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미술은 대략 1600년경부터 1750년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을 말한다.
'바로크'는 예술에 관한 문헌에서 역사적이며 비평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언어로 그 어원은 불확실하다. 바로크가 '불규칙적' 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그 단어가 불규칙적한 진주라는 뜻의 포루투갈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이 말은 부르크하르트와 뵐플린에 의해 미술사 및 비평 용어로 사용되면서 전문적인 용어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바로크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첫째, 미술사에서는 매너리즘과 로코코 사이, 즉 대략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의 양식을 말한다.
둘째, 특정한 양식에 대한 관념에 의해 특징짓는 일정 기간 - 보통 17세기를 말한다. 따라서 '바로크 시대, 바로크 정치, 바로크 과학'이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
셋째, '바로크'라는 말은 지금은 과거의 경멸적인 의미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아직도 예술에 관한 문헌과 비전문적인 의미의 일상어에서 '변덕스러운', '장식이 지나친', '현란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왕권의 번영과 함께 등장한 바로크 미술의 특징은 비고전적, 동적, 남성적, 불규칙적인 성격과 심한 과장성이다.
성당 건축과 함께 궁전 건축이 중심이었는데 베르사이유 궁전은 대표적인 예이다. 명암의 강한 대비를 이용하여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주제가 등장한 회화는 풍경화, 정물화, 세속적 인물화가 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바로크 예술은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균형이란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각각으로도 완벽한 부분들이 이루는 전체적인 균형과는 다른 것이지만 매너리즘의 종종 고의적으로 조화를 깨뜨리는 점이나 로코코의 신경질적인 단편성 보다는 오히려 르네상스에서 말하는 균형과 공동되는 점이 더 많다.
바로크가 추구하는 화합은 형식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적인 참여를 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정신적인 참여를 하게 하는 것이 바로크 작품의 특징이다.
바로크는 16세기 고전적 르네상스의 조화·균형·완결성등에 대해 경탄과 현혹을 지향하여 양감, 광채, 동감에 호소하고 있다.
그리하여 건축에서는 거대한 양식, 곡선의 활용, 자유롭고 유연한 접합부분등의 특색을 나타내고, 조각에서는 비상하는 동적인 자태와 다양한 의복의 표현등을 특색으로 하였다.
회화에 있어서는 대각선적인 구도, 원근법, 단축법, 눈속임 효과의 활용등이 전체적인 특색이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바로크는 로코코 양식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바로크 회화의 선구자였던 카라밧지오는 측면 광선에 의한 명암의 강한 대비를 나타냈고, 주로 종교화를 그렸던 엘그레코는 「성모마리아의 승천」「십자가의 크리스트」를 그렸다.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즈는 「왕녀 마가렛」「시녀들」을 그렸고, 풍만한 육체와 풍요로운 색채로 웅장한 구성과 생동하는 필력을 구사했던 루벤스도 유명하다.
집중적인 광선의 표현과 깊은 인간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던 렘브란트의 「야경」 「자화상」등은 바로크 미술의 절정이다.
그 외에 푸생, 반다이크, 할스, 베르메르등이 있다.
바로크 미술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첫째, 자연주의적 추세를 부활시킨 카라밧지오는 예술의 원천으로 관념보다 자연의 관찰을 강조했다.
둘째, 전성기의 르네상스 고전기와 로마 고대 풍습으로의 복귀였다.
셋째, 필수적이며 가장 지속적인 요소로 베네치아 - 특히 티치아노의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과 코렛지오의 예술에서 이탈리아 바로크의 색깔과 빛, 풍요로움이 비롯된다.
이 세 요인으로 1620년대에 바로크 양식은 루벤스와 로마 화가들에 의해 최초로, 또 놀라운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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