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흐르는 한(恨)의 가락 아리랑
이규태
아리랑은 지방에 따라 스물다섯 가지가 채집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특정 지방에서만 특정 아리랑이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불려지지 않는 곳이 없는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노래가 아리랑이다.그것은 한국적 정서의 원형질(原形質)이요, 공통 분모(共同分母)다.
각기 다른 많은 아리랑은 선율과 가사도 조금씩 다르지만, 실은 하나의 공통된 기본형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 기본형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이 기본형의 가사 속에 깃든 한국인의 정서(情緖)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아리랑의 구조를 세 가지로 분해할 필요가 있다. 아리랑 고개 밖은 “바깥 세계”요 고개안은 “안의 세계”라는 안팎 경계(境界)를 둔 한국인의 정서 구조가 그 하나요, 떠나간다는것과 떠나 보낸다는 별리(別離)를 둔 한국인의 정서 구조가 그 두번째며, 보내놓고서 “발병이 나라”고 하는 표리 상반(表里相反)을 둔 한국인의 정서 구조가 그 세번째다.
아리랑의 기본 가사는 이 세 가지 감정이 엉키고 화합돼 이루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그 하나하나를 차례로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떠난다는 것에 유달리 민감한 민족
아리랑은 내가 살고있는 안의 세계로부터 바깥 세계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아리랑의 기원(起原)에 대해
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다. 이 병도(李丙燾)박사와 양주동(梁柱東)박사의 설은 상반되고 있으나, 그것이 고개 이름이란 점에서만은 일치하고 있다.
고개는 경계다. 우리 한국인의 정서 속에는 넘어가면 보이지 않는 고개가 별나게 농도 짙은 비중을 지니고 있다.
원래 우리 국토는 산투성이요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산을 의지하여 마을을 이루어 살았다. 또 생업이 주로 농업이었기 때문에 오랫 동안 한곳에 정착해서 살아야 했으므로 촌락 공동체 단위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촌락 밖인 고개 너머는 나와 아랑곳 없는 별세계라는 정서적 색채가 농후했었다.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향도가(香徒歌)에 표현된 저승은 바로 그 고개 너머 경계 밖에 가깝게 있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늘 내게 당하여선 대문 밖이 저승이라. 북망산 멀다해도 건넛산이 북망 산천이라.>>
곧 마을의 경계 밖이 북망 산천이라는 생각은 내가 사는 마을의 경계 밖은 전혀 이질적인 세상이라는 우리 한국인의 보편적인 의식이 표현된 것이다.
마을 어귀에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의 장승을 세워두고 외계로부터 들어오는 병마(病魔)나 악귀(惡鬼)를 막는것이라든지 또 무당들이 푸닥거리 끝에 병마를 유인하여 단지에 담아 동구밖에다 버리는것에서처럼 마을의 경계밖은 불행이니 병마가 득실거리는 해로운 곳이요 두려운 곳이다.
사냥을 하고 이 산 저 산을 헤매는 수렵 민족, 양을 몰고 이 들판 저 들판 유랑하는 유목 민족, 그리고 소금이나 비단을 싣고 이 나라 저 나라를 가로지르는 상업 민족에게는 내가 사는 경계 밖의 공간은 생업에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친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면서 그 마을에서 태여나 그 마을 밖으로 한 발자국도 옮겨 놓지 않고 살다 죽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경계 밖은 무의미하고 낯선 공간이였다.
그러기에 그 경계 밖으로 고개를 넘어간다는것은 위험한 모험이요 또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감마저도 겹든다. 곧 정서 속에 단절이 생기는것을 의미한다.
남편이나 자식이 부역이나 전장에 끌려갈 때 저 고개 넘어가더니 돌아오질 않았고, 돈벌이 나간다고 고개 넘어간 남편이 돌아오질 않았고, 또 내 딸 내 누이가 시집 간다고 고개 넘어가더니 돌아오질 않았고, 또 내 부모 죽어서 상여 타고 저 고개 넘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은 그 단절의 정서는 한(恨)으로 맺힌다.
그래서 고개는 한국에게 한이다. 아리랑 아리랑 하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농도 짙은 한을 내뿜는것이다. 아리랑의 핵심은 경계를 넘어가는 별리 정서(別離情緖)임을 알수가 있다.
우리 한국인은 이같은 경계(境界)의식때문인지 떠난다는 것에 유달리 감상적이다. 고개 넘어 떠나가는 이별뿐만이 아니라 기차가 떠나간 후의 시골 정거장과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그리고 금테 모자를 눌러 쓴 역장의 외로운 뒷모습은 한국인의 정서에 강하게 호소하는것이었다. 더우기 막차가 떠나가는 것에는 더욱 유별나다. 멀리 기적을 울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밤차는 한국인의 정서의 품에 꼭 들어맞는다.
시골 장날 막차가 떠나간 후 갑자기 한산해진 장거리의 개 한마리는 한국인에게 소리없는 시(詩)가 된다. 가난한 시골 아가씨가 곡마단에 팔려 떠나가는 날이면 그 곡마단 차가 고개 넘어갈 때까지 온 마을 여인들이 지켜 보며 치맛자락을 적셨던 것이다.
장이 파하면 다음 장이 서고, 또 곡마단에 팔려 간다는 것이 심청이처럼 공양미 3백석에 팔려 간것도 아닌데 웬지 떠나간다는 것에 그토록 민감한 것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 “마지막”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떠나면 오고, 오면 가며, 만나면 갈리고, 갈리면 만난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회자 정리(會者定離)라는 말만 들어도 무상(無常)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는 이유는 떠난다는 정서에 바짝 붙어 있는 마지막이라는 효소(酵素)때문일 것 같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것은 한국인의 별리 정서의 가장 원초적이고 전형적인 표현인 것이다.
고개 너머 경계밖은 행여 죽어 못 돌아올수도 있는 다른 세계라는 한국인의 경계(境界)정서가 이같은 마지막이라는 정서를 싹트게 하였고, 그 때문에 이별은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슬픈것이다.
우리 대중 가요에 자주 나오는 낱말을 찾아보아도 온통 이별의 노래임을 알 수가 있다.
운다, 눈물, 밤, 꿈, 정든, 꽃, 바람, 이별, 비, 등불, 외로운, 슬픈, 나그네, 사랑, 멀다, 미련, 안개, 죽음,고향, 혼자, 배, 간다, 길, 어머니, 부두.
이 25개의 낱말 가운데서 별리 정서와 연관된 낱말은 19개로 전체의 75%에 해당된다. 곧 우리 대중 가요의 75%는 이별의 슬픔을 읊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만큼 이별이 한국인의 정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아리랑은 우리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불멸인지도 모른다.이렇게 이별을 맞아 정서적으로 저항을 하는데도 굳이 떠나간 다음에 남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한(恨)뿐인 것이다.
한(恨)이 저항적 공감으로 변형
김 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은 우리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공감을 갖는다. 그 첫 귀절인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란 대목만으로도 정서에 와 닿는것이 있다. 이 대목을 한국 사람 아닌 미국 사람이 읽었을 때도 우리와 같은 정서가 우러날 것인가. 천만에다.
그들에게는 내가 싫어서 가는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 않고 보내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므로 정서가 개입될 여백이 없다. 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리는것을 마치 테이프나 색종이를 뿌리며 잘 간다고 환송하는 행위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러한 그들에게 이 시는 감동적인 시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또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이 전해질 수도 없다.
“진달래꽃”이 한국인에게 아름답게 여겨지는것과 “아리랑”이 한국인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의 정서적인 원천은 똑같다고 본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게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라고 염원하는 이 정서 구조를 서양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또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들은 가지 못하게 만류해도 굳이 떠나가겠다는 연인이라면 그 연인을 향해서 두가지 방법밖에 생각하질 못한다. 그 하나는 물리적으로 가지 못하게 기둥에 묶어 놓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 버리게 놓아두고 아예 딴 연인을 구하든지 하는 흑백(黑白)처리로 끝내버릴것이다. 보내 놓고 발병이 나라는 회색(灰色)처리는 그들에게는 신(信)을 거역하고 양심에 거역하는 악의(惡意)이상이나 이하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아리랑”이나 “진달래꽃”에 주인공이 있다면 간다는 사람과 보낸다는 사람 둘이다. 이때 보내는 사람이 가는 사람을 진심으로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이 아니다. 속으로는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을 겉으로는 고이 보내드리겠다는 이 표리(表里)의 상반 구조가 한국인에게 그렇게 아름다움을 주고 있는것이다.
이같은 본마음과 겉마음의 표리 구조야말로 경계 정서, 별리 정서와 더불어 중요한 한국 정서의 하나라고 본다.
본마음, 본감정,본욕망을 억제하고 은페해야만 하는 이 표리 구조 역시 정서 속에 한(恨)을 불러일으키는 효소가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리랑에 내포된 세가지의 정서는 이처럼 한(恨)을 뿜어 내고 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많은 “아리랑”은 맞대어 대들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한(恨)이 시대의 상황에 따라 저항적 공감으로 변형을 거듭해 왔던 것이다.
여기 “아리랑”가운데 백미(白眉)인 “정선 아리랑”하나만으로 그 한(恨)을 저항적 공감으로 변형시켜 온 변천사를 더듬어 본다.
“정선 아리랑”은 고려가 망했을 때 두문신(杜門臣) 일곱 분이 정선 땅에 와서 살면서 그 망국의 한을 새 왕조에 대한 저항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탄생하고 있다.
정선 남면 땀고개(汗峙)에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허씨 내외가 살았었다. 이들의 가난과 정이 배합된 데 대한 민중의 공감이 “땀고개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에서처럼 “빈정(貧情)아리랑”으로 변형되고 있다.
또 “석대 베치마를 둘렀을망정/네까짓 하이 칼라는 눈 밑에 돈다”와 같은 개화(開化)에 저항하는 아리랑으로 변형된 것도 있고 “정선 군청 농업 기수(技手) 명사(名士)라고 하더니/ 촌색시 호미 조사를 왜 나오나”하는 항일(抗日)아리랑, “삼팔선이 깨어지면 덩어리로 뭉친다네”하는 통일 아리랑으로 한(恨)을 끝없이 펼쳐 나갔다.
정선 화전민의 한 젊은 남편이 함백(咸白) 탄광에 품팔이 갔다가 그곳 다방 아가씨의 유혹에 빠져 본처의 속곳까지 팔아 버린 최근의 세정(世情)도 아리랑이 되었고,5.16혁명 후 병역 기피자들로 만든 국토 건설대가 정선 땅에서 작업했을 때, 그 작업장에서 떡장사하다가 아이를 밴 정선 처녀가 아비 모를 자식에게 불러 주던 아리랑 자장가도 눈물 겨운것이었다.
이처럼 아리랑의 원형질인 한(恨)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저항적인 것으로 공감권을 형성하며 변천되어 왔고 또 변천되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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