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의미의 공간
  • 자연과 인간
교통

영고탑 교통사

by 8866 2010. 2. 7.

 

 

영고탑 교통사

 

청나라시기 교통

 

영고탑--길림 간선도로


1. 영고탑에서 서쪽으로 沙兰, 必尔罕(지금의 尔站), 塔拉, 额穆索(현재의 길림성 액목额穆), 拉法, 额赫穆을 경유하여 길림에 이르는 도로. 전체 길이는 320km이다.

 

2. 영고탑에서 서쪽으로 동경성(현재의 발해진), 南湖头, 오도리(鄂多里. 현재의 돈화현 경내)를 경유하여 길림에 이르는 도로. 전체 길이는 300km이다.

 

영고탑---삼차구(동녕현) 간선도로

광서(光绪)7년 (1881년) 개척


영고탑에서 북쪽으로 乜河, 穆棱, 동쪽으로 细鳞河, 동남쪽으로 双榆树을 경유하여 삼차구(三岔口)에 이르는 도로이다. 전체 길이는 200여km이다.

 

영고탑--훈춘 간선도로

광서(光绪)7년 (1881년) 개척


영고탑에서 남쪽으로 新官地, 玛尔瑚里(현재의 上马莲河), 萨奇库, 五台站을 벗어나 瑚珠岭, 汪清, 珲春을 경유하여 약간 서남쪽에 위치한 연길에까지 이르는 도로이다. 전체 길이는 200여 km이다.

  

영고탑--삼성(三姓. 현재의 의란현依兰县) 간선도로

광서(光绪)7년 (1881년) 개척.


영고탑의 북쪽으로 乜河, 黄花甸子(현재의 목단강시) 头站, 二站, 四站, 克司克, 太平庄 등을 경유하여 삼성(三姓)에 이르는 도로이다. 전체 길이는 300km이다. 도로가 험준하여 여름에는 보통 수로로 통행함으로 민국시기에 황폐화되었다.

 

영고탑--밀산 간선도로


영고탑에서 목릉까지는 삼성으로 이어진 간선도로이고 그 이상은 목릉에서 동북쪽으로 밀산에 이르는 도로이다. 전체 길이는 300여km이다. 역참마다 관리 1명과 장정15~25명이 배치되고 지필묵과, 마필(15~25필), 소(15~25두)를 두어 통행자에게 제공하거나 농경에 사용했다.
 

이 도로들은 1881년 오대징(吴大澂)이 개척한 것인데 연도에 역참(驿站)을 설치하고 정변군(靖边军)을 파병하여 주둔시켰다.
광서26년(1900년)이후 병참이 해산되고 도로도 황폐화되었다. 광서말년에 변방관리들이 다시 도로를 수축하고 군대를 파견하여 주둔시켜 통행을 보장히도록 했다.

 

중화민국시기

 

중화민국14년(1925년)상인 이문체(李文体)가 두 대의 자동차를 구입하여 운수업을 시작했고 뒤이어 염경기(廉景祺), 양길재(杨吉斋)등 상인들도 자동차로 운수업을 시작하자 원유의 도로는 교통수단의 발전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동차의 효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상인들이 자본을 투자하여 도로를 수리하게 되었다. 최초로 개척된 자동차도로는 영해로 즉 영안에서 해림에 이르는 도로이다. 전체 길이가 30km이다.

 

민국19년 (1930년)영안에서 돈화를 연결하는 120km에 달하는 새로운 간선을 시작으로 영안-액목(90km), 영안--왕청(90km), 영안--목릉(50km), 영안---목단강(30km) 등 여러 갈래의 자동차도로들이 연이어 개통되었다.
이상의 여섯 갈래의 도로의 총 길이는 410km나 된다. 죄다 흙길이어서 비가 많이 내리면 도로가 질척거려 차량통행이 어려워 자주 멈춰서야만 했다.

 

위만주국시기

 

1931년 9.18사변후 일본인들은 1933~1935년에 걸쳐 해림--돈화, 영안--목단강, 영안--액목, 영안--동녕, 해림--목릉 등 다섯 갈래, 600여km에 달하는  차도를 건설했다.

도문--가목사철도 개통 후 영안--해림, 영안--목단강, 영안--동경성 등 노선만 계속 사용되었는데 전체 길이가 104km였다.
영안--목단강, 영안--동경성간 도로는 모래와 돌로 포장한 자동차도로였고 영안--해림간선은 토로(土路)여서 우기에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1945년 이후 패망한 일본인들의 파괴로 인해  도로는 수레나 다닐 수 있는 길로 황폐화 되었다.            
    

 

'교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대도로교통지도  (0) 2010.03.10
고지도 (항해노선도)  (0) 2010.03.01
원대 상업교통  (0) 2010.01.19
북경지방의 고대교통로  (0) 2010.01.19
조선시대 전국 생활권  (0) 2010.01.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