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샤먼이 다른 세계와 접촉하는 것은 '엑스타시(ecstasy)'나 '트랜스(trance)'를 통해서이다. 유명한 종교학자인 엘리아데(Eliade)는 샤먼을 엑스타시를 통제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a master of ecstasy)으로 보았다. 샤먼을 구성하는 요소중에서 엑스타시를 강조한 것이다. 트랜스란 수호신령이 출현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샤먼은 트랜스 상태에서 영혼여행을 떠난다.
몽골샤먼의 의례모습 |
러시아지역에 있는 몽골인인 부리야트(Buryat)의 샤먼 |
영혼여행이란, 샤먼의 영혼이 트랜스상태동안 육체를 떠나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거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죽은 자의 땅으로 옮기거나 인간의 행·불행을 통제하는 신령이나 정령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샤먼이란 말은 시베리아에서 생긴 것으로 '마술사'와 '요술사'를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샤먼이란 말은 시베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엑스타시의 실행자를 가르키는 용어가 되었고, 나중에 학자들은 이것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사람들을 샤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샤먼은 시베리아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남북아메리카, 동남아시아, 태평양섬들 세계의 여러곳에서발견된다
한국의 샤머니즘 (1) 샤머니즘 이해 ⅰ) 샤머니즘의 정의 'Shamanism'이란 말은 퉁그스 말의 '샤먼'(Saman)에서 유래하여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게 된 말입니다. (Sam은 '흥분하다', '춤춘다'는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샤먼은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며 춤추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샤머니즘을 民俗의 하나로 보는 입장에서 이를 무속이라고 합니다. 이 '巫'자에서 위의 '一'은 하늘 또는 신령을 표시하는 것이요, 아래의 '一'은 땅 또는 인간을 표시합니다. 한가운데 내려그은 작대기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이 작대기의 양편에는 사람이 춤추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속신앙이란 사람이 (무당, Shaman)춤을 춤으로써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현상입니다. 또는 이 방면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M.Eliade교수는 샤머니즘을 민속적인 입장에서 황홀경에 들어가는 고대적인 기술(archaic technique of ecstacy)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ⅱ) 샤머니즘의 기원 샤머니즘은 4세기에 유교, 불교, 도교 등이 한국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한국에 있었던 재래종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의 고유종교는 아니고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널리 몽고, 만주, 한국, 일본 그리고 우랄 알타이 제 종족 사이에 공통적인 원시종교였습니다. 이러한 샤머니즘은 본래 일정한 교리나 조직의 체계를 갖지 못한 원시종교였기 때문에 각 민족에 따라 그 특색이 다릅니다. 한국에 있어서는 샤머니즘이 한국의 종교적 바탕을 이루면서 외래종교들을 받아들였으며, 그 외래종교와 혼합을 통해 변형하면서 역사 속을 흘러왔습니다. 한국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 자체가 샤머니즘의 소산이라는 점에서도 샤머니즘이 얼마나 한국의 정신적 바탕이 되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항상 민중의 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타종교와의 혼합 속에 한국문화의 운명을 좌우해 왔습니다. 그래서 류동식 교수는 샤머니즘(巫敎)을 한국인의 심성을 결정한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ⅲ) 신앙으로서의 샤머니즘 샤머니즘은 애니미즘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anima'(정영)애 연유한 애니미즘은 모든 물체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자연숭배 또는 정령숭배의 원시종교입니다. 원시인들은 천지 사이에는 사람이 죽은 뒤 그 육체를 떠나간 정령들이 충만하게 있으며 이런 것들이 인간의 질병과 기근 등 모든 재액을 만들기도 하고 또 복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일종의 다영신앙입니다.(Polydemonism) 그러므로 이러한 영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중재적 역할을 하는 샤먼(무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샤먼은 정령과 직접 교통하는 자로서 영계를 탐지하고 영능을 행사할 수 있어서 祭祀, 주술 등으로 재액을 없이 하며 복을 가져오는 제사인 것입니다. 샤먼에서 공통된 직능으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제직(priest)인 바 신령에게 제예를 드리고 영意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무직(medicine man)입니다. 곧 악령을 쫓아냄으로써 병을 고치는 일입니다. 셋째로는 소위 예언직(prophet)인데 길흉을 점치는 일입니다. 한국의 무당은 여기에 오락이 첨가되어 네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샤머니즘은 본래 범신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체의 영계를 지배하는 최고신이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하느님은 우주를 지배라는 최고신이며 이 하느님이 비도 주고 추수도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샤머니즘에서는 이 최고신의 개념이 그리 발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창조한 주신인 하나님이 멀리 있어서 인간세상 일에는 간섭하지 아니하고 그 부하인 제령들에게 인사를 관리하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속의 신들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그 영력을 이용하기 위한 도구적 대상에 불과합니다. 샤머니즘에서는 우주를 삼층구조로 봅니다. 즉 상계, 중계, 하계인데 상계에는 광명한 천상세계이며 주신고 선영들의 거처라고 봅니다. 그러나 중계는 인간과 생물이 사는 이 세상이며 하계는 악령이 사는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소업여하를 따라 사후에 저승으로 가되, 상계로 올라가기도 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샤머니즘에도 약간의 심판사상과 윤리사상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샤머니즘의 주요 관심은 인간의 윤리가 아니라 영계가 조작하는 재액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입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윤리사상이나 죄관념 또는 최후의 심판과 같은 사상의 발전이 샤머니즘에는 없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은 또한 발전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타종교와 혼합합니다. (2) 무속의 인생관 무속의 인생관은 한마디로 자연주의적 현실적 인생관을 기초로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속에서는 생로병사의 자연적 삶의 운명을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 운명의 테두리에 순응하여 최대한 만족을 얻고자 합니다. 또한 윤태림 교수는 "한국인은 옛부터 이상보다는 현실을,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생활양식으로 살아 왔다"고 말한 바 있지만, 이 말은 그대로 무속적 인생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속의 모든 욕구는 오직 현재에만 집결되어 있습니다. 현재 어떻게 모든 재액과 불안에서 벗어나서 안심립명하고 복된 생활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데에 모든 초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복이란 대체로 부, 귀, 다남자, 가족과 가운의 번창, 신체의 건강, 수명장수 등과 관련된 대소의 길복들입니다. 무속적 인생관을 요약한다면 사람은 자연 속에 태어나서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다가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죽을 때가 되면 죽더라도 살아 있을 동안에는 되도록 고생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비애로 심통하지 않고, 불의의 사고로 놀라지 않고, 주어진 신분에 안정하여 평안히 지내다가 불의의 죽음으로 원사를 하지말고 천명을 다한 후에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락한 운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3) 무속의 성격과 역기능 ⅰ) 무속의 성격 ① 자연주의적이고 현세중심적입니다. 무속 속에는 초지상적인 가치나 형이상학이 없습니다. 종말, 부활, 영생과 같은 개념이나 이상은 무속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성격의 것들입니다. 무속에서는 오직 자연 질서에 다른 생자심멸사상과 현세에서의 가족 내지 부락공동체의 구복과 제재를 위한 현세중심적 가치관과 도구적 신관이 있을 뿐입니다. 민족의식, 국가의식, 역사의식 같은 자연적 시공을 초월하는 넓은 의미의 공동체의식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혈연, 부락 등 일차적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좁은 의미의 공동체의식은 비록 범위는 좁을지라도 의식의 강도는 대단히 높습니다. ② 인간중심적입니다. 무속에서는 선과 악, 인간과 신, 고와 악같은 양극적 가치들 사이의 갈등이나 투쟁 대립조차도 조화와 화해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인간들끼리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간과 신의 관계도 원칙적으로 공생공존의 관계를 지향합니다. 굿에서 인간은 신과 거래하는 것이지 신을 닮으려고 노력하거나 신에게 일방적으로 압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을 조종하고 신에게 명령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③ 현실중심적이고 실용주의적입니다. 무속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긍정하고 그 현실에 적응하면서 최대한의 이익을 찾습니다. 현실적 이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건 실용적으로 이용합니다. 따라서 신이나 기계나 외래문화나 외래종교를 막론하고 무속적인 가치와 목적에 맞추어 변형시켜 가면서 응용할 수 있는 것으로 봅니다. ⅱ) 무속의 역기능 ① 책임감의 결여 및 의타주의 현실에서 이미 일어난 문제나 사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도전하거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운이 나빠서" 등으로 투사해 버리는 소극적인 태도와, 자신이 당면한 현실적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남이 대신해 주기 바라는 의타주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굿에서는 그 역할을 무당이 대행해 주고 있습니다. 책임감의 결여와 의타주의 및 운명론적인 투사로 인해 자기를 객관화하여 냉철하게 반성하기보다는 무조건 권위에 피동적으로 의존하는 유아기적 성숙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② 국가의식과 역사의식의 결여 지나친 현실주의와 가족 내지 마을 중심의 소집단주의는 거시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역사의식을 약화시키고 혈연이나 지연의 범위를 초월하는 민족의식, 국가의식의 형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실지향적인 가족주의는 가족 중심적 무사안일주의나 이해 집단 중심의 파벌주의를 형성케 할 수 있습니다. ③ 추상적 형이상학적 가치의식의 결여 이념, 사상, 신앙, 윤리 등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현실 생활을 규제하거나 현실생활의 원동력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쉽게 말해서 현실을 초월하는 고귀한 정신적 가치, 대의를 위한 삶의 의미 추구보다는 감각적, 구체적,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맹목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④ 목적제일주의 현실적 복락이라고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도구로 활용하는 실용주의는 생존을 위한 강한 적응력, 융통성이라도 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수단의 윤리적 가치를 도외시하는 무분별한 목적제일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4) 샤머니즘이 기독교 신앙에 끼친 영향 샤머니즘은 전통적으로 최고신 개념(하느님)이 있었고 귀신의 존재를 인정했기 때문에 한국민족이 쉽게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했던 Shaman과 그리스도의 개념을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샤머니즘이 한국 기독교에 끼친 긍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보다는 기독교에 끼친 해독이 훨씬 크고도 심각했습니다. (1) 기복신앙 샤머니즘에서 신앙을 갖는 목적은 복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샤머니즘에서의 복이란 운수대통하고, 건강하고, 자식 많이 낳고, 사업 잘 되고, 병 안 들고, 오래 오래 잘 사는 것입니다. 모든 복이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적이고, 이타적인 것보다는 이기적이고, 영적이기보다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입니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기복사상이 기독교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물질적이고 현실지향적인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기독교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2) 신비적 체험의 강조 강신체험과 엑스타시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샤머니즘적 신앙양태는 기독교 안에서도 신비체험과 엑스타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샤머니즘에서 무당이 될 때나 굿을 할 때 영계와 교통하며 몰아입신의 삼매경으로 들어가서 탈아상태에 빠질 수가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 안에서도 강조되어 감각적 체험이 있어야 은혜 받은 것이며, 입신, 환상, 방언, 병 낫는 기적 등 신비적인 것을 요구하는 비복음적 신앙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3) 인본주의 신앙 샤머니즘은 본질적으로 신을 섬기기 위한 종교가 아니고 인간을 위한 종교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아갑니다. 신이 인생의 목적이라든가 신을 본받는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샤머니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오직 내게 재난이 닥쳤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만 무당을 찾고 굿을 벌입니다. 그리고 굿이 끝나고 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무당이나 샤머니즘의 신과는 아무 상관없이 다시 옛날 자기의 세계로 돌아와 자기의 일을 합니다. 교회에 가는 것도 마음에 평안을 찾기 위해서이고 대학입시 시험을 볼 때, 병이 났을 때와 같이 내가 어렵고 도움이 필요할 때만 절실하게 찾고 그 외에는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 사명 중심의 절대적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하게 신본주의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적은 내 문제 해결이나 나 자신이 될 수 없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는 것입니다."(눅1:75) 그러므로 우리는 일요일에만,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고 일주일 내게 내가 처한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출처 : 무속을 좀더 깊이있게 |글쓴이 : 한선생 [원문보기]
'풍속'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몽골고비사막 (0) | 2005.10.23 |
---|---|
몽골어워 (0) | 2005.10.23 |
[스크랩] 한민족 의뿌리를 찾아서-1.왜인들이 바꿔놓은 우리의 역사 (0) | 2005.10.23 |
[스크랩] 정겨운 풍속화 (0) | 2005.10.20 |
[스크랩] 옛날 풍속화 (0) | 2005.10.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