930년대의 장편소설 가운데 채만식의 〈탁류〉는 한 여인의 비극적이 삶이 이야기의 주류를 이루지만, 실상은 전통적인 인습과 새로운 풍속이 서로 맞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시련과 역경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염상섭의 〈삼대〉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의 한 단면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와 그들의 삶의 태도 등이 입체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삽화 중심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와 소도구처럼 개별화된 등장인물들의 배치를 통해, 일상적 공간의 소설적 재현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1930년대 후반의 소설 문단에서는 역사소설의 등장이 주목된다. 홍명희의 〈임꺽정〉, 이광수의 〈마의태자〉,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현진건의 〈무영탑〉, 박종화의 〈금삼의 피〉 등은 역사적 사실에서 소재를 빌어 온 작품이다. 이밖에도 현진건의 〈적도〉는 애정 갈등을 주축으로 물신주의와 향락이 판을 치는 세태의 변모를 묘사하고 있으며,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 계몽 운동의 실천적 방향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광수의 〈흙〉, 김남천의 〈대하〉, 이기영의 〈봄〉, 한설야의 〈탑〉 등도 이 시기 소설적 성과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시와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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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시는 시적 대상에 대한 언어적 감각의 혁신을 통해 모더니즘의 시대를 열고 있다.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1935), 김영랑의 〈영랑시집〉(1935), 김기림의 〈기상도〉(1936), 오장환의 〈성벽〉(1937), 김광균의 〈와사등〉(1939) 등과 같은 시집을 보면, 새로운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하여 특이한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시들이 많다. 정지용은 시에 있어서의 언어의 중요성을 각별하게 인식했던 시인이다. 그는 다양한 감각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감상성에 치우쳤던 시적 정서를 절제하고 자 했다. 그의 시에서 모든 대상은 이미지를 통해 공간적으로 구성되어 나타난다. 김영랑의 경우에도 섬세한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시의 리듬을 민요적인 가락으로부터 개성적인 율격으로 바꿔놓고 있다.
오장환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면서도 도시와 항구의 새로운 근대적 문물을 비판적으로 노래했고, 김광균은 시적 언어의 감각성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회화적인 수법이 특히 주목된다. 김기림은 시정신의 건강성을 강조하면서 시적 정서를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이미지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는 근대적 문물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바탕으로 모더니즘 문학론을 전개한 바 있다.
1930년대 시에서 볼 수 있는 모더니즘적 경향과는 달리 시를 통해 서정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인생과 자연을 관조하며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 의식을 추구한 시인들도 있다. 서정주의 〈화사집〉(1941), 유치환의 〈청마시초〉(1939), 김광섭의 〈동경〉(1937) 등이 이같은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서정주는 토속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관능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토속적인 자연 속에서 한국인들이 영위해온 전통적인 한의 삶을 노래하기도 한다. 유치환은 인간의 죽음과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생명 의지의 시적 구현에 힘쓴다. 그의 시들은 생명에 대한 애착과 사랑, 허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상들이 많이 등장한다.
1930년대 후반의 시에서 주목되는 경향의 하나는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저항과 그 비극성이다. 이육사의 〈육사시집〉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모두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해방이 이루어진 후에 출간되었다 이육사의 시에서 널리 확인할 수 있는 자기인식과 그 정신적 초연성은 그가 보여준 현실에서의 실천적 행동과는 대조적인 일면도 있다. 신념에 가까운 고결한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그의 시는 절제와 균형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현실 체험의 공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육사와는 달리 윤동주의 시에서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의 인식이 시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자기 성찰은 그것이 실천적인 행동의지로 외현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뒤돌아봄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극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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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신파극의 영향을 벗어나 근대극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연극운동도 일어난다. 도쿄[東京] 유학생을 중심으로 토월회(1923)와 같은 극단이 조직되었으며, 조명희의 희곡 〈파사〉(1923), 김우진의 희곡 〈산돼지〉(1926) 등이 발표되어 극문학의 발전도 가능하게 된다. 계급연극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이동소극장을 중심으로하는 연극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신건설사와 같은 전문적인 계급연극 극단이 결성되어 계급연극의 대중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와 함께 송영의 희곡 〈일체 면회 거절하라〉·〈황금산〉 등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1930년대에는 극예술연구회(1931)의 창립과 함께 수준높은 번역극의 공연이 이루어지고 창작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극문학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유치진의 경우에는 〈토막〉 등의 문제작을 내놓으면서 사실주의적 연극의 새로운 성과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1941년 태평양 전쟁을 도발하면서 식민지 한국에 대해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한다. 한국인들의 성씨를 모두 일본식으로 개칭하게 하고, 한국어와 한글을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모든 힘을 전쟁에 투입한다. 이 시기 한국문학은 일본어로 만든 친일적인 〈국민문학〉의 창간(1941), 친일 문학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결성(1943) 등으로 이어지는 강제된 친일문학운동에 빠져들면서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분단 시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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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과 민족의 분단
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나, 사상과 이념의 분열·대립 속에서 열강의 정치적 책략에 휩쓸려 남북한의 분단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해방 직후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좌우세력의 사상적 대립은 문단에서도 여러 분파의 갈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해방 직후의 소설을 보면, 이태준의 〈해방전후〉(1947), 채만식의 〈제향날〉(1946), 김동리의 〈무녀도〉(1947), 정비석의 〈파도〉(1946), 박영준의 〈목화씨 뿌릴 때〉(1946), 박태원의 〈성탄제〉(1948), 염상섭의 〈삼팔선〉(1948), 박노갑의 〈사십년〉(1948), 안회남의 〈전원〉(1946),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1948) 등 작품집들이 중요한 성과로 지목된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두 가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문학이라는 것을 사회적 행위의 제어수단으로 보며, 그 수단을 사회적 이념의 지표에 연결시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삶의 현실 문제를 계급적 의식에 대응시켜 보고자 했던 이태준·박태원·안회남·박노갑 등이 이 부류를 대표하며, 김남천·홍효민 등이 강조했던 리얼리즘의 방법이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경향은 문학과 인생에 대한 폭넓은 조망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그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채만식을 위시한 김동리·계용묵·정비석·최정희·황순원·최인욱 등이 이에 속한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소설적 경향은 물론 당시 문단의 좌우대립양상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시의 경우를 보면, 정치적인 이념을 주장하기 위한 이른바 정치시가 서정양식으로서의 시 형태를 상당 부분 파괴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시적 이념으로 끌어들이면서 자기변신을 시도한 시인들 가운데, 김기림의 〈새노래〉(1948)는 이념의 선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오장환의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은 현실 지향적인 시적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용악도 〈오랑캐꽃〉(1947)에서 이념적 지향이 강조되고 있다.
민족진영의 시인들은 박두진·박목월·조지훈의 공동 시집 〈청록집〉(1946), 김상옥의 〈초적〉(1947), 유치환의 〈생명의 서〉(1947), 서정주의 〈귀촉도〉(1948), 박두진의 〈해〉(1949) 등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업적은 해방 이후 시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록집〉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록집〉의 시들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시적 발견이라는 명제로 그 의미가 규정된 바 있고, 해방 이후 서정시의 맥락을 이어가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목월의 향토성이나 박두진의 이데아 지향, 그리고 조지훈의 고전적 정신 등은 각 시인의 시적 개성으로 더욱 확대 심화되고 있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사변적인 것보다는 서정성이 균형을 찾고 있으며, 감각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정서를 폭넓게 깔고 있다. 유치환은 〈생명의 서〉에서 관념적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에 이르면서 현실의 삶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분단 시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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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과 민족의 분단
한국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나, 사상과 이념의 분열·대립 속에서 열강의 정치적 책략에 휩쓸려 남북한의 분단을 면할 수 없게 된다. 해방 직후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좌우세력의 사상적 대립은 문단에서도 여러 분파의 갈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해방 직후의 소설을 보면, 이태준의 〈해방전후〉(1947), 채만식의 〈제향날〉(1946), 김동리의 〈무녀도〉(1947), 정비석의 〈파도〉(1946), 박영준의 〈목화씨 뿌릴 때〉(1946), 박태원의 〈성탄제〉(1948), 염상섭의 〈삼팔선〉(1948), 박노갑의 〈사십년〉(1948), 안회남의 〈전원〉(1946),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1948) 등 작품집들이 중요한 성과로 지목된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두 가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문학이라는 것을 사회적 행위의 제어수단으로 보며, 그 수단을 사회적 이념의 지표에 연결시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삶의 현실 문제를 계급적 의식에 대응시켜 보고자 했던 이태준·박태원·안회남·박노갑 등이 이 부류를 대표하며, 김남천·홍효민 등이 강조했던 리얼리즘의 방법이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경향은 문학과 인생에 대한 폭넓은 조망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그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채만식을 위시한 김동리·계용묵·정비석·최정희·황순원·최인욱 등이 이에 속한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소설적 경향은 물론 당시 문단의 좌우대립양상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시의 경우를 보면, 정치적인 이념을 주장하기 위한 이른바 정치시가 서정양식으로서의 시 형태를 상당 부분 파괴하고 있다. 정치적 현실의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시적 이념으로 끌어들이면서 자기변신을 시도한 시인들 가운데, 김기림의 〈새노래〉(1948)는 이념의 선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오장환의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은 현실 지향적인 시적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용악도 〈오랑캐꽃〉(1947)에서 이념적 지향이 강조되고 있다.
민족진영의 시인들은 박두진·박목월·조지훈의 공동 시집 〈청록집〉(1946), 김상옥의 〈초적〉(1947), 유치환의 〈생명의 서〉(1947), 서정주의 〈귀촉도〉(1948), 박두진의 〈해〉(1949) 등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시적 업적은 해방 이후 시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청록집〉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청록집〉의 시들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시적 발견이라는 명제로 그 의미가 규정된 바 있고, 해방 이후 서정시의 맥락을 이어가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목월의 향토성이나 박두진의 이데아 지향, 그리고 조지훈의 고전적 정신 등은 각 시인의 시적 개성으로 더욱 확대 심화되고 있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사변적인 것보다는 서정성이 균형을 찾고 있으며, 감각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정서를 폭넓게 깔고 있다. 유치환은 〈생명의 서〉에서 관념적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에 이르면서 현실의 삶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전후 소설의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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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의 6·25전쟁은 한국의 남북분단을 고정시켜 놓은 비극적인 계기가 되고 있으며, 분단 상황 자체의 문제성이 전후의 한국 사회를 조건지워 놓고 있다. 한국 사회가 전쟁의 혼란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터이다. 전쟁을 불러일으켰던 이념과 체제에 대한 거부와 반항이 싹트기도 했고, 새로운 삶의 지표와 가치의 정립을 위한 몸부림도 나타나게 된다. 문학의 영역에서는 〈문학예술〉, 〈현대문학〉, 〈자유문학〉 등 종합문예지의 등장과 함께 〈사상계〉, 〈신태양〉 등의 종합지가 모두 문학활동의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전후 소설의 경향 가운데 우선 주목되는 것은 해방 이전 세대에 속하는 김동리·황순원·안수길 등의 변모 양상이다. 김동리는 전쟁과 현실의 혼란에 대한 비판적 관심을 〈귀환장정〉(1950)·〈흥남철수〉(1955) 등의 전쟁소설로 구체화한다. 그리고 그가 주력해온 인간의 운명에 대한 탐구에 주력하면서 〈등신불〉(1963)·〈까치소리〉(1966) 등을 발표하고 있다.
〈등신불〉은 인간의 원초적인 죄의식과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까치소리〉는 죽음에의 불안과 삶에의 욕구, 적에 대한 분노와 전우에 대한 죄책감 등 전장에서 돌아온 주인공의 복합적인 심리상태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1957)는 인간의 원초적인 죄의식과 자기 구원의 길에 대한 추구라는 주제를 기독교적인 세계 속에서 그려내고 있으며, 토속적인 무속 신앙의 세계를 소설적으로 재현한 장편 〈을화〉(1978)를 발표하기도 한다.
황순원은 해방 이후부터 작가적 시야를 확대하면서 전후문학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 세계의 변화는 단편소설의 장르가 지니는 부분성의 한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이루어진다. 그는 단편 〈곡예사〉·〈학〉·〈독짓는 늙은이〉 등에서 현실의 단면을 섬세하게 그려내었고,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1954)를 발표하면서부터 삶의 총체적인 인식과 그 소설적 형상화에 주력한다. 〈카인의 후예〉는 해방 직후 북한에서 체험했던 살벌한 테러리즘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짓밟아 버리는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의 횡포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장편소설 〈인간접목〉은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함께 전쟁의 참상과 그 상처의 극복과정을 문제삼고 있는 작품으로서 전후의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작가의 폭 넓은 관점과 휴머니즘의 정신이 더욱 돋보인다. 황순원은 이러한 장편소설 이외에도 〈일월〉(1965), 〈움직이는 성〉(1973) 등을 발표함으로써 한국 현대소설의 기법과 정신을 확대·심화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안수길의 경우에는 〈제삼인간형〉(1953)과 〈배신〉(1955) 등에서 전쟁이 소시민의 의식과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는 현실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의 장편소설 〈북간도〉(1959)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민족사의 단계를 북간도에 이주해 살고 있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서술해놓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의 농민들이 지니고 있는 땅에 대한 애착과 그 저류에 흐르고 있는 민족 의식을 대하적인 구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전쟁의 현실을 직접 체험한 전후세대의 작가들은 전후 폐허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게 되자 모든 기성적인 것을 부정하고 기성 세대의 윤리 의식과 사회 가치 개념에 대한 반항 의식을 표현하게 된다. 이 가운데 장용학·김성한·선우휘 등이 보여주는 역사 의식과 현실 비판적인 태도는 전후 소설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장용학의 〈요한시집〉(1955)은 개인의 존재와 그 의미가 전쟁의 상황 속에서 사상, 인민, 계급과 같이 추상적이고 공허한 언어에 의해 훼손되어 버리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장편소설 〈원형의 전설〉(1962)에서는 민족 분단이라는 왜곡된 현실 상황을 사생아적 의식에 연결시켜 그 원죄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김성한의 소설은 소극적이며 순응적인 인간상을 배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구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적 인간형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오분간〉(1955)과 〈바비도〉(1956)의 경우에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적 의지를 그려놓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선우휘는 〈테러리스트〉(1956)·〈불꽃〉(1957)·〈오리와 계급장〉(1958)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현실 상황에 대한 행동적 참여와 결단을 중시하는 행동주의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지식인의 책임과 적극적 현실참여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는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보다 깊은 인간내면의 성찰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극적 자세로 변모한다. 〈십자가 없는 골고다〉(1965), 〈묵시〉(1971) 등에서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인간의 내적 성실성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후소설은 현실의 비리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하는 고발문학의 치열성과 구체성이 전후소설의 또 다른 경향으로 주목된다. 이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현실의 부조리와 비리에 대한 강렬한 비판정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정신적 지향이 외부적 현실에서 자기 내면으로 방향을 바꾸게 될 경우, 상황성에 대응하는 자의식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한다.
손창섭은 〈혈서〉(1955)·〈미해결의 장〉(1955)·〈유실몽 流失夢〉(1956)·〈잉여인간〉(1958) 등에서 어둡고 침통한 현실의 밑바닥에 던져진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소설 속의 인물들이 대부분 비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신체장애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인간 자체의 결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후 현실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범선은 〈학마을 사람들〉(1957)에서 민족의 자기 정체성과 역사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으며, 〈오발탄〉(1959), 〈냉혈동물〉(1959) 등에서는 부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내세운다. 특히 〈오발탄〉은 전쟁으로 인해 불행해진 사람들의 정신적인 황폐와 물질적인 빈궁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좌절감과 패배의식이 만연되어 있던 전후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1)·〈구운몽〉(1962)·〈회색인〉(1963)·〈총독의 소리〉(1967) 등은 전후의 황폐한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을 특이한 소설적 구도를 통해 형상화한다. 특히 〈광장〉은 민족의 분단과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을 그리면서 북쪽의 사회구조가 갖고 있는 폐쇄성과 집단의식의 강제성을 고발하고 동시에 남쪽의 사회적 불균형과 방일한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밖에도 전광용은 〈꺼삐딴 리〉(1962)를 통해 교활한 기회주의자로서 역사의 격동기를 넘어가는 위선적인 인간형을 비판했고, 이호철은 황폐한 상황과 그 속에서의 삶의 허무를 〈닳아지는 살들〉(1962)·〈소시민〉(1964) 등을 통해 그려내면서 점차 민족 분단의 현실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서기원은 〈이 성숙한 밤의 포옹〉(1960)에서 전장을 빠져나온 한 탈주병의 죄의식과 방황 그리고 그 파멸의 과정을 통해 전후 세대의 절망과 방황을 그리고 있다. 오영수는 〈화산댁이〉(1952)와 〈갯마을〉(1953)을 통해 전쟁의 고통에서도 변함이 없는 소박한 인정미를 추구했고, 하근찬은 〈수난이대〉(1957)에서 식민지 시대의 고통과 6·25전쟁의 참극을 겪어 나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아픔을 동시에 포착했고, 〈왕릉과 주둔군〉(1963)에서는 미군의 주둔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전후 소설문단에서 여류작가들의 활동은 소설적 기법과 감각, 문체의 면에서 새로운 소설미학의 확립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후 사회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존재의미를 추구하고, 그 의식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인간형의 탐구에 주력하기도 한다. 손소희·강신재·한말숙·박경리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손소희는 단편소설 〈창포 필 무렵〉(1956), 장편 〈태양의 계곡〉(1959) 등을 통해 여성의 내면 심리를 애정의 갈등을 통해 예리하게 제시하면서 그 갈등을 초월하는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강신재는 기성의 도덕률에 얽매인 여성의 운명을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독특한 가정환경 속에서 오누이 아닌 오누이 관계에 놓인 두 남녀가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린 〈젊은 느티나무〉(1960)와 전쟁의 시련 속에서 고뇌하는 젊은이의 비극적 애정을 그린 장편 〈임진강의 민들레〉(1962)는 전후 소설 가운데 언어적 감수성과 감각을 전환시켜 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박경리의 〈불신시대〉(1957)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감지되는 현실사회의 타락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장편 〈김약국의 딸들〉(1962)을 발표하면서 자기 체험의 영역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을 확보했고, 장편 〈시장과 전장〉(1964)에서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생활인의 시각과 전쟁을 수행하는 이념적인 관점을 동시에 활용하여 한국 전쟁의 내면을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고 있다. 한말숙의 〈신화의 단애〉(1957)는 현재적인 삶에만 집착하고 있는 전후 여성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으며, 기성세대의 속물성과 위선에 대항하는 신세대 인간형을 그린 장편소설 〈하얀 도정〉(1960)을 발표한 바 있다.
전후시의 서정성과 실험적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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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시단의 변화 가운데 전통적인 서정시의 확대 과정이 주목된다. 서정주의 시세계는 시집 〈귀촉도〉(1948) 이후 토착적인 정서에의 지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토착적인 언어의 시적 세련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점, 시 형태의 균형과 질서가 내재된 율조로부터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있는 점 등은 하나의 성과로 주목되는 것들이다. 서정주의 시는 〈신라초〉(1961)에서부터 〈동천〉(1969)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의 시세계의 가장 깊은 심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라'라는 설화적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그의 신라에 대한 관심이 반역사적 지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설화적 공간은 시인의 상상력의 고향과도 같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치환의 전후 시작활동은 〈청마시집〉(1954)과 〈유치환시선〉(1958) 등으로 집약된다. 시적 감각이나 서정성보다는 관념의 과감한 도입을 꾀했던 유치환은 전쟁을 겪고난 뒤 감각적 이면서도 서정적인 속성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청록파의 세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은 전후의 시작활동을 통해 해방 이후 시단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성과들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시적 완결성에 대한 신념을 지킴으로써 청록파다운 풍모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성을 유지하면서, 전후에 이르러 각각의 개성을 발현하는 변모를 조금씩 겪게 된다. 박두진은 〈오도 午禱〉(1953), 〈박두진시선〉(1956) 등의 시집에서 반복적인 율조와 절창의 언어를 통해 자기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하기도 하고, 자연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를 노래하기도 한다. 박두진이 현실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시집 〈거미와 성좌〉(1962)에서 확인된다. 1960년 4·19혁명과 다음해의 5·16군사정변을 체험하면서 그는 초월적인 신념보다 오히려 삶의 의지와 적극적인 비판의식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의 시는 〈수석열전 水石列傳〉(1973) 등에 이르러 내밀한 자기 인식에 근거하면서도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을 두루 섭렵하는 절대적인 경지를 이루어내고 있다. 시를 윤리와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그의 노력이 기법의 세련보다 주제의 심화를 위해 바쳐지고 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박목월은 〈산도화〉(1954)에서 〈난(蘭), 기타〉(1959)에 이르기까지 고유의 정서와 리리시즘을 섬세한 감각으로 재현하면서, 일상의 현실과 삶의 체험을 자신의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일상 생활의 체험영역을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초기시의 감각적 단순성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후기시는 〈경상도 가랑잎〉(1968)에서처럼 삶에 대한 달관의 자세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는데, 삶과 죽음의 관계를 보다 여유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다.
조지훈은 〈풀잎 단장〉(1952) 이후 〈역사 앞에서〉(1959)와 같은 시집에서 절제와 균형과 조화의 시를 통해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사회적 현실에의 관심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박남수는 시집 〈갈매기 소묘〉(1959)에서 전쟁의 피해와 고된 피난민 생활을 '갈매기'라는 새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새의 암장〉(1970)에 이르러서 전쟁의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자의식의 그림자가 없어진 그의 시에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추구, 그리고 물질문명에 대한 역사적 비판의식이다.
전후시의 경향은 1950년대의 새로운 시인들에 의해 형성된다. 전후 시인들의 시적 경향 가운데 전통파 또는 서정파라는 말로 지칭되는 하나의 부류가 있다. 전통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정서와 감각을 중시하면서 전통적인 자연의 세계를 폭넓게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다. 박재삼은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했다. 그의 시 가운데에서 〈울음이 타는 강〉과 같은 작품은 인간의 삶에 내재해 있는 허무의식,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비애의 정서를 율조의 언어로 재현한다. 이동주와 박용래는 향토적인 감각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서정시를 남기고 있다. 근원적인 향토애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자 하는 맑은 심성이 자리잡고 있다. 때묻지 않고 정결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시심이 언어의 소박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남조는 시집 〈정념의 기(旗)〉(1960)에서 보다 높은 삶에 대한 욕망을 기구하는 자세로 노래하고 있다. 〈겨울바다〉(1967)에서는 감각적인 언어와 동적인 이미지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시 정신의 풍요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정한모는 서정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꾸준히 인간애를 추구한다. 시집 〈여백을 위한 서정〉(1959) 이후 보다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과 순수의 본질을 찾아나선 이 시인의 독특한 시적 개성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그것을 예찬하는 것으로 자리잡히고 있다.
조병화는 일상의 체험과 생활 주변을 노래하고 있는 〈패각(貝殼)의 침실〉(1952), 〈서울〉(1957) 등과 같은 시집을 통해 인간의 삶을 긍정하고 현실의 안위를 추구한다. 그의 일상사에 대한 솔직한 진술이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포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950년대 전후시의 가장 뚜렷한 특질은 언어의 가능성과 대상으로서의 현실의 시적 수용에 부심하던 일군의 새로운 시인들에 의해 드러난다. 이들은 착잡한 현실과 혼란된 상황, 끝없는 물질적 요구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의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 현실과 차단된 자기 내면의 서정세계만을 고집하는 전통파의 시적 경향을 거부한다. 흔히 실험파 또는 현실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부류에는 김경린·조향·김규동·이봉래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의 시에서 가장 특이하게 부각되는 요건은 언어적 기법에 대한 관심과 시적 소재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즉물적이며, 이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도시문명의 어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특징은 폐쇄되어 있는 서정의 세계를 현실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특히, 문명 현실의 여러 가지 현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포괄하고자 하는 시정신의 발현을 보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후시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절대적 신앙에 근거하여 관념적인 자기 추구에 집착했던 김현승과 존재의 의미와 언어의 가능성을 시의 세계에서 가늠하고 있던 구상, 김춘수의 업적이 이 시기의 시적 경향의 한 가닥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송욱·김구용·민재식·성찬경·박희진·신동집·문덕수·김광림·김종삼·천상병·홍윤숙 등이 시적 인식을 확대하거나 심화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김현승은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신념을 노래하기도 했으나,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에 서 있는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옹호하고자 한다. 시집 〈견고한 고독〉(1968)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존재공간을 고독이라는 절대 상황으로 끌어올린 작업의 소산이다. 구상은 철저하게 존재론적인 기반 위에서 미의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없는 감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역사의식에 기초하지 않은 생경한 지성이라는 것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 시집 〈초토(焦土)의 시〉(1956)에는 시인 자신이 직접 체험한 6·25전쟁이 서정적 자아와 대상으로서의 현실세계를 동시에 뛰어넘는 보다 높은 시적 인식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시적 대상의 존재론적 의미를 언어를 통해 찾고자 하는 김춘수는 〈꽃의 소묘〉(1959)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현실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시적 인식의 문제인데, 시집 〈타령조(打令調), 기타〉(1969)에 이르면, 존재의 영역에서 관념을 제거한 무의미의 시로 그 시적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박봉우의 〈휴전선〉, 김광림의 〈상심하는 접목(接木)〉(1959), 전봉건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등도 이 시기의 중요한 업적이다
희곡문학의 풍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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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 이후의 희곡문학은 해반 공간의 혼란과 전쟁의 참상을 겪은 뒤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식을 강조하면서 극문학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해방 직후 3·1운동의 한 측면을 극적 무대로 옮겨 놓은 함세덕의 〈기미 3월 1일〉(1946)과 유치진의 〈조국〉(1948)이 주목된 바 있다. 그리고, 오영진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1949)는 해방 후 사리사욕에 매달린 친일 분자의 파멸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려내어 화제가 되었다. 전후의 희곡문학 가운데에는 차범석의 〈불모지〉(1957)와 〈산불〉(1963)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앞의 작품은 전쟁의 상처를 달래지 못하고 절망속에 살아가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으며, 뒤의 작품은 이념의 허구성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대비시켜 놓고 있다. 전후 극문학의 변화는 이근삼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이근삼은 희곡 〈원고지〉(1960)를 발표하면서 전통적인 리얼리즘극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한국의 극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풍자성을 강조한 희극양식을 시도하면서 서사적 기법을 대담하게 수용하고 기법적 혁신을 기함으로써, 전후 극문학의 변화를 주도한다. 그의 풍자적인 기법과 예리한 현실 인식은 상류층의 삶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명예욕과 허영심에 의해 파멸해가는 인간들을 비판하는 〈위대한 실종〉(1963)을 낳았고,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발전하면서 〈제18공화국〉(1965)이라든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62)와 같은 화제작을 내놓고 있다.
이근삼의 뒤를 이어 등장한 새로운 극작가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당대적인 현실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보다 내면화하여 인간의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희재의 〈고래〉(1956), 박조열의 〈모가지가 긴 두 사람의 대화〉(1967), 이재현의 〈해뜨는 섬〉(1966), 천승세의 〈만선〉(1964)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후 의식의 극복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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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후문학은 1960년 4·19혁명을 전후하여 새로운 전환을 보여준다. 4·19혁명과 함께 문학에 대한 인식이 크게 전환되고 있는 것은 정치·사회적 체제의 변화에 따라 현실 인식의 태도가 함께 변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고 그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면서 현실에 대한 관심이 적극화되어 나타난다. 문학의 순수성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고, 생명력과 의지와 감동을 지닌 현실 지향적 문학이 요구된다. 특히 시단의 일부에서는 전후시가 보여준 정서적 폐쇄성을 거부하면서 이른바 현실 참여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이들이 내세운 참여는 문학을 통해 진실한 삶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현실 참여론을 주도한 것은 시인 김수영과 신동엽이다. 김수영은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 이후 자신의 시적 지향에 대한 전환을 시도하면서 실험 의식과 시적 서정성의 특이한 균형을 추구한다. 그가 문학과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참여론은 자유의 개념이 핵심을 이룬다. 그는 한국문화의 다양성과 활력을 깨치는 무서운 폭력을 정치적 자유의 결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4·19혁명을 통해 현실적으로 체득했던 자유의 참된 의미를 되살려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야유와 욕설과 악담은 혁명의 좌절을 초래한 소시민들의 소극성을 겨냥한 풍자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김수영의 시가 지적인 언어와 서정성의 조화를 추구한 것이라면, 신동엽의 경우에는 시를 통해 전통적인 서정성과 역사의식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신동엽은 시집 〈아사녀〉(1963)를 통해 민족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역사의 격변으로 붕괴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는 역사와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중적 이념을 내세웠고, 이러한 그의 시적 신념을 장시 〈금강〉(1969)을 통해 치열한 민족 의식과 역사 의식으로 확대시켜 놓고 있다.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는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모든 문학인들의 관심사가 된다. 문학이 역사와 현실에 대한 신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민족 문학의 전통과 그 계승에 대한 각성도 새롭게 제기된다. 개인적인 정서 영역에서 자족적인 것으로 만족되어 오던 문학의 영역이 역사와 현실의 한 복판으로 다시 내세워진 것이다. 이로써 전후문학의 위축된 상상력을 벗어나고 전쟁의 피해의식으로부터 문학이 자유로워지게 된다.
산업화 과정과 소설의 사회적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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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196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걸친 물질주의의 팽배와 함께 빈부의 격차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에 이른다. 농촌 인구의 대도시 이동과 도시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물질주의적 행태는 여흥과 오락을 추구하는 문화의 상업주의적 전락을 초래한다. 이와 반대로 계층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도덕적 상상력의 회복을 지향하는 움직임도 일어난다.
이같은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갈등 현상은 곧바로 문학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60년대 중반부터 관심사가 되었던 소시민적 삶에 대한 탐구 작업은 참여·순수의 대응논리를 벗어나면서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와 여러가지 방향의 논쟁을 낳게 된다. 이 시기에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 〈세계의 문학〉 등의 계간문학지가 등장했고, 문예종합지 〈문학사상〉과 시 전문지인 〈시문학〉, 〈현대시학〉, 〈심상〉등이 발간되어 문학활동의 기반을 확대시켜 놓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국 소설은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받지 않은 이른바 '한글세대'라고 하는 새로운 젊은 작가층을 만나게 된다. 김승옥의 등장은 한글 세대 작가의 문학활동의 출발에 해당된다. 소설 〈무진기행〉(1964)은 김승옥의 초기 문학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개인적인 의욕을 담고 있다. 귀향의 모티프를 활용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의식의 추이는 일상의 현실과 그로부터의 일탈이라는 내면적인 갈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김승옥의 작가적 감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서울 1964년 겨울〉(1965), 〈60년대식〉(1968)과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서 소시민적인 의식과 일상적인 삶에 얽매인 개인의 존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이처럼 김승옥은 개인의 감성에 의해 포착되는 현실의 문제를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전후소설이 지니지 못했던 독특한 문체의 감각을 산문 속에 살려 놓고 있다. 이청준은 김승옥의 경우와는 대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감성의 작가로서 김승옥을 말한다면, 관념의 작가로서 이청준을 지목할 수 있다. 그는 〈병신과 머저리〉(1966) 등에서 현실과 관념, 허무와 의지 등의 대응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한다. 1970년대의 억압된 정치 상황 속에서 이청준은 〈소문의 벽〉(1971)·〈당신들의 천국〉(1976) 등의 문제작을 내놓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그가 관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이다. 그리고 〈잔인한 도시〉(1978)에서는 닫힌 상황과 그것을 벗어나는 자유의 의미를 보다 정교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시간의 문〉(1982)에서 그는 인간존재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의 의미에 집착을 보인다. 인간존재와 거기에 대응하는 예술의 형식의 완결성에 대한 추구라는 새로운 테마는 예술에 대한 그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최인호는 급속도로 도시화되고 있는 삶의 공간에서 개인의 존재와 그 삶의 양태를 다양한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단편소설의 세계를 들 수 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도시적 공간과 그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그의 소설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의 대상이 된다. 〈술꾼〉(1970)·〈타인의 방〉(1971)·〈돌의 초상〉(1978)·〈깊고 푸른 밤〉(1982) 등은 진지한 문제의식과 함께 산업화시대에 접어들게 되는 한국 소설문단에 소설적 기법과 정신의 새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의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1973)·〈바보들의 행진〉(1973)·〈고래사냥〉(1982)·〈겨울 나그네〉(1983) 등은 도시적 감수성, 섬세한 심리 묘사, 극적인 사건 설정 등의 덕목을 갖춤으로써, 소설 문학의 대중적 독자 기반을 크게 확대시켜 놓고 있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1979)·〈황제를 위하여〉(1980) 등에서 신화와 역사의 한 부분을 자신의 소설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일종의 대체역사 또는 우화적 형식으로 소설을 만들어 당대의 현실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거나, 상징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영웅시대〉(1984), 〈변경 邊境〉(198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과 같이 분단의 상황과 당대적 현실을 포괄하고 있는 작품에서는 민족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분단문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예술에 대한 신념을 소설화한 〈젊은 날의 초상〉(1981),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 〈금시조〉(1983) 등을 통해 예술이라든지 인생이라든지 하는 관념적인 주제들을 유려한 문체로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 것이 근대화에 뒤쳐진 농민들이 삶과 도시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생활이다. 이문구는 농촌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농민들의 삶의 고통을 가장 폭 넓게 다루고 있는 〈암소〉(1970)·〈관촌수필〉(1977)·〈우리 동네〉(1981) 등을 통해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특히 〈관촌수필〉은 연작소설의 형태로 발표된 것인데, 농촌의 급작스런 변모와 그 전통적인 질서의 와해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산업화과정의 농촌의 현실과 가장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도시변두리의 노동자들의 삶이다. 이들의 삶의 문제는 197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황석영은 〈객지〉·〈삼포가는 길〉을 통해 노동의 현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생존조건과 그 타결점을 모색하고 있다. 소설 〈객지〉가 보여주는 문학적 중요성은 그것이 부랑노동자가 지니는 사회적 관계의 핵심을 포착했다는 점에 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문제적 성격을 매개로 하여 노동자의 투쟁과 그 패배과정을 그리고 있다. 〈삼포가는 길〉은 본격적인 도시화, 산업화로 특징지어지는 1970년대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독립된 단편소설들의 결합에서 삽화적인 장편소설에 이르는 전형적인 연작소설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쟁이 가족은 억눌리고 짓밟힌 계층을 표상한다. 이들은 도시로부터 밀려오는 변화의 바람, 도덕적 규범의 불안정성, 사회적인 질시와 소외 등으로 인하여 삶의 기반을 잃게 된다.
1970년대 소설 문학의 가장 큰 성과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반리얼리즘적인 독특한 단문형의 문체 및 서술자와 서술상황을 바꾸어 기술하는 시점의 이동 등이 연작의 형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윤흥길의 경우에도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직선과 곡선〉(1977) 등의 연작에서 왜곡된 산업화가 초래한 사회적 모순을 비판적 시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이 소설들에서 작가는 문제적 개인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자의식의 탈피, 노동현장에의 투신, 새로운 자기 각성 등으로 이어지는 의식의 성장을 추적하면서 한 시대의 정신적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이후의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특징적인 경향의 하나는 민족의 분단과 6·25전쟁의 비극적인 체험을 소설로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원일은 〈어둠의 혼〉(1973), 〈노을〉(1978), 〈환멸을 찾아서〉(1983), 〈겨울 골짜기〉(1987) 등을 통해 한국의 민족분단과 그 역사적 비극을 소설적 무대 위에 구현하고 있다. 〈노을〉은 8·15해방 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의 체험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민족 분단과 전쟁의 밑바닥에는 청산되지 못한 봉건적인 사회구조의 모순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편소설 〈겨울골짜기〉에서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및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그 비극의 원천을 식민지 시대의 사회적 갈등 구조와 결부 시켜 해명하고 있다.
전상국의 소설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대부분 6·25전쟁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소설 가운데에서 〈산울림〉(1978), 〈안개의 눈〉(1978) 등은 피난시절의 삶의 고통을 추적하고 있는 것들이며, 분단 현실이 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성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아베의 가족〉(1979)이 주목된다. 소설 〈아베의 가족〉은 전쟁의 현장과 전후의 현실을 함께 살아온 한 여인의 삶의 과정을 통해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제시하고 있다. 작중의 등장인물 아베는 전쟁의 비극과 아직도 남아있는 아픔의 상징이다. 그리고 아베의 가족은 그 아픔을 견뎌야 하는 피해자들이다. 이같은 논리에 따른다면, 한국인 모두가 아베의 가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정래의 〈불놀이〉(1983)는 〈유형의 땅〉(1981)과 더불어 분단의 현실을 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의 상황을 무대로 삼고 있는 그의 소설에는 한국사회에 전통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계급적 갈등구조가 어떻게 풀려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가가 파악하고 있는 6·25전쟁과 분단은 민족의 삶을 왜곡시켜 온 사회구조의 모순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다시 왜곡되면서 해체되는 과정에 해당된다. 그의 장편 〈태백산맥〉(1986)이 이러한 인식의 포괄성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8·15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에 이르는 격동기를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 소설사에서 분단의식의 극복을 위한 소중한 하나의 노력으로 기록된다.
산업화시대의 소설문단에서 가장 특이한 성과로 평가되는 것은 대하장편소설의 등장이다. 역사적 상황에서 출발하여 현실적 삶의 문제까지 그 관심을 확대시키고 있는 박경리의 〈토지〉, 이병주의 〈지리산〉,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등이 1970년대의 오랜 발표과정을 거쳐 완결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문열의 〈변경〉 등이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설문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소설들은 모두 그 분량에 있어서 한국 현대소설이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방대성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소설적 주제의 문제성을 생각한다면, 한국 소설문단이 이같은 작품들을 감당해낼 수 있을 정도로 그 관점과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 식민지시대를 거치기까지 한 세기에 이르는 역사의 변화 속에서 한 양반 가문의 몰락과 그 전이과정을 그려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서사적 골격을 형성하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4대에 걸친 인물들이 종적으로 배치되고 있으며, 그 주변에 이 인물들과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각각 그들 시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토지〉는 가족이라는 혈연단위와 그 확대를 역사적인 시대의 교체와 맞물리도록 고안함으로써, 조선 말기 이후 한국사회의 근대화라는 격변기를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의 창조에 성공하고 있다.
황석영의 〈장길산〉에서는 민중적인 의지와 그 생명력의 존재가 장길산이라는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문제인물인 장길산의 생애를 주축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장길산이라는 한 개인을 영웅적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장길산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배층의 탐학으로 인하여 삶의 기반을 잃고 있는 조선 시대 서민층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기원 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발표된 대하장편소설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이 소설은 해방과 민족분단과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격동기를 무대로 하고 있으며, 여순 반란 사건과 지리산의 빨치산 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공산당 유격활동의 실상을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사실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 소설은 역사적 공간의 내면적 확대를 통해 분단상황의 전개과정을 오히려 집중시키는 극적효과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매개로 하여 우리 현대사의 전체적인 의미를 구현한다. 소설 〈태백산맥〉은 1980년대 초반의 억압적인 현실 속에서 이념의 금기지대를 넘어서면서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선택에 대한 새로운 객관적 인식을 요구하면서, 분단과 6·25전쟁의 비극이 상당부분 민족내부의 모순에 기인하고 있음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의 소설문단에서 여류작가들의 작품활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박완서·오정희·서영은·김채원·강석경·양귀자·신경숙 등의 소설은 흔히 지적되는 여류적 감성을 벗어난 문제작들이 많다. 이들은 현실의 변화 속에서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윤리의식과 가치관의 회복을 주제로 내세우기도 하고, 분단현실의 문제성에 도전하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노동의 현장을 찾아가 부당하게 홀대당하고 있는 근로여성들의 처지를 문제삼기도 한다. 물론 치밀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적하고 있는 작품도 많이 있다.
박완서는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력한다. 그의 〈도시의 흉년〉(1979)·〈휘청거리는 오후〉(1978) 등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적인 생활을 치밀하게 그려내면서도, 사회적 가치와 규범의 변모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국사회를 지탱해 온 가치와 윤리관이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물질주의와 출세주의가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는 현실은 박완서의 소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엄마의 말뚝〉(1982)·〈미망 未忘〉(1990) 같은 작품을 보면, 식민지시대의 역사와 분단의 비극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왜곡된 사회변동으로 인하여 고유한 삶의 관습이 무너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진정성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되묻게 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도덕적 리얼리즘의 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오정희의 소설 세계는 일상의 현실과 고립되어 있는 인물들의 파괴적인 충동을 그려놓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한 충동은 육체적 불구와 왜곡된 관능, 불모의 성 등의 모티브로 표현된다. 소설 〈저녁의 게임〉(1976)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심리묘사의 기법이다. 주인공의 의식을 통해 아버지와의 갈등, 정신병을 앓다가 죽은 어머니와 가출한 오빠에 대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러한 단편적인 이야기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이들 모녀의 저녁풍경을 둘러싸고 있는 퇴영적이고 더러는 절망적인 분위기이다.1980년대에 들어서서 소설집 〈유년의 뜰〉(1981)·〈바람의 넋〉(1986) 등으로 묶여진 작품들은 그 경향이 변화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충동의 격렬성은 완화되고 무의미한 일상의 삶에 대한 허무의식이 자리한다. 물론 〈유년의 뜰〉이나 〈중국인 거리〉 같은 작품에서는 전후의 황량했던 어린 시절의 체험들을 단편적으로 그려내기도 하지만, 그 정서적 기반은 마찬가지다. 〈별사〉와 같은 작품에서는 소설의 주인공이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 의해 규정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짙은 허무의식으로 채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영은의 작품 속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짙은 허무의식과 순결한 영혼의 고립감이다. 〈사막을 건너는 법〉(1975)에서는 월남전의 상처를 딛고 일상으로 되돌아 오고자 하는 인물의 내면이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노인과의 교감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속물적인 삶과 무기력에 대응하면서 고통을 내면화하고 있는 순수하고도 애처러운 인간의 모습은 〈관사 사람들〉(198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설 〈먼 그대〉(1983)에는 삶에 대한 짙은 허무의식이 보다 긍정적이고 순정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 깔려 있는 허무의식은 세계에 대한 부정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이고 절대적인 긍정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들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김채원의 경우에는 〈초록빛 모자〉(1979)·〈애천 愛泉〉(1984)·〈겨울의 환〉(1989)과 같은 작품에서 자의식의 세계를 보다 내밀한 언어로 추적하고 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등도 자기 내면의 호흡과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여성적 글쓰기의 방법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소설적 성과에 해당한다.
시와 언어와 민중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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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문화의 폐쇄성과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에 의해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훼손되어 가는 인간의 삶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가 시의 영역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시의 서정적 속성을 최대한 살려내면서 삶의 현실을 포괄하고자 하는 이 움직임은 1960년대 시의 현실 참여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정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 언어에 의해 그려지기도 하며,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고양된 정서가 드러나기도 한다. 도시적인 것, 문명적인 것들이 지니는 비인간적인 요소는 대부분 이들의 시에서 기지의 언어로 매도된다. 전도되어 있는 가치관, 폭력의 정치, 집단의식의 횡포 등은 이들의 시가 추구하고 있는 가장 자유로운 언어,가장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결코 목청을 돋구어 소리치지 않으며, 언어의 베일을 통한 감정의 은폐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황동규에게 있어서 1970년대 이후의 산업화시대는 상상력의 확대와 시정신의 고양을 동시에 이루어낸 시기이다. 그의 시집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1975)을 보면, 그가 즐겨 활용하고 있는 언어의 패러독스가 극적으로 현실과 대면하게 되는 것은 정치적인 폭력과 그 무자비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접근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정치적 폭력이 어떻게 한 인간의 순수한 꿈과 사랑을 파괴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꿈과 사랑이 성립될 수 없는 냉혹한 현실과 어둠의 세계를 시적 정황으로 제시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황동규는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견딜 수 없는 가벼운 존재들〉(1988) 등에서 현실의 문제보다는 본질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내놓은 절창의 노래가 연작시 〈풍장 風葬〉이다. 〈풍장〉은 무위의 자연과 그 자연의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의 소산이다. 이승훈의 〈당신의 초상〉(1981)·〈사물들〉(1983)과 정현종의 시집 〈사물의 꿈〉(1972)·〈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1989), 오규원의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등은 시적 언어와 기법의 실험을 통하여 새로운 시의 세계를 천착해오고 있는 시인들의 업적이다. 이 시인들은 시적 대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방법에 있어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절제된 정서, 언어의 기지, 난해한 기법 등은 서로 비슷하다. 개인의 내면의식에 집착하는 고립주의적인 성향과 그 기법의 난해성이 더러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적 감수성의 변혁을 추구하고 있는 이들의 노력은 인식으로서의 시의 특성을 구현하는 실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1960년대 후반에 시단에 등장한 시인들 가운데 오세영의 〈무명연시 無明戀詩〉(1986), 이건청의 〈망초꽃 하나〉(1983), 김종해의 〈항해일지〉(1984), 정진규의 〈연필로 쓰기〉(1984), 박제천의 〈장자(壯子)시편〉(1988) 등은 사물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언어적 실험보다는 시적 서정성의 확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다양한 개성의 시집들이다. 이 시인들은 전통적인 시적 정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도시적 감각도 살려내고, 체험에 바탕을 둔 삶의 진실을 시의 세계에 포괄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시가 펼쳐보이는 개인적인 서정의 세계는 세속의 생활감정에서 선(禪)의 경지에 이르는 고아한 정신의 상태까지 폭이 넓다.
1970년대의 정치·사회적 폐쇄성과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 대응했던 문학적 경향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이 민중시 운동이다. 민중시 운동에서는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면서 부정의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표출하기도 했고, 소외된 민중의 삶의 모습을 시를 통해 그려내기도 한다. 민중시는 시인의 현실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과격한 언어로 묶여져서, 때로는 지나치게 이념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있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 五賊〉(1970)은 전통적인 운문 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사설 등을 변용함으로써 새로운 장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해학을 동반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비장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의 풍자는 운문양식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지하의 문학이 사회·윤리적 가치기준에서가 아니라 문학성의 의미에서 다시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그가 오랜 동안의 투옥생활을 겪으면서 적은 시들을 중심으로 묶어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의 출간과 때를 같이 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보다 깊이 내면화되면서 정서의 응축을 통한 시적 긴장을 잘 살려내고 있다. 서정시가 빚어내는 비극적인 감동이 시적 의지를 더욱 강렬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정서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체험과 그 시적 형상화과정을 통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신경림은 시집 〈농무 農舞〉(1973)에서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거칠지만, 진실미가 바로 소박함에서 솟아나기도 하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농촌이 그가 즐겨 다루는 시적 대상이다. 신경림이 그의 시적 작업에서 가장 힘들인 것은 현대시와 민요정신의 결합이다. 그는 민요 속에 살아 있는 집단적인 민중의 삶과 그 의지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되고 있는 실감의 정서를 더욱 귀하게 여기고 있다. 장시 〈남한강〉(1987)은 민요 속에 담긴 민중적 정서가 현대시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시적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시인 고은이 1970년대의 암울한 정치현실에 정면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1974)부터이다. 절망의 시대를 겪고 난 고은의 시세계는 보다 폭 넓고 깊은 역사의식을 포괄할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을 지니게 된다. 그의 연작시 〈만인보 萬人譜〉와 장시 〈백두산〉이 바로 그러한 실천적 성과에 해당된다. 연작시 〈만인보〉는 그 규모의 방대성과 시적 정신의 포괄성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민족의 삶의 모습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다채롭게 엮어가고 있는 이 시에서 연작성의 효과는 그 반복과 중첩의 묘미에서 찾아진다. 〈백두산〉이 민족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신념을 서사적으로 엮었다고 한다면, 〈만인보〉는 민족의 삶과 그 진실을 서정의 언어로 통합시켜 놓고 있다고 할 것이다.
민중시 운동은 이시영의 〈만월〉(1976)·〈바람 속으로〉(1986),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김명수의 〈하급반 교과서〉(1983)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민중의 삶의 현실을 자신들의 시적 정서의 기반으로 삼고 민중 의식의 시적 형상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민중지향적 태도는 냉철한 현실비판을 수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비판적 감수성 자체가 민중시의 정서적 기반처럼 고정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종오의 〈사월에서 오월로〉(1984), 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198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 곽재구의 〈사평역에서〉(1983), 김용택의 〈섬진강〉(1985) 등도 이 시기의 민중시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시집들이다.
이 시기의 새로운 시인들 가운데에는 현실에 접근하면서도 배타적인 논리를 내세우지 않고, 도시화된 현실 속에서 인간의 삶의 피폐성을 지적인 언어로 묘사하는 특이한 균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들어낸 시인들도 있다. 김명인의 〈동두천〉(1979), 김광규의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이하석의 〈투명한 속〉(1980), 이성복의 〈남해금산〉(1987),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최승호의 〈대설주의보〉(1983)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한국의 현대시에서 여류시의 위상이 시단의 중요한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60년대를 넘어서면서 활발한 시작활동을 전개한 시인들의 시적 성과와 직결된다. 김후란의 〈음계〉(1971), 김여정의 〈바다에 내린 햇살〉(1973), 허영자의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 유안진의 〈절망시편〉(1972), 김초혜의 〈사랑굿〉(1985), 강은교의 〈허무집〉(1971)· 〈빈자일기〉(1977), 문정희의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업적에 해당된다.
극문학과 민속극의 현대적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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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의 극문학은 중대한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다. 우선 극문학의 전문적인 매체로서 〈연극평론〉·〈현대연극〉·〈드라마〉·〈한국연극〉 등이 모두 1970년대에 창간됨으로써, 창작활동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소극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전문적인 극단들이 창설되어 극예술 전반의 활성화가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극문학의 창작에서도 서구적인 극양식과 전통적인 민속극의 구성원리를 새로이 결합시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널리 전개된 점이 가장 주목되는 특징이다. 전통적인 탈춤과 판소리의 기법이 연구되고 그 미학적인 요건들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현대극으로의 재현이 시도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로 한국 현대 극문학이 전통적인 것에 그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오태석은 〈환절기〉(1968)에서부터 인간내면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일상적인 현대인들의 삶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자기소외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 작품과 유사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1969)에서도 오태석은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파멸해가는 여인의 모습과 그 내면적 고통을 극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오태석이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는 심리적 기법에 역사의식과 전통에 대한 감각을 덧붙이고 있는 작품은 〈초분〉(1973), 〈태〉(1974), 〈춘풍의 처〉(1976) 등이다.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통해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과 그 본능을 확인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전통적인 마당극의 연극적 정신을 현대적인 연극 기법을 통해 추구하기 시작한 새로운 연극운동과 조응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의 극문학 분야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한 극작가로서 이재현과 윤대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삶의 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그려내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이재현은 〈성웅 이순신〉(1973)·〈썰물〉(1974) 등과 〈화가 이중섭〉(1979) 등에서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이상을 향한 의지를 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윤대성은 〈망나니〉(1969)·〈노비 문서〉(1973) 등에서 민속극 형식의 현대적 수용에 관심을 기울인다. 〈너도 먹고 물러나라〉(1973)와 같은 작품은 무대의 개방을 통하여 극중의 현실과 무대 밖의 청중 사이의 거리를 제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마당놀이의 극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기법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극작가들에 의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1970년대 이후의 극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상당히 많다. 차범석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1974), 하유상의 〈꽃상여〉(1970)·〈에밀레종〉(1978), 김용락의 〈동리자전〉(1971), 노경식의 〈소작의 땅〉(1976), 허규의 〈물도리동〉 등은 모두 극적인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는 문제작들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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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은 중국 한문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민족문학으로서의 주체적인 형성과정을 거치고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봉건적인 사회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개혁운동이 각 방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침략적인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주독립운동이 지식층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된 바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동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대변하고 시대의식을 형상화할 수 있는 문학적 형식이 요구되자, 국어국문운동을 통한 문학의 대중적 수용 기반의 확대와 함께 민족 정서와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새로운 문학적 형식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같은 새로운 문학 운동은 일제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는 한국 민족의 모든 권한과 소유를 박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민족의 존재와 그 정신마저 말살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확대·강화된다. 한국문학은 이같은 강압적인 문화통제로 인하여 문화적 자기 정체성을 훼손당하게 되었으며, 오랜 동안의 시련을 겪게 된다. 1945년 8·15해방은 문학의 방향과 그 지표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모든 반민족적인 문화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국가의 수립과 함께 참다운 민족문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단의 비극을 체험하고 전쟁의 혼란을 겪는 동안, 민족 전체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반성해보면, 한국문학은 정치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방향이 크게 바뀌어졌음을 알 수 있다. 한국문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문학이 현실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서 문학적 자기 인식과 미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물론, 민족 의식의 문학적 형상성을 문제삼음으로써 민족 전체의 가치있는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문학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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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해설
- 詩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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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호 병(문학평론가·천안대 교수)
간결하게 다듬어진 한 편의 시를 읽게 될 때에 읽는 이는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이 때의 감동은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느낌이 표피적이고 단순하고 일회적이고 一意的인 것이라면 감동은 내면적이고 복합적이고 반복적이고 多義的인 것에 해당한다. 서정시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시에서는 후자가 의미하는 감동적인 측면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간에 나타내게 마련이지만 그 감동의 강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차이점을 지니게 된다. 한 편의 서정시가 읽는 이에게 부여하는 감동의 강도의 차이점---그것은 아이디어와 진술, 의도와 의미, 어조와 운율, 비유와 상징에 의해서 1차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2차적으로는 이러한 요소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게 되는 시적 총체성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시적 총체성,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서정시의 최종목표에 해당하는 '잘 만들어진 항아리' (薰陶라고도 일컫는 이 용어는 존 돈 시 [諡聖]에서 비롯되었으며 클리언스 브룩스는 그것을 자신의 저서 {잘 만들어진 항아리}의 제목으로 활용하였다)는 시적 상상력과 진실한 언어 및 그러한 것들을 지탱하고 있는 견고한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 일곱 편은 앞에서 언급한 시적 총체성으로서의 시적 상상력과 진실한 언어 그리고 견고한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잘 만들어진 항아리' 일곱 개에 해당한다. 이 일곱 개의 항아리에 담겨진 내용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면 (1) 목숨의 외경과 신비: 동적 구조의 역동성, (2) 풍경의 관조와 성찰: 동적 구조와 정적 구조, (3) 유년의 기억과 현실의 개탄: 현실의 지양과 근원정서의 지향, (4) 하나의 正典: 서정시의 본질과 구조로 나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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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숨의 외경과 신비 : 동적 구조의 역동성[유혹]과 [목숨]
목숨은 아름답고 소중하고 신성한 존재이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힘이자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에서 살아 있다는 힘의 원천이자 삶의 원동력, 곧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요인으로서의 목숨은 [유혹]과 [목숨]에서 가장 명쾌하게 확인될 수 있다. 전자에서는 그것이 지상의 "풀밭"에서 출발하여 천상의 "하늘"과의 교감으로 진행되고, 후자에서는 그것이 미물에 해당하는 "눈 안 뜬 새끼 강아지"에서 출발하여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 진행된다. 하찮은 존재인 동식물이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든 그것의 목숨은 결국 하늘로 대표되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암시는 [유혹]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실비에 의해서 그 생명력을 되찾게 되는 풀밭과 그 위를 맨 발로 밟고 다니는 시적 자아가 감지하는 "작은/ 심장"에 의해서 심화된다. 이 시의 제목이 나타내는 '유혹'은 남녀관계라기보다는 생명수로서의 "실비"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는 "풀밭"의 교감이라고 볼 수 있다. 남녀관계를 암시하는 "아랫도리," "젖가슴," "처녀" 및 "몸"과 같은 육감적인 시어와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자릿자릿하다," "쓰다듬을 때," "잠에서 덜 깬," "어두워진다" 및 "떤다"같은 서술부가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바로 풀밭으로 대표되는 목숨의 경이와 신비이다. 이러한 풀밭과 그 위로 펼쳐진 하늘(실비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얇은 구름 낀 하늘)은 수평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실비"와 시적 자아는 수직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수평/수직의 동적 구조의 역동성은 '하늘→실비/머리채→시적 자아→풀밭→심장→몸'으로 진행되면서 생동감 있는 활력을 얻게 된다.
목숨의 경이와 신비에 대한 동적 구조의 역동성이 [유혹]에서는 "실비 내리는 풀밭을 맨발로 밟으면"처럼 장소의 현장성과 즉시성을 강조하고 또 "풋내 나는 풀밭과 하늘이 수줍게/서로의 젖가슴께를 쓰다듬을 때/…어두워진다"처럼 하루의 시간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목숨]에서는 그것이 다음의 설명과 같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진행된다. ① 소재의 확대성은 시적 자아가 아주 평범한 사실인 "새끼 강아지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것을 세상만사의 실상으로, ② 시간의 장기성은 "지난겨울"이라는 제한된 시간대를 '3월-8월'이라는 반년대로, ③ 공간의 광역성은 "마루 밑"이라는 작은 공간을 제2연에 암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전지역'으로, ④ 서술부의 박진성은 "기어 나오는"처럼 소극적인 행위를 "아우성치며"처럼 적극적인 행위로 확대시키고 있다. 이처럼 작은 것에서 더욱 큰 것으로 확대되어 진행되는 이 시에서 동적 구조는 궁극적으로 제4연에서 시적 자아의 것으로 응축 수렴된다. 목숨의 경이와 신비에 대한 시적 자아의 경악과 깨달음의 구조를 도표화하여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목숨 ▶ 경이와 신비의 과정 ▶확인
과정1 과정2 과정3 결과
↑ ↑ ↑ ↑
인식 출발 확대1 확대2 수렴
의미 소 → 대 소 → 대 소 → 대 대 → 소
▶ ▶ ▶
시어2 세상만사 나무 (역사성) 하느님
시어1 강아지 꽃 깃발 나
↑ ↑ ↑ ↑
제1연 제2연 제3연 제4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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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의 의미구조
이상과 같은 동적 구조화의 과정을 거쳐 조창환 시인의 시 [목숨]에서 궁극적으로 추구 모색함으로써 최후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제1, 제2, 제3연에 나타나는 무수한 목숨과 그것들 하나 하나에 대한 경이와 신비는 바로 시적 자아/시인/독자로서의 우리들의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스스로의 목숨에 대한 경이와 신비로 전환되어 응축 수렴된다.
한 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주어부를 형성하는 명사나 대명사이지만 그러한 주어부의 행태를 유효 적절하게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은 서술부이다. 앞에서 설명한 시 [목숨]에서는 이러한 서술부 하나 하나가 다 같이 대등한 입장을 띠고 있다. 그것은 "아찔하다, 가슴 저리다, 숨막히다, 진저리치다, 소스라치다, 어지럽다, 징그럽다"와 같은 시어들이 각각의 행과 연에서 변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종합하고 있는 것이 제3연의 "무너지며 진저리치며 소스라치며 아우성치며" (쉼표 없이 쓰여진 이 구절 또한 행위의 동시성을 나타낸다)이고 그것을 다시 시적 자아의 내면세계로 肉化시키고 있는 부분이 제4연의 첫 부분인 "나이 들어 부쩍 숨막히는 날과 가슴 저린 날과 소스라치게 아찔한 날"이다.
이처럼 자신의 의식세계를 강력하게 강타하는 서술부에 의해서 시적 자아는 다시 새로운 사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목숨이 있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솜털"→"햇살"→"종달새"→"깃발"로 심화 확대되는 하느님의 영역에 속한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제1연의 강아지의 솜털, 제2연의 꽃과 나무를 살아 있게 하는 햇빛, 제3연의 사회 역사적 사실을 가능하게 하는 깃발은 모두 하느님이 관장하는 목숨의 영역이며 시적 자아의 목숨 또한 그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그러한 진리의 터득은 "말간 더듬이, 연두 빛 새순, 애벌레, 여리고 아린"처럼 작고 '애틋한' 것의 소극적인 행위에서 출발하여 "이들거리는, 나뒹구는, 솟구치는"처럼 보다 적극적인 행위를 거쳐 마지막 부분의 "용솟음치기"에 의해서 적극적인 행위의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제4연의 서술부가 의문형으로 끝맺는 것은 시적 자아가 주변의 생명체가 가지는 목숨에 대해서 자신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목숨의 소중함을 새롭게 알게 됨으로써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목숨'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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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풍경의 관조와 성찰 : 동적 구조와 정적 구조[태풍 올 때]와 [달밤]
서정시는 다분히 주변상황이 시인의 의식에 의해서 시적 상황으로 전환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의 시적 상황은 그 밖의 시의 시적 상황과는 다르다. 어떠한 상황이 묘사에 의해서 형상화 될 때, 서정시에서의 시적 상황은 주관성보다는 객관성을, 간섭보다는 관망을을 전제로 한다.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에서 이처럼 객관성과 관망에 바탕을 두어 주변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시로는 [태풍 올 때]와 [달밤]을 들 수 있다. 이들 두 편의 시는 풍경과 적막한 時空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자는 태풍전야의 초가을 들녘과 시적 대상간의 상호의지 및 동적 구조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후자는 숲 속의 달밤과 시적 대상들의 상호무관심 및 정적 구조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태풍 올 때]에는 '태풍'이라는 무엇인가 불길한 자연적인 재해의 조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물고기 떼와 새떼의 움직임과 바람에 흔들리는 수수와 풀의 움직임이 교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은피라미떼"로 대표되는 12행과 "새떼"로 대표되는 6행은 전자에 관계되고 "수수"로 대표되는 4행과 "쑥부쟁와 엉겅퀴"로 대표되는 8-9행은 후자에 관계된다. 그리고 전자에서는 "동그라미"가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그 이후의 시행의 주체들이 '컴컴해지고, 휘청거리고, 가라앉고, 숨고, 비틀거리게'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특히 "조약돌 자국 같은 동그라미"는 동그라미가 동심원을 그리면서 물위로 번져 가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아주 작은 자국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성을 '조약돌 자국'이라고 비유함으로써 그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성은 우선적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수수 모가지"에 의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무겁게 휘청거린다"라는 서술부에 의해서 이 시의 계절이 적어도 초가을이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수수 알을 쪼아먹던 새떼들은 우선적으로는 흔들리는 수수 모가지에 놀라서 그 다음은 점차 강해지는 바람에 놀라 내려앉고 밭둑과 논두렁의 대표적인 풀에 해당하는 쑥부쟁이와 엉겅퀴도 "뒤엉켜 비틀거린다." 처음 두 행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파급효과는 은피라미떼→수수→새떼→물벌레→쑥부쟁이/엉겅퀴로 진행되면서 자연재해의 불길한 조짐을 강조하게 된다.
제1연에서 제3행과 제7행은 그러한 불길한 예감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은 한다. '갑자기 캄캄해지는 서쪽하늘,' 시커먼 '구름' 및 '번쩍이는 마른번개'는 태풍의 도래를 알리기에 충분하며 이 세 구절은 궁극적으로 제2연 첫 구절 "비를 품은 바람"에 관계된다. 제1연의 각 행의 주체와 술어가 변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제2연 주체와 서술어는 일괄적이자 동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괄성과 동시성은 흔들리는 상수리나무는 물론이고 "물이 떨린다"와 시적 자아의 "아랫도리도 떨린다"를 거쳐 심지어 "벌레소리들도/ 떨리"게 된다. 말하자면 제1연의 시적 대상들이 좀더 작은 것들에 관계된다면 제2연의 그것들은 좀더 큰 것들에 관계된다. 제1연의 微視性은 은피라미떼, 수수 모가지, 새떼, 물벌레 및 쑥부쟁이/엉겅퀴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제2연의 巨視性은 상수리 숲, 물 그 자체, 사람으로서의 시적 자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거시성은 아주 작게 들리는 벌레소리도 떨리게 함으로써 태풍이 이제 목전에 다가와 있다는 시간의 긴박성까지도 암시하게 된다.
[태풍 올 때]가 이처럼 미시성과 거시성, 변별성과 총체성, 암시성과 긴박성에 근거하고 있는 데 반해서 [달밤]은 사뭇 다른 이미지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 시에서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정적이지만 그 정적은 [태풍 올 때]에서 강조되는 태풍전야의 정적과는 다르다. 후자의 정적은 역동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정적에 관계되고 전자의 정적은 정적 그 자체에 관계된다. 따라서 [달밤]에서의 정적은 상관적이 아니라 개별적이다. 누워 있는 길, 굴러가는 바람, 흔들리는 종소리, 날아가는 민들레 씨로 형성된 제1연의 이러한 개별성은 제2연의 마지막 행 "시치미를 떼고 제 갈 길로 간다"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모두를 하나의 목격자로서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주체는 제1연의 첫 행에 나타나는 '달'이다. 그 달이 어둠을 지워버릴 때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의 행위가 하나하나 명쾌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2연의 첫 두 행에 해당하는 "길 저쪽에서/방금 입맞춤한 두 사람이 걸어온다"이다. 애정의 표시이기는 하지만 은밀한 행위인 '입맞춤'을 '달빛'에 들켜버린 두 사람의 무안함을 모른 체 하듯이 '바람도, 나뭇잎도, 민들레 씨도' 그것들이 각각 가야할 길을 찾아 '굴러가고, 흔들리고, 날아갈' 뿐이다. 아무런 간섭도 없고 변화도 없다.
간섭도 없고 변화도 없는 까닭은 이 시의 전체적인 배경이 고요한 달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적 대상들 역시 달밤에 알맞은 것들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달빛에 드러나는 길→길 위로 굴러가는 바람→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멀리 날아가는 민들레 씨'는 다분히 정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달빛에서 길로, 길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나뭇잎으로, 나뭇잎에서 민들레 씨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것들 하나 하나의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들, 가령 바람에 관계되는 자전거 바퀴살, 나뭇잎의 흔들림에 관계되는 종소리, 민들레 씨에 관계되는 아이들은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에 관계되지만 그러한 이미지들은「태풍 올 때」에 나타나 있는 불안/긴박/절박에 관계되기보다는 안정/여유/이완에 관계된다. 이러한 안정/여유/이완의 세계는 정적구조를 탄탄하게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태풍 올 때]와 [달밤]은 이처럼 상반된 이미지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후자의 "아이들"에 암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다같이 유년의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은 전자의 시어에서 '물고기, 조약돌, 수수, 새, 쑥부쟁이/엉겅퀴'를 거쳐 "상수리 숲"에 집약된다. 상수리 숲은 의지와 신념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꿈을 나타내기도 한다. 후자의 시어에서는 '달밤, 자전거, 종소리, 민들레 씨, 파도타기'를 거쳐 "아이들"에 집약된다. 상수리 숲과 아이들에 의해서 표방되는 유년의 기억은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에서 유년기의 기억과 현실의 개탄과 질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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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년의 기억과 현실의 개탄 :
현실의 지양과 근원정서의 지향[고향 여름]과 [산성비]
유년의 기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것이 비록 가난과 남루, 굶주림과 허기, 조롱과 굴욕으로 점철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한 기억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당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가난과 남루, 굶주림과 허기, 조롱과 굴욕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은 약손과 같은 것이어서 이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치장해 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활력소이자 견인차로서의 역할을 한다.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에서 [고향 여름]과 [산성비]는 바로 이 영역의 범주에 들어온다. 전자는 다분히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후자는 '매미소리'를 매개체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편의 시에는 상황---하나는 유년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개탄이다---을 제시한 후 하나의 경구로서 끝맺는 공통점, 다시 말하면 전자의 끝 행 "요즘 아이들 알 턱이 있나"와 후자의 끝 행 "저러니 산성비가 안 내릴 수 있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구가 의미하는 바는 서로 다르다.
[고향 여름]의 핵심은 "징그러운 그리움"에 있다. 여기서 '징그럽다'는 말은 절실하면서도 피부에 와 닿는 직접체험에 그 근거를 둔다. 고향은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향기롭고 달콤하고 편안한 곳이다. 하물며 그 고향이 이 시에서처럼 시골일 때, 그곳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향은 그저 고향일 뿐이다. '고구마, 보리 깜부기, 감꽃, 황토길, 소달구지, 방죽'같은 시어가 이 시의 제1연 각 행에서 맨 처음에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시어들이 시적 자아에게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을 그만큼 강렬하게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시어들은 '우레, 눈알, 해무리, 자취, 쇠비름'에 의해서 다시 한 번 더 고향의 그리움과 아름다움을 강조하게 된다. "그렇게 참 징그러운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우리네 고향 여름," 삶의 현장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는 땀 냄새 절은 고향 여름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시의 제2연에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성년이 된 '우리네'와 "요즈음 아이들"---시골이든 도시이든 간에---이 대조되어 있다. 테크노 시대와 매스미디어 시대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냉장고와 에어컨, 승용차와 기계화 영농으로 인해서 "땀방울 훔치며 식식거리는" 고향 여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냉장고의 냉수와 얼음, 에어컨의 냉방, 들녘과 집을 오가는 승용차, 논밭을 갈아엎는 트랙터, 모심기에 사용되는 자동화된 이앙기, 벼 베기와 탈곡을 동시에 수행하는 콤바인에 익숙한 시골아이들에게 있어서 "땀방울 훔치며 식식거리는" 여름은 '낯선 여름'일 뿐이다. 시골아이들이 이러할 때에 도시아이들은 더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볼 때에 "요즘 아이들 알 턱이 있나"라는 경구는 하나의 경종이다. 그것이 경종인 까닭은 근원정서가 상실된 시대에는 여름을 상징하는 '매미소리'까지도 그악스럽기 때문이다.
여름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매미소리가 그악스러워진 것을 개탄하고 있는 시「산성비」에서 시적 자아는 생명수로서의 비가 아닌 산성비가 내리는 까닭이 바로 매미소리의 그악스러움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 '그악스러움'의 강도는 "죽기를 작정하고 악을 쓴다," "이판사판이다," "꼼짝 않는다," "쇳소리를 낸다," "치어 죽는다," "쏟아져 나온다"같은 서술부에 의해서 점점 더 강화된다. 이러한 매미소리는 물론 "구 반포 아파트 시멘트 벽"에 구체적으로 명기된 바와 같이 도시의 매미소리이며 그 소리의 강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화되는 까닭을 시적 자아는 "소음에 길들었기 때문이다"는 점과 그 소음은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과 바퀴소리에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자동차 소리보다 더 크게 울어야 하는 도시의 매미소리,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매미소리가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의 소음과 경쟁해서 이겨야만 암컷을 유혹해서 교접하고 종족을 번식할 수 있는 수매미의 치열한 울음 울기는 차라리 처절하기까지 하다. "죽어도 죽어도 매미소리들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이 징그럽고 넌덜머리나고 몸서리처지고 소름끼치는 매미소리를 시적 자아는 한국전쟁 당시 새까맣게 몰려들던 중공군과 요즘 시에 비유하고 있다. 죽기를 살자하고 달려들던 중공군과 요즘 시가 가지는 공통점은 떼지어 몰려다니기일 것이다. 분량은 많지만 내용이 빈약한 시, 목소리는 크지만 의미는 사소한 시, 시어는 멋지지만 내면세계의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 시 등에 대한 가차없는 경고를 "저러니 산성비가 안 내릴 수 있나"로 끝맺고 있다. 본래의 모습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의 진행과정을 이 시의 첫 구절 "지친 하늘이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하늘도 포기해버린 시에 대해서 시적 자아가 던지는 경구는 경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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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의 正典: 서정시의 언어와 구조[서러운 낮잠]
시적 체험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간에 시인 혹은 시적 자아의 세계가 시를 읽는 독자에게 설득적이어야 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 한 편의 시는 한낱 언어의 나열이자 유사진술이나 말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사실을 시적 언어로 엮어내는 시인은 언어의 충실한 조련사가 되어야만 한다. 냉혹하고 엄격한 언어조련사로서 시인의 언어는 그 만큼 간결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지만 그러한 언어에 담겨진 내용은 범종의 울림처럼 의미심장한 것이다.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 일곱 편 중 마지막으로 살펴보게 될「서러운 낮잠」에는 서정시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행과 연의 구분이 없는「서러운 낮잠」은 시적 자아가 낮잠 속에서 꾸는 꿈의 세계, 자각의 세계, 현실의 세계로 나뉘어진다. 이 시에서의 시간은 '낮잠'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한낮이고 공간은 '책상'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사무실이나 연구실이다. 그리고 '놋대접'이 암시하는 과거의 시대와 '컴퓨터'와 '이메일'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테크노 시대로 대표되는 현재가 시적 자아의 의식세계를 넘나든다. 이처럼 꿈/과거→자각/순간→컴퓨터 이메일/현실로 진행되는 이 시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꿈속에서 만나는 과거는 언제나 순간적이고 포착 불가능한 것이지만 꿈을 깨고 나면 기억으로 남아있는 까닭에 더욱 안타깝고 애틋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서러운 낮잠]의 첫 부분은 제1행에서부터 제7행까지이다. 이 부분에서 꿈의 순간성은 '설핏, 여우비, 봄꽃'에 의해서, 그러한 순간성에 의해서 발현되는 모습은 "반가운 얼굴 하나"와 "애틋한 사랑"이다. 이 시의 첫 부분의 핵심어는 물론 얼굴과 사랑이며 그것은 ① 얼굴=사랑이거나 ② 얼굴→사랑이거나 ③ 사랑→얼굴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유형에 해당하든지 간에 얼굴이 반드시 사랑과 일치할 필요도 없고 얼굴이 사랑의 일부분이거나 사랑이 얼굴의 일부분일 필요는 없다. (그 까닭은 뒤이어지는 다음 항에서 설명하게 되겠지만 제9행의 "젊은 날의 안타까움" 때문이다.) 다가와 손을 흔들고 떠나는 사랑의 얼굴에 대해서 시적 자아는 꿈속에서 "머나 먼 곳으로/길 떠나는 모양이다"라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붙들지도 않고 애원하지도 않고 만류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 볼 뿐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시적 자아의 이러한 객관적인 태도는 "길 떠나는 모양이다"에 의해서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반갑고 애틋한 사랑의 얼굴'이 다가와 손을 흔들고 떠나는 데도 그저 '그런가보다'라는 시전으로 그 대상을 바라보는 까닭은 우선은 그것이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고 다음은 '낮잠의 꿈'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며 그 다음은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과거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제8, 9행은 꿈의 끝 부분으로 현실로 전환되기 직전의 순간이며 제10행은 그러한 전환이 이루어진 직후의 순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시간의 경과가 꿈에서 현실로 진행되기 때문에 꿈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현실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의 직전'에 관계되는 꿈의 끝과 '꿈의 직후'에 관계되는 현실의 시작은 동시적이면서도 차별적이다. 그것을 나타내는 시어가 '눈물'이며 이 눈물이 과거에 관계될 때에는 "가슴 미어지는/젊은 날의 안타까움"에 연관되고 현재에 관계될 때에는 이 시의 맨 마지막 행의 "쓰라린 시간들"에 연관된다. 다시 말하면 이 시에서 두 번 사용된 "눈물"이라는 시어는 과거와 현재 모두에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관계될 때에 그것은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 ([목숨]의 마지막 연 첫 행 "나이 들어"에서 그렇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시적 자아가 반드시 이룩하고 싶었지만 이룩하지 못한 꿈에서 비롯되고, 현재에 관계될 때 그것은 살아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체념해야만 했던 꿈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 시의 두 번째 부분에서 '눈물'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반드시 '젊은 날의 사랑'이라고 한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더욱 큰 "젊은 날의 안타까움"과 "쓰라린 시간들"로 인해서 눈물 흘리게 된다.
[서러운 낮잠]의 마지막 부분은 제11행에서부터 마지막 행까지이며 이 부분에서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컴퓨터와 이메일이 등장한다. 아무런 감성이나 느낌도 없이 문자메시지만 전달하기 위해서 이메일로 떠오르는 편지 한 통은 간략하고 무미건조하고 지시적이며 사무적일 뿐이다. "풀씨 같은/ 글자들이 흔들리며 옥잠화처럼 웃는다"에서 '풀씨'는 모니터에 떠오르는 얼마 되지 않는 편지 내용, 곧 컴퓨터 글씨를 의미한다. 이처럼 무미건조한 내용의 편지가 육필로 쓰여진 편지일 때, 그것은 초록 잎과 줄기 위에 하얀 색으로 깨끗하게 피는 '옥잠화'처럼 신선하고 산뜻하고 감동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적 자아가 꿈꾸는 또 다른 꿈일 뿐이다. 따라서 이 시의 첫 부분 제5행의 "봄꽃"에 이미 암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순식간에 소멸해 버리고 마는 봄꽃처럼 "무너진 봄이 화면에서 걸어나와/ 쓰라린 시간들을 깨워 일으킨다."
마지막 행의 첫 구절에 해당하는 "쓰라린 시간들"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과거에 관계되기도 하고 현재에 관계되기도 한다. 그러한 시간의 과거에 대해서는 이 시의 첫 부분에 언급되어 있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낮잠 속의 꿈이었기 때문에, 장년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또는 시적 자아만이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그 무엇 때문에, 아무 언급이 없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깨워 일으킨다"라는 최종적인 서술부분에 의해서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적어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시적 자아는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고 과거의 꿈에 대한 연민보다는 현재의 일에 집착하게 될 것이고 이메일로 떠오른 한 통의 편지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답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화가 가능해진다.
꿈/현실
↑ ↑ ↑
과거의 축 순간의 축 현실의 축
[서러운 낮잠]의 의미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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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 시대 서정시가 가야할 길
한 편의 잘 짜여진 서정시에 사용된 시의 언어를 비평의 언어로 읽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적 대상에 대한 시각의 일치, 시적 상황에 대한 감성의 일치, 활용된 비유와 상징에 대한 견해의 일치를 1차적으로 요구하며 2차적으로는 시의 행간에 숨겨진 의미의 파악은 물론 행과 행이 모여 이룬 연의 의미, 연과 연이 모여 이룬 한 편의 시가 가지는 총체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종합할 것을 요구한다. 시의 언어가 대상에 대한 시인의 주관성에 의해서 대상을 옮겨놓는 엄정한 문자행위라면 비평의 언어는 객관성에 의해서 쓰여진 시를 파악하는 냉혹한 문자행위라고 볼 수 있다. 조창환 시인의 신작 시 일곱 편을 여러 가지 요인에 바탕을 두어 네 유형으로 분류하여 살펴보는 과정에서 서정시의 따뜻한 감성을 냉정한 비평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힘든 작업이다.
그러나 그의 신작 시를 꼼꼼하게 읽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그의 서정시에는 이 시대의 서정시를 선도하는 무서운 힘, 서정시의 진정성이 자리잡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성에는 시어의 엄정한 선별과 용의주도한 결합은 물론 시어와 시어가 엮어내는 이미지의 창출과 다양한 의미가 '끊임없이 새롭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한 편의 시를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견고한 시의 구조가 그의 서정시의 또 다른 힘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의 신작 시에는 '서정시의 진정성,' '시어선정의 엄정성과 결합의 용의주도성,' '이미지 창출과 의미의 다양성' 및 '시적 구조의 견고성'이 자리잡고 있다.
서정시의 진정성과 구조의 견고성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신작 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목숨/생명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바탕으로 하는 '생명시학'에 있다. 목숨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증거를 그는 어떤 거대한 생명체에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인이 놓쳐버리기 쉬운 생명체, 예를 들면 풀밭, 눈 안 뜬 강아지, 벌레의 더듬이, 수초 아래의 물벌레 등에서 발견해 낸다. 그래서 그의 생명시학은 그만큼 더 경이롭고 신비로운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발견해 내는 이러한 작은 생명체의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압축시켜 응축한 묘사를 바탕으로 제시함으로써 생명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심화시킨다.
생명시학 다음으로 그의 신작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옛것에 대한 향수, 다시 말하면 근원정서에 대한 강조를 들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 문명의 대립에서 문명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우리들로 하여금 삶다운 삶을 지속하도록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연 쪽에 있다는 점을 그는 자신의 신작 시에서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신작 시에서 세속적인 일에 쉽게 영합하지 않는 일, 부질없는 영욕과 허세를 따라가지 않는 일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가 가지는 강점은 내면세계를 객관화시켜 형상화하는 작업에 있다. 언어의 단호한 절제와 적합한 선택, 선택된 언어의 정확한 결합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신작 시에는 우리 시대의 서정시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가 엮어내는 언어의 조탁과 '옹골찬' 이미지 그리고 견고한 시적 구조는 이 시대의 서정시가 본받아야 할 하나의 正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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