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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훈족과 한민족의 관계

by 8866 2005. 10. 23.
안녕하세요, 저는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우연하게 이 질문을 보게 되었는데요, 다른 답변자님들의 글을 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사실, 이 훈족에 대해서 얼마 전에 제가 발표를 했었거든요. 그 때 엄청나게 애를 먹었습니다. 훈족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연구가 시작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구요. 사료는 물론이거니와, 유물, 유적, 무덤, 심지어는 여기에 관한 자료도 거의 남아있지않거나 정확하지 않아서 공부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인터넷과 여러 책들을 뒤져가면서 무사히 발표를 끝마쳤는데요, 저는 이 발표와 공부를 통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서양의 시각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훈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되었거든요. 물론, 저도 이 발표를 하기 전까지, 훈족에 대해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거니와 그들은 야만인이며, 정말 상종도 못할 나쁜 악마들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여러 책들을 읽고 자료를 모으면서, 제 생각이 얼마나 틀렸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과제가 산더미이며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아서 답변을 안달려고했지만, 서구의 시선이 가져다 준 편견이 너무 화가 나서 몇 자 적어보려합니다. 조금 길지도 모르지만, 천천히 다 읽어주세요^-^;;




일단, 가장 먼저 질문자님께서 알아주셔야 할 사항은, 훈족에 대해 정확한 학설은 한개도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수 많은 연구들은 정확한 근거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의 정황이나 지금까지 발견된 몇몇 유물, 서구인들이 기술해 놓은 역사사료를 보고 추측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애석하게도 훈족은 문자가 없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훈족의 눈으로 본 그들의 역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 글들을 한 번 읽어봐주세요.


“피부색은 어둡고, 눈 대신 어두운 구멍이 두 개 있고, 코는 납작하고, 뺨에 상처가 난 얼굴은 형태 없는 덩어리였다.” - 그리스의 역사가 조시모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들은 혐오감을 준다. 그들의 코는 모양이 없고 평평하며, 광대뼈는 튀어나왔다. 두 개의 눈에는 눈꺼풀이 조그맣게 열려 있어 광선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이지만, 꿰뚫어보는 이 눈은 훨씬 더 먼 곳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네들 갓난아이의 얼굴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두 콧구멍은 투구의 면갑에 맞추기 위해 끈 하나로 휘감겨 있었다. 엄마는 전쟁을 위해 이런 방법으로 아들을 기형으로 만들었다.……” - 클레르몽의 주교 시도니우스 아포리나리스

“신체는 작지만 땅땅한 편이고, 머리는 아주 크고 둥글며, 안면은 넓고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머리카락은 전부 잘라 겨우 정수리에만 남아 있다. 눈썹은 짙고 눈동자는 불타듯이 강렬하며 눈은 째진 모양이다.” - 사마천(흉노에 대한 묘사 중)

“그들의 가슴에는 야생동물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그들은 인류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중국의 한 궁정 관리의 기록 중


이는 훈족(흉노족)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기록입니다. 훈족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훈족에 대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훈족의 침략을 받은 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공평하고 객관적인 기록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잔뜩 겁먹은 사람의 움츠린 시각으로 훈족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표현은 절제 없이 과장되어 있고 적 훈족에 대해서 나쁜 인상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이런 기록으로 인한 훈족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바로 1998년 월트디즈니사에서 제작된 ‘뮬란’이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이 영화를 보셨는지요? 거기에는 주인공이자 선의 세력인 중국의 적으로 훈족이 등장하는데요, 훈족이 중국을 침략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상영시간 내내 훈족은 마치 저주에 찬 악마들처럼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침략과 파괴를 해댑니다. 또한 그들의 외모는 중국과 같은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폭력적이며 색깔조차도 어둡게 묘사를 했습니다.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도 훈족은 혐오스러운 외모를 가진 존재로, 사악한 외모를 가진 존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훈족에 대한 그러한 서양인들의 편견이야말로 정착문명의 역사가 지난 천년동안 저질러온 과거사에 대한 잘못을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아시아와 유럽의 최강국들을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려 버렸던 훈족의 실체에 대하여 서양의 역사가들은 많이 알지 못합니다. 유목민의 정체를 불확실한 것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유럽인들의 종교였는데요, 당시 로마인들은 종말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마곡(세상에 종말을 가져올 종족)을 훈족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로마인들은 이렇게 훈족을 악마가 보낸 군대라고 믿었기 때문에 ― 훈족을 고향도 문화도 관습도 없는 민족으로 생각했어요 ― 굳이 훈족의 유래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훈족에 대한 로마의 가장 중요한 소식통은 그리스 혈통의 로마사가인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라는 사람인데요, 그는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서 글을 썼고요, 그의 글은 고향 안티오키아를 파괴한 이민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훈족이 멸망한지 1천 5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습다. 그러나 그들은 서양인들이 생각했었던 것처럼 그런 무정부적이고 야만적인 종족이 아니라 오히려 발달한 독립 문화를 지닌 조직적 민족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소종족이 엄격한 위계질서를 지닌 분업사회를 형성하고, 그때그때 제후가 독립적으로 절대 지배권을 행사했던 개개 종족의 궁정에는 엄격한 규율이 지배했습니다. 훈족은 가축이나 기르는 기마병에 불과한 존재는 아니었으며, 그들 사회에서도 다양한 직업이 존재했습니다. 또한 고도의 문명국가 옛 페르시아 제국의 오리엔트 예술품과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분묘 출토품은 그들이 과시벽과 장식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로마 사절단의 일원으로 아틸라의 궁정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 그리스인 프리스코스로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손님에게 우호적이며 배려가 많았던 훈족의 관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질문자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이 훈족의 기원설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훈족의 기원설에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 5가지의 학설이 있습니다.

처음에 서양인들은, 로마를 멸망시킨 원인 중의 하나인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야기시킨 훈족을 동양인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서양문화의 뿌리인 로마가 지금 자신들이 그토록 무시하는 동양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했던거죠. 그래서 초기에 서양학자들은 유럽계 유목민, 즉 스키타이인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물론 백인이죠. 훈족이 굉장히 잔인한 민족으로 알려져있죠. 스키타이족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이 스키타이족이 서쪽으로 밀려오는 동양인들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깐요. 그만큼 야만적이고 잔인한 민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고 사료가 축적되면서 훈족은 아시아인인 흉노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학설로 제시되었습니다. 물론 명칭은 각각 흉노족과 훈족으로 다르긴 하지만, 그들에 대한 묘사가 같은 시기에 동서양에서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재 흉노와 훈족을 같은 민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서양인들, 절대 훈족을 동양인, 즉 황인종으로 인정할 수 없었나봅니다. 그들의 역사가 한때 야만족인 아시아인들에게 휘둘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니깐요. 그들은 결국 절묘한 '절충안'을 내놓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훈족이 흉노족이긴 하지만, 투르크계라는 거죠. 서구학자들은, 몽골로이드 계통에서 투르크족만 분리하여 이 투르크족을 백인으로 보거든요. 그래서,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학설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훈족을 검색하면, 맨 위에 '요약' 부분에 훈족은 중앙아시아의 스텝지대에 거주하였던 투르크계의 유목기마민족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근에 강력한 두 가지 학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시간적으로 더 먼저 나온 첫 번째 학설은, 훈족이 몽골계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했죠. 하나는, 훈족을 직접 본 고대의 역사가들이 묘사하고 있는 그들의 외양은 서양인의 것이 아닌 동양인의 것입니다. 더 결정적인 근거는, 장례방식입니다. 투르크족의 전통장례방식은 '화장'인데요, 몽골계의 전통장례방식은 '매장'입니다.
두 번째 학설은, 바로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훈족은 '한민족'이다라는 것인데요, 이에 대한 근거는 7가지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학설이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7가지 근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드릴게요. 이 근거들은, 제가 썼던 레포트를 그대로 발췌하겠습니다. 내용이 별로 어렵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읽으셔도 무난히 이해가 되실거구요, 저에게 사진자료도 있는데 제가 태크를 잘 못해서요^^; 쪽지 주시면 이멜로 사진 자료 죄다 보내드릴게요.

암튼, 발췌내용입니다.


<훈족은 '한민족'과 그 뿌리를 같이 한다>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가 엮은『역사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훈족의 고향을 아시아 대륙의 최동단 즉 한국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근거로는 경주 근교의 묘에서 부장품으로 발굴된 ‘점토상’을 들고 있다. 그 점토상은 말을 탄 사람 뒤에 흔치 않게 생긴 솥이 실려 있는 기마상이다. 그 솥은 훈족들이 쓰던 브론즈 냄비이며, 이 기마상은 오직 한반도의 경주 일대 지역과 훈족의 이동 경로에서만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 브론즈 냄비의 가장자리에는 도형화된 잎과 버섯 모양이 몇 개씩 나란히 붙어있는데, 훈족 귀족부인의 장식 머리띠, 신라의 금관에 똑같은 모양이 존재함을 근거로 들어 다시 한 번 훈족이 한반도 출신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곧 훈족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던 한족이 유럽을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은 흉노족 내부에서 끊임없는 분열로 인해, 원래 흉노족의 지배계층의 한 부류가 동남쪽으로 내려가 한반도에 정착했으며, 또 다른 부류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훈족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최근 들어 연구가 활발하게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구된 사료와 유물, 그리고 한족과 훈족이 그 뿌리를 같이 한다는 근거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몽골반점이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 살고 있는 훈족의 후예들에게서 몽골반점이 발견되고 있다. 몽골반점이 한민족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지만 훈족 후예들이 몽골반점을 갖고 태어난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한민족과 훈족은 친척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훈족은 그들 특유의 활을 사용했다. 이 특이한 활은 만드는 데만 5년, 제대로 쏘기 위해 활을 익히는 데만 10년이 걸리지만, 1분 안에 15발 이상 쏠 수 있다고 알려진 활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아퀼레이아에 자리한 크리프다 아프레시 교회의 프레스코화가 훈족이 이 특이한 활을 사용했음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는 말을 탄 훈족이 추격해오는 로마 기병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말을 탄 채 활로 동물을 사냥하는 고구려 무사들과 똑같다. 고분벽화에 나오는 화살촉은 도끼날 화살촉인데, 이 화살촉은 날아가면서 회전하기 때문에 목표물에 꽂히는 순간의 충격이 매우 크다. 훈족도 바로 이 도끼날 화살촉을 사용했다.
세 번째, ‘편두’ 풍습이다. 편두라는 것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반듯이 눕혀 놓은 상태에서 이마를 돌 같은 것으로 눌러 이마와 뒷머리를 평평하게 하는 대신 정수리를 봉긋 솟아오르게 만든 머리 형태이다. 일종의 성형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훈족의 뼈를 보면 이마와 뒷머리는 눌려있고 정수리는 툭 튀어 올라와 있다. 그런데 가야국이 있었던 경남 김해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법흥왕 등 신라의 왕들도 편두였다고 한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서도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편두는 중국과는 구별되는, 꽤 오랫동안 한민족 사이에서 내려온 풍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 한 가지는, 훈족에게는 편두 풍습이 있었지만 흉노에게는 그 풍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훈족은 편두 습속을 가지고 있는 특수 민족으로,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신라 지역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한편 훈족의 이동경로에서는 독특한 화분 모양의 브론즈 냄비가 발견된다. 유목 부족장들에게 바쳐진 이 냄비는 정화의식에서 고기를 제물로 바칠 때 쓰였다. 이러한 브론즈 냄비는 가야시대 고분인 경남 김해의 대성동과 양동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브론즈 냄비는 가야국 등의 원류가 북방의 기마민족이라는 증거로 자주 거론되어 왔다. 훈족은 동복을 말 잔등에 싣고 다녔는데,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상(국보 91호) 토기에도 말 잔등에 브론즈 냄비를 싣고 다니는 모습이 발견된다. 게다가 이 기마인물상의 주인공들도 모두 편두이다.
다섯 번째, 훈족의 브론즈 냄비 등에서 발견되는 문양은 한민족의 금관 등 머리 장식 양식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금관에는 나무형상(출(出)자형 장식)과 녹각형상(사슴뿔 장식)이 많다. 이는 북방 민족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풍습으로 북방민족이 한반도로 이동해 정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섯 번째, 북방 유목민족의 전형적인 습속인 순장 또한 가야 지역의 고분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 금관가야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 1호분에선 소와 말의 머리를 베어 곽 위에 얹어놓은 목곽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훈족을 포함한 북방 유목민족의 동물 희생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일곱 번째, 훈족이 나무에 빨간 헝겊을 달아 악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는 기록과 곰을 평화의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점은 우리 민족이 마을 어귀에 장승이나 솟대를 세워 염원을 빌고 곰을 토템으로 삼은 점과 매우 유사하다. 대다수 유목민족들은 곰이 아닌 다른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질문자님께서 궁금해하셨던 그 근거들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도움이 좀 되셨는지요^-^ 그리고, 훈족이 한민족이라는 것은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것이냐고 질문하셨죠.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어느 것 하나 정설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는 유력한 학설은 투르크계(백인)이라는 겁니다. 또한, 일반인들은, 한민족이 훈족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는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이 학설의 당사자(?)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 학설을 잘 모를뿐더러 훈족에 대한 편견이 심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 편견을 심어준 서구인들이 그들에 대해 관심이나 있을까요? 그들에게 아직도 훈족은 야만인이며 미개인입니다. 그들에 대해 더 알고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이 학설이 가장 최근에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인해 훈족에 대한 연구가 더욱 더 필요한 것이겠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른 분들의 답변 중에서 좀 바로잡고 싶은 부분은요^^; 그 독일에서 방영되었던 ZDF TV 역사 다큐멘터리는 엉터리가 아니랍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역사의 비밀'이라는 책이 이 역사 다큐멘터리들 중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사실이나 학설을 제시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몇 개를 뽑아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은 인정받은 책입니다. 저희 교수님께서 참고해도 되는 서적이라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시중에 무수한 역사관련 책이 있지만, 공부할 때 모두 다 참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한 책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저도 교수님께 발표 전에 이 책에 대해서 여쭈어 본거구요. 암튼 이 책이 권위있는 책이라고까지는 저도 말씀 못드리지만, 적어도 엉터리는 아닌, 학계에서 어느정도 인정은 받고 있는 책이라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 질문에 이렇게 열심히 대답한 이유는요, 질문자님께서 제기하신 물음인 '정말 훈족이 한민족인가'라는 학설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훈족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정확한 학설은 아직 없거든요. 그럼 제가 왜 이렇게 열변을 토했느냐(?) ㅡ_ㅡ;; 질문자님의 질문에 대해서 제가 알고있는 사항을 답변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긴 컸지만, 바로 우리에게 심어진 잘못된 편견의 잣대로 함부로 역사를 평가하지 말자는 의도도 컸습니다. 우린 지금도 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 편견 속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어떤 것이 편견인지, 어떤 것이 고정관념인지 모르는 채로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전통에 길들여진 채로, 서구에 길들여진 채로 살아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잡아야죠. 있는 그대로, 그냥 알려진 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특히, 저같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겠죠.

덧붙여서, 2001년에 만들어진 '검투사 아틸라'라는 영화를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비교적 고증도 잘 되어있는 편이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왜 가치가 있냐하면요, 훈족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훈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 낸 서양인들의 손으로요. 그리고, '역사의 비밀'이란 책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더 의문나시는 점이나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 등이 있으면 쪽지로 질문해주세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심성의껏 대답해드릴게요^ㅁ^/ 그리고 위 답변을 작성한 참고문헌과 사이트(제가 레포트 쓸 때 참고했던 것과 동일합니다.)를 아래에 제시할게요.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청 긴데,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참고문헌 및 사이트>

차용구,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푸른역사, 2004
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 바람에 새겨진 역사』, 자우출판, 2002
웨스 로버츠 , 『아틸라의 리더쉽』, 신현국 역, 김영사, 1990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역사의 비밀』, 이민수 역, 오늘의 책, 2000
패트릭 하워스, 『훈족의 왕 아틸라』, 김훈 역, 가람기획, 2002

http://100.naver.com/100.php?id=174811
http://www.uncharted.com.ne.kr/background/hun.htm http://www.land.go.kr/landlife/publiccolumn/pubinhe/2004/07/26/309,2650,0,0,0.jsp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5&article_id=0000501728§ion_id=105&menu_id=105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92947
http://1004eyes.com/bbs/view.php?id=eng_histo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훈족&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5
 네이버 지식인에서 펌          글쓴이 : yuran813
 
출처 : 한민족의 힘 |글쓴이 : 연리수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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