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세월의 망망한 바다에서
나를 싣고
탄생과 종말의 부두를 항해하는
시간과 공간의 여객선에서 하선하고 싶지만
내 인생의 항로에는
시발과 종착부두 말고는 또 다른 항구란 없다.
나를 길러주고 동반자가 되어주고
모든 이유와 가능성과 영욕의 격동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의 그림자-시간과 공간!
나를 파멸에로 유도하고 죽음의 사자가 되고
모든 의미와 가치와 희노애락의 흔적을
무덤 속에 장례지내는
원한의 뿌리인 시간과 공간!
나한테 영혼과 욕망을 대여하고
대신 자유를 철회해 간 유령
나의 운명을 주재하는, 내 친구
시간과 공간이여.
그대를 내 사유의 도마에 올리니
칼을 쥔 손이 살의에 떨리고
향기로운 산해진미의 창조를 꿈꾸는
요리사의 흥분을 느낀다.
가끔은
내 인생의 발목에 끈질기게 늘어붙는
그대의 손을 뿌리치고
규제와 속박에서 도망가고 싶다.
광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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