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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by 8866 2005. 10. 15.

 

 

가끔은

세월의 망망한 바다에서

나를 싣고

탄생과 종말의 부두를 항해하는

시간과 공간의 여객선에서 하선하고 싶지만

내 인생의 항로에는

시발과 종착부두 말고는 또 다른 항구란 없다.

 

나를 길러주고 동반자가 되어주고

모든 이유와 가능성과 영욕의 격동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의 그림자-시간과 공간!

 

나를 파멸에로 유도하고 죽음의 사자가 되고

모든 의미와 가치와 희노애락의 흔적을

무덤 속에 장례지내는

원한의 뿌리인 시간과 공간!

 

나한테 영혼과 욕망을 대여하고

대신 자유를 철회해 간 유령

나의 운명을 주재하는, 내 친구

시간과 공간이여. 

 

그대를 내 사유의 도마에 올리니

칼을 쥔 손이 살의에 떨리고

향기로운 산해진미의 창조를 꿈꾸는

요리사의 흥분을 느낀다.

 

가끔은

내 인생의 발목에 끈질기게 늘어붙는

그대의 손을 뿌리치고

규제와 속박에서 도망가고 싶다.

 

광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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