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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중국정치연표

by 8866 2008. 9. 10.

 


     
중국정치연표 

 
 
1949
1.  1  모택동 <혁명을 최후까지 수행하자> 발표, 해방군은 장강을 도하하여 해방전쟁을 철저하게 수행할 것을 선언 
 
1. 31  중국인민해방군, 북평(북경)에 무혈입성 
 
3.  5  중공 7기 2중전회개최 (∼13일); 모택동, 공작의 중점을 농촌으로부터 도시에로 이행하는 문제를 비롯한 건국방침 천명 
 
5. 25  상해점령 
 
7.  1  모택동, <인민민주전정론> 발표; 소련 일변도정책 표명 
 
8.  5  미국, <중국백서> 발표; 장개석정부의 패배를 장개석정부의 부패와 무능의 소치라고 비난 
 
9. 21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최 (∼30일); 정협조직법, 인민정부조직법, 공동강령채택 
 
9. 23  트루만 미국대통령, 소련의 원폭실험사실을 공개, 25일 타스통신 보도 
 
10.  1 모택동 중앙인민정부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언 
 
10.  2 소련, 국민정부와 외교관계 단절, 중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표명 
 
11. 16  세계勞蓮 아시아-오세아니아 노동조합회의 개최 (북경); 유소기, 무장투쟁은 인민해방전쟁의 주요 형태라는 연설 
 
12. 16  모택동, 모스코바 방문 (∼1950. 2.17) 
 
1950
1.  5  트루만대통령 대만 불개입 성명 
 
1. 13  베트남 민주공화국(월맹) 성립 
 
2. 14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체결 
 
6.  6  중공 7기 3중전회 개최 (∼9일); 모택동, 토지개혁과 쟁정경제정책의 통일관리에 대한 보고 
 
6. 14  유소기 부주석, 정협회의에서 <토지개혁문제에 관한 보고> 
 
6. 25  한국전쟁 발발 
 
6. 27  트루만 미국대통령, 해-공군의 한국출병, 미7함대의 대만해협출동 명령 인도차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적극화 지시 
 
6. 30  토지개혁법 공포 
 
7. 14  중국인민대만조선침략 반대위원회, <미국의 대만 조선침략 반대운동 주간> 선언 
 
7. 23  정무원, 최고인민법원 <반혁명활동진압에 관한 지시> 발표 
 
9. 15  국제연합군 인천상륙작전 
 
9. 22  중국외무성 대변인, 재중 조선인들은 조국방위를 위해 귀국할 권리가 있다고 발표 
 
10.  2  모택동, 스탈린에게 중국인민지원군의 조선파견에 대한 전문 발송 
 
10.  8  모택동, 중국인민지원군에게 조선출병과 작전개시 명령 발표 
 
10. 10  장개석총통, 쌍십절 기념연설에서 대만은 대륙광복의 기지라고 선언 
 
10. 25  중국인민지원군, 한국전쟁에서 전투에 참가 (11월 8일에 발표) 
 
11.  4  중국공산당및 민주제당파, <항미원조연합선언> 발표 
 
1951
2.  1  국제연합총회, 중국정부를 <침략자>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 
 
5. 18  국제연합 총회, 대중국, 북한에 전략물자 금수결의안 채택 
 
5. 20  인민일보 사설, <武訓傳> 비판을 호소 
 
7. 10  한국전쟁, 휴전회담개최 
 
9.  4  대일강화 산프란시스코회의 개최 (∼8일); 52개국 참가, 대일강화조약 체결; 미-일안보조약 서명 
 
10.  1  <모택동선집> 제 1 권 출판 
 
12.  1  인민해방군, 티베트에 진주 
 
1952
4. 21  汚職處罰條例 공포 
 
4. 28  일본, 국민당정부와 평화조약 서명 
 
6.  1  제 1 차 중-일 민간무역협정 서명 
 
10.  2  스탈린, <소련 사회주의 경제의 제 문제> 발표 
 
11.  7  인민일보 사설, <소련에 감사하고, 소련으로부터 학습하자> 발표 
 
1953
3.  1  전국인민대표대회, 지방각급인민대표대회 선거법 공포 
 
3.  5  스탈린 사망; 후임 소련수상에 말렌코프 취임 (3.6) 
 
5. 28  중공업부, <기업과 광산에서 책임제를 실시하는 것에 관한 지시> 발표; 공장장 책임제 실시 
 
6. 15  모택동, 중공중앙정치국회의에서 <과도기 총노선과 총임무>에 대해 설명 (선집, 5권, 120) 
 
7. 27  한국전쟁, 휴전협정 서명 
 
8.  ?  모택동, <과도기에 있어서 당의 총노선>을 지시 (선집, 5권, 133) 
 
10. 23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회원대표대회개최 (∼11.12); 과도기 총노선과 총임무, 사영공상업에 대한 국가의 이용, 제한, 개조정책 표명 
 
11. 23  중국과 북한, 한국전쟁개시이후 1953년말까지 북한에 제공한 물자와 비용을 무상증여하고, 人民幣 8억元을 무상원조한다고 발표 
 
12. 16  중공중앙, <농업생산합작사 발전에 관한 결의> 채택 
 
1954
1. 12  덜레스 미국무장관, 대량보복전략 주장 
 
2.  6  중공7기 4중전회 개최 (∼10일); <당의 단결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결의> 채택 
 
4. 26  제네바회의 개최 (∼7.21) 
 
4. 29  중국, 인도정부, 중국의 티베트지방과 인도의 통상, 교통협정 서명; 처음으로 평화 5원칙 제창 
 
6. 19  중앙인민정부, 대행정구 폐지를 결정 
 
6. 28  주은래수상과 인도 네루수상, 평화 5개원칙에 대한 공동성명 발표 
 
7. 21  제네바회의 종료; 인도차이나 휴전협정 공표 
 
8. 22  중국민주제당파, 인민단체, 대만해방에 대한 공동선언 발표 
 
9.  3  인민해방군, 金門, 馬祖에 포격개시 
 
9.  6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창설; 8개국회의 개최 
 
9. 14  미국 정부, 미7함대에게 대만정부의 금문도 방위 지원 명령 
 
9. 15  제 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 1차회의 개최 (∼28일); 헌법채택, 공표, 국무원조직법등 각종 정권기구 관련 법률채택, 정부구성 
 
9. 29  후루시초푸 소련당 제1서기등 국경일 참석차 중국방문;중소회담개최 
 
12.  2  미국, 대만정부와 상호방위조약 채결 
 
1955
1. 18  인민해방군, 一江山島 점령 
 
1. 24  주은래, 대만은 중국영토의 일부이고 대만해방에 대하여 국제연합등 외국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선언 
 
1. 29  미국의회, 대만방위결의안 통과; 대통령에게 무력사용권한 부여 
 
1. 31  국무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연구를 위해 중국을 원조하는 소련의 제안에 관한 결의> 채택 
 
2.  ?  胡風비판 개시 
 
3. 21  중공전국대표회의 개최 (∼31일); <제 1차 5개년계획 초안에 대한 결의>, <高崗-饒漱石의 반당동맹에 대한 결의>, <당중앙,지방에 감찰위원회 설치에 대한 결의> 채택 
 
4.  4  중공 7기 5중전회 개최; 임표, 등소평 정치국위원에 보선 4. 29 소련 원자로를 중국, 폴란드, 책코, 동독에 제공하는 협정 서명 
 
4. 29  소련 원자로를 중국, 폴란드, 책코, 동독에 제공하는 협정 서명 
 
5. 25  소련군, 旅順해군기지 철수완료, 중국에 반환 
 
7.  5  제 1기 全人代 제 2차회의 (∼30일); <1차 5개년계획초안>등 채택 
 
7. 31  모택동, 중공성,시,구위원회서기회의에서 <농업협동화의 문제에 대하여>보고, 전국적인 농업협동화운동을 호소 
 
8.  1  제 1차 중-미회담개시 (제네바) 
 
8. 25  국무원, <農村食糧統一買付, 統一販賣暫行辦法>, <都市食糧供給暫行 辦法> 공포 
 
10.  4  중공7기 6중전회(확대)개최 (∼11일); <농업협동화의 문제에 관한 결의> 채택; <8차당대회의 명부및 선거방법에 대한 규정> 채택 
 
12.  ?  모택동 편, <중국농촌의 사회주의 고조> 출판 
 
1956
1. 14  중공중앙, 지식분자문제에 관한 회의개최 (∼20일); 주은래, <지식분자 문제에 관하여> 보고 
 
1. 25  모택동, 최고국무회의소집, <전국농업발전요강초안>토의 
 
2. 14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개최 (∼25일); 후루시초프, 스탈린비판 비밀연설 
 
3. 26  중-소, 합동원핵연구소 설립에 관한 협정 서명 
 
4.  5  인민일보,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하여> 발표; 스탈린 평가에 소련과 미묘한 차이를 시사 
 
4. 17  코민포름 해산발표 
 
4. 25  모택동,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에서 <10대관계론> 연설 
 
5.  2  최고국무회의 개최; 모택동, <각 민주당파와의 장기공존, 상호감독> 강조, 학술연구의 <백가쟁명> 제창 
 
5. 26  陸定一 중공선전부장, <백화제방, 백가쟁명에 대하여> 연설 
 
6. 15  제1기 전인대 제3차회의 (∼30일); 廖魯言, <고급농업생산합작사모범정관 (초안) 에 관한 설명> 등 
 
6. 28  폴란드 폭동 (∼30일) 
 
7. 11  중-소 원자력이용신협정 서명 (모스크바) 
 
7. 26  나세르대통령, 스웨즈운하 국유화선언; 27일, 영불항의; 29일, 소련 지지 성명 
 
9. 15  중공 8차 당대회개최 (∼27일); 유소기, 정치보고; 주은래,2차5개년계획 등 보고; 당규약채택 
 
10. 23  부다베스트에서 학생, 노동자의 반정부 폭동발생 
 
10. 30  영국, 불란서 연합군, 수웨즈운하지대에서 합동작전개시 
 
10. 30  소련,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국가간의 우호협력관계의 발전강화의 기초 에관한 선언> 발표; 사회주의권의 평등, 독립, 주권의 존중 강조 
 
11.  4  소련군, 부다베스트에 무력진주, 카다르정권 수립 
 
11. 10  중공 8기 2중전회개최 (∼15일); 유소기, <당면의 정세> 보고 
 
12. 29  인민일보, <다시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역사적 경험에 대하여> 발표; 스탈린의 오류는 2차적 
 
1957
1. 18  중-소, 사회주의제국의 단결강화에 관한 공동선언 발표 (모스크바) 
 
2. 27  모택동,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대하여> 연설 
 
3. 12  모택동, 중공 전국선전공작회의에서 연설; 500만의 지식인들중 절대 다수는 사회주의노선 지지 (선집, 5, 403) 
 
4. 27  중공중앙, <정풍운동에 대한 지시> 발표; 각급지도자의 육체노동 참가지시 
 
5.  8  중공중앙 통일전선공작부, 민주제당파와 좌담회 진행 (∼ 6. 3) 
 
5. 21  章伯鈞 민주동맹부주석,민주당파의 정치참여를 요구 
 
6.  1  儲安平 光明日報 편집장, 공산당의 <당천하>사상을 비판 
 
6.  8  모택동, 우파분자의 공격에 대하여 반격하고 당내의 반우파투쟁을 지시 
 
6.  8  인민일보 사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반우파투쟁을 공개적 요구 
 
6. 19  모택동의 <인민내부의 모순을...> 을 가필 공표 
 
6. 22  소련공산당 중앙위 총회 (∼ 27일); 마렌코프, 몰로토프등 반당집단 추방결의 (7월 3일 발표) 
 
6. 26  제 1기 전인대 제 4차회의 개최 (∼ 7. 15);주은래, 정부활동보고; 우파비판개시; 章伯鈞, 자아비판 
 
7.  5  인민일보, 馬寅初의 <신인구론> 게제 
 
7. 13  龍雲 국방위부주석, 한국전쟁중 소련이 제공한 무기, 탄약등의 원조, 차관에 대하여 반제를 요구한 소련을 비난한 것에대해 자기비판 
 
7. 17  靑島에서 성,시 당위원회서기회의 개최 (∼ 21일); 모택동, 반우파투쟁을 정치전선과 사상전선에서 사회주의혁명이라고 규정 
 
7. 20  중공중앙, <지식인공작에 있어서 3가지의 조직조치에 관한 지시> 발표; 문화교육부문의 지도적인 지위에 당원 배치와 지식인 배제를 지시 
 
8.  1  인민해방군 30주년경축대회개최, 팽덕회, 군현대화를 강조 
 
8.  8  중공중앙, <전국 농촌주민에 대하여 대대적인 사회주의교육을 실시 할 것>을 지시, 대약진의 준비 
 
8. 26  소련, 대륙간탄도탄 (ICBM)실험성공 발표 
 
9. 20  중공 8기 3중전회(확대) 개최 (∼ 10. 9); 56∼67년농업발전요강 (수정초안)등 채택; 등소평, 정풍운동에 대해 보고 
 
10.  4  소련, 인공위성 스프티니크 1호 발사 성공 
 
10. 15  중-소국방용신기술에 관한 협정서명; 소련, 원폭의 견본,원폭생산 기술 자료제공을 약속 (1959년 6월 20일, 소련이 파기) 
 
11.  2  중국정부대표단 (단장: 모택동) 소련방문(∼21일); 10월혁명 40주년기념식 참가; 평화적 이행의 문제에 대하여 소련과 의견대립 
 
11.  6  중국군사대표단 (단장: 팽덕회), 소련방문 (∼12. 3); 소련정부 수뇌와 회담 
 
11. 10  중공중앙대표단, 소련공산당에게 평화이행문제에 대한 의견요강 제출 
 
11. 15  국무원, <공업관리제도 개혁에 관한 규정> 공포; 일부 중앙공업 관리권을 지방에 이관 
 
11. 18  모택동,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사회주의 12개국 공산상, 노동당 지도자 회의 (11.14-19)에서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는 연설을 행함 
 
12. 16  중공 신강자치구위원회 (확대)회의 개최, 지방민족주의경향 비판 
 
1958
1. 11  중공중앙공작회의 南寧에서 개최 (∼22일); 모택동, <大權獨占, 小權分散> 에 대하여 담화 
 
1. 18  중-소 과학기술연구원조 의정서 서명 
 
2.  1  제 1기 전인대 제 5차회의 개최 (∼11일); 이선념, 재정보고, 주은래, <국제정세와 외교정책에 관하여> 보고, 陳毅,외상에 임명; 농업지출 증가와 국방, 행정비 삭감 결의 
 
2.  1  모택동 국가주석, 龍雲 국방위 부주석과 黃翔同委員을 면직 발령 
 
2. 19  중국-북한 공동성명; 중국인민지원군의 년내 철수를 발표 
 
3.  8  成都회의 개최(-26일); 모택동, 대약진정책의 기본방침을 제기 
 
3. 27  소련, 불가린 수상 사임; 후르시초프 제1서기 수상겸임 
 
5.  5  중공 제 8기 2차회의 개최 (∼23일); 유소기, 정치보고에서 사회주의 건설 의 총노선을 정식으로 제시; 1956년 8차당대회의 국내 주요모순 규정을 변경; 모스크바회의에 대한 결의; 전국농업발전요강 2차 수정초안 채택 
 
5.  5  인민일보사설, <현대수정주의는 비판되어야 한다> 발표; 9일에 유고슬라비아 비판 
 
5. 20  모스크바에서 소련, 동구 8개국 경제상호원조회의 (코메콘)개최; 중국, 월맹, 북한, 몽고가 옵사버로 참가 
 
5. 23  해방군보, 劉亞樓, <모택동군사사상을 진정으로 학습하자> 발표, 모택동의 군사사상 강조, 중국의 핵개발 표명 
 
5. 25  중공 8기 5중전회, 林彪를 중앙위 부주석, 정치국상무위원에 선임; <홍기> 발간 결정 
 
5. 27  중공중앙군사위 확대회의 개최 (∼ 7.22); 종래의 군사방침을 비판, 핵개발, 소련으로부터 독립된 군사력 건설방침 결정 
 
7.  1  <홍기> 제 3기, 陳伯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 발표;사회주의 에서 공산주의에로의 전망 제시 
 
7. 31  후르시쵸프수상, 마리노프스키국방상등 소련정부수뇌,중국 방문 (∼8.3) 중동문제에 관해 모택동, 팽덕회와 회담; 소련, 중-소공동함대 창설, 無線基地건설등 제안. 모택동, 주권에대한 침해라고 거부 
 
8.  8  중-소기술원조협정 서명, 47기업의 건설원조, 주요설비의 공여등 
 
8.  9  모택동, 산동의 농촌을 시찰; 인민공사는 공-농-상-학-병이 일체라고 술회 
 
8. 17  중공중앙정치국 확대회의개최 (∼30일; 北戴河); 활동의 중점을 농업으로 부터 공업에로 이전 방침을 결정; 29일 <농촌인민공사 설립에관한 결의>채택; 철강증산을 호소 
 
8. 23  인민해방군, 金門, 馬祖島 포격 
 
8. 24  미국무성, 제7함대 대만해협에서 전투태세 돌입 발표 
 
9.  4  덜레스장관, 대만해협문제에 성명, 필요하다면 미군출동을 경고; 중국정부, 영해를 12 해리 선언 
 
9.  5  제 15회 최고국무회의개최 (- 8일); 모택동, <우리의 지도의 중점은 적시에 농업과 농촌공작으로부터 공업건설에로 이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언명(8일) 
 
9.  6  주은래, 미국의 대만,澎湖島침략비난, 중-미회담 제안 
 
9.  7  후르시초프수상, 미대통령에 서한; 중국에대한 공격은 소련에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경고 
 
9. 20  중공중앙, 국무원, <교육공작에 관한 지시> 발표 
 
9. 25  중공중앙, 국무원, <간부가 육체노동에 참가하는 것에 관한 결정> 
 
10.  6  팽덕회국방상, 금문도포격을 1주간 정지명령 발표 (13일 정지 연장) 
 
10. 23  덜레스-장개석 공동성명, 대륙무력반공 부정 
 
10. 25  중국인민지원군, 북한으로부터 철수 완료 
 
11.  2  제 1차 鄭州회의 (∼10일);인민공사운동의 시정을 토의 
 
11. 21  중공중앙 정치국 확대회의 (∼27일; 武昌); 모택동,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계급을 소멸한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고 언명 
 
11. 22  북한정부 대표단 (단장=김일성수상) 방중; 26일, 모택동-김일성 회담 
 
11. 28  중공 8기 6중전회 (∼12.10; 무창); 12월 10일, <인민공사의 약간의 문제에 관한 결의>; 인민공사정책의 과도한 부분을 시정; 모택동, 차기 국가주석 사퇴 
 
12.  1  후루시초프수상, 험푸리 미 상원의원과 회견; 인민공사를 비난 
 
1959
1.  1  큐바혁명 
 
1. 27  소련공산당 제 21차 임시대회 (∼2.5); 후루시초프, 자본주의제국과의 경제경쟁, 평화공존을 강조, 유고수정주의 공격; 7개년계획 채택 
 
2.  7  후루시초프-주은래, 50억루불 차관협정서명 (모스크바); 59∼67년에 소련은 중국에 78개의 대형중공업과 발전소 건설, 중국은 식량과 광물 로 상환하기로 합의 
 
2. 28  중공중앙정치국 확대회의 (2차 정주회의);인민공사의 정돈, 3급소유제 에 대하여 토론 
 
3. 10  티베트에서 무장반란 발생; 20일 반란진압 개시, 달라이 라마 인도 망명; 주은래, 티베트 지방정부 해산명령 
 
4.  2  중공 8기 7중전회개최 (∼5일, 상해); 59년도 국민경제계획초안 채택, 농촌인민공사 정돈공작 검토, 국가주석 후보결정 
 
4.  3  네루 인도수상, 달라이 라마의 인도 입국을 허가, 예우를 천명 
 
4. 18  제 2기 전인대 제 1차회의 개최 (∼ 27일); 유소기 국가주석 선출; 宋慶齡 董必武 부주석에 선출 
 
5.  6  인민일보 편집부논문, <티베트의 혁명과 네루의 철학>발표; 네루 비난 
 
6. 20  소련, 중-소 국방신기술협정(57.10.15 서명) 파기통고, 원폭 생산기술 제공 거부 
 
7.  2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 개최 (∼ 8.1;廬山): 모택동과 팽덕회 논쟁; 14일 팽덕회, 의견서 제출; 23일 모택동 반론 
 
7. 14  소련유학 중국학생 426명 귀국 
 
7. 25  중국농업성, <防災抗災에 관한 통지> 발표; 자연재해 시작 
 
8.  2  중공8기 8중전회개최 (∼16일; 廬山); 16일 <팽덕회 반당집단에 대한 결의> 경제계획의 수행사항 검토, 59년계획 목표 인하조정, 증산절약운동에 관한 결의 채택, 반우파투쟁 개시 
 
8. 25  중-인 국경에서 최초의 무력충돌 발생 
 
9. 15  후루시초프 소련수상, 미국방문 (∼27일); 미-소, 원자력 평화이용의 정보 제공에 합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25∼27일) 
 
9. 17  중국, 팽덕회국방상, 黃克誠 총참모장 해임; 국방상에 임표, 총참모장에 羅瑞卿 임명 
 
9. 30  후루시초프수상 방중 (∼10.3); 중-소의견대립 격화 
 
10. 18  鄧子恢 중공농촌공작부장, 생산책임제를 제창 
 
11. 10  중국, 중-인국경분쟁에서 소련의 <엄정중립>은 중국비난이라고 항의 
 
1960
1. 14  중국외무성, 미-일신안보조약 비난 
 
2. 11  후루시초프-네루수상 회담; 군축과 개발촉진에 합의 
 
3. 22  모택동, 당의 지도강화,정치우선, 대중운동견지의 <鞍鋼憲法> 찬양 
 
3. 30  제2기 전인대 2차회의개최 (∼10일); 60년도 예산, 전국농업발전요강 채택, 4월 11일 공포 
 
4. 16  홍기,제8기, <레닌주의만세> 발표; 소련의 평화공존노선을 격렬히 비판 중-소논쟁 공개화 
 
4. 18  전국민병대표자회의 개최 (∼27일); 민병의 농업지원 호소 
 
4. 19  한국, 4월 학생혁명 
 
4. 20  주은래, 인도방문, 네루수상과 회담; 공동성명, 국경문제 미해결 
 
5. 16  미-소정상회담 (파리); 후루시초프, 미국의 스파이 비행 비난, 17일, 회담결렬 
 
6. 21  루마니아노동당 제3차대회(부카레스트); 후루시초프, 제국주의가 존재 해도 전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연설; 26일,중국대표 반론 
 
6. 24  사회주의각국 공산당-노동자당회의개최 (∼26일; 부카레스트); 26일, 중국 대표단, 후루시초프의 언동을 비난하는 성명 제출 
 
7. 16  소련, 중국에 파견한 소련인 전문가 1천여명을 1개월내 철수 통고 
 
7. 31  신강에서 중-소국경분쟁 발생 
 
8.  5  陶鑄, <過渡期의 법칙문제에 관한 私見> 발표; 사회주의사회에서 계급투쟁의 존재 주장 
 
8. 16  李富春, <총노선의 홍기를 높이 쳐들고, 앞으로 전진하자> 발표; 농업기초론 주장 
 
9. 14  중공중앙군사위원회확대회의 개최(∼10.24); 임표주최 하에 <군대의 정치사상공작에 관한 결의> 채택; 
 
11.  3  중공중앙, <농업인민공사 당명의 정책문제에 관한 긴급지시 12조>, 소유제의 기초를 생산대에로; 자유지, 가정부업을 인정 
 
11. 10  세계 81개국 공산당, 노동자당대표자회의 개최(∼12.1; 모스크바); 
 
12. 29  인민일보, 1960년의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면적은 6천만 Ha (총경작지 면적의 절반이상) 발표
금년을 피크로, 59년부터 61년, 3년간에 식량난에 의하여 약 2천만명 정도가 사망 추정  
  
  
1961
1. 14  중공 8기 9중전회 (∼18일);공업의 기본건설 축소, 농업지원을 중시하는 <조정, 강화, 충실, 향상>의 기본방침 결정; 중앙동북국, 중앙화북국, 중앙중남국, 중앙서남국, 중앙서북국 등 6개의 중앙국 설립 
 
1. 31  중국-월맹, 1961∼67년 장기차관공여협정과 기술원조, 프란트공급 의정서 서명 (북경) 
 
1.  ?  吳 , <北京文藝> 1월호에 <海瑞의 罷官> 발표 
 
3.  ?  鄧拓, <北京晩報>에 <燕山夜話> 연제 개시 
 
5. 16  한국, 군사쿠테타 발생 
 
5. 21  중공중앙 공작회의 (∼ 6.12); <농촌인민공사공작조례 60조(초안)>을 제정(62.9 수정); <三自一包>를 승인 
 
6.  3  케네디 미대통령-소련 후루시초프수상 회담 (∼ 4; 빈) 
 
6. 19  중공중앙, <상업40조> 공포, 상품경제 부정경향을 시정 
 
6. 19  소련, 對中 60프로젝트 건설원조협정 서명 
 
7. 10  김일성수상 방중(∼15일); 11일, 중국-북한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서명 
 
7. 16  중공중앙, <원자력공업건설을 강화하는 약간의 문제에 관한 결정> 자력갱생에 의거 미사일, 핵탄두 개발을 확인 
 
7. 19  중공중앙, <자연과학공작중의 약간의 정책문제에 관한 지시 보고> 발표 학술, 사상문제와 정치문제의 경계를 구분, 지식인 획득 
 
9.  1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25개국, 제1차 비동맹제국 수뇌회의 개최 (∼6일; 베오그라드); 7일,<베오그라드 선언> 발표 
 
9. 16  중공중앙, <국영기업관리공작조례(초안)>(이른바 공업 70조) 공포; 공업관리의 강화, 기본건설 축소, 농업지원 지시 
 
10. 15  소련공산당 22차당대회 개최(∼31일); 후루시초프, 알바니아 당지도부 비난; <신강령>채택; 정쟁방지의 가능성과 평화공존의 필요성 강조 
 
10. 19  주은래, 소공 22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국가간의 단결 강조, 형제당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은 유해하다고 연설 
 
10.  ?  鄧拓, 吳 , 廖沫沙, 잡지 <前線>(북경시당위 기관이론잡지)에 <삼가촌예기> 연재 개시 (∼64.7) 
 
12. 10  소련, 알바니아와 단교 발표 
 
1962
1.  1  인민일보 신년사설; 인민공사의 생산대를 기본계산단위로 하는 것 공표 
 
1. 11  중공중앙확대공작회의 (7천인대회;∼ 2.7)에서 유소기등 3면홍기 정책을 비난; 30일, 모택동, 민주집중제의 문제에 대하여 강화 
 
3. 15  맥나마라 미국방장관, 월남내전에 대한 미국의 직접개입을 공식 확인 
 
3. 27  제2기 전인대 3차회의 (∼4.16); 주은래 정치보고; 국민경제조정 10대 임무 제시, 농업생산에 중점 결정 
 
4. 27  중공중앙, <당원, 간부의 재심사공작을 조속히 하는 것에 관한 통지> 최근 수년간 비판된 당원의 명예회복을 지시 
 
4.  ?  신강 이리지구에서 중-소 국경분쟁 
 
5. 24  등자회 중공농촌공작부장, 당중앙과 모택동에게 농업생산책임제 제안 
 
6.  1  <홍기> 제 11기, 사설에서 과학연구에 있어서 백가쟁명과, 자본주의 국가의 기술경험을 학습 중요성 강조 
 
6.  6  코메콘총회(∼7일; 모스크바); 사회주의적 국제분업의 기본원칙 채택; 루마니아, 초국가기관 설치에 반대, 몽고 가맹승인, 알바니아 결석 
 
6. 16  팽덕회, 8萬言의 명예회복 요구서 제출 
 
8.  ?  농촌인민공사 공작조례(수정초안) 
 
9. 24  중공8기 10중전회 (∼27일); 모택동, <계속혁명론>을 전개; 사회주의사회 에서 계급투쟁의 존재 주장; <농업을 기초로, 공업이 지도하는 국민경제의 총방침>; 모택동은 이 회의에서 농업생산책임제와 명예회복 움직임을 비판 
 
10. 20  중-인국경에서 인민해방군 전면공격 개시;11월 22일, 중국군 정전 
 
10. 22  케네디 미대통령,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기지 건설 발표; 쿠바해상봉쇄 
 
10. 28  후루시초프수상, 쿠바에서 공격적 병기 철수를 미국에 통고 
 
11.  6  산동성 역사학회, 산동성 역사연구소, 공자학술토론회 개최(∼12일; 濟南) 
 
1963
2.  9  인민해방군, <雷鋒 학습운동>에 관한 통지 발표 
 
3.  5  모택동의 <雷鋒으로부터 학습하라>가 인민일보에 게재, 전국적으로 뇌봉 학습운동 전개 
 
3. 27  중공중앙, <중국인민해방군 정치공작조례>공포; 모택동사상을 지침 
 
5.  9  모택동, 3대혁명운동(계급투쟁, 생산투쟁, 과학실험)을 제창 
 
5. 20  중공중앙, <당면한 농촌공작에 관한 약간의 문제에 대한 결정> (이른바 前十條) 발표; 계급투쟁 강조, 빈농,하층중농에의거한 四淸운동을 지시 
 
6.  5  崔庸健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방중 최용건-유소기, 미제국주의와 일군국주의 반대 공동성명 
 
6. 14  중공중앙, 소련공산당 중앙위 서한(3.30자)에 대한 반론,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총노선에 대한 제안>을 공표; 소련과 전면적인 이념투쟁을 전개 
 
6. 29  중앙安置工作지도소조, 금후 15년내에 매년 100만의 청년을 하방 결정 
 
7. 14  소련공산당중앙, <당각조직 및 전공산주의에 대한 공개장>, 중국의 대소 서한을 공표 
 
7. 15  미,영,소 3국, 핵실험정지회담 개시(∼25일;모스크바); 부분적 핵정지조약 
 
9.  5  중공중앙, 중앙공작회의 (∼27일);<농촌 사회주의교육운동에 있어서 약간의 구체적 정책에 관한 중공중앙의 규정(초안)> (이른바 後十條) 작성; 위로부터 공작조 파견에 의한 간부에 대한 잘못된 처벌을 비판 
 
9.  6  인민일보-홍기 편집부, <소련공산당 지도부와 우리와의 의견 차이의 유래>; 7.14공개장에 대한 비판 제1차 논문 발표 
 
9. 12  인민일보-홍기, <스탈린문제에 대하여> (소련 공개비판, 제2차 논문) 
 
9. 26  인민일보-홍기, <유고는 사회주의국가인가> (제 3차 논문) 
 
11. 17  제2기 전인대 4차회의 (∼12.3);이부춘부수상, 64년도 국민경제계획 초안, 주은래,국내외 정세와 임무 
 
11. 19  인민일보-홍기, <전쟁과 평화 문제에서 2가지 노선> (제 5차논문) 
 
12. 12  인민일보-홍기, <두가지 근본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평화공존정책> (제 6차 논문) 
 
1964
1.  1  해방군보, 사설에서 모택동사상학습운동을 호소 
 
1. 21  인민일보, 사설 <미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전세계의 모든 세력은 단결하라>, <중간지대론> 전개 
 
2.  1  인민일보 사설에서 <해방군으로부터 학습하자> 운동을 호소; 군의 정치, 사회에로의 개입 시작 
 
2.  5  중공중앙, <大慶으로부터 학습운동> 지시 
 
2. 14  주은래, 동남아시아 방문 (∼3.1) 
 
5. 15  중공중앙 공작회의 (∼6.17); 3차5개년계획, 정치-농업공작등 토의 농업지원과 국방강화의 균형발전, 기초공업의 발전; 모택동, 전쟁의 위험성 강조; <大三線>의 후방건설을 제기; 농촌의 1/3 지도권이 문제 
 
5.  ?  군총정치부, <모택동어록> 출판 
 
6.  5  북경에서 현대京劇경연대회 (∼7.31); 경극혁명 시작 
 
6. 27  모택동, 문예계의 수정주의적 경향에 경고; 彭眞,陸定一,康生,周揚,吳冷西등으로 문화혁명 5인소조 결성 
 
8.  2  통킹만 사건 발생 (미국함대, 월맹연안지역에서의 충돌) 
 
8. 18  모택동, 중앙서기처회의에서 전쟁에 대비하여 대도시와 연해안의 공업을 오지로 이전하고, 후방기지건설 지시 
 
8. 31  홍기 제 16기, <철학전선에 있어서 새로운 논전> 楊獻珍의 <2개가 합하여 1이되는 것> 비판 
 
10.  5  제2차 비동명제국 수뇌회담 (∼10일; 카이로); 중공의 국제연합가입 지지 
 
10. 15  소련, 후루시초프 해임발표; 후임에 브레즈네프 제1서기, 평화공존 지속을 언명 
 
10. 16  중국, 제1차 원자폭탄실험 성공 
 
12. 17  모택동, 관료주의자 계급과 빈농, 하층중농은 첨예하게 대립되는 두개의 계급이고, 관료주의자 계급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지도자들이다 주장 
 
12. 21  제3기 전인대 1차회의 (∼65.1.4); 주은래, 정부활동 보고; <三自一包>, <三和一少>를 비판, <4개현대화>를 제시; 국가주석에 유소기, 부주석에 송경령, 동필무, 국무원총리에 주은래 선임 
 
1965
1. 14  중공중앙, <농촌사회주의교육운동 중에 제기되는 당면한 약간의 문제> (이른바 23개조) 발표; <당내의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의 타도 를 호소 
 
2.  5  코시긴 소련수당, 월맹방문(6∼10)전후로 (5일과 10∼11일)에 북경방문 
 
2.  6  코시긴 소련수상과 호지명대통령과의 회담; 월맹 방위강화를 확인 
 
2.  7  미군, 월맹 폭격 개시 
 
2. 13  중국정부 성명, <전세계는 베트남과 인도차이나 인민을 지지하라> 
 
2. 14  인민일보 사설, <중-소단결을 수호하기위한 싸움> (중-소동맹조약에 관하여 3년만에 기념 사설게제) 
 
2. 26  중공중앙, 국무원, <서남 3선 건설체제문제에 관한 결정> 발표; 후방전략기지 건설 본격화 
 
3.  1  세계공산당 협의회 개최 (∼5일; 모스크바); 19개국 참가, 중국 결석; 미군의 월남에서 철수 요구결의 
 
3. 25  북한, 월맹에 지원군 파견 용의 표명 
 
3. 29  프라우다, 베트남문제에 있어서 중국과의 통일행동을 호소 
 
4. 12  중공중앙, <전쟁준비공작을 강화에 관한 지시> 발표 
 
5. 10  羅瑞卿부수상겸 인민행방군 총참모장, <독일 파시즘의 승리를 기념하고 미제국주의와 최후까지 싸우자> 발표; 반미통일전선 주장 
 
5. 22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인민해방군의 계급제도 폐지 
 
6. 22  한-일기본조약 서명 (동경) 
 
9.  3  임표국방상, <인민전쟁의 승리 만세> 발표; 자력갱생의 인민전쟁 주장 
 
9. 17  인민해방군 통참모부, 총정치부, 민병공작회의 개최; 모택동의 인민전쟁사상으로 무장 
 
9. 18  모택동, 중앙공작회의 (∼10.12)에서 국방건설을 제1로 하고, 3선 건설을 신속하게 할 것을 지시; 
 
9. 29  모택동, 오함 비판을 지시 
 
10.  1  인도네시아에서 9.30운동 좌절, 육군이 실권 장악 
 
11. 10  姚文元, 상해 文匯報에 <신편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함> 발표; 
 
11. 11  인민일보, 홍기 공동사설, <소련공산당 신지도부의 이른바 '공동행동' 에 반대한다> 발표; 소련 배제를 제창 
 
11. 18  임표, 모택동사상의 활학활용을 강조한 <정치돌출의 5원칙> 제창; 
 
11. 28  프라우다 사설, <만국공산주의자의 국제주의적 의무> 발표; 공동행동 거부는 베트남인민의 전투를 방해, 침략자를 원조하는 것이라고 비난 
 
12.  8  중공중앙정치국 확대회의 (∼15일; 상해); 임표등이 <정치돌출에 반대한> 나서경을 비판, 실각; 임표가 군을 완전 장악 
 
1966
1.  3  다오메, 중국과 국교 단절 
 
1.  6  중앙아프리카, 중국과 국교 단절 
 
2.  7  문화혁명 5인소조(조장=팽진), <당면의 학술토론에 관한 보고 요강> (2월 요강) 작성; 중공중앙, 학술토론과 정치토론의 구별을 주장 
 
3. 22  중공중앙, 소련공산당 23차대회에 불참을 통고 
 
3. 26  유소기부부, 파키스탄(∼31일), 아프카니스탄 (4.4∼8),파카스탄(4.15∼17), 버마 (4.17∼19) 방문 
 
4.  6  인민일보 사설, <정치돌출은 일체의 공작의 근본이다> 발표; 정치돌출 에 관한 최초의 논문; 이후 다수의 논문이 발표 
 
4. 10  중공중앙, 임표가 강청에 의뢰하여 소집한 <부대의 문예공작 좌담회 紀要>를 비준; 문학,문예계는 건국이래 모택동사상과 대립하는 반당, 반사회주의적 흑색노선이 우리에게 독재를 행해왔다고 주장; 문혁의 강령적 문건 
 
4. 18  해방군보 사설, <모택동사상의 위대한 홍기를 높이 쳐들고, 사회주의 문화대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자> 발표; 처음으로 '사회주의 문화 대혁명'이란 용어 사용 
 
5.  4  중앙정치국 확대회의 (∼26일), 팽진, 나서경, 육정일, 양상곤 등을 반당집단이라고 비판, 모든 직책에서 해임 
 
5.  7  모택동, 임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민해방군은 거대한 학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시 (5.7지시) 
 
5. 16  중공중앙, <5.16통지>를 당내에 돌림; <2월 요강>을 취소, 문혁 5인조 를 폐지; 중앙문화혁명소조 (중앙문혁소조) 설치 결정; 문화영역에서 부르조아 반동노선을 비판하고, 당-정-군내의 부르조아 대표를 일소 선언; 문화혁명의 개시를 알리는 강령적 문건; 1967년 5월 17일에 공표 
 
5. 17  해방군보 편집부, <정치돌출은 사람 사상의 혁명화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을 제1로 강조 
 
5. 18  임표,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쿠테타 가능성 언급; 모택동 천재론을 비롯하여, 모택동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배격할 것이라고 경고 
 
5. 25  북경대학 철학과 강사, 섭원재(攝元梓)등 북경대학에 대자보; 陸平 북경 대학장 등을 격렬히 비판 
 
5. 28  중앙문화혁명소조 성립; 조장=陳伯達; 고문=康生; 부조장=江靑, 張春橋 
 
5. 29  淸華대학 부속중학에서 최초의 홍위병조직 등장 
 
6.  1  모택동, 杭州에서 攝元梓의 대자보를 <20세기 60년대에 중국에 있어서 파리 콤뮨 선언서>라고 찬양; 전국적으로 방송할 것을 지시; 동일 밤에 방송 
 
6.  3  중공중앙, 북경시당위 개조결정; 팽진 해임, 신임 북경시위원회 제1 서기로 李雪峰 취임; 동일, 신북경시위원회, 북경일보, 북경만보 의 편집위 해산; 前線 편집위 해산과 일시 발행 정지등 결정 
 
7.  1  인민일보사설, <모택동사상 만세> 발표; 중공당 창립 45주년기념; 모택동사상에 반대하는 것은 혁명과 인민의 불구대천의 적이라고 주장 
 
7. 16  모택동, 양자강에서 수영; 25일 인민일보 1면에 보도 
 
8.  1  인민일보사설, <전국이 모택동사상의 거대한 학습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모택동의 <5.7지시> 공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강령 
 
8.  1  중공 8기 11중전회 (∼12일);<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에 대한 결정>(16조) 채택(8일 발표); 당권파 타도를 호소; 유소기는 2위에서 8위로 강등, 임표는 1인의 부주석으로 모택동 다음의 2위, 진백달, 강생 등이 정치국 상무위원; 소련을 비난, 소련과의 공동행동 거부; 전면적 문혁 개시 
 
8.  5  모택동의 대자보, <사령부를 포격하라> 발표; 유소기-등소평 비판 
 
8. 12  북한 노동신문사설, <자주성을 옹호하라>; 교조주의와 좌익기회주의 비판, 자주노선 강조 
 
8. 18  모택동, 제 1차 홍위병 접견 (100만인 집회) 
 
8. 20  북경의 홍위병, 四舊타도를 외치며 가두로 진출; 이후 홍위병운동은 상해, 남경, 서안등으로 확산 
 
10.  9  중공중앙 공작회의(∼28); 진백달, 문혁에 반대하는 유소기-등소평의 부르조아 반동노선이 있다고 비난; 양자는 자기비판; 모택동, 문혁의 전개과정에 곤혹한 표정 
 
10. 13  코시긴 소련수상, 소련-폴란드우호집회에서 베트남지원을 위한 공동행동을 거부하는 중국을 비난; <푸라우다> 다시금 문혁 비판 
 
10. 27  중국, 최초로 중거리 미사일, 핵병기 발사실험 성공 
 
1967
1.  6  張春橋, 王洪文등 상해의 조반파, 상해시당위, 정부의 탈권 선언 
 
1.  8  모택동, 상해의 탈권투쟁을 <대혁명>이라고 찬양 
 
1.  9  중국의 각국 주재 대사, 차례로 귀국 
 
1. 13  중공중앙, 국무원, <공안 6조> 공포; 모-임 반대를 반혁명으로 규정, <黑5類> 출신자의 홍위병운동 참가를 금지 
 
1. 23  중공중앙, 국무원, 중앙군사위, 중앙문혁소조, 해방군의 개입 명령 
 
1. 26  조선 중앙통신, 홍위병신문의 김일성 비난에 반론 
 
1. 27  인민일보사설, <소련수정주의의 흉폭한 도발을 격퇴하라>이래, 반소데모 개시 
 
1. 30  홍기사설, <프로레타리아 혁명파의 탈권투쟁에 대하여>, 혁명세력의 대연합을 강조, 혁명대중, 해방군, 혁명간부 3결합에 의한 임시권력기구 설립 제창 
 
1. 31  흑룡강성 홍색조반혁명위가 성의 당, 정, 文權 탈취를 선언; 흑룡강성 임시최고권력기구 성립 (주임=潘復生). 최초의 혁명위원회 성립. 인민일보 사설(2.10) 
 
2.  5  <상해 인민공사> 성립 선언 
 
2. 12  모택동, 장춘교 등과 18일까지 3회의 회담; 상해 콤뮨에서 당과 군의 지도권확보에 불만 표명, 혁명위원회 명칭을 주장 
 
2. 14  동일과 16일, 당정군의 원로와 문혁파, 상해 상황과 콤뮨을 둘러싸고 격론, 이른바 <2월 역류>사건; 모택동, 원로에 격노, 중앙정치국 기능 중지, 중앙문혁소조가 주도 
 
2. 24  상해시 혁명위원회 성립 (주임=장춘교) 
 
3. 19  중앙군사위, <三支兩軍>을 명령 
 
4.  1  戚本禹 <애국주의인가, 아니면 매국주의인가> 발표; 유소기를 <중국의 후루시초프>라고 부름 
 
4. 10  북경의 홍위병 20-30만, 청화대학에서 王光美를 규탄 
 
6.  5  중동전쟁 발발 
 
6. 17  중국, 최초의 수폭실험 성공 
 
6. 23  미-소 정상회담; 베트남, 중동, 중국, 핵군축문제 등 협의 
 
7.  7  모택동, <중국은 세계혁명의 병기공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언명; 
 
7. 15  모택동, 무한에서 주은래, 謝富治, 王力등과 무한문제의 해결 협의 
 
7. 20  무산사건 발생; 무한 <百萬雄師>와 무한警備師, 무한을 방문한 중앙 파견 사부치, 왕력 등을 감금. 22일 사-왕 북경에 귀환, 모택동, 무한에서 상해로 피신 
 
7. 22  강청, <文으로 공격하고, 武로 방어하라> 방침 제창; 무투 확대 
 
8.  8  타이, 말레지아, 필립핀, 인도네시아, 싱가폴, 5개국, 방콕에서 동남아시아제국연합 (ASEAN)결성 공동선언 발표 
 
8. 22  홍위병, 북경의 영국대리대사관 사무소에 난입, 방화 
 
9.  5  중공중앙, 국무원, 중앙군사위, 중앙문혁소조, <해방군의 무기, 장비, 물자의 약탈을 금지하는 명령> 통달, 군의 탈권투쟁 금지; 이로서 王力, 戚本禹등 실각 
 
9. 14  인민일보 사설, 혁명적 대연합을 호소 
 
11.  6  홍기, 인민일보, 해방군보 공동사설, <10월사회주의혁명으로 열린 길을 따라 전진하자>; 프롤레타리아독재하의 계속혁명 이론 제시 
 
11. 23  홍기, 인민일보, 해방군보 편집부 공동논문, <중국농촌에서 두 가지 노선의 투쟁>; 농촌에서 유소기의 반혁명 수정주의노선, 부농정책, 합작사해체, 三自一包, 後十條제정 등을 비판 
 
1968
1.  6  호남성의 <省無産階級革命派 대연합>, <중국이여 어디로 가는가> 발표; 중공중앙은 <성무련>을 반혁명조직으로 단정, 해산 명령 
 
1. 28  중국정부,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해 북한 지지 성명 
 
3. 22  중공중앙, 국무원, 중앙군사위, 중앙문혁소조, 楊成武 총참모장대리겸 중앙군사위 상무위원회 부비서장을 해임 
 
3. 31  존슨대통령, 북폭의 일방적 중지와 대통령선거 불출마 발표 
 
4. 23  소련공산당 기관지 <코뮤니스트> 사설에서 중국의 심각한 사회정치적 위기의 책임은 대국모험주의적 야먕를 가지고 맑스-레닌주의에서 이탈한 모택동 일파에 있다고 비난 
 
7.  3  중공중앙, 국무원, 중앙군사위, 중앙문혁소조, 武鬪의 즉각 중지 명령 
 
7. 22  인민일보, 교육혁명에 대한 모택동 지시 발표; 이공과대학 재개, 수업년한의 단축, 노동자, 농민으로부터 학생선발 등 제시 
 
7. 27  노동자, 해방군의 모택동사상 선전대, 청화대학에 진입, 홍위병운동 진압 
 
8. 20  소련,동구 5개국군, 책코에 침입 (책코사건) 
 
8. 23  주은래수상, 루마니아대사관의 건국기념 리셉션에서 소련군의 점령에 저항하는 체코인민의 투쟁지지, 소련은 사회제국주의, 사회파시즘으로 타락 비난 
 
8. 28  姚文元, 모택동의 의향을 받들어 <노동자계급이 모든 것을 지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발표 
 
9.  5  티베트 자치구 혁명위 성립 (주임=曾雍雅); 29일, 1급행정구 전체에 혁명위가 성립 
 
9. 13  알바니아,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10.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승리의 대도를 勇躍 전지하라> 鬪批改의 신단계, 整黨건설의 중요성 강조 
 
10. 13  중공 8기 12중전회 (확대) 개최 (∼31일); 中央專案審査小組, <叛徒,內奸, 工賊 유소기의 죄행에 대한 심사보고> 채택 
 
10. 19  중국, 베트남의 파리 평화회담(5.13∼)을 처음으로 보도 
 
11. 12  브레지네프 서기장, 폴란드당대회에서 <제한주권론> 제창 
 
11. 27  중국외무성, 미국의 대만 철수와 평화 5원칙의 기초에 입각, 중-미회담을 1969년 2월 20일 재개 호소 (동일, 미국무성 수락) 
 
11. 29  주은래, 북경주재 알바니아대사 주최의 건국기념축하연에서 反帝 反修 통일전선 주장 
 
 
1969
3.  2  우수리강의 珍寶島(다만스키도)에서 중-소 무력충돌 
 
3.  4  인민일보, 해방군보, 공동사설, <신 짜르를 타도하자> 2일의 사건은 소련 사회제국주의의 본성을 폭로한 것이라고 비난 
 
3. 15  제2차 진보도 사건 
 
3. 30  소련정부, 중-소 국경회담을 제창 
 
4.  1  중공 제 9차 당대회 (∼24일); 임표, 정치보고; 당규약 채택, 임표를 후계자로 명기 
 
4. 28  중공 9기 1중전회; 지도부 구성; 주석=모택동, 부주석=임표, 정치국 상무위원=모, 임, 진백달, 주은래, 강생; 군과 문혁파 진출 
 
5. 15  耿飇 알바니아 신임대사 부임; 문혁개시 이래 중국은 외교관계가 있는 46개국중 黃華 아랍연합 주재대사를 제외하고 전원을 소환; 외교관계 정상화 후 신임대사 제 1호 
 
6.  5  세계공산당, 노동자당대회개최 (∼17일;모스크바); 75당 참가; 중국,북한, 알바니아, 월맹, 유고, 일본, 인도네시아 등 불참; 전반제세력의 행동통일을 호소하는 기본문건 발표 (17일) 
 
6. 10  신강 서북부에서 중-소 군사충돌 
 
6. 13  소련외무성, 국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2∼3개월 내 국경교섭 회담제의 
 
8.  1  모택동, <인민해방군은 영원히 전투대이다>고 지시 
 
8.  8  인민일보, <전쟁에 대비하고, 재해에 대비하고, 인민을 위하여>라는 모택동의 지시를 게제 
 
8. 13  중-소 양군, 신강자치구 裕民縣 테레구치地區에서 충돌, 양국 외무성, 항의각서 발표 
 
8. 27  중공중앙, 전국인민 防空指導小組와 각 省 차원에서 인민 방공지도 소조 설치; 지하의 방공망을 전국적으로 확장 
 
9.  3  호지명 대통령 사망; 주은래 조문(4일); 코시긴 조문(6일) 
 
9. 11  주은래수상, 북경공항에서 코시긴수상과 회담; 국경의 현상유지, 무력충돌의 방지에 합의 
 
9. 30  북한 당-정부대표단(단장=최용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장), 수년만에 국경절 참가를 위해 방중 
 
10. 8  중국외무성, 중소국경문제에 관하여 <중화인민공화국문건>을 발표; 6월13일자 소련정부성명을 반박;5개항목에 달하는 기본주장 성명 
 
10. 14  인민일보, 북경시 혁명위 집필그릅, <중국사회주의공업화의 길> 발표; 독립자립,자력갱생의 방침에 의거, 대중의 적극성 환기, 농업을 기초로 공업이 지도하는 기본방침을 강조 
 
10. 17  임표,<전쟁준비를 강화하고, 적의 기습을 방지하는 것에대한 긴급지시> (임표의 제 1호 명령); 전군을 긴급전투준비체제에 들어감; 18일 모택동이 전투준비체제의 일부 해제를 지시 
 
10. 20  북경에서 중-소국경문제 차관급회담개시; 중국대표=喬冠華 외무차관; 소련대표=쿠스네초프 제1외무차관 
 
10. 26  중공중앙, 대학의 하방계획을 지시 
 
11. 12  유소기, 開封에서 사망 
 
12.  1  雷陽 와르샤바 주재중국 임시대사-스테셀 미국대사 회담; 미-중 대사급회담재개 결정 
 
12. 24  미국, 제7함대의 대만해협 순항 완화 발표 
 
1970
1. 20  제 135차 중-미대사급회의(와그샤바) 
 
2. 15  전국계획회의 (∼3.21); 1970년도 국민경제계획 결정; <大三線>추진을 위한 공업개편 토의 
 
2. 18  닉슨대통령, 외교특별교서에서 평화 3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 
 
3. 18  캄보디아에서 쿠테타 발생; 시아누크추방; 20일 시아누크, 북경에서 쿠테타의 위법성 성명 
 
3. 23  시아누크, 민족연합정부, 캄보디아해방군의 통일전선 결성 발표 
 
4.  5  주은래수상, 북한방문(∼7일) 
 
4. 22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편집부 논문, <레닌주의인가, 혹은 사회제국 주의인가: 위대한 레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 소련은 자본 주의의 부활, 사회제국주의에로 전화되었다고 비난 
 
4. 24  중국, 처음으로 인공위성 발사 성공 (소, 미, 불, 일에 이어 5번째) 
 
5.  1  미군, 월남정부군, 캄보디아영내에 침공 
 
5. 20  모택동, <전세계의 인민은 단결하여 미침략자와 그의 하수인을 타도하자> 발표 
 
8.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경계심을 높이고, 조국을 수호하자: 중국인민해방군 창립43주년을 기념하여> 발표 
 
8. 23  중공 9기 2중전회(∼9.6; 廬山); 국가주석제의 설치문제로 분란 
 
9.  3  인민일보, 해방군부 공동사설, <부활하는 일본군국주의를 타도하라: 중국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25주년을 기념하여> 
 
10.  1  임표, 국경절 식전에서 제4기 전인대를 영입하자는 연설; 진백달 결석 
 
10.  6  중국-월맹 경제기술원조협정 및 군사원조의정서 서명 (북경) 
 
10. 13  중국-캐나다 국교수립; 공동성명에서 대만은 중국영토의 불가분의 일부 라는 중국주장에 캐나다정부가 유의한다고 표명 
 
11. 10  파키스탄 대통령 야히아 칸, 닉슨의 친서를 휴대, 중국방문; 13일 모택동과 회담 
 
11. 20  제 25차 유엔총회본회의; 알바니아 등 18개국 제안, <중국초청, 국부추방>결의안 가결 
 
12.  4  호남성당위원회 성립 (최초의 새로운 성급당위) 
 
12.  9  일-중국교회복촉진의원연맹 발족(회장=藤山愛一郞), 379의원 참가 
 
12. 14  폴란드, 반정부폭동 발생; 20일, 고물카 제1서기 사임  
 
12. 18  모택동, 에드가 스노와의 회견, 닉슨을 환영 환영한다고 말함 

1971
1.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공업은 大慶에서 학습하고, 농업은 大寨에서 학습하자>; 호남성당위 집필그룹, <당의 민주집중제를 거듭 강화하자> 발표; 민주집중제 경시 경향을 경고 
 
2.  8  월남정부군, 미군의 지원으로 라오스 침공개시 
 
3.  3  중국, 제2호 인공위성 발사 성공 
 
3.  5  중국 당-정부대표단(단장=주은래), 월맹방문(∼8일); 중국의 전면적 지원 성명을 발표 
 
3. 18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편집부논문,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승리 만세>; 파리 콤뮨 100주년기념, 소련을 사회제국주의, 현대수정주의라고 격렬하게 비난 
 
3. 22  임표집단, 쿠테타를 계획; <五七一工程紀要>를 작성 
 
4.  7  제 3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중국탁구대표단, 미국팀을 중국초청 
 
4. 14  미 닉슨대통령, 대중 무역제한 완화, 인사교류 확대 등 5항목의 신대중국 정책 발표 
 
4. 16  닉슨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중국정부의 승인과 미-중국교수립이 미정부의 장기적 목표라고 언급, 중국 방문 의사를 표명 
 
4. 25  <라이프>지, 4월30일호, 에드가 스노의 모택동회견기 게제, 모택동은 닉슨을 포함, 미국의 정부지도자와 회담용의 언명 
 
4. 27  인민일보 사설,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미국인민에게 경의를 표한다> 4월 24일의 미국내 반전집회를 찬양 
 
6.  1  루마니아 당-정부대표단 (단장=차우세스크 서기장) 중국방문(∼6일); 모택동-임표와 회담 
 
6. 20  인민일보 사설, <공업은 대경에서 배우자> 
 
7.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편집부 공동논문, <중국공산당 50주년을 기념한다> 발표 
 
7.  9  키신져 미대통령보좌관, 비밀리에 중국방문(∼11일); 주은래와 회담 
 
7. 16  신화사, 닉슨대통령, 내년 5월이전에 방중 발표 (미국과 동시발표) 
 
7. 20  <중공중앙, 닉슨의 북경방문에 관한 통지>; 닉슨의 초청은 소련의 수정사회제국주의를 고립시키는 중요한 전략배치라고 주장 
 
8.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8.1건군절을 기념한다>; 당에 의한 군의 지도 강조 
 
8. 14  모택동, 9월 12일에 걸쳐 각지를 순시, 책임자와 회담, 천재론 등을 비판, 임표를 비판 
 
8. 19  흑룡강성당위 성립, 제1서기=汪家道; 29성, 시, 자치구 모두에 당위원회 성립 
 
9.  8  임표, 쿠테타를 시도, 모택동의 암살과 별도의 당중앙 설립 시도 
 
9. 13  임표, 비행기로 소련으로 도피하려다 몽고영내에서 추락 사망 
 
9. 17  일-중의원연명대표단 (대표=藤山愛一郞) 방중 (∼10.4) 
 
10.  2  키신져 대통령보좌관, 닉슨의 중국방문을 타협하기 위해 10월하순에 중국방문 발표; 10월 20일 방중; 일-중의원연맹과 중-일우호협회대표, 국교회복 4원칙 합의 공동발표 
 
10. 25  제 26차 유엔총회 본회의, 중국초청, 대만추방의 알바니아안을 가결; 중국의 유엔복귀 결정; 대만, 유엔에서 탈퇴 발표 
 
10. 28  인민일보 사설,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표; 중국의 유엔복귀란 현실은 초강대국에 의한 유엔의 조작, 독점이 곤란에 직면했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 
 
11. 15  유엔총회에서 喬冠華 중국대표, 제3세계와의 협조, 미-소 비판 
 
12. 30  중국외무성, 尖閣列島는 중국고유의 영토라고 성명 
 
1972
1.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단결하여 한층 더 큰 승리를 쟁취 하자>; 혁명에 힘을 쏟고, 전쟁에 준비하는 방침을 관철, 실행하여 제4기 전인대를 맞이하자는 주장 
 
2. 21  닉슨대통령, 중국방문(∼27일); 모택동, 주은래와 회담; 27일에 미-중 공동성명 발표(상해) 
 
3.  3  월맹신문, 미-중공동성명에 대하여 닉슨대통령을 비난 논평 
 
3.  4  북한 노동신문, 미-중공동성명은 중국인민의 승리라고 평가 
 
4.  1  홍기 제4기, 史軍논문 <세계사를 학습하라> 오늘날, 제국주의와 사회제국주의의 양대 초강대국은 인민의 혁명적 앙양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 
 
4.  1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년차보고에서 중-소국경에 소련군 4개사단 발표 
 
7.  7  일본, 田中角榮내각성립. 田中수상, 중-일정상화를 조속히 성사시킬 것을 발표. 9일 주은래수상, 田中내각의 대중자세를 환영 
 
7. 16  주은래수상, 佐佐木更三元 사회당위원장과 회견, 田中수상의 방중 환영 
 
9. 25  田中수상, 중국방문, 주은래와 회담; 중-일국교정상화에 합의; 국교수립과 동시에 일화조약의 존속의의 실효를 표명 
 
10.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중화인민 공화국성립 23주년을 축하한다>; 소련 수정주의 집단은 제국주의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 
 
10.  8  키신저 대통령보좌관과 월맹측 비밀회담 
 
11.  1  홍기 11기, 史軍논문 <민족해방운동사를 읽고>; 미소 양강대국의 중간지대의 나라들도 양 초강대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는 <신중간지대론> 주장 
 
1973
1.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새해의 과업>; 모택동의 <방공호 를 깊이 파고 식량을 비축하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지시를 밝히고 소련 수정사회제국주의를 공격하고, 소련의 수정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의 음모술책은 역사의 흐름을 저지할 수 없다고 주장 
 
1. 27  미국, 월맹, 월남 임시혁명정부외상, 베트남 평화협정 및 의정서에 정식 서명 (파리) 
 
2.  9  허담 북조선외상, 방중 (∼14일); 공동성명에서 조선문제는 외부의 간섭이 없이 조선인민 자신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 
 
2. 15  키신저 대통령보좌관, 중국방문(∼19일); 연락사무소 설치, 과학문화교류, 무역의 확대에 합의 
 
3.  1  로저스 미 국무장관과 姬鵬飛 중국외상, 파리에서 회담 
 
3. 10  중공중앙, 등소평의 당원으로서의 권리와 국무원 부수상의 직무 회복 결정 
 
6. 16  브레즈네프서기장, 미국방문(∼25일); 18∼20일, 3회에 걸쳐 닉슨대통령과 회담; 핵전쟁방지협정에 서명 
 
8.  7  인민일보, 楊榮國의 논문,<완미한 노예제를 옹호한 사상가-공자> 발표; 공자사상은 노예주 귀족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지적 
 
8.  7  인민일보 사설, <지식청년의 農山村定着工作을 한층 훌륭하게 전진 시키자>; 농촌으로 간 청년들은 그곳에 정착하여 빈농과 하층중농과 함께, 농업근대화의 실현, 사회주의신농촌건설이란 역사적 사명을 완수 에 기여하라고 호소 
 
8. 24  중공 제 10차 당대회개최 (∼28일); 주은래 정치보고; 당면의 국제정세의 특징을 천하대란, 소련수정사회제국주의의 불의의 습격에 고도의 경계심 강조; 王洪文 상해시 당위서기의 당규약개정보고, 신당규약 채택; 당원수 2800만 발표; 임표, 진백달 영구제명, 당내외의 모든 직무 박탈 
 
8. 26  미국, 대만 주둔 미군의 일부 철수 발표 
 
8. 30  중공 10기 1 중전회개최, 중앙위주석=모택동 재선; 부주석=주은래, 왕홍문등 5명; 정치국상무위원 9명 선출 
 
12. 28  귀주성에서 총공회 성립; 전국 29개 1급행정구에 총공회 조직재건 
 
1974
1.  1  인민일보,홍기,해방군보 사설 <신년사>; 비림비공운동의 지속 심화를 호소; 공자비판은 임표비판의 일 구성부문이다 
 
1.  2  인민일보, 인민해방군 일급군구 사령원 교대와 정치위원 대폭이동 보도 
 
1.  3  大平일본외상 중국방문(∼6일); 모택동과 회담; 중-일무역협정 서명; 상호 최혜국대우 승인; 기자교환 각서교환 
 
1. 14  중국당국, 등소평부수상의 정치국원 승격을 확인 
 
2.  2  인민일보 사설 <임표비판, 공자비판의 투쟁을 최후까지 추진하자> 각급 지도자는 임표비판, 공자비판에 앞장서지 않으면 안된다 
 
2. 28  인민일보, 初瀾논문, <晉劇-'三上桃峰'을 평함> 발표 
 
3.  3  인민일보 사설, <비림비공운동 중에 춘경을 훌륭히 완수하자> 
 
4. 10  등소평 중국대표, 국제연합 자원 특별총회에서 연설; 현재 세계는 미-소의 제1세계, 개발도상국과 중국의 제 3세계, 그 중간의 제2세계로 3분되었다고 주장 
 
5. 18  인도, 최초로 지하핵실험 (6번째의 핵보유국) 
 
5. 26  중국-캄푸치아왕국 민족연합정부, 74년도 군사장비, 물자 무상공여 협정 서명 (북경) 
 
5. 28  라자크 말레지아수상, 중국방문; 양국 상호승인과 외교관계수립; 말레지아의 대만 영사관 폐쇄 성명 
 
6.  1  홍기, 제 6기, 단평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가 대열을 강화하자> 
 
6. 13  북경의 벽신문, 북경시혁명위와 동 시당위를 비림비공운동에 대하여 적극적이 아니라고 비판 
 
6. 15  강청, <현대의 儒者> (주은래) 비판 
 
6. 16  광명일보, <비림비공운동이 전개된 이래, 전국각지의 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노동자선전대와 빈농-하층중농 학교관리위원회의 공작이 강화 되었다>고 보도 
 
6. 16  북경의 벽신문, 중공중앙 정국국원 화국봉을 지칭 비판 
 
6. 19  중국, 16차 핵실험 발표 
 
7.  1  인민일보 사설, <당이 모든 것을 지도한다> 발표; 최대의 과제인 비림 비공운동 중 중앙에서 지방의 당기관은 기타 모든 기관의 선두에 서서 올바른 지도성을 발휘하라고 호소 
 
7.  5  주은래, 북경의 병원에서 잭슨의원부부와 회견 
 
7.  9  각지에 벽신문에 의한 간부비판이 파급 
 
7. 17  모택동, 중앙정치국회의에서 강청, 상해구릅 비판 
 
8.  4  인민일보, 문화조창작지도소조 판공실저작그룹, <어떤 교육노선을 위한 찬가를 노래하는가-湘劇『園丁의 歌 』를 평함> 발표 
 
8.  8  닉슨 대통령 사임 
 
9. 29  중공중앙, 賀龍 전 부수상의 명예회복을 결정 
 
10.  4  모택동이 등소평을 국무원 제 1 부수상에 임명 제안 
 
10. 11  중공중앙, 제4기 전인대 개최에 관한 통지 발표하고, 모택동의 <프롤레 타라아 문화대혁명은 이미 8년을 경과, 현재 안정을 도모하고, 전당 전군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견을 표명 
 
10. 17  4인조, 중앙정치국회의에서 등소평 공격 
 
10. 18  왕홍문, 장사에 가서 모택동에게 주은래, 등소평이 권력찬탈행동을 하고 있다고 무고; 모택동, 의견이 있으면 대면해서 말하라고 질책 
 
11.  7  李一哲의 대자보, <사회주의민주와 법제에 대하여-모주석과 제4기 전인대에 드림> 완성, 10일, 광주시에 부착됨 
 
11. 12  모택동, 강정에 보낸 서신에서 직접 강청을 비판 
 
11. 16  강생, 중공중앙 부주석 사망 
 
11. 28  인민일보, 비림비공운동의 계속과 확대를 호소 
 
12. 24  모택동, 섹트활동을 중지하라고 4인조를 비판 
 
12. 26  모택동, 81세 탄생일의 전야에 장사에서 주은래와 만나, 이론-인사문제 에대해 말함;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 학습을 지시; 인사문제에서는 등소평을 중공중앙 부주석,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할 것을 제안 
 
1975
1.  1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신년의 담화 발표 
 
1.  5  중공중앙, 등소평을 중앙군사위 부주석 겸 해방군 충참모장에 임명 
 
1.  8  중공중앙 10기 2 중전회 개최(∼10일); 등소평을 당부주석,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 
 
1. 13  제 4기 전인대 1차회의 개최 (∼17일); 모택동 결석, 주은래 정치활동 보고, 금세기내의 4개 현대화 실현 목표 제시; 장춘교, 헌법개정보고; 17일 헌법 채택;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朱德, 부위원장에 동필무, 송경령 을 선출; 등소평을 제1 부수상으로 임명; 국무원 科敎組를 취소, 교육 성을 부활; 주은래가 입원 후, 등소평이 일상적 업무를 주재 
 
2.  9  인민일보 사설,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을 착실히 학습하자> 발표; 모택동의 지시를 인용 
 
2. 12  소련 국경교섭대표 이리체프, 북경에 귀임 
 
2. 14  중국외무성, 西沙群島의 영유권을 재표명 
 
2. 22  인민일보, 홍기, 장춘표 편, <맑스-엥겔스-레닌,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논함>을 게제; 모택동지시(74.12.26)을 발표 
 
2. 26  陳錫聯부수상, 컬카타에서 <인도정부가 희망하면, 중-인국경정상화 교섭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 
 
3.  1  인민일보, 姚文元 논문, <임표 반당집단의 사회적 기초에 대하여> 발표; 홍기 제 3기에 게제; 주요한 위험은 경험주의 강조 
 
4.  1  인민일보, 홍기, 張春橋 <부르조아계급에 대한 전면적 독재에 대하여> 
 
4.  4  유소기에 대한 박해를 비판한 遼寧省당위 선전부의 張志新이 장기구금 끝에 처형됨 
 
4.  5  장개석 사망; 향년 87세 
 
4. 18  김일성, 14년만에 중국방문 (∼26일) 
 
4. 23  모택동, <제기해야할 일은 경험주의도 교주주의 반대도...." 姚文元을 비판 
 
4. 27  강청,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자기비판 
 
5.  3  모택동,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안정단결과 마르크스주의를 반복 강조 4인조를 비판 
 
5. 11  중국-EC 정식관계를 수립하는 것에 관한 합의 
 
5. 12  등소평 부수상, 불란서 방문(∼17일) 
 
6.  7  마르코스 대통령 방중(∼11일); 국교수립에 대한 공동성명, 무역협정 
 
6. 24  중공중앙, 군사위 확대회의 개최(∼7.15); 엽검영, 등소평이 중요 연설; 군대의 정돈에 관한 임무를 제출 
 
6. 30  타이 수상 방중, 국교수립 공동성명 
 
7. 2  모택동, <관대하게 처리하고, 활동에 종사하여, 병이 있는 자는 치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시; 노간부가 출옥 치료, 혹은 활동 
 
7. 14  모택동, 문예문제에 대한 담화 발표; 당의 문예정책 조정 지시 
 
7. 17  중공중앙, 전국의 당조직에 대하여 <당조직의 사상과 조직상의 정돈>이 필요하다고 지적 
 
7. 20  국방공업중점기업회의 개최(∼8.4); 등소평, <국방공업의 정돈에 대한 강화> 
 
8. 14  모택동, 水滸傳에대한 5항지시; 그후, 강청, 요문원이 수호전비판운동 을 전개; 23일 , 광명일보, <수호전 비판>을 발표; 인민일보, 9월 4일, <'수호'에 대한 논평을 전개하자> 발표 
 
8. 18  등소평, <공업발전에 대한 몇 가지 의견> 발표 
 
9.  7  주은래, 루마니아 당-정부대표단과 병원에서 회견 
 
9. 15  제 1차 <농업은 대채에서 배우자는 전국회의> (∼10.19: 산서성 昔陽縣); 당과 정부간부 7000인 참가 
 
9. 22  월맹대표단 중국방문 (∼28일) 
 
10.  4  중국, 방글라데시 국교수립 
 
10.  7  등소평, <전당전국의 제 공작의 총강에 대하여> 발표 
 
10. 19  키신저 미국무장관, 중국방문 (∼23일) 
 
10. 27  지하핵실험에 성공 
 
10. 29  슈미트 서독수상, 중국방문 (∼11.2) 
 
10.  ?  모택동, 이 달부터 右로부터의 공세에 반격하는 투쟁을 지시 
 
12.  1  포드 미대통령부부, 키신저 미국방장관 방중 
 
12.  2  홍기 제12기, 북경대학, 청화대학 비판조, <교육혁명의 방향전환은 용서할 수 없다> 발표 (인민일보, 12월 4일 전제) 
 
12. 27  중국외무성, 중국주재 소련대사에게 1974년 4월 14일 월경한 소련 헬리콥타와 승무원 석방을 통고 
 
1976
1.  8  주은래수상 사망, 향년 78세 
 
1. 15  주은래추도대회 거행, 왕홍문이 주재, 등소평이 추도사 
 
2.  3  중공중앙, 모택동의 의견에 기초하여 華國鋒을 수상대행에 임명 
 
2. 10  중국, 캄보디아에 대한 무상군사원조협정을 체결 
 
2. 13  광명일보 논평, <孔丘의 근심> 발표; 주은래를 공격 
 
2. 25  당중앙이 각성, 시, 자치구와 각 대군구 책임자회의 소집; 화국봉이 <등소평동지의 수정주의의 잘못된 노선을 비판한다> 강연 
 
3. 25  文匯報, <지금도 회개하지 않는 주자파>라고 등소평을 공격 
 
4.  1  홍기 제4기, 方海, <洋奴哲學을 비판한다> 게제, 등소평을 공격 
 
4.  2  중공중앙, 대중이 주은래를 추도하기 위해 천안문에 가는 것을 금지 하는 <긴급통지> 발표 
 
4.  4  천안문사태 발생(∼5일) 
 
4.  7  중공중앙, 모택동의 제안에 따라 화국봉을 당의 제1 부주석, 국무원 총리로 임명하고, 등소평의 당내외의 일절의 직무를 취소하고 <당적보류>를 결의 
 
4. 15  인도, 15년만에 중국주재 대사 임명 
 
5. 10  리광휴 싱가폴 수상의 방중 (∼23일); 모택동과 회담 
 
5. 16  인민일보, 홍기, 해방군보 공동사설, <문화대혁명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발표 
 
5. 26  부토 파카스탄 수상 방중(∼30일); 모택동과 회담 
 
6. 15  중국 외교당국, 모택동과 외빈과의 회견 중지 발표; 이유는 고령 등 
 
6. 20  프레자 호주 수상 방중 (∼26일) 
 
7.  6  朱德 사망; 향년 90세; 11일 추도식 
 
7. 28  하북성 唐山-豊南일대에서 강력한 지진 
 
8. 23  인민일보 사설, <要所를 굳건히 붙잡고, 鄧小平 비판을 심화하자>를 발표 
 
9.  9  모택동 사망, 향년 82세; 11∼17일 인민대회당에서 弔問式 
 
9. 18  천안문광장에서 모택동 추도회; 100만인이 참가 
 
10.  6  화국봉, 엽검영 등이 왕홍문, 강청, 장춘교, 요문원 등을 체포 
 
10.  7  중앙정치국, 화국봉을 중공중앙위 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임명 
 
10.  8  4인조 추종자들이 상해에서 무장 쿠테타를 계획, 실패했다고 보도 
 
10.  18  중공중앙, 4인조 체포사건에 대해 전당에 통고 
 
10. 30  중-소 국경교섭재개 (북경) 
 
12.  7  중국 인공위성 발사, 10일 지상에서 회수에 성공 
 
12. 10  중공중앙, <왕홍문, 장춘교, 강청, 요문원 반당집당의 罪證> (제1)하달 
 
12. 10  제 2차 <농업은 大寨에서 학습하기 전국회의>를 개최 (∼27일, 북경) 
 
1977
2.  7  3지 공동사설, 모택동의 결정은 모두 올바르고, 모택동의 지시는 모두 수호해야 한다는 <兩個凡是>을 주장 
 
4.  6  몰다니아 대통령 중국 방문, 화국봉과 회견 
 
4. 10  등소평, <兩個凡是>를 비판하는 편지를 당중앙에 보냄; 5월 3일 당중앙이 이를 받아 들여 하달 
 
4. 18  가나 대통령 방중, 화국봉과 회견 
 
4. 20  <공업은 大慶에서 합습하라> 전국회의 개최 (-5.13) 
 
5.  1  인민일보, 화국봉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의 계속혁명을 끝까지 추진하라>를 게재 
 
5.  3  가봉 대통령 방중, 화국봉과 회견 
 
5.  6  등소평, 직무에 복귀 (정식 결정) 
 
5. 24  등소평, 문혁당시 지식인을 멸시하는 것을 개혁, <지식을 존중하고, 인재를 존중하는 기풍을 반드시 당내에 진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정치면에서 요구는 적절히 자제해야 한다>고 언명 
 
6. 13  중국외무부, 한-일 대륙붕협정에 대해 항의 
 
7. 16  중공 10기 3중전회 개최 (∼21일); 등소평의 모든 직무 회복, 4인방의 당적 박탈, 모든 직책 해임을 결정; 21일 등소평, <모택동사상을 전면적, 활용적으로 확실하게 이해하라> 강화 
 
8.  6  화국봉,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 일행과 회견 
 
8. 10  국무원, <일부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관한 통지>를 발표 
 
8. 12  중공 11기 당대회 개최 (∼18일); 화국봉은 정치보고에서 문혁 종결 선언; 葉劍英 <당규약 개정에 관한 보고>, 등소평 <폐회사> 
 
8. 13  전국 대학 입시회의 북경에서 개최; 통일 시험방식 회복, 문혁시대의 입학방식을 폐지 
 
8. 19  중공 11기 1 중전회 개최; 당주석=화국봉, 부주석=葉劍英, 鄧小平, 汪東興 선출 
 
8. 30  티토 유고 대통령 방중, 중국공산당과의 관계 수복 
 
9.  9  북경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모택동 1주년기념행사 및 모주석 기념당 낙성식 
 
9. 28  폴 포트수상등 캄보디아 공산당중앙위 서기 및 정부대표단 방문(∼10.4) 
 
10.  7  중공중앙당교의 그룹, 인민일보에 <4인방에 의해 전도된 간부노선의 시비를 바로 잡자>는 제목의 논설 발표 
 
10.  8  폴 포트 캄보디아수상 중국을 재방문 (∼22일) 
 
10.  9  중공중앙 당교, 약 10년만에 개교 (교장에 화국봉)
 
11.  1  인민일보 논문, <3개의 세계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모주석의 이론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거대한 공헌이다> 발표 
 
11. 20  베트남 당-정부대표단 (단장=레-쥬앙 서기장) 방중 (∼25일) 
 
11.  ?  萬里, 안휘성에서 <당면의 농촌경제정책의 몇 가지 문제에 관한 규정> 제정, 생산책임제가 일부 지구에 도입 
 
12. 10  호요방, 당중앙 조직부장에 취임; 실직 간부의 명예회복 개시 
 
12. 28  등소평, 중앙군사위 전체회의에서 군대의 정돈을 새삼 강조 
 
1978
2. 16  중-일 장기무역 결정 조인 (8년간 왕복 200억불) 
 
2. 18  중공 11기 2 중전회 개최 (∼23일) 
 
2. 24  제5기 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1차회의 개최 (∼3.8); 등소평을 정협주석으로 선출 
 
2. 24  소련최고회의 간부회, 중국전인대 상무위에 메세지를 보냄; 중소관계 정상화를 위해 양국의 상호관계 원칙에 대한 공동성명 작성을 호소 
 
2. 26  제5기 全人代 제1차 회의 개최 (∼3.5); 국무원 수상에 화국봉 선출; 화국봉이 정부활동보고; 개정헌법 채택; <국민경제발전 10개년 계획 (76∼85) 요강> 채택 
 
3. 18  전국과학회의 개최 (∼31일); 등소평, 개회식에서 과학기술= 생산력 연설 
 
3. 21  蔣經國, 총통에 당선 
 
3. 28  등소평, <노동에 따른 분배원칙> 관철이 필요하다고 주장 
 
4. 27  해방군 정치공작회의 개최 (∼6.6); 등소평은 <실사구시>가 모택동사상 의 핵심이라고 지적, 다시금 <兩個凡是> 관점을 비판 
 
4. 30  중국, 베트남 거주 화교의 대량 귀국을 발표 
 
4.  ?  전군정치공작회의 개최 (∼6월); <정치공작조례>를 개정 
 
5.  4  중소국경교섭 양국대표단, 교섭개시 (북경) 
 
5.  5  인민일보 특약평론원 논문, <노동에 따른 분배라는 사회주의 원칙을 철저하게 실행하자> 게재 
 
5.  9  소련군, 우수리강의 중소경계선을 넘어 중국영역을 침범, 발포, 다수의 주민이 부상; 11일 중국정부는 소련대사를 호출, 항의; 사죄, 당사자의 처벌, 유사사건 재발방지 요구 각서 전달 
 
5. 11  광명일보 특약논평원,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의 기준이다> 발표 
 
5. 15  챠우세스코 루마니아 대통령 방중 (∼20일) 
 
5. 20  브레진스키 미국대통령 보좌관 방문 (-23) 
 
5. 23  상해 寶山제철소 건설에 관한 중-일 의정서 서명 
 
6.  2  등소평, 전군 정치공작회의에서 강화, 실사구시의 견지와 지도그룹의 조정, 정돈, 솔선수범을 언명 
 
6.  9  중국외무부, 베트남 거주 화교의 대량귀국문제에 관해 베트남 비난, 베트남측이 제안한 회의를 거부, 베트남에 대한 원조 일부를 정지하는 내용의 성명 발표 (5월말까지 귀국화교=10만인) 
 
6. 16  중국, 廣州, 昆明, 南寧에 주재하는 베트남 총영사관 폐쇄 요구 
 
7.  3  중국정부, 베트남에 대한 경제기술원조 전면중지, 기술자의 철수 통고 
 
7.  7  중국외교부, 중국주재 알바니아대사를 통해 알바니아정부에 대해 경제, 군사원조 중단과 중국인 기술자와 군사전문가의 철수 통고 
 
7. 18  <중국인민해방군 군사정치부 공작조례>, <중국공산당 군대위원회조례>, <중국인민해방軍團 政治處 공작조례> 발표; 중공중앙, <중앙군위의 군대의 정치공작을 강화하는 일에 관한 결의> 및 <중국인민해방군 정치공작조례>를 비준, 발표 
 
7. 29  알바니아정부, 중국의 對알바니아 원조중지는 일방적, 자의적 행위이고, 중국은 제국주의, 반동세력에 접근하고 있다고 비난 
 
8.  8  중국-베트남, 외무차관회담 개시 
 
8.  9  중국-리비아, 9일자로 외교관계 수립에 관해 공동성명, 경제-과학-기술 협력 협정에 조인 (북경) 
 
8. 12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북경) 
 
8. 16  화국봉, 루마니아, 유고, 인도 방문 (∼9.1) 
 
8. 25  당중앙 조직부,선전부,통일전선부, (국무원) 공안부, 민정부,<우파분자 의 레텔을 벗기는 일에 대한 중공중앙의 결정을 관철하는 방안> 발표 
 
9.  8  등소평, 북한방문 (∼13일) 
 
9. 12  중국측 무장선이 베트남 어선을 총격 
 
10.  6  인민일보, 胡喬木의 논문, <경제법칙에 따라 처리 운영하고, 4개현대화 의 실현을 가속화하라> 게재 
 
10. 22  등소평 부수상, 일본방문 (∼29일); 23일, 중-일 평화우호조약 비준서 교환 (동경); 25일, 등소평, 尖閣列島 영유권문제 보류 발언; 경제개방 언급 
 
11.  5  등소평, 타이, 말레지아, 싱가폴 순방 (∼14일) 
 
11. 10  중공중앙공작회의 개최 (∼12.15). 화국봉이 등소평의 제안에 기초하여 <활동의 중점을 4개 현대화로 이전>하는 방침을 표명 
 
11. 14  중공 북경市委, <천안문사건>을 완전한 혁명행동이라고 지적 
 
11. 15  광명일보, 蘇雙碧, <요문원의 新編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 게재 
 
11. 15  인민일보, 모택동 자신이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은 예를 거론, 문혁이래의 誤審,寃罪사건의 시정을 호소하는 평론원의 논문, <실사구시에 의해 잘못된 것을 반드시 바로잡자>를 게재 
 
11. 21  동일과 22일, 인민일보, <천안문사건의 진상> 기사 연재 
 
12. 13  중공중앙공작회의 폐막식에서 등소평은 <사상해방은 당면한 중요 정치문제>라고 강화 
 
12. 16  미국-중국 공동성명; 1979년 1월 1일부터 국교정상화 결정; 미국과 대만의 외교관계 단절 발표 
 
12. 18  중공 11기 3 중전회 개최 (∼22일); 계급투쟁의 기본적 종결 선언, 활동의 중점이 근대화건설 결정; 陳雲을 부주석으로, 정치국원에 鄧潁超, 胡耀邦, 王震을 증보선출 
 
12. 25  베트남군, 캄보디아 침공 
 
1979
1.  1  중-미외교관계 수립, 양국정상 축전 교환 
 
1.  1  전인대 상무위, <대만동포에게 고하는 글> 발표 
 
1.  4  중공중앙 규율검사위원회, 처음으로 전체회의 개최 
 
1.  6  캄보디아 정부대표단 (단장=시아누크) 방중 (∼9일) 
 
1.  7  베트남군, 프놈펜 점령. 중국정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비난 
 
1. 11  중공중앙, <농업발전의 속도를 가속하는 데에 대한 약간의 문제에 관한 결정>, <농촌인민공사공작조례> 발표 
 
1. 12  민주캄보디아 정부수뇌일행 방중. 14일 중국정부, 민주캄보디아 정부 단호히 지지 표명 
 
1. 17  중국인권동맹, 북경에서 성립. <중국인권선언> 발표 
 
1. 28  등소평 부수상 미국방문 (∼2.5) 
 
1. 29  중공중앙, 이미 개조된 지주, 부농, 반동분자, 악질분자는 일률적으로 칭 호를 없애고, 농촌인민공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 등을 결정 
 
2.  6  등소평 부수상, 방미 귀국길에 일본 방문 (∼8일) 
 
2.  6  중국군 200명이 베트남의 랏손성에 침입 
 
2. 14  중공중앙, 베트남에 중월전쟁은 『自衛反擊·國境防衛의 전투 』이며, 베트 남에 징벌을 가할 수 있다는 통지를 발표 
 
2. 17  중국군 7개 사단 8만명이 중국·베트남 국경 전역에 걸쳐 베트남 침공 개시 
 
2. 23  제 5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中華人民共和國 逮捕拘留條例 』 채택 
 
3.  1  국무원, 식량 등 주요농산물의 판매가격 인상 발표 
 
3.  5  신화사통신, 중국군이 베트남에서 전면적으로 철수했다고 성명 발표 
 
3. 16  북경방송 및 신화사통신, 베트남 침공 중국군의 철수완료 발표 
 
3. 19  중공중앙, 1971년 8월 13일 공포된 『全國敎育活動會議案点 』 취소, 17년 의 교육성과를 긍정 
 
3. 19  티벳자치구 사법기관, 1959년 3월 티벳반란 참가자 376명을 석방 
 
3. 29  북경시 혁명위원회, 벽신문 등의 규제 통고. 魏京生(민주운동가·『探 索 』 편집장), 반혁명죄로 북경시 공안국에 체포 
 
3. 30  북경에서 개최된 중앙이론토론회, 등소평 『四項 基本原則 』의 견지 강조 
 
4.  3  중국, 중소우호동맹상호조약의 연장 거부 결정 
 
4.  4  대만 장경국 주석, 북경 평화통일정책에 『三不主義 』 언명 
 
4.  4  홍콩·광주간 철도, 30년만에 부활 
 
4.  5  중공중앙공작회의 개최 (∼28일). 陳雲 경제조정을 제기, 경제활동에서의 좌파영향을 없애는 노력 개시 
 
4. 10  카터 미대통령, 『대만관계법 』 서명 
 
4. 18  중-월분쟁 해결을 위한 양국 외무차관 제 1회 회의 개최 
 
4. 26  대만주둔 미군 철수완료 
 
5.  2  페인·온 말레이자아수상 방중 (∼9일) 
 
5. 21  적십자 국제위원회 입회 아래, 중국·베트남 양국의 적십자대표단이 포 로 상호 석방 
 
6. 15  등소평,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 5기전국위원회 제 2회회의 개막사 중 『조국통일 대업의 실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야만 한다 』고 주장 
 
6. 18  제 5기 전인대 제 2회회의 개최 (∼7.1), 정부활동보고 (화국봉 수상), 1979년도 결산과 1979년도 예산안 보고 (張勁夫 재무상). 7월 1일 각급 인민대표대회선거법, 지방각급인민대표대회·인민정부조직법, 형법, 형 사소송법, 중외합자경영기업법 등 7개 법안 채택. 팽진 등 4명 상무위 부위원장으로 보선, 진운 등 3명 부수상으로 추가임명, 方毅 중국과학 원 원장으로 임명 
 
6. 28  제 2차 중국·베트남 외무차관 제 1회 회담 개최 (북경) 
 
6.  ?  국무원재정경제위원회에 경제체제개혁연구소조 설치 
 
7.  1  형법 공포. 지방각급인민대표대회·인민정부조직법 공포 
 
7.  7  중미무역협정 조인 (북경) 
 
7. 13  국무원은 기업자주권 확대에 관해 5개 문건 규정. 이 규정에 따르면, 각지방 각부문에 소수의 기업을 선출, 기업자주권 확대를 경험하도록 지시 
 
7. 16  신강위굴자치구의 중소국경지대에서 중소 유혈사건 발생 
 
7. 29  등소평, 『兩個凡是 』를 기치로 하는 임표·4인방 사상체계에 따라 적지 않은 자가 당의 정치·사상노선에 반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지도그룹 의 세대교체 필요성 강조 
 
8. 25  먼데일 미부통령 방중 (∼9.1) 
 
9. 17  닉슨 前 미대통령 방중 (∼22일) 
 
9. 25  중공 11기 4중전회 개최 (∼28일). 『농업발전을 빠르게 하는 제문제에 대 한 결정 』 채택. 조자양·팽진 정치국원으로 승진 
 
9. 27  중소관계개선교섭 제 1회 예비회담 개최 (모스크바). 이후 제 5회 예비 회담까지 개최 
 
9. 29  葉劍英, 당중앙·전인대상무위·국무원을 대표해 『건국30주년강화 』에서 처음으로 문혁을 부정적으로 평가 
 
10. 10  張學良, 처음으로 대북의 쌍십절축하회에 모습을 보임 
 
10. 11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 중국민주동맹, 중국민주건국회 등 8개 당파, 전 국대회를 개최 
 
10. 15  화국봉 수상, 프랑스·서독·영국·이탈리아 순방 (∼11.6) 
 
10. 16  북경중급인민법원, 魏京生 반혁명죄로 징역 15년·형기만료후 3년간 정 치적 권리 박탈형에 처함 
 
10. 17  중소관계개선교섭 제 1회 정식회담 개최 (모스크바) 
 
10. 30  제 4회 중국문예활동자 전국대회 개최. 周揚 보고 
 
11.  2  등소평, 중국의 당·정부 및 군기관의 차관·부부장 이상 간부회의에서 연설, 『간부 생활대우의 특수화 시정, 후계자 육성, 대중과의 밀접한 결합 등의 회복을 위해, 고급간부가 솔선하여 당의 우수한 전통을 발양 하자 』고 주장 
 
11. 11  魏京生 재판기록을 인쇄·배포하고 있던 『四五論壇 』편집부의 劉靑 체포 
 
11. 16  중공중앙조직부, 정풍 및 반우파투쟁 중 간부의 당안재료를 처리하는 점에 관한 약간의 규정을 발표 
 
11. 26  국제올림픽위원회, 중국복귀 승인 (로잔느) 
 
12.  5  大平 일수상 방중 (∼9일). 화국봉 수상과 회담, 중일문화교류협정 조인 
 
12.  6  북경시 혁명위, 西單 『민주의 벽 』을 月壇公園으로 옮기고 검열제도실시 
 
12. 10  대만 高雄에서 美麗島雜誌社가 주최한 세계인권의 날에서 데모, 경찰과 충돌 
 
12. 30  중국,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략 비난 
 
12. 31  중(대만)미상호방위조약 종료 
 
1980
1.  5  브라운 미국방장관 방중 (∼13일) 
 
1. 13  郭羅基, 상해 『문회보 』에 『소위 '信念의 危機'를 평한다 』 발표 
 
1. 16  중공중앙, 인민대회당에서 간부회의 개최. 등소평 『현재의 정세와 임 무 』 보고 
 
2.  1  최혜국 대우를 상호 부여한다는 중미통상협정 발효 
 
2. 23  공 11기 5중전회 개최 (∼29일). 호요방을 총서기로, 호요방·조자양을 중앙정치국위원으로 선출. 汪東興의 사직원 승인. 24일 섭검영, 『집단 지도 』 『집단적 후계 』를 위한 기구로 중앙서기처를 위치시킴. 29일 『유 소기동지의 명예회복에 관한 결의 』, 『당내 정치생활에 관한 약간의 준 칙 』 채택. 등소평, 『당노선을 견지하고, 활동방법을 개선하자 』고 강화. 같은 날 공보 발표 
 
2.  ?  전국농촌인민공사경영관리회의에서 戶別請負에 대해 『원조해야만 한다 』 고 규정 
 
3.  6  중국외무성, 베트남외무성과의 각서에서, 79년 6월이후 북경에서 진행 되어 온 양국외무차관회담의 중단을 통고 
 
3. 12  등소평, 중공중앙군사위 상무위확대회의에서 『군대의 정예·간소화를 꾀 하고, 전투력을 높이자 』라고 강화 
 
3. 14  중공중앙서기처, 티벳활동좌담회 개최 
 
3. 31  중국은행 책임자, 4월 1일부터 외화태환권을 발행하여 외화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주장 
 
3.  ?  당중앙, 『건국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결의 』(『역사결의 』) 기초에 착수 
 
4.  8  鄧力群, "일부 이론공작 담당당원이 『4항기본원칙은 4자루의 棍棒이다 』 라며,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을 배격하고 있다"고 주장 
 
4. 10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효력상실 
 
5. 16  중공중앙·국무원, 심천·주해·선두·이문에 경제특구 설치를 결정 
 
5. 17  중공중앙, 유소기 추도대회 거행 
 
5. 18  중국, 처음으로 ICBM 발사 성공 
 
5. 27  화국봉 수상, 중국수상으로 처음 방일 (∼6.1) 
 
5. 31  등소평, 농촌정책문제에 대해 『현재 농촌활동에 존재하는 주된 문제는 思想解放이 불충분한 점이다 』고 주장 
 
6.  ?  王若水 『인민일보 』 부편집장, 社會主義 疎外에 대해 주장 
 
7. 10  화국봉·카터회담 (동경, 호텔 오오그라) 
 
8.  4  모택동 초상 혁명역사박물관에서 철거 
 
8.  10  화국봉, 유고신문기자에게 『모주석은 문혁기에 큰 과오를 범했다 』고 답변 
 
8. 18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 개최 (∼23일). 등소평, 정치체제개혁을 언급하고 과도한 권력집중의 폐해와 당과 국가의 지도제도·간부제도의 문제점을 논함 
 
8. 21  등소평, 『모택동은 공적이 우선이고, 과오는 부차적 』라고 발언 
 
8. 26  광동성경제특구조례 시행 
 
8. 30  제 5기전인대 제 3회회담 개최 (∼9.10). 9월 7일 화수상 정부활동보고. 화국봉수상 사임, 조자양수상 취임, 등소평·이선념·진운 부수상 사 임. 10일 헌법의 『四大 』自由 없앰. 신혼인법 공포 
 
9. 14  각성급 제 1서기좌담회 개최 (∼22일), 『생산대 지도하의 호별청부는 사회 주의경제에 의존하는 것이며, 자본주의 부활의 위험 등은 없다 』고 단정 
 
10. 25  廖蓋隆, 문혁을 전면 부인하고, 당정분리·양원제 설치 등 『庚申改革 』 안 발표 
 
10. 25  등소평, 『역사결의 』기초에 관한 중앙 지도자와의 담화에서, 모택동의 오류를 과도하게 지적하는 것에 반대 
 
10. 29  북경역 폭발사건 
 
11. 10  『역사결의 』검토를 위한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 개최 (∼12.5), 화국봉 비판 고양 
 
11. 20  林彪·四人幇 재판 개시 (∼81.1.25) 
 
11. 27  黃克誠, 중앙규율위 (∼28일)에서 모택동에 대한 과도한 중상을 우려한다 고 강화 
 
12.  3  제 1회중일각료회의 개최(북경) 
 
12. 14  호요방, 문혁전면부정 발언 
 
12. 16  중공중앙공작회의 개최 (∼25일). 진운이 14개조 경제조정정책을 진술  
 
12. 25  등소평, 중공중앙공작회의에서 『조정방침을 관철하고, 안정·단결을 보 증하자 』라고 강화

 

1981
1. 21  중국, 寶山제철소 제2기공사 중지 
 
1. 23  최고인민법원특별법정, 임표·사인방 재판의 주범 10명에 판결 
 
2. 11  谷牧 일 부수상, 대중국플랜트 해약문제에 대해, 중국을 방문 중인 大 來 일정부대표에게 『플랜트 건설 중지에 관해 일본측에 불만은 없지만, 국제상 관례에 기초해외국기업의 손실분은 보상해야 한다 』고 발언 
 
2. 20  중공중앙·국무원, 『비합법벅 간행물·조직에 관한 지시 』 발표 
 
3.  2  IMF, 중국에 4억 5000만 SDR융자 승인 
 
3. 18  등소평, 『역사결의 』기초그룹의 책임자와 회담, 초고내용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年配간부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에 찬성 
 
3. 26  등소평, 『역사결의 』기초그룹의 책임자와 회담, 수정본에 진운의 의견을 채용하라 지시 
 
3. 30  중공중앙·국무원, 국가농촌위원회의 『농촌의 다각경영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점에 관한 보고 』를 승인하고 관련부문에 통고 
 
3.  ?  국무원, 『기본건설의 계획관리를 강화하고, 기본건설 규모를 통제하는 점에 관한 약간의 규정 』을 통고 
 
4.  7  등소평, 『역사결의 』기초그룹의 책임자와 회담, 중공 8기 12중전회와 제 9회 당대회의 합법성을 부인하는 것에 반대 
 
4. 20  『해방군보 』가 白樺의 『苦戀 』을 비판 
 
5.  5  중국정부, 네덜란드가 공격형 잠수함을 대만에 수출한 것에 항의하여, 네덜란드 주재대사를 임시대사로 격하 
 
5.  ?  등소평, 『모택동동지는 오류를 범했지만 이것은 위대한 혁명가가 범한 오류이며, 위대한 맑스주의자가 범한 오류이다 』라고 발언 
 
6.  1  조자양 수상, 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를 순방 (-8) 
 
6.  5  레이건 미대통령, 대중국 무역제한을 대폭완화방침 결정 
 
6.  9  중국외무성, 미국의 대만 무기수출문제에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고, 중 국은 미국으로부터의 무기구입 정지를 고려하고 있으며 이후 무기수출 이 계속된다면 강경 수단도 불사하겠다고 경고 
 
6. 14  헤이그 미국무장관 방중, 무기매각 합의 
 
6. 26  黃華 외상 겸 부수상 인도방문 (∼7.1) 
 
6. 27  중공 11기 6중전회 개최 (∼29일). 29일 등소평의 지시에 따라 胡喬木이 기초한 『역사결의 』 채택, 文革을 전면 부정. 호요방이 당주석에 취임, 화국봉이 부주석으로 강등, 등소평이 당중앙군사위원회주석 취임 
 
8. 11  조자양, 싱가폴에서 중국은 타국의 공산당에 관여하지 않으며, 타국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발언 
 
9. 30  섭검영, 대만통일의 9항목 제안. 10월 7일 장경국 거부 
 
10.  5  전국농촌공작회의. 90%이상 생산대에서의 생산책임제 확립을 지적 
 
11. 30  제 5기전인대 제 4회회의 (∼12.13), 조 수상 정부활동보고 
 
12.  ?  90%이상 생산대에서의 청부책임제 실시 
 
1982
1.  2  중공중앙·국무원, 『國營企業企業長工作暫定條例 』발표에 관한 통지 
 
1. 11  동일 및 13일, 등소평, 당정기구 간소화를 제기 
 
2. 13  호요방, 廣東·福建공작좌담회에서 『일국가·이제도 』 언급 
 
3. 24  브레즈네프·소공산당서기장, 타시켄트에서 대중국개선 제안 
 
3.  ?  중공중앙, 종교신앙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하자고 언명 
 
4. 13  중공중앙·국무원, 『경제분야에서 중대범죄 박멸에 관한 결정 』 
 
4. 26  호요방·등소평, 북한을 극비 방문 
 
5. 31  조자양 수상 방일 (∼6.5). 6월 1일 조 수상, 鈴木善幸 일수상과 회담하 고 중일경제관계의 발전을 위해 3원칙 제안 
 
7.  1  중국, 전국인구 센서스 실시. 10월 27일 총인구 10억 3188만명 발표 
 
7. 26  중국정부, 교과서 검정문제로 일본정부에 정식 항의 
 
8. 17  중미양국, 대만에 대한 무기매각 제한 약속에 관한 공동성명 발표 
 
9.  1  중공 제 12회당대회 개최 (∼11일). 호요방이 정치보고, 공농업 총생산액 을 이후 20년간에 80년도보다 4베 증가, 독립자주의 외교정책 제기. 중 앙위원·동후보 348명 중 60%이상이 신인으로 대폭 세대교체 진행 
 
9. 12  중공 12기 1중전회 (∼13일). 당주석제도 폐지. 호요방이 총서기, 등소평 이 군사위원회주석 취임. 등소평을 신설된 고문위원회주임으로 선출 
 
9. 22  대처 영수상 방중 (∼26일). 등소평 주임과 홍콩문제 협의 
 
9. 26  鈴木 일수상 방중 (∼10.1). 교과서문제 해결 
 
10.  5  중소 외무차관급회담 시작 
 
11. 22  廖承志 전인대부위원장, 홍콩공상연합회대표단에 담화, 홍콩반환에 대 한 『二十字方針 』 보임 
 
11. 26  제 5기전인대 제 5회회의 개최 (∼12.10). 팽진 전인대부위원장, 헌법개 정초안 보고, 대만문제 해결책으로 『일국가·이제도 』와 『특별행정구 』설 립 제시. 12월 4일 신헌법 채택. 인민공사 해체 결정. 10일 전국인민대 표대회조직법 공포, 전국인민대표대회·지방각급인민대표대회선거법 공 포. 제 6차 5개년계획 승인 
 
12. 31  중공중앙, 『현재의 농촌경제정책에 관한 제문제 』 발표 
 
1983
1. 25  최고인민법원, 江靑·張春橋 무기징역으로 감형 
 
3.  2  국무원, 이윤납세방식의 규제를 승인 
 
3. 16  前홍위병 지도자인  元梓·괴대부( 大富), 반혁명분자로 징역형 판결 
 
4.  4  미정부, 중국의 여성테니스선수 胡娜 망명 허가. 중국, 대항조치로 82, 83년 문화교류 정지 
 
5.  5  중국민항기, 공중납치되어 한국 기착 
 
6.  6  제 6기전인대 제 1회회의 개최 (∼21일). 조자양 수상 정부활동 보고. 이 선념이 국가주석, 팽진 전인대상무위위원장, 등소평이 국가중앙군위주 석에 각각 취임 
 
6. 26  등소평, 대만통일문제에 대해 특별행정구 『자치 』구상을 언급 
 
7. 1  『鄧小平文選 1975∼1982 』 간행 
 
9.  8  카피차 소련 외무차관, 소련 고위관리로서 20여년만에 방중 
 
10. 11  중공 12기 2중전회 개최 (∼12일). 『整黨에 관한 결정 』 채택, 4인방 잔당 배제 
 
10. 12  중공중앙서기처·국무원, 『政社를 분리하고, 鄕정부를 수립하는 것에 관한 통지 』 발표 
 
10.  ?  정신오염 일소 캠페인 전개 
 
11. 23  호요방 총서기 방일 (∼30일). 25일 中曾根康弘 일수상, 『중일관계3원칙 』 에 『상호신뢰 』를 더해 『4원칙 』으로 할 것을 제안, 호 총서기 동의 
 
1984
1.  1  중공중앙, 『1984년의 농촌정책 통지 』 발표. 토지 청부기간을 일반적으 로 15년 이상으로 함 
 
1.  7  조자양, 미국·카나다 방문 (∼23일). 중미과학기술협정 조인 
 
1. 27  胡喬木 논문 『인도주의와 소외의 문제에 관해 』, 사회주의에서의 소외를 부정 
 
2.  7  등소평, 이문경제특구 시찰 (∼10일). 대외개방추진 표명 
 
3. 23  中曾根 일수상 방중 (∼26일). 중일우호 21세기위원회 발족 
 
4.  6  大連·靑島 등 14개 도시의 대외개방을 결정 
 
4. 26  레이건 미대통령 방중 (∼5.1). 30일 중미원자력협정 조인 
 
5. 10  국무원, 『국영기업의 자주권확대에 관한 잠정협정 』 공포 
 
5. 15  제 6기전인대 제 2회회의 개최 (∼31). 31일 병역법 채택, 민족구역자치 법 공포 
 
6. 22  22일 및 23일, 등소평, 『1국가·2제도 』 언급 
 
7.  9  宦鄕 국무원국제문제연구센타총간사, 상해 『世界經濟導報 』에서 중·미 ·소의 『大三角關係 』는 장기에 걸쳐 국제정세를 결정한다고 주장 
 
9. 24  중일청년우호교류로 3000명의 청년 방중 
 
9. 26  『홍콩문제에 관한 중-영공동성명 』 가조인 
 
10.  1  국경일에 25년만에 군사퍼레이드 부활 
 
10. 13  국무원, 『集鎭에 戶籍을 옮기는 문제에 관한 통지 』 
 
10. 20  중공 12기 3중전회, 『경제체제개혁에 관한 결정 』 채택. 『계획적 상품경 제론 』에 기초한 국영경제의 개혁 
 
10. 25  일본정부, 1984년도분 대중국 円차관공여액을 총액 715억엔으로 합의 
 
12. 18  대처 영수상 방중, 19일 『홍콩문제에 관한 중-영공동성명 』을 북경에서 本調印. 홍콩·九龍·新界를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 합의 
 
12. 21  아르히포프 소련 제1부수상 방중, 심천경제특구 시찰. 28일 중소경제기 술협력 등 조인 
 
12. 29  중국작가협회 제 4회전국대표대회 (∼85.1.5), 『창작의 자유 』 보장 강조 
 
1985
1. 31  長江·珠江델타지구를 연해경제개방구로 지정 
 
3. 13  중공중앙, 『과학기술체제개혁에 관한 결정 』 
 
3. 27  제 6기전인대 제 3회회의 개최 (∼4.10). 4월 10일 상속법 등 채택. 『홍 콩문제에 관한 중영공동성명 』 비준 
 
5. 23  당중앙군사위원회확대회의 (∼6.6). 병력 100만명 감축과 대군구로의 통 합 결정 
 
5. 27  중공중앙, 『교육체제개혁에 관한 결정 』 
 
6. 19  중소양국, 상해와 레닌그라드에 총영사관개설에 합의 
 
6.  ?  전국의 농촌인민공사 해체와 9만 2000여개의 鄕·鎭정부수립 완료 
 
9.  6  주민신분증조례 공포 
 
9. 16  중공 12기 4중전회 (∼23일) 
 
9. 18  중공당전국대표회의 (∼23일). 제 7차 5개년계획을 건의. 인사면에서의 세 대교체 결정, 胡啓立·이붕 『第三梯團 』의 젊은 간부 다수 등용. 陳雲, 개혁의 과도함을 경고 
 
9. 18  북경대학학생, 中曾根 일수상의 靖國神社 공식참배에 항의하는 반일데 모. 20일 중국외무성 대변인, 일본정부를 비난 
 
9. 24  중국, 국제원자력기관의 사찰 수락 표명 
 
11. 26  寶山제철소 제 1기공사 완성 
 
12. 25  장경국, 蔣씨 집안에서 총통의 후계자를 내지 않는다고 발언 
 
1986
3. 21  조자양 수상, 군축문제에 관한 중국의 기본방침을 표명 
 
3. 25  제 6기전인대 제 4회회의 개최 (∼4.12). 조자양 수상, 제 7차 5개년계 획안을 보고하고 對外十原則을 설명. 동시기 개최되던 제 6기전국위 제 4회회의와 함께 정치체제개혁문제를 의제로 함. 4월 12일 의무교육법 채택. 민법통칙 공포. 폐막회의에서 처음으로 반대표 출현 
 
4. 28  사회과학잡지사 등 정치체제개혁학술좌담회 개최 (∼29일) 
 
5.  3  대만 중화항공기 망명사건 발생, 중국·대만 직접교류 처음으로 실현 
 
7.  1  『인민일보 』, 당내 두 종류의 상이한 모순에 관한 호요방 연설 게재 
 
7. 10  중앙黨校에서 정치체제개혁이론검토회 개최 (∼12일), 朱厚澤 당선전부장, 동 개혁의 추진을 강조 
 
7. 14  등소평, 『경제체제개혁은 금후 5년이내에 전면적으로 완성되는데, 어느 정도의 정치체제개혁도 포함하고 있다 』고 주장 
 
7. 16  王兆國, 당중앙을 대표해 정치체제개혁의 다섯 측면을 지적 
 
7. 28  고르바초프 서기장, 블라디보스톡에서 연설. 대중국관계 개선을 호소 
 
7. 31  만리 부수상, 소프트 사이언스좌담회에서 『정책결정의 민주화, 과학화 는 정치체제개혁의 중요한 과제이다 』라고 연설 
 
8. 10  余秋里 군총정치부주임, 『三大規律八項注意 』, 『8개의 허용할 수 없는 점 』을 전군이 힘써 강조할 것을 호소 
 
8. 15  『인민일보 』, 蘇紹智 논문 『정치체제개혁과 봉건주의의 영향에 반대하는 것 』 게재 
 
8.  ?  중공중앙정치국회의 (北戴河회의), 초순에서 중순에 걸쳐 개최. 정치체 제개혁논의결론을 내지 않고, 가을의 12기 6중전회의 의제로 하지 않을 것을 확인 
 
9.  3  등소평, 『정치체제개혁은 신중하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고 발언. 호요 방, 『경제의 개혁은 정치체제개혁과 함께 진행되어야만 한다 』고 역설. 왕진, 『四項 基本原則의 견지는 立國의 근본 』이라 강조 
 
9.  9  胡啓立, 『정치체제개혁은 지도제도의 개혁을 말하는 것이지 사회제도의 개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인민의 피와 희생으로 얻어진 사회주의 제도는 변할 수 없다 』고 발언 
 
9. 28  대만에서 民主進步黨 결성 
 
9. 29  중공 12기 6중전회, 『사회주의정신문명건설의 지도방침 결의 』 채택 
 
10. 14  全國全面改革理論討論會, 190여명이 참가하여 安徽성에서 개최(∼20일), 경제개혁은 정치체제개혁의 가속화를 요구한다고 강조 
 
10. 15  장경국, 국민당중앙상무위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혁신조치 추진의 담화발표 
 
10. 22  섭검영 前전인대위원장 사망, 향년 89세 
 
10. 28  팽진 전인대위원장, 『사항기본원칙을 견지하고 공유제를 주로 하여 共 同富裕를 목표로 하자 』고 강연 
 
11.  8  中曾根 일수상 방중 (∼9일). 9일 등소평, 中曾根 수상과의 회담에서 정치 체제개혁의 목표를 세가지로 요약 
 
11. 10  대만의 민주진보당, 강령을 발표 
 
11. 15  方勵之, 상해 교통대학에서 강연, 『三權分立은 중국에서 가능하다고 생 각한다 』고 발언 
 
12.  2  기업파산법 (시행초안) 공포 
 
12.  5  동일 및 9일, 安徽省 合肥의 중국과학기술대학 등에서 정치민주화를 요 구하는 학생운동 발생 
 
12.  6  대만, 국민대회대표 및 입법위원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이 약진 
 
12. 11  중공중앙군위확대회의 개최 (∼25일). 새로운 시기의 군대 정치공작에 관 한 결정을 토의. 臨戰體制에서 平和時期의 건설로 전환 확인 
 
12. 19  상해에서 학생 1만명이상이 民主化·報道의 自由·生活改善 등을 외치 며 항의집회와 데모를 행함 (∼22일) 
 
12. 23  『인민일보 』,사설에서 처음으로 학생데모의 과도함을 경고. 이 사설에 반발하여 북경에서 학생 4000여명이 데모 
 
12. 30  중공중앙 1호문건, 등소평의 『기치선명하게 부르조아자유화에 반대하 자 』를 당내 통지 
 
1987
1.  1  『인민일보 』사설 『四項基本原則의 견지는 개혁·개방의 기본원칙 』 발표 
 
1.  1  북경의 학생 수백명이 『데모의 자유 』등을 외치며 천안문광장에서 데모 
 
1. 12  중공중앙, 중국과학기술대학의 管惟炎 학장, 方勵之 부학장을 해임. 17 일 당제명 
 
1. 16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 개최 (∼22일). 호요방 총서기의 사임을 승인하 고, 총서기 대행에 조자양, 호요방은 정치국상무위원에 유임을 결정 
 
1. 22  胡喬木 정치국위원, 당중앙은 전면적인 범위에서 부르조아자유화반대투 쟁을 전개할 것을 호소 
 
1. 27  중공중앙군위, 『새로운 시기의 군대 정치공작에 관한 결정 』 공포 
 
1. 29  조자양 총서기대행·수상, ①부르조아자유화반대투쟁은 당내에 한정하 고, 농촌에서는 하지 않아 정치운동화로 가지 않으며, ②금년 縣수준의 선거에는 복수후보제를 도입한다고 발언 
 
2.  5  상해에서 증권의 店頭去來 시작. 년내에 증권거래소 설립 예정 
 
2.  9  중소국경교섭, 모스크바에서 개최 (∼23일). 78년 중단이래, 9년만에 개 최. 동부국경 등 국경선 획정을 전면적으로 실행하는 것에 합의 
 
2. 18  대만 중앙은행, 대만의 외화준비금이 세계 제 2위인 500억 달러에 이르 렀다고 발표 
 
2. 26  중국외무성, 大阪高裁의 光華寮 소송의 공소심 판결에 대해, 잘못된 판 결이며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담화 
 
3.  4  중국외무성, 소련의 歐洲배치 중거리핵전력(INF)전면폐기 제안에 대해, 아시아의 중거리핵전력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성명 
 
3. 20  兪國華 행정원장, 『住民自決 』論에 대해 견해 표명 
 
3. 27  章曙 주일중국대사, 일본외무성에 각서를 친히 전하면서 光華寮문제를 일본정부가 적절히 해결하도록 요청 
 
4. 13  중국·포르투칼 양국, 『마카오문제에 관한 공동성명 』 조인, 1997년 12 월 20일 반환 합의 
 
4. 16  등소평, 홍콩의 접수후 50년간은 현행제도를 바꾸지 않는다고 발언 
 
5. 20  김일성 조선노동당총서기·국가주석, 5년만에 중국을 공식 방문 
 
5. 27  중공중앙整黨공작지도위원회, 3년 반에 걸친 整黨활동이 기본적으로 종 료됐다고 언급. 당적박탈자 3만 4000명 
 
5. 29  栗原 일 방위청장관, 중국방문 (∼6.4). 방위청장관의 중국방문은 이번 이 처음 
 
5. 30  중국해군 東海艦隊가 서태평양에서 군사연습을 처음으로 실시 
 
6. 10  중국외무성 대변인, 등소평에 대한 일본외무성 고위관리의 발언에 대 해, 『최소한의 국제예의도 차리지 못한 행위 』라고 비판 
 
6. 11  중국, 파리국제항공쇼에 전투기 등을 출품 
 
6. 23  動員戡亂時期의 국가안전법 공포 
 
6. 25  중국외무성 대변인, 미하원이 18일 채택한 중국의 인권문제와 티벳에서 의 인권침해에 관한 2법안에 강한 불만을 표명 
 
7.  6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준공 (북경교외 盧溝橋) 
 
7. 15  대만 계엄령, 38년만에 해제 
 
8. 21  제 2차 중소국경교섭, 동부국경은 하천의 항공수로 또는 하천의 중심으 로 한다고 합의 
 
8. 21  錢其琛 외무차관, UN의 『국축과 개발의 국제회의 』에서 평화와 개발이 현대세계의 두개의 근본문제라고 연설 
 
9. 21  달라이 라마, 미하원 인권소위원회에서 『티벳에 관한 5항목의 화평제 안 』 발표. 28일 중국외무성, 미하원에 유감의 뜻을 표명 
 
9. 27  라싸에서 티벳독립요구 데모 
 
10.  6  미상원 본회의에서 대중국 무기공여에 즈음하여, 중국정부가 티벳의 인 권문제에 성실하게 응하도록 미정부가 움직이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결 의 가결 
 
10. 16  이란, 중국의 對艦미사일 'Silk-Worm'을 사용하여, 미 護衛탱크를 공격 하여 불타고 18명 부상 
 
10. 20  중공 12기 7중전회 개최. 당규약의 일부 개정안을 채택하고, 정치체제 개혁안에 원칙적으로 동의 
 
10. 24  아마코스트 미국무차관,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對艦미사일인 'Silk- Worm'의 이란공급을 정지하도록 요구 
 
10. 25  중국제 13회당대회 개최 (∼11.1). 조자양 보고, 정치체제개혁의 기본구 상과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라는 개념을 제기. 11월 1일 이 보고를 승인함과 함께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고 사항 기본원칙을 견지하며, 개혁·개방을 진행한다는 점을 결의. 당규약 개정,복수후보제를 규정,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을 정치국상무위원에서 선출한다는 규정을 중 앙위원회가 결정한다고 변경. 등소평·진운·이선념 중앙위원에서 물러 남 
 
11.  1  국민당정부, 대륙에 있는 친족방문을 허가 
 
11.  2  중공 13기 1중전회 개최, 등소평에게 최종결정권을 부여한다는 비밀결 의 가결. 총서기에 조자양, 정치국상무위원에 조자양·이붕 등 5명을 선출, 호요방도 정치국위원에 유임. 당중앙군사위주석에 등소평 선출 
 
11. 17  제 6기전인대상무위 제 23회회의 개최 (∼24일). 李鵬을 수상 대행으로 임 명하고 조자양의 수상사임을 승인 
 
12.  8  미소수뇌, INF전면폐지조약 조인 (워싱톤, 1988년 6월 1일 발효) 
 
12. 16  한국 대통령선거,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당선 
 
12. 22  東芝機械코콤위반사건에 따른 일본기업의 수출계약 불이행문제로 중국 매스컴 일본정부 비판캠페인 전개 
 
1988
1. 13  대만 장경국 총통 사망, 후임으로 李登輝 취임 
 
1. 23  『인민일보 』, 연해지역의 경제개발에 관한 조자양 담화 게재 
 
3. 25  제 7기전인대 제 1회회의 개최 (∼4.13). 이붕 수상대행이 정치활동 보 고. 4월 8∼9일 양상곤을 국가주석으로, 만리를 전인대상무위원장으로, 등소평을 국가군사위주석으로, 이붕을 수상으로, 吳學謙을 부수상으로 각각 선출. 12일 헌법을 수정하여 사영경제, 토지사용권의 전매를 인 정. 13일 全인민소유제공업기업법 공포 
 
3. 28  중공중앙정치체제개혁실 설치 
 
4. 14  아프카니스탄·파키스탄·미·소 4개국, 아프카니스탄 평화협정 조인 (쥬네브) 
 
5. 31  중공중앙, 『紅旗 』를 폐간하고, 7월 1일부터 『求是 』발간 결정 
 
6. 11  TV 연속 다큐멘터리 『하상 』 방영됨 
 
6. 21  제 12회 중소차관급회담 후, 로가쵸프 외무차관, 양당관계를 포함한 모 든 분야의 관계정상화에서 소련측의 장애는 없다고 발언 
 
7. 12  국민당 제 13회 당대회, 『현단계에서의 대륙정책 』 채택 
 
8. 24  국민당중앙당부에 『大陸工作問題指導小組 』 설립 
 
8. 25  竹下 일수상 방중 (∼30일). 1990∼95년에 8100억엔의 새로운 차관공여를 표명. 27일 중일투자보호협정 체결 
 
9.  5  中國人民解放軍現役將校服務條例 공포, 계급제 부활, 89년 1월 1일부터 실시. 국가기밀보호법 공포 
 
9. 10  국무원에 『臺灣事務辦公室 』 설립 
 
9. 13  헝가리와 한국, 대사관에 준하는 상주대표부 설치와 국교수립교섭을 개 시할 것에 동의 
 
9. 14  당중앙공작회의 개최 (∼21일), 경제환경, 질서의 정비·정돈, 인플레문제 를 토의 
 
9. 16  고르바쵸프 서기장, 글라스노야르스크에서 중국과의 완전한 관계정상화 에 찬성한다고 주장 
 
9. 17  이붕 수상, 중국은 중소관계의 정상화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주장 
 
9. 26  중공 13기 3중전회 개최 (∼30일). 조자양 보고, 89·90년의 개혁·건설의 중점은 경제환경정비와 경제질서의 정돈이라고 주장 
 
9. 27  新華社, 중국은 원자력잠수함의 水中 미사일 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발 표 
 
10. 26  북한 외무성대변인, 『헝가리당국의 행동은 남한을 독립국으로 간주하 며, 조선의 분열을 영구화하려는 미국의 책동에 직접 가담하는 행위 』라 고 비난 
 
12.  1  전기침 외상, 1956년 이래 32년만에 방소 (∼3일), 2일 고르바쵸프 서기장 과의 회담에서 양국관계정상화와 중소수뇌회담을 1989년 전반에 개최하 자는데 합의 (모스크바) 
 
12. 24  중공중앙정치국, 국제정세가 對抗에서 對話로, 緊張에서 緩和로 가고 있는 점을 확인 
 
1989
1.  6  方勵之가 등소평에 서간을 보내 魏京生 등의 정치범을 석방하도록 요구 
 
2.  2  세바르나제 소련외상 방중 (∼4일). 중소 수뇌회담 5월 개최하기로 합의 
 
2. 13  謝氷心, 蘇紹智, 王若水 등 33명의 지식인이, 위경생 등 국내 정치범의 석방을 원하는 공개장을 전인대 상무위원회와 당중앙에 제출 
 
2. 15  소련군, 아프카니스탄에서 완전 철수 
 
2. 20  뉴욕에서 중국의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중국지식인의 조직 『中國民主促 進連絡會 』가 결성되고, 방려지를 리더로 하는 대륙, 대만, 홍콩의 56명 의 학자, 지식인이 참가 
 
2. 23  전기침 외상, 일본천황 문상위해 방일. 수하르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외교관계 회복에 대한 토론 
 
2. 25  부시 미대통령 방중 (∼27일). 등소평, 부시에게 중국에는 안정이 필요하 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면 혼란스럽다고 언급. 26일 방려지, 부시가 주 최한 만찬회 참석이 중국당국에 의해 거부됨 
 
2. 26  북경과학계 42명, 민주화와 교육의 중시를 요구하는 공개장을 중공중 앙, 전인대, 국무원의 지도자, 조자양·만리·이선념·이붕에게 보냄 
 
3.  5  라싸에서 티벳독립을 요구하는 라마僧의 데모, 警官隊와 충돌. 쌍방 11 명 사망. 
 
3.  7  라싸에 계엄령 포고 
 
3.  ?  광동성의 철도역과 도로변은 四川, 湖南, 河南 등 내륙에서 유입된 200 만명을 넘는 농민으로 가득참. 5∼6000만명이 국내에서 유랑 
 
4. 15  호요방 前총서기가 심근경색으로 사망. 북경대학에 호요방 추도·민주 화 요구하는 벽신문 출현 
 
4. 17  대만정부, 공무원 및 매스컴 관계자 대륙과의 교류 허가 
 
4. 18  호요방 추도의 민주화요구운동, 상해, 西安 (22일)으로 파급 
 
4. 19  학생 데모, 천안문광장에 5만명 집결. 新華門에서 경관과 충돌 
 
4. 22  胡耀邦 追悼大會, 인민대회당에서 거행. 조자양, 호요방을 『위대한 프 롤레타리아 혁명가, 탁월한 지도자 』라고 평가. 총서기 사임으로는 이어 지지 않음 
 
4. 25  등소평, 학생들의 운동은 『動亂 』이며, 그들은 공산당의 지도를 전복하 려 하므로 단호히 저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당내 지시 
 
4. 26  『인민일보 』사설 『기치 선명하게 동란에 반대하자 』 발표 
 
4. 27  천안문광장에 10만명의 학생 데모, 『인민일보 』사설의 취소를 요구 
 
5. 13  학생 약 1000명이 천안문광장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 
 
5. 14  嚴家其 등 지식인, 이번의 학생운동은 애국민주운동이며, 선거에 의해 결성된 학생조직을 합법조직으로 인정하자고 호소 
 
5. 15  고르바쵸프 서기장, 중소 정상회담차 방중 (∼18일), 북경공항에서 환영식 
 
5. 16  고르바쵸프·등소평회담, 중소 정상화를 선언. 조자양, 고르바쵸프에게 1987년 중공 13기 1중전회에서 등소평에 최종결정권을 부여했다고 언 급. 18일 중소공동성명 발표 
 
5. 17  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 요구하며 100만명 데모, 상해에서도 2만명 데 모. 嚴家其·包遵信 등 『5.17宣言 』 발표 
 
5. 19  조자양, 이붕, 천안문광장을 방문해 단식농성 중지 설득. 정치국상무위 원회에서 데모대책을 둘러싸고 조자양은 고립, 사표 제출. 밤에 당·정 부·군간부회의 개최, 등소평·양상곤·이붕 등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 고 군의 동원을 결정. 조자양 결석 
 
5. 20  북경에 계엄령 선포. 천안문광장에 학생 100만명 집결. 등소평·이붕의 사임을 요구, 각지에 해방구 출현. 상해에서 이붕 퇴진요구 데모 
 
5. 22  홍콩에서 100만명 민주화지원 데모 
 
5. 27  계엄군, 시가에 진입하려 했으나, 학생·시민시위대에 의해 저지. 홍콩 에서 150만명 데모 
 
6.  3  계엄군, 날이 밝기 전 중심가에 진입하여, 학생·시민과 충돌, 사상자 다수 
 
6.  4  계엄군, 전차·장갑차를 동반하고 천안문광장에 돌입, 데모대를 진압. 사상자 다수 
 
6.  5  부시 대통령, 중국의 민주화운동 진압에 항의하여 대중국 무기수출정지 를 발표 
 
6.  7  일정부, 자국인에게 북경으로부터 피난 권고 
 
6.  7  영정부, 무기수출과 양국고위관리의 접촉 동결을 발표. 일본 외무성, 자국인에게 중국 전역에 대해 渡航自肅 권고 
 
6.  9  등소평, 계엄부대의 간부를 접견하여 강화 
 
6. 10  북경시와 그외 지방도시에서 민주화운동 관계자를 대량체포 
 
6. 20  三塚博 일외상, 중국당국의 민주화운동 관계자 사형판결에 대해 자제를 요망 
 
6. 20  미정부, 모든 정부고위관리의 중국접촉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국제금 융기관 등에 신규 중국차관을 연기하도록 요구 
 
6. 21  상해에서 민주화운동 적극분자 3명, 『열차에 불지른 죄 』로 처형 
 
6. 21  三塚 일외상, 90년도 이후의 제 3차 엔차관협의를 당분간 보류하자는 견해를 표명 
 
6. 21  듀마 프랑스 외상, 중국의 민주화운동 관계자 처형에 대해, 프랑스는 대중국 외교관계를 동결, 대중 협력계획을 재고하도록 지시 
 
6. 22  중국정부, 120억원에 달하는 1989년도의 국채발행을 통지 
 
6. 22  북경에서 민주화운동 관계자 7명, 濟南에서 17명 처형 
 
6. 22  宇野 일수상, 중국의 처형에 유감 표명 
 
6. 23  일본정부, 대중국 통일 입장 발표. 민주화운동 관계자의 처형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 법무성은 중국인 유학생의 체재기간 연장을 잠시 인 정 
 
6. 23  중공 13기 4중전회 개최 (∼24일). 민주화운동을 暴亂이라 비난. 조자양을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킨 오류를 범했으므로, 총서기를 포함해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면서 당적만을 보류한다고 결정. 총서기에 강택민 취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구성을 강택민·이붕·교석·요의림· 송평·이서환의 6인체제로 함 
 
6. 26  상해근교에서 열차폭발사건, 사망 24명, 중상11명, 경상 40여명 
 
6. 26  EC 외상회담, 중국에 대한 군사협력과 무기수출의 정지, 정부 고위관리 의 접촉금지, 대중국 경제협력의 정지를 결정 
 
6. 26  방미중인 三塚 일외상, 부시 대통령과 회견. 대통령은, ①중국과의 관 계는 미일양국에 중요하다, ②중국에 민주화를 촉구하는 가장 좋은 방 법은 무역과 학생교류를 계속하고, 민주화가 중국자신의 이익관계되는 점을 중국지도자에 인식시킨다, ③이후의 대중국정책은 미일이 긴밀 하게 토론해 가자는 입장을 표명 
 
6. 26  세계은행, 7억 8000만 달러의 대중국차관의 연기를 결정 
 
6. 30  陳希同 북경시장, 전인대 상무위원회회의에서 『反革命的인 暴亂 』진압에 대한 보고를 행함 
 
7. 14  파리에서 주요선진국 수뇌회의 개최. 15일 『政治宣 言 』 발표. 중국의 민주화운동 탄압을 비난, 대중국 무기원조의 정지, 세계은행의 신규융자 연기를 동의 
 
7. 17  『인민일보 』사설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은 불가하다 』, 수뇌회의의 『정치 선언 』에 반발 
 
7. 20  대만정부, 그라나다와 국교수립 
 
7. 27  중공중앙정치국전체회의 개최 (∼28일). 公司의 정리정돈, 고급간부 자제 의 장사금지, 부르조아자유화 반대의 사상공작의 강화 등 7항목 결정 
 
7. 29  국가교육위가 북경대학의 신입생에게 1년간의 군사훈련교육을 통지 
 
7. 31  『인민일보 』 평론원 『『二重承認 』의 계획을 실현시켜서는 안된다 』 
 
8. 10  민주화운동의 嚴家其, 包遵信 당적박탈 
 
8. 17  중공중앙·국무원, 『公司의 一掃 정리정돈에 관한 결정 』 채택 
 
8. 17  일본외무성, 북경을 제외한 지역으로 渡航自肅을 18일부로 해제 결정 
 
8. 18  대만의 連戰 외상, 대외관계 확대에 대한 강화 
 
8. 28  일본정부, 5월에 長崎縣에 정박한 난민 중에 베트남난민을 가장한 중국 인 위장난민이 존재하는 것이 판명되었다고 발표 
 
8. 31  일본외무성이 중국공사에 중국인 불법입국자의 인수, 중국국내의 단속 강화 등을 제의 
 
9.  4  민주화운동에 관련해서 王蒙 문화상 해임 
 
9.  8  주민신분증의 사용·검사를 실시 
 
9. 17  중일우호의원연맹방중단 (단장=伊東正義) 방중 (∼19일). 중국측이 제 3차 엔차관동결 해제 등을 요청 
 
9. 18  폴란드에서 사회주의국으로 최초의 자유선거 실시. 자주노조『連帶 』가 압승하여 『連帶 』주도의 내각이 발족 
 
9. 22  일본정부, 북경 渡航自肅 권고를 25일부로 해제 결정 
 
9. 24  파리에서 『民主中國陣線 』성립 선언. 25일 중국외무성, 프랑스정부에 항 의 
 
9. 29  강택민 총서기, 건국 40주년 축하대회에서 연설, 서방측에 의한 중국의 『平和的 轉化 』전략에 대해 경고 
 
10.  2  양상곤 국가주석이 李鐘玉 북한 국가부주석·노동당 정치국원 등 당· 정부 관계자와 회견 
 
10.  5  달라이 라마, 노벨평화상 수상. 7일 중국외무성 항의 
 
10.  5  카이슨 라오스 수상 방중, 이붕 수상과 회견. 79년 중월전쟁 이후 악화 된 관계 수복 
 
10.  7  헝가리공산당이 서구 사회민주당型을 모델로 한 사회당으로 되었다고 결정 
 
10. 10  중국외무성, 대만과 외교관계를 회복한 리베리아와의 단교 발표 
 
10. 11  吳學謙 부수상이 중국수뇌로 29년만에 인도 방문, 간디 수상과 회견 
 
10. 13  대만이 중미 베리즈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발표. 23일 중국은 베리즈와 단교 
 
10. 18  호네커 동독 국가평의회의장, 모든 직위에서 사임 
 
10. 28  닉슨 前미대통령 방중 (∼11.2) 
 
10. 31  집회·데모법 공포 
 
11.  5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 (∼7일). 등소평과의 회 담에서 양국은 당의 지도를 견지하고,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전진하는 방침을 표명 
 
11.  6  중공 13기 5중전회 개최 (∼9일). 등소평, 중공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사임, 江澤民을 후임으로 하고, 양상곤을 제 1부주석, 劉華淸을 부주석, 楊白 氷을 비서장 겸 중공중앙서기처 서기에 增補. 강 총서기, 경제의 긴축 정책을 제시 
 
11.  9  동독정부, 『베를린 장벽 』의 자유통행을 인정하고, 동서의 국경을 개방 
 
11. 10  등소평, 키신저 前 미국무장관과 회견 
 
11. 14  이붕 수상, 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방문 (∼21일) 
 
12.  2  몰타에서 미소 수뇌회담, 공동으로 냉전종결을 확인 
 
12. 10  스코욱로프트 미대통령특사 방중, 등소평과 회견, 대중국 관계개선을 합의 
 
12. 19  부시 미대통령, 대중국 위성수출의 해금, 미의 輪銀의 대중국 융자개발 을 결정하는 등 대중국 제재조치 완화 
 
12. 22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 시민이 봉기, 차우세스코정권 붕괴, 대통령 도망. 이리에스크 前 공산당중앙위 서기가 인솔하는 『救國戰線 』이 정권 장악. 25일 대통령부처 처형 
 
12. 23  루마니아의 『國民救濟評議會 』가 행동계획을 발표. 일당독재체제의 폐 지, 복수정당제의 실시 등 발표 
 
12. 23  중공지도부가 루마니아의 정변에 따라 정치국확대회의 개최. 고급간부 의 사상통일, 군을 당 지도부하에 두고, 스트라이크·데모의 금지라는 3항목의 방침을 결정 
 
12. 26  도시주민위원회조직법 공포 
 
12. 28  『프라하의 봄 』의 주역 두부첵크 복권 
 
12. 28  오학겸 부수상, 자민당의 戶塚進也 代議士와 회견하고, 고르바쵸프 의 장에 대한 불쾌감을 표명 
 
1990
1.10 국무원, 北京의 계엄령해제명령. 이와 관련하여 李鵬수상이 텔레비전 연설. [人民日報]는 '계엄령해제가 중국의 안정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는 사설 게재
 
1.18 공안부 대변인, "89년 천안문사건 관련 체포자 573명을 석방했다"고 발표
 
2. 2 劉華秋 외교부부장, 미국주중대사와 회견에서 미국 상하원의 중국제재조항법안 가결에 항의
 
2. 9 중-소의 국경병력소멸 및 군사상호신뢰강화협의 제2차 회담 시작(∼22일)
 
2.19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12차 회의 개시
 
2.26 프랑스정부, 대중국 中期 차관 재개
 
3.12 중국공산당 제13기 6중전회 개막. [당과 인민대중과의 결속을 강화하는 것에 관한 당중앙의 결정]을 심의하고 채택. 중앙고문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 공동성명 발표. 당중앙규율심사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 북경에서 개최.
 
3.19 제7회 전인대 제3차회의 예비회의 개최. 전인대 회의 대변인, 鄧小平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사직서 수리, 趙紫陽의 당회의 결석 발표
 
3.24 현행 대학입시제도를 고쳐 94년까지 자격시험제도를 도입하기로 발표
 
4. 3 전인대, 江澤民총서기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
 
4. 4 제7기 전인대 제3차회의 개막, 李鵬 총리의 정부활동보고의 승인과 관련된 결의 채택. 전인대 3개의 부속문서를 포함한 [중화인민공화국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 채택. 동법이 97년 7월 1일부터 실시된다는 것과 전인대 상무위원회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위원회의 설치결정. 또한 96년 중에 전인대에 홍콩특별행정구준비위원회 설치를 결정. [중화인민공화국중외합작기업법 개정안] 전인대에서 채택. 전인대는 江澤民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劉華淸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임명
 
4.12 錢其琛 외교부장, 북한의 김영남 외교부장과 회견
 
4.16 90년 대학졸업생은 56만 4천명, 대학원졸업생은 3만 5천명. 그 중 박사학위취득자는 2000명
 
4.20 인민해방군 우호참관단, 평양에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회견
 
4.26 중국공산당 조직부는 89년 공산당 신입당원은 113만 5천명, 입당신청자는 951만명에 달했다고 발표
 
5. 1 89년 3월 8일부터 실시되어 오던 라쌀의 계엄령 해제발표 
 
5. 4 공안부 호적관리부문은 89년 도시총인구는 3억 1000만명으로 이는 전국총인구의 28.9%라고 발표
 
5.10 공안부 대변인은 "작년 북경에서의 동란, 반혁명폭동에 참가한 위법자 중 211명은 이미 석방되었으며, 현재 431명이 아직 공안기관에 심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
 
6. 2 楊尙昆 주석, 남미 5개국을 방문하고 귀국
 
6.18 전인대 상무위원회 판공청 대변인, 89년의 동란에서의 체포자 355명이 현재에도 구금중이라고 발표
 
6.21 중국청년대표단, 평양에서 김일성 북한 주석과 회견
 
6.25 공안부 대변인, "方勵之와 李淑한(Li Shuxian)은 이미 병치료를 위해 출국했다"고 발표
 
7. 3 8월 8일부터 인도네시아와의 국교정상화하기로 한 공동성명에 양국 외무부 장관 조인
 
8. 6 조선노동당 서기, 평양에서 중국당 대표단과 회견
 
8. 8 인도네시아와 정식으로 국교정상화 발표, 무역협정에도 서명
 
9. 7 제7기 전인대상무위 제15회 회의개회. 회의에서 [저작권법], [철도법], [귀국화교가족권익보호법] 등이 채택됨. 陳錦華는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주임에 임명됨.
 
9.15 싱가포르와 외교관계수립문제에 관한 회담
 
9.18 세계은행은 90년회계년도에 중국에 5억 9000만 달러 융자를 발표. 김일성 북한주석이 방북중인 중국공산당간부대표단과 회견
 
9.22 제11회 아시안게임 北京工人체육관에서 개막
 
10. 2 중국과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중소무역협정] 등을 조인
 
10. 7 김일성 북한주석, 평양에서 宋平상무위원일행과 회견
 
10.15 廣西莊族자치구에서 나오족 자치현 설립축하대회 개최. 나오족의 10번째 자치구
 
10.17 새로운 25개 시와 현을 외국인에게 개방
 
10.30 90년 7월 1일 현재, 중국대륙의 인구는 11억 3368만 2501명이라고 중국통계국이 제4회 전국인구조사의 결과를 발표
 
11. 2 일본의 대중국 차관 365억엔에 관한 서신교환
 
11.11 楊尙昆 주석, 일본의 아키히토(明仁)천황에 축전 보냄. 吳學謙 부수장, 천황즉위식을 위해 일본방문
 
11.16 국무원, 인사이동(8일∼). 홍콩마카오판공실 주임이 姬鵬飛에서 魯平으로, 대만판공실주임이 鄭關根에서 王兆國으로
 
11.23 錢其琛외무부장, 소련의 세바르나제 외무장관과 우루무치에서 회담
 
12.21 중소양국은 군사력상호감소와 신뢰강화에 관한 협정이행을 위한 회담을 종결(11월 30∼) 

12.24 90년 10월 현재, 전국 개인상공업자 1298만호, 89년 같은 기간에 비해 4%증가 
  
  
1991
1. 8 일본 하시모토(橋本) 대장상, 북경도착. 일본각료의 중국공식방문은 1년반만에 처음
 
1.16 江澤民총서기, 조선노동당 김용순 서기와 회견
 
1.23 山東省 5개시 39개현을 새롭게 대외개방
 
1.24 중국외교부, 홍콩문제의 중국과 영국의 공동선언을 존중할 것을 확인. 외무부, 걸프전쟁 당사자의 최대한 자제를 요구
 
1.26 北京市 중급인민법원, 89년 동란범죄자 26명 중 16명을 석방하고 王丹 등 8명에 대해서는 최고 7년형, 정치적 귄리 박탈 3년 등을 판결
 
2. 7 90년 중앙과 성, 시(1급행정구)의 국가행정기관의 간부를 공채시험을 통하여 선발. 중앙의 48성, 위원회에서 1186명을 보충. 12개성, 시에서도 1만 350명을 채용.
 
2.12 북경시 중급인민법원, 89년 동란에서의 피고 陳子明 등 4인에 대한 공개재판. 최고 징역 13년, 정치권리 4년 박탈.유엔 인권위원회 중국대표, 제47회 회의에서 가치관 강요, 내정간섭에 반대.
 
2.28 북경시의 구, 현, 향·진 인민대표 改選選擧 종료. 투표율 96.84%
 
3. 2 제7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18회회의 개회. 廣東省의 許家屯 상무위원을 해임하고 당에서 제명하기로 결정
 
3. 7 국제근로부인대회 北京에서 개최. 중국노동부, 중국 총노동자의 37.4%인 약 5,100만명이 여성노동자라고 발표
 
3.13 李嵐淸 무역부장, 북한 한수길 무역부부장과 회견.
 
3.21  중-소는 91년도 [경제무역협력의정서] 조인.
 
3.25 제7기 전인대 제4회 회의 개막. 李鵬 총리가 정부활동 보고
 
3.29 李鵬 총리, 한국과의 관계는 민간 및 비공식적 성격의 경제무역왕래에 제한된다고 공식 표명.
 
4. 6 李鵬 총리, 錢其琛 외교부장, 나카야마(中山 )외상과 회견.
 
4. 8 전인대, 鄒家華와 朱鎔基를 부총리에, 錢其琛을 국무위원에 임명. 周南를 상무위원에 선출. 제7기 전인대 제4회 회의 폐막. 폐막식에서 [국민 경제·사회발전 10개년 계획과 제8차 5개년 계획 요강] 채택. 또한 [민사소송법]을 공포. [외자계 기업, 외국기업 소득세법]을 7월 1일부터 시행키로 함.
 
4.14 江澤民 총서기, 카터 전 미대통령 부처와 회견.
 
4.18 劉華秋 외교부부장 , 미대통령과 달라이 라마와의 회견에 관해 미정부에 항의.
 
4.26 중국 노조원수 1억 135만명, 총인구의 약 1/10, 기업·사업체 노동자가 90%이상.
 
4.29 국무원 대만판공실 부주임 唐樹備, 대만 [해협교류기금회]의 陳長文 비서장과 회견, 해협양안교류 5원칙을 제시. 중국 노동자수가 최근 5년간 1억2300만명에서 1억4000만명으로 증가. 평균연령 35.2세.
 
5. 3 李棚 총리, 북한의 연형묵 총리와 평양에서 회담
 
5. 4 李棚 총리, 김일성 조선노동당 총서기, 주석과 회담.
 
5.16 중-소, 동부국경협정조인.
 
5.31 과거 2년간의 입당자수 244만 1000명, 현재 전국의 입당신청자수 108만명, 당원총수는 5032만명이라고 공산당조직부 발표.
 
6. 4 국무원에 신문판공실 설립, 주임에 朱穆.
 
6.11 전인대 대표단 , 평양에 김일성 주석과 회담.
 
6.17 錢其琛 외교부장, 평양에서 북한 외교부장 김영남과 회견.
 
6.19 錢其琛 외교부장,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회견.
 
7. 1 중국 공산당 창립 70주년, 인민대회당에서 기념 축하집회 개최. 江澤民 총서기 주요연설. [人民日報],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걷자 : 중국공산당 창립 70주년을 축하하며' 라는 題下의 사설발표. 
 
7.15 李鵬 총리, 중동 6개국 순방 마침.
 
7.24 미대통령, 대중국 최혜국대우의 무조건 연장결정에 중국 환영표명.
 
7.30 李鐵映 당정치국위원, 조선 노동당대표단과 회견.
 
8. 5 江澤民 총서기 , 조선노동당 대표단과 회견.
 
8. 6 조선노동당 김용순 서기 , 평양에서 중국공산당 간부대표단과 회견.
 
8.10 일본 가이후(海部) 수상 , 북경방문.
 
8.17 중국 경제무역대표단 , 미국 방문.
 
8.24 김일성 총서기와 朱良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평양에서 회견. 錢其琛 외무부장, 북한 김영남 외무부장과 회견.
 
8.27 제7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5회 회의 개최. 국무원 대변인, 소련의 정세변화는 국내문제로서 중국은 타국인민의 선택을 존중. 독자적인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한다고 함. 
 
9. 2 북한 김용순 서기, 중국공산당 吉林省 대표단과 회견.
 
9. 9 1977년부터 88년까지 전국 소수민족 간부수는 78만 9000명에서 184만명으로 증가, 간부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76%에서 6.06%로 증가했다고 관계당국이 발표.
 
9.13 외교부 ,한국의 황해에서의 석유탐사를 비난.
 
9.27 91년도의 대중국 엔차관 공여에 관한 문서를 중-일 양국정부가 북경에서 교환.
 
10. 4 김일성 주석 北京방문, 北京驛에서 환영식.
 
10. 5 李鵬 총리, 김일성 주석과 회견.
 
10. 7 중국, 고르바쵸프 대통령의 핵군축계획에 환영표현.
 
10.15 일본 가이후(海部)수상과 鄒家華 부총리 , 北京에서 회견.
 
10.24 중국외교부, 캄포디아 평화조인에 환영표현, 라오스와 국경조약조인.
 
10.28 김일성 주석, 평양에서 江蘇省 당위, 遼寧省 우호대표단과 회견. 
 
10.30 제 7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22회 회의 개막. 수출입 동식물 검역법 채택. 武漢, 九江, 蕪湖의 각 항구를 외국국적선박에 개방.
 
10.31 중국 외교부 ,대이란 핵무기기술 공여에 관한 보도 부인. 핵수출 3원칙을 엄격히 준수함을 다시한번 표명.
 
11. 9 중국 외교부, 한국 노태우대통령의 비핵화선언에 코멘트.
 
11.11 朱良 당대외연락부장, 방일.
 
11.12 중국의 사영기업 10만개사 돌파. 노태우대통령은 서울에서 錢其琛외교부장 ,李嵐淸무역부장과 회견.
 
11.13 제3회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각료회의에서 錢其琛 외교부장이 건설적 태도를 표명.
 
11.14 錢其琛 부장, 이상옥 한국외무부장관과 회견. 
 
11.15 베이커 미국무장관, 북경방문. 錢其琛 외교부장과 공식회담.
 
11.28 중국 외교부, 일본의 해외파병은 민감한 문제이므로 신중한 처리를 희망한다고 전함.
 
11.29 중국공산당 제13기 8중전회 공동선언 발표. 농업 농촌강화 결정을 채택. 89년 천안문 사태에서의 체포자중 2명 석방.
 
12. 9 동북아시아 경제협력민간협회 제1회 이사회 , 北京에서 개최.
 
12.13 江澤民 총서기 , 북한 오진우 국방부장과 회견.
 
12.16 '해협양안관계협회' 北京에서 발족. 명예회장에 榮毅仁, 회장에 汪道涵 선출.
 
12.17 [중국공민의 대만지구와의 왕래에 관한 관리법]을 공포. 92년 5월 1일부터 시행예정.
 
12.24 제7회 중-미 지적소유권교섭이 결렬되었다고 무역부가 발표.
 
12.25 외교부, 구소련과 각종 조약의 이행계속을 표명. 외교부, 북한의 핵사찰 수용표명에 반대. 한반도의 비핵화노력은 환영한다고 발표.
 
12.29 제7기 전인대 상무위 23회 회의 폐회 . NPT 가입에 관한 결정.
 
12.31 중국국가상회와 한국무역진흥공사의 무역에 관한 협정, 北京에서 조인.
 
1992
1. 3 우즈베키스탄 공화국과 국교수립. 카자흐스탄 공화국과 국교수립.
 
1. 4 우크라이나 공화국과 국교수립. 키르키즈 공화국과 국교수립. 錢其琛 외교부장, 와타나베(渡邊) 일본외상과 회담. 李鵬 총리, 와타나베(渡邊) 일본외상과 회담. 江澤民 총서기와도 회견.
 
1. 5 타지크 공화국과 국교수립.
 
1. 9 중국의 소수민족의 총인구 9,120만명.
 
1.14 최초의 중앙민족 공작회의 北京에서 개막.
 
1.16 중국어민의 조기석방을 중국 외교부가 한국에 요청. 
 
1.17 워싱턴에서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에 중-미 양국이 조인.
 
1.24 이스라엘과 국교수립.
 
1.26 평양에서 북한과 무역협정에 조인.
 
1.31 李鵬 총리, 유엔안보리 정상회담에서 발언. 러시아 옐친대통령, 영국 메이저수상, 부시 미대통령, 일본 미야자와(宮澤)수상과 회견.
 
2.14 중국과 베트남, 경제협력, [사증교환면제협정]에 조인. 錢其琛 외교부장, 베트남 총서기와 회담.
 
3. 3 중국외교부 대변인, 부시 미대통령의 대중국 최혜국대우 조건부 연장에 대한 미의회 가결법안에 반대하는 거부권 행사를 환영.
 
3. 6 92년 對臺灣 공작회의 폐막(2일- ). 해협양안 경제무역협조회와 대만의 해협양안 상무협회의 공동회의.
 
3.13 江澤民 총서기, 북한의 [노동신문]대표단(현준극 단장)과 회견. 
 
3.16 제7기 전인대 상무위 25차 회의 폐회(14日- ). [澳門(마카오)특별행정국기본법] 초안에 관한 결의 채택 등.
 
3.30 신화사, 鄧小平의 深천(Shenzhen)방문 기사를 내외에 전함.
 
4. 3 제7기 전인대 5차 회의, 정부활동보고 채택, 三峽댐 건설결정 후 폐막.
 
4. 6 江澤民 총서기, 東京에서 미야자와(宮澤) 수상과 공식회담.
 
4. 7 아키히토(明仁) 천황, 황거에서 江澤民 총서기와 회견, 江澤民 총서기, 다나카(田中) 전 수상집 방문.
 
4. 8 江澤民 총서기 , 東京에서 일본 前 수상 6명과 조찬.
 
4.13 李鵬 총리, 前其琛 외교부장, 이상욱 한국외무부 장관과 회견. 楊尙昆 주석,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회견.
 
4.17 한중합작의 黑龍江省 남강평원 농업종합개발 유한공사, 하얼빈시에서 개업. 
 
4.21 5월 '대한민국 상품전'개최키로 함. 중국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식명칭을 공식적으로 최초로 사용.
 
5. 2 중국과 한국 [투자보호협정] 조인.
 
5.12 북경에서 제1회 한국상품전 개막.
 
5.20 江澤民 총서기 , 양형섭과 회담.
 
5.21 세계은행, 2억 2,000만달러 중국융자 승인.
 
5.22 외교부, 新疆 핵실험장의 지하 핵실험을 확인.
 
5.23 李瑞環 상무위원, 조선중앙통신사 대표단과 회견.
 
5.25 萬里 위원장, 일본을 공식우호 방문( - 6. 1)
 
5.26 일본 미야자와(宮澤) 수상, 수상관저에서 방일중인 萬里 전인대 위원장과 회견. 아키히토(明仁) 천황, 황거에서 萬里 위원장과 회견.
 
5.27 김일성 주석, 평양에서 丁關根 서기와 회견.
 
6. 5 김일성 주석, 楊白빙(Yang Baibing) 군사위 비서장 일행과 회견. 
 
6. 9 江澤民 총서기, 당중앙당학교에서 연설, 鄧小平의 남순강화의 정신을 관철하는 개혁·개방의 가속을 강조.
 
7. 9 중국외교부 대변인, 종군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의 엄숙한 대처와 처리를 희망한다고 전함.
 
7.10 중국외교부 대변인, 한국전쟁중의 미군포로와 행방불명자의 문제는 중국에는 없다고 지적.
 
7.20 北京국제무역센터에서 한국현대 도자기 공예품 전시회 개최.
 
7.29 중국은 26개 縣, 市를 대외개방. 외국인에의 개방지구는 총 825개임.
 
8. 6 국가중요기밀누설과 반혁명선동 등에 관한 죄로 기소된 鮑丹에게 北京市 고급인민법원이 징역 7년, 정치권리박탈 2년을 판결.
 
8.17 인민해방군 우호방문단, 북한 방문.
 
8.18 중국과 북한, [과학기술협력의정서]에 조인.
 
8.23 北京大學 등의 학생이 鄧小平 앞으로 보낸 鄧小平의 남순강화지지 편지에 대한 당중앙 판공실에 위탁된 답신을 전함.
 
8.24 북한 오진우 원수, 중국인민해방군 참관단과 회견. 중국과 한국 외교관계 수립.
 
8.31  上海 華東師範大學에 한국연구센터 설립.
 
9. 1 한-중 양국이 上海에 대학을 설립키로 함.
 
9. 2 한국 최대의 다국적 그룹인 삼성이 上海에 사무소 설립.
 
9. 3 미국의 대대만 전투기매각에 대해 중국이 강경하게 항의.
 
9. 4 제7기 전인대 상무위 27차 회의. 미국의 대대만 전투기 매각에 관한 성명 채택.
 
9.10 제 14회 당대회의 전국대표 선출. 1,991명중 78%가 각급지도간부.
 
9.11 미국의 대중국 위성수출제한 폐지에 중국외교부는 "훨씬 전에 취해졌어야 할 사안이었다"고 코멘트.
 
9.27 노태우 대통령, 북경방문.
 
9.28 楊尙昆 주석, 노태우 대통령과 회담. 楊 주석이 한국방문 수락. 北京에 한-중 경제회 회합, 한중민간경제협의회 설립.
 
10. 6 당중앙조직부, 현재 전국공산당원은 5,100여만 명이라고 발표. 북한 국방부장은 평양에서 중국군대표와 회견. 일본의 대중국 제3차 엔차관 중 92년도 건에 관한 서신교환.
 
10.12 중국 공산당 제14회 전국대표대회 개막. 江澤民 총서기가 중앙위 보고.
 
10.18 중국 공산당 제14회 전국대표대회 폐막.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선출, 중앙위원 189명, 후보위원 130명, 평균연령 56세, 신임위원비율 46.7%. 鄧小平 등이 당대회 대표와 회견.
 
10.23 일본 천황부처 중국방문( - 28일)
 
10.24 외교부, 외국세력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서 반정부 조직 설립을 기도한 沈천(Shenzhen)이 출국허가를 받아 미국으로 향했다고 발표. 중국과 구소련 4개국과의 국경협의 개최.
 
10.25 중국·몽고·러시아 3개국, 국경교차지점 획정회의 종료.
 
10.27 92년 중국에 신설된 외자계기업은 2만개사로 총 수는 6만개사임. 이는 국가 공상정보 센터의 집계에 의함.
 
11. 2 李瑞環 전인대 상무위원, [한국경제신문]사장과 회견.
 
11. 5 미 클린턴 대통령 당선에 중국이 축하의사 전달. 중국, 한미 한반도 군사연습에 반대.
 
11. 8 遼寧省 대동항, 북한과의 국경세관 설립.
 
11.11 대만당국의 金門, 馬祖 地區의 계엄령 해제에 중국이 환영을 표명.
 
11.25 北京市 중급인민법원, 89년 북경동란 참가한 包遵信을 석방.
 
11.26 중국, 프랑스의 대대만 전투기 매각용인에 항의. 錢其琛 외교부장, 러시아 방문은 대성공이었다고 함.
 
12. 2 미·영·프에 중국최초로 증권주식시찰단 파견.
 
12. 3 한국 여성대표단 최초 중국 방문.
 
12. 8 楊尙昆 주석, 한국 부총리와 회견.
 
12. 9 任達新 당중앙 서기처 서기,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서기와 중앙사회치안종압대책위원회 주석에 임명. 전임자인 喬石은 해임.
 
12. 13 당북경시 제7회 대표대회 개막식에서 李錫明 북경시 서기가 '左'의 방해방지를 강조.
 
12. 24 한국전쟁포로 문제에 대해 북한의 주장을 중국이 부정.
 
1993
1.13 대한항공이 上海와 深朮에 임시 운항. 중국 [화학병기금지조약]에 조인.
 
1.15 중국과 인도, 최초로 합작기업인 제철소 설립.
 
1.22 일본 무역진흥회는 92년 중일무역이 수출입합계 289억 391만 달러(전년대비 26.7% 증가)라고 발표. 중국 신화사에 의하면, 92년 訪中한 일본인은 약 79만명으로, 독립국가연합의 89만 5,000명에 이어 두 번째라고 발표.
 
1.23 프랑스의 대만에 대한 미라쥬 전투기 매각으로 중국으로부터 폐쇄권고를 받았던 廣州 프랑스 영사관을 21일에 폐쇄했다고 프랑스 외무부가 발표. 
 
1.25 대만경제부, 92년에 대중국무역이 대폭증가 했다고 발표.
 
1.26 한국-러시아-중국 물자 수송루트 개설.
 
1.27 [차이나데일리]지에 의하면, 중국정부는 北京 등 11개 도시와 경제특구에 외국기업과의 합작 소매점의 영업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고 함.
 
2. 2 중국과 북한, 문화교류협정에 조인.
 
2. 4 대만의 보도에 의하면, 대만교통부는 [대만지구인민의 대륙지구의 여행업무취급 허용법]을 3일에 채택, 해협양안의 직접여행업무 해금.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반혁명죄로 복역한 민주화운동지도자 王希哲과 趙紫陽 전 총서기의 부하 高山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 부국장 등 2명의 석방을 확인. 
 
2. 5 海南省은 92년 이후 당·정부기관 간부 233명을 횡령, 수뢰 등의 경제범으로 체포, 기소했다고 발표.
 
2.14 대외경제무역부, 92년에 중국은 일본에 파견한 연수생은 약 6,000명, 그 수입은 약 88억엔이라고 발표.
 
2.16 대만의 錢復 외교부장, 斷交 이후 최초로 일본 방문.
 
2.17 반혁명반란죄로 복역중인 전 북경대학의 王丹과 전 북경대학 연구생인 郭海峰은 형기만료 이전에 석방. 복역중인 上海의 전 카톨릭 신부 朱洪聲은 上海市 중급인민법원에서 감형으로 석방.
 
2.18 정부전복을 선동해 복역중이던 陜西省 華岳출판사의 전 부편집장, 李貴仁이 병치료를 위해 보석. 天津에서 토지사용권을 한국기업에 기간 50년으로 유상양도하는 계약에 조인. 중국 외교부, 한반도에서의 핵보유에 반대표명.
 
2.25 외교부 대변인, 대만이 공표한 [외교보고서]에서의 '彈性外交'에 관해 '2개의 중국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비난. 외교부, 김영삼 한국대통령의 취임을 축하.
 
3. 2 92년 중 한-중무역은 50억 6,000만달러로 전년대비 56%증가.
 
3. 3 GATT 복귀에 관한 중-미협의에서 대부분 합의.
 
3. 4 "최혜국대우 무조건 갱신을"-- 외교부대변인이 미대통령 발언에 논평. 인권문제에 대한 유엔결의에 의한 압력에 반대를 표명.
 
3. 7 중국공산당 14기 2중전회 개최(5일- ). 국가기관의 지도자 추천명부채택.
 
3.12 외교부, 홍콩선거법안 공시에 대해 비난.
 
3.15 제8기 전인대 제 1차회의 개막.
 
3.25 당중앙, 溫家寶 당중앙판공청주임과 朱良 대외연락부장을 해임. 溫家寶 후임으로 曾經紅을, 朱 후임으로 李淑錚여사를 임명. 
 
3.27 전인대, 江澤民 주석을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 榮毅仁을 국가부주석, 喬石을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선출. 
 
3.28 전인대, 李鵬 총리를 재선출.
 
3.29 전인대, [헌법개정안]을 채택하고 내용을 발표.
 
4. 8 대륙과 대만의 민관기관, 汪道涵 해협회 회장과 睾振甫 해기회 회장의 회담을 4월 하순에서 5월에 싱가포르에서 개최한다는 것을 확인.
 
4.28 미대통령과 달라이 라마의 회견과 관련하여, 외교부는 타국정부관계자와 달라이 라마의 회견에 반대한다는 것을 표명,
 
5. 3 樓內의장과 일본중의원 의원단, 江澤民 주석과 회견. 
 
5.12 일본의 교과서에 종군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된다고 신화사가 보도. 
 
5.20 중국외교부, 중국과 북한의 비밀회담을 부정.
 
5.26 정부전복을 선동한 죄로 복역중인 徐文立이 형만기전에 석방.
 
5.27 錢其琛 외교부장, 서울에서 김영삼대통령과 회담. 미국, 대중국최혜국대우를 1년연장 표명.
 
5.31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황거에서 錢其琛 외교부장과 회견.
 
6. 1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APEC), 중국에서 최초로 개최.
 
6. 4 중국과 그루지아, 우호협력에 관한 공동성명 채택.
 
6. 7 중국군 대장으로 6명이 진급.
 
6.11 중국과 CIS 4개국, 국경병력 축소를 위한 회담.
 
6.29 당중앙대외연락부장, 중국공산당이 세계의 280여개 정당과 관계를 확립하고 있다고 전함. 한-중우호협회 설립.
 
7. 1 한-중, [우주기술협력의 각서] 조인.
 
7. 8 23개 市, 縣을 새롭게 외국인에 개방. 대외 개방지구는 총 919개 市縣.
 
7. 9 江澤民 주석, 중국방문중인 하이드 영국외상과 회견. 중국과 영국 외무장관 회담, 홍콩문제에 관한 교섭가속에 합의 
 
7.10 국무원 제2차 전체회의, 거시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기로 결정.
 
7.15 上海에 한국 총영사관 개설
 
7.20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회담에 대해 중국은 환영표명.
 
7.26 당정부 대표단 평양방문.
 
8.10 중국과 리베리아 외교관계 회복. 리베리아, 대만과 외교단절. 
 
8.17 錢其琛 부장, 대만에의 무기매각문제에 대해 미국측이 [8·17 공동선언]의 원칙에 따를 것을 요망.
 
8.19 江澤民 총서기, 중국 국민당대회에서의 李登輝 재선에 축전.
 
8.21 외교부, 티베트 문제에 대해 "인권문제를 이용하여 중국의 통일과 영토보전을 파괴하려고 하는 서측의 소수행위"라고 지적. 
 
8.24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문제 교섭, 北京에서 시작. 上海市와 한국의 부산시, 우호도시체결에 조인. 
 
8.25 주미중국대사관, 미국무성이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다.'고 하여 경제제재를 결정한 것에 반론. 
 
8.24 일본 정부의 대중국 제3차 엔차관 93년도 제3차분 1,387억 4,300만엔 공여에 관한 공문을 北京에서 조인.
 
8.31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국무원 신문판공실, [대만문제와 중국의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백서 발표.
 
9. 2 중국외교부, 대만문제는 독일과 한국의 문제와 다르다고 강조. 
 
9. 4 중국외교부, '銀河號' 사건에 대한 미국의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
 
9. 7 북경에서 중국과 인도의 국경문제협정 등 4개 문제에 조인.
 
9.15 사법부는 민주화운동 지도자중 한 명인 瞿偉民 전 북경경제학원생이 형만료로 13일에 출소했다고 공표.
 
9.16 중국전인대 대표단 북한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견.
 
9.17 사법부, 민주화운동을 지지하여 반혁명선전선동죄로 복역중인 吳學燦 전 [人民日報] 편집자를 16일 석방했다고 공표.
 
9.27 중국최고인민법원, 횡령사건으로 8명을 사형. 李嵐淸 부총리가 한국방문, 김영삼대통령과 회견.
 
9.28 횡령사건 등 10명을 처형. 중국과 한국, 위성제조계약에 조인.
 
10. 5 지하핵실험 실시 후, 실험실 문제에 관한 정부성명발표.
 
10. 6 평양에서, 북한과 '회담의사록'에 조인.
 
10. 8 한국이 전액출자한 대우시멘트유한공사 (대우그룹이 3억달러 출자) 설립. 북경에서 발표.
 
10.12 한국제일은행, 북경주재원 사무소를 개설.
 
10.19 北海市에서. '제3회 한-중경제 지식교류 국제 심포지엄' 개최 (17일 - )
 
10.22 당중앙과 국무원이 반부패투쟁에 관한 결정 공표.
 
10.24 총공회 제12차 전국대표대회 北京에서 개막.
 
10.27 한-중 양국은 圖們江 하류의 철도항 건설에 합의.
 
10.28 北京에서, 李鵬 총리와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회견.
 
11. 5 중국대륙과 대만의 민간기관은 아모이에서 대륙의 비행기납치범 송환문제에 관한 실질협의 원칙을 확인. 홍콩특별행정구 준비위 예비작업위 경제전문부 제2차 전체회의가 北京에서 개최 ( - 6일)
 
11. 8 北京에서 중-미 국방장관 회담. 
 
11.11 대만기업의 北京투자가 배로 증가. 외자계기업 전체의 10%를 차지함. 중국과 러시아의 국방부 협력결정 체결.
 
11.13 공안부, 새롭게 134개 市縣 외국인에게 개방 발표.
 
11.14 중국공산당 14기 3중전회의 공동선언 발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확립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중공중앙의 결정" 채택.
 
11.17 江澤民 주석, 미국방문.
 
11.19 江澤民 주석, 클린턴 미대통령과 회담. 호소카와(細川) 일본수상과 회견.
 
12. 6 사회보장 재도개혁의 원칙과 중점발표.
 
12.18 대만에서 최초로 중국·대만 민간협의 시작. 비행납치범 송환문제는 진전. 중 군사대표단, 30년만에 인도를 우호방문.
 
12.27 중-러 국경확정위 제 4차 회담. 북경에서 개최(15일 - )
 
1994
1. 1 人民幣 교환율을 일원화. 그동안의 이원화된 교환율을 폐지함. 
 
1. 6 캔터 미국 통상대표, 94년 중국의 섬유제품수입할당을 20%-30%감소할 것이라고 발표
 
1. 7 국무원상무회의, [노동법(초안)]을 승인. [외자금융기관관리조령]도 채택함.
 
1. 8 江澤民 국가주석, 北京에서 이만섭 한국국회의장과 회담
 
1.27 중국-러시아-몽고의 3개국 국경선 협정을 울란바토르에서 조인
 
1.28 중국외교부, 대만 李登輝총통이 2월에 예정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에 대한 '휴가외교'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
 
1.29 국무원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공무원의 민간인과의 교류활동을 대만이 허가한다는 것에 관하여 환영한다는 담화를 발표
 
2. 1 대륙의 汪道涵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 회장, 북경에서 焦仁和 대만 해협교류기금(해금회) 부이사겸 비서장과 담화
 
2. 6 군수산업의 民需로 전환 추진. 신화사에 의하면 군수산업부문의 민수품생산은 93년에 30%이상 증가했다고 함.
 
2. 7 중국, 호적제도의 개혁을 준비. 현행의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는 이원제에서 양자를 통일적으로 다루는 유동호적관리제도로 이행하는 것임.
 
2.17 외교부 대변인,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에 동의한 것을 환영함. 朱鎔基 부총리가 일본정부의 초청으로 23일부터 3월 3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고 발표.
 
2.18 중국정부는 [방사성폐기물의 해상에서의 처리에 관한 결의]등의 3가지 국제결의에 동의
 
2.24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 대변인, 홍콩입법평의회가 패튼 홍콩총독의 일부 정치개혁안을 가결했다는 것에 대하여 비난함. 朱鎔基 부총리 호세가와 일본수상과 회담. 일본수상의 94년 3월 방중을 합의
 
3. 4 魏京生, 석방기간 중 규정위반으로 북경시 공안부문에 출두
 
3.13 江澤民 주석,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과 회담
 
3.22 李鵬 수상, 내외기자와의 리셉션에서 북한의 핵사찰문제의 대화와 협상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
 
3.23 세계은행, 3억 5000달러의 대중국 융자 승인을 발표
 
3.26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 중국방문. 上海에 도착한 김영삼 대통령은 27일 북경에 들어가 28일 江澤民 주석과 회담.
 
3.28 중국과 한국은 [이중과세방지협정]에 조인
 
4. 1 민주화운동 지도자인 魏京生, 天津에서 北京市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
 
4. 4 사법부, 93년말 현재 형무소와 노동개조시설에 수용된 재소자는 124만 4,000여명이며, 31만 1,000여명이 형기만료로 석방되었다고 발표
 
4.11 [노동법(초안)]이 국무원을 거쳐 전인대의 심의에 붙인 후 연내에 공포, 시행될 것을 발표
 
4.23 사법부, 천안문 사태의 활동가인 王軍濤(전 경제저널리스트)을 석방했다고 발표. 대만 국민당의 임시중앙위원회는 총통, 부총통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등의 헌법 일부개정안을 채택. 5월 2일의 국민당임시대회에 제안하기로 함.
 
5. 2 鄒家華 부총리,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5.13 89년 천안문 사태의 지도자인 陳子明(전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석방
 
5.24 중국, 태평양경제위원회에 가맹
 
5.26 클린턴 대통령, 중국에 대한 인권과 경협 연계 방침 해제 선언 
 
6.10 외교부 대변인, 지하핵실험 사실을 발표. 중국과 CIS 4개국의 국경지대 병력축소와 군사부문의 신뢰조성과 관련된 제12차 회담(5월 23일- )을 북경에서 종료.
 
6.16 외교부 대변인, 북한의 핵개발문제와 관련하여 유엔안보리의 개입 반대를 표명
 
7. 5 전인대 상무위 제8차회의, [노동법], [도시부동산관리법] 등을 가결하고 폐회, 29일에 공식적으로 [노동법]이 제정 공포됨.(1995년 1월 1일 시행) 이 법에서는 최초로 해고를 인정하고 罷業收拾法도 규정함. 
 
7. 8 榮毅仁 국가부주석, 北京에서 북한의 경제대표단(단장: 이성대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과 회담.
 
7. 9 鄧小平, 김일성 주석 서거에 弔電을 보냄. 
 
7.16 일본, 중국, 한국은 합동으로 樂天四通食品 유한공사 설립 계약에 조인.
 
7.25 錢其琛 외교부장, 방콕에서 일본의 河野 부수상겸 외상과 회담. 한반도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
 
8. 7 해협회와 해기회의 타이베이(台北)에서의 회담 종료, '양안의 비행기 납치법 송환' 등의 3개항에 결의에 조인.
 
8.30 중국외무차관, 북한의 송호경 외무차관과 북경에서 회담. 군사휴전위원회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의 철수를 결정
 
9. 2 江澤民 주석, 러시아 등 3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
 
9. 3 江澤民 주석과 엘친 대통령 중-러공동성명에 조인
 
9.14 국무원은 長江 三峽경제개발구의 설립을 인가
 
9.19 국제원자력기구총회에서 중국대표는 '원자력안전국제조약에 서명했다'고 밝힘.
 
9.27 민주화운동가인 王丹, 중국공안당국에 일시 구속됨. 중국 외교부 대변인, 기자회견에서 李鐵映 국무위원의 방일중지를 표명
 
9.28 중국공산당 14기 4중전회, [당건설강화의 몇가지 중대문제에 관한 중국공산당중앙의 결정]을 채택
 
9.29 중국외교부 대변인, 대만의 주요인사인 徐立德의 방일에 동의한 일본정부를 비난.
 
9.30 전인대 상무위원회, 반환후 홍콩의 입법기관을 독자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결정.
 
10. 3 錢其琛 외교부장, 클리턴 미 대통령과 회담. 
 
10. 4 중국과 미국은 '핵미사일 확산방지'에 합의
 
10. 5 베트남 서기장, 하노이에서 북경시 당서기와 회담. 북경시와 하노이시 자매결연 맺음.
 
10. 7 한중과학기술협력각서 조인. 몽고, 러시아, 베트남 북한 등과의 5개국 국제열차공동운행에 과한 회담 개최.
 
10.17 외교부 대변인, 베트남과 외국석유회사가 南沙海域에서의 석유탐사활동으로 중국의 주권과 해양권리를 침해했다고 비난
 
10.19 江澤民 주석, 武漢에서 베리 미 국방장관과 회담.
 
10.27 중-미 군축협의가 6년만에 북경에서 개최됨. 
 
10.28 榮毅仁 국가부주석, 일본을 방문( -11월 4일), 무라야마(村山) 수상과 회담.
 
10.31 한-중 양국정부는 서울에서 2개의 협력협정과 각서에 조인. 江澤民 주석은 조선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대표단(단장: 정두환 의장)과 회담.
 
11. 1 李鵬 총리, 서울에서 한국의 이영덕 총리와 회담. 무역경제협력 강화에 관한 의견 교환.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중국방문
 
11. 3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李嵐淸 부총리와 회담.
 
11. 8 江澤民 주석은 싱가포르,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4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
 
11.10 江澤民 주석, 李登輝 대만총통과 회담용의 표명
 
11.11 대륙·해협양안경제무역협조회, 중국대만경제무역협력합의서에 조인
 
11.14 金門島에 주둔하고 있는 대만군이 아모이시 외곽을 포격. 자카르타에서 江澤民 주석은 클린턴 및 무라야마와 회담.
 
11.24 대만 국민당 창건 100주년 기념일
 
12. 3 타이베이시장에 야당인 민진당의 陳水扁이 당선. 주민에 의한 30년만의 직접선거
 
12. 8 胡錦濤 정치국 상무위원, 조선노동당 대표단과 회견. 중국과 북한관계 중시의 강조
 
12.13 한중 양국은 북경에서 원자력안전협력의정서에 조인. 한국에서 중국에 최초로 정부차관공여에 관한 결정에 조인, 총액 345억 800만원(약 4300만 달러). 중국 국가핵안전국, 한국과학기술청과의 핵안정협력협정을 서울에서 조인
 
12.14 세계최대 수리시설인 長江三峽댐 공사착공식. 李鵬 총리가 공사시작을 선언함.
 
12.15 한국전쟁 휴전위원회에 파견된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이 북한에서 철수함.
 
12.22 北京-서울 항공로 개설. 일본정부는 중국에 5800억엔을 차관으로 공여키로 결정. 일본정부는 1996-98년 3년간 제공키로 함. 이는 40건의 프로젝트에 사용키로 함.
 
1995
1. 6 이스라엘정부, 미국 제트전투기를 중국에 양도했다는 보도를 부인
 
1. 9 95년에 최대규모인 90만명이 대학을 졸업. 그중 70%는 국가가 취직을 소개해주었고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취직함. 다케무라(武村) 대장상 중국방문, 朱鎔基 부총리와 회담하고 엔차관문제 등을 논의. [北京靑年報]의 의식조사에서 싫어하는 국가 2위에 일본
 
1.13 중-미 인권대화 北京에서 시작. 대중 엔차관의 1994년도분 140억엔에 관한 정부교환문서 조인.
 
1.21 중국, 南沙群島에서의 베트남과 러시아의 공동과학조사에 대한 중지을 요청
 
1.22 세계은행, [세계채무백서] 발표. 중국은 세계최대 직접투자수입국
 
1.23 미국무성, 중국의 인권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것을 비난
 
1.27 민주화운동가 林牧(전 胡耀邦총서기 비서)의 西安 자택을 가택수색함.
 
2. 1 미국무성, [인권보고]을 공표, 중국의 인권침해를 비판
 
2. 4 지적재산권교섭의 기한이 끝나, 캔터 미국통상대표는 대중국 경제제재 절차에 들어 간다고 발표. 중국도 보복조치 를발표
 
2. 8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 중국은 南沙群島에 구조물을 건설하는 것을 비판
 
2.14 중국의 감옥은 685개소이며, 128만 6,000명을 수감하고 있음.
 
2.26 陳子明 등 12명의 민주화운동가는 전인대에 민주확립과 부패방지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
 
2. 27 王丹 등 민주화운동가 26명은 인권의 개선 등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전인대에 제출. 민주화운동가 徐文立은 공산당의 일당독제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
 
3. 1 러시아 외무부장관이 중국을 방문. 양국의 국경문제 등을 협의
 
3.13 중국군사대표단 북한방문. 최광 총참모장과 회담. 한국의 [朝鮮日報]는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 조선족의 항일기념집회 등이 금지되었다고 보도
 
3.19 태국의 외상과 필리핀의 외무차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남사군도문제를 협의
 
3.22 미국의 미사일 순양함 우호방문차 淸島에 입항
 
3.23 필리핀, 중국이 남사군도에 건설한 영토표식을 폭파했다고 발표
 
3.27 이란외상의 중국방문. 중국공산당대표단 한국방문
 
3.28 일본외무성,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정식결정
 
3.30 중국외교부, 달라이 라마의 일본방문에 강한 유감과 불쾌감을 표명
 
4. 5 일본외무성, 핵무기의 선제불사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안전보장문제에 관한 국가성명]을 발표
 
4. 8 대만의 李登輝 총통, 국가통일위원회에서의 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6개항의 제안을 발표(1월말 江澤民 주석의 8개항제안에 대한 답변). 喬石전인대 상무위위원장은 일본기자단과의 회견에서 전인대의 기능강화 의욕을 표명
 
4.10 陳雲 전 중앙고문위원회 주임 사망. 喬石 전인대 상무위위원장 일본방문( -17일). 환영만찬회에서 간접적으로 不戰決議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
 
4.11 [北京日報], 陳希同 北京市 당위서기는 北京市에 얽혀있는 汚職事件조사에 관해서, '반부패투쟁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고 보도
 
4.12 대만은 중국의 국장급이하 경제관료의 대만방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미국의회 의원그룹은 魏京生의 즉각적 석방을 요구하는 서한을 李鵬 총리에 전달
 
4.17 뉴욕에서 개최된 중미 외무부장관 회담에서 대 이란원자력협력문제를 협의
 
4.18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방한중인 喬石 전인대 상무위 위원장과 회담하고 북한문제에 대한 협력을 요청
 
5. 1 張百發 北京市 부시장이 일련의 오직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
 
5. 3 국무원은 중국구제신탁투자공사의 魏鳴一회장의 사임을 승인, 후임으로 王軍, 새로운 사장으로 秦曉부사장이 승진
 
5. 8 江澤民 주석, 모스크바에서 엘친 대통령과 회담
 
5. 9 江澤民 주석은 전승기념식(모스크바)에서 연설. 한국의 이홍구 총리 중국방문
 
5.15 중국의 지하핵실험. 遲浩田 국방부장은 러시아 국방장관과 회담. 일본 외무성은 중국이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것에 대해 武大偉 임사대사에 유감의 뜻을 표명.
 
5.20 인권단체인 [中國人權]은 광동에 거주하고 있는 王希哲이 16일 북경의 공안당국에 신병을 구속당했다고 발표
 
5.21 공안당국은 민주화운동가 王丹의 신병을 구속
 
5.22 미국무성은 李登輝총통의 방미를 승인한다고 발표. 북경에서 한중일 불교우호교류회의 개최. 중국외교부, 핵실험을 이유로 일본은 대중국 무상원조를 축소할 방침을 보인다고 비난
 
5.23 王丹, 인권침해에 항의하여 단식투쟁에 돌입
 
5.26 천안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사건조사와 진상공표를 요구하는 호소문을 전인대에 제출. 遲浩田 국방부장 미국방문 중지
 
5.31 민주화운동가 王希哲 석방. 중국, 북한 러시아 등 관련 5개국들은 북경에서 두만강지역개발개획에 관한 3차합의서를 假調印. 李鐵映 국방위원 일본 방문.
6. 1 천안문에 있는 毛澤東 초상화에 계란을 던졌다고 하여 무기징역을 받은 余志堅 등 54명의 옥중 활동가가 전인대에 上申書을 전달했다고 보도
 
6. 2 티베트 정보네트워크에 따르면, 티베트 僧院長이 중국당국에 구속되었다고 보도. 미국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1년 연장키로 함. 일본 고노(河野)외상은 방일중인 李鐵映국무위원과 회담하고 핵실험 중지를 요청
 
6. 5 러시아 공산당의 쥬가노프 위원장은 胡錦濤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회담하고 중-러 공산당의 공식관계를 수립
 
6.10 해외 민주화운동가들은 뉴욕에서 집회를 열고 새로운 정당인 '中國民主黨'을 결성함. 주석에는 王若望을 선출
 
6.13 중국외교부는 전후 50년결의와 관련하여 '침략을 부정하는 일부세력의 존재'를 계속 지적하면서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평화적 발전의 길을 걷을 것을 희망한다"고 논평
 
6.16 중국은 7월로 예정되어 있던 중국과 대만의 해협양안 회담을 연기한다고 통보
 
6.17 중국외교부는 李道予 주미대사의 소환을 발표
 
6.21 민주화운동가 劉剛이 형만료로 석방되었다고 외국통신사가 확인
 
6.22 [뉴욕타임즈]는 중국이 이란과 파키스탄에 미사일기술을 제공했다고 보도
 
6.27 중국은 러시아와의 공동성명에서 체제침공을 지지함.
 
6.29 중국공산당의 당원수는 5,500만명이며, 기층조직은 340만에 달한다고 발표
 
7. 5 암네스티는 [1995년 인권보고서]을 발표하고 중국에서 1994년 처형된 죄수는 1,800명에 달한다고 지적
 
7. 9 깅그리치 미 하원의장은 대만을 독립국으로 승인해야 한다는 발언을 함.
 
7.15 민주화운동가 楊週가 석방되어 자택에서 거주
 
7.18 신화사는 해방군이 7월 21일-28일까지 동지나해 공해상에서 미사일발사훈련을 한다고 예고. 공군은 新疆위글자치구에서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개시
 
7.28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워싱턴시내 강연에서 '하나의 중국'정책을 견지하며, 대중봉쇄정책을 부인함.
 
8. 1 브루나이에서 중미, 중일 외무부장관 회담 개최
 
8.10 해방군은 8월 15일-25일 동지나해에서 미사일 훈련을 한다고 공고
 
8.15 독일정부는 천안문에서 반핵테러를 한 혐의로 구속된 '그린피스' 6명의 석방을 요구함. 중국당국은 제14차 아시아태평양 법률협회회의 출석을 예정하고 있는 李柱香 홍콩민주당 당수의 입국신청을 거부. 무라야마(村山) 일본수상은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과 사죄" 담회를 발표
 
8.17 중국은 지하핵실험을 실시
 
8.20 중국과 인도는 뉴델리에서 국경문제와 관련된 실무차원의 협의를 진행하고( -18일), 국경병력에 대한 후퇴에 합의
 
9. 1 민주화운동가 劉剛이 다시 체포됨. 모스크바에서 중국과 러시아 타지크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공동대표들이 국경군축 협상진행( -18일)
 
9. 4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 개막(-15일). 힐러리 미대통령 부인이 중국방문하고 연설에서 중국의 인권억압을 간접적으로 비난(5일)
 
9.14 중국외교부는 클린턴 대통령 등이 달라이 라마와 회견한 것에 대해 항의
 
9.20 유엔총회 일반위원회는 대만의 유엔가입문제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거부
 
9.21 錢其琛 외교부장이 러시아를 방문
 
9.25 중국공산당 제14기 5중전회 개막( -28일). 5중전회 공동성명 발표. 陳希同의 당지위를 해임하고 張萬年, 遲浩田 등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출. 제9차 5개년계획 기본방침을 채택(28일)
 
9.26 뉴욕에서 중-일 외무부장관회담 개최. 錢其琛 외교부장은 일본의 무상원조 동결에 대해 비난
 
9.27 뉴욕에서 중-미외무부장관 회담 개최. 錢其琛 외교부장은 이란에 원자로제공 계획을 중지할 것이라고 표명
 
9.29 瀨木 APEC담당대사는 타이베이 주재 일본경제대표부를 방문하고, 李登輝총통의 일본방문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함.
 
10. 3 대만의 郭南宏 국가과학위원회 주임위원이 APEC과학기술 담당각료회담 출석을 위해 북경을 방문
 
10. 4 錢其琛 외교부장은 영국과 홍콩반환과 관련된 4개항에 합의
 
10.13 민주화운동가 陳子明은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시작
 
10.20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무력사용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
 
10.22 민주화운동가 陳子明의 부인이 구속됨. 뉴욕에서 중일정상회담 개최, 江澤民주석은 중국핵실험에 대한 일본의 대응을 비난함.
 
10.24 江澤民 주석은 유엔 50주년 기념총회 연설에서 '미국의 내정간섭'을 간접적으로 비난함. 중미정상회담 개최. 한국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중국방문
 
10.31 북경에서 1995년도분 대중엔차관 제공에 관한 문서 교환
 
11.10 江澤民 주석은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중국과 북한간의 조약은 유지할 것"이라고 함.
 
11.14 한중정상회담 개최.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江澤民 주석은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비판
 
11.16 국무원, 국방백서 [중국의 군비관리와 군축] 발표
 
11.18 중-일정상회담. 무라야마(村山) 일본수상 중국의 핵실험 중지를 요청
 
11.21 魏京生, 정부전복활동행위로 구속됨
 
12. 2 중국군사사절단 러시아 방문
 
12. 7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기술협정에 조인
 
12.13 魏京生이 정부전복음모죄로 징역 14년을 1심판결에서 받음
 
12.14 중국 외교부, 미국이 티베트문제와 魏京生문제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비판
 
12.18 위경생의 여동생 魏秏秏 미하원 공청회에서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견지하라고 요구. 일본 新進黨의 오자와(小澤) 간사장은 중국과 한국이 의도적으로 반일교육을 하고 있다고 발언. 일본의 고노(河野)외상 중국방문 
 
12.19 江澤民 주석, 고노(河野) 일본외상과 회담에서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각료발언에 불쾌감을 표명. 고노(河野) 외상 錢其琛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중국의 석유채굴선이 동지나해의 중일중간선을 넘어 정박하고 있다고 항의
 
12.20 한국의 황낙주 국회의장이 중국방문. 魏京生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王東海 등 3명이 당국에 체포됨
 
1996
1. 6 대만외교부는 미국이 李元簇부총통의 비자발급을 결정했다고 발표
 
1. 9 중국외교부는 미국의 李 대만부총통의 비자발급에 대해 "큰 우려와 강한 불만"을 표명. 영국외상이 중국을 방문하여 홍콩문제를 논의
 
1.17 홍콩입법평의회는 魏京生의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를 가결함.
 
1.19 중국정부는 반체제문예평론가인 劉曉波를 석방
 
1.31 미국의 揚陸艦이 上海를 우호방문함.
 
2. 1 중국외교부는 미국이 대만의 李 부총통에게 비자발급을 결정한 것에 대해 다시한번 항의함. 錢其琛 외교부장은 아시아 10개국외무방관회담을 위해 출국
 
2. 5 미국 모일간지는 CIA의 정보를 인용, 중국이 핵관련 기계를 파키스탄에 수출했다고 보도
 
2.21 북경방송은 일본정부가 중국의 釣魚島를 일본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에 포함했다고 보도
 
2.28 중국은행과 일본수출입은행은 중국의 국가중점프로젝트를 위한 약 823억엔 자금협력차관에 대한 합의문서에 조인
 
3. 5 신화사는 해방군이 8일부터 15일까지 대만근해에서 미사일발사훈련을 실시한다고 공고함.
 
3. 6 미국무성은 [인권보고서] 발표하고, 중국의 인권침해를 비판
 
3. 9 신화사는 해방군이 12-20일까지 대만근해의 海域과 空域에서 海空실탄훈련을 실시한다고 공고함. 福建省 福淸市에서 대만기자와 카메라맨이 군사훈련구역에서 위법적인 취재를 해 중국당국에 구속당함.
 
3.10 신화사는 미국의 인권침해상황을 비판하는 기사를 배포전송함.
 
3.12 唐家璇 중국외교부부장이 남사군도문제의 협의를 위해 필리핀을 방문함.
 
3.14 吳儀 대외무역경제협력부장은 미국방문일정을 연기함. EU회의에서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행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서를 채택
 
3.11 일본 외무성 가토(加藤) 아시아국장은 중국대사관에 미사일훈련 자제를 다시한번 요청함. 일본의 하시모토(橋本) 수상은 중국의 미사일훈련에 대해 우려를 표명함.
 
3.15 신화사는 미사일발사훈련이 종료되었음을 발표. 해방군은 18-25일까지 福州 沖海域에서 육해공 3군 합동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공고
 
3.17 李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최근 군의 훈련은 정상적인 훈련이며, 현재 대만의 긴장과 혼란은 대만 일부 지도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발언
 
3.19 미하원은 미국의 대방방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
 
3.20 한국의 공노명 장관이 중국을 방문. 신화사는 인민해방군의 실탄훈련이 종료되었다고 발표
 
3.22 북경에서 열린 '중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핵무기관련기술수출' 문제에 관한 중국과 미국의 교섭이 중단됨. 遲浩田 국방부장의 미국방문 연기을 발표.
 
3.23 대만에서 최초로 총통직접선거가 실시되어 李登輝가 54%득표율로 당선
 
3.25 신화사는 육해공 3군합동 훈련이 종료되었다고 발표
 
3.28 미하원은 대중강경책을 포함한 [외교권한부여법]안을 가결함.
 
4.12 클린턴 미대톨령은 [외교권한부여법]에 거부권을 행사
 
4.18 중국외교부는 [미일안보공동선언]에 관해 '타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새롭고 복잡한 요인을 발생케하는 것이 된다'고 주장
 
4.24 러시아의 엘친 대톨령이 중국 방문
 
4.25 중국과 러시아는 공동성명에 조인
 
4.26 上海에서 중국, 러시아, 키르키즈, 타지크, 카자흐 등 5개국이 [국경지역의 군사영역의 신뢰강화에 관한 협정] 조인
 
5. 3 미국은 민주화운동가인 劉剛의 망명을 받아드릴 것을 표명
 
5. 8 江澤民 주석이 아프리카 6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
 
5.10 미국은 중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핵기술수출의혹문제로 대중국 경제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힘.
 
5.13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등 4개국과 중국은 '국경군사력상호감축문제'에 관한 제19차 교섭 시작( -27일)
 
5.22 중국은 북한에 2만달러의 곡물을 제공키로 한 교환문서에 조인
 
5.27 천안문사건으로 실각되어 투옥중인 鮑尤(Bao Tong) 전 당중앙위원이 석방됨.
 
5.29 국무원 제45차 상무위원회 회의, 王東海 등 7명의 민주화운동가가 전인대 상무위에 천안문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제출함. 新疆위글자치구의 정협부주석이 이슬람분리 독립파의 테러로 부상당함.
 
5.31 민주화운동가인 王希哲이 당국에 의해 구속됨
 
6. 3 일본 외무성의 모리 사무차관은 중국이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엔차관을 동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명
 
6. 8 중국이 핵실험을 실시함. 외교부는 9월전에 또 한번의 핵실험을 한 후 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전함.
 
6. 9 민주화운동가인 任원町(Ren Wanding)이 석방됨.
 
6.10 하시모토(橋本) 일본수상이 중국의 핵실험에 관해 유감의 뜻을 표명
 
6.12 鮑동(Bao Tong) 전 중앙위원은 현재 경찰에 연금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에 연금해제를 요구하는 서신을 보냄
 
6.24 1995년 현재 전국에 약 219만명이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당원의 총수는 5,700만명에 달한다고 발표. 북경에서 중국, 러시아 몽고 등 3개국이 [국경접경지확정의정서]에 조인
 
6.25 외교부는 북한 고관의 대만방문을 비난함.
 
7. 9 江澤民 주석은 미국 대통령보좌관과 회견을 갖고 중미 쌍방의 정상상호방문을 추진하기로 합의. 북한의 우호대표단이 중국을 방문
 
7.17 江澤民 주석은 한반도의 4자회담구상에 지지를 표명
 
7.19 이케다(池田) 일본외상은 센카쿠(尖閣) 섬(중국명칭은 釣魚島)가 일본의 영토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표명. 96년판 일본방위백서는 최초로 중국에 대해 "이러한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기술함.
 
7.29 중국은 핵실험을 실시함. "이후 핵실험을 잠정중단한다"는 성명을 발표. 대만의 대륙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대륙방문에 대해 해금한다고 결정함. 북경에서 제1차 중국-카자흐스탄 공화국 국경설정위원회 회의가 개최됨.
 
7.30 북경에서 중국과 북한은 식량무상원조에 관한 교환문서에 조인
 
8.15 중국외교부는 하시모토(橋本) 일본수상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에 대해 분노를 표명함. 북경방송은 하시모토(橋本) 내각 각료5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고 보도.
 
8.21 중국은 대만의 連戰 부총통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비난하고, 李鐵映 국무위원 등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방문단의 방문을 중지
 
8.25 인민해방군은 내몽고에서 육군의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함.
 
8.26 95년 중국의 노동쟁의건수는 약 2만 8,285건(전년대비 73% 증가)이며, 96도 상반기만도 약 1만 8,118건에 육박
 
8.30 보석중이었던 민주화운동가 王東海가 다시 중국공안당국에 의해 연행됨. 영국의 홍콩주둔군이 철수를 시작함. 
 
9. 8 北京에서 [中國民間釣魚島防衛聯合會]가 발족함.
 
9. 9 일본 해상보안청은 중국의 해양조사선이 센카쿠(尖閣)부근에서 일본영해을 침범하면서 조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발표. 일본청년사 일원이 센카쿠(尖閣)에 상륙하여 등대를 설치함.
 
9.10 번즈 미국무성 대변인은 센카쿠(尖閣)문제 대한 미국의 중립입장을 강조함.
 
9.25 뉴욕에서 중국-미국 외무장관 회담 개최
 
10. 3 魏京生 비서인 童屹이 석방됨. 중국공산당은 센카쿠(尖閣)문제에 대해 과도한 항의행위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당중앙위 내부 문건을 각지에 배포. 
 
10. 6 四人幇 중 한 사람인 姚文元이 정식으로 석방됨.
 
10. 7 대만과 홍콩의 항의단을 태운 선단이 일본영해를 침입하였으며, 일부 그룹은 釣魚島에 상륙하여 중국과 대만 旗를 꽂음.
 
10. 8 민주화운동가 劉曉波가 재차 구속됨
 
10.14 민주화운동가 王希哲이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감
 
10.21 王希哲은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당에 입당을 희망한다고 말함.
 
10.23 미국은 중국에서 구속중인 티베트인에 대한 석방을 요구
 
10.30 王丹에 징역 11년이 선고됨. 대만의 李登輝 총통은 국민당이 클린턴 재선을 위해 거액의 정치헌금을 했다는 보도를 부정함.
 
11. 6 민주화운동가 陳子明이 신병치료를 위해 가석방됨. 홍콩입법평의회는 王丹의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
 
11.19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
 
11.22 APEC 각료회의 
 
11.24 마닐라에서 중-미, 한-중, 중-일 정상회담
 
11.25 96년 9월 현재, 중국전역의 취업자는 6억 9,100만명(전년대비 1.5% 증가), 그 중에서 도시취업자는 1억 7,500만(전년대비 500만 증가), 개인경영자는 2,300만(전년대비 500만 증가)이라고 발표.
 
12. 5 遲浩田 국방부장이 미국을 방문
 
12.11 홍콩에서 제1기 홍콩특별행정구정부추진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 개최. 董建華가 초대 행정장관에 당선. 중국의 '전국 국유기업당건설 공작회의' 개최
 
12.16 鄒家華 부총리가 한국을 방문
 
12.24 唐家璇 외교부 부부장과 가토(佐藤) 일본대사는 제4차 엔차관 96년도분에 관한 교환문서에 조인
 
12.25 북한의 장성택 당중앙위 제1부부장이 11월에 극비리 중국을 방문했다고 보도됨.
 
1997
1. 3 汪道涵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은 상해에서 대만의 潘維剛 입법위원과 회담
 
1. 6 미국무성은 니카라과을 방문한 대만의 連戰 부총통에게 통과비자를 발급할 것을 결정
 
1. 7 신화사는 [농촌 빈곤자의 의식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과 관련된 중공중앙과 국무원의 결의]을 발표
 
1. 9 홍콩의 董建華 행정장관은 민주당의 李柱銘 주석과 회담하고 홍콩반환에 협력을 요청
 
1.10 민주화운동가 王明이 노동개조 3년형을 받고 西山坪 노동개조소로 이송되었다고 보도. 중국은 유엔안보리의 과테말라에 유엔감시단 파견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
 
1.12 대만의 章孝嚴 외교부장이 아프리카 7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
 
1.20 중국은 과테말라에 군사감시단을 파견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관한 안보리 결의에 찬성
 
1.21 전국 귀국유학생 공작회의 개최.( -23일) 중국은 유학생은 1997년 1월 현재 약 27만명이며 그중 9만명이 귀국함.
 
1.25 深朮에서 홍콩특별행정구 임시입법회 제1차 회의가 개최됨. 재미 인권단체인 '中國人權'은 貴州省의 반체제 활동가인 陳西 등 13명이 1995년에 반혁명죄로 징역 10년의 형을 받았다고 발표
 
1.26 96년 농촌주민 일인당 평균순수입은 1900위엔(전년 대비 20% 증가)로 90년대 들어와 최대로 신장하였다고 발표
 
1.28 클린턴 미대통령은 "장래에 중국은 큰 폭의 민주화가 불가피하다"고 발언함.
 
1.29 북경에서 중-미 인권협의회
 
1.30 미국무성은 [96년도 국가별 인권보고]를 발표하고 중국의 인권침해를 비판
 
1.31 일본 자민당은 비공식적으로 대만에 북한으로의 핵폐기물 반입을 자중할 것을 요구
 
2. 2 중-미는 새로운 섬유협정에 조인
 
2. 9 미 주간지인 [타임]은 '구미 여러 국가가 천안문 사건 이후 홍콩에서 도망중인 민주화운동가 40명 이상의 망명을 받아드리기로 합의했다'고 보도
 
2.13 중국외교부는 북경에서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 망명사건에 관련된 각 방면에 냉정히 대처할 것을 요구. 일본외무성은 중지되었던 대중국 무상자금협력의 재개를 결정
 
2.14 싱가포르에서 한-중, 중-일외무장관 회담
 
2.15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ASEM외무장관회담에 錢其琛 외교부장 출석
 
2.17 중국 농촌의 빈곤인구는 78년 2억 5,000만명에서 96년 말 현재 6,500만으로 급속히 감소했다고 [曉望]이 보도
 
2.18 홍콩에서 홍콩특별행정구 행정회의 제1차회의 개최
 
2.19 鄧小平 사망. 신화사 등은 황장엽비서 망명사건을 최초로 보도
 
2.24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 일본이 유엔사무총장에게 제출했던 문서인 [센카쿠(尖閣) 섬는 일본영토의 일부]가 가맹국들에게 공개됨.
 
2.25 인민대회당에서 鄧小平 추도회
 
2.27 대학입학생수는 건국이래 최대, 약 101만명
 
3. 1 제8기 전인대 제5차회의, 李鵬 총리의 정부활동보고, [형법], [국방법] 등을 채택하고 폐막( -14일) 
 
3. 9 [워싱턴 포스트]sms 중국이 1996년 의회와 대통령에게 정치헌금을 계획했다고 보도
 
3.18 신화사는 북한의 황장엽비서가 제3국으로 출국했다고 보도
 
3.19 대만의 육군 대공미사일 부대는 미사일발사 훈련을 실시
 
3.22 趙紫陽 전 총서기가 上海에서 국유기업을 시찰함.
 
3.24 민주화운동가 邵江이 深朮에서 당국에 구속됨. 미국의 고어 부톨령이 중국을 방문
 
3.28 대만은 북한에 식량원조를 결정. 일본의 이케다(池田) 외상은 동결되었던 중국에 대한 무상원조의 재개를 발표함.
 
3.29 池田 일본외상이 중국을 방문
 
3.30 중-일 양국은 총리의 1997년내 상호방문과 江澤民 주석의 내년 일본방문에 합의
 
3.31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중국인권백서]를 발표
 
4.12 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우르무치에서 "민족분규와 종교과격세력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강화를 발표함.
 
4.13 중국의 15-25세의 청년취업률은 90년 78.28%에서 96년 65.2%로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남. 반면 진학률은 90년 15.68%에서 96년에는 20.5%로 증가함.
 
4.19 아모이발 콘테이너 화물성 '盛達號'가 高雄港에 입항, 이는 48년만의 양안간의 직항이 실현된 것임.
 
4.22 江澤民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 중국외교부는 황장엽 비서가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과 관련된 각 방면에 냉정한 대처를 요구함.
 
4.24 97년 2월 新疆에서 발생한 위글족의 소요사태에 대한 공개재판에서 소요주동자 3명이 사형 등의 판결을 받음.
 
5. 2 李鵬 총리가 아프리카 6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
 
5. 5 대만에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대회를 시작
 
5. 7 96년 말 현재, 중국전역에서 등록된 도시실업자수는 약 553만명으로 실업율은 3%
 
5.19 클린턴 미대통령은 대중국 최혜국대우 1년연장을 발표
 
5.27 重慶직할시 제1차 당대표대회가 개최됨( - 6월 1일)
 
6. 2 대만 공군이 프랑스에서 미라쥬 전투기 5기를 인도받았다고 보도
 
6. 5 민주화운동가 沈良慶은 천안문사건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6월 1일 전인대 상무위에 전달함. 민주화 운동가 鮑戈가 3년간의 노동개조교육을 마치고 석방됨.
 
6.18 重慶市가 직할시로 승격됨.
 
6.23 대만은 군사훈련 [漢光13號]를 실시함.
 
7. 1 홍콩의 중국반환. 홍콩특별행정구 임시입법회의 최초 전체회의가 개최됨. 江澤民 주석은 北京에서의 홍콩반환축하대회 연설에서 대만과의 통일을 호소함.
 
7. 3 대만의 李登輝 총통은 연설에서 중국의 '一國兩制'를 거부한다고 말함.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의 睾振甫 이사장과 董建華 홍콩행정장관이 회담.
 
7. 6 투옥중인 민주화운동가 沈良慶과 張林은 사법부에 '홍콩반환을 계기로 정치범의 석방 등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냄. 인민해방군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
 
7. 8 중국은 북한에 8만톤의 식량원조제공을 약속함.
 
7.10 중국외교부는 클린턴 미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부정한 정치헌금 의혹을 부인
 
7.16 대만 국민대회에서 '총통권한을 강화하고 대만성을 사실상 폐지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채택
 
7.21 대만의 李登輝 총통은 국민대회보고에서 "중국은 하나이지만 분할통치상태"라고 발언
 
7.22 미국무성은 세계의 신앙자유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중국에서의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우려함.
 
7.23 카터 전 미대통령이 중국을 방문
 
8. 3 미상원의 정보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
 
8. 5 뉴욕에서 한반도문제관련 '4자회담' 제1차 예비회담이 개최됨
 
8. 7 티베트자치정부의 주석은 "독립을 포기한다면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환영한다"고 발언. 미국의 상원의장 대행이 중국을 방문함. 프랑스 국방장관은 "대만에 다시 무기를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천명
 
8.11 舊 일본군에 의한 세균전 피해자와 그 유족이 일본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제기
 
8.16 대만 대륙위원회의 張京育 주임위원은 중국과의 정치교섭을 개시할 생각을 명확히 제기함.
 
8.19 중국외교부는 "미-일방위협력의 범위에 대만이 포함될 것"이라는 塘山 발언을 비난함.
 
8.20 강경식 부총리 등 한국대표단이 중국을 방문
 
8.25 대만의 중국국민당 제15차 당대회 개최
 
8.26 李登輝 총통 국민당 주석에 재선
 
8.27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전체회의 개최
 
8.28 蕭万長이 대만총리에 임명됨
 
9. 4 대만 李登輝 총통 하와이에서 張學良을 방문
 
9. 6 제14기 7중전회( -9일). 陳希同 전 北京市 당위 서기의 당적박탈을 결정(9일)
 
9. 9 중국의 민주화운동가 鮑戈가 '개인숭배를 금지하기 위해 모택동 시신을 화장할 것' 등을 제안하는 문서를 당중앙위원회에 전달
 
9.11 미해군함이 우호방문을 위해 淸島에 입항
 
9.12 중국공산당 제15차당대회. 유엔 중국대표단은 유엔예산의 중국분담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
 
9.18 세계은행은 연구보고서 [2020년의 중국]을 발표하고, 중국은 21세기에도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빈곤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지적. 뉴욕에서 한반도문제 '4자회담' 제2차 예비회담이 개최됨
 
9.19 중국공산당 제15기 1중전회에서 江澤民을 총서기로 선출.
 
9.22 정치협상회의 제8기 전국위원회 22차회의 개최. 대만의 張慶國 사망. 미육군 참모총장이 중국을 방문. 
 
9.23 뉴욕에서 중-미 외무장관 회담.
 
10. 2 대만의 蕭萬長 총리는 중국측에 "양안이 별개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로 "양안간의 적대관계가 종식되길 희망한다"는 담화를 발표
 
10.14 인민해방군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
 
10.16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최초로 [종교백서]를 공표
 
10.20 민주화운동가 沈良慶이 석방됨. 대만 胡志强 외교부장이 취임
 
10.25 江澤民 주석은 '중국은 유엔인권규약 중 A규약을 조인할 것을 결정했다'고 발표
 
10.26 江澤民 주석 미국방문. 진주만 기념관을 참관하고 헌화, 중-미정상회담. 공동성명발표(29일)
 
10.27 李登輝 대만 총통은 '三通'은 시기상조라고 발언
11. 5 민주화운동가 鮑戈, 상해에서 뉴욕으로 출국함.
 
11. 6 北京에서 한중포럼 개최
 
11. 8 李登輝 총통 [워싱턴 포스트]의 취재에서 "대만은 독립한 주권국가"라고 발언
 
11. 9 러시아의 엘친 대통령 중국방문
 
11.16 민주화운동가 魏京生, 신병치료차 가석방되어 미국으로 출국
 
11.18 王丹, 감옥에서 악화된 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계획
 
11.21 뉴욕에서 한반도문제 '4자회담' 제3차 예비회담이 개최됨.
 
11.22 벤쿠버에서 중-일외무장관 회담
 
11.29 대만의 지방선거에서 民進黨이 승리
 
12. 2 중국외교부, '대만선거결과에 상관없이 대만은 중국의 일부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
 
12. 4 서울에서 한중무역기술협력합동위원회 제6차회의 개최
 
12. 6 천안문사건의 재평가를 요구하여 연금상태에 있었던 趙紫陽 전 총리가 연금에서 해제됨.
 
12. 9 제네바에서 한반도 문제 '4자회담' 제1차 본회담이 개최
 
12.10 쉬신량 대만 민진당 주석은 민진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독립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함.
 
12.11 워싱턴에서 중-미 국방협의
 
12.15 ASEAN. 한-중 비공식 정상회담
 
12.18 북경에서 중-일 안보대화
 
1998
1. 1 連戰 대만 부총통, 싱가포르을 비공식 방문
 
1. 5 胡志强 대만외교부장, 세네갈 방문
 
1.12 遲浩田 중국 국방부장, 베리 전 미국방장관과 회담
 
1.14 민주화운동가인 秦永敏은 武漢에서 당으로부터 미국으로의 출국을 명령받았지만, 이를 거부
 
1.18 코언 미국방장관 중국방문
 
1.21 민주화운동가인 周國强이 黑龍江省 노동개조소에서 석방
 
1.29 미대통령선거 부정정치헌금 의혹으로 중국계 미국인이 기소됨
 
2. 3 遲浩田 국방부장, 일본을 비롯한 대양주 3개국 방문차 출국
 
2. 8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민주화운동가 王炳章이 중국에 밀입국하여 체포되었다고 보도됨. 한국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중국방문
 
2.16 민주화운동가 林信舒가 李鵬 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 취임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중앙위에 전달했다고 공표
 
2.17 李鵬 총리 러시아 방문
 
2.18 安徽省에 거주하고 있는 노동자 王洪學이 정당결성 등의 권리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전인대에 전달
 
2.23 미국의 종교계 대표단이 티베트 라쌀을 방문
 
2.25 중공 제15기 2중전회(-26일) 국무원 기구개혁방안을 채택
 
3. 3 전협 제9기 전국위원회 회의( -14일)
 
3. 5 제9기 전인대 1차회 개막( - 19일). 전인대 국가주석에 江澤民, 전인대 상무위원장에 李鵬을 선출(16일). 朱鎔基를 총리에 선출(17일). 부촐리와 각부장선출(18일)
 
3.16 제네바에서 한반도문제 '4자회담' 제2차 본회의 개최
 
3.17 중국외교부, 중국이 이란에 핵관련 자재를 판매했다는 보도를 부인
 
3.24 대만국방부는 국방백서를 발표
 
3.29 王克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이 미국방문
 
3.27 북한의 천재홍 외교부부장이 중국방문
 
3.28 武漢의 민주화운동가 秦永敏이 공안에 체포되었지만 곧 석방됨(29일)
 
4.11 북경에서 남북한 차관급회담이 개최됨
 
4.19 민주화운동으로 복역중인 王丹이 가석방되어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함. 신강위글자치구 伊寧市에서 독립파와 기동대가 무력충돌함.
 
4.21 胡錦濤 국가부주석이 일본방문
 
4.26 제9기 전인대 2차회의. 胡錦濤 국가부주석 한국방문
 
4.30 중국외교부, "대만해협을 미-일안보협력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함.
 
5.11 王有才 등 10명의 민주화운동가가 정치체제개혁을 요구하는 서한을 江澤民 주석에게 보냄. 97년말의 중국의 개인공상업경영자는 2,850만호(전년대비 5% 증가), 종업원수 5,440만(전년대비 8% 증가), 등록자금은 2,574억위엔
 
5.12 중국외교부, 인도의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
 
5.24 홍콩특별행정구 제1기 입법회 선거 실시. 외교부, 미국의 부정정치헌금의혹과 위성기술누출의혹 주장에 대한 반론 제기
 
5.28 중국외교부, 파키스탄의 핵실험에 유감의 뜻을 표명
 
6. 1 베이커 미대통령보좌관 중국방문
 
6. 2 미국방성, F16전투기의 유도, 조준장비의 대만 판매를 인가한다고 발표
 
6. 3 江澤民 주석,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실시에 유감의 뜻을 표명. 趙紫陽 전 총서기의 비서였던 鮑尤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부에서 "민주화되지 않은 중국은 세계의 불안정요인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경고
 
6. 4 미국에서 '自由中國聯合'이 결성됨
 
6.11 중-일 공산당, 관계정상화에 합의
 
6.15 대만의원단이 미국을 방문
 
6.16 廣州市 인민검찰원은 민주화운동가 范一平에 대해 王希哲의 미국도주를 방조했다는 하여 밀항방조죄로 기소
 
6.18 [人民日報]는 "우려되는 엔의 하락"이라는 논평을 게재
 
6.22 전국정협대표단이 북한을 방문
 
6.25 민주화운동가 王有才가 당국에 야당인 '中國民主黨' 결성을 신청. 클린턴 미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상해의 도서관 좌담회에서 '3가지의 NO'를 분명히 함.
 
6.27 클린턴 미대통령은 江澤民 주석의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여기에서 일본의 금융제도개혁을 촉구함.
 
6.29 浙江省의 민주화운동가 王有才를 당국이 구속함.
 
7. 3 알마타이에서 중국, 러시아, 카자흐, 키르키즈, 타지크 5개국 정상회담이 개최됨
 
7.10 미상원 본회의에서 기존의 대만정책을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채택
 
7.12 민주화운동가 18명이 江澤民 주석, 朱鎔基 총리 등에게 王有才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공표
 
7.16 廣州 중급 인민법원은 민주화운동가인 范一平의 밀항방조죄에 대해 징역 3년을 판결함. 민주화운동가 100여명은 '中國民主黨' 당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江澤民 주석 등에게 전달
 
7.22 미하원은 대중국 MFN연장 결정을 가결
 
7.27 국무원신문판공실은 [중국의 국방]이라는 백서를 발표. 마닐라에서 ASEAN지역포럼. 중-미외무장관 회담
 
7.29 미국무성에서 한반도정세에 관한 중-미협의 
 
7.30 마닐라에서 중국와 필리핀의 제10차 외교협의
 
8. 3 민주화운동가 徐文立 등 23명이 王有才 등 '中國民主黨' 관계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 국민당 대륙공작위원회의 張榮恭 주임이 중국 방문.
 
8.21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 중국의 홍수피해에 위문 전보
 
8.24 제9기 전인대 상무위 제4차 회의( -29일)
 
8.30 민주화운동가 王有才 석방
 
9. 1 중국외교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에 사전통지가 없었다고 설명
 
9. 2 唐家璇 외교부장, 북한의 김영남 외교부장과 회담
 
9. 5 江澤民 주석,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의 국방위원장 취임에 축전
 
9.14 張萬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미국방문.
 
9.22 뉴욕에서 중-미 외무장관 회담
 
9.23 유엔안보리에서의 코소보문제 관련 결의에 중국 기권
 
10. 4 吉林省 민주화운동가 唐元雋이 석방됨. 민주화운동가들이 조직한 '中國發展聯合會'가 북경에서 제1차 전국대회를 개최
 
10. 5 중국은 국제인권규정 중 B규정에 서명함.
 
10.11 미하원은 대만의 WTO가입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
 
10.12 중공 제15기 3중전회 개막( -14일)
 
10.19 북경에서 제2차 중-미 국방사무협의
 
10.21 제네바에서 한반도문제 '4자회담' 제3차 본회의 개최
 
11. 2 浙江省 민주화운동가 王有才가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됨.
 
11. 4 전인대 상무위는 [村民委組織法]을 채택
 
11. 5 북경에서 제4차 차관의 후반기분에 관한 중-일 사무차원의 협의
 
11.10 클린턴 미대통령, 달라이 라마와 비공식 회담
 
11.11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중국방문
 
11.16 江澤民 주석, 말레시아에서 고어 미부통령과 회담
 
11.18 APEC 제6차 비공식 정상회담
 
11.22 江澤民 주석, 러시아 방문
 
11.24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 파키스탄, 카자흐, 키르키즈 등 4국이 국경통과운송협정 조인. 동경에서 중-일 외무장관 회담. 중국의 현재 총인구의 65%이상이 9년 의무교육을 받았고, 청장년의 문맹률은 6%이하로 저하됨.
 
11.25 江澤民 주석, 일본을 방문하여 전 수상들과 조찬, 중-일 정상회담, 공동선언 발표, 와세다 대학 방문(28일), 귀국(30일)
 
12. 2 [人民日報], 李鵬의 "다당제를 주장하고, 공산당의 지도를 부정하는 조직은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게재
 
12. 3 당, 중앙, 국무원은 [黨風, 廉政 건설책임제의 실시에 관한 규정]을 통지
 
12. 9 錢其琛 부총리, 페리 미북한정책조정관과 회담
 
12.16 하노이에서 ASEAN. 한-중-일 비공식 정상회담
 
12.17 江澤民 주석,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관해 엘친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로 협의
 
12.20 투옥중인 민주화운동가 劉念春이 신병치료차 가석방되어 미국으로 출국
 
12.21 민주화운동가 徐文立과 王有才가 각각 13년과 11년의 1심 판결 받음. 미국무성은 '中國民主黨'의 결성을 주도한 徐文立 등의 징역형에 유감의 뜻을 표명
 
12.25 北京에서 제4차 엔차관 중 98년도분 제공을 위한 공문을 교환
 
12.31 미하원 특별위원회는 위성기술의 중국유출의혹에 대한 최종보고를 함.
 
1999
1.18  기업 파산-廣東 국제신탁투자공사 파산 선언 
 
3. 5 헌법개정-제9기 제2차 전인대에서 사유재산제 보호, 등소평노선을 헌법에 명시하는 부분적 헌법 개정 단행 
 
3.16 북미 금창리 협상 타결- 핵의혹이 있는 현장 방문과 양국의 관계 개선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 발표 
 
4. 6 주룽지 총리 미국방문 (4.6~20)-중국의 WTO 가입문제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과 담판을 하려던 중국의 의도는 좌절
 
5. 8 중국대사관 오폭사건-나토의 유고 공습 과정에서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을 오폭, 3명 사망, 27명 부상당하는 사건 발생 
 
5. 25 콕스 보고서-미국 하원 특별위원회의 '콕스 보고서' 발표, 중국이 70년대 이후 미국의 주요 핵기술을 절취해 왔으며, 관련 기술 일부를 북한에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난 
 
6. 3 북중관계-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의 북경방문: 94년 김일성 사망이후 최초의 고위급 교류 
 
6. 4 6.4 천안문사태 10주년 
 
6.15 서해교전-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남쪽 2.5㎞ 지점에서 발생한 남북 해군함정간 교전으로 북한 경비정 1척이 침몰하고 사상자 다수 발생 
 
7. 9 양국론-리덩휘 대만 총통이 중국과의 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라는 양국론을 제기,중국은 대만해협에서 위기 조성
 
7.22 파룬궁 불법화-중국 정부 法輪大法 연구회를 미등록 불법단체로 규정, 전국적으로 파룬궁 금지와 조직원에 대한 엄중 탄압 실시 
 
8. 5 한일 합동군사훈련-일본 해상 자위대와 한국 해군의 최초 합동군사훈련 실시 
 
8. 5 4자회담-제네바에서 개최된 4자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문제에 대한 우려와 대책이 논의 
 
8.19 인도의 핵주권론-인도 국가안보자문위원회 (NSAB)는 "(핵무기) 개발과정과 전략적인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의 자치권은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는 인도 국민의 민주적 권리"라고 선언. 
 
8.23 한-중 국방장관회담- 한국의 조성태 국방장관과 중국의 츠하오톈 국방부장이 북경에서 처음으로 회동 
 
8.25 5개국 정상회담-중국, 러시아, 키르기즈스탄, 카자크스탄, 타지키스탄 5개국 정상이 비쉬커크 (Bishkek)에서 제4차 정상회담을 개최 
 
9. 2 북방한계선 무효선언-북한이 일방적으로 북방한계선의 무효를 선언하고 새로운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선포
 
9.12 북미 베를린회담 타결-북한과 미국은 베를린 실무회담에서 미사일 발사유예와 경제제재를 맞바꾸는 타협안에 최종 합의 
 
9.12 APEC 정상회담-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개최-한국, 일본, 미국의 3개국 정상은 따로 정상회담 개최하고 대북정책 논의
 
9.15 통티무르 평화유지군 파병-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동티무르에 호주가 주도하는 다국적군 파견 결의
 
9.18 북한 경제제재 해제-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거의 50년간 지속되어 온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결정 발표 
 
9.19 중국공산당 제15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국유기업 개혁에 관한 결의 채택;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선임
 
9.22 세계인구백서 발표-국제연합 인구기금 (UNFPA)가 세계인구 60억 초과했다는 <세계인구백서> 발표
 
9.29 금강산관광 손실 2.5억달러- 98년 11월 금강산관광 개시 이후 99년 8월말까지 현대가 2억5천840만7천 달러를 지출 초과
 
10. 1 건국 50주년-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건국 50주년기념식에서 “중국식 사회주의의 성공과 `1국가 2체제'원칙을 통한 통일”을 다짐
 
10. 1 건국 50주년-건국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총 22권의 <中國通史>와 <新中國五十年> 출간 
 
10. 4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차 면담-외국인 금강산 관광 및 서해안공단 건설등 합의 
 
10. 5 북중 수교 50주년-탕자쉬앤 중국 외교부장 일행의 북한 방문
 
10. 6  3당 연립 내각 출범-일본의 自民,自由,公明 3당의 오부치 ( 新) 연립내각 발족
 
10.12 ‘99국방백서'-북한의 실제 군사력 건설과 운영비는 총예산의 30% 이상으로 추정.
 
10.12 페리 보고서 -북한의 핵-미사일 중단과 북-미간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한 포괄 협상안 제안 
 
10.12 파키스탄 군부 쿠테타- �리프 총리의 민간정부가 퇴진하고 무샤라프장군 (Pervaiz Musharraf) 중심의 군부정권 등장 
 
10.13 미국,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CTBT)' 비준 부결-미국의 핵무기 감축 노력의 신뢰성 의문 
 
10.19 일본의 핵무장-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 방위청 정무차관이 일본의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해 파문
 
10.21 인도네시아의 평화적 정권교체- 대통령 선거에서 이슬람 지도자 압두라흐만 와히드(59) 국민계몽당(PKB) 당수가 인도네시아 건국이후 4대 대통령으로 당선
 
10.29 금강산 관광-현대는 북한과 금강산 주변 관광시설물에 대한 30년 독점사용에 합의
 
10.30 파룬궁 신도 시위-수천명의 파룬궁 신도들이 북경에 집결, 파룬궁 불법화에 항의하는 침묵 시위 전개 
 
11. 2 북한 난민-중국은 북한인 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 재확인
 
11.26 중국 WTO 가입- 미국과 중국이 중국의 WTO 가입에 최종적으로 합의
 
11.21 중국 우주선 발사-'선저우(神舟)'로 명명된 우주선 시험 발사 성공
 
11.27 국경분쟁 해결-필리핀과 중국은 남중국해의 난사군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키로 합의.
 
11.28 아세안과 한-일-중 13개국 지도자들의 "아세안+3" 정상회담
 
11.29 말레시아 총선- 마하티르(73) 총리가 이끄는 말레이시아 집권연정 국민전선(NF)이 압승, 아시아 최장기 집권자가 됨 
 
12. 2 씨애틀 시위-700여 NGO가 반WTO 시위를 전개하여 WTO 시애틀 각료회담 개막이 연기
 
12. 2 북일 교섭-북한 방문중인 일본의 초당파 의원단 (단장=村山富市 전 총리)과 조선 노동당은 정부간 국교정상화 교섭의 조기 재개에 합의
 
12. 3 국경분쟁-중국과 베트남이 육상 국경선 획정에 관한 문제에 대해 합의
 
12. 9 중러 전략적 협력관계-러시아 엘친 대통령 비공식 중국 방문, 중국과 러시아간의 전략적 협력관계 선언
 
12.14 북일 관계 개선-일본 정부가 지난해 8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취한 식량지원 중단과 국교정상화 협상 동결 등 대북 제재조치의 전면 해제 발표 
 
12.16 유고 대사관 오폭사건 종결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 발생 7개월만에 중국의 인적. 물적 피해에 배상으로 총 3천2백5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
 
12.19 러시아 총선-공산당이 113석을 획득, 제1당으로 등장
 
12.19 마카오, 중국 반환-97년 7월1일 홍콩에 이어 마카오에 대한 주권까지 회복함으로써 치욕의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  
 
2000
1. 1 북한 신년사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3개 신문 공동사설, `당 창건 55돐(돌)을 맞는 올해를 천리마 대고조의 불길속에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는 제목 발표
 
1. 1 러시아 옐친 대통령 전격 조기 사임-엘친 대통령이 구랍 31일 사임을 전격 발표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 3월 27일 대통령 선거 예정
 
1. 4 북한과 이탈리아,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 이탈리아는 스웨덴, 핀란드, 포르투갈, 덴마크, 오스트리아에 이어 북한과 수교한 여섯번째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며, 서방선진7개국(G7) 중에서는 처음으로 북한과 수교 
 
1. 11 中國國防相 순방-遲浩田 국방상이 한국을 비롯, 영국, 러시아, 몽골등 4개국 방문을 위해 출국; 서울에서 한국의 조성태 국방장관과 한중 국방장관 회담 개최 (20일) 
 
1. 12 탈북자 7명 북한 강제송환-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로부터 난민지위를 부여 받고도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다 중국정부가 북한으로 강제 송환
 
2. 9 러시아 외무장관의 방북-지난 90년 셰바르드나제 당시 외무장관의 방북 이후 10년만에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 방문; '조-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공식 체결 
 
2. 21 <하나의 중국과 대만문제에 대한 백서> 발표
 
2. 25 중미간 '인권 백서' 대결-미국이 '연례 인권보고서' 를 통해 중국의 인권침해를 신랄히 비난하자, 중국도 '미국의 인권기록' 을 발간, 미국의 인권 문제 거론 
 
3. 5 제9기 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 15일까지 일정으로 개최, 예결산을 비롯하여 국민경제사회발전계획등을 심사 
 
3. 8 뇌물 수수 사형 집행-胡長淸 전 강시성 부성장이95년부터 99년간 합계 544萬元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재판에서 확정, 경제사범으로는 신중국 성립이후 최고위층으로 사형이 집행 
 
3. 10 한국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선언'-독일을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북한측에 정부당국간 협력을 촉구하고, 이를 위한 특사교환 수락을 촉구 
 
3. 16 국무원 서부개발판공실 발족 
 
3. 18 북한의 외교 공세-백남순 외상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제국을 방문; 특히 중국에서 양국 외무장관 회의를 개최, 김정일 총비서의 방중 문제 협의 
 
3. 18 대만 정권교체- 대만 총통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의 천수이볜 (陳水扁.49)이 승리, 최초의 정권교체 실현; 
 
3. 27 러시아 대통령 선거-11명의 후보가 나선 대선에서 푸틴 (Vladimir Putin)이 총 투표의 52.9%를 득표해 당선; 5월 7일에 공식 취임 예정-1990년 대통령제가 도입된 이래 고르바초프와 옐친(연임) 에 이은 네번째 대통령이며 러시아대통령으로선 3대 대통령 
 
4. 5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뇌경색 악화로 혼수상태, 6일 모리 간사장이 후임 총리로 추대 
 
4. 10 6월 남북 첫 정상회담 합의: 6월 12~14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합의했다고 발표 
 
4.13 한국의 총선-16대 국회의원 총선거 개표 결과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137석)에 4석 모자라는 133석으로 제1당으로 부상 
 
4. 24 항구적 정상무역법 (PNTR) 통과-미국 하원은 중국에 항구적인 정상무역관계(PNTR)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 
 
4. 29 북중 정상회담-북한의 김정일 총비서가 남북한 정상회담을 불과 15일 앞두고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 (5월 29일-31일),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회담 
 
4. 29 한일정상회담-김대중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가 서울 방문, 정상회담 개최, 
 
5. 16 짱쩌민 총서기가 당 건설 강화와 '3개 대표론' 제기 
 
5. 19 중국의 WTO 가입 관련 EU와의 협상 타결
 
6. 4 미·러 정상회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 
 
6. 8 한-미-일 정상 연쇄회담: 오부치 일본수상의 장례식에 참석차 일본 방문중인 김대중 한국 대통령, 클린턴 미국 대통령 및 신임 모리 일본 총리가 연쇄 정상회담 
 
6.15 남북한 정상회담-김대중 대통령은 분단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2박 3일동안 체류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2차례 이상 단독회담을 갖고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 , 이산가족의 상봉문제, 다방면의 교류협력 문제 등 남북 6-15 공동선언에 합의
 
7. 5 상하이 5개국 정상회담: 중국, 러시아, 타지키스탄, 카자크스탄, 키르기즈스탄등 이른바 상하이 5개국 정상이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회담; 江澤民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취임후 첫 중·러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ABM 협정 개정과 NMD 계획에 공동대응 하기로 합의 
 
7.19 북러 정상회담-북한과 러시아는 19일 정상회담을 가지고, ABM 협정의 존속 및 강화를 촉구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했고, 김정일 총비서는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의향 표시 
 
7.31 中國 고위간부 사형 판결-북경시 제1 중급 인민법원은 수뢰혐의로 체포된 成克傑 (66) 전 전인대 부위원장에 대해 사형 판결 
 
9. 3 리펑 위원장의 5개국 순방-3인간의 국제연합 의회 의장단 회의에 참석한 이후 아이랜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티비아, 그리고 러시아 등 5개국 순방
 
9. 4 러일 정상회담-일본을 방문중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지고 평화문제와 영토문제등을 협의 
 
9. 6 중일, 한중 정상회담-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참석중인 김대중 한국 대통령과 모리 일본 수상,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각기 중일, 한중 정상회담 개최 
 
9. 11 북한 김용순 서울 방문- 김용순 북한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11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간 서울 방문 
 
10. 9 북중관계-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노동당 창건 55주년(10일) 을 앞두고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전격 방문 
 
10. 9 중공당 5중전회-15기 5중전회에서 10차 5개년 계획 (2001-5)등을 심의 통과 
 
10. 9 북한 특사 미국방문-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 차수가 2000년 10월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방문 
 
10. 18 김대중-주룽지 회담-아셈회의에 참석중인 중국의 주룽지총리가 김대중대통령과 회담을 가지고 '전면적 협력관계'로의 발전 논의 
 
10. 22 중국 군사대표단 방북-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겸 국방부장인 츠하오톈(遲浩田)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고위 군사대표단이 북한 방문, 한국전쟁 50주년 기념행사등 참석 
 
10. 23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일행의 평양 방문, 김정일 총비서등과 회담 
 
11. 1 5차 인구조사-제5차 전국 인구조사를 실시, 중국의 총 인구는 12억 9,533만명이라고 2001년 3월28일 공식 발표 
 
11. 7 미국 대통령 선거-조지 W. 부시 미국 텍사스 주지사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 공화당 정권 등장 
 
11. 23 APEC 정상회담과 아세안+3 정상회담에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중인 한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 정상은 집단적-개별적으로 정상회담을 개최 
 
12. 12 북한과 유럽 국가 수교- 북한은 올해 이탈리아에 이어 12월 12일 영국, 15일독일과 수교에 합의 함으로써 서방선진 7 개국(G7) 모든 국가들과의 수교 추진 
 
12. 18 북경-상해 고속도로 전 구간 개통 
 
12. 25 중국과 베트남 국경문제 해결-베트남 대통령의 중국 방문중 양국 정상회담에서 국경문제 등 양국 현안 해결에 합의하고 전면적 협력관계를 약속 
 
12. 28 중국-대만, 직항로-중국 정부가 양안간 항해·교역·우편왕래 등 대만 정부의 ‘소3통(小三通) ’제의를 수용키로 결정, 50년만에 양안간 직항길이 열렸다.  
 
2001
1. 1 북한 신년사-'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세기의 진격로를 열어 나가자'는 공동사설에서 금년을 ‘21세기 강성대국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야 할 새로운 진격의 해’로 규정
 
1. 1 중국 인민일보 신년사-현대화와 통일, 그리고 세계평화와 공동발전을 3대 과제라고 지적, 그중에서 현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
 
1. 15 김정일의 비공식 중국방문 (1. 15-20)-북경에서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후 상해 포동지구등을 방문,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시찰 
 
1. 23 파룬공 분신 항의-5명의 파룬공 신도들이 중국정부의 파룬궁 탄압에 항의, 분신 자살을 시도,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
 
2. 14 중국 지방인대-遼寧省 瀋陽市 인민대표자대회가 지난해 발생한 각종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리가 공정치 못했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지방법원의 공작보고를 부결시키는 이변 연출 
 
2. 16 한러 정상회담-푸틴 러시아 대통령 2박3일 일정으로 한국 방문-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NMD 추진 견제를 우회 언급
 
2. 28 중국 국제인권규약 비준-중국 전인대 상무위는 국무원이 제출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비준안을 심의, 통과
 
3. 5 중국 전인대 제 4차 전체회의 (3.5-15)- '국민 경제 및 사회 발전 10차 5개년 계획' (2001~2005년) 심의 통과 
 
3. 8 한미 정상회담-김대중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개최
 
4. 1 미중 군용기 충돌-미 정찰기가 남중국해상공에서 정찰활동을 벌이다 중국 전투기 2대의 제지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사건으로 불시착한 미국 군용기와 승무원의 반환 요구하는 미국과 정찰비행에 대한 사과와 사망 중국 조종사에 대한 배상 요구하는 중국간의 마찰 
 
4. 24 일본에서 고이즈미 (小泉純一郞)가 자민당의 신임 총재로 선출, 고이즈미 정권이 출범 
 
4.24 대만에 대한 미국 무기판매- 키드(Kidd)급 구축함 4척, 잠수함 등을 대만에 판매
 
5. 1 미국, MD 강행- 미국 부시대통령은 동맹국들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공식 선언
 
5. 2 일본의 2001년 통상백서-중국 경제를 강력한 라이벌로 규정, “일본이 아시아 경제를 견인하는 ‘기러기형 발전’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
 
5. 21 대만총통의 방미 허용-중남미 5개국을 순방하는 천수이볜 대만 총통에게 통과비자 제공, 뉴욕과 휴스턴에 3일간 체류 허용 
 
5. 29 호구제도 개혁-중국 국무원, 공안부가 제기한 ‘소도시 호구관리제도 개혁에 관한 의견’을 비준
 
5. 30 미일 정상회담-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미일 안보 협력의 신시대 선언 
 
7. 1  김정일, 중국 대사관 방문-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건 80주년 경축 연회에 참석
 
7. 1 중국공산당 창당 80주년-짱저민 총서기, '3개 대표론' 과 더불어 사영기업가들의 입당 허용하는 '7-1 강화' 
 
7. 14 2008년 북경 올림픽 유치 성공 
 
7. 15 중국-러시아 우호협정 체결-푸틴 러시아대통령과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이 모스크바에서 20년 동안 지속될 `러-중 친선.우호.협력 조약'과 국제 안보 등에 관한 `공동선언' 채택
 
7. 26 김정일 방러-특별열차편으로 러시아 방문,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8. 13 고이즈미, 신사참배 강행-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전격 참배로 한국과 중국과 외교적 마찰 초래
 
9. 3 장쩌민 주석의 북한 방문 (9.3-5) 과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9. 11 미국 주요도시에 동시 다발 폭발 테러-빈 라덴과 알카에드 (al Qaeda)가 주도한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수천명이 사망하는 충격속에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전쟁등 테러와의 전쟁 돌입 
 
9. 24 중공당 6중전회 (9. 24-26)-장쩌민의 '3개 대표론'과 '7-1 강화' 평가하고 '당의 작풍을 강화 개선하는 것에 대한 결정' 채택
 
10. 7  미국의 아프칸 폭격 개시; 영국 참여-총 40여 개국 이상이 다양한 형태로 미국의 테러전쟁에 참여 지원-아프칸의 탈레반 정권은 12월 7일 항복, 붕괴
 
10. 8 고이스미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와 회담 
 
10. 20 제9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중국 상하이에 21개 회원국 정상 및 정부대표들 참석이 참석했고,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 지도자들은 개별적 정상회담 개최 
 
10. 30 중국,한국인 사형집행 파문-마약범죄 혐의를 받은 한국인의 처형에 대한 중국 정부의 사전 통보등 조치에 대한 논란
 
11. 10 중국, WTO에 정식 가입-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제4차 각료회의에서 1백43번째 회원국으로 중국의 WTO 가입이 승인, 다음날 11일에는 대만의 회원국 승인 
 
11. 20 중국 정부의 파룬궁 탄압에 항의하여 천안문광장에서 시위하다 체포된 35명의 외국인들에 대해 국외 추방 조치
 
12. 1 대만 선거-입법위원과 현장 및 시장 선거에서 천수이벤의 민진당 승리 
 
12. 13 2008년 북경 올림픽 조직위원회 성립
 
12. 13 부시 미국 대통령, 72년에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 (ABM) 협정 탈퇴를 공식 발표  
 
2002
1. 1 북한 신년사-`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돌을 맞는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새로운 비약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제목의 3개 신문 공동사설에서 `4대 제일주의(우리 수령-우리 사상-우리 군대-우리 제도 제일주의)'를 제시 
 
1. 1 중국 인민일보 신년 사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천하는 새로운 보조 (邁出中華民族偉大復興的新步伐)에서 전면적 小康社會 건설 제기 
 
1. 13 중국, 반체제인사, 왕처(王策) 조기 석방후 미국으로 출국-2월의 부시 대통령 중국방문 정지작업 
 
1. 29 부시 미국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고 비난
 
2. 16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3개국 순방-일본, 한국, 중국을 방문, 연쇄 정상회담 
 
3. 1 대규모 노동자 시위-黑龍江省의 大慶油田과 遼寧省 遼陽市의 國有企業 노동자들 수만명이 생활보장과 독립 노조 허용을 요구하는 시위 
 
3. 5 제9기 전인대, 제5차회의 (3.5-15 )-정부공작보고 및 10기 전인대 정원 및 선거문제 
 
3. 14 25명의 탈북자, 북경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 한국행 요구-탈북자들의 외국 공관 진입, 망명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 중국 공안의 외국 공관 진압, 강제연행 사건도 발생 
 
4. 1  무인 우주선, "神舟 3호" 발사 성공
 
4. 27 후진타오 중국 부주석, 차세대 지도자의 자격으로 미국 방문 
 
4. 30 중국의 <노동과 사회보장 상황>에 대한 백서 발표
 
6. 7 상하이 6개국협력기구 헌장 채택-중국, 러시아, 카자스탄, 키르지스탄, 타지키스탄과 우주베키스탄등 상하이 6개국이 반 테러 지역협력기구 수립 협정 채결 
 
6. 29 서해교전-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부근에서 남북 해군간 교전 발생, 한국측 해군 고속정 1척 침몰과 4명 사망, 1명 실종, 그리고 다수 부상; 북한이 7월 25일 6-29서해 교전에 대한 유감 표명 
 
8. 3 천수이볜 총통 '대만 주권국가'천명-대만은 독립된 주권국가이며 대만의 독립선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지지한다고 밝혀 양안관계가 긴장 
 
8. 3 한중수교 10주년 기념 사업 일환으로 唐家璇 중국 외무장관 한국 방문, 김대중 대통령과 면담 
 
8. 20 김정일 위원장 러시아 비공식 방문-20일부터 24일까지 극동지역 방문,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간 협력 방안 논의 
 
8. 25 중공당 중앙정치국 전체회의-16차 전당대회를 11월 8일에 개최하기로 결정 
 
9. 17 북일 정상회담-김정일 총비서와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평양에서 역사적 첫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선언 발표
 
9. 12 북한,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 채택-초대 특구장관에 화교갑부 양빈(楊斌.39.)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을 임명 (10.4 양빈장관은 탈세등의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 
 
9. 21 부시 대통령, 선제공격 중점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의회에 제출 
 
10. 3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평양 방문시 북한측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 미국은 제네바 합의의 사실상 폐기를 선언, 한반도에 다시 긴장국면이 조성 
 
10. 25 부시·장쩌민 정상회담-江澤民 주석이 3박4일 일정으로 미국 방문-텍사스주(州)에 있는 부시 미 대통령 목장에서 정상회담-26일-27일 멕시코에서 열린 APEC회의에 참석-28일 한중 정상회담; 10. 27, 한미일 정상회담
 
11. 4 난사군도(南沙群島) 분쟁방지 첫 합의-"아세안 10개 회원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의 긴장 고조를 막기 위한 행동선언문 초안에 합의 
 
11. 8 중공당 16차 전당 대회 (11.8-14)-장쩌민 이론을 공식화한 당장 개정과 후진타오 총서기와 제4세대 지도부가 등장하는 당 지도부 개편 단행 
 
12. 2 러시아 정상외교- 푸틴 러시아대통령, 중국방문중 2일에는 장쩌민 주석 및 후진타오 부주석과 회담, 3일엔 인도 뉴델리를 방문, 40억달러 규모 러시아제 무기의 인도 수출 문제 논의 
 
12. 11 북한 선박 나포-스커드 미사일 15기를 적재한 북한 화물선이 예멘 인근 공해상에서 스페인 함대에 의해 나포되었다 석방 
 
12. 12 북한, 미국등의 중유공급 중단을 이유로 핵시설 재가동 선언 
 
12. 30 중국의 네번째 무인우주선인 '선저우(神舟) 4호' 발사-유인우주선 발사를 위한 마지막 준비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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