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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평양기생학교 방문기

by 8866 2006. 2. 27.

 

                                                          西道一色이 모인 平壤妓生學校

                                                                                                                      草士


●수양버들이 추눅히 늘어진 연광정에서 서로 돌아 한참 가노라면 기생아씨들이 많이 사는 채관리(釵貫里)라는 동리가 나오고 그 동리의 한복판을 조금 가노라면 또 저 유명한 평양기생학교가 구름 속 반달같이 뚜렷이 나온다.

 

평양이 들 좋고 인물 잘나고 物化가 은성한 곳인지라 경상도 진주와 같이 노래와 춤이 잘 발달되고 노래와 춤이 잘 발달되매 그 紅燈情調가 놀랄만치 연연한 바 있어서 민감사이래 色鄕으로 이름 있던 곳이니 기생학교가 두서너쯤 있는 것이 그리 괴이하달 것이 아니겠으나 에로틱한 그 이름이 十三道 재자가인의 마음을 건들여 놓는 품이 여간 아니다.

 

평양기생학교 학생들 사진

 

●내가 기생학교 문턱에 발을 들여놓기는 유월육일 아침 소낙비가 두곱 패오고 한동안 즈믁한 사이였다. 마침 벽돌 이픙으로 옛 校舍의 앞에-경복궁안 근정전을 뒤에 밀쳐 놓고 그 눈 앞에 총독부가 우뚝 들어앉듯이 새집이 들어앉느라고 공사에 분주한 때이었다.

 

●벌써 대문간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간밤에 부든바람 만정도화 다피었다…」

하는 시조가락과

「반남아 늙었으니 다시 젊든 못하리라」

하는 수심가가락이 장고에 맞추어 하늘공중 둥둥 높이 울려나오고 연지와 분과 동백기름냄새가 마취약같이 사람의 코를 찌른다.

 

●마루 아래는 빨간 증신 파란 갓신 굽 높은 외씨 같은 구두를 이수백 켤레 놓고 花草평풍을 두른 넓은 방안에는 방마다 열삼사세로부터 열육칠세까지 되는 남의 집 처자들이 가락지 모양으로 圓을 짓고 돌아앉아서 혹은 四君子를 치고 혹은 歌辭를 배우고 或은 僧舞와 劍舞를 추고 있으며 있던 아이들은 丹靑칠한 마루기둥에 몸을 꼬아 기대고 서서 남이 하는 모양을 물끄러미 보기도 하고 있는데 모두 二百餘名 童妓들이 만발한 花草동산같이 와자작 피고 있다.

 

평양기생

 

외래인이 들어온다고 경계하는 눈치인가 모두 소곤소곤거리며 머리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품이 한껏 귀여웠다. 하얀 얼굴에 머구알 같은 까만 눈동자가 달달 구르는 것이 어디에 죄가 있다 할까 童貞女에게서만 보는 氣品과 아름다움이 나 같은 우직한 사내의 가슴조차 여간 설레게 하지 않는다.

 

●그네들은 「너는 모란꽃 되라 나는 초롱꽃 되마」 하는 듯이 제각기 차림차림을 달리 하였다. 어떤 각시는 빨간 댕기에 발치에까지 잘잘 흘리는 치마를 입었는가 하면 어떤 아씨는 영초댕기에 연두색 치마를 궁둥에 걸치었고, 어떤 색시는 흰 저고리 검은 치마에 히사시가미로 여학생차림을 하였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제비꼬리 같은 양장에 장미꽃 리본을 달아 공연히 남을 못 견디게 군자. 드러터라도 모두 다르게 차렷건만 마치 식물원에 온갖 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되 어느 것이나 다 풍정이 있는 모양으로 아기자기한 인생의 꽃동산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누구집 父母는 귀여운 딸들도 두었군 하며 나는 이도령이 광한루 올라가듯 잔뜩 흥분이 되어 이픙의 학교 사무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네, 그렇습니다. 모두 삼년 동안 가르쳐 평양개명에 과히 부끄럽지 않은 명기들을 만들어내지요.」

「그래 무얼무얼 가르치세요?」

 

평양기생의 탄금

 

「일년급 아이들에게는 羽調 界面調 같은 歌曲을 배워주지요. 즉 平時調, 高調, 詞說調들을요. 그밖에 梅, 蘭, 菊, 竹 같은 四君子와 하늘 천자는 낮고 따지자가 놉다는 漢文韻字까지 또 조선어 산술 등도 가르치지요.」

이 학교의 간부 되는 金氏는 이렇게 말하면서 箕城券番에서 만들었다는 기생학교 노래 敎科書를 내보인다.

 

「그러면 에라 놓아라라거나 양산도 방아타령들은 아니 가르쳐 주나요? 시조만 줄곧 가르치는가요?」

「원래 몇 해 전만 해도 양산도나 방아타령 같은 것은 品에 객긴다 하여 기생들은 입에도 담지 안았답니다. 그게 어디 색주가들이나 할 소리들이지. 그러나 부르는 손님들이 그를 청하기로 지금은 그것도 가르쳐줍니다마는…. 그런 것은 모두 삼년급에 가서 알게 되지요.」

 

평양기생의 나들이

 

「춤은 무얼 배워주세요?」

「僧舞와 劍舞이외다. 원래 조선의 기본춤이라는 것이 승무와 검무 두 가지인데 이것이 여간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삼년급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데 처음엔 발 떼는 법 중둥 쓰는 법 몸 놀리는 법에만 약 이십 일이 걸리지요. 우리는 조선춤에 많이 힘을 들입니다.」

「또 신식 댄스는?」

「댄스는 저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고 수의과로 넣었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 분의 얼굴빛은 敬虔한 朝鮮情調와 朝鮮純粹藝術의 擁護者로 빛난다. 나는 마음이 유쾌하였다.

우리는 말을 돌리어

「이 학교를 졸업하면 곧 기생이 됩니까?」

「그렇지요.」

 

「그래 모두 한(?)양에만 있나요? 서울의 일등명기들이 대개 평양기생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서울로도 많이 가는 모양이지요?

「그렇지요. 서울이다 신의주로다 대구로다 많이 가지요. 아마 학교로 된 지 사 년 동안에 일백 팔십여 명의 졸업생 중 삼분의 이는 외지로 갔을걸요.」

 

또 기생학교로 입학하러 오는 학생들은 모두 평양태생들인가요?」

「평양아이도 많지마는 서울이나 황해도, 평안도로도 많이 와요.」

「지금 학생 수효는 모두 얼마나 되세요?」

 

 

                                                          대동강변의 평양기생

 

「일백구십오명이 있어요. 그런데 자, 四君子를 좀 보세요. 이것이 삼년급 아이들과 졸업생들이 쳐두고 간 것이랍니다. 이 중에 총독부 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작품까지 있어요.」

하며 梅蘭菊竹을 그린 四君子를 한아름 안아다가 널마루바닥에 쭈욱 펴놓고 구경하기를 청한다. 모두 얌전하다. 이것이면 옛날 王都의 글 잘하고 그림 잘하던 옛 名妓의 풍모를 연상할 만하다.

 

「이것을 모두 누가 가르치나요?」

「노래는 朴明花 金海史라는 두 名妓가 가르치고 그림은 守巖先生이 가르치지요.」

 

●나는 花仙이다 彩雲이다 月香이다 하는 옛날 九雲夢이나 西廂記나 秋風感別曲 같은 데 나올 듯한 로맨틱하고 호화로운 學生名簿를 뒤지다가 직접 교수하는 양을 보려고 아래층에 내려왔다.

 

●少女들은 先生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앉아서 선생이 부르는대로 들머리(노래의 머리 드는 것) 긴 노래 弄, 編 등을 연해 合唱한다. 「청간수」도 나오고 「고고천변 일문홍」도 나오고 「춘향거동 보소」도 나온다. 그 노래할 때마다 무아기(?)하게 엷은 치마빛깔 속으로 모시바지가 비스름이 보이는 것이 남을 괴롭게 한다.

 

●그 다음 방은 고깔 쓰고 장삼 입은 童妓의 僧舞와 黃鶯舞 等 가지가지 춤이 장고, 거문고, 생황, 피리에 맞추어서 古雅한 리듬과 같이 고요히 고요히 패성의 옛 도읍을 흘러내린다. 그 다음은 좀 아이를 먹은 처져들이 청황모 무심필을 해주먹으로 간 벼루 속에 살짝 풀어헤치어 하얀 花箋을 멋지게 펼쳐 놓고 소상팔경에 나오는 대도 그리고 국화도 그린다. 점을 찍으면 매화꽃이요, 선을 당기면 참대라. 그 대밭 속에서 머리 따은 처자와 만나서 詩書를 이야기하는 中世紀 貴公子가 금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듯 아무튼 그림도 멋지거니와 그 태도도 멋지다.

 

●이 學校의 재산은 현재 약 이만여 원이 있다는데, 학교가 되기는 사 년 전 보이었다고 한다.

평양엔 平安監事로 閔(?)가 있을 때 練光亭(??)을 中心으로 妓女들도 全盛하였다는데 그때는 別 로 學校가 없고 書堂式으로 小規模의 施設이 많았다고 한다.

 

이 平壤妓生學校가 日本(?)塚少女歌劇(?)모양으로 시대사조에 따라 데뷰할는지 또는 固有한 朝鮮情調를 키워주는 예술의 동산이 될는지 그 운명은 머지않아 결정될 것이다마는 나는 어디까지던지 사라져가는 우리의 조선 노래, 우리의 조선의 춤, 우리의 조선의 음악, 우리의 조선의 의복, 우리의 조선정조를 담고 북돋우고 키워 가는 예술의 아름다운 동산이 되기를 바라고 그 집을 나왔다.

 

대문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學生들은 몹시 사람을 그리워하는 눈치로 묵례(黙禮)하여준다. 딴 말이나 평양말씨는 가라고 쫓는 듯이 틸(?)브면서 차마 떨어지기 싫게 餘韻이 있듯이 女子의 行動擧止도 無限히 사람의 호감을 끈다. 이것은 금수강산이 인정풍속까지 정답게 함인 것인저! 


 
출처 : 블로그 > 우리문화사랑방 | 글쓴이 : 죽계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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