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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33

by 8866 2008. 6. 27.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교향곡과 말티즈 그리고 철민이 B

 

연재 33

 

내시각이 시공을 초월하여 객관사물의 특성과 질서를 무시하고 기억된 이미지들을 표상으로 재조합할 때는 워낙 문법적 보조표현 같은 구조는 없다 시인이 포착한 내시각의 체험과 슈퍼맨을 상상해낸 창조적주체가 포착한 내시각적 체험은 원초적 의미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다만 시인은 자신이 체험한 내시각적 체험을 기초화하면서 현실적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문법적 도움을 빌었을 뿐이다. 그냥 「유리에 박힌 별」,「연잎으로 오므라든 지구」라고 표현했다면 슈퍼맨이라는 표현과 다를 바 없이 황당함의 치명적 결함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슈퍼맨이라는 표현은 문법적 기능을 빌리지 않은 비유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법적 기능을 빌렸다면 아마 「새처럼 하늘을 나는 사람」정도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실은 시각대상의 본연적 모습을 무시한 이러한 비유는 외시각의 착시현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강물이 비단 띠처럼 보이는 현상, 미모의 얼굴이 꽃처럼 보이는 현상도 죄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이런 착시현상은 많은 경우에 시각주체의 욕망 때문에 즉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욕망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내시각은 그러한 착시현상을 욕망충족원리에 따라 한층 더 확대발전시키는 것이다. 즉 외시각에서 나타난 결여현상이 내 시각에 의해 보완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착시현상」이라 함은 잉여로 포착된 이미지들은 정시현상이라고 긍정하는 전제로 될 수는 없다. 착시는 시각이 포착한 대상적 이미지를 진실하다고 가정할 때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별」과「보석」중에서 어느 표현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건 시인자신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대답은 이처럼 복잡하고 불확실한 것이었다. 설사 말해주었다고 해도 철민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들은 사람이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하나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니 이런 복잡한 해답이 귀에 들리지도 않을 것이 틀림없다.
 명진은 컴퓨터를 작동시키고 금방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면에 느닷없이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문자가 떴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누구지?
 타자를 잠시 중단하고 메일을 클릭했다.
 
             김 교수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바로 교수님과 7년 전 소매물도에서

             만났던 날이에요. 그날은 저한테는 행운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다시

             한번 소매물도에서 만날 수 있다면 전 반드시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확신해요.
             그럼 내일 뵈요.
                                                                                                       홍현주.
 
 현주는 지금도 7년 전의 소매물도에서 살고 있는 듯싶다. 그런데 다시 한번 소매물도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뜻은 무엇인가.
 현주는 소매물도에서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랬다. 자신의 선택을 집요하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명진을 끌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의 속마음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매물도에서의 사건은 이미 기억 속에서 추방된 것이다. 그것은 과거완료형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거실에서는 말티즈를 훈련시키는 아내 영희의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들려온다.
 “아가야, 앉아. 움직이면 안돼. 엄마 말 안 들으면 미워할 거야!”
 말티즈는 아내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영양식에만 탐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아내는 말티의 순종을 바라고 있지만 말티즈는 영양식을 바라고 있다.
 또다시 고질병인 두통이 발작하지 시작했다.
 명진은 양복저고리주머니 속에서 늘 휴대하고 다니는 두통약을 꺼내어 복용한 후 소파에 등을 기대고 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자고 싶었다.
 그러나 잔다고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자리는 꿈이 차지하고 그 꿈은 내 시각을 유혹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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