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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판

[스크랩] 중국인이 본 한국인(한국역사모델링자료)

by 8866 2006. 7. 10.
 



'[오마이뉴스 조창완 기자]   

▲ 5월 19일자 난두조우칸 기사. 제목은 '한국인은 왜 술을 좋아하는가'이고, 부제에는 '대국의 사이에 끼여 긴장해 있고, 그래서 술이 필요하다'고 썼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그 작은 국가의 인구가 대부분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곳이 수도 서울이다. 한국은 4개 대국 사이에 있는데, 그 포위된 위치가 한국인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술을 필요로 한다."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淸華大) 중문과 쾅신니엔(曠新年) 교수가 한 말이다. 이 답변의 근거는 한국의 한 대학 중문과 교수가 토론 중 한 말로 나온다. 그가 정말 그렇게 답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글을 읽은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은 주변국의 압력을 잊기 위해 마취제로 술을 마시는 꼴인 셈이다.


이 기고를 실은 난두조우칸(南都周刊 남도주간 5월 19일자)은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격인 왕징(望京)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글의 머리글에 이런 제목의 글을 실었다.


물론 그 글 안에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기록되어 있다. 2002년 당시 붉은 악마의 인상에서 한중관계, 한국의 지형적 특성, 조공관계 등에 관한 관점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漢)나라 이후 중국과 끝없는 전쟁과 융합 관계 속에서도 독립국가로 완강히 생존한 것이 기적이라는 말로 끝난다. 물론 이 글의 뜻에는 60%의 긍정과 40%의 부정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대로 봐줄 만하다.


올 8월로 한중 수교 14주년을 맞는다. 그 사이 중국인들의 한국관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한국인?


지난 2000년 12월 22일 중국의 10대 신문 매체인 진완바오(今晩報)에는 '전설과 국민성'(傳說與國民性)이라는 제목의 베이징대 쿵칭둥(孔慶東) 교수의 형편없는 글이 실렸었다.


"한국 사람들과 자주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골치아픈 일 중의 하나는 그들이 신용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속에 늦는다든가 약속을 아예 지키지 않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며, 자기가 금방 한 말도 얼마 안 가서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아침에 한말 저녁이면 바꾸고 마음이 수시로 변하여 식언하는 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마치 하루 세끼 밥 먹고 잠자는 것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라와 토끼이야기'와 같이 고구려왕과 김춘추는 모두 믿음성보다는 생존을 중요시했는데, 그들간의 차이는 지력(智力)에 있을 뿐, 도덕적 측면에서 볼 때 똑같은 '실용 기회주의'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중국의 전설은 대개 '믿음은 생명 이상'이라는 주제가 대다수다. 승낙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희생이 있더라도 꼭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다….


한국은 자고로 깊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이루어진 나라이고 강대국의 틈새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야 했던 것쯤은 이해가 된다."


이 글을 쓴 쿵칭둥 교수는 현재도 다양한 문화 관련 책을 펴내는 베이징대 지성의 표본이라 할 정도의 인물이다. 글을 쓸 당시 이화여대 교환교수였는데도 이 정도의 한국관을 갖고 있었다. 기자는 당시에 편집을 책임지던 중국내 발행 한글 신문에 관련 내용을 알려 논란을 만들었고, 톈진 한국인회가 적극 나서면서 짧지만 사과문을 받아낼 수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부터 '대장금'까지


 ▲ 월드컵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들의 단결된 모습은 중국인들의 한국관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진은 2002년 한국-미국전에서 응원전을 펼치는 붉은 악마들. 

ⓒ2002 이종호

이후 중국인들의 한국관은 어떻게 변했을까. 변화의 가장 큰 계기가 있었다면 한류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2000년 이후 급속히 몰아닥친 한류는 중국인들의 한국관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처음 중국에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는 우선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와 같은 가족 드라마다.


중국은 공산화 이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에 가장 큰 가치관이었던 가족의 가치가 상당히 붕괴됐다. 또한 여권 신장은 가부장적 위기질서를 기초로 한 가족의 모습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이런 가족관은 미묘한 감정의 자극을 불러 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우선은 한국 남자들이 집에서 그렇게 권위주의적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다른 드라마는 '별은 내 가슴에'를 시작으로 한 세련된 느낌의 트렌트 드라마였다. 이들에게 한국은 잘 꾸며진 세트장 같은 분위기였고, 중국인들이 향후에 추구할 선진화의 앞 단계를 거쳐 간 국가로 인식되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다양한 한류가 중국 내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 과정에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있었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오른 한국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붉은 악마의 단합된 힘은 중국인들의 한국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존에 명성을 떨치던 한국 바둑이나 골프 등이나 적은 인구의 국가지만 세계 최강인 중국과 경쟁을 하던 탁구 등을 상기하면서 한국에 대한 약간의 질투심도 갖게 됐다.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예가 월드컵 16강전 이후 방송 해설자들의 한국에 대한 노골적 불신이었다. 해설자들은 심판 판정 등을 이유로 한국 축구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텔레비전 중계 뿐만 아니라 축구 복권으로 매일 관심을 쏟던 유럽 축구의 강자들이 한국 축구에 연달아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많은 경계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2005년 '대장금'이 방송했다. 대장금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한국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했다. 음식·의학·철학 등은 대부분 상통했고, 논어를 읽은 대장금에 매료되는 등 동양적 사고안에 한국인을 인식했다.


현재 중국인들의 한국관은?

▲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왕징'의 상징 조형탑에는 각국 언어로 '더 높게'가 씌어있다. 자세히 보면 한글도 보인다. 멀리 보이는 건물에는 재중국한국인회가 입주해있다. 

ⓒ2006 조창완

최근 중국인들은 독도문제나 신사참배 등 대일관계에서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우선 다양한 정치적 관심을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기나 열정을 높게 인정한다. 반면에 강릉시가 신청한 '강릉 단오제'의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두고 '중국의 무형문화가 한국에 빼앗겼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태도도 많이 눈에 띈다.


최근에 발표된 글들 가운데 몇 개의 칼럼을 살펴보자.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한국에서도 책을 출간한 장홍지에(張宏杰)라는 칼럼니스트다. 그는 <중국인은 한국인보다 무엇이 부족한가?>라는 제목의 책을 한국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한국인들의 우수한 근성을 많이 보여준 책이다.


하지만 요즘 그의 기고를 보면 은근한 중국인들의 자신감이 드러난다. 또 한국에 대한 관점도 "한국인은 융합이 무엇인지 모른다, 유학을 받아들인 후에는 불교를 방치했다, 유학이 조선에 들어온 후에 유교와 불교 간의 한판 '너 죽고 나 살자'는 격렬한 투쟁이 발생했다, 그 속에서 불교의 의식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었는가"고 묻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로 대변되는 정서에 대한 느낌이다. 흔히 '신토불이(身土不二)'에 대한 감상을 많이 적는데, 비싸더라도 한국 물품을 쓰자는 정서에 많은 공감을 한다.(<한국인은 신토불이를 신봉한다(韓國人信奉 "身土不二")> 海峡都市报 5월 12일자 / <한국인은 외자혐오증으로 경제애국주의가 유행한다(韓國人患上"外資 厭惡症" 韓國流行經濟愛國主義)> 新民周刊 5월11일자)/


중국인들의 한국관은 우리 스스로 만들 뿐


  

▲ 한 카페에 있는 한국 학생들의 메모판, 

ⓒ2006 조창완

공식 수교 14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전략이 부재한 국가'라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의 경우 철저한 준비로 중국에 진출해 실패하는 수도 적지만, 중소자본에 중국어조차 하지 못한 채로 들어와 호기를 부리는 이들에 대해 지쳤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난 공산당의 한 간부는 "일본이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대기업·중소기업·민간인의 순으로 철저히 구조를 만들어 전략적으로 들어오는 항공모함과 같은 함대라면, 한국은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벤처는 벤처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들어오는 전략 부재의 군단 같다"고 말했다. 결국 정보도 지식도 부족해 필패하게 되고, 부실한 상태에서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없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일반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방문해 눈도장이나 찍으려는 정치인들로 인해 정작 중요한 면담은 뒷전으로 밀린다. 중국이 일본과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정확한 일들이 오가기 때문에 민간교류가 활발한 반면, 한국 정치인들은 아무런 정책없이 그저 만나서 사무실에 걸어두는 사진이나 찍으려고 하기 때문에 중국에의 접근이 어려워진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또 전략적인 관계는 무시하고 돌발행동을 보이는 정치인들로 인해 주요 인사들에게는 아예 면담조차 금지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요 정치인이기 때문에 홀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지만, 그들이 보이는 돌출행동으로 인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는 게 중국쪽 경험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정식 수교 14년 전부터 한국은 중국에게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모든 것을 가르쳐줬다. 미국 등 서구기업이나 일본 기업이 핵심기술을 갖고 접근했던 반면에 한국은 작은 기술을 가진 기업에서 첨단 기술의 대기업까지 같이 중국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2000년 전후만 해도 연안 도시들에서 한국기업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이제 중국이 대부분의 기술을 흡수해 이제 그 비율이 급속히 감소했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이 차지하는 절대 비중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 과정에서 한국이 했던 역할을 알지도 못한다. 그뿐 아니라, 중국인들은 중국 혁명사상 가장 중요한 1927년 광둥코뮨에서 희생된 조선인이 150명이라는 사실도 잘 모른다.


중국 영화에서 유일하게 황제로 추앙받는 김염이나 '중국인민해방군가' 등을 만든 중국 최고의 작곡가 정율성, 중국의 피카소로 추앙받는 실크로드 화가 한락연 등을 우리나라 혁명가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또 덩샤오핑과 펑더화이 등이 사지에 있을 때 길을 뚫어 주고 희생된 윤세주나 진광화 등이 우리나라 혁명가라는 것을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인물들이 안 알려져있는데, 중국인들에게 이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우스울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들을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은 없다. '연개소문'이나 '주몽'도 중요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위대한 독립혼을 알려주고, 중국인들에게는 자국의 혁명에서 뛰어난 인물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또 다른 한국관이 싹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4개의 열강 속에 끼여 술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중국인의 한국관은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창완 기자

출처 : 한국 상고사 영어 번역일꾼 모집(자원봉사)
글쓴이 : 대한민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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