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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는 우리의 통념을 깨뜨린 문예사조입니다. 문학작품은 창작활동의 산물이며 작가의 자아의
표현이라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었습니다. 또 텍스트는 독자가 그 속에 들어가서 작가의 사상·감정과 정신적으로, 인간적으로 교감하는 장소로 알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작가는 죽었다’고 말하며,
문학적 담론에는 ‘진실’이라는 기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작가의 언어가 리얼리티를 반영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언어의 구조가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문학의 탈신비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조주의자들의 논리는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요약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말과 사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했습니다. 언어를 그는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해서 설명했습니다. 랑그는 실제의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언어 체계, 즉 언어의 사회적
양상이라는 것이지요. 파롤은 개인의 발화(스피치)로서 실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체계를 개인적으로 구체화시키는 양상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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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를 쓴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 파롤을
랑그에 종속시킴으로써 소쉬르는 실제 텍스트들의 특수성은 무시한 채 마치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 양 다루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말이란 지칭대상에 대응되는 상징이 아니라 ‘기호’입니다. 상징=사물, 기호=지시어/지시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기호' 빨강색은 정지를, 초록색은 출발을 뜻하는 것입니다. 언어란 것이 수많은 기호 체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쉬르의 이론은
구조주의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제의·금기의 기원이나 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어느 특정한 인간의 관습의 기저를 이루는 체계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 체계의 문법·구문·음소적 형태를 찾는
노력을 통해 문화와 문학의 기본구조를 파악하려 한 것이지요.
조나단 컬러는 “시학의 실제 대상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작품의
해독성(解讀性)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의 구조주의 시학은 프랑스 구조주의를 영미 비평에 수용한 것으로, 텍스트를 쓰는 것에 관한
법칙은 정할 수 없지만 해석을 위한 법칙은 정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된 이론이었습니다. 작품 해석을 위한 방법론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문화적 행위의 근본을 이루는 규범·법칙·체계를 규명하려는 과학적 야심을
가졌습니다. 예전에는 작가가 사색하고 괴로워하는 존재였고, 작가는 텍스트의 기원이었습니다. 구조주의자들에 의하면 글쓰기에는 기원이 없습니다. 체계를 따로 떼어냄으로써 역사를 없애버린 것이지요. 그들은
텍스트가 씌어진 시대나 수용된(해석된) 시대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 시대의 미학 체계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초역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경험의 산물이 아니고 개인을 지배하는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그들은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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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죽음'을 주장한 롤랑
바르트(1915∼1980)
| 구조주의가 인간이 만든 기호의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웅적인 것이라면 후기구조주의는 그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희극적이고 반영웅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1968년에 발표한 「저자의 죽음」이란 글에서 “작가들이란 이미
씌어진 문장들을 뒤섞거나 재결합하거나 재배치시키는 능력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문학은 사물의 의미 전달이 아니라 사물의
의미화(signification, 의미를 산출하는 과정)의 전달이다.”라고 했습니다.
독자는 ‘지시 대상’에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텍스트의 의미 형성 과정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즉, 저자의 의도란 것을 연구자는 얼마든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대표 저서 『시적 언어의 혁명』(1974)에서
무질서한 언어 이전의 동작·몸짓·소리·율동의 흐름은 성인의 성숙한 언어 행위의 이면에 남아 활동하고 있는 ‘기호학적’ 자료의 근간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시에 있어서 음향의 사용을 성적 충동과 연관시켜 맘마를 구강성으로, 파파를 항문성으로 보기도 했지요.
자크 라캉은 프로이드의 이론을 바탕으로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수사학을 펼쳤습니다. 무의식이 욕망의
힘이라는 거지요. 그는 사람이 말로 자기 욕망을 표시할 때 언제나 무의식에 의해 도전받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무의식은 꿈·농담·예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꿈의 이미지는 ‘압축’(몇 개의 이미지가 섞여지는)과 ‘자리바꿈’(의미가 하나의 이미지에서 인접 이미지로 바뀌어지는)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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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자크 데리다 (1930∼
) | 그는 전자를 은유로, 후자를 환유로 불렀습니다. 왜곡되지 않은 지시어란 없고, 왜곡되고 수수께끼
같은 꿈이 사실은 ‘지시어’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크 라캉의 이론은 너무나 어려워 설명한 저도 사실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크 데리다는 해체 이론을 폈습니다. 그는 플라톤 이래 서구철학의
기본적인 전제인 존재·본질·진리·실체·형식·의식·목적·인간·신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수많은 제도와 기나긴 역사의 산물에
지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한 거지요.
순수한 관념으로 파악되는
'의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계도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다는 텍스트성(textuality, 언어적 객체) 개념은 서구의 이성 중심 철학을
비판하기 위한 그의 독특한 방법론이었습니다.
데리다는 '불변의 이치'라든가 '완벽한 질서'라든가 '법과 도덕'이
있어서 이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했습니다. 반면에 세계가 너무나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하다고 인식했습니다. 문학의
세계를 포함한 이 세계는 텍스트의 요소들이 상호 관계를 가질 뿐이라고, 즉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으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갈파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많은 문학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습니다. 해체라는 것이 불변의 진리니 이성의 법칙이니 미풍양속이니 하는
것들을 우습게 여긴다고? 그런 반동적인 정신이면 우리 사회의 인습과 계율로부터 일탈을 시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보수적인 미학
체계에 도전해볼 수 있겠구나.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문학에 접목되자 많은 사람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문학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살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서정시의 양식을 정관적(靜觀的)이고 닫혀 있는 미적 구조로 생각하였고, 당대 현실에 굴종한 보수 집단의 안이한 정신적
배설물로 파악했습니다. 그들은 일단 충격요법을 써 전통적인 시정시의 문법을 깨뜨릴 결심을 했습니다.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현실에
대한 추상적인 미화로, 사실주의를 현실에 대한 순진한 재현으로 간주한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그려낼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실
해체를 통한 탈구성(deconstruction)이었습니다. 해체시의 이러한 도전적인 정신은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정신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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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페에서 가져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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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외로움과 고독만 남아있다
|글쓴이 : Blu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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