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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판

중국에 살고 있는 고구려장수왕의 후손들

by 8866 2009. 10. 22.

 

대고려방진 고구려 장수왕 후손의 마을


고구려 20대 장수왕 후손들이 모여 사는 대고려방진은 인구 4만여명 정도의 요녕성 태안현의 한 작은 읍이다.
이곳의 요양 고씨는 2천여명으로 제일 수가 많은 성씨이다.
지난 89년 하얼빈의 고지겸씨는 “흑룡강신문”을 통해 요양 고씨가 장수왕의 후손임을 밝혔다.
그 근거가 된 것은 집안에 전해오는 족보의 서문중에 “.....상전위조선국왕고련지후 (相傳爲朝鮮國王高璉之後)....”라는 문구이다.
선조가 조선 국왕인 ‘고련’(장수왕 이름)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중국땅에서 살아온 이들이 고구려 후손임을 밝혔을 때 이익보다 불이익이 더 많을텐대도 족보에 이 문구를 명기한 것이다.

취재팀이 이 마을을 찾았을 때 처음 받은 질문은 “한국인이 왜 이곳을 찾아 왔느냐”는 것이었다.
반가움과 경계심이 함께 담긴 질문이었다.
그만큼 자신들이 고구려 후손임은 비밀 같은 것이었다.
일행은 고제점(高齊占)씨에게로 안내되었다. 족보를 볼 수 없겠느냐고 하자 노인은 먼지가 뽀얗게 앉은 조그만 나무곽을 들고 나왔다. 그 안에는 낡은 족보 한권과 만주국과 중화민국 시절의 땅 문서가 들어 있었다.
마을의 내력을 묻자 노인은 “내가 태어났을 때도 대고려방진이었다”면서 “얼마 전까지 우리는 위대한 한족(漢族)인 줄 알았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고진평(高眞平)씨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고구려가 가장 강국이었으나 끝내 중국에 져서 이 모양이 되었다”면서 “역사도 대략 안다”고 했다. “스스로를 중국 한족으로 알다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처음에는 놀랍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왕족, 그것도 강국이었던 고구려의 왕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을 찾아온 첫 한국인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자제하는 눈치였다.

요양 고씨의 비밀을 처음 캐낸 고지겸씨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유난히도 족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나이 들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소아과 의사로 일해온 고씨는 문화혁명 이후 뿌리 찾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어머니가 족보를 불태운 뒤였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옛날 족보를 찾아냈다. 그때부터 그는 고구려 역사도 같이 공부했다.
고구려 역사를 들려준 그는 “실제 고구려 왕국은 전하는 기록보다 더 오래 갔다”고 했다.

고씨는 광개토대왕이 39세로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마 영토를 되찾느라 너무 고생해서일 것”이라는 재미있는 추측도 곁들였다.
“우리 고구려 왕손은 그대로 옛터에 살고 있다. 앞으로는 고구려 멸망 이후 왕손들이 줄곧 이 땅에서 끈질기게 버텨왔다는 증거까지 찾고싶다.”

고씨는 아들을 데리고 2년에 한번씩은 장군총을 찾아 제사 지낸다고 한다,
이미 장수왕의 영정도 만들었다. 집안에서 연장자 두 사람의 골상을 토대로 하얼빈 화가가 복원했다고 한다.
“선조가 빛나는 고구려 문화를 창조했다”고 자긍심을 내비친 그는 앞으로 “고구려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만들어 중국어와 한글로 출판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월간중앙 WIN 1998년 12월호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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