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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관광

[스크랩] 백두산 아래 첫 동네 장백현 방문기(2)

by 8866 2006. 5. 24.

7월 11일 아침 압록강 상류에 위치한 장백현에서 새 아침을 맞았다. 중국에서는 유럽과 같이 2성급 이상 호텔에서 아침 식사가 포함이 되어 있어서 여행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좋은 제도이다. 아침식사를 호텔 식당에서 하는데, 밥은 없고 빵과 중국식 채소요리만 있었다. 이젠 나도 어지간하게 중국을 드나들어서 그런지 중국식 식사를 거뜬히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장백현 해관입구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선생님들 뒤로 한글 간판이 보인다.

그런데 장백현 여행에 같이 합류를 한 S님의 친구분이 밥이 없어서 아침식사가 부실한 것 같았다. 종업원에게 밥을 달라고 이야길 하였다고 하더니 조금 후에 종업원이 밥을 가져왔었다. 호텔 호식당에는 이상하게 밥이 없었지만, 다른 호텔 식당에는 밥도 같이 있는데 말이다.

식당에는 우리 일행과 그리고 저쪽 구석에 한국인 한 사람과 중국동포들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먼 곳까지 찾아오는 한국인들도 있다. 식사를 마치고 여행사에 알아보니까 백두산 남벽 등산은 현재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 붕괴되어 도로수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여 백두산 서벽으로 등정을 하기로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장으로 가서 과일도 사고 필요한 먹을 거리를 사서 차에 싣고 압록강으로 갔다. 압록강은 많이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 전에 북한 경비병이 나와 있던 강 저쪽 부분이 물에 잠겼고 중간에 흘러 내려온 자갈들이 모여서 새로 만들어진 작은 섬들로 지형이 바뀌어져 있고 흙탕물이 흘러 내리고 있어서 북한의 혜산시는 전에 보다는 더 멀어져 보였다.

2년 전에는 강 중간까지 북한측의 땅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경비병이 그 곳의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고 내가 보는 눈 앞에 국경 밀무역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고 심지어 강의 얕은 곳을 배낭을 메고 건너온 북한 학생을 보고 이야기를 걸자 강안으로 피했었다. 그런데 강안에 형성이 되어 있던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진 섬 부분이 없어지고 이쪽 강둑에서 저쪽 강둑을 바라보니 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압록강 상류의 북한 혜산시로 가운데 있는 섬까지 전에는 물이 없어서 북한 경비병이 나와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장백현 해관까지 강가를 따라서 걸어갔다. 해관에 도착하니까 경비병이 해관의 출입을 막고 출입을 원할 경우에 출입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고 오라고 하여 발길을 돌렸다. 게다가 장백현과 혜산시를 연결하는 다리 밑으로 나 있는 도로로 가는 것도 허용을 하지 않아서 돌아서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왔을 때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더 엄해진 것 같았다.

마침 일행들 중에 S님의 친구분이 가게 앞에서 북한 혜산시에서 온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빙 둘러 앉고 또한 선채로 아주머니 및 남자분과 이야길 나누었다. 요즘의 남북관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스스럼 없이 이야기도 잘하였다. 국경을 통하여 장사를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고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다. S님이 담배를 권하니까 스스럼 없이 받아서 이리저리 보고 한국 담배에 대해서도 묻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들고 있는 자루가 한국산 자루인 것을 보고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이제서야 알았고 튼튼하여 들고 다닌다고 하면서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으로 북한사람들을 보는지 신기해 했다. 이 두 분과 작별을 하고 차를 달려서 장백현을 한 눈으로 내려다 보고 또한 간 건너 혜산시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발해의 영광탑을 보러 갔다. 산 위에 오르니 먼저 열사릉이 나타났고 그 아래로 벽돌로 쌓은 탑 하나가 장백현과 압록강 그리고 혜산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바로 발해 시기에 세워진 영광탑이었다. 영광탑은 해발 869m에 세워진 5층 탑으로 높이가 13m이다. 예전에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던 것 같았다. 영광탑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보였다.

발해의 영광탑과 안내비[당나라 발해시기라는 문구가 보인다]

 

안내비에는 영광탑을 당나라 발해시기에 쌓은 탑이라는 설명을 함으로써 발해라는 나라는 없어지고 발해는 당나라로 포함이 되어 버렸었다. 이미 발해사는 당나라의 지방정부로 완전히 왜곡이 되어 버렸음을 확인을 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2년 전에 장백현에 왔을 때에는 이 영광탑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그냥 압록강만 바라보다가 돌아 갔는데, 그 후에 발해의 영광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젠가는 다시 와야겠다고 벼르다가 작년에 백산시까지 왔다가 장백현으로 가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었던 아쉬움을 이번에 와서 마침내 발해의 유적인 영광탑을 보는 기쁨을 갖게 되었다. 탑이 있는 곳에서 장백현과 혜산시 그리고 압록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부 지역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이 아이의 돌을 기념하러 왔는지 아이의 사진을 찍어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이 탑이 이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인 것 같았다.

▶ 발해의 영광탑 앞에서 동포 학생들

탑을 사방에서 둘러보고 산 아래로 내려와서 압록강의 강폭이 좁은 곳에서 혜산시를 바라 보았다. 강 저쪽에는 군인들이 나와서 군복을 씻어서 말려놓고 쉬고 있는 장면도 보였다. 이곳의 바로 건너편 혜산시에는 판자촌이 형성이 되어 있는데 그 궁핍함이 한눈에 들어 왔다. 마치 70년대의 도시의 빈민촌을 보는 듯 했다. 압록강 이쪽과 저쪽의 풍경이 완전히 다른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강 이쪽에는 산에도 나무가 많고 강 저쪽에는 민둥산에 산 정상까지 밭이 만들어져 있고, 강 이쪽에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활기차고 밝아 보이는데 비해서 강 저쪽에는 지친듯한 표정에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이런 모습들을 보고도 북의 김일성부자의 공산당정권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로써 장백현의 유람은 끝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서 백두산 서벽으로 등반을 하기 위해서 송강하로 달렸다. 장백현에서 송강하로 나가는 길에는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하는 작은 양수발전소가 있다. 길은 여전히 수리를 하고 있어서 송강하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백두산 남벽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는 도로를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차는 열심히 달려서 장백현과 경계를 이루는 고개를 넘어섰다. 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하면서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들어가기도 하고 S님 친구 한 분은 걸어서 내려갔다. 도로 옆으로 흐르는 개울가에 기존의 콘크리트도로를 뜯어낸 파편들을 밀어 놓아서 보기가 흉측했다. 개울가에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넘은 것 같은 나무가 그대로 죽어서 쓰러져 있고 자연 원시림 그대로였다.

다시 차를 타고 송강하로 가려고 가는데, 뒤차에서 신호가 와서 차를 세우니 아까 걸어서 내련 간 친구분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이 분이 걸어서 내려갔는데, 어디에 갔는지 찾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비록 공로변이지만 이런 한적한 산중에 그것도 한 사람이 없어지다니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혹시 취나물을 뜯으러 산속으로 들어갔는지 걱정이 되었다. 일단 우리가 먼저 내려가면서 사람을 찾아보고 뒤차는 다시 길을 돌아가서 찾아 보기로 하고 아래로 내려가니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는 그 분이 보이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분을 태우고 뒤차에게 사람을 찾았다는 연락을 하고 송강하로 달렸다.

장백현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달리는 개천의 모습과 천연림

송강하 입구에 검문소가 있는데 여권을 내고 군인인지 무경인지 모르지만 검문을 받았다. 장백현을 통하여 들어오는 탈북자들을 검거하기 위한 검문을 할 것이다. 우리가 탄 차에서는 한국인 둘 다 검문을 받았지만 뒤 차에 탔던 한국인들은 우리 차에서 검문을 받는 것을 구경을 하느라고 검문을 받지를 않았다. 검문을 하는 무경이 그냥 모르고 지난친 것이다.

검문을 받고 바로 앞에 보이는 마을이 어제 우리가 장백현으로 가면서 닭 요리를 먹었던 곳이다. 다시 그 식당으로 가서 닭을 주문을 하고 S님 친구분이 이리저리 다니시다가 나를 불렀다. 그 분이 영지버섯을 보았다는 곳으로 따라가니 백두산에서 딴 자연산 영지버섯을 말리고 있는 창고였다. 주인과 흥정을 하여 10원인가를 주고 영지버섯 4개를 받았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자연산 영지버섯도 많이 나고 가격도 아주 싼 편이다. 물론 주인의 입장에서는 비싸게 팔았을텐데 말이다.

닭 요리를 먹고 계산을 하니까 글쎄 어제보다 배로 가격이 나오는 것이었다. 어제보다는 닭도 한 마리 적게 주문을 하였는데 가격은 오히려 더 비싼 것이다. 이유를 물은즉, 오늘 닭이 무게가 더 나간다는 것이었다. 닭의 무게를 달은 것도 아닌데 무게가 더 나가서 더 비싸게 받는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돌아오는 길이니 이제 완전히 바가지를 쒸우는 것이다. 별 도리 없이 요구하는대로 계산을 하고 송강하로 달렸다.

송강하에 도착하여 송강하빈관에서 방을 구하여 내일 아침에 백두산 서벽을 등정을 하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이곳도 백두산 관광의 영향을 받는지 방값이 상당히 비싼편이었다. 호텔에는 멀리 남방에서 온 중국인들이 다수 들어 있고 방도 없는 편이었다. 남방에서 온 중국인들은 비교적 상류층인지 지프차를 갖고 온  등산 팀이었다. 학생들은 여행이 즐거운지 호텔 마당에서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백현 시장 모습

호텔 방에는 물이 새어서인지 퀴퀴한 냄새가 났으나 창문을 열어 두고 호텔에서 소개를 받은 조선요리를 한다는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조선요리를 하는 식당은 맞는데 흔히들 말하는 양머리 걸고 개고기 장사를 하는 집이었다. 중국동포라곤 홀 서빙을 하는 아가씨 단 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우리말을 잘 못하는 아가씨였다. 이런 산골에도 한식을 하는 식당이 있다는 것은 한식을 즐겨 먹는 손님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우린 주로 식당에 들어가면 기름기가 많은 요리보다 토장국과 토장 그리고 파나 오이 같은 야채를 시켜서 먹는 편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른 길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비록 규모는 작지만 조선식당이 더러 보이는 것이다. 아마 저런 식당은 양머리 내걸고 개고기 파는 식당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처음 오는 곳이고 이 송강하에는 동포들이 워낙 적게 사는 곳이다 보니까 아까 같은 식당에 모르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서 내일 백두산 서벽을 오를 흥분을 안고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좌]북한 혜산시의 압록강에서 옷을 빨아서 늘어놓고 쉬고 있는 북한군인과 [우]혜산시 모습

 

[좌] 북한 혜산시의 판자촌 모습과 산 전체를 밭을 만든 모습으로 이런 실상을 보고도 북의 체제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 북한과 가까운 곳에 만들어 둔 관람대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선생님

 

발해 영광탑에서 내려다 본 장백현, 압록강, 혜산시 모습. 강 넘어 보이는 곳이 혜산시다.

사랑의 씨알들

출처 : 고인돌사랑방
글쓴이 : dolme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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