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의미의 공간
  • 자연과 인간
낙서판

선과 악 5천년의 전쟁

by 8866 2008. 6. 6.

  
   
 선과 악,  5천년의 전쟁 
   
 선악의 배타적패러다임은 관성적이데올로기의 도덕형틀로 인류의 종적정체성(種的整體性)을 절개하며 피비린 상잔의 산통을 버텨내야 하는 반만년 역사의 늙은 자궁을 고문해왔다. 욕망의 광풍을 몰고다니는 악은 도덕과 양심의 얄팍한 장벽을 손쉽게 붕괴시키며 선의 왕국을 유린한다. 정의를 명분으로 악을 징계하는 순간 선은 다른 하나의 악― 복수로 전환한다. 21세기의 악―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정의가 이를 입증한다.

 선악의 분수령에서 파분(破分)된 인류사회의 반목을 봉합하고 적대를 극복하여 절단된 혈맥을 복원하려는 인류지성의 고민은 한순간도 멈춘적이 없다. 

 

 고대로마민주는 경직된 가치의 배타질서에 유연한 완충지대를 장치하고 수직적구조를 굴절시켜 수평화함으로써 선의 독선에 강도 높은 반동을 꾀한 획기적 프로젝트였다. 반면 법률과 도덕의 체계화는 이데올로기시스템의 끈질긴 관성에 제동을 거는 마찰반경을 규제하며 선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면서 일탈의 반동을 백지화시켰다.

 《원쑤를 사랑하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온 기독교는 선악의 배리와 적대의 역사를 종식하고 악을 포용하려는 이데올로기혁명을 시도했지만 절대자의 일원진리와 금욕원칙의 이교도탄압과 배격이 인류를 새로운 갈등으로 등 떠미는 악과를 초래하고말았다.

 

 불교도 《칼을 내려놓으면 부처가 된다》는 불심근본설로 선악의 심연을 충적시키려 했지만 인연의 단절로 사회의 뉴대를 격파시키는 현실도피의 분열된 삶을 강요하고있다. 

 

 니체 역시 강자의 상징인 악이 약자가 지어준 이름임을 통찰하고 가치복구작업을 강행했지만 세속과 초월의 차이를 절대화한 《영원회귀》론으로 추상적기계론의 오류에 침몰되고만다.

 

 근대를 장식하며 화려하게 역사무대에 등장한 자유는 악의 봉금지대를 밀월하며 욕망을 밀수하여 인성시장에 불법 류통시켜 가치복원을 꾀했으나 이에 대항하는 늙은 윤리와 법질서의 마지노선에 차단되어 딜레마의 미궁속으로 추락하고 만다.

 

 가치의 수직적배열을 굴절시켜 수평화한 현대민주의 작동반경은 국가공권력과 공공선의 인큐베이터안에 제한되고 동서냉전의 종식으로 붕괴된 이데올로기의 대결구도는 정의와 테러라는 새로운 대치국면으로 이월되였을뿐 양대갈등의 근본적 철폐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패자의 시체위에 축조된 승자의 살상이 합법화된 자본주의의 경쟁구조와 축재가 수단을 정당화하고 수요와 소비가 가치량의 척도가 되는 자본시장의 생리는 유배된 욕망의 압축을 풀며 악의 방출지평을 조금씩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자본의 식민지가 된 가치왕권은 상품으로 페위되며 위조품, 불량품과 혼재하여 저렴하게 유통됨으로써 선악의 봉합을 우회해 악의 조계지에 전통과 윤리를 매각하기 시작했다. 시장경제는 수단에 대한 윤리의 통제권을 목적이 저당잡음으로써 악의 독선과 광기에 명분을 배당하는 당위로 승격된다. 여기에 개인화의 팽배로 충분한 활동공간을 확보한 지독한 사욕마저 합세하여 목적의 정당성을 공고화한다.

 

 윤리의 감방에 투옥된 장기수― 악의 형량을 줄이고 선의 수위조절이 청구됨은 선이 자처하는 정당성의 가치측정불가능성에서 수태된 문제이다. 소유의 양도라는 덕행으로 까다로운 윤리검증의 프리즘을 통과한 선은 타자의 권리침해라는 업장으로 검증 탈락한 악의 광기를 진압하는 순간 타자의 영역을 범하면서 다른 하나의 악으로 전락되고만다. 현상유지와 상대적정지로서의 선의 보수성은 악의 충격과 개입으로 침체상황이 타개되며 역사를 전격 가동시킨다. 특정질서의 고착화로 역사발전을 체류시키던 선이 상대 악으로 이월한것도 사실이다. 근대 자유주의의 약진에 봉인을 붙인 기독교적질서의 탄압이 그러했고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규제가 그러했으며 민주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그러한 사례들이다. 근현대사는 무소불위의 권력― 선의 독주에 맞선 자유와 민주 그리고 시장경제와 개인화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악의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이 화려한 성공의 뒤안길에는 경쟁에서 탈락한 패자의 눈물과 아픔이 버려져있지만 타자의 영역을 침탈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행위는 엄연한 악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가 사람들에게 배달해준 혜택은 너무나 막대한것이기에 당연지사처럼 면죄부가 주어지고있다. 
 

 썩은 부식토는 더럽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더러움은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영양소이다. 
 꽃은 떨어져 썩어서 거름이 된다. 

 더러움과 아름다움은 서로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충족원리에 따라 공존한다. 낮과 밤이 주기적으로 교체하듯이 차이는 상반되면서도 동전의 량면처럼 연결되어있다. 

 

 5천년 선악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상호충족원리의 선에서 량자의 균형있는 평화공존은 두개 적대진영으로 분렬되어 동종同種상잔을 일삼던 인류가 풀어야 할 시대적과제이다. 선의 독주이든 악의 광기이든 그 어느쪽도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악의 온상― 시장경제는 성공의 꽃을 피우는 비옥한 토양이다.
 악의 상징― 욕망은 변화의 에너지이며 창조의 어머니이다.
 악의 대명사― 자유는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인류는 서로 원쑤가 아니라 형제자매이다.

 오로지 선악의 천년 원한을 넘어설 때에만 인류는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수 있을 것이다.

                    

 2007년 5월 27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